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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연 & 봉현
 
 
 
카페 게시글
자유게시판 스크랩 영화같은 한 장면이지만... 아미쉬 농장 방문
소연아빠 추천 0 조회 20 06.11.11 22:52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말(馬)들이 바람부는 방향으로 갈기를 나부끼며 마차를 뒤에 달고 서있다. 마차속에는 까만옷에 까만 모자를 쓴 사람들이 앉아있다. 마차가 한두대가 아니라 여닐곱대가 늘어서 있다. 길을 가로지르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숨을 흡 들이쉬며 그 앞에 차를 몰고 가는 나는, 마치 옛날 흑백영화의 한장면을 가로지르며 나아가는 것같은 착각이 든다. 

 

아미쉬들의 행렬이다.

 

마차 한두대에 가족이 타고 가는 모습은 곧잘 눈에 띄이지만, 무슨 일인가가 있어 한곳으로 향하여 줄선 경우를 볼 기회는 그리 많지 않다.

 

이 독일에서 건너온 아미쉬들은 대부분 캐나다 온타리오주, 미국 펜실바니아에 살고 있다고 하는데, 내가 사는 그레이 부루스 지역에 많은 아미쉬 농장들이 있다.

 

사진으로 남겨두고 싶은 광경이 있다면 바로 그 모습이지만, 그것은 언제 가능할지 모른다. 나 역시 달리는 차안이고, 드러나게 차를 세우고 그들에게 셔터를 눌러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을 외부세계로부터 상당히 격리시켜 살고 있으며, 사진찍기를 싫어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누구도, 구경감으로 본인들이 사방에 전파되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을 것이다.

 

 

칼럼을 샅샅이 뒤졌다. 2년전쯤에 아미쉬 마차를 찍어놓은 것이 있었으므로. 휴, 드디어 건져서 추가해서

올린다. 이 사진은 주인에게 허락을 받고, 촬영했다. 아미쉬 어린아이들은 얼마나 순수하고 예쁜지, 나는

그들만 보면 자동으로 사진기에 손이 간다. 찍지도 못할거면서...

 

 

아빠 엄마는 시장본 것을 마치 뒤에 싣는중. 두 꼬마가 나를 쳐다보고 미소짓는다.

 

 

 

그들이 지나간 길 뒤에는 말들이 가면서 싼 말똥들이 굴러있고, 그들의 사는 집이나 환경도 그 못지않게 깨끗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들이 까만옷으로 성장하고, 아이들까지 머리를 곱게 따고 모자를 씌워서 그들만의 행사에 참가하려 집을 나선 그 모습은 가히 신비롭고,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나는 블로거기자로 자처하면서, 기회가 된다면 아미쉬들의 집을 방문해서 그들과 대화를 하고, 그들의 사는 모습 곳곳을 담아서 세상에 전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었다. 그러나, 그야말로 본격기자가 아니고, 어느 누구도 나를 재촉하지 않으며, 외부세계에 대해서 배타적일 것 같은 그들에게 인터뷰 요청을 구하는 일은 대단한 용기와 시간을 필요로 하는 일이라,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최근, 그들의 농장을 방문했다.  조금은 얼렁뚱땅!! 그들 사는 곳을 보고왔다. 우리 동네를 방문했던 한국의 오빠 역시 아미쉬 농장에 관심을 나타냈다. 남편은 그들중의 한명에게 침을 놔준 적이 있어서, 안면이 있다며 날이 좋으면 방문해보자 하였다.

 

그들은 농장을 경영하면서, 그들이 생산한 농산물이나 계란등을 방문자들에게 판매한다. 닭장에서 자란 알보다 훨씬 싱싱한 누런 계란을 농장에 가면 살수 있다.

 

우리는 메리(남편에게 침을 맞은)의 집을 찾아 나섰다. 모두 비슷비슷한 농가들이 길가에 있다. 남편이 기억을 더듬으며 계란 판매 사인을 붙인 집을 들어서서 메리를 찾았는데, 메리는 안 나오고 어린 아이가 나온다. 생글생글 웃으며, 집안에 들어가서 아줌마를 불러나왔는데, 그는 다른 사람이었다. 어쨋거나, 메리의 집은 아니지만, 아미쉬 농장이었다.

 

남편은 메리와의 친분을 이야기하며, 계란을 사고 농장을 둘러보러 왔노라고 말했다. 우리의 일행이 거진 열명이 되니, 매쓰라고 불린 이 아줌마 조금 경계의 눈빛이다.

 

그는 지금 저장해놓은 달걀이 없으니, 계란을 모아오겠단다.

 

그의 집뒤에는 빨래줄에 빨래들이 걸려서 바람에 나부낀다. 아미쉬들은 기성복을 사서 입지 않는다. 그들이 손수 만든 단색옷을 입으며, 여자들은 반드시 모자를 쓴다. 그들의 정장은 아마도 까만색인 것같고, 집안에서 입는 옷은 단순한 색상의 옷이다. 여자들은 원피스에 앞치마를 띠고, 남자들은 일하기 좋은 작업복을 입는다.

 

집 뒤쪽으로 걸어오니, 작은 연못이 있고, 그곳에 백조들이 있다. 우리가 다가서자 그들이 조금씩 물러난다.

 

그집 남편이 사람좋은 표정을 하고 뒤뜰에 서있다. 계란을 사러왔노라며, 그에게 말을 걸었다. 그 집은 그네, 흔들의자, 집 뒤뜰에 놓는 창고등이 이곳저곳에 세워져있었는데, 이 가구들도 파는 것이란다.

 



맘좋은 아미쉬 아저씨(가운데)와 기념촬영을 하다. 왼쪽부터 둘째언니, 새언니, 오빠,

둘째형부

 



이들이 만들어서 파는 가구. 케빈(한두명이 잘 수 있는 작은 집)으로 쓰거나 집 뒤쪽에 놓고

창고로 이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앞에 앉아계신분은 캐나다에 사는 두 언니.

 

작업장을 흘낏 보니, 각종 공구와 나무들이 쌓여있다. "메노나이트 가구"가 유명한데, 그런 가구점에 납품하기도 하고, 제집 뜰에 진열해놓고 팔기도 하나 보았다.

 

그 남편과의 대화로 알아낸 것은, 100 에이커의 땅을 갖고 있으며, 3남 5녀의 아이들이 있는데, 모두 출가하고, 1남1녀만 남았다고 한다. 그래서 보니, 처음에 우리를 반겼던 서너살 되어보이는 작은 아이는 손녀였고, 14살짜리 딸과 그보다 조금 더 들어보이는 아들이 있었다.

 

그 아들은 밭갈러 나갔다고 하더니, 우리들이 이야기 하는 근처로 오는 중이었다. 우리중에 한팀은 그곳으로 갔다. 한 열여닐곱 되어보이는 소년이 말 세마리를 몰며 밭을 가는 중이었다.

 



기계농사가 대부분인 이 지역에 이렇게 원시적인 방법으로 농사짓는다는 것부터, 이들을

일반인들로부터 구별되어 보이게 한다.

 

이 소년은 우리들의 질문에 잘 대답해주어서 많이 감사했는데, 어떤 질문에도 단답식의 짧은 말로 설명했고, 그 자신이 되묻거나 호기심을 보이거나 하지는 않았다.(그러니 좀 재미없는 대화였다)

 

그는 이곳 아미쉬 학교를 나왔고(8학년 졸업, 중학교 졸업이라고 해야 할까?), 부모를 도와

농장일을 한다. 아마 아버지를 도와 가구만드는 일이나, 그밖의 일들도 할 것이다.

 

이 소년을 통해 소문으로만 알던 것들, 가령, 집안에 텔레비전이 없다거나, 전기불이 없고 촛불이나 기타 다른 것을 쓴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가구 만드는데에는 자력발전기가 있어서 전기공구들을 이용하고 있었다.

 

어쨋든 이 소년은 약간은 피곤해보였는데, 그나마 우리곁에 머물러 서서 사진도 찍게 하고 대답도 해주어서 고맙다 할수밖에. 소년은 자기집에 일곱마리의 말이 있으며, 자기가 끌고있는 잘생긴 세마리의 말이 15살, 7살, 8살 되었다는 것도 말해줬다. 어린 말 한마리에 2천달러 정도 한다는 것도 겨우 물어서야 알게 되었다.

 



우리 기념사진도 찍자구요!! 구식과 신식의 조화! 오빠(맨 오른쪽)에게 이곳을 보여주게

되어서 다행이었다.

 

 

밭을 갈던 소년의 모습. 그의 표정은 시종일관 똑같았다. 게다가 밀집모자 때문에 그늘지니,

더욱 서늘해보이는구먼.

 

그러는 사이에 계란 세 다스를 만들어 주인아줌마가 가져왔다. 14살 되었다는 막내딸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아줌마에게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없겠느냐고 물었다. 이 아줌마는, 자신은 같이 찍지 않겠다고 한다. 우리는 그 말을 돌려서 아이들은 찍어도 할수 없다는 말로 알아듣고 간신히 한장을 눌렀다. 

 

계란을 사고, 덤으로 약간의 팁을 주고, 우리는 아미쉬 농장을 빠져나왔다.

 



앞에 서서 사과를 깨물고 있는 이집의 손녀와, 

수줍어서 입을 가리고 웃고 있는 막내딸의 모습.

 

 아미쉬를 검색하면서 이들의 신앙이 어떠한가 잠깐 검토했는데, 하나님을 창조주로 믿고, 예수님이 인간들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를 지신 것을 믿는다고 하였다. 그러니 일반 개신교의 교리와 같은데, 더 깊은 곳까지 알 수가 없으니..

 

메노나이트와 아미쉬들은 보통 같은 종교를 가진 사람들로 치는 것 같다.메노나이트들은 문명을 조금 더 받아들인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들중에는 차를 가진 사람들도 있고, 전기를 쓰기도 한다. 이들은 같은 종파안의 그들끼리는 형제자매로 여긴다고 한다. 

 

그래서 집을 살때나 농장을 살때도 서로(교회)가 자립할때까지 돕는다. 이들 부부처럼 많은 자녀를 낳으며, 집안일을 억척스럽게 많이 한다. 언젠가 가게를 방문한 아미쉬에게 잔돈을 거슬러주면서 손을 만지게 된 적이 있었는데, 손이 무지 컸고, 그 손은 딱딱하기가 나무껍질에 비할바가 아니었다.

 

그들은 정부와의 관계도 독특하다. 정부로부터의 혜택을 요구하지 않으니, 세금을 내지 않으며, 정부는 의료보험등의 혜택을 그들에게 주지 않는다. 병원에서 진료를 받아야 할때면 손에 돈을 들고 온다.

 

나는 자꾸 그 소년의 얼굴이 떠오른다. 아무것에도 관심이 없어보이면서 약간은 피곤한 모습.. 그를 생각하며 상상의 날개를 편다. 아미쉬들이 선택한 삶은 "문명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해악을 피하기 위한, 조금더 종교적으로 말하면, 죄를 피하기 위한 최선의 선택"처럼 보여진다.

 

일을 하면서, 욕심을 부리지 않고, 자급자족을 우선으로 하며, 교회생활과 가정생활, 그리고 이웃과의 나눔이라는 과제를 실천하는 것이다.

 

그것들 안에 왜 갈등이 없을까? 소년처럼 반은 포기할수도 있고, 혹은 어떤 청년들은 마을을 떠나서 도회지로 나갈 수도 있고, 어떤 이들은 오랜 방황끝에 다시 진짜 아미쉬가 되어 돌아오기도 하리라.

 

이들의 삶은 좋게 말하면, 세상의 욕심을 버린 청빈한 생활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도피"라고 볼 수 있으며 그안에 애증과 집착이 없다 하지 못할 것같다.

 

이렇게 머리속으로 소설을 쓰고 있는 내게, 그래도 그들은 물질문명의 노예가 되어가는 우리들에게 주는 것은 많다는 생각이 든다. 삶의 기본에 가까운 이들, 농사해서 먹고, 최소한의 교육을 하고, 필요한 자금은 생산한 것을 판매해 모으는... 그런 삶들.

 

최고의 문명을 자랑하는 북미에서 문명없이 사는 삶을 선택한 사람들.. 그들과 속깊은 우정을 나눌 수 있다면 조금 더 현실에 근접한 글을 쓸 수 있을텐데. 그러나 그들은 외부인들과 어느정도 구별을 둔 삶을 살고있으니, 그것은 나의 바람일 수밖에 없을 것같다.

 

참고로 사전에 소개된 아미쉬 내용을 올린다.

아미시파

위키백과 ―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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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하이오주의 시골 홈즈 지역에서 마차를 타고 가는 아미시파 부부. 이 지역은 아미시파들이 밀집한 지역중 하나이다.
실제 크기로
오하이오주의 시골 홈즈 지역에서 마차를 타고 가는 아미시파 부부. 이 지역은 아미시파들이 밀집한 지역중 하나이다.

 

 

아미시파(Amish)들은 개신교재세례 파중 일부이며 17세기이후 탄압을 피해서 유럽에서 이사한 스위스-독일계 이민들이다. 주로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와 캐나다 온타리오주에 거주한다. 이들은 재세례파가 보수화되면서 등장한 교파의 성격답게 자동차나 전기, 전화등의 현대문명을 거부하는 것으로 유명하며, 종교적 이유로 외부세계로 부터 스스로를 격리시켜왔다. 이들은 종교적 이유로 병역을 거부하는 양심적 병역거부를 실천하여 군대에 가지않고, 공적연금을 수령하지 않는등, 정부로부터 어떤 종류의 도움도 받지 않는다. 이는 국가와 종교의 분리를 주장한 재세례파의 교리에 따른 것으로 추정된다. 또 대부분이 의료보험에 들지 않는다. 이들은 펜실베이니아 독일어로 불리는 독일어 방언을 쓴다.

주로 단순하고 소박한 검은색 계통의 옷만을 입고, 대부분 전통적 방식의 농축산업에 종사한다. 아이들도 자신들이 설립한 마을내 학교에서만 교육을 시킨다. 교육과정에서 종교와 과학은 가르치지 않으며, 대부분 중등교육까지만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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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06.11.11 22:52

    첫댓글 저도 한 번 다녀온 적이 있는데... 정말이지 너무나 다른 그리고 고집스러운 모습에 적잖은 충격을... 참 감회가 새롭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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