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학개론 제29강/ 마뇽의 샘
글/해남 민다선
마뇽의 샘은 프랑스 영화 가운데서도 가장 걸작중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탄탄한 줄거리와 아름다운 프로방스 지역의 전원이 인상적이고 불세출의 배우 이브 몽땅의 유작이기도 해서 더욱 유명하다. 마뇽의 샘은 프로방스 지역의 카모완 가(家)의 샘을 배경으로 3대째 벌어지는 갈등을 그린 작품으로 1920년대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중요 등장인물은 위골랭 스베랑과 그의 백부인 세자르 빠뻬 스베랑, 그리고 한 때 세자르의 연인이었던 카모완가의 플로레트, 그리고 플로레트의 아들인 쟝과 쟝의 딸인 마뇽 등이다. 1920년 병역의무를 마치고 고향 프로방스로 돌아온 위골랭은 백부인 세자르의 집 근처에 정착을 한다. 그는 카네이션 재배에 관심을 갖고 시험재배하게 되는데 조카의 카네이션 시험재배를 지켜보던 세자르는 성공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조카에게 투자를 하기로 결심을 한다. 그런데 문제는 위골랭의 땅에는 카네이션 농장을 운영할만한 샘물이 없다는 것이었다. 고민을 하던 위골랭은 백부인 세자르와 함께 자신의 농장과 인접한 카모완가의 샘을 빼앗기로 공모한다. 그들은 카모완가의 샘의 원천이 되는 곳을 비밀리에 찾아내어 막음으로써 샘물이 더 이상 솟아나지 못하도록 한다. 땅에서 샘물이 솟아나지 않으면 카모완가에서 땅을 헐값에 팔 것이라는 계산 때문이었다. 이 때부터 샘을 배경으로 3대에 걸친 사랑과 애증의 역사가 시작된다.
샘의 근원을 막아버린 시기에 즈음하여 한 때 세자르의 연인이기도 했던 플로레트가 죽고 토지는 그녀의 아들인 쟝에게 상속된다. 도시에 거주하던 쟝은 어머니가 상속해준 땅을 관리하기 위해 아내 에이메와 딸 마뇽을 데리고 프로방스로 이사를 온다. 위골랭과 그의 백부인 세자르는 쟝이 곱추인데다 도시 사람이고 또 물려받은 토지에서 물도 나오지 않으면 얼마 견디지 못하여 땅을 헐값에 팔고 다시 도시로 돌아갈 것으로 생각을 하고 샘에 대한 비밀은 뒤로한 채 아주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 첫해는 비록 샘이 없었지만 하늘에서 적당한 때에 비가 내려 농사는 그런데로 풍작을 이루었다. 위골랭은 계속 위선적인 행동으로 그들에게 친절하게 대했으나 마을 사람들은 도시에서 온 쟝에게 텃새를 부리면서 쟝을 따돌렸다. 첫해와는 다르게 가뭄이 계속되자 쟝은 마지막 수단으로 땅을 위골랭에게 저당 잡히고 돈을 마련해 우물을 파게 된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다이너마이트로 암벽을 폭파하던 중에 낙석이 그를 덮쳐 숨지고 만다. 그가 죽자 위골랭은 자신의 행동이 쟝을 죽게 했다는 죄책감으로 잠시 괴로워하나 쟝의 아내 에이메와 딸 마뇽이 집을 떠나자 위골랭과 세자르는 막았던 샘을 다시 터뜨리는데 어린 마뇽이 우연히 그 장면을 목격하고 큰 충격에 빠진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몇 번 바뀌면서 10년의 세월이 흘러간다. 위골랭과 그의 백부 세자르는 카네이션 농장이 성공하여 갑부가 되고 마뇽은 고향에 홀로남아 아리따운 양치기 처녀로 성장한다. 위골랭은 우연히 마뇽의 목욕하는 모습을 보고 반하여 그녀에게 청혼을 하지만 마뇽은 아버지를 죽게 한 그를 거절하고 마음속으로 복수를 다짐한다. 하지만 위골랭은 마뇽이 자신들이 저지른 죄악을 모르는 줄로만 알고 있다. 어느 날 마뇽은 염소를 구하려다 우연히 샘의 근원을 발견하고는 그곳을 막아 버린다. 갑자기 물이 마르자 위골랭과 마을 주민들은 크게 당황한다. 마뇽은 드디어 자신이 사랑하고 있던 마을 학교 선생인 베르나르의 생일잔치에서 위골랭과 세자르의 죄를 밝힌다. 계속 자신이 한 짓이 아니라고 발뺌하나 에리아신이라는 사람이 목격자로 나타나 증언을 함으로써 모든 진실이 밝혀진다. 결국 마뇽에게 청혼을 거절당한 위골랭은 자살을 하게 되고 세자르는 깊은 삶의 허무함 속에 빠진다.
세월이 흘러 마뇽과 베르나르의 결혼식이 열리고 결혼식에 플로레트의 친구인 델피느가 참석하게 되는데 세자르는 델피느로부터 마뇽이 자신의 손녀딸이라는 충격적인 얘기를 듣게 된다. 세자르는 전쟁의 소용돌이와 이러 저러한 사건들로 인해 플로레트가 자신의 아이를 임신했었다는 사실을 몰랐고 그러한 사실을 알기도 전에 플로레트가 사망했던 것이다. 세자르는 플로레트의 유품인 머리빗과 목거리를 지닌 채 깊은 잠 속에 빠져든다. 인간의 양면성과 사람이 살아가면서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얽힐 수 있는 기구한 운명 등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영화다.
샘은 과거 우리 농촌에서도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고 그래서 경우에 따라서는 마을 간에 또는 이웃 간에 분쟁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성경 창세기 26장에도 보면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노복이 심히 많으므로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여 그 아비 아브라함 때에 그 아비의 종들이 판 모든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웠더라’라는 내용이 있는 것으로 보아 샘을 중심으로한 분쟁은 하루 이틀의 이야기는 아닌 듯싶다.
내가 마뇽의 샘과 성경의 샘물사건을 장황하게 늘어놓은 이유는 나도 샘물과 관련된 약간의 에피소드가 있기 때문이다. 전원일기라는 제목의 글에서 잠깐 밝힌 것처럼 나는 글도 좀 쓰고 전원의 여유로움도 느껴보고 싶어 양지IC에서 멀지 않은 곳에 전원주택을 짓고 2002년 4월 19일에 입주를 했다. 처음에는 작은 꿈 하나를 성취했다는 기쁨으로 참으로 행복한 시간들을 보냈다. 그런데 살면서 전원생활이라는 것이 그렇게 낭만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결혼 이후로 아파트를 떠나본 적이 없었던 우리는 대부분의 일을 스스로 해결해 나가야하는 전원주택의 생활에 익숙하지 못해 약간의 어려움을 겪었다. 거기에다가 프로방스의 주민들처럼 보이지 않는 텃새도 있어 가끔은 마음을 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마을 주민들과 될 수 있으면 화목하게 지내려고 노력했다. 처음에는 오해도 많았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고 지금은 마을주민으로써 대우(?)를 받고 있다. 우리 전원주택 단지는 1단지와 2단지로 구별되어 있는데 이는 개발순서를 놓고 주민들이 붙인 이름이다. 즉, 1단지는 2단지보다 먼저 개발된 단지이고 2단지는 1단지가 조성된 이후에 개발된 단지이다. 나는 이중 2단지를 분양 받았다. 내가 땅을 분양 받았을 당시 1단지는 이미 마을이 아담하고 예쁘게 조성되어 있었다. 참으로 평화로워 보이는 마을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 마을의 2단지를 분양을 받았던 것이다. 나는 땅을 분양 받은 지 1년이 조금 안된 시점에서 서울에 있는 아파트를 정리하고 2단지에서는 두 번째로 집을 짓고 입주를 하였다. 입주하고 한달쯤 지났을 때 첫 번째로 2단지에 입주하신 할머니가 오셔서 전기세를 내라고 했다. 나는 처음에 무슨 영문인지 몰라 무슨 전기세죠 하고 되물었다. 할머니는 물탱크에 물을 펌프로 올릴 때 전기를 사용하기 때문에 전기세를 내야 한다고 했다. 2단지는 150m 암반수를 모터로 끌어 올려 대형 물탱크에 채운 뒤 그 물탱크로부터 다시 각 집으로 물이 보내지는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물탱크가 바로 할머니댁 옆에 있었고 물을 끌어 올릴 때 사용하는 전기 역시 할머니댁에서 연결되어 나갔기 때문에 자의반 타의반으로 관리를 하고 계셨다. 나는 할머니의 설명을 듣고 이해가 되어 바로 전기세를 드렸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면서 2단지에 한 집, 두 집 입주가 시작되면서 할머니와 입주자들 간에 말다툼이 잦아졌다. 대부분의 내용은 전기세의 과다 청구가 이유였다. 나도 내심 전기세의 청구가 조금 많다는 느낌이 들긴 했지만 할머니가 관리하시느라 수고 하신 것에 대한 보상이라고 생각하고 요구 하시는 데로 드렸다. 그러다보니 유일하게 나와는 충돌이 없었다. 내가 그렇게 할머니와 충돌 없이 지낼 수 있었던 것은 할머니에 대한 이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 보다 조금 일찍 입주를 했던 까닭에 할머니와 대화할 수 있는 기회들이 종종 있었다. 할머니는 혼자서 고생하면서 자식들을 키웠던 과거 이야기를 내게 자주 하곤 하였다. 나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젊은 시절부터 여자의 몸으로 자식들을 키우느라 고생하면서 유난히 물질적인 이해관계에 밝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 때의 그러한 강박관념이 지금은 아들들이 성공하여 모두 경제적으로 풍요롭게 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노인의 특성상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그리고 그렇게 이해를 하고나니 할머니의 여러 가지 행동들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나는 입주한지 2년 만에 이런저런 사정으로 다시 분당으로 주거지를 옮겼다. 그래서 전원주택은 그대로 비어둔 상태가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집이 비어있는데도 매달 꼬박꼬박 전기세를 달라고 하는 거였다. 때로는 불합리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할머니의 젊은 시절을 알고 있었던 나는 전기세를 드린다는 마음보다는 용돈을 드린다는 마음으로 전기세를 드렸다. 1년 넘게 그렇게 했다. 내가 그렇게 빈 집임에도 불구하고 전기세를 드리는 동안 이웃집들은 여전히 할머니와 크고 작은 충돌들이 있었고 할머니와 충돌을 겪은 집들은 한 집, 두 집 우물을 파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은 마을 전체가 개인 우물을 팠다. 그러다보니 마을 공동 물탱크의 물을 사용하는 집은 우리 밖에 남지 않았다. 그래서 가끔 집에 들르는 경우에는 할머니에게 가서 물탱크에 물을 올려달라고 말씀을 드려야만 했다. 왜냐하면 마을에서는 그 물을 쓰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평상시에는 탱크에 물을 채워 놀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내게도 우물을 파라고 몇 분이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우물을 팔까도 생각을 했다. 그런데 나는 정작 우물을 파지 못했다. 우물을 파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할머니가 나를 볼 때마다 하시는 말씀 때문이었다.
할머니는 어쩌다 한 번 내가 집에 들를 때면 어김없이 찾아오셔서 ‘내가 죽을 때까지는 물 걱정 하지 말고 집에 올 때는 언제든지 말만 해요 내가 탱크에 물 올려 줄테니까’하시곤 했다. 우물을 파려고 생각할 때마다 자신이 죽을 때까지는 물 걱정하지 말라고 하시던 그 말씀이 귓가에서 자꾸만 맴돌았다. 나는 할머니의 그 말씀 속에서 할머니의 외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할머니는 거의 대부분의 마을 사람들과 대화를 단절한 채 살아가고 계시는데 그래도 유일하게 샘이라는 매개체를 통하여 우리 집과는 대화를 나누면서 작으나마 외로움을 달래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아직까지 우물을 파지 못하고 지금도 여전히 할머니가 올려주는 물탱크의 물에 의존하고 있다. 물론 집에 갈 때마다 탱크에 물을 올려달라고 해야 하는 약간의 불편함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우리 집을 위해 물을 올려 주시면서 기뻐하시고 보람 있어 하시는 모습이 내게는 더 소중했기 때문이다. 조금만 양보하고 조금만 이해하면 더 큰 기쁨이 있고 더 아름다워질 수 있는 세상, 우리는 우리의 마음속에 마뇽의 샘을 갖고 있지는 않은지, 그리고 누군가의 샘의 근원을 막고 서서 상대방을 기갈에 빠뜨리면서 살아가고 있지는 않는지 한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사랑학개론 29강을 마치면서 마뇽의 샘에서 위골랭과 그의 백부 세자르처럼 누군가의 샘을 막고 가슴을 답답하게 해 가면서까지 그 결과로 부를 얻고 명예를 얻었다면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요. 아마 잠시는 행복한 생각이 들고 실제로 행복함을 느낄 수도 있을지 모르지만 결코 오래가지는 못할 겁니다. 진정한 행복은 우리가 맑고 시원한 생수 같은 사람이 되어 누군가의 가슴을 시원하게 해줄 수 있을 때 얻어 질 수 있습니다. 진정한 행복을 원한다면 생수 같은 사람이 되어 보십시오. 그리고 스스로에게 반문해 보십시오. 나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진정 생수 같은 사람인가? 하고요(2008.2.10 다선).
|
첫댓글 이렇게 멋진 글을 읽을 수 있음에 행복합니다. 생수같은 사람! 바로 다선님이 아닐까요. 그런데 생수의 근원을 막으시겠다니요. 꼭 재고를 부탁드립니다.
마침 제가 학창시절에 감명깊게 읽었던 내용이라 감회가 더 큽니다. 쟝의 아픈 날들 속에서 저도 함께 울었으니까요. 다선님이 할머니를 이해하시려 노력하시는 마음이 너무 존경스럽습니다. 아름다운 인생이란 그런건가 봅니다.
전에 들어와서 읽은 글이지만 다시 읽으면 또 다른 느낌이 나는 군요. 감사합니다^^
나중에 꼭 마뇽의 샘이라는 영화를 찾아봐야겠어요. 글로만 읽어도 큰 감명과 교훈이 다가옵니다. 조금만 양보하고 조금만 이해하면 서로 더 기쁨이 있고 아름다워지는 세상이라는 것을 더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있는 세상이 하루빨리 오길 희망합니다. 그러려면 저부터 마음속에 마뇽의 샘을 내려놔야겠다는 반성도 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