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2장1-12절 예배의 축복을 받으라 251224 성탄전야 원주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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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동방 박사들의 여정과 베들레헴의 별
성경 마태복음 2장 1절부터 12절은 헤롯왕 시대에 유대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신 예수님을 찾아온 동방 박사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동방에서 온 박사들은 예루살렘에 이르러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고 묻습니다. 이 소식에 헤롯왕과 온 예루살렘은 소동합니다. 왕은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고 물었고, 그들은 선지자의 기록을 인용해 '유대 땅 베들레헴'이라 답합니다.
헤롯은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는, 아기를 찾으면 자신에게 알려달라고 거짓된 부탁을 합니다. 박사들이 길을 떠날 때,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다시 나타나 그들을 인도하다가 아기가 있는 곳 위에 멈춰 섭니다. 박사들은 크게 기뻐하며 집에 들어가 아기와 마리아를 보고 엎드려 경배합니다. 그들은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립니다. 이후 꿈에 헤롯에게 돌아가지 말라는 신령한 지시를 받고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갑니다.
'크리스마스'라는 말의 본래 의미는 '그리스도께 예배하는 날'입니다. 예배에는 엄청난 축복과 영적 원리가 담겨 있습니다. 이 축복이 여러분의 남은 인생 가운데 함께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영적 임재가 있는 예배의 원리
우리가 드리는 예배에는 실제적인 영적 임재가 있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유교의 제사와 비교해 보겠습니다. 제사 때 축문을 읽는 것은 영을 부르는 행위입니다. 그들은 조상의 영이 왔다고 상상하며 경배하고 음식을 대접합니다. 마지막에 '음복'을 하는 것은 그 영과 교류하며 무언가를 나누어 받는 '임파테이션(Impartation)'의 과정입니다.
어둠의 세계에도 이러한 의식이 있다면, 우리가 살아계신 주님께 드리는 예배에는 얼마나 더 놀라운 실제가 있겠습니까? 예배의 자리에 누가 오십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십니다. 우리가 예배 시작 전 묵도하며 성령의 임재를 기원하는 것은 성령님께 오시라고 청하는 영적 의식입니다. 주님이 오셨기에 우리는 그분께 경의를 표하며 일어서서 찬송을 드립니다. 만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기뻐하며 경배하는 것입니다.
예배는 단순히 형식을 갖추는 것이 아니라, 오신 주님으로부터 말씀을 받고 그 은혜를 나누는 시간입니다. 성만찬에서 떡과 잔을 나누는 것도 주님과 하나 되는 거룩한 음복과 같습니다. 예배의 주인공은 구경꾼이 아니라, 오시는 주님을 실제로 만나는 자입니다. 직분에 상관없이 주님을 만나는 사람이 진정한 예배의 주인공이며 영광을 누리는 자입니다.
3. 진정한 예배를 가로막는 세 가지 방해
동방 박사들이 예수님을 만나는 과정에는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 우리 역시 진정한 예배자로 나아가는 여정에서 세 가지 방해를 만납니다.
첫째는 **'세속주의(헤롯)'**의 방해입니다.
헤롯은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아기 예수를 죽이려 했던 세속적 열망의 상징입니다. 오늘날 세속주의는 우리의 마음을 분주하게 만들어 하나님께 집중하지 못하게 합니다. 돈을 벌기 위한 분주함, 세상적인 즐거움과 욕망이 예배보다 앞서게 만듭니다. 과거 헬레니즘 문화가 유대 사회에 침투했을 때, 성전 옆에 스포츠 경기장과 연극장을 세워 사람들의 영적 열정을 육체적 즐거움과 지적 유희로 돌려놓았던 것과 같습니다. 이 세속주의를 뛰어넘어야 온전히 하나님께 시간을 내어드릴 수 있습니다.
둘째는 **'종교주의(서기관)'**의 방해입니다.
서기관들은 성경 지식이 해박하여 메시아가 어디서 태어날지 정확히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는 것에 그쳤을 뿐, 박사들과 함께 베들레헴으로 가서 경배하지 않았습니다. 종교적 의식에는 참여하지만 실제로는 예배하지 않는 종교인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셋째는 **'신비주의'**의 문제입니다.
박사들은 별을 보고 왔으나 별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명확한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때로 이방인이나 초신자들에게 자연 계시나 기이한 현상을 통해 다가오시기도 하지만, 결국 우리는 기록된 말씀을 따라 주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사단은 신비한 현상에만 집착하게 하여 진정한 예배자가 되지 못하도록 덫을 놓기도 합니다.
4. 성령 안에서의 정직한 예배와 그 축복
진정한 예배의 방법은 장소나 형식에 매이지 않고 "성령 안에서 진실함(영과 진리)"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 안에서 정직하게 예배할 때 주님은 어디서든 그 예배를 받으십니다. 예배가 살아나면 성령의 인도하심이 시작됩니다. 별의 인도나 지식의 인도를 넘어, 우리 영혼 속에 내주하시는 성령님이 직접 우리 삶을 이끌어 가시는 것입니다.
이때 예배자에게는 동방 박사가 드린 예물과 같은 세 가지 영적 축복이 주어집니다.
황금(왕권): 예수님이 내 인생의 왕이 되셔서 사단의 권세를 부수고 승리하게 하시는 자녀의 권세를 주십니다.
유향(선지자): 인생의 길을 잃었을 때 주님의 음성을 듣고 나아갈 길을 찾게 되는 지혜를 주십니다.
몰약(제사장): 썩어가는 세상 속에서 자신을 지키고 부패하지 않게 하는 거룩한 능력을 주십니다.
특히 몰약은 시신의 부패를 방지합니다. 우리는 세상 속에 살지만 세상에 동화되지 않아야 합니다. 내 마음속에 주님이라는 '몰약 주머니'를 품고 있을 때, 우리는 세상의 유혹과 죄악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배하는 자가 받는 하늘의 능력입니다.
5. 결론: 순례자의 길을 걷는 예배자
동방 박사들은 보잘것없는 것을 가지고 왔으나, 결국 예수님을 마음속에 모시고 돌아갔습니다. 그들은 땅이 아닌 하늘을 보았고, 별이 아닌 주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세상 권력인 헤롯왕이 아니라 보잘것없는 모습으로 오신 아기 예수께 엎드렸습니다. 그리고 왔던 길(세상의 길)이 아니라 하나님이 지시하신 새로운 길로 순종하며 떠났습니다.
우리 역시 이 예배를 통해 주님을 만나고, 주님과 동행하며 동역하는 삶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예배는 단순히 종교적 의무가 아니라, 우리 인생에 황금과 유향과 몰약의 은혜를 채우는 통로입니다. 진정한 예배자가 되어 세상 속에서 승리하고, 가정의 평강과 자녀의 형통을 누리며, 믿음의 유업을 이어가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