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에 싣고 싶은 시조 · 36
배위홍의 시조
김우연
(문학평론가)
배위홍 시인은 1919년 12월 24일 경북 안동 예안에서 3남 5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1988년 고희 기념으로 첫 시조집『江 가에서』, 희수 기념으로 두 번째 시조집 『조각보와 가을꽃』을 펴내셨다. 두 시조집은 시인의 자녀 육남매가 정성을 모아 발간한 책들이라 그 효성이 느껴진다. 부친 배영덕은 대구에서 도의원을 지냈으며 매우 개방적인 분이었으나, 시댁에는 완고한 편이었다고 한다.
『조각보와 가을달』에 실린 작품에서 선정하였다. 맏아들 양희재는 “우리 6남매 모두 짝지어 사람 구실 하도록 잘 키워 놓으셨고 슬하에 손자·손녀 열일곱에 증손까지 보셨습니다.”라고 밝히고 있다. 평론가 정신재는 해설에서 “시인은 실제로 동생, 아들, 손자를 포함하여 열 명이 넘는 권위 있는 교수, 박사를 두고 있다. 그래서 무슨 교육의 비결이라도 있느냐고 물었더니 고개를 가로 저어면서 그저 ‘그저 교육만 시켰을 뿐’이라고 말한다. 나는 이런 시인에게서 어머니다운 모성애만으로도 얼마나 큰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가를 보게 된다.”라고 말하고 있다.
1. 조각보
옥죄인 한 생애를/ 강물로나 풀어 놓고// 미움도 곱게 감쳐/ 조각보를 깁노라면// 우련히 배어나는 그리움/ 바늘 끝에 아려라// 삼가던 한숨일사/ 원도 여원 앙가슴에// 곱게 피운 인고의 꽃/ 代를 이은 지어미 像// 어느 날 환상의 무지개/ 깃을 치던 丹頂鶴// 군물 지핀 아랫목에/ 서리친 고독 잠재우고// 빗금간 기다림은/ 세월 속에 한을 물어/ 情인가 홀연히 열리는/ 아! 청정한 하늘이여.
-「조각보」전문
첫째 수와 둘째 수에서는 유교적 전통적인 여인상이 잘 나타나 있다. ‘옥죄인 한 생애’, ‘대를 이은 지어미 상’에는 종부로서 긴장하고 인내한 세월을 함축하고 있다.가고 싶던 대학에는 못 가고 할아버지의 뜻에 따라 결혼을 하였으나 자식들이 성장하여 다 떠나가니 그 허전함을 채울 수 있는 것은 어릴 때 품었던 문학의 꿈이었다. 그것은 “어느 날 환상의 무지개/ 깃을 치는 단정학”이라고 밝히고 있다. 급속도로 변화하는 시대에 전통적인 여인으로서의 책무를 다했으나 밀려오는 고독을 치유할 수 있는 것은 문학이었다. 자녀들의 효성이 지극하여 남편마저 먼저 떠나보내신 어머니에게 5대양 6대주를 다 돌아다니도록 하시어 많은 기행시조를 남기셨다. 그러나 인간의 근원적인 고독과 기다림과 그리움의 한은 시조를 통하여 승화시키고 있다. “情인가 홀연히 열리는/ 아! 청정한 하늘이여.”라는 말 속에는 시조야 말로 시인의 삶을 지탱하는 근원이며 행복임을 노래한 것이라 볼 수 있다.
2. 홀로 떠나가는 배
인생이/ 강물이라면/ 나는 홀로 떠가는 배// 한 구비 돌 적마다/ 세월 그도 잠기는데// 한 생애/ 해진 돛폭은/ 눈 감고도 물길 가네.
-「홀로 떠나가는 배」전문
인생이란 한 마디로 “홀로 떠나가는 배”라고 깨달음을 노래하고 있다. 수 천 년 앞 세대 사람들도 느끼고, 또 젊은 사람들도 미래 언제가는 늙음이 찾아오면 느끼게 될 평범한 내용이다. 죽음은 누구도 피해 갈 수도 없는 길이다. 그래서 이런 작품은 누구에겐가 큰 감동을 주는 작품이다. 참신해야만 감동이 주는 법은 아니다. 공기처럼 매우 크게 소중한 것은 평소에는 소중함을 깨닫지 못함과 같이 평범한 것일수록 우리의 삶과 직결되어 있는 법이다.
3. 가락지
門 없는 약속의 門/ 완벽한 둥근테를// 한 몸으로 살자고/ 죽자살자 씌운 굴레// 닳아진/ 삶의 흠집 속/ 다시 뵈는 얼굴 하나.
-「가락지」전문
결혼 반지를 ‘문 없는 약속의 문’이라며 참신한 발상을 하고 있다. ‘완벽한 둥근테’란 말속에는 부부간의 무한한 믿음과 사랑을 표현한 말이다. 결혼이란 삶의 ‘굴레’가 됨은 분명하다. 그러나 며느리로서, 아내로서, 어머니로서의 인내하며 살아온 삶이 자녀들과 손자손녀들로 하여금 행복을 느끼게 하였다. 그래서 힘들게 살아온 삶에서도 행복을 함께 함께 했던 임을 그리워하며 “다시 뵈는 얼굴 하나”라고 하였다.
4. 그랜드캐년
신이 빚은 환상의 영역/ 드러난 신비를 보라// 감히 저 우람한 침묵을/ 뉘라 흔들어 깨우리// 말 잊는 어기찬 목숨/ 赤馬는 갈기 세운다// 억만년 거스른 原初/ 가물었네 콜로라도강// 묵직한 기도문처럼/ 강노을은 물이 들고// 불현 듯 소리개 한 마리/ 孤를 치는 저 적멸.
-「그랜드캐년」전문
그랜드캐년의 대자연 앞에 인간은 얼마나 작은 존재인가를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 그래서 “신이 빚은 환상의 영역”이라서 “저 우람한 침묵” 은 “孤를 치는 저 적멸”이라며 말을 잃고 침묵에 들게 된다. 인간은 대자연 앞에 진정 침묵을 느끼는 순간이 무아의 상태요 대자연과 합일되는 순간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