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1학년 때 학과 티셔츠에 넣을 문안 공모 중 하나였다. 1990년, ‘참교육 첫 세대’로 서울대 물리학과에 힘겹게 입학한 나는 세상 부러울 것 없는 대학 새내기였다. ‘마징가 Z’를 만들겠다던 소시적 꿈을 정말 이룰 것만 같았다.
‘수재들만 모이는 곳.’
사람들은 그렇게 불렀다. 화학과보다 일반화학 점수가 10점은 더 나오고, 수학과보다 미적분학 점수가 10점은 더 나오는 곳. 한때는 1등부터 7등까지 학과 입학 등수와 전국 등수가 같았다는 곳. 잊을 만하면 전국 수석도 나오고 각종 경시대회나 올림피아드를 석권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 그래서, 우리는 정말 잘 되면 아인슈타인같이 위대한 물리학자가 될 수 있고 영 형편없어도 맥가이버쯤은 되지 않겠느냐고, 그렇게 티셔츠에 사진과 글자를 넣고 싶었다.
그런데 그 많던 미래의 아인슈타인들은 지금 다 어디로 갔을까. 적어도 맥가이버는 돼서 어딘가를 휘젓고 다닐까. 4년 내내 데모만 하던 나는 왜 물리학 박사가 되어 있고, 나보다 훨씬 뛰어났던 동기, 선후배들은 주위에 없을까.
최근 이공계 기피 현상이 사회적 이슈가 되면서 이공계인들의 불만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그 대부분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 ‘우리는 국가경제 발전을 위해 많은 일들을 했는데 왜 대우가 이 모양이냐’로 요약된다. 이런 얘기들을 들을 때마다 ‘왜 내가 고민하는 것은 저기 없을까’ ‘왜 다른 업계 종사자들 얘기처럼 들릴까’ ‘나는 이공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이공계에 진학하는 우수한 인재들은 누구나 한번쯤 아인슈타인을 꿈꾼다. 그렇지만 현실은 그들을 맥가이버도 되지 못하게 만든다. 지난해 12월 중순 서울 강남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2003 이공계 연구인력 채용박람회장에서 구직자들이 취업정보를 검색하고 있다. |
연간 2,000억원씩 7년간 지원되는 BK 사업은 인건비가 약 70%라는데, 예전에는 연구원들 월급 주는 곳이 학술진흥재단이나 과학재단밖에 없었으니 그나마 숨통이 트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비수혜 기관은 상대적으로 길거리에 나앉은 상황과 다를 바 없다.
인건비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연구지원비인데, 얼마 주지도 않는 연구비를 쓰려면 여간 조건이 까다로운 것이 아니다. 수백억 원씩 받아 먹는 국회의원들이 국정감사하면서 연구원들이 연구비 100만∼200만원 헛돈 쓴다고 걸고 넘어진 것이 그 이유다.
덕분에 지난 2001년에는 미국에서 열린 작은 워크숍에 초청까지 받았는데 항공료를 구할 수 없어 불참한 적도 있다. 지난 2월에는 일본 고에너지연구소 방문도 취소했다.
못 돼도 맥가이버는 될 줄 알았는데…
박사 후 연구원 4년째 접어드는 지금, BK 사업단에서 지급하는 내 급여는 연봉 1,600만원이다. 지난해보다 한 200만원 오른 것이다. 해마다 경신하는 계약서에 서명할 때 무척 기뻤다. 아니, 올해도 별 탈 없이 계약서에 서명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큰 기쁨이었다.
석사 학위 받고 대기업에 들어간 내 또래 직장인들의 연봉은 내 연봉의 한 세 배는 된다. 더 늦기 전에 연구하는 것 그만두고 기업에 취직하면 세 배의 돈이 생기는데, 그 유혹이 그리 녹록하지 않다.
그 친구들도 이공계 푸대접을 얘기한다. 충분히 공감이 가는 얘기들이다. 그런데, 내가 지금 월급의 세 배 정도를 받고, 토·일요일에 마음껏 쉴 수 있다면 나는 오히려 대한민국 정부가 얼마나 과학자들을 배려해 주는지 아마 자랑하고 다니지 않을까 싶다. 연구하고 논문 쓰는 사람들에게 휴일이란 그저 달력의 날짜 색깔이 빨간 날일 뿐이다.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는 국내간 경쟁이라는 것은 거의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나는 아직 미혼이어서 좀 나은 편이다. 내 주변에는 박사 학위 받은 지 10년을 넘나드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교수 혹은 반도체 같이 잘 나가는 몇몇 분야에 있는 이들과 달리 우리 분야에서는 10년 정도 계약직 연구원 생활을 하는 것이 이미 ‘평균’으로 되어 있다. 나이 마흔을 넘겨 처자식 줄줄이 매달고 2~3년마다 새로 계약해야 하는 그 생활이 어떠할지는 상상에 맡기겠다.
“교수 되기보다 로또복권에 당첨될 확률이 높아 보여 복권을 구입한다”는 40대 모 박사님의 모습이 몇 년 후 내 자신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면 하루에도 열두 번은 더 늦기 전에 이 바닥을 정리해야지 하면서도, 기초과학 연구에 정진하는 것을 천직으로 여겨 하루하루를 고맙게 살고 있다. 애초에 물리학을 공부해 돈 벌려고 했던 것은 아니니까…. 오히려, 몇 년간 계속되는 나의 가장 큰 고민은 언제 내가 정말 혼(魂)이 담긴 논문 한번 써 보나 하는 것이다.
내 연봉이 한 두 배쯤 오르면 나는 과연 행복할까. 구름처럼 몰려 있는 선배들과 동료들을 제치고 지금 나 혼자 교수가 되면 행복할까. 도대체 ‘이공계 위기’의 실체는 무엇이고, 있다면 어떻게 해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
“경제 발전 기여에 걸맞은 대우”를 말하는 이공계인들이여, 한번 생각해 보라. 어떤 마음씨 좋은 사장님이 갑자기 엔지니어의 경제 발전에 대한 공로를 깨달았다고 해서 연봉 올려 줄까. 나같이 경제 발전에 전혀 신경 쓰고 싶지 않은 이론물리학자나 남극에 가 있는 세종기지 대원들은 경제 발전에 기여한 바가 없으니 ‘이공계’인이 아닌가.
대부분의 이공계생은 공대생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이공계생은 회사에 취직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공대생과 그 중의 다수인 기업체 엔지니어의 ‘처우개선’이 ‘이공계 위기’의 처음과 끝이 될 수는 없다. 그것은 기껏해야 ‘공대생의 위기’에 불과하다.
이공계의 위기는 결코 공대의 위기로 ‘축소’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된다면 공대의 위기조차 제대로 규명하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이공계의 위기는 또한 ‘이공계만의 위기’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이공계를 졸업한 이들은 갈 곳이 없다. 대다수 공대 출신들은 기업체 취직이 거의 유일한 길이고, 극소수만 몇 안 되는 연구소에 취직해 연구를 계속해 나갈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8월 과학기술단체장과 접견하는 자리에서 박승덕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부회장에게 이공계 전문인력의 공직 진출 확대 방안에 관한 건의 사항을 전달받고 있다. |
이공계 위기와 기피 문제를 좀 더 다른 시각에서 볼 수는 없을까. 결론부터 먼저 말하자면 나는 이공계 위기의 본질은 대한민국 학문의 위기의 전면화라고 생각한다. 내가 학문의 위기를 들고 나온 중요한 계기는 현재 많은 사람들이 제시하는 이공계 위기의 현실이나 해결책들이 지극히 ‘경제논리’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공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학문과 경제를 분리해야 한다. 이 말이 학문과 경제가 아무런 상호 작용 없이 각자 따로 놀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학문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학문 그 자체의 내적 논리, 다른 어떤 분야의 논리가 아닌 학문 그 자체의 발전 메커니즘을 최대한 존중해야 한다는 점이다.
왜 학문의 존재 이유를 국가의 경제발전에서만 찾아야 하는가. 한 나라의 학문의 발전과 융성은 다른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고, 다른 그 무엇과도 비교되거나 대체될 수 없는 고귀한 가치를 지닌다. 인류가 지금까지 쌓아온 지적 발전의 맥을 도도히 이어 가는 것이며, 그로 말미암아 전 인류의 보편적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 숭고한 뜻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치들이 한낱 돈 몇 푼의 논리에 빗대어 얘기된다면 학문은 경제의 노예밖에 더 되겠나?
이공계인들의 푸념을 단순화하면 ‘우리가 국가 경제 발전에 크나큰 도움을 줬는데 왜 지금 우리가 이렇게 푸대접을 받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물리학자인 나로서도 이와 관련해 할 말은 많다.
대한민국 대표 상품인 반도체 개발에 고체 물리학이 기여한 바는 가히 절대적이다. 인터넷을 처음 개발한 곳이 유럽 공동 입자가속기 그룹(CERN)이고, 전기를 발견해 모든 국민들에게 ‘사용료’를 내게 한 주인공도 영국의 물리학자 패러데이였다. 그러나 예컨대 전자기 유도의 발견의 가치를 지금까지 인류가 전기 사용료로 지불한 액수로만 매길 수 있을까.
돈벌이가 지상명령인 기업체에서는 이 말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기업체를 벗어난 다른 곳(특히 대학)에서까지 이런 경제논리가 팽배해지는 것은 참으로 위험하다. 당장 돈을 만들어 내지 못하는 이공계인들은 나가 죽으라는 말인가.
경제논리는 몇 몇 잘 나가는 공대 출신 엔지니어들이 정부나 기업에서 좀 더 많은 돈을 얻어 내기 위한 논리일 뿐이다. 전체 이공계 내에서 상대적으로 자신들에게 유리한 기준을 내세워 사회적 가치판단을 내리게 하여 결국 자기가 속한 그룹만 잘 되면 된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이것은 집단이기주의다.
경제논리는 당연하게 기업에서는 대환영이다. 그들은 고급 인력과, 고급 기술과, 고급 지식을 아주 값싸게 얻을 수 있다. 돈 안 되는 이공계 분야를 손 안 대고 코 풀 듯 이공계 자체의 몸값 높이기 경쟁을 통해, 국가 ‘경제발전’ 정책에 의해, 그리고 전 사회적인 돈벌이 지상주의에 의해 자신들의 구미에 맞게 ‘정리해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공계의 위기가 이렇게 전면화되기 몇 년 전인 1995년께 주요 대학에서 학부제가 실시되면서 많은 대학 교수들은 우리나라 기초 학문의 위기를 경고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약 5년쯤 전에는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이 나돌았다. 뒤집어 말하자면, 지금 이공계의 위기는 1990년대에 줄기차게 거론되던 이른바 ‘학문의 위기’의 완결판인 셈이다.
이공계가 정말 사회에서 대접받으려면 지금처럼 경제논리 앞에서 경쟁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사회와 기업에서 ‘모셔 가도록’ 하려면 이공계 스스로의 존재 근거와 자신만의 가치를 살려야 한다. 즉, 기업체들이 오히려 경쟁하도록 구조를 바꿔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선 정부부터 이공계를 ‘그 자체로’ 하나의 가치 있는 학문으로 바라봐야 한다.
정부의 시선이 기업에만 집중돼 있는 이상 이공계 위기에 대한 의미 있는 대책은 기대하기 힘들다. 기껏해야 이공계생 장학금 지급이나 고위 공직자 쿼터제 등의 땜질식 정책뿐일 것이다.
동서고금의 역사를 통해 볼 때 학문이 융성하지 않고 한 나라나 특정 세력이 융성했던 적이 있었던가. 학문이 살아야, 학자들이 대접받아야 나라에 미래가 있다는 그 진부한 말을 나는 이공계 위기에 대한 근본 대책, 가장 확실하면서 가장 현실적인 대책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우리나라의 물리학이 발전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나라의 인문학이 융성해야 한다고 확신한다. 왜 그런가. 인문학이야말로 모든 학문의 근본이기 때문이다. 흔히 말하기를, 우리나라 학생들이 공부는 잘 하는데 창의적 연구는 약하다고 한다. 그 근본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인문학적 풍토의 척박함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이공계의 위기도 문제이지만 인문학의 위기가 훨씬 더 심각하고 중대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요즘 누가 인문대 대학원에 진학해 공부하려고 하는가. 교수도 태부족이고 병역 특혜도 없다.
최근 출간된 과학 관련 만화 ‘이공계가 짱’. |
서울대에 가면 ‘규장각’이라는 곳이 있다. 주로 고문서를 보관하고 있는데, 도대체 이 속에 어떤 문서들이 있는지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들었다. 박사급 인력 몇 명만 투입하면 값진 논문이 쏟아질 판이라는데, 이를 못 할 정도로 고급 인력이 부족하다.
더욱이 1년에 몇억 원이면 아주 훌륭하게 자료들을 보관할 수 있는데도 그 몇 푼 안 되는 설비비가 없어 자료들이 먼지를 뒤집어쓰고 썩어 간다고 하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의 인문학 수준이 이 모양이니 프랑스에서 이를 트집잡아 ‘외규장각 도서’를 못 돌려주겠다고 하지 않던가.
도대체 퇴계와 율곡을 연구하는 학자들과 연구소가 일본에 훨씬 더 많은 현실에서 국민소득 2만달러를 얘기한다는 것은 지나친 욕심이 아닐까. 중국은 이른바 ‘동북공정’(東北工程)을 10년도 넘게 천문학적 액수를 투입해 준비해 왔는데 우리는 발등에 불이 떨어져서야 겨우 고구려를 공부하니 어쩌니 난리법석이다. 조금만 주위를 둘러보면 이 땅의 인문학이 얼마나 피폐해 있는지 일일이 경우를 세기도 힘들다.
기본이 바로 서고 원칙이 통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여러 가지 해야 할 일들이 많겠지만, 그 사회의 기초 학문, 특히 인문학을 제대로 세워 내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흔히 이야기하는 ‘국민들의 의식 변화’는 결국 한 사회의 인문학의 성숙도와 결부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나는 여태껏 우리 정부가 국가적 사업으로 학문을 진흥하려고 시도한 정책을 잘 알지 못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국가의 기틀을 잡고 태평성대를 이룬 시대에는 빠짐없이 학문 장려책이 중요 국책사업에 들어 있었다.
이 땅에 공화국 정부가 들어선 지 무려 반 세기가 훨씬 지났건만, 아직 제대로 된 국책 사업으로서의 학문 진흥책은 없었다. 이것은 비극이다. 인문학이 무너진다는 얘기가 나온 지 벌써 10여 년이 지났다.
당시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학자들의 경고가 이제는 전 사회를 들썩이게 하는 이공계의 위기로 다가왔다. 한두 해 동안에 이공계의 위기가 찾아온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전반적인 학문의 위기가 말기암 시기까지 왔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만큼 그 처방도 담대하고 근본적이어야 한다.
문제는 무엇일까. 정말 우리나라에 돈이 없어서 이 땅의 기초 학문이 아사 직전인 것일까. 나는 무엇보다 국가 중요 정책을 결정하는 관료들의 마인드를 문제 삼고 싶다. 아무리 돈이 없다고 하더라도, 우리나라는 세계 13대 경제대국이다. 돈이 없다는 것은 핑계에 불과하다.
예컨대, 제일은행이 유동성 위기를 겪는다고 해 하루아침에 쏟아부은 공적자금이 무려 30조원이 넘는다. IMF 이후 금융권에 이런 식으로 들어간 돈이 내가 들은 것만 200조원 가까이 되고, 그 중 60% 이상은 회수 불능이라고 한다.
경제논리로 따져 보자면 이렇게 공적자금을 쏟아붓는 것이 옳으냐 그르냐 하는 논란도 많을 것이다. 그 옳고 그름을 떠나 적어도 우리나라 재정경제부 관료들은 은행 하나가 쓰러지면 국가경제가 결단날 것이라고 판단하는 즉시 수십조 원을 동원한다. 그 돈의 원금조차 제대로 회수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 많은 돈을 끌어 댄다. 그만큼 은행 하나의 흥망성쇠가 국가 존망과 직결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돈이 아니라 마인드
그런데 내가 문제 삼고 싶은 것은 대학이 망해 가고 중·고등학교 공교육이 무너지고 있는데 이런 위급한 상황에서 재경부가 언제 수십조 원을, 아니 수조 원이라도 긴급 투입한 적이 있었느냐는 것이다. 학문이 망해 간다고 아우성친 것이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국가 인재를 길러내는 시스템에 큰 문제가 생겼는데, 그게 어떻게 부실은행 하나의 존망보다 못할 수 있다는 말인지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결국 우리나라 곳간 열쇠를 쥐고 있는 재경부 나으리들은 적어도 학문의 중요성, 대학이 쓰러져 가는 상황의 심각성, 그것이 국가의 존망에 곧바로 직결된다는 역사적 교훈을 전혀 체감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학문에 관한 마인드가 없다고 볼 수밖에 없다.
어디 이뿐이랴? 정부에서는 선뜻 큰돈을 들여, 아니 천문학적 돈을 쏟아부어 학자들과 연구소와 대학들을 위해 장기 정책을 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학문이 융성해지려면 온갖 제도와 시설과 사회 시스템이 잘 맞물려야 하기 때문에 이 또한 사회의 중요한 인프라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인재 양성 인프라가 거의 전무할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내실 있게 구축될 전망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다른 사회간접자본의 경우와는 비교도 안 된다.
단군 이래 최대 역사였다는 인천국제공항을 보자. 여기에 들어간 돈이 약 5조원이다. 애초에 인천 앞바다에 바다를 메워 거대한 허브 공항을 건설한다는 계획 자체에 반대도 많았다. 건설하는 동안에는 내내 부실공사 시비와 경제성이 의심받았다. 인천공항은 아직 적자다. 그런데도 정부에서는 중요한 국책 사업이라며 그대로 밀고나갔다.
성공 가능성이 100%여서가 아니었다. 신공항의 존재가 향후 대한민국의 가장 중요한 사회간접자본 중 하나라는 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반대와, 걱정과, 우려와, 적자를 무릅쓰고 ‘강행’한 것이다. 왜 이런 과감한 결단을 학문 인프라 구축에는 적용하지 못할까.
어떤 사람들은 재원 마련의 어려움을 호소한다. 이 또한 뜻을 먼저 세우고 방법을 찾으면 생각만큼 어렵지 않다. 조세와 국방은 국가 정책의 근본을 이룬다. 민주노동당에서는 부유세 신설도 제기하고 있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부자들에게 특별세를 걷어 오로지 학문 진흥에만 지원하는 것도 매우 의미 있을 것이다. 정치인들은 법인세 1%를 주장한다. 연간 1,700억원 정도 된다. 이 정도만 해도 현재 진행중인 BK사업과 맞먹는다. 마인드만 바꾸면 얼마든지 돈을 만들 수 있다.
또 국방비를 제대로만 써도 돈을 남길 수 있다. 우리나라 한 해 국방비는 대략 17조6,000억원 정도 된다. 그 중 60만명의 대군을 먹이고 재우고 입히는 데 적어도 60%가 쓰인다. 이런 곳에 들어가는 군납품은 그리 중요한 군사기밀이 될 것도 없다.
극단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이 모두를 인터넷 경매에 부치면 적어도 반값에 조달할 수 있다. 예전에 정부 모 부처에서 부처 조달품을 인터넷을 통해 경매로 구입한 결과 예전에 비해 70%의 비용을 절감한 예가 있다.
어디 돈 나올 구멍이 여기뿐이겠는가. 세계 10대 경제대국은 헛말이 아니다. 경제개발을 위해서는 ‘5개년계획’이라는 것도 만들어 줄기차게 시행해 왔다. ‘차세대 생존전략 10대 과제’를 선정해 올해부터 당장 연간 3조원씩 들어간다. 잘하는 일이다. 이제는 학문 진흥을 위해서도 제발 장기적인 ‘국책사업’을 벌여야 한다(BK21 사업은, 우선 예산 규모 면에서 ‘국가적 사업’에 끼지 못한다).
돈이 없다고 하기 전에 ‘마음’은 있기나 한 것인지, 학문이 망해 가는 것이 은행 문 닫는 것만큼, 휴전선 장병들 굶기는 것만큼 절박한 문제라고 생각하는지, 그것부터 먼저 자문해 보라. 인재 양성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학문에 돈을 쏟아붓는 것은 냉정하게 얘기하면 그냥 ‘돈을 버리는’ 일이다. 우리 정부가 대지진 참사로 고통받는 이란 정부에 구호 물자를 보내고 구호금을 1억달러쯤 보냈다고 하자. 이게 투자인가. 지금 형편 좀 좋을 때 못살고 힘든 나라 도와줘야 우리가 힘들 때 도움받을 수 있다는 보장형 보험이라도 되나? 결코 그렇지 않다. 오히려 이런 구호금은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당연히 지불해야 하는 ‘비용’에 가깝다. 한 국가가 국가로서의 최소한의 기능과 책무를 유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지출해야만 하는 돈이다.
학자들에게 쓰는 돈도 이와 비슷하다. 내가 연구하는 입자이론물리학, 이것을 아무리 열심히 해 봐야 당장 큰돈을 벌지는 못한다. 기초학문 하는 사람들한테 돈 몇 푼 쥐어 주면서 “이 연구가 산업적 효용성이 있느냐”는 질문은 제발 하지 말기 바란다.
오랜 세월이 지나면 내 연구 성과가 경제 발전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말하자면 ‘베이징(北京) 나비의 날갯짓이 뉴욕 앞바다에서 해일을 일으키는’ 수준에 비견할 만할 것이다. 한 마디로 기초학문을 살리려면 학자들한테 돈을 펑펑 쏟아서 버릴 각오를 해야 한다.
“돈을 버려야(?) 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돈을 어디에, 어떻게 ‘버려야’ 할까. 정부에서 이공계의 위기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떤 형태로든 우선 고급 인력들의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 데 주력해야 한다.
이미 각 대학에서는 대학원 중심 대학을 기치로 내걸고 석·박사급 인력을 대량생산하고 있지만, 사회 전체적으로는 이런 인력을 제대로 흡수할 스펀지가 없다. 이는 정부의 시선이 기업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오갈 데 없는 석·박사 인력은 그 자체가 ‘값싼 고급 노동력’일 수밖에 없다.
정부나 대학이 이들의 향후 진로에 대해서는 전혀 대책을 세우지 않고 있다. 무작정 대학원 정원만 늘리고 BK사업으로 대학원생들 월급 대주는 것은 종국에는 기업들만 살찌우게 되어 있다. 이공계가 사회적으로 홀대받을 수밖에 없는 데는 이런 구조적 결함이 큰 역할을 한다.
도처에 널려 있는 것이 ‘공돌이’인데 어느 기업주가 비싼 돈 주고 엔지니어를 데려올까. 당장 대학에 가서 이공계 대학원생들 붙잡고 물어 보라. “연구 활동에서 가장 큰 장애가 뭐냐”고. 십중팔구는 ‘불안한 미래’라고 답할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이공계 대학원생들이 석사나 박사를 마치고 나면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중점적으로 해야 한다. 기업이나 산업체 중심이 아니라, 바로 이 사람들의 시각에서 문제를 들여다봐야 한다.
학위를 받고 나서 연구를 계속하든 취직해 돈을 벌든, 어쨌든 갈 곳이 많으면 이들의 몸값은 올라간다. 정부는 이공계 출신들이 학위를 받고 나서 갈 수 있는 곳을 많이 만들어 주면 된다. 이런 고급 인력들이 하고 싶은 일들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줘야 학문이 발전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대체로 기능 있는 사람들의 손을 거치는 것에 대한 지불이 후하지 않다. 이공계 기술자, 엔지니어 등뿐만 아니라 컨설팅 회사의 자문을 받는 것에 대한 비용이 그다지 크지 않은 것도 좋은 예다. 이런 풍토는 능력 있는 사람이 대접받는 사회가 되는 데 큰 걸림돌이다(물론, 투명한 조세제도가 뒷받침되어야 함은 당연하다).
독일에서는 마이스터의 손끝만 거쳐도 비용이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대체로 선진국이라는 나라들에서는 사람의 손길과 능력을 거치는 것에 매우 비싼 값을 매겨준다. 그래야 그런 전문가들이 많이 양산된다. 우리나라는 정반대다. 정부가 이들을 비싸게 취급해 주면 기업체가 이들을 홀대할 수 없다.
이제 구체적인 제안을 해 보자. 정부는 무엇보다 연구소를 많이 짓고 대학에서 교수 자리를 많이 늘리는 것이 시급하다. 연구소를 지어 달라고 하면 또 무슨 ‘산업적 연계’ 이런 것부터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기업, 산업, 돈벌이… 이런 것과 전혀 상관 없는, 정말 연구원들이 아무 생각 없이 연구에만 전념할 수 있는 ‘순수 연구소’를 많이 지어야 한다. 정부가 이런 방향에 집중하면 특수한 산업적 목적의 연구소는 오히려 기업에서 앞다퉈 지어줄 것이다.
일본의 도쿄(東京)대나 도호쿠(東北)대 같은 곳에는 학과보다 훨씬 더 큰 규모의 부속 연구소가 딸린 경우가 많다. 예컨대 물성과학연구소 같은 곳에는 박사급 인력이 100명 이상 모여 있다고 한다.
이런 곳에서 박사 학위 받은 사람들이 하는 일이란 단순하기 이를 데 없다. 예를 들자면 금속 A와 B를 비율을 계속 바꿔 가며 섞어 그 합금의 강도·광택·전도도 등 기본적인 성질 변화를 계속 조사해 나가는 일들이다. 이런 일에 박사급 인력이 필요할까 혹은 그런 단순한 일을 하는데 무슨 연구소까지 지어 난리를 떨까 싶지만, 그렇게 해서 쌓인 데이터는 그 자체가 중요한 학문적 성과다.
어디 그뿐인가. 일단 그렇게 학문적 성과가 쌓이면 어떻게든 그것으로 돈을 만들거나 군사적으로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생겨나게 마련이다. 일본이 미국도 부러워하는 전투기 복합 일체 성형술을 보유한 것이나, 미국 우주왕복선에 일본에서 개발한 신소재들이 쓰이는 것이 결코 우연은 아니다.
연구 기관의 확충과 함께 대학 교수들의 양적 팽창 또한 시급하다. 국민 1인당 교수 비율을 따져 보면 아마 미국이나 일본과 현격한 차이를 보일 것이다. 물리학과의 경우 서울대·연세대 물리학과 교수진이 30명 안팎이다. 그런데 제대로 물리학을 하려면 적어도 2배 이상의 교수진이 확보되어야 한다는 것이 학계의 판단이다.
모든 대학의 교수진이 2배 이상으로 늘어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예컨대 한국과학기술원(KAIST) 같은 곳을 거점으로 지정해 물리학과 교수진을 한 100명 정도까지 (단계적으로) 늘린다면, 이런 대학이 전국에 한두 곳만 있어도 한국 물리학의 미래는 매우 밝을 것이다.
첫댓글 글이 너무 길어서 자세히 비판적으로 뜯어보진 못했지만, 많은부분 좋은 얘기더군요~ 특히 인문학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한것은, 100% 동감주장합니다~! 또한 학문의 위기, 대학의 위기로 볼수 있는데, 이는 교육의 위기에서 온것은 아닌지... 명문대가 있는 이상... 어렵습니다. 대학평준화가 되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
이번 우리 과학과 철학팀의 주제와도 상당히 연관된 문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직 꼬리말 못달았는데... ^^;; 생각정리되는대로 꼬리말도 달고~ 이글도 다시한번 이번 발제와도 연관지어 읽어보렵니다~
전체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이러한 말이 나오게 된이유는 끝없이 늘어나는 취업난 입니다..하지만 너무 한국사람들은 최고를 추구 합니다. 영국이나 독일은 CEO가 될려면 밑바닥부터 시작해서 성공한 사람들이 많습니다.이처럼 대기업을 선호하는 우리 취업생들의 눈목도 나추어야 더 빠른 이공계 발전이 이루어질거라고..
생각합니다..그리고 참신한 아이디어가 이공계의 핵심 포인트라고 생각합니다..우리나라는 외국에 기종을 무작정 복사하는 경향이 너무 흔한 현실입니다..제가 아는 선배님께서는 삼성 연구소에서.반년동안 외국상품을 분석하는 일이 전부라고 합니다..그리고 약간의 옵셥만 만들어서 팔고요..우리만의 기술이 필요한 ....
시점이라고도 생각합니다..너무 딱딱한 글 같네요..교수님....핼프미...ㅋㅋㅋㅋ
저도 한명의 이공계인으로써 정말 공감 많이 합니다.. 글구 이공계가 살아야 우리나라는 부~~자가 될수 있는데 힘들다는 이유에서 기피하는 현실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제 주변에도 공무원 시험 준비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정말 안타깝습니다. 외국 자본을 유치해야만 우리나라는 살아 남을 수 있는데.. 안타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