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미술분야의 전체적인 특성을 한마디로 규정하기는 어렵지만 창작과 전시 그리고 비평의 전 영역에 걸쳐 제기 되었던 하나의 과제가 '정체성 탐구'였다는데 이론(異論)이 없을 것이다. 주지하듯이 한국미술에 있어 정체성 확립의 문제가 제기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작금의 상황이 정보사회의 심화와 더불어 문화적 혼성주의나 신자유주의 그리고 오리엔탈리즘 같은 거대담론이 문화계에 이슈로 떠오름에 따라 아시아를 비롯한 환태평양 지역 각국이 자국문화에 대한 정체성 문제는 예전과 다른 차원에서 언급되고 있다. 이른바 소극적 국가정체성의 차원을 넘어 국가와 세계 사이의 틈을 자국의 역사관을 통해 바라보려는 노력이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이 글은 문예진흥원이 분류한 미술분야의 10개 장르인 전통회화, 현대회화 및 판화, 조소, 공예, 디자인, 건축, 사진, 뉴미디어 및 설치, 서예, 미술평론에 대한 종합적 진단을 위한 것이다. 따라서 각 장르의 세부적인 행사소개 보다도 한국미술계 전체에 영향을 끼쳤던 이슈나 상대적으로 부각되었던 경향에 초점을 맞추어 정리해 보았다. 방법적으로는 장르별 전문가들에 의해 완성된 원고를 참고하여 그 해석과 주장들 사이의 공통분모를 찾거나 아니면 나름대로 축출한 하나의 거대담론을 각각의 장르에 적용시키는 방식을 따랐다.
올 한 해는 1960년대부터 시작된 비디오아트와 컴퓨터, 인터넷 등 뉴미디어의 등장에 따른 예술개념과 표현매체의 확장이 어느 때보다 강도 높게 진행되었다. 그리고 1990년대 이후 국제비엔날레를 발판으로 확산되었던 사진이 한국미술계에도 그 위세를 과시해 미술관과 화랑 뿐만 아니라 학술행사와 국제전을 통해 미술계의 중심으로 궤도진입을 했다는 점도 주목할만한 대목이다. 한편 디자인 역시 다수의 국제 디자인대회를 유치했던 전년도에 이어 굵직한 대형 디자인행사들을 개최함으로써 괄목할만한 성과를 보였던 해였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판화를 포함한 현대회화와 조소예술분야는 새로운 표현매체의 확산에 따른 경계의 와해현상에 의해 개념과 정의가 도전 받으면서 일종의 위기상황을 보여주었으며, 전통회화와 서예 그리고 공예 역시 여전히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던 것으로 진단되고 있다. 이러한 위기와 침체현상은 다른 한편으로 작가들로 하여금 손작업에 기초한 회화와 조소 그리고 공예예술의 본성과 그 가치를 탐구하려는 일련의 움직임을 야기시키는 배경이 되기도 했다. 미술평론부분도 서구의 거대담론들이 유입되었으나 정작 이를 능동적으로 수용하고 소화시켜 고유한 비평적 담론을 생산해 내는데 취약성을 보여주었고, 저술활동에서 몇몇의 성과가 나왔을 뿐이었다.
Ⅱ. 자기정체성 확인을 위한 노력
2001년의 예술을 결산하는 시각에서 한 해 동안 제기되었던 거대담론을 돌아보면 전반적으로 문화적 정체성의 문제와 관련된 것들이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특히 10개의 장르 중에서도 자기정체성의 재고는 회화와 조소 그리고 사진과 디자인 등 창작분야 뿐만이 아니라 미술사와 비평을 포함한 미술이론의 영역에서도 끊임없이 제기되었던 주제였다. 한국예술계의 현실을 직시하기 위해 글로벌리즘이나 세계화 그리고 오리엔탈리즘, 신자유주의, 포스트콜로니얼리즘 등의 이슈를 주체적 시각에서 진단하려는 의욕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게 요구되었고 예술창작과 전시 그리고 미술비평 현장에서 이를 실천하기 위한 움직임들이 있었던 한 해였다고 평가된다. 정체성의 적용은 베니스비엔날레 등의 국제미술이벤트에 출품작가들의 작품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현상이었다. 평론가협회가 주최한 학술발표회 『대형국제미술제 비평과 대안』은 전지구화 시대에서 한국미술의 정체성을 검증하는 행사였다. 한편 디자인분야의 전시행사로서 한국디자인의 현주소를 묻는 『de-sign korea : 디자인의 공공성에 대한 상상』이나, 한글과 금속활자를 세계의 문자역사의 차원에서 새롭게 인식하려는 목적에서 마련한 『제1회 타이포그래피비엔날레』 등은 이러한 문화적 자기정체를 확인해 보기 위한 행사로 기록되고 있다.
정체성의 확인이라는 화두는 20세기를 마감하면서 한국 문화예술 100년을 장식했던 온갖 현상들을 정리하면서 얻어진 하나의 당위적 과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주지하듯이 우리의 20세기는 서구열강들의 각축과 일본의 제국주의 정책 그리고 해방과 전쟁 이후의 정치적 격변에 의해 파란만장한 굴곡을 겪으며 진행되어 왔다. 이러한 환경에서 자란 문화예술의 면면 역시 하나의 흐름으로 정리될 수 없는 복합적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주지하듯이 정체성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문화적 자기정체성이란 민족주의나 국수주의를 포장하는 개념이 아니라는 점을 인식하는 일에서 시작된다. 그것은 한 나라 또는 개인의 역사, 정치, 사회적 조건들 속에서 결정되는 자기존재의 특성을 연구하고 그 안에서 보편적 가치를 발견해 내는 것이며, 예술에 적용될 경우 매체의 총체적 구성이나 체계를 포괄하는 표현형식에 의해 실현해 내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아울러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변화하는 지역 또는 자신을 주목하는 일이며,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인식하는 자성의 과정이기도 하다. 이러한 눈으로 우리의 근현대 예술을 살펴본다면 서구나 일본 그리고 미국의 그것과 차별화되는 사상과 가치 그리고 그것을 문화생산물로 발현해 내는 형식과 방법이 발견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성과는 미미하다 하더라도 2001년은 혼성과 복합 그리고 잡종 등의 현상의 중심을 관통하는 사상의 축 그것이 한국예술이 발견하게 되는 문화적 패러다임이 될 것이라는 점을 인식하게 된 한 해였다.
Ⅲ. 예술개념과 표현매체의 확장
2001년도 시각예술영역에서 가장 괄목할만한 성장과 쟁론을 이끌었던 것은 뉴미디어(설치)분야였다. 인터넷과 첨단 테크놀로지에 대한 관심과 일상적 수용이 이루어짐에 따라 이러한 환경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 또는 대응하려는 현대심리의 결과로 나타난 현상이라 할 수 있다. 뉴미디어란 적극적 의미로 TV아트, 비디오아트, 컴퓨터아트, 디지털아트, 웹아트, 인터넷아트 등 정보소통의 도구와 수단을 예술적 표현매체로 삼는 작품형식을 통틀어 일컫는 말로 이해된다. 그러나 뉴미디어라는 용어를 새로운 표현매체 일반이라는 의미로 확대했을 때 거기에 설치, 퍼포먼스, 애니메이션, 영화, 뮤직비디오 등 기존의 표현매체로 분류할 수 없는 일체의 예술현상이 포함된다. 이들은 분명 전통적 장르와는 다른 새로운 형태의 예술개념과 표현형식을 출현시키고 있으며 최근 몇년 사이에 음향과 문자 그리고 사진과 동영상 이미지를 통합하여 표현의 영역을 확장시키는데 기여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나라의 경우 미디어아트분야는 몇몇의 관 주도 행사나 대안공간 그리고 실험적 성격을 표방하는 미술관의 기획전을 중심으로 전시가 이루어지고 있고 외국작가들의 초대에 의해 명분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현실은 국내의 미디어아트분야에 대한 학술적 연구와 이를 통한 시각예술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데 아직도 한계를 드러내고 있음을 대변하고 있다. 예술개념과 표현매체의 확장이 미술환경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는 현실에서 이러한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능동적 태도로 자기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Ⅳ. 사진예술의 약진
뉴미디어의 영역확산과 함께 2001년에 괄목할만한 성장을 보였던 분야가 사진예술이었다. 이러한 증후는 연중 계속되었던 국내의 국제사진전과 국제학술심포지움 그리고 사진비엔날레 등의 대규모 행사뿐만 아니라 전통적 미술관과 화랑에서의 사진전이 급증하고 사진전문 화랑들의 개관과 사진경매의 시작 등의 사건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사진예술의 확산과 대중적 수용현상은 뉴미디어의 확대현상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진 것으로 정리된다. 미디어아트의 핵심분야가 컴퓨터와 비디오를 매개로한 사진영상이라면 하이테크놀로지와 디지털 정보시대에서 사진의 효용성이 높아진 것은 자연스런 일이기도 하다.
주지하듯이 사진이 순수예술의 영역으로 들어오게 된 것은 20세기 초반 이후이며 포토몽타쥬는 다다와 초현실주의자들의 혁명을 이루는데 공헌하였다. 그후 팝아트와 포토리얼리즘이라고 불리우는 하이퍼리얼리즘 그리고 개념미술과 페미니즘미술에 이르기까지 사진은 매체의 확산에 결정적인 공헌을 해왔던 것이다. 그러나 세기가 바뀐 오늘의 상황은 예술창조의 보조적 기능을 담당하던 과거와 달리 다큐멘터리사진과 초상사진 그리고 상업사진 그 자체가 전통적 회화, 조각과 더불어 예술의 아우라를 지니게 된 것이다. 세계의 주요미술제로서 비엔날레와 트리엔날레 그리고 카셀도큐멘터같은 전통적 미술행사에서도 사진은 비디오 동영상매체와 함께 주연의 위상을 견지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며 특히 컴퓨터와 인터넷이 주도하는 오늘날 사진은 디지털 테크놀로지에 의해 시공간을 초월해 확산되고 이와 함께 미술시장의 주요한 장르가 되고 있다.
이러한 사진예술의 급속한 확산과 대중화에 따른 염려나 문제점도 없는 것이 아니다. 한국사진의 역동성 속에서 위에 언급한 자기 정체성과 인프라가 취약하다는 점이 그것이다. 일국의 문화현상은 오랜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역사적 조건에 의해 규정되며 이때에 형성되는 축이 역으로 예술의 가치를 높이는데 일조한다. 한국 사진예술의 저력을 강화시키며 대외적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저변확대 뿐만 아니라 사진예술의 활력을 학술적으로 검증하는 일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Ⅴ. 변화 앞에 선 현대회화와 조소의 개념
사진을 포함한 뉴미디어와 설치적 경향의 확산은 상대적으로 현대회화와 조소의 개념을 변화시키면서 한편으로 회화예술과 조소예술의 본질과 그 미학적 가치에 대한 자성을 자극하는 계기가 되었다. 국제미술제에 출품된 작품경향들이 비디오, 사진, 영상, 설치미술에 치우쳐 있다고 하지만 따지고 보면 미술인구 전체를 두고 볼 때 아직도 전통적 재료와 조형원리를 따르는 작가들의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면회화의 위기니 죽음이니 하는 선언적 주장들이 대두되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우선 미술사와 미술비평의 대상이 항상 새롭고 자극적이고 선동적인 미술경향을 우선하고 있으며 미술사와 미술비평사가 이 전위적 경향의 역사로 자리잡는 관행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을 확산시키고 대중화하는 것이 이른바 미술저널인데 우리의 경우 다양한 경향을 제각기 대변하는 전문지들이 많지 않기 때문에 현장에 대한 편향적 선택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주지하듯이 시각예술의 영역에서 매체가 예술가치를 담보하는 기준이 된다고 볼 수는 없다. 평면이든 입체이든 전통적 재료이든 새로운 매체를 도입하든 작품의 질은 좋은 이념과 그 이념을 담아내는 형식이 일치되는 접점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한다면 작금에 뉴미디어 일변도로 미술계를 진단하는 시각이나 신소재를 이용해야만 한다는 일종의 강박증세에 시달리고 있는 젊은 작가들의 작업태도는 모두가 경계의 대상이 된다.
결국 회화와 조소의 개념과 정의가 변화를 요청받고 있음은 뉴미디어의 출현과 그 위협에 따른 것이라 볼 수 없을 것이다. 정확하게 진단하자면 회화와 조소예술의 위기는 외부에서 온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대가 바뀌면 환경이 바뀌고 환경의 변화는 곧 예술가와 예술작품 경향을 변화시킨다. 이 시대의 회화와 조각은 변화하는 환경에 대응하여 자신을 변모시킬 수 있는 이념과 방법론을 생산하도록 요청받고 있는 것이다. 청년작가들은 자신의 삶과 시대에 대한 치열한 성찰과 그것을 나름의 시각매체 전통적 재료로 표현하는 것에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실재로 대형 전시회 현장을 둘러보면 전통적 재료를 사용하면서 시대감각과 인간존재의 현주소를 확인케 하면서 깊은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작품들을 적지 않게 볼 수 있다. 현대회화와 조소예술의 영역에서 변해야 하는 것은 표현매체가 아니라 표현대상인 이념과 그 방법론이다.
Ⅵ. 영역별 경계의 와해에 따른 혼성주의 팽창
2001년의 미술계를 자극한 뉴미디어아트의 확산은 기존의 미술개념을 변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였을 뿐만 아니라, 장르간의 경계를 무너뜨리는데 일조하였다. 종합적 성격을 지닌 설치미술은 평면과 입체, 사진과 회화, 조소와 공예 등의 결합현상을 촉진시켰다. 이러한 매체의 복합성은 이미 1960년대 이후의 화단에서 지속되어온 것이며 이념의 복합성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그것은 결국 포스트모더니즘이 내세우는 비평원리로서 복합문화주의, 다원주의, 혼성주의 이론들과 긴밀한 관계를 가진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최근 들어 매체와 개념의 혼성에 따른 복합적 작품의 표현양태는 미술현장 뿐만 아니라 미술대학의 졸업전이나 과제전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것이 이전과 다른 점이다.
외래미술의 유입에 따른 문화적 혼성주의는 예술환경을 교란시키는 독성을 품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한국 미술문화의 역사를 풀어내는 하나의 원리로 쓰일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다행스럽게 한국예술이 선진국가로부터 들여온 문화 쓰레기의 집하장으로 타락하지 않고 면모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한국민족이 원래 가지고 있던 끈질긴 대응의 능력 때문이었다. 물론 아직도 우리 화단에는 구미지역의 유명작가들을 표피적으로 모방하는 작가들이 도처에서 발견된다. 그러나 다양한 이질적 문화의 수입을 주체적으로 수용하는 비평안과 시각이 마련된다면 이러한 염려는 한갖 기우가 될 것이다.
불교와 유교 그리고 기독교가 한데 어우러진 종교 윤리적 환경에서 성장해온 한국인들이고 보면 다양한 양식들이 혼성 속에서 독자성을 찾는 것은 가능한 일이라 할 것이다. 2001년에 얼굴을 보이고 있는 문화적 혼성주의란 복합적인 의식과 종교적 환경을 배경으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있어 더없이 좋은 잣대이며 이를 매개로 한국미술의 고유한 정체성과 과거에서 오늘로 이어지는 문화의 패러다임을 찾는 일이 과제로 남아 있다고 할 것이다.
Ⅶ. 침체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전통회화와 서예
그리고 공예
침체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수면상태로 호흡을 유지하는 분야가 전통회화와 서예 그리고 공예라는 지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여기서 언급하는 전통회화가 그 용어의 규정상 동양화의 전통 즉, 관념세계를 존중하고 계보와 형식을 따르는 회화임을 한정한다면 이러한 한계상황은 당연한 것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전통회화란 재료적 구분으로서 수묵화와 채색화를 포함해 소재적 구분으로서의 문인화, 산수화, 조충도 등을 대상으로 하는 경향의 작업들을 총괄하는 용어로 쓰이고 있다. 전통회화의 경우 수묵화는 대표적인 표현수단으로 자리잡은지 오래되었으나 현대의 시점에서 시대를 반영하는 한국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려는 움직임이 결여되었다고 평가받고 있다. 문인화의 경우 사회교육의 결과에 따른 미술인구의 양적팽창에도 불구하고 전통적 동양화의 고질적 특성으로 지적되는 <진부한 소재주의>와 <형식의 재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이 지적되었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한 젊은 세대의 노력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한편, 동양회화의 정통임을 자타가 인정하는 산수화의 경우도 정형화된 형식의 답습이나 교조적인 관념성에서 벗어나기는 하였으나 대상에 대한 객관적 묘사에 치우쳐 주관적 탐구와 생명력 구현이라는 측면에서 여전히 문제를 안고 있다고 평가되었다. 채색화의 경우를 보면 청년세대들의 서구적 재료사용과 조형관을 접할 수 있는 기회의 확대로 인한 일련의 실험적 흐름을 보이고 있다. 예술의 정형화를 부정하고 변화하는 시대의 사조사상에 대응하여 자신이 서있는 현주소를 파악하고 자기정체성을 찾기 위한 작가들이 구축한 성과도 있었다. 독창적 작품세계를 구축해 나가려는 자성적 태도에서 온 것으로 해석된다. 이 외에도 전통회화의 부분에서 거둔 나름의 성과들은 우선 전통적 재료로서 한지의 물성을 조형의 근간으로 삼는 작업들에서 발견되었다. 전통회화에 나타나는 혼돈상황의 원인은 시대에 대응하여 자기정체를 치열하게 모색하려는 노력의 결여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겠지만, 보다 근원적으로는 앞서 언급했듯이 다변화되고 혼합된 가치를 담아낼 새로운 패러다임의 부재가 보다 근본적인 원인이라 볼 수 있다.
서예분야의 경우에도 2001년은 예술의 담론과는 동떨어진 서단 내부의 불협화음과 공모전을 둘러싼 비리와 상 남발 등 소비적 논쟁에 눈살을 찌푸리게 했던 한 해로 기록되고 있다.
공예분야의 침체는 경기도 일대에서 열린 『세계도자기엑스포』나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같은 대규모 행사가 개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최근들어 전반적으로 전시활동이 양적으로 줄어 위축현상을 보이는데서 나타나고 있다. 또한 도자기와 전통공예 산업을 둘러싼 시장과 기반시설 그리고 정부차원의 정책이 아직도 열악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는 전통회화나 서예의 경우와 다르지 않게 공예의 침체가 계속되는 이유가 도자와 금속을 제외한 섬유, 목칠, 유리, 종이 등 전통공예의 예술적 승계를 위한 양식적 혹은 논리적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으로 지적되고 있다.
Ⅷ. 맺음말
종합적으로 볼 때 2001년의 시각예술계는 특별한 사건이 없는 조용한 한 해였다고 보는 것이 장르별 진단에 나선 필자들의 공통된 진단내용이었다. 그 이유는 물리적으로 새천년의 팡파레 아래 치뤄 『광주비엔날레』와 『미디어시티2000』 『부산비엔날레』 『국제행위미술제』 등의 대형행사가 줄을 이었던 작년에 비해 이렇다할 이벤트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개별적으로 수많은 전시회와 이벤트가 작년에 비해 뒤지지 않을 정도로 활발히 이루어졌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각예술분야의 전반적인 침체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이유는 변화하는 환경을 다스리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아직도 없다는 점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이와 함께 구미지역 미술의 무비판적 모방이나 저작권 시비를 둘러싼 미술분야의 출판물 저조상황과 고질적으로 지속되고 있는 미술품유통의 기형적 구조도 침체상황을 지속시키는 요인들이다. 변화하는 사회에 대응하여 자기정체성을 치열하게 찾아나서는 예술창작과 비평활동 그리고 작품의 유통구조의 취약성을 드러내었고 이에 대한 각성과 대안이 절실함을 느끼게 하는 한 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