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있는 학교에는 전교생이 함께 부르며 춤추는 곡이 있다. 아이들이 직접 만든 노래다. “안 쓰는 플러그는 뽑고, 쓰레기는 분리수거. 세수할 땐 물 받아 쓰고 일회용 컵 대신 내 컵을 쓰면 돼. 우리 쿨하게 에너지를 아껴볼까”라고 노래하며 빈 교실과 방에서 전등을 끄고 플러그를 뽑는 아이들에게서 매일매일 감동을 받는다.
“선생님, 핵발전소 사고가 나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해요?”
2011년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사고로 인해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과 나는 한동안 공황 상태에 빠져 있었다. 아이들은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지만, 나 역시 그 어떤 교육에서도 핵발전소 사고와 방사능을 피하는 방법을 배운 적이 없었다.
‘핵에너지가 대체 뭐길래 이렇게 순식간에 우리 삶을 괴롭힐까?’ 생각하면서 아이들과 함께 정보를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그즈음 《방사능 지진에서 살아남는 법》이라는 책이 출간됐다. 핵발전소 사고가 나면 일주일간 외출 금지, 식품과 라디오 확보, 실내의 모든 창을 랩으로 막아 실외 공기차단 등을 하고 우비와 장화를 신고도 노출되는 피부는 비닐로 막아야 그나마 방사능 피폭을 줄일 수 있다고 한다. 그마저도 절대적으로 안전한 방법이 아닌 소극적 대처일 뿐이라고 한다.
석탄, 석유, 천연가스를 태워 끓인 물로 터빈을 돌려 만들어지는 화력에너지가 68%, 우라늄을 이용한 핵에너지가 30%로 둘을 합쳐 천연자원에 의존한 에너지는 98%나 되지만 재생에너지는 고작 2%도 안 되는 너무나 궁색한 현실도 알게 되었다. 핵에너지를 만들려면 냉각수가 필요하고, 도시사람들이 핵발전소와 같은 기피시설을 선호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 자연 지역을 찾아가야 했었을 테고 서해안에서는 화력발전소가, 동해안에서는 핵발전소가 전국 곳곳으로 전기를 보내기 위해 최대 765kV의 엄청난 고압으로 송전탑이 장거리 운송 역할을 하고 있다. 생산지부터 소비지까지 거리가 멀면 그 거리만큼의 전력 손실을 감안하여 고전압이 전송되고, 가정에서는 다 잃고 잃어 줄어든 220V 전압의 전기를 사용하게 된다.
행동 1. 핵에너지 홍보하는 교과서를 바꾸다
교과서에서는 어김없이 핵에너지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가장 적고 매우 청정한 에너지라고 언급하고 있다. 교과서 집필자들은 대체로 교사들이고, 이들 역시 ‘핵맹’에 가깝다. 그들도 나와 같이 핵의 위험성을 배운 적 없는 사람들이니까. 다행히 나는 2011년부터 중학교 환경교과서의 집필자로 참여하면서 핵발전소와 송전탑 문제를 싣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과학, 기술 교과서에서 여전히 핵발전소를 찬양하는 글귀를 발견했다. 2013년도에 신규로 출간된 중학교 기술교과서 12종을 분석했다. 교과서 집필자라면 다양한 사고와 관점으로 가치 교육을 실현할 문장을 완성해야 하는데도, 대부분의 교과서는 기가 막히게도 정부의 핵발전소 홍보사이트나 책자를 기본으로 작성되었다. 한 교과서에는 “핵융합 에너지는 안전성이 매우 높아 폭발의 위험성이 전혀 없고, 온실가스나 방사성 고준위 폐기물 등도 배출하지 않아 차세대 미래 청정 에너지로 인정받고 있다”라고 실려 있었다. 이런 점을 논문으로 발표한 결과, 여러 방해에도 한국기술교육학회의 우수 논문상을 받고 2개 출판사의 교과서는 학생 손으로 들어가기 전에 수정을 이끌어 내기도 하였다.
행동 2. 현장에서 아이들과 환경 교육
세계인이 함께하는 환경 캠페인 중 하나로 세계자연기금(WWF)의 ‘지구촌 전등끄기’가 있다. 2007년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시작되어 현재 154개국이 동시에 참여하는데, ‘지구를 위한 한 시간’이라는 표어로 해마다 3월 마지막 주 토요일 저녁 8시 30분부터 1시간 동안 전등을 끄는 것이다.
2013년부터 한국환경교사모임의 선생님들과 학생들이 이 캠페인의 서울 행사를 공동으로 기획하고 진행하였는데, 이날 1시간 동안 서울에서만 23억 원이 절감되는 놀라운 효과를 얻었다. 서울광장, 청계광장, 광화문광장을 돌며 2천여 명의 청소년들이 전기 절약 서명을 받았는데 무려 15만 명의 시민들이 서명에 참가했다. CNN, AP 등의 외신에서도 크게 보도할 정도로 한국의 청소년들은 착한 에너지를 원하고 있다. 이후 서울은 매달 전등 끄기 행사를 진행할 만큼 큰 변화가 일어났다.
환경을 교과목으로 배운 우리 아이들은, 2012년부터 현재까지 학교 전력사용량을 누적 27%나 줄인 대단한 사람들이다. 먼저 알고 있는 사람이 스승이라는 생각에서 아이들은 교사연수에서 환경 지식을 직접 전하는 기회도 갖고 있고, 지역 공부방을 찾아가기도 한다.
청소년들이 꿈꾸는 진로는 매우 다양하다. 선호도가 높은 직업인 의사, 약사, 법조인, 정치인, 교사, 사업가가 되어도 좋다. 단지 생명과 환경을 먼저 배려하는 가치관을 가진 직업인이 되길 바랄 뿐이다. 그래서 먼저 그러한 길을 걷고 있는 직업인을 만나게 해주고 싶었다. 환경교사 열 명과 청소년 175명이 한국 탈핵의 절대고수 김익중 교수, 그린디자이너 윤호섭 교수,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최호성 한의사, 한국 농업을 지키는 신건준 씨, 양말장수에서 자전거발전기 발명가로 변신한 문장만 씨 등 50명의 멘토를 만났고 이 내용으로 《그린멘토 미래의 나를 만나다》라는 책도 냈다.
2013년 에너지의 날 서울광장에서 아이들이 직접 만든 노래로 공연을 펼쳤다.(위)
무엇을 하든지 생명과 환경을 먼저 배려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아이들과 함께 그린멘토를 만났고, 책도 냈다.(아래)
착한 에너지 실천, 학교에서 먼저 시작해야
2035년까지 핵발전소를 최대 41기까지 늘린다는 소식을 듣고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신규 원전 예정지인 경북 울진과 영덕, 강원 삼척에서 하는 행진과 순례에 함께하며 울부짖는 것뿐이었다. 이렇게 지나는 발걸음에는 어김없이 핵맹들이 등장한다. “핵발전소 없이 어떻게 전기를 쓸 거냐?”, “너처럼 선동하는 사람들이 전기는 더 많이 쓰고 다닌다”는 비난을 쏟는 엄청난 무리를 만나면 혼란스러웠다. 심지어 모든 문제는 박근혜 대통령이 해결해 줄 거라는 해괴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도 만났다. 우리 집 전기가 어디에서 어떻게 오는지 몰랐던 과거 내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며, 착한 에너지를 위한 실천을 교육으로 먼저 시작해야 한다는 각오를 굳게 다졌다.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전국 중등 환경교사의 62%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게다가 2008년부터 현재까지 전국 공립학교 환경교사 신규 임용 인원도 0명인 시점에서, 남은 환경교사들은 멸종위기종으로서 서식지 위협을 받고 있다. 환경을 보존하고싶은 교사는 정말 필요 없는 것일까? 밀양과 청도의 아픔은 학교에도 있다. 지금 여러분의 자녀가 다니는 학교에 환경 과목이 없다면 과목 개설을 당당하게 요구해야 한다. 지속가능한 삶을 위한 과목을 배우는 행운을 전국에서 소수의 아이들만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 숭문중학교 아이들이 부른 노래 ‘save the energy’가 궁금하다면 http://youtu.be/N0VT2ydJmZw
↘ 신경준 님은 서울 숭문중학교에서 환경을 가르치는 9년차 교사입니다. 한국환경교사모임 공동대표로 활동하며, 2013년 중학교 기술교과서의 대안에너지 관련 내용을 분석한 논문을 통해 핵에너지에 대한 잘못된 설명을 수정하는 결과를 이끌어 냈습니다. 환경재단에서 선정한 ‘2013년 세상을 밝게 만든 사람들’ 중 한 명입니다.
http://www.salimstory.net/renewal/sub/view.php?post_id=10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