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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부산 자갈치시장 개요
오늘날 자갈치시장이 있는 곳은 남쪽의 물가라는 뜻인 남빈으로 불렸다. 바닷가에는 주먹만 한 자갈들이 있어 자갈치시장이라는 이름이 생겼으며, 일제강점기 때 매립과 매축 공사를 통해 남항이 건설되었다. 남항은 부산의 어업 기지가 되었고, 일제는 수산물 도매시장을 세워 경남에서 생산되는 수산물을 장악하고 통제했다.
일제강점기 때 남항 주변에는 부산수산주식회사가 운영하는 어시장과 한국인과 일본인이 함께 세운 부산어업조합이 있었다. 1935년에는 공설시장인 중앙도매시장이 개설되면서 수산물의 집산과 유통을 통제했다. 한편 시장을 중심한 해안 일대에는 소형 고기잡이배를 통해 잡힌 해산물을 파는 노점들이 있었는데, 이들이 훗날 자갈치시장으로 이어진다. 해방과 한국전쟁 때 수많은 사람들이 부산으로 밀려들었고, 생계를 위해 시장 주변에서 노점을 형성했다. 해안가에는 부산어패류처리장 건물을 중심으로 판자로 지은 가게들과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고, 노점들로 이루어진 시장이 형성되었다. 부산시는 한국전쟁 이후 판자촌을 정비하고, 1969년에 건물을 지어 1970년 자갈치시장을 개설했다. 오늘날 자갈치시장은 많은 시민들과 관광객들이 찾는 부산의 명소로 자리하고 있다.
2. 부산 자갈치시장의 어원
자갈치시장이 위치하고 있는 남포동의 옛 이름은 남빈(南濱)이었다. 남빈은 남쪽의 물가라는 뜻으로 주먹 크기의 굵은 자갈들이 해안가에 깔려 있는 아름다운 어촌이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때 매립과 매축이 이루어지며 남항이 건설되면서 포구, 항구가 있다는 뜻의 남포(南浦)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일제강점기 때까지는 남빈정으로 불렸고, 남포동이 된 것은 해방 이후의 일이다. 예전에 해안가에 널려 있던 자갈과 어시장에서 팔리던 물고기를 의미하는 ‘치’ 자가 붙어 자갈치라는 이름이 되었다.
3. 부산 자갈치시장의 형성 과정
자갈치시장이 있는 곳은 일제강점기 이전까지는 바다였다. 따라서 자갈치시장의 기원을 알기 위해서는 남항의 매립과 매축부터 살펴보아야 한다. 일제강점기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1915년 남항 건설 계획이 수립되었다. 그러나 여러 사정으로 곧바로 공사가 이루어지지 못했고, 본격적으로 공사가 시작된 것은 조선총독부의 허가가 떨어진 1928년이었다. 남항 공사에는 총 550만 원의 경비가 소요되었다. 이 공사의 핵심은 대한해협의 거센 파도를 막을 수 있는 방파제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방파제가 완성된 것은 1931년이었고, 그해에 방파해벽까지 준공하면서 1차 해안 매축 공사를 끝마쳤다. 이때 매축된 부지는 14만 8,038m2로, 도로를 제외한 땅은 10만 1,963m2였다. 이렇게 조성된 땅은 평당 62원에 팔렸다. 1차 공사가 성공적으로 끝나자 2차 공사가 시작되었다. 1934년에 시작해 1940년에 끝난 매축과 매립 공사를 통해서 11만 2,200m2의 매립지를 얻었고, 도로 등에 이용된 땅을 제외하고 7만 3,722m2를 얻을 수 있었다.
이렇게 건설된 남항으로 인해 오늘날의 남포동 일대에 큰 변화가 찾아왔다. 지도가 바뀐 것은 물론이고 배에서 화물을 내리는 하역장과 소형 어선의 선박을 위한 작은 규모의 부두가 만들어져 남항은 우리나라 최대의 어업 전진기지가 되었다. 하역장은 12m의 해안도로를 따라 길이 450m, 넓이 6m로 비탈지게 축댓돌을 깔아 하역의 편리성을 높였다. 새롭게 땅이 형성된 옛 남포동의 이름인 남빈정에는 여러 개의 시장이 형성되었다. 남빈시장을 비롯해서 부산식량품주식회사시장, 부산수산주식회사어시장, 중앙도매시장 등이 그것이다. 남빈시장은 1924년 8월 25일에 당시 본정이라고 불린 오늘날의 동광동에 개설되었다. 당시 이름은 본정시장이었다. 그러다가 1935년 남항이 매립된 이후 남빈정(남포동)으로 이전하고, 남빈시장으로 이름도 바뀌었다. 남빈정에 있다고 해서 남빈정시장으로도 불렸다. 부산식량품주식회사에서 운영했던 시장은 사설시장이자 도매시장으로, 2층짜리 목조건물에 휴일을 제외하고 매일 새벽 6시부터 정오까지 문을 열었다. 1923년의 자료에 따르면 주요 거래 품목은 채소와 과일이고, 연 거래액은 35만 9,141원을 기록했다. 이 시장은 일본과 한국 각지에서 위탁받아 중매인을 통해 판매했다. 부산수산주식회사에서 운영했던 어시장은 하역장을 갖춘 2층짜리 목조건물이었다. 부산수산주식회사는 개항 이후인 1889년 일본인에 의해 설립되어 1907년에 주식회사가 되었고, 해방 이후 미군정으로 넘어갔다가 한국인에게 불하되었다.
이 어시장은 1월 1일을 제외하고 매일 문을 열었고, 주요 거래 품목은 어류였다. 1923년에 기록한 연 거래액은 218만 7,425원으로 규모가 상당했다. 경남 각지에서 생산된 수산물을 모아서 중매인을 통해서 한국 각지와 일본, 만주로 공급하는 도매시장이었다. 이렇게 일본인들이 한국에서 어류 도매업을 할 수 있었던 것은 1911년 공포된 조선어업령에 따른 것이다. 조선어업령은 일제가 한국의 수산업을 장악하고 통제하기 위한 법령이었다. 따라서 한국의 어업조합도 이 법령에 따라야 했다. 부산에서는 이 법령에 따라 한국인과 일본인이 합자해서 세운 부산어업조합이 설립되었다. 부산어업조합은 지금의 남포동에 자리를 잡았다. 부산어업조합은 해방 이후에 수산업법이 폐지되면서 조선어업령이 폐기되자, 기존 중앙도매시장의 어시장을 인수했다. 중앙도매시장은 1935년에 문을 연 시장이다. 중앙도매시장이 신설된 것은 도시의 급성장, 경제 발달에 따른 물가 상승에 도매상들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자 부산시에서 기존 사설시장들을 공설시장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당시로서는 최신 설비를 갖춘 중앙도매시장은 기존의 시장들과 달리 철근콘크리트 건물이었고, 부지도 7,418m2에 이를 정도로 컸다. 또한 위치가 부산항의 중심에 있어서 하물의 하역과 상차가 용이했다. 중앙도매시장은 크게 수산물을 다루는 선어부와 과일과 채소를 다루는 청과부로 나뉘었다. 각 부에서는 생산자로부터 위탁을 받아 지정된 중매인을 통해 판매했다. 한편 위에서 살펴본 여러 도매시장 주변에는 부산항에서 고기잡이하는 영세한 어선들에서 잡은 수산물을 파는 노점들이 형성되어 있었다. 이는 훗날 자갈치시장의 전신이다.
4. 시장의 발달 및 변천 과정
해방 이후 남포동이 속해 있는 중구는 해외에서 돌아온 동포들과 한국전쟁으로 피란 온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었다. 해방 당시 40여 만을 헤아리던 인구는 한국전쟁 당시 2배 가까이 증가했다. 인구가 갑자기 늘어나자 주거와 일자리가 문제가 되었다. 사람들은 곳곳에 판잣집을 짓고, 생계를 꾸리기 위해 일자리를 찾으러 다녔다. 그러나 일자리는 턱없이 부족했고, 많은 사람들이 오늘날의 국제시장이나 부평시장 골목 곳곳에 노점을 열거나 시장 주변에서 지게꾼으로 일했다. 남포동의 해안가에도 기존에 있던 노점에 더해 많은 사람들이 좌판을 펼쳤다. 노점들이 많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갯가 시장이 형성되었다. 당시 남포동은 이렇게 연안 여객선이 정박하는 내항의 기능과 연근해에서 활동하는 어선들이 잡은 수산물이 모이는 어항의 기능, 갯가에 즐비한 노점들의 시장 기능이 얽혀 있는 복잡한 공간이 되었다. 한편 1959년 정부는 부산에 현대적인 어시장을 설립하기로 하고, 현재의 국제여객터미널 부두 자리에 1963년에 부산공동어시장을 개설했다. 당시 이름은 부산종합어시장이었다. 부산공동어시장은 1973년 지금의 자리인 남부민동으로 이전했다. 또한 갯가 시장을 형성한 곳에는 가건물로 지은 부산어패류처리장이 있었다. 이 건물을 중심으로 주변에 판자로 세운 가게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그리고 해안가를 따라서 노점들이 형성되어 있었다. 부산시는 한국전쟁 이후 부산어패류처리장 인근에 있던 판잣집 가게를 철거했다. 1961년 군사쿠데타 이후에는 그곳에 가게를 정비했고, 1969년에는 인근 노점 상인을 수용해 현재의 위치에 3층짜리 건물을 지었다.
자갈치시장은 이렇게 1970년에 개장되었다. 자갈치라는 이름은 자갈이 많다는 것과 그곳에 멸치와 꽁치, 갈치 같은 생선을 의미하는 ‘치’ 자가 합쳐져 되었다. 자갈치시장이 정식으로 시장 등록을 한 것은 1972년의 일이다. 1985년에 큰 화재가 발생해서 점포 231개가 소실되었는데, 다음해 현대식 건물로 개축해서 다시 문을 열었다. 그리고 2006년에 다시 현대식 건물로 탈바꿈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자갈치시장의 범위는 명확하지 않다. 영도다리 바로 옆의 건어물시장에서 충무동공동어시장까지 모두 통칭해 자갈치시장이라고 부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자갈치시장이 처음부터 노점의 형태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자갈치시장에는 과거 노점의 전통이 지금도 그대로 남아있다. 이른바 ‘판때기장수’라고 부르는 아주머니들이다. 시장 동쪽에는 살아있는 곰장어를 구워 파는 판때기장수가 있고, 해삼과 멍게를 파는 판때기장수, 삶은 고래고기를 눈앞에서 썰어주는 판때기장수, 미역이나 톳나물 등을 파는 판때기장수들이 촘촘하게 자리를 깔고 앉아 있다. 판때기는 널빤지의 속어로 노점을 가리킨다. 즉, 널빤지로 좌판을 만들어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판때기장수들이다. 줄지어 있는 판때기장수들의 모습은 다른 시장에서 찾아보기 힘든 매우 독특한 광경이다. 흔히 자갈치 아지매로 불리는 판때기장수들이야말로 자갈치시장의 실제적인 주인이라고 할 수 있다.
부산어패류처리장은 1층에는 활어부 5곳, 전복부 87곳, 선어부 69곳, 잡어부 103곳 등으로 374개의 점포가 있고, 2층에는 식당가, 식품부, 건어부 등의 484개의 점포가 영업하고 있다. 자갈치시장에서 유통되는 수산물은 크게 어패류와 활어, 건어물류로 구분된다. 어패류의 경우 40~50%가 부산공동어시장에서 공급되고, 활어는 주로 소형 어선에 의해 연안에서 잡히는 어류들이 부두에서 직접 공급된다. 건어물은 주로 남포동1가에서 유통된다. 자갈치시장인 영도대교에서 부산공동어시장 사이에는 충무동의 여러 시장들이 위치해 있다. 그래서 이들을 넓은 의미에서 부산수산물거리라고도 부른다. 부산수산물거리는 남항을 중심으로 형성된 도로를 따라 수산물과 건어물 등을 판매하고 있는 매장과 노점이 있는 거리를 가리키는 말이다. 부산수산물거리에는 자갈치시장을 비롯해서 충무동 해안시장, 충무동 새벽시장이 포함되어 있다. 이 부산수산물거리는 우리나라에서 거래되는 수산물과 건어물의 30~50%를 공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동아시아에서 가장 큰 어시장으로 손꼽힌다.부산수산물거리에는 노점을 비롯해 말리는 중인 건어물, 포장마차, 횟집, 제빙 시설 등이 사슬처럼 이어져 있어 볼거리를 제공한다. 매년 10월이면 부산수산물거리에서는 자갈치축제가 열린다. “오이소! 보이소! 사이소!”라고 외치는 자갈치 아지매들의 구호를 슬로건으로 내세운 자갈치축제는 1992년부터 2015년까지 24회에 걸쳐 개최되고 있는 전통 있는 축제이다. 자갈치축제는 용두산공원에서 용신제를 지내는 것으로 시작해 퍼레이드, 불꽃놀이, 각종 체험행사, 회비빔밥 만들기 등 다양한 이벤트를 통해 주민과 관광객이 함께하는 떠들썩한 축제이다.
* 충무동의 시장들
부산수산물거리에 포함되어 있는 충무동에는 충무동 새벽시장, 충무동 해안시장, 충무동 골목시장, 충무시장 등 여러 시장이 자리하고 있다. 충무동 새벽시장은 농수산물을 파는 도매시장이다. 1965년에 개설된 인근의 자갈치시장을 비롯해 식당이나 식료품 가게에서 주로 이용하는 농수산물 식재료 시장이다. 새벽시장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인근의 부산공동어시장이나 부산농산물도매시장에서 경매를 통해 구입한 것을 새벽에 판매했기 때문이다. 충무동 새벽시장은 2005년에 전통시장으로 인정받았으며, 2012년에 아케이드 공사를 마쳤다. 충무동에는 흥미로운 골목이 하나 있다. 이른바 충무동 여인숙골목이다. 충무동 여인숙골목은 충무동 새벽시장 안에 형성되어 있다. 이 여인숙골목은 일제강점기 때부터 해방과 한국전쟁, 산업화를 거치면서 하나둘씩 생겨나기 시작해 오늘날 골목을 형성하고 있다. 처음 여인숙이 생겨난 것은 1930~1940년대에 남포동이 매립되고, 배들의 입출입이 늘어나면서 선원들의 숙소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 이후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귀환한 동포들이 숙소로 활용하기도 했다. 오늘날에도 장기 투숙을 원하는 선원들이 찾고 있다. 충무동 여인숙골목은 시장 안의 좁은 골목을 따라 오래된 여인숙들이 즐비해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충무동 해안시장은 수산물을 구하기 쉽다는 지리적인 이점으로 형성된 시장이다. 초기에는 어선의 선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점포들이었다. 1960년대 초반에는 새벽시장처럼 새벽에만 문을 열었지만 이후 상설시장으로 변했고, 1965년에 충무동 해안시장이라는 이름으로 개설되었다. 2005년에 전통시장으로 인정을 받았다.
충무동 해안시장은 여전히 선원들을 위한 의류나 모자, 바다에서 필요한 바람막이나 보온에 필요한 물건들, 고기잡이배에서 사용할 정육 등을 판매한다. 충무동 골목시장은 충무동의 다른 시장들과 비슷한 시기에 전을 파는 음식점들이 모이기 시작해 골목이 형성되면서 생긴 시장이다. 충무동 골목시장 또한 2005년에 전통시장으로 인정받았다. 그 후 주로 채소와 과일, 생선, 잡화 등을 취급한다. 음식점이 유명한 충무동 골목시장에서 첫손에 꼽히는 곳은 파전골목이다. 또한 해산물 구입이 쉽다는 이점을 살린 생선구이집도 많다. 충무시장은 1983년에 개설, 같은 해에 등록한 상가건물형 시장이다. 주택들이 밀집해 있는 곳에 개설되어 있어 주로 생활에 필요한 생활용품이나 잡화 등이 판매된다. 신동아수산물종합시장은 부동산개발업자가 건물을 짓고, 점포를 분양해서 생긴 시장이다. 1986년에 신동아수산물종합시장으로 등록했고, 다음해에 개설된 상가건물형 시장이다. 1층에 수산시장이 있어 활어와 선어 및 어패류를 판매하고 있으며, 각 점포마다 그 자리에서 먹을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어 있다. 2층에는 건어물 전문 시장이, 3층에는 회 센터로 대형 연회장과 식당이 자리 잡고 있다. 부산공동어시장은 수산업협동조합을 비롯한 5개 조합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어시장이다. 일제강점기 때 조직된 부산어업조합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부산종합어시장이라는 이름으로 시장이 개설된 것은 1963년의 일이었다.당시에는 부산항 제1부두에 있었지만 부산항이 북항과 남항으로 나뉘고, 북항이 무역 전용 항구로 바뀌면서 1973년에 지금의 위치로 이전했다. 부산종합어시장은 이전하기 전인 1971년에 부산공동어시장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부산공동어시장은 100t급 어선 48척이 계류할 수 있는 항만 시설과 냉동 공장, 위판장 등을 갖추고 있으며, 전국을 상권으로 하고 있다. 부산공동어시장에서 출하되는 어류들은 부산, 서울, 대구의 순서로 많이 팔려나간다. 현재 부산 수산업의 중추를 담당하고 있다.
5. 부산 자갈치시장의 위치와 거래 품목
자갈치시장은 부산지하철 1호선 남포역과 자갈치역 사이에 위치해 있다. 따라서 부산수산물거리를 함께 즐기고 싶다면 남포역에서 내려 영도대교 아래부터 바다를 따라 자갈치시장으로 가는 것이 좋다. 자갈치시장에서는 주로 해산물을 취급하고 있다. 자갈치시장에서 신동아수산물종합시장이 있는 방향으로 가다 보면 해안선이 남쪽으로 꺾이는데, 그곳에 충무동 해안시장이 있고, 조금 더 따라가면 충무동 새벽시장이 나온다. 충무동 새벽시장을 지나 해안을 따라 조금 더 내려가면 부산공동어시장이 나타난다. 충무동 해안시장에서는 선원들을 위한 용품들을 많이 팔고, 충무동 새벽시장은 농산물과 수산물을 도매로 판매한다.
6. 시장의 지리적 배경과 인근 볼거리
부산 남포동은 영도대교에서 해안을 따라 길게 형성되어 있다. 따라서 남쪽은 바다, 북쪽은 국제시장과 부평깡통시장이 있는 신창동과 부평동이 인접해 있다. 원래 자갈이 깔린 바닷가였던 남포동은 일제강점기 때 매립과 매축 공사를 통해서 항구가 건설되었다. 이후 한국을 대표하는 어업 기지로 자리매김했으며 일제강점기 때에는 수탈의 통로가 되기도 했다. 해방과 한국전쟁 이후 부산의 중심지로 발돋움해 인근의 국제시장, 부평깡통시장과 함께 부산의 중심 상권을 형성했고, 특히 자갈치시장을 중심으로 한 부산수산물거리는 우리나라 수산물의 30~50%를 공급할 정도로 수산업이 활발하다. 인근의 명소로는 용두산공원, 태종대 등이 있다. 용두산공원은 부산 시가지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부산타워가 있어 멀리로는 오륙도, 태종대도 볼 수 있다. 또한 자갈치시장이나 국제시장이 있는 시내와도 가까워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태종대는 영도섬의 끝자락에 있는데, 기암괴석과 넓은 바다를 감상할 수 있는 아름다운 곳이다. 자갈치시장에서 버스로 20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위치해 있다.
7. 먹을거리
자갈치시장의 먹을거리는 단연 회를 비롯한 해산물이다. 특히 판때기장수들이 파는 곰장어와 고래고기 등은 다른 지역에서는 맛보기 힘든 별미이다. 또한 가까운 곳에 창선동 먹자골목이 형성되어 있어 다양한 음식을 즐길 수 있다. 창선동 먹자골목은 입구에 있는 씨앗호떡에서 시작해 충무김밥과 순대, 국수, 어묵, 떡볶이 등이 유명하고, 비빔당면과 유부주머니도 대표적인 먹을거리이다. 이 외에도 주변에 양념 목살골목, 꼼장어, 통닭 등 딱히 한 가지를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먹을거리가 즐비하다.
참고문헌
《朝鮮の市場(조선의 시장)》 조선총독부, 1924년
《市街地の商圈(시가지의 상권)》 조선총독부, 1925년
《경상남도의 향토문화》 정신문화연구원, 1999년
《사라져가는 우리의 오일장을 찾아서》 주영하 외, 민속원, 2003년
《부산의 장터》 부산학연구센터, 부산발전연구원, 2007년
〈시장순방(14) 부산자갈치〉 매일경제, 1969년 9월 13일자
부산광역시청 : http://www.busan.go.kr
자갈치축제: http://busan.grandculture.net/
부산역사문화대전 : http://www.ijagalchi.kr/
(국내 시장백과,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자갈치시장
자갈치시장 친수공간親水空間
1층에는 활어, 전복, 선어, 잡어 등을 파는 점포가 있고 2층에는 식당, 식품, 건어물 등을 취급한다.
2022-01-26 작성자 명사십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