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원 슬픈 인생 이야기】
立春에 아름답고 슬픈 ‘고향의 봄 풍경’을 떠올리다
― 내 고향 충남 청양군 장평면 ‘가래울 마을’의 추억
윤승원 수필문학인, 전 대전수필문학회장
오늘이 ‘立春’이다.
입춘은 한자로 써야 맛이 난다.
봄기운을 느낀다.
유튜브에서 어느 지식인이
立春을 ‘入春’이라고 글 제목을 썼기에
그것도 맞다.
‘봄으로 들어간다’라는 뜻이라면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절기는 바르게 써야 한다.
실수로 ‘立春’을 ‘入春’이라 썼으면
‘고치길 바란다’라고 댓글을 달았다.
‘立春’이든 ‘入春’이든
봄 ‘春’ 자가 들어가니
계절이 바뀌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立春은 24절기 중 첫 번째 절기다.
대한(大寒)과 우수(雨水) 사이에 있는 절기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나는
24절기를 농부 아버지만큼이나
자연의 철칙으로 믿어왔다.
절기는 거짓이 없다.
절기에 따른 기상 변화는
인간을 속이지 않는다.
♧ ♧ ♧
내 고향
충청남도 청양군 장평면 중추리 ‘가래울 마을’
그 작은 마을을 추억하는 건 즐거운 일이다.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냇둑에 송아지를 내다 맨다.
송아지 잔 등을 한 번 쓸어 주고
들녘을 걸으면서 발밑에서 움트는
봄 풀꽃들의 이름을 기억해 낸다.
제비꽃, 매미꽃, 노루귀꽃, 선씀바귀, 민들레…….
겨울을 이겨 낸 그것들의 숨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려옴을 느낀다.
머잖아 영숙이네 돌 담장에 필 찔레꽃이며,
선자네 남새밭 울타리를 장식하게 될
앵두나무 꽃에도 벌떼들이 잉잉거릴 것이다.
우리 집 뒤꼍에 서 있는 오동나무도
보라 꽃을 피우게 되겠지.
♧ ♧ ♧
1991년 2월 23일 KBS 1라디오 문학프로그램
‘시와 수필과 음악과’에서 방송됐던
나의 수필 <봄을 기다리는 마음> 한 대목이다.
♧ ♧ ♧
총각 시절
고개 넘어 은곡리에
‘숨겨 놓은 아가씨’가 있었다.
은곡리(隱谷里)는 본래
숨을 ‘은(隱)’자에 골 ‘곡(谷)’이니
이웃 마을 ‘칠복이 놈’이
골짜기에 ‘색시감’을 숨겨 놓아도 좋은
깊고 깊은 산골동네다.
총각 시절 나의 ‘슬픈 전설’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색시감’이 신발을 거꾸로 신었다.
내가 군대에 간 사이
그녀는 신발을 거꾸로 신었다.
그게 무슨 말이냐고?
‘고무신을 거꾸로 신었다’라는 말을
모른다면 그는 군대 문턱에도
가보지 못한 사람이다.
예전에 집에서 바람을 피우다 걸린 사람이
급하게 도망 가느라 고무신을 거꾸로
신은 채로 달아났다는 데서 유래했던 말이다.
군대에서는 ‘곰신’이란 말이 유행한다.
고무신을 줄여서 ‘곰신’이라고 한다.
남자친구를 군대에 보낸 후
아가씨가 쓸쓸해 하다가
다른 남자친구를 만나면
‘배신’하게 된다는 말이다.
배신자여, 사랑의 배신자여~
인생 여정에서 배신 한 번
당해보지 않은 자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
이제 할머니가 됐을
내 고향 ‘은곡리 아가씨’야
잘 살아라.
부디 곱게 익어가시라.
♧ ♧ ♧
그러고 보면
청양 촌놈 인생 이야기 늘어놓으면
판소리 한마당은 족히 넘으렷다.
立春에 ‘고향의 봄’ 떠올리면서
고무신 거꾸로 신은
순진하고 착한 아가씨까지
추억하는 딱한 할아버지여.
판소리 한마당 늘어놓고 보니
아름답지만 쬐금은
슬프기도 하고만 그랴! ■
2025. 2. 3.
立春에 靑陽村人 윤승원의 감상 記
♧ ♧ ♧
첫댓글 박진용 동화작가. 전 대전문학관장 답글
기상 정보대로 '입춘 추위'가 대단합니다.
봄이 오긴 오는데 쉽게 오지 않습니다.
'입춘 추위'라는 단계를 거쳐야 봄을 맞이 할 수 있습니다.
우수(18일)가 돼야 봄다운 기운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