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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22편 1-18절 “메시야 고난 예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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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
하옵시며 내 신음하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22:2 내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치 아니하오나 응답지 아니하시나이
다
22:3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22:4 우리 열조가 주께 의뢰하였고 의뢰하였으므로 저희를 건지셨나이다
22:5 저희가 주께 부르짖어 구원을 얻고 주께 의뢰하여 수치를 당치 아니하였나이다
22:6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훼방거리요 백성의 조롱거리니이다
22:7 나를 보는 자는 다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이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
22:8 저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걸, 저를 기뻐하시니 건지실걸 하나이다
22:9 오직 주께서 나를 모태에서 나오게 하시고 내 모친의 젖을 먹을 때에 의지하게 하셨나
이다
22:10 내가 날 때부터 주께 맡긴 바 되었고 모태에서 나올 때부터 주는 내 하나님이 되셨사
오니
22:11 나를 멀리하지 마옵소서 환난이 가깝고 도울 자 없나이다
22:12 많은 황소가 나를 에워싸며 바산의 힘센 소들이 나를 둘렀으며
22:13 내게 그 입을 벌림이 찢고 부르짖는 사자 같으니이다
22:14 나는 물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촛밀 같아서 내 속에
서 녹았으며
22:15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잇틀에 붙었나이다 주께서 또 나를 사망의
진토에 두셨나이다
22:16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22:17 내가 내 모든 뼈를 셀 수 있나이다 저희가 나를 주목하여 보고
22:18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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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기독교회는 오늘부터 한 주간을 고난 주간으로 지키게 되는데, 이 고난주간은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육신의 몸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우리 대신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죽으신 역사적 사건을 기념하는 주간입니다.
특별히 우리 기독교는 예수님의 고난과 죽으심에 대하여 무엇보다도 큰 비중을 두고 있는데, 우리가 신약성경을 자세하게 살펴보면 그 내용의 대부분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사건과 거기에서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죽으시는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고, 또 예수님의 사역이 고난과 십자가에 죽으심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고난 주일을 맞이하여,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를 예언해 놓은 시편 22편 말씀을 살펴보고자 하는데, 시편 22편은 머리말에 기록된 대로 '다윗의 시'입니다. 그러나 다윗이 기록한 시라고 할지라도, 이 시편은 다윗 자신의 경험을 내용으로 하여 쓰여진 것은 아닙니다.
오늘 본문 14절, 15절에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잇틀에 붙었나이다” 한 것을 보아도 그렇고, 16절에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한 것을 보아도, 이 말씀이 다윗 자신을 가리켜 한 말이 아닌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다윗도 고난을 많이 받았던 사람이긴 하지만, 그러나 오늘 본문 시편 22편에 기록된 것과 같은 고난을 당한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에서부터 오늘날 우리 개혁주의 교회에 이르기까기 시편 22편에 대한 견해는 그것이 단순히 다윗의 경험을 말한다고 보다는 그것을 초월하여 예수님의 고난과 죽으심과 그의 승리를 예언하고 있는, 메시아 예언의 시편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 오시기 1000년 전에 다윗의 입을 통하여 예언되어진 본문의 말씀을 함께 살펴보면서, 고난주간을 맞이하여, 당시 예수님의 고난, 그 십자가상에서 경험하신 예수님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느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 오늘 본문 1절에 보면,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옵시며 내 신음하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하였습니다.
여기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한 이 말씀은 바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엘리 엘라 라마 사박다니' 하고 외치신 바로 그 말씀입니다. 십자가의 처참한 죽음을 맛보시면서 하나님 아버지를 향해 부르짖었던 말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독생자이신 예수님의 고통을 돌아보시지 않으셨습니다. 아니 고통에 가득찬 아들의 신음 소리를 못들은체 외면해 버리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셔야만 했습니까?
예수님은 아무런 죄가 없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죄와 오고 오는 세대의 모든 성도들의 죄를 걸머지시고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이렇게 모든 사람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있는 예수님을, 하나님은 그 때 당신의 아들로 보시지 않고, 죄인 중의 괴수로 보신 것입니다. 죄 덩어리로 보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버리셨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의 부르짖음이지만, 외면해 버리셨습니다.
사랑하는 선한목자성도 여러분
오늘 고난주간을 맞이하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당하신 고통이 얼마나 처철했는가 우리가 상상해 보려고 하지만,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당하신 고통을 쇠갈고리가 있는 채찍으로 죽을 정도 매맞으시고, 십자가에 양손과 양발에 대못이 박혀서 핏줄이 끊어지고 살이 찢어지고 몸부림치는 가운데 점차 죽어져갔다 뭐 그렇게 육신적인 고통만 생각하기가 쉬운데, 사실 예수님께 있어서는 이런 육신적인 고통보다는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은 영적인 고통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극심한 고통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그 영적인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성경을 통해 조금이나마 헤아려 본다면, 먼저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와 어떤 관계이십니까? 요한복음 10장 30절에 보면,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였습니다. 삼위일체의 관계요 완전한 연합 관계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을 도저히 분리되어질 수 없는, 완전히 하나인 관계입니다. 그런데, 그 아버지로부터 분리가 되어지고, 버림을 당하시고, 외면당하게 되신 것입니다. 사실 지옥이란 하나님의 은혜가 전혀 없는 곳, 하나님께로부터 분리되어진 곳이 지옥입니다. 그러기에 지옥은 견딜 수 없는 곳인데,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억만인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하나님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어져서 억만 지옥을 친히 경험하게 되신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절대로 분리될 수 없는, 하나님과 완전히 하나이신 그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정말 존재론적으로 불가능한 분리를 경험하시고, 억만 지옥을 경험하시게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고통이 얼마나 극심했으면, 그 고통을 참다 참다 못해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어찌하여 버리시나이까, 절규하며 부르짖었겠습니까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남미 정글에 서식하는 ‘피란하’라는 물고기가 있다고 합니다. 이들은 늘 떼로 몰려다니는데, 이빨이 면도날처럼 날카롭고, 주둥이 힘이 아주 세기 때문에 짐승이든 사람이든 덤벼들어 뜯어 먹는다고 합니다. 아주 잔인한 물고기입니다. 그래서 ‘피란하’가 살고 있는 강에는 사람이나 짐승이 빠지게 되면 살아남기 어렵습니다. 그런 지역에서 목동들이 가축을 이끌고 강을 건널 때 이렇게 한다고 합니다. 먼저 양이나 짐승 한 마리를 희생 제물로 강에 던집니다. 그러면 피란하가 금세 모여들어 그것을 뜯어 먹느라고 정신이 없습니다. 그 틈을 이용해서 가축들을 무사히 강 건너로 이동시킨다는 것입니다. 한 마리의 희생양 때문에 그 많은 가축들이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 대신 희생해 주셨기 때문에, 육신적인 고통과 더불어 버림받은 영적인 고통까지 대신 감당해 주셨기 때문에, 우리 모든 성도들이 지옥 형벌안받고, 영생 천국 얻게 되어진 것입니다.
오늘 고난주일을 맞이하여, 우리가 이 큰 예수님의 은혜, 이 큰 사랑 잊지마시고, 늘 감사하고, 늘 찬양하고, 늘 보답하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가 다 되시기 바랍니다.
*** 오늘 본문 6절에서 8절까지는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버림을 받으셨을 뿐만 아니라, 그가 구원하러 온 사람들로부터도 버림을 받고 조롱을 받으신 내용이 담겨져 있습니다.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훼방거리요 백성의 조롱거리니이다. 나를 보는 자는 다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이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 저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걸, 저를 기뻐하시니 건지실걸 하나이다"
이 시편 예언은 문자 그대로 성취되게 되었는데,
마태복음 27장 39절부터 44절, 우리가 함께 찾아서 읽어 보겠습니다.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가로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희롱하여 가로되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저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러면 우리가 믿겠노라 저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저를 기뻐하시면 이제 구원하실지라 제 말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도다 하며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도 이와 같이 욕하더라’ 하였습니다.
어떻습니까 ? 단어 하나 틀림없이 문자 그대로 성취되지 않았습니까 ?
사랑하는 선한목자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을 보면, 그 받으시는 조롱이 얼마나 극심했으면 자신이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고 까지 말했겠습니까 ?
* 카프카 라는 사람이 쓴 「변신」이란 소설에 보면, 주인공 그레고어가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깨어보니, 자기가 보기에도 흉칙한 벌레로 변신되어 있었습니다. 잠옷도 그대로 입고 있는데, 얼굴과 온 피부가 딱정 벌레가 되어 버린 것이었습니다.
처음엔 가족들이 놀라고 기겁을 하고 그러다가 옛정이 있어서 여동생은 그의 방을 청소도 해주고, 썩은 음식도 갖다주곤 하지만, 나중에 점점 외면을 하고, 증오를 하고, 결국 주인공 그레고어는 아버지가 던진 사과에 맞아 병에 들게 되고, 갖다 내버리자는 여동생이 내뱉은 독설에 삶의 의욕을 상실한체 점차 죽어가게 되었습니다. 그가 죽자 가족들은 오히려 좋아하면서, 그의 시체를 처리하고 나서, 나들이를 떠나게 되는 이야기로 끝을 맺게 됩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려고 벌레 취급까지 받아 주셨으니, 이 얼마나 황송하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합니까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고난주일을 맞이하여,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할 수 있는 우리가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날 교회다니면서, 늘 편하고 안일하게만 신앙생활하려는 신자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칭찬받고, 대접받고, 존경받고, 높임받고, 좋은 소리만 들으려고 했지, 조금이라도 오해를 받고, 억울한 일을 당하고, 무시당하고, 싫은 소리를 듣게 되면, 바로 보따리 쌓서 다른 교회로 옮기겠다고 하는 그런 신자들이 날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뭐 그리 얼굴 체면 자존심이 그리 중요한 것입니까 ? 우리의 이름 석 자가 그리 대단한 것입니까 ?
바라기는, 주님께서 우리위해 조롱받고, 멸시받은 거 늘 기억하면서, 우리도 주님을 위해, 복음을 위해, 기꺼이 수모도 감수하고, 조롱도 감수하고, 억울함도 감수하고, 좀 낮아져서 겸손히 다른 이들을 섬길 수 있는 우리가 다 되시기 바랍니다.
*** 12절 이하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당하실 육체적인 고난이 어떠한지에 대해서 말씀주고 있습니다.
* 12절, 13절에 “많은 황소가 나를 에워싸며 바산의 힘센 소들이 나를 둘렀으며 내게 그 입을 벌림이 찢고 부르짖는 사자 같으니이다”
본문에 나오는 황소니 힘센 소니, 사자니 개들이니, 들소니 십자가 주변의 잔인하고 난폭한 이런 야수들은 예수님을 대적하고, 죽이려 했던 악인들을 가리킵니다. 또한 그 배후에서 조종하는 악마의 세력들을 가리킵니다. 저들은 예수님을 삥 둘러서 사자같이 물어뜯고 찢어 삼키려고 하였습니다.
* 14절, 15절에 “나는 물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촛밀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잇틀에 붙었나이다 주께서 또 나를 사망의 진토에 두셨나이다”
예수님께서는 원수들의 핍박으로 인하여 결국 무기력한 상태, 탈진된 상태가 되고 말았습니다. 물같이 쏟아졌으며, 모든 뼈들이 제대로 연결되어 있지 않고, 어그러져 버렸습니다.
마음은 첫밀이 녹듯이 속에서 다 녹아 버렸으며, 힘은 다 말라서 질그릇 조각같이 되었으며, 혀는 바싹 말라 잇틀에 붙어 버렸습니다. 그리하여 사망의 진토, 죽음의 문턱에까지 몰려가버리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의 고난이 마치 십자가 옆에서 스케치하듯이 잘 묘사되어 있는데, 16절 이하의 말씀들은 참으로 더 놀라운 예언의 말씀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 16절에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고 하였습니다. 여기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는 말은 십자가에 못박는 형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 시대에는 이렇게 못받는 형벌이 없었습니다. 이것은 로마 시대에 가서야 시행되던 형벌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오래전, 예수님 오시기 1000년전에, 다윗을 통해서 이렇게 생생하게 예언되고 있는 것을 보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어디를 찔렀다고 하였습니까 ? 수족, 곧 손과 발을 찔렀다는 것입니다.
* 17절 상반절에 보면, “내가 내 모든 뼈를 셀 수 있나이다”고 하였는데, 여러분은 뼈가 몇 개나 되는가를 알 수 있습니까? 그 모든 뼈를 눈으로 보거나 만져 보지 않고 다 셀 수 있습니까? 우리가 맹장이 아프면 비로소 맹장의 위치를 알고, 위가 아프면 위가 어디 있는지 그 위치를 알게 됩니다. 주님께서 당하신 십자가의 고통은 최절정에 달해서 뼈마디 마디까지 그 아픔이 전달되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그 모든 뼈를 셀 수 있었습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양손과 두 발에 못을 박히고, 머리에 가시관을 쓰시고 6시간 동안이나 매달려 있을 때에, 그 고통과 아픔이 뼈마디 마디에 스며들어 모든 뼈를 셀 수 있었던 것입니다.
* 18절에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
이 예언은 정말 대단한 예언인데,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로마 군병들에 의해서 문자 그대로 성취되게 되었습니다.
당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군병들은 네 사람이 한 조였었습니다.
아마도 저들 네 사람은 주님의 수족을 하나씩 붙잡고 십자가에 못박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저들은 그 십자가 밑에서 예수님의 옷을 네 깃으로 나누었습니다. 머리에 싼 수건, 신, 허리띠 그리고 그가 겉에 감쌓던 천이었습니다. 그리고 속옷은 찢지 말고 누가 얻나 제비를 뽑았습니다. 그 속옷은 통으로 짠 것이므로, 나누면 못쓰게 될까 해서였습니다.
이리하여 저들은 은연중에 1000년전의 예언을 문자 그대로 성취하는 자들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선한목자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이 있는 뒷부분 22절 이하에서는 이렇게 고난받고 죽으신 메시야께서 모든 백성들로부터 영광받고, 찬양받게 되는 예언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깐 십자가 뒤에 영광이 있음을 얘기해 주는 것입니다.
십자가 없는 영광 없고, 고난 없는 면류관 없음을 교훈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장차 주님앞에 서는 날 영광얻고, 면류관 얻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
예, 십자가 지고 순교자적 인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 존 패튼(John G. Paton)선교사는 남태평양 뉴 헤브리디스 군도에서 사역했습니다. 그가 갔던 곳은 25년 전, 원주민들이 그곳에 처음으로 찾아간 두 선교사가 해변에 상륙한 지 15분 만에 방망이로 쳐죽이고 요리해 먹었던 곳입니다. 그 후 25년 동안 아무도 그 군도를 찾지 않았었는데, 유망한 젊은 스코틀랜드 목사 패튼이 그곳을 가기로 결심을 했을 때, 주위 모든 사람들이 무모한 짓이라고 말렸습니다. 그 중에 디킨스라는 노신사가 그를 불 때마다 ‘식인종들이야, 식인종들한테 먹힐거야!’ 라고 말했습니다. 참다 못한 패튼 목사는 ‘디킨슨씨 저보다 나이가 몇 년 더 많으시죠? 그러니까 저보다 더 빨리 무덤에 누우실 것입니다. 그러면 디키스씨의 몸은 벌레들에게 먹힐 것 아닙니까? 잘 들으세요.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고 높이다가 죽을 수만 있다면 식인종들에게 먹히든 벌레들에게 먹히든 무슨 상관인가요?. 어차피 최후 심판의 날 내 몸이 부활하신 우리 구세주처럼 깨끗하게 부활할텐데 말이예요’
패튼은 뉴 헤브리디스 군도에서 43년을 살며 온갖 고초를 당했습니다. 그곳에서 아내와 자녀를 먼저 땅에 묻었고 무서운 질병과 개심자들의 배신, 동료들의 순교를 지켜보아야만 했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는 군도 전체가 변화되고 예수님을 믿게 되는 것을 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라기는 고난주간을 맞이하여, 우리도 예수님처럼, 존 패튼 선교사님처럼, 십자가를 지시고, 일생을 순교자적 자세로 살아가는 우리가 되시기 바랍니다. 주님 은혜 보답할 마음 갖으시고, 생명드려, 소유드려 십자가의 길, 순교자의 길 가는 우리가 다 되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메사야 고난 예언시”라는 제목으로 시편 22편 1절에서 18절 말씀을 함께 살펴보았는데, 본문이 주는 교훈은,
- 첫째로,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고, 지옥 형벌까지 대신 받아 주셨는데, 우리 이 큰 은혜, 이 큰 사랑 잊지말고, 늘 감사하고, 찬양하고, 보답하는 삶을 우리가 되어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 둘째로,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생각하면서, 우리도 주님을 위해, 주의 복음을 위해서, 수모도 감수하고, 조롱도 감수하고, 억울함도 감수하고, 좀 낮아져서 겸손히 다른 이들을 섬길 수 있는 우리가 되여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 셋째로, 주님, 우리 위해 십자가 지셨는데, 우리도 주님 본받아 일생을 십자가의 길, 순교자의 길 가야 한다는 교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