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 2005~2020]/정기산행기(2007)
2007-04-29 22:05:43
138차 방태산 산행기
1. 일시 : 2007. 4. 28(토)
* 27일(금) 오후 7시 30분 출발, 11시 30분 휴양림 도착. 일박하고 아침부터 산행
2. 참가 : 문수(대장), 상국, 진운, 재일, 택술(5명)
산행예정지를 잡는 것도 일이고, 산행대장 정하는 것도 일이다.
방태산, 그 이름은 몇 해 전에 읽은 책에서 사람 병을 잘 고치는 어느 한의사가 움막같은 집을 지어놓고 환자들을 많이 걷게 해 병을 나순다더라. 해서 꼭 한 번 가보고 싶었던 산.
산행대장, 누가 하나?
강원도 구석구석을 뒤지고 다니는 문수가 적격인데, 올들어 문수가 벌써 대장을 몇 번이나 했던 터라 또 대장 맡아달라고 부탁하기 좀 부담이 되었으나, 일전에 이름 4자인 산은 무조건 문수가 대장한다는 말이 있었기에 방태산을 ‘방태지산’으로 바꾸고, 문수가 산행대장 할 거라고 일방적인 공지를 올렸다.
강원도 인제까지 당일치기 산행하기 좀 어려운듯하여 금요일 저녁에 떠나기로 하고 선수들을 모집, 마지막에 택술이가 신청하여 총 5명. 7시에 수원을 출발한 문수, 30분에 나랑 진운이가 죽전에서 타고, 8시 20분경에 복정에서 재일이와 택술이를 싣고 강원도로 이동.
저녁을 간단히 먹고 왔지만 밤늦게 도착하면 또 배가 고플 것 같아 간단히 요기를 하고 가자는 의견들이다. 참가 인원이 적으면 회비를 마음대로(?) 써버리는 게 30산우회의 불문율, 밤늦은 시각의 국도변, 문수가 추천하는 숯불구이 집에서 삼겹살에 소주 2병을 맛있게 해치웠다. (문수가 입력해둔 전국의 맛집이 240개란다. 한 번도 기대를 저버린 적이 없다.)
밤 11시 30분, 방태산 휴양림에 도착, 방이 깨끗해 좋고, 간만에 듣는 계곡의 물소리가 시끄러워 더 좋다. 간단히 씻고 맥주 한 캔씩 마시고선 바로 취침.
아침 7시에 기상하여 문수가 챙겨온 왕사발면에 찰밥을 말아먹으니 배가 든든하다. 문수 아이스박스에선 별별 것이 다 나온다. 각자 김밥 두 줄, 오이와 바나나까지 배급받고 장비를 챙긴다. 휴양림에서 바로 산행을 시작하는 줄 알았는데, 차에 타란다. 우리가 자고 있을 때, 6시에 일어나 산행들머리까지 차로 다녀왔다네? 새벽잠이 없는 걸 보면 문수가 에법 늙었나보다.
부지런한 대장 덕분에 들머리까지 편하게 이동, 그 와중에도 경치좋은 이단폭포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계곡의 물은 엄청 맑고, 군데군데 연분홍 진달래가 수줍게 피어나는 호젓한 산길, 공기도 좋고, 컨디션 좋다.
가는 길에 나물이 많이 있으면 금상첨화겠는데... 미리 나물 채취용 비닐을 옆구리에 찼다. 하지만 산 내려올 때까지 취나물 단 하나도 보지 못했다. 택술이는 머위처럼 보이는 나물이 길에 많은 걸 보고 쪼그려 앉아 제법 땄는데 아무래도 노랑꽃이 미심쩍어 말렸다.
“이거 묵다가 입 돌아가는 거 아이가?”
그런 농담을 하곤 웃었는데 집에 와 찾아보니 그거 동의나물이라는 독초더라. 크크.
얼레지가 지천으로 피었다. 얼레지 근처에 핀 하얀 꽃도 안면이 있긴 한데 이름을 잘 모르겠더라. 좀 미안했다.
대장이 산행코스에 대해 조사를 많이 해왔다. 나물꾼들이 야영을 하던 터가 있다더니 정말 땅을 고르고 낙엽을 덮고 그 위엔 비닐로 덮어씌운, 이불을 올리기 위한 시설물도 보이고 불을 땐 흔적도 보인다.
“이거 혹시 온돌처럼 아래에서 불을 때면 이 전체가 다 따뜻해지고, 위에 있는 구멍으로 연기가 빠져나간 것은 아니가?” 이공계 교수인 진운이 눈이 날카롭다.
‘생각은 그럴듯한데... 연기란 놈이 조금만 틈이 있어도 새기 마련인데, 그런 것 같지는 않고, 그래도 돌멩이에 온기는 남을란가?’ 모르겠다.
두릅나무에 이제야 순이 하나 올라오려고 용을 쓴다. 강원도는 강원도인 모양이다.
슬슬 올라간다. 진운이가 좀 먼저 가다가 무전기로 연락해 같이 합류, 오르막이 좀 힘들어도 5명이라 뒤쳐지는 친구도 없고 계속 같이 가는 페이스다. 정상에 닿을 때까지, 찝차로 비포장길 오지를 돌아다니는 동호회원들 한 팀을 만난 것 말고는 사람이라곤 구경을 못했다. 너무 조용해 평소 시끄럽던 진홍이나 뱅욱이, 갱남이, 펭귄.... 그런 친구들이 그립다고 한 마디씩 한다.
늘 그렇지만 방태산도 마찬가지, 처음 능선에 오르기가 힘들었지 그 다음부터는 산책하는 길이다. 구룡덕봉에서 단체사진 한 장 찍고 정상인 주억봉까지도 길이 좋다. 삼거리에서 약간 경사가 있지만 워낙 짧은 거리라 별 문제 없었다. 정상, 근데 변변한 정상석 하나 없어 좀 섭섭했다. 주위 산들을 둘러보고 설악산과 점봉산을 찾아보며 파노라마 식으로 사진을 찍었다.
정상에서 다시 500m 떨어진 삼거리까지 회귀, 오붓하게 식사. 그제야 반대편 쪽에서 등산객들이 몇몇 올라온다.
하산하는 길은 약 3Km,
어? 이 길이 훨씬 가파르다. 이리 올라왔으면 힘 많이 들었겠다.
문수가 호주머니에서 손바닥만한 종이를 꺼내 보여준다. 산행 코스를 선으로 그리고, 거리와 예상 시간을 직접 써둔, 간이 산행지도인 셈이다. 거기에 우리가 올라온 오르막엔 ‘가파른 길’이라 되어있고 내려오는 길은 ‘매우 가파른 길’ 이라 되어있다.
대장 안 시켜줬으면 섭섭해서 우짤 뻔 했노?
원점회귀하니 식사시간 포함 총 5시간 30분 걸렸다. 밥 먹은 시간 빼면 5시간 코스. 그리 힘든 산행은 아닌데 처음 공지할 때부터 1,400이 넘는 고도와 만만찮은 이동 거리 때문에 누구누구가 겁을 먹은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같이 왔으면 좋았을 텐데...
그 다음부터는 문수대장이 이끄는 대로 실려 다녔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졸다가 깨어보면 이상한 데 와있고, 내리라하면 내려서 구경하고, 또 이동.
하나라도 더 보여주려는 대장의 정성이 눈물겹다. 내린천도 보고, 살둔 산장도 보고, 한번은 꼭 가보고 싶었던 운두령, (여긴 어느 글에서 읽은 슬픈 사랑의 이야기가 있어 더 그렇다.) 다시 맛집을 찾아 봉평 메밀 막국수를 먹고 태기산까지 거쳐 계속 고고.
차가 많이 밀린다.
죽전 집앞에 내리니 저녁 9시가 넘었다. 일산까지 먼 길을 가야하는 재일이가 걱정이 된다. 나중에 전화를 해보니 집에 가는 지하철 안인 모양이다. 밤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집에 가서 사진까지 올려주는 재일이, 전날 오후 5시 30분에 집을 나섰다하니 꼬박 30시간 지나 집에 닿은 셈이다.
운전하느라 고생한 문수와, 조수석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로 운전수 잠 못자게 방해한 역할 잘 해준 진운이, 라디오에 나오는 시사문제로 또 문제 제기를 해 전부를 잠깨게 한 택술이, 이런 친구들 덕분에 방태산을 무사히 다녀온 셈이다. 전날 저녁에도 문자가 왔었는데 산행 도중에도 광용이한테서 문자가 왔더라.
“좋나?”
보낸 답은... 간단하게...
“조타”
방태산, 더 이상 어눌하게 표현할 것 없이
참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