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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3:8-9(321) 아끼지 말고 버려야 할 것들 2023. 9. 24.
이제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바람이 부는 계절로 다가 왔습니다. 누구나 다 예상하는 날씨는 ‘아마도 조만간에 곧 추워지는 시간이 온다’는 말입니다. 요즈음 거리를 걷다 보면, 가로수 은행이 땅에 많이 떨어져 악취를 풍기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점점 더 많은 낙엽들이 땅에 나뒹굴고 있어서 가을이라는 말을 실감나게 합니다.
가을이 되면 겨울을 준비하고자 낙엽이 많이 떨어집니다. 제가 어디선가 그런 글을 읽어 본 적이 있습니다. 겨울이 왔는데도 나무에 낙엽이 다 떨어지지 않고 붙어 있는 것은 그나무에 거름기가 없어서 그런 것이라는 글입니다.
즉, 겨울이 왔는데도 떨어져야 할 나뭇잎이 남아있는 것은, 나무가 잎을 떨어뜨릴 힘이 모자라서 그런 것이고, 그런 나무는 추위를 견디지 못해 얼어 죽든지, 봄이 되어도 실한 새 싹이 올라오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과수원을 하시는 분들은 싸리 빗자루를 들고서는 붙어 있는 잎사귀 전부를 말끔하게 털어버린다고 합니다. 이 말의 요지는“낙엽을 깨끗하게 버려야만 봄에 건강하게 푸르름을 자랑 한다”는 말로 이해되었습니다.
무엇을 얻는 데에는 크게 두 방법이 있습니다. 구해서 얻는 것과 버림으로써 얻는 방법입니다. 1)구해서 얻는 것은 그 얻음이 아무리 커도, 다음의 더 큰 목표가 생기기 때문에 만족이 없습니다. 그러나 2)버려서 얻는 것은 아무리 작아도 덤으로 얻는 기분이기 때문에 만족과 기쁨이 큽니다. 마음의 평안과 행복을 원하는 사람은 버려서 얻는 방법을 택합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성도가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 봅시다.
1) 죄악을 버려야 합니다.
겔18:31, “너희는 너희가 범한 모든 죄악을 버리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할지어다.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어찌하여 죽고자 하느냐”
영국의 시골 마을에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지고, 번개와 함께 벼락이 칩니다. 그런데 이때에 한 노인이 그만 벼락에 맞아 죽는 사고가 일어납니다. 그 이유는 쇠로 된 지팡이를 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은 쇠로 만든 지팡이를 가지고 있다가는 번개를 맞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애지중지하였던 그 지팡이가 아까워서 멀리 던져 버리지 못하고 가지고 있다가 화를 당한 것입니다.
우리는 미련 때문에 버려야 할 것을 버리지 못해 낭패를 보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죄악을 버려야 삽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날에 사는 길은 오직 죄악을 버리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살전 5:22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했습니다.
2) 탐욕을 버려야 합니다.
랍비가 자기 밖에 모르던 인색한 부자를 만납니다. 랍비는 그를 데리고 창가로 갑니다. “무엇이 보입니까?”“지나가는 사람들이 보입니다.”이번에는 거울 앞으로 데리고 갑니다.“무엇이 보입니까?” “제 얼굴이 보입니다.” 그러자 랍비는 말합니다. “창문과 거울은 모두 유리로 돼 있지만, 거울 뒤에는 수은이 칠해져 있어 밖이 안보이고 자신만 보게 되는 거지요. 마찬가지로 내면에 탐욕으로 칠해진 사람은 자기밖에 모르는 불행한 존재지요”
사람은 누구나 다 욕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 보다 조금 더 나은 환경에 살고 싶어 하는 욕심. 공부를 조금 더 잘하려고 하는 욕심. 다른 사람에게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 욕심. 이런 욕심은 사람을 더 발전시키고 한 단계 더 성숙하게 만드는 계기가 됩니다. 하지만 지나친 욕심을 말하는 탐욕은 사람을 파멸의 구렁이로 몰고 갑니다. 그래서 모든 탐심을 버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3) 교만을 버려야 합니다.
포호빙하(暴虎馮河)라는 사자성어가 있습니다. 생전 처음 들어 본다는 분이 많을 정도로 매우 생소한 사자성어입니다. 포호빙하의 뜻이 무엇인가 하면, “맨손으로 범을 두드려 잡고 중국의 그 넓은 황하(黃河)를 맨발로 건넌다”는 뜻입니다. 슈퍼맨을 칭찬하는 말 같지만 실제로 사용되는 곳은 전혀 다른 부분입니다. 용기 있는 슈퍼맨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교만함에 사로잡혀 어리석고 무모한 행동을 하는 자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이 말이 나오게 된 배경이 있습니다. 오나라의 오왕이 어느 날 양자강에 뱃놀이를 하다가 미후산에 부근을 지나게 됩니다. 강가에는 수많은 원숭이들이 나무에서 놀다가 인기척에 놀라 사방으로 도망치다가 가시덤불 속으로 숨습니다. 그런데 유독 한 마리 원숭이는 숨지 않고, 오왕 앞을 뛰어다니며 자신의 민첩함을 뽐냅니다.
그러자 오왕은 그 원숭이를 활로 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날라오는 화살을 이 원숭이가 재빨리 손으로 잡는 것입니다. 날라 오는 화살을 손으로 잡는 원숭이가 신기하기도 하고, 또한 자신의 화살을 쉽게 잡아내는 원숭이에게 화가 난 오왕은 다시 화살을 날립니다. 그런데 이 화살도 또 잡아냅니다. 결국 크게 분노한 오왕은 신하를 시켜 받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화살을 한꺼번에 쏘게 합니다. 결국 그 원숭이는 화살을 손에 받아 쥔 채 죽어 버립니다.
이때에 만들어진 사자성어가 포호빙하(暴虎馮河)라는 사자성어입니다. “맨손으로 범을 두드려 잡고 중국의 그 넓은 황하(黃河)를 맨발로 건넌다”. 좋은 뜻이지만 교만한 마음에 재주를 자랑하고, 빠른 것을 믿고서 오만 방자하게 굴다가 결국 오왕의 손에 죽은 원숭이의 어리석음을 조롱하면서 만들어진 사자성어입니다.
잠 29:23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겠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
교만한 사람은 자시닝 아무리 높아진다고 생각하여도 하나님이 그 사람을 낮추어 버립니다. 반대로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는 사람은 결국 하나님이 높여서 영예를 얻게 된다는 점입니다. 이것을 잊지 말고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4)거짓을 버려야 합니다.
항상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무엇을 하든지 자신만 생각합니다. 남이 불편한 것은 아랑곳 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편한 것이라면 거짓말도 스스럼 없이 하고, 상대방의 입장도 전혀 배려하지 않는 심술 고약한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하루는 여행을 가기 위해 기차에 올라탑니다. 본인이 평상시 하던 버릇대로 기차에 타자 말자 제일 좋은 자리에 앉습니다. 그러고는 자신의 옆자리에 자신이 들고 있는 여행 가방을 올려놓습니다. 왜 옆자리에 여행 가방을 올려놓느냐 하면, 다른 사람이 옆자리에 앉지 못하게 하여 한 좌석 전체를 자신이 차지하여 여행을 편안하게 하고자 하는 욕심을 부린 것입니다. 지하철 안에서 자신의 가방을 무릎 위나 선반 위에 올리지 않고 옆자리에 두면서 다른 사람이 앉지 못하도록 하는 심술과 같은 모습입니다.
기차가 막 떠나려고 할 때에 한 청년이 와서, 그 노인에게 “옆자리에 잠시만 앉아도 되느냐?”물어봅니다. 그러자 노인은 청년이 계속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도록 “내 친구가 가방을 먼저 두었는데, 곧 와서 이 자리에 앉을 것이라”고 거짓말을 합니다.
잠시 후, 열차가 스팀을 내뿜고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그 때에 복도에 있던 청년이 갑자기 노인의 옆 자리에 있는 여행용 가방을 창밖으로 순식간에 던져 버립니다. 그 노인이 대경실색을 하면서 고함을 지르자 청년은 이런 말을 합니다. “친구 분이 늦어서 기차를 타지 한 것 같으니 가방이라도 놓치지 않도록 해 드려야죠. 그래서 가방을 창밖으로 던진 것입니다”
잠 13:5 “의인은 거짓말을 미워하나 악인은 행위가 흉악하여 부끄러운 데에 이르느니라”
의롭게 살고자 하는 사람은 거짓말을 미워한다고 말합니다. 우리 모든 성도는 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 의인들입니다. 고로 거짓말을 미워해야 합니다. 거짓말은 결단코 성도에게 복을 주거나, 성도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5) 나쁜 습관을 버려야 합니다.
중세 시대 유럽에 쥐가 옮기는 흑사병(페스트)이 만연되어 당시의 유럽 인구의 1/3이 목숨을 잃는 끔찍한 재앙이 발생한 적이 있었습니다. 흑사병이 유럽 전역을 휩쓸 때, 거리에는 시신이 넘쳐나고 제대로 화장하지 못한 시신으로 인해 거리에는 시체 썩는 냄새가 진동하는 지옥 같은 광경이 이어졌던 시기였습니다.
이때 유럽에서는 인류를 몰살시키는 이 더러운 전염병을 만연시킨 것이 유태인이라는 소문이 돌게 됩니다. 시궁창에 돌아다니는 쥐가 병균을 옮겼다고 생각하지 못한 사람들은 이 말에 귀가 솔깃해 집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당시 유럽에 사는 유태인들이 흑사병에 걸려서 죽는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괜시리 미워하였던 유대인들에게 화살을 돌려서 유대인들이 흑사병을 옮긴 것이라 생각하고 박해를 가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판단입니다. 유대인들이 잘 감염되지 않았던 이유는 극히 간단했는데, 당시만 하더라도 유럽인들의 생활은 매우 비위생적이어서 목욕하는 일이 좀처럼 없었다고 합니다. 대소변이 구분이 되지 않고 마구 거리에 뿌려졌으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청결하게 만드는 비누가 무엇인지 몰랐다고 하니 매우 불결한 생활인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에 비하여 유대인은 율법에 따라 오래 전부터 목욕을 하고, 식사 전후에 손을 깨끗하게 씻는 생활습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언제나 여호와께 경배해야 되는 종교적 행위 때문에 항상 몸을 깨끗이 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이 보여 주었던 손과 몸을 깨끗이 하는 이런 청결한 습관이 유럽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대재앙 속에서도 살아남게 만든 것입니다.
마치 이전 코로나 대유행시절에 손을 청결하게 하는 것이 바이러스를 막는 최대한 예방책인 것과 같은 모양새인 것입니다. 청결한 습관의 중요성을 역사에서 보여준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코로나바이러스를 막는 최고의 예방법 중에 하나가 깨끗이 손을 씻는 청결함이었습니다. 펜대믹 이후에 사람들은 손 씻는 청결한 습관이 몸에 배였습니다. 이것은 건강을 지키는 참으로 좋은 습관입니다. 하지만 몸의 건강을 해치는 나쁜 습관들도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본문 8절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세상의 아무리 좋은 것이라고 해도 모든 것을 해로움으로 여기고,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는 것으로 그리스도를 얻게 된다고 바울은 고백합니다. “배설물로 여긴다”는 이 말씀은 달리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여러분이 익히 알고 있는 말씀입니다.
가장 중요한 말씀의 요지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를 위해서 내가 가지고 있는 나쁜 습관들과 행위들을 다 버려야 한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얼마나 세상의 많은 것 버리느냐?’를 보십니다.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버리고 주를 따라 오고 있느냐? 여기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고로 주님에게 더 쓰임을 받고자 한다면, 하나님의 더 큰 복을 받고자 한다면, 내 손에 쥐고 있는 세상의 것들을 버려야 합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내가 만질 수 있고 잡을 수 있습니다.
사사기 8장 이하에 보면 미디안의 군사들과 싸우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전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시 미디안 군대의 숫자를 135,000명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군대는 32,000명입니다. 미디안 군사는 이스라엘 군사보다 4배 더 많은 대군입니다. 산술적으로는 계산하면 이길 수 없는 불가능한 싸움입니다.
그런데 기드온에게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32,000명의 군사도 많으니 “버려라”고 명령합니다. 결국 기드온은 하나님의 명령을 받들어 32,000명의 군사를 추리고 또 추립니다. 결국 남은 군사의 숫자가 몇 명입니까? 겨우 300명입니다. 처음 모인 이스라엘 군대의 3만2000명의 1%도 안 되는 숫자입니다. 이 1%도 안 되는 병사로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그런데 모든 것을 다 버리고 하나님만 전적으로 따른 이 300명의 군사가 135,000명의 군대를 쳐 부수는 기적을 보입니다. 그 원인이 무엇입니까? 인간의 기준이 되는 모든 것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숫자가 많아야 이긴다는 세상의 기준을 버리고, 전쟁의 법칙을 버리고, 오로지 하나님만 의지하고 따랐던 결과, 기적의 승리를 맛본 것입니다. 고로 기드온의 300용사는 모든 것을 버린 자가 경험하게 되는 하나님의 기적을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교회 교세 통계를 보면, 전체 국민의 20% 정도가 기독교인입니다. 전국에는 5만개가 넘는 교회가 곳곳에 세워져 있습니다. 이런 데이터만 보면 분명 우리나라는 하나님의 공의가 하수처럼 흐르는 정직한 나라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섬김을 받으려고 싸우는 세상이기보다는 섬기는 아름답고 행복한 사회, 작은 천국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 이 사회는 어떻습니까? 절망의 어두운 그림자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이 땅에 살고 있는 수많은 시민들의 모습에서 기독교가 이 땅에 존재하는 목적을 잃어버린 모습으로 보여 집니다. 세상 사람들의 눈에 교회와 교인들은 자신들끼리 모여서 북 치고 장구 치는 사람들로만 비쳐집니다. 아무도 교인들의 존재 가치를 쉽게 인정해 주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버려야할 때 버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7“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내게 아무리 유익하고 좋은 것이라도 그리스도를 위한 것이라면 해로 여긴다고 바울은 말합니다. 내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하나님이 싫어하는 것이라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과감하게 포기하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버려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따르기 원하는 사람들이라면, 물질과 명예에 대한 욕망도, 미워하는 마음도 다 버려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가지기를 원하고 소유하려는 것을 버린 성도들을 향해, 세상 사람들은 “바보같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조롱으로 불려지는 모습을 통해 하나님의 은정을 받는 성도들의 모습이 됩니다. 모든 것을 가지려고만 하는 이 세상의 흐름 속에서, 모든 것을 버릴 줄 아는 성도는 세상을 변화시키고 바꾸는 원동력이 되게 됩니다.
제가 한 가지 질문을 해 볼깨요. 막상 버리려고 하면 무엇이 발목을 붙잡고 버리지 못하게 할까요? 그것은 바로 <미련>입니다. 아까워하는 미련 때문에 쉽게 버리지 못합니다. 버릴려고 마음을 먹고 실행에 옮긴다면, 「버리는 것」에 미련을 갖지 말아야 합니다.
이사를 해본 사람이라면 무엇을 버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아실 것입니다.
버려야 한다고 목록을 적고 다짐을 해봐도 정작 이사하는 날에는 다시 하나하나 주워 담고 있는 자신을 모습들을 쉽게 발견하게 됩니다. 제가 그렇습니다. 전 버리는 것이 아까워서 챙기고 또 챙깁니다. 그렇게 챙겨 보았자 나중에 쓰지도 않습니다. 그저 본인의 욕심 때문에 버리지 못합니다. 그런데 집사람은 쓸모없다고 판단되면 과감하게 버려 버립니다.
낡은 물건 하나를 버리는 것도 고민에 고민을 더하면서 버리게 됩니다. 그만큼 버리는 것이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자신이 굳건하게 다짐을 하면서 ‘버려서는 절대 안 된다고 믿고 있는 자신의 신념을 버린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습니까? 그러나 세상 것 가지고는 하나님 기쁘시게 못합니다. 아까워하지 말고 버려야 합니다. 버리는 결과 얻게 되는 것은 예수님 안에서 다시 발견되기 위함입니다.
이제 아침과 저녁과 밤에는 서늘한 바람이 부는 계절로 접어 들었습니다. 제 아무리 좋은 여름옷이라고 해도, 겨울철에 계속 고집을 피우며 입고 있으면, 정상적인 사람으로 인정받지 못합니다. 미련을 갖지 말고 버림으로서 하나님이 주시는 더 큰 복을 받아 누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소망합니다.
추석명절 연휴기간 동안 하나님의 은혜로 더 평안하시길 축원합니다. 이 명절 연휴 동안 인간적인 욕심과 헛된 것들을 다 버리고 내려 놓는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