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의 빛깔이 다양하듯이...
십자가를 안테나로!
십여 년 전, 로마에서 유학을 할 때의 일입니다. 버스를 타고 가다 어느 아파트 창가에 내걸린 무지개색깔의 깃발이 너무나 예쁘고 또 상징성이 있어 보여 찜을 해두었는데 어느 날 그것을 상점에서 우연히 발견하고 기뻐하며 막 사려고 하는데 옆에 있던 수사님이 기겁을 하며 저를 말리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동성애자들이나 내거는 깃발’이라고 하면서...^^*
(푸른 하늘에 내걸린 무지개)
요즘 동성애가 우리 사회와 문화를 읽어내는 중요한 키워드 중에 하나가 되고 있다고 합니다. 동성애가 미풍양속과 신의 섭리를 깨뜨린다는 우려도 있지만 보수적인 유럽에서도 차츰 동성애 부부들의 결혼을 합법적으로 인정해주고 있는 추세이고 보면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도 좀더 부드러워져야 하지 않을까요? 참고로 박은주님의 글과 최근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을 소개합니다. 가브리엘통신
<그 이중적 시선>
◆게이, 각광받는 문화코드
동성애는 이제 광고·드라마·영화를 가리지 않고 ‘돈이 되는’ 소재다. 제목부터 동성애적 혐의가 드러나는 ‘왕의 남자’ 흥행 신기록은 동성애라면 고개부터 돌리고 보는 한국 관객들이 이제 새로운 인식의 단계에 접어들었음을 증명한다. ‘번지점프를 하다’(2001)가 ‘동성애 영화’라는 혐의를 쓸까봐 전전긍긍하던 시절과는 판이하다. 유행의 성감대인 CF가 동성애적 분위기를 통해 대중의 관심을 모은 것은 이미 오래됐다. ‘내일로 흐르는 강’(1996)에서 기묘한 입맞춤과 강물의 흐름으로 은유적으로 표현됐던 성애 묘사가 ‘로드 무비’(2002)에서는 직접적으로 관계를 묘사할 만큼 영화는 변했다.
한국에서만 동성애가 ‘코드’로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올해 아카데미 영화상에서 게이나 트랜스젠더를 다룬 ‘브로크백 마운틴’, ‘카포티’, ‘트랜스아메리카’는 도합 15개 부문의 후보에 올라 시상식장을 휩쓰는 기염을 토했다. 저예산 영화의 단골 소재를 벗어나 아카데미에서 약진한 데 대해 미국 영화인들은 “올해는 게이 영화의 개척기”라고 평가한다.
◆가상적 환호 vs. 현실적 혐오
그렇다면, 적어도 청담동과 문화계에서 동성애는 ‘메이저’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아니다. 가장 유력한 작품상 후보였던 ‘브로크백 마운틴’이 ‘크래시’에 상을 빼앗긴 데 대해, 미국 영화계에서는 ‘브로크백 반동(Brokeback Backlash)’이라고 표현한다. 평균적 미국시민을 대표한다는 6000여명의 심사위원단은 왜 ‘브로크백 마운틴’ 대신 ‘크래시’의 손을 들어주었을까.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영화는 성공할 수 없다’, ‘나이 들고 도시에 사는 심사위원들이 전원에서 펼쳐지는 얘기에 동의할 수 없었을 것’이란 설명보다는 ‘투표소에 들어간 유권자의 심정이 반영됐다’는 게 가장 설득력있다. 즉, ‘정치적으로 올바르게(Politically Correct) 보이고 싶어’ 게이 영화를 너그럽게 말하던 이들이 아무도 감시하지 않는 순간만은 본심을 표출했다는 것이다.
한국 문화계에서도 동성애 표현의 한계는 뚜렷하다. ‘왕의 남자’에서의 동성애는 비극적 결말을 지향하며 이성애의 한계를 뛰어넘는 ‘이상적 멜로’의 대치물이다. 연산군, 공길, 장생의 관계는 ‘점액질적 관계’를 배제한 플라토닉, 혹은 무성생식적 관계. 상업적 문화생산물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던 이 방식은 결국 효력을 발휘, ‘왕의 남자’는 한국 최고의 흥행 영화가 됐다. 예쁜 남자, ‘야오이’ 유행이 ‘동성애에 대한 관대한 시선’으로 오해 되기도 한다.
여성 동성애자는 여전히 ‘포르노그래피’의 소재일 뿐, 문화 전면에 배치된 적이 거의 없다. 문화상품의 주소비층인 젊은여성들이 레즈비언보다 게이에 대해 ‘환상’을 갖고 있는 것이 한가지 이유다. ‘왕의 남자’는 장사가 되지만, ‘여왕의 여자’는 그렇지 못하다.
게이에 관한 현실의 인식도 마찬가지다. 그들을 타자화하는 시선은 여전하고, 이들이 일상에서 커밍아웃 하기는 힘들다. 동성애자 B씨의 말.
“게이친구 사귀기? 역겹다. 게이가 세련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게이가 병을 옮긴다’는 말처럼 편견에 가득찬 말이다. 게이는 게이 커뮤니티 안에서만 자유로울 뿐이다. 그건 반경 3㎞를 넘지 못할 것이다.”
세상 밖으로 나온 동성애 10년의 문화는, 게이라는 코드로 포장된 유행을 소비하는 단계일 뿐이다. 가상적 환호와 현실적 혐오가 여전히 뒤섞여 있을 뿐이다.
(박은주 / 조선일보)
<브로크백 마운틴>
눈덮인 산봉우리 아래 한없이 펼쳐진 푸른 초원, 그 위로 수천 마리의 양떼가 장관을 이루고 있는 8월의 록키산맥 브로크백 마운틴. 이곳의 양떼 방목장에서 여름 한 철 함께 일하게 된 갓 스물의 두 청년 에니스(히스 레저 분)와 잭(제이크 질렌할 분)은 오랜 친구처럼 서로에게 마음을 터놓는 사이가 된다. 밤낮으로 함께 일하며 대자연의 품에서 깊어져간 그들의 우정은 친구 사이의 친밀함 이상으로 발전해간다. 그들 앞에 놓인 낯선 감정의 실체가 무엇인지도 알지 못하고 혼란에 휩싸인 채, 한 여름의 짧은 방목철이 끝나자 두 사람은 다시 만날 기약도 없이 각자의 삶으로 돌아간다.
에니스는 약혼녀 알마(미셸 윌리엄스 분)와 결혼하여 두 딸의 아버지가 된다. 로데오 경기에 참가했다가 미모의 부자집 딸 로린(앤 해서웨이 분)을 만나 결혼한 잭은 텍사스에 정착하여 장인의 사업을 거들며 살아간다. 그렇게 4년이 흐른 후, 에니스는 잭에게서 엽서 한 장을 받는다. 그 엽서는 에니스에게 그간 잊고 살았던 브로크백에서의 그 낯선 감정을 다시 불러일으킨다. 4년 만에 다시 만난 두 사람은 단번에 브로크백에서 서로에게 가졌던 그 감정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고 억제할 수 없는 열정에 휩싸인다. 그러나 그들의 관계가 알려지면 목숨까지도 위태로워질 수 있는 보수적인 사회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고작 1년에 한두 번 브로크백에서 캠핑을 하는 정도. 그렇게 20년간을 짧은 만남과 긴 그리움을 반복하며 그들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고통스러워한다.
언제 끝날지 모르지만 가능한 한 오랫동안 조심스럽게 관계를 유지하며 가장의 역할에 충실하고 싶어하는 에니스. 아무리 무모하다 해도 두 사람만의 새로운 삶을 시작해 보고 싶어하는 잭. 입장은 달랐지만 서로를 향한 애틋한 마음만은 한결같았던 두 사람의 관계는 잭이 의문의 죽음을 당함으로써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된다. 브로크백 마운틴에 묻히고 싶어했다는 잭의 소원을 풀어주기 위해 그의 고향집을 찾아간 에니스는 잭의 방에서 그가 보물처럼 평생 소중하게 간직해온 자신의 옷을 발견하고 그의 사랑을 깨닫고 ‘맹세한다’라고 되뇌인다...
<성서묵상>
그러나 위에서 내려오는 지혜는 첫째 순결하고 다음은 평화롭고 점잖고 고분고분하고 자비와 착한 행실로 가득 차 있으며 편견과 위선이 없습니다.(야고 3, 17)
(마르코니 문화영성 연구소 : http://hompy.dreamwiz.com/hl1y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