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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의 카롤교
카롤4세동상
카를4세:카를루프 모스트(카를 다리)는 카를 4세가 유디트 다리(1158~1172년 건설)를 대체하기 위해 짓게 한 다리이다. 유디트 다리는 폭이 더 좁은 다리였는데, 1342년에 일어났던 홍수를 견디지 못하고 파괴되어 버렸다. 이 새로운 다리의 주춧돌이 놓인 것은 1357년이었다. 건축가는 독일인인 페테르 파를러였는데, 그는 성 비투스 대성당을 설계한 인물이기도 했다. 하나는 16세기에 지어진 르네상스 양식, 다른 하나는 1464년에 지어진 후기 고딕 양식인 두 개의 탑이 다리 입구 부분 양쪽에 서 있는데, 이 탑에서는 다리의 모습이 훤히 보이며 강 건너 프라하의 명물인 여러 개의 첨탑들을 감상할 수 있다.17세기 중반, 이 다리는 고딕 양식의 돌로 된 건널목에서 오늘날 볼 수 있는 모습처럼 조각상이 늘어선 수수께끼 같은 매력을 지닌 대로로 발전해 나가기 시작했다.
1683년에 세워진 얀 네포무츠키의 바로크 동상은 이 나라의 수호성인을 나타낸 엄숙한 조각상으로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 여섯 번째와 일곱 번째 기둥 사이에는 십자가 하나가 있는데, 전설에 따르면 성인인 얀이 1393년 보헤미아의 왕 벤체슬라우스(바클라프 4세)의 명령에 따라 블타바 강에 던져져 순교당한 장소를 표시한다고 한다. 결국에는 모든 기둥에 총 서른 개의 동상이 자리 잡게 되었는데 대부분 바로크 양식이다.
20세기에 들어 프라하에서는 홍수로 손상을 입은 바로크 동상들을 현대적인 석조 복제품으로 점차 바꿔 나갔다. 원래의 조각상은 현재 국립 박물관에 있다. 다리를 오래 보존하기 위해 교량 위 모든 교통이 통제되었다.여섯 세기 하고도 반세기 동안 서 있으면서 여러 차례 홍수로 피해를 입었지만, 이 다리는 1741년까지 블타바 강을 건너는 유일한 건널목이었으며, 중세의 도시 프라하를 찾는 많은 이에게 중심적인 장소로 남아 있다. 아마 이 다리는 어둠이 깔리고 거리의 조명이 다리를 비춰 동상이 그림자로 보일 때의 모습이 가장 아름다울 것이다. 카를루프 모스트는 중부 유럽에서 가장 훌륭한 중세 도시 프라하의 중요하고도 매력적인 상징물이다
야간에 유람선도 다니네요
세계3대 야경 프라하
3일차 프라하 출발 헝가리 부다페스트 도착
헝가리:정식 명칭은 헝가리공화국(Republic of Hungary)으로, 1989년 10월 23일 헌법 개정으로 헝가리인민공화국(Hungarian People’s Republic)에서 바뀐 명칭이다. 면적은 9만 3028㎢, 인구는 989만 7541명(2015년 현재)이며, 수도는 부다페스트(Budapest)이다.
국민의 대부분이 마쟈르족으로 96.6%이며, 독일인이 1.6%, 기타 슬로바키아인과 남슬라브인, 루마니아인이 있고, 언어는 민족고유의 마쟈르어를 사용한다. 국민의 67.5%가 가톨릭교를 믿으며, 개신교 20%, 그리스정교 2.6%이다.
기후는 다습한 대륙성기후로서 봄·가을이 짧고 여름에 비가 많이 온다. 경제는 농업 위주였으나, 제2차세계대전 후 공업화에 주력하여 공업생산이 주도하게 되었다. 특히 광업·알루미늄공업·자동차·전자기기 등의 개발에 주력하고 있으며, 주요 자원은 석탄·천연가스·보오크사이트 등이다.
2015년 현재 국내총생산은 1,370억 달러, 1인당 국민소득은 2만 4450 달러이다.
이 나라의 정체는 의원내각제 성격의 공화제로서, 대의기구는 임기 4년의 국민회의(386석)가 있다. 주요 정당으로는 사회당(HSPR), 청년민주연합(FIDESZ), 민주포럼(HDF) 등이 있다.
부다페스트:부다페스트는 도나우 강을 중심으로 서쪽의 부다(Buda)와 북쪽의 오부다(Obuda), 동쪽의 페스트(Pest)로 이루어져 있다. 이 세 지역은 1873년 통합된 이후 지금까지 함께 공존하며 발전해 왔다. 오늘날의 부다페스트는 헝가리의 수도이자 정치 · 산업 · 상업 · 교통 · 문화의 중심지이며 중부 유럽 최대의 도시이다. 도시 전체가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 만큼 고풍스런 건축물과 문화 유적이 즐비하고, 도나우 강과 온천수가 있어 물의 도시로도 유명하며, ‘동유럽의 파리’, ‘도나우의 진주’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프라하와 더불어 동유럽 여행의 중심 도시이기도 하며 멋진 야경과 음악이 있는 부다페스트를 만나 보자.
부다페스트 도나우강을 거너고 있습니다
부다페스트:부다페스트는 도나우 강을 중심으로 서쪽의 부다(Buda)와 북쪽의 오부다(Obuda), 동쪽의 페스트(Pest)로 이루어져 있다. 이 세 지역은 1873년 통합된 이후 지금까지 함께 공존하며 발전해 왔다. 오늘날의 부다페스트는 헝가리의 수도이자 정치 · 산업 · 상업 · 교통 · 문화의 중심지이며 중부 유럽 최대의 도시이다. 도시 전체가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 만큼 고풍스런 건축물과 문화 유적이 즐비하고, 도나우 강과 온천수가 있어 물의 도시로도 유명하며, ‘동유럽의 파리’, ‘도나우의 진주’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프라하와 더불어 동유럽 여행의 중심 도시이기도 하며 멋진 야경과 음악이 있는 부다페스트를 만나 보자.
어부의 요새
어부의요새:19세기 말 지어진 작품으로, 도나우 강과 페스트 지역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회랑이다. 네오 로마네스크와 네오 고딕 양식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으며, 7개의 고깔 모양을 한 탑이 있는데 이 탑은 헝가리 땅에 처음 정착하여 살기 시작한 마자르의 7개 부족을 상징한다. 19세기 왕궁을 지키는 시민군이었던 어부들이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방어하면서 어부의 요새라는 이름이 붙었다. 1층은 무료지만 2층은 티켓을 끊고 입장해야 한다.
헝가리 국회의사당
성 이슈반트 대성당의 첨탑이보이네요
성 이슈반트 대성당:네오 르네상스 양식으로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까지 50년에 걸쳐 지어진 성당으로, 부다페스트에서 가장 큰 성당이다. 96m 높이를 자랑하는 첨탑은 부다페스트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인데, 도시 미관을 위해 나라에서 법으로 더 높은 건물을 지을 수 없게 규제하고 있다. 초대 국왕 이슈트반 1세는 헝가리에 가톨릭을 최초로 받아들여 부다페스트의 수호 성인으로 추대되었으며, 그를 기리기 위해서 세워진 성당인 만큼 곳곳에 성 이슈트반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다. 제단 뒤편에 성 이슈트반의 오른손 미라가 봉헌되어 있는 예배당은 이 성당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곳이다.
고깔 모양의 어부의 요새
도나우강 일명 다뉴브강 건너가 페스트 지역
마차시 성당:헝가리 국왕들이 대관식과 결혼식을 올리던 장소로 유명하며, 합스부르크 왕가의 프란츠 요제프 1세와 에르제베트(엘리자베스 시시) 황후의 대관식도 이곳에서 열렸다. 13세기 벨러 4세의 명으로 건축된 초기 고딕 양식의 성당으로, 어부의 요새, 세체니 다리와 함께 부다페스트의 랜드마크 중 하나이다. 1470년 마차시 왕의 명령으로 증축된 88m 높이의 첨탑과 원색의 화려한 모자이크 장식이 볼 만하다. 교회 내부는 스테인드글라스와 프레스코 벽화로 장식되어 있고, 역대 사제들이 입었던 의상, 교회 장식품, 십자가 등이 전시되어 있다.
어부의 요새
다뉴브강을 사이에 두고 부다와 페스트지역이 마주하고 있습니다
세치니다리도 보이고
세치니 다리:부다페스트에서 가장 먼저 만들어진 다리로 1849년에 완성되었다. 지금은 이 도시의 상징 중 하나로 왕궁과 함께 인상적인 경관을 연출한다.
이 다리는 19세기 위대한 헝가리인 ‘이슈트반 세체니’ 백작의 아이디어다. 1820년 세체니는 배로 강을 건너서 아버지 장례식에 참석해야 되는데 날씨가 아주 나빠서 8일간 강을 건널 수가 없었다.
그는 영국인에게 설계하게 하고 스코틀랜드사람 ‘클라크 아담’에게 다리를 건설하게 했다. 당시 이 다리는 경제와 사회 발전의 상징으로 세인들의 관심을 받았다.
1849년 5월 다리가 완성되기 전인 헝가리 독립전쟁 동안 오스트리아는 이 다리를 제거할 계획을 했었다. 그러나 클라크 아담은 이 계획을 하지 못하게 막았다. 마침내 1849년 11월 20일 완성 했으며 380m 길이의 현수교로는 당시 가장 규모가 큰 것에 속했다. 완성된 초기에 다리를 건너는 모든 사람에게 이용료를 징수 하기도 했지만 1918년에 무료로 다닐 수 있게 했다.
세치니다리 건너 페스트 지역은 신식 건물이 많다
마차시 성당 첨탑
성 이슈트반 동상
성 이슈트반 1세(헝가리어: I. (Szent) István, 라틴어: Sanctus Stephanus; 975년경 에스테르곰 ~ 1038년 8월 15일 에스테르곰 또는 세케슈페헤르바르)는 버이크(Vajk)라는 이름으로 태어난 헝가리의 대공(997년 ~ 1000년)이자 초대 헝가리의 국왕(1000년 ~ 1038년)이다.
그는 헝가리인들의 지배지를 판노니아 평원 전역으로 넓혔고, 동시에 이 지역에 대한 기독교 선교에도 힘썼으며, 보통 사실상의 헝가리 왕국의 개창자로 여겨진다. 헝가리에 기독교를 전파하여, 그 공으로 교황 그레고리오 7세로부터 헝가리의 사도왕이라는 작위를 얻게 되었다. 1083년 8월 20일, 교황은 이슈트반 1세, 그의 아들 에머릭, 주교 사나드의 제러트를 시성했다. 이슈트반은 헝가리에서 가장 인기 많은 성인 중 한명이고, 1687년까지 그의 축일인 8월 20일은 헝가리의 개국기념일로서 국경일이었다. 바이에른의 하인리히 2세의 딸인 바이에른의 기젤러와 혼인하였다.
마차시 성당 첨탑
마차시성당 첨탐
마차시성당 나와 이거리에서 가장오래된건물
부다성가는 길 거리
현재 대통령궁
2차대전때 독일에의해 파괴된 왕궁
역사의 교훈으로 삼기위해 파괴된 지역은 그대로 보존합니다.우리나라가 배워야할 점이네
부다왕궁
부다왕궁:부다 지역의 남쪽 언덕에 자리한 부다 왕궁은 재건과 파괴가 반복된 수난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13세기 후반 벨러 4세에 의해 처음 건축되었고, 몽골 군의 습격을 받아 파괴된 것을 15세기 마차시 1세 때 재건하였다가 오스만투르크에 의해서 다시 파괴된다. 17~18세기에 재건 및 확장 공사를 하였으나 헝가리 독립 전쟁으로 폐허가 되었고, 대대적인 개축을 시작하여 1904년에 완공한다. 왕궁 건설의 기쁨도 잠시 제2차 세계 대전 때의 폭격으로 무너졌고, 20세기 후반에 들어서서 왕궁보다는 박물관의 성격으로 다시 복원되었으나 여전히 전쟁의 흔적이 여러 건물에서 발견되고 있다.
등산 열차 타는 곳과 마주하고 있는 왕궁 입구에는 거대한 청동상이 있는데, 이것은 헝가리 민족의 상징인 전설의 새 ‘투룰(Turul)’이다. 투룰에 의한 전설은 다양하다. 일반적인 내용은 헝가리 민족의 시조인 알모시의 어머니가 태몽으로 꾼 것인데, 꿈에 투룰이 나타나 태어날 아이가 위대한 민족의 훌륭한 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또 마자르 민족의 지도자가 꾸었던 꿈에도 투룰이 나타나 독수리에게 공격받는 그들의 말을 구하고 지금의 헝가리 영토로 인도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부다 왕궁의 투룰 조각상은 유럽에서 가장 큰 새 조각상이기도 하다. 현재 부다 왕궁은 국립 현대 미술관, 루드비크 박물관, 부다페스트 역사 박물관, 국립 세체니 도서관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곳은 수리해서 총리 공관으로 쓴다네요
헝가리 시조인 아라파트를 낳았다는 전설속의 새 투룰(Turul).
대통령궁에 경비병 교대식이열리고 있습니다
부다성밑 광장
투룰의 웅장한 모습
2차 세계 대전때 파괴된 왕궁모습
부다성 모습
부다지역의 부촌
장빈이 부부가 역시 부촌을 알아보고 인증샷
부다성
영웅광장.
36m 높이의 밀레니엄 기념탑 위에는 대천사 가브리엘의 상입니다.
영웅광장:1896년 헝가리 건국 1000년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광장이다. 광장 중앙에는 높이 36m의 코린트 양식의 기념비가 서 있고 기념비 위에는 민족 수호신인 왕관을 든 천사 가브리엘이 올려져 있다. 기념비 아래에는 헝가리 민족을 카르파티아 분지로 이끌었던 아르파드를 비롯한 초기 부족장 7명의 기마상이 서 있다. 기마상을 가운데에 두고 뒤편 양옆으로는 초대 국왕이었던 이슈트반 1세부터 독립운동가였던 코슈트 러요시까지 헝가리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인물 14명의 동상이 자리하고 있다. 이 광장은 매년 헝가리의 주요 행사가 열리는 장소이기도 하며, 5월 1일(노동절)에는 이곳에서부터 에르제베트 광장까지 퍼레이드가 펼쳐진다.
광장 양옆에는 서양 근대 미술관(Szépmüvészeti Múzeum)과 헝가리 작가들의 현대 작품을 볼 수 있는 현대 미술 전시관이 자리하고 있다. 서양 근대 미술관에는 엘 그레코, 라파엘로, 루벤스, 고흐, 마네, 모네, 르누아르, 세잔, 로댕 등 유럽 유명 작가들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특히 스페인 회화 전시실은 국내는 물론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스페인 회화를 소장하고 있는 만큼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현재는 미술전시관으로 쓰고있음
서양근대 미술관
페스트 거리
7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