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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년 3월 27일, 고난주간 수요예배 설교 +
+ 제 목 : "날 위해 십자가 지신 예수님을 사랑하십니까?"
+ 본 문 : 갈라디아서 2장 19절 - 21절 (신약성경 304쪽)
19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에 대하여 살려 함이라.
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21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아멘!
함께 찬양하기를 원합니다. / 305장 “나 같은 죄인 살리신 그 은혜 고마와!”
우리 기독교사에 놀라운 영향을 준 성화가 있습니다. 스텐버그의 ‘십자가’ 라는 그림입니다.
성 제롬 대성당의 위고라는 신부의 요청으로, 스텐버그가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화가인 스텐버그는 그림을 그리다 맙니다. 시간을 끌어 그림 값을 올리기 위해서였습니다.
스텐버그는 그렇게 그림을 잠시 중단한 동안, 집시 여자인 페피타를 모델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화실에 와 있던 어린 집시 모델 페피타는 초안만 잡혀있는 체 내버려진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의 모습이 담긴 그림을 보고, 스텐버그에게 저 십자가 사람의 이야기를 해 달라고 졸랐습니다.
그러나 스텐버그는 너무나 흔한 이야기라 시간낭비라면서, 소녀에게 대꾸조차도 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런데 어린 집시 모델인 페피타가 계속 졸라대니까, 스텐버그는 점심시간에 대충 들려주었습니다.
하지만 집시 페피타는 대충 들려 준 예수님의 십자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도, 몹시 감동했습니다.
그리고 어린 집시 모델 페피타는, 불쑥 예수님의 이야기를 들려준 스텐버그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죽으셨다는 이 훌륭한 분 예수님을, 선생님도 사랑하고 계시겠지요?”
페피타의 이 한마디가 스텐버그의 심장에 꽂혔습니다. ‘그래, 나는 정말 이 예수님을 사랑하는가?’
곰곰이 생각하고 며칠 동안 깊은 묵상에 잠긴 후, 스텐버그는 ‘십자가’ 그림을 다시 그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십자가’ 그림이 완성된 뒤에, 그림 값을 전혀 받지 않고, 성 제롬 대성당에 기증을 했습니다.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십니까?’‘날 위해 십자가 지신 예수님을 정말 사랑하십니까?’
우리 기독교사에 이름이 잘 알려진, 독일의 공작 진젤돌프라는 분이 계십니다.
그가 젊었을 때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 어떤 인생을 살 것인가?’ 고민하며,
방황하던 어느 날, 조금 전에 말씀드린 성 제롬 대성당에 걸려 있는 스텐버그의 ‘십자가’ 라는,
그림을 보면서 날 위해 십자가 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그의 심장이 뜨거워지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예수님을 한참 바라보다가 진젤돌프는 마음속에 하나의 중대한 결단을 하게 됩니다.
‘그렇다. 나는 이제부터 예수님의 십자가를 위해 살겠노라! 예수님의 십자가를 위해 살겠노라!’
그렇게 십자가 그림에 감동을 받은 진젤돌프는, 전 재산을 바쳐 모라비안 선교회를 창립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 진젤돌프는 영국을 신앙혁명으로 이끌었던, 존 웨슬레에게 큰 영향을 미칩니다.
존 웨슬레가 미국선교에 실패하고 대서양을 건너오던 중, 풍랑을 만나 죽음의 두려워하고 있을 때,
그 휘몰아치는 풍랑 가운데서도, 진젠돌프가 만든 모라비안 선교회 사람들의 찬송하는 모습 속에서,
그들에게 주시는 말로 다할 수 없는 하나님의 참 평안함을 보면서, 존 웨슬레는 큰 도전을 받게 됩니다.
그 후, 존 웨슬레는 모라비안 선교회원들의 뜨거운 신앙과 복음전도열에 자극되어 새사람이 되었고,
자기 조국 영국을 신앙혁명을 일으켰고, 부흥의 불길을 붙였던 위대한 신앙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오늘은 고난주간 성 수요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다시 묻습니다.
‘예수님을 정말로 사랑하십니까?’ ‘날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정말로 사랑하십니까?’
우리 늘 고백합시다. ‘나도 이제부터 십자가를 위해 살겠노라! 예수 십자가를 위해 살겠노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렇게 스텐버그와 진젤돌프 공작에게 깊은 감동을 주고, 존 웨슬레에게,
회개하도록 만든 십자가! 저와 여러분도 정말 사랑한다고 고백한, 날 위해 예수님께서 지신 십자가!
나도 너도, 인류 모두에게 예수님의 십자가를 위해 살겠노라고 고백하게 한 예수님의 십자가에는,
도대체 능력이 있기에 이토록 많은 사람들의 심장을 뜨겁게 달구고, 인생을 바꾸어 놓는단 말입니까?
많은 사람들이 현대를 일컬어 무감동, 무감각, 무표정의 시대라고 합니다.
너무나 바쁘게 돌아가는 나머지 변하는 상황에 따라 가다가, 어느새 자기를 잃은 체 살아갑니다.
그러기에 현대인들은 방황할 수밖에 없습니다. 절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포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삶의 기쁨을 잃고, 고통과 고난이 가득한 세상 속에서 절규하지는 않습니까?
그래도 그리스도인이기에 ‘어떻게 살아야 아름답고 보람된 인생, 값진 인생을 살 수 있을까?’ 를,
고민하고 있다면, 이 고난주간 한 주간 동안만이라도 십자가를 깊이 묵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변화시킨 십자가이기에, 저와 여러분도 분명히 변화시킬 수 있을 줄로 믿습니다.
예수 십자가 때문에 삶이 바뀌고, 우리 지역에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서 삶이 온전히 드려지고,
주님께 크게 쓰임 받아 열매를 맺는 생기발랄한 크리스챤들이, 다 되시기를 진심으로 원합니다.
우리가 삶을 바르고 의미 있게 살려면, 십자가를 통해 두 가지를 반드시 정립해야 합니다.
♡ 우리가 바르고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려면, 가장 먼저 십자가에서 나를 발견해야 합니다.
내가 누구인가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건 바로 십자가 사건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에서 내 진실하고 분명한 모습을 바로 볼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에게 한 번 물어 보겠습니다. /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이 누구라고 생각합니까?’
그런데 놀라운 것은 평소에 자신을 잘 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조차도 사실은 자신을 잘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내가 누구인가?’ 를 분명히 말씀합니다.
로마서 3장 23절 말씀입니다. /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여기 ‘모든 사람’ 에는 ‘나는 꽤 괜찮은 사람이라.’ 고 말하는 사람들까지도 다 포함이 됩니다.
여러분! “죄를 범하였기에,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는” - 이것이 저와 여러분의 모습이요.
이것이 바로 이 땅에 살아가는 모든 인간의 진정한 실존이요, 곧 죄인인 저와 여러분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로마서 5장 6절 - 9절 말씀에서도 우리가 죄인임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직 연약한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아멘!
그렇습니다. 이 말씀처럼 죄로 인한 진노로 멸망당할 수밖에 없는 존재인, 바로 저와 여러분입니다.
우리는 죄인입니다. 죄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게 할뿐만 아니라, 우리를 저주 아래 있도록 만듭니다.
그리고 죄는 아름답고 존귀한 하나님의 작품인 우리를, 순식간에 사탄의 노예로 전락시켜 버립니다.
그리고 죄는 우리를 나누고, 분열시키고, 우리를 저주하는 불행의 원천이며, 모든 악의 씨앗입니다.
그래서 바로 이런 죄를 지은 죄인들이 있어야 할 곳은, 바로 저주의 십자가라는 형틀 아래입니다.
왜냐하면 본래 십자가는 죄로 인해 저주 받고 버림받은 자를, 사형시키는 형틀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바로 그 예수 십자가의 고통과 저주는, 죄인인 내가 받고 져야 마땅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십자가를 볼 때마다 내 모습을 바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죄의 저주와 심판으로 십자가의 모진 고통과 대가를 치르고, 사망으로 끝나버릴 나를 보아야 합니다.
그렇게 십자가를 통해 ‘내가 누구인가?’ 나를 볼 수 있는 사람만이 하나님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삶을 바르고 의미 있게 살려면, 가장 먼저 십자가에서 나를 발견해야 합니다.
♡ 다음으로 우리가 삶을 바르고 의미 있게 살려면,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해야 합니다.
십자가를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신 하나님의 사랑은, 사랑 받을만한 가치가 전혀 없는 우리를,
사랑하신 참 사랑이며, 우리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죄의 저주로부터, 우리를 건지신 사랑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님께서 이 사랑을 우리에게 주기 위해, 당하신 고난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우리의 질고와 슬픔을 대신 지고 가신 예수님! 우리 죄 때문에 채찍에 맞고 징계를 받으신 예수님!
바로 그런 예수님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우리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언된 그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절규하셨던 예수님을 외면하면서까지, 성취시키셨던 것을 우리는 잘 압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 된 우리, 바로 저와 여러분을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를 외면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예수님도 가치 없는 나, 나도 포기한 나를 위하여 보혈 흘리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 - 죄용서 함을 받고 구원함을 받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이 복음을 믿습니까?(엡 1:7)
바로 이 하나님의 사랑은 오늘 저와 여러분을 용서하고, 또한 그 용서를 선포함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용서를 받은 우리, 용서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리할 때 비로소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작은 예수! 행복한 예수로 살아가게 됩니다.
한 할머니가 허리를 제대로 펴지도 못한 체, 상점들 앞에 놓여 있는 종이상자를 줍습니다.
어떤 분이 그 모습이 하도 안 돼 보여, 그 할머니에게 만 원짜리 한 장을 가만히 손에 쥐어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그 할머니가 그 만 원짜리를 되돌려주면서 ‘나는 돈은 안 받고, 폐지만 받는다오.’
그리고 무안해 할까봐 행복한 미소를 띄우며 ‘이게 먹고 살만큼 꽤 돈이 되거든’ 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얼른 가게에 들어가 음료수 한 병을 사 드렸더니 ‘이건 사랑으로 받겠소.’ 하고 받습니다.
그래서 물었습니다. ‘할머니! 혼자 사세요?’ ‘아니!’ ‘아, 자제분들 하고 사시는가 보죠?’
그랬더니 이 할머니 입에서 정말 아름다운 신앙고백이 선포되었습니다. “아니야, 나는 하나님과 살아!”
그리고 그 할머니는 행복하게, 환하게 웃으며, 빈 종이상자를 실은 수레를 힘겹게 끌고 사라졌습니다.
우리 한번 따라서 고백합시다. “나는 하나님과 살아! 나는 예수님과 살아! 나는 성령님과 살아!”
여러분! 그 할머니는 분명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신 분입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의 사랑의 십자가를 통해서, 자신이 하나님의 딸임을 분명히 아는 성도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하나님의 사랑으로 용서하며, 섬기며 살아가는,
그리고 가진 것 없으시지만 정말 욕심 없이, 자족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시는 행복한 하늘 사람입니다.
왜 행복하지 못합니까? 하나님과 함께 살지 못해서! 예수님과 살지 못해서!
왜 복음 전하지 못합니까? 성령님과 함께 살지 못해서! 피 묻는 십자가의 복음을 못 전합니다.
죄 지을만한 곳에서 저와 여러분이 고백해야 할 말은 “나 예수 믿어요!”하는 신앙고백입니다.
행복한 그리스도인임을 선포하는 고백은 ‘나는 하나님과 살아요!’ 하는 고백과 선포입니다.
성령의 권능 받고 우리가 전해야 할 복음은 “예수님의 피 묻는 죄 사함과 구원의 복음” 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와 늘 함께 하시며, 나를 항상 행복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머리가 아닌 내 영혼이 담긴 내 심장으로 뜨겁게 체험하고, 그 감격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십자가를 바라보는 고난주간인 이 한 주간을, 특별히 하나님께 성별하여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사랑하는 믿음의 가족 모두가 ‘나는 예수 믿어요!’ 라고 고백하는 삶을 살아가고,
‘나는 하나님과 살아요! 나는 하나님과 살아요!’ 라고 선포하면서, 성령님과 함께 살아가는,
그리고 성령의 권능 받고 “예수님의 피 묻는 죄 사함과 구원의 복음” 을 전하며 살아가는,
그래서 ‘나는 행복해요.’ 라고 외치는 성도로 살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다함께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나는 예수 믿어요!’ ‘나는 하나님과 살아요!’ ‘나는 행복해요.’
고백하며, 선포하며, 외치는 분명하고도 확실한 그리스도인으로 살게 해달라고!
성령으로 충만한 삶을 살게 해달라고, 성령의 권능을 받고 복음 전하게 해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