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시슈타가 브람마에게 물었습니다.
신이시여! 현자의 저주가 인드라의 몸에만 영향을 주고 마음에는 영향을 끼치지 않는 일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몸이 마음과 다르지 않다면, 그럼 그 저주는 마음에도 영향을 끼쳐야 합니다. 어떻게 마음이 영향을 받지 않았는지, 아니면 마음이 영향을 받았는지 설명해 주십시오.
창조자 브람마가 대답했습니다.
친애하는 이여! 브람마에서 언덕에 이르기까지, 형체가 부여된 우주의 모든 존재들은 두 개의 몸을 가지고 있다. 이들 가운데 첫째는 쉬지 않고 빠르게 행동하는 마음의 몸이다. 둘째는 살로 만들어진 몸이다. 이것은 실제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물론 저주, 은혜, 마력은 후자를 압도한다. 몸은 연꽃잎 위에 있는 물방울처럼 어리석고 무력하며 덧없는 것이다. 그것은 운명, 숙명과 같은 것들에 전적으로 지배를 받는다. 그러나 마음은 의존적인 듯 보이지만 독립적이다. 마음이 확실히 자기 노력에 임할 때, 그것은 슬픔의 범위를 넘어선다. 마음이 노력할 때, 언제나 그것은 노력의 결실을 틀림없이 발견한다.
육체적 몸은 아무것도 이룰 수 없는 반면에, 마음의 몸은 결과를 얻는다. 마음이 언제나 순수한 것에 머물 때, 마음은 저주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몸은 불이나 수렁에 빠질 수 있지만, 마음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만을 경험한다. 이것은 인드라에 의해 증명되었다. 이것은 현자 디르가타파에 의해서도 증명되었다. 그는 종교적 의식을 하고 싶었다. 종교적 의식을 위한 물질을 모으다가 막힌 우물에 빠졌다. 그래서 그는 의식을 마음으로 치렀다. 그렇게 하여도 눈에 보이는 물리적인 의식을 치른 결실을 얻었다. 성자의 열 명의 아들들 또한 마음의 노력으로 브람마의 신분에 이를 수 있었다. 나조차도 그것을 막지 못했다.
저주와‘사악한 눈’은 물론이고 정신적, 육체적 질병이 나에 헌신하고 있는 마음에 닿는 것보다는 연꽃이 바위에 떨어져 바위를 둘로 쪼개는 것이 더 쉽다. 그러므로 마음을 가지고는 마음이 순수한 길을 가도록 하고, 나를 가지고는 나가 순수의 길을 가도록 애써야 한다. 마음이 생각하는 것은 그 무엇이든지 즉시 이루어진다. 환영을 실재라고 지각하는 시각을 치유하기 위해, 집중적인 명상을 함으로써 마음은 내부에 급격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마음이 하는 것을 실제로 경험 한다. 마음은 달빛 속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 타는 듯한 더위를 경험하게도 한다! 이런 것이 신비한 마음의 힘이다.
바시슈타가 계속 말했다.
오, 라마여! 옛날에 창조자 브람마는 이렇게 나를 가르쳤습니다. 나는 그것을 그대에게 전했습니다.
이렇게 구분이 없는 상태에 있는 절대적 브람만이 모든 것에 스며들어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은 구분되지 않은 상태에 있습니다. 그것이 자진해서 응축되면, 우주적 마음이 탄생합니다. 그 마음 안에 극히 미묘한 상태에 있는 여러 원소들의 존재에 대한 의도가 일어납니다. 이 모든 것의 총체가 창조자 브람마로 알려져 있는 우주적 인간입니다. 그러므로 이 창조자는 다름이 아닌 우주적 마음입니다.
창조자 브람마는 자신의 마음 안에서 보려고 하는 것은 무엇이나 봅니다. 왜냐하면 그는 의식의 성품을 지녔기 때문입니다. 우주에서의 구별의 원리인 무지를 존재시키고자한 이는 창조자 브람마입니다. 그것으로 인해 사람들은 나를 나 아닌 것과 혼동합니다. 또 무지의 이 요인과 더불어 창조자는 산, 풀잎, 물 등의 이 우주를 다양한 창조물 중의 하나로 나타나게 했습니다. 이것 때문에, 비록 전 우주가 다름 아닌 무한한 의식이지만, 분자와 미립자로부터 태어난 창조물들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므로 오, 라마여! 파도들이 바다에 나타나듯이, 이 우주 안의 모든 대상과 물체는 절대자 브람만에서 나타났습니다. 이 창조되지 않는 우주에서, 창조자 브람마의 마음은 스스로를 자아라고 지각합니다. 그래서 우주적 마음인 브람마가 우주의 창조자 브람마가 된 것입니다. 우주적 마음의 힘만이 우주에서 다양한 힘들로 나타납니다. 무수한 다양한 창조물들이 우주적 마음 안에서 나타납니다. 그래서 그들을 다양한 지바라 합니다.
겉으로는 원소들로 이루어진 다양한 지바들이 의식의 무한한 공간 속에서 일어나 각각의 몸으로 들어갈 때, 의식은 생명력의 틈으로 들어갑니다. 그래서 움직이기도 하고 움직이지 않기도 하는 모든 몸들의 씨앗을 형성합니다. 그래서 개체로서의 탄생이 일어나고, 각 개체적 존재들은 우연하게, 마치 까마귀가 나뭇가지에 내려앉자 여자열매가 떨어지듯이, 원인과 결과 등의 법칙이 일어나게 합니다. 그래서 진화 속에서 오르기도 하고 떨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이 모든 것의 원인은 오로지 욕망입니다.
라마여! 그러한 것이 세상의 나타남이라고 알려져 있는 이 숲입니다. 탐구라는 도끼로 그 뿌리를 자르는 자는 그것에서 자유롭습니다. 어떤 이는 이것을 곧 이해하고, 어떤 이들은 오랜 시간 후에 이것을 이해합니다.
바시슈타가 계속 말했다.
라마여! 이제 창조의 순환이 시작되어 분리가 일어날 때 생긴 존재들의 최고, 최악 그리고 중간의 구분들에 대해 말하겠습니다.
창조물 중 처음이며 최고의 것들은 고귀한 습관에서 태어났습니다. 이들은 천성적으로 선하며 선한 행동에 헌신합니다. 그들은 몇 번의 삶 후에 해방에 이릅니다. 그들은 순수함과 빛(사트바)의 자질로 가득합니다. 다음에는 불순함으로 가득한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 속에는 세상의 습관이 강하게 물들어 있습니다. 그들은 수천 번의 탄생 후에 해방에 도달할 것입니다. 그들은 선한 자들 중에서는 가장 적습니다. 그들 중에 이 세상 순환에서 해방 그 자체가 의심스러운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짙은 암흑의 존재들입니다.
중간 유형은 역동성과 욕망(라자스)으로 가득한 사람들입니다. 그러 한 사람들이 해방에 가까이 있습니다. 세상을 떠날 때 그들은 그곳에 이릅니다. 그들에게는 라자스와 사뜨바가 섞여 있게 됩니다. 그러나 라자스적(격렬한 욕망)인 경향이 너무나 강하여 그것을 순화시키는 데 시간이 좀 더 걸리게 되면, 그들은 순수한 라자스입니다. 하지만 라자스적 경향이 너무 강하면, 그것은 어두움(타마스)의 경향을 띱니다. 해방이 너무나 멀리 있어서 해방이 의심스러운 이들의 경우에는, 라자스의 자질은 가장 짙은 어둠의 경향을 띱니다.
수천 번의 탄생을 거듭한 뒤에도 여전히 깨어나지 못하고 어두움 속에 있는 이들은 어두움의 존재(타마스)라고 합니다. 그들이 해방에 이르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 해방이 가까이 있으면, 그때 그들의 타마스는 라자스와 섞입니다. 그들이 해방으로 가까이 가는 중에 있다면, 그때 그들의 타마스는 라자스와 섞입니다. 수백 번의 탄생을 거듭한 후에도 다시 수백 번의 탄생을 거쳐야 할 만큼 해방이 멀리 있을 때, 이들은 타마스로 가득합니다. 해방이 의심스러우면, 그들은 짙은 어둠 속에 있습니다.
(이 장은 사트바, 라자스, 타마스는 원래 해방에 있어서 장애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려는 듯하다. 하지만 잘못된 생각과 행위로 더한 변형을 가져올 때 해방은 멀어진다. -S.V.)
파도들이 바다 표면에 일어나듯이, 절대적 브람만의 균형에 가벼운 동요라도 있게 되면, 이 모든 존재들이 그 안에서 생겨납니다. 항아리 안의 공간, 방 안의 공간, 조그만 구멍 속의 공간이 하나의 우주적 공간의 모든 필수적인 부분들이듯이, 이 모든 것은 부분들이 없는 하나의 무한한 존재입니다. 그것은 그 안에서 일어나듯이, 그 안으로 들어가 하나가 됩니다. 이와 같이 무한한 브람만의 의지에 의하여 이 모든 것이 그 안에서 일어나 그 안으로 소멸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바시슈타가 계속 말했다.
꽃과 향기가 동시에 있듯이, 행위와 행위자는 동시에 지고의 존재 안에 자연스럽게 있습니다. 하지만 무지한 자들의 눈에는 지바의 창조가 사실처럼 보입니다. 그것은 무지한 자들의 눈만이 하늘에서 푸름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 깨달은 이들에게는‘지바가 브람만에게서 태어났다.’와‘지바는 브람만에게서 태어나지 않았다.’라는 이 두 표현 모두 무의미합니다.
단지 가르침을 위하여, 이원인 것이 일시적으로 수용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가르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지바가 브람만에게서 태어났다는 것을 가정한 후에, 결과가 원인과 다르지 않기에 스승들은 지바가 브람만과 다르지 않다고 지적합니다. 향기가 꽃에서 나오듯이, 이 모든 것은 브람만에게서 태어난 듯이 보입니다. 한 계절이 다른 계절로 들어가듯이, 이 모든 것은 브람만 안으로 다시 들어갑니다.
우주 안에 나타난 모든 종의 존재들은 그것들의 천성적 습성들과 더불어 태어납니다. 자신의 성품 즉 나에 대한 무지 때문에 다음 생에서 반작용을 일으키는 행동이나 행위를 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