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일요일, 하루종일 방바닥을 뒹굴다가
온통 매스컴의 주목을 받다가 이젠 잠잠해진 영화 '워낭소리'를 봤다.
진작 영화를 보려고 했지만 영화관 가는 일이 이젠 거창한 '행차'가 되고 말아
DVD로 빌려보려고 했는데 마침 유료다운로드 하는 곳이 있길래 3500원을 주고 다운로드를 받았다.
영화는 다큐멘터리를 표방했음에도 이앙기로 심어논 벼를 손으로 심는 것처럼 묘사 한다거나 트랙터로 갈아논 무논을
단지 소로 고르는 장면을 마치 써래질이라도 하는 것처럼 보여주는 등 발칙한 연출로 관객을 기만하기도 했지만 전체적인
감동에는 큰 지장을 주지는 않았던 것 같다.
영화의 영어 제목이 'Old Partner'이던데, 참으로 적합한 제목을 붙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도 영화 속의 늙은 소와 같은 뗄래야 뗄 수가 없는 파트너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나의 애마인 화물자동차일 것이다.
자동차야 이제 겨우 6년 밖에 안 되어 이제 겨우 길이 난 상태로 쌩쌩 잘 달리고 있으니 나와 당장 헤어질 일은 없지만
길눈 역할을 하던 내비게이션이 언제부터인가 상태가 좋지않아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 내비게이션은 내가 화물차 운전을 한 지 3년 째가 되면서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되는데 그때 구입한 것이다.
매일 다니는 코스만 다니다가 서울 쪽으로 올라가는 화물은 도착지가 각각 달라지니 길눈이 어두운 나로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차도 8톤에서 11.5톤으로 바꿔야했기 때문에 차를 구입을 하고 나니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데다가
일을 해놓고 월말에 청구를 하면 그 다음달 말일 날 결제가 되는 구조였기 때문에 운전자금도 꽤 보유하고 있어야만 했다.
그래서 메이커 있는 내비게이션은 구입을 하지 못하고
이름없는 회사의 제품을 '싼맛'에 사게 되는데 그게 위 사진의 내비게이션이다.
단말기 회사는 저 물건을 구입한 지 1년도 안 되어 망해버려 A/S 불가, 내비게이션 상점 주인들은 고장이 나는 그 길로
바로 폐기처분해야만 한다고 은근히 새 제품 구입할 것을 종용했지만 소프트웨어인 지도 회사는 아직 남아있어 업그레이드를
받아가면서 그럭저럭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화면 터치를 하면 엉뚱한 메뉴가 떠올랐고
다시 몇번 시도를 하다보면 제 메뉴가 떠오르는 등 상태가 나빠지기 시작했다.
오래 익숙해진 것에 대한 편안함도 있고 어렵던 시절을 함께했던 조강지처같은 동지애도 있어
불편한대로 사용을 해왔으나 얼마 전부터는 완전 치매 증상을 보이기 시작을 했다.
P턴을 해야할 도로를 U턴 하라고 안내를 하는가하면 심지어 상행 하행도 구분을 못하는
말기 증상에 이르러 새 제품을 구입하게 되는데 바로 아래의 제품이다.
그런데 새 제품 장착을 하자 문제가 생겨버렸다. 새 제품 DMB 안테나가 경보기 안테나
전파를 방해를 했는지 갑자기 자동차 경보음이 앵앵거리면서 경보기가 오작동이 일어났다.
경보기가 오작동 되면 시동도 걸리지 않는다.
그날따라 행선지는 구미에서도 네 시간이 걸리는 인천이었다.
카센터에 전화를 걸고 경보기 회사 직원과 통화를 하는 등 난리 끝에
재 세팅을 하고 겨우 시동을 걸었지만 이미 1시간 이상 소요된 뒤였다.
빠듯한 시간에 언제 또 문제를 일으킬지 모르는 새 제품 대신에 기존 제품을 다시 장착하고 출발을 하였다.
문제가 있긴해도 멀쩡할 때는 멀쩡했고 상태가 좋지 않을 땐 재검색을 반복하면 정상으로 돌아오기도 했으니까.
자신을 믿어준 덕분일까. 고물 내비게이션은 마지막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하였다.
단 한번의 에러도 내지않고 초행의 목적지까지 친절하게 안내를 해주었다.
그럼에도 결국 나는 목적지에 도착해서는 헌 제품을 뜯어내고 새 제품을 장착하였다.
전파 방해가 의심되는 DMB안테나는 끼우지 않은 채로. DMB 안테나 달지 않아도 내비게이션은 정상 작동된다.
자석이 달려 차 지붕이나 차량외부에 얹어 놓는 안테나가 TV를 볼 수있는 DMB 안테나인데
승용차에도 그걸 아예 제거를 해버리는게 안전운행에 도움이 될 것이다.
더러 TV를 보면서 운전을 하는 이가 있는데 이는 미친 짓이다.
용인 양지터널이나 마성터널은 상습정체구역인데 터널 속에서 하루에도 몇 건씩 퍼벅 추돌사고를 일으킨다.
지금은 단속 때문에 잘 보이지 않지만 1톤 렉카차들이 떠내려오는 죽은 시체 기다리는 악어처럼
터널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는 운전에만 집중을 하지않는 산만 운전가가 그 만큼 많다는 이야기다.
나와는 미운정 고운정이 들대로 다 든 고물 내비게이션 이제는 이별을 해야할 시간이 다가왔다.
어리버리한 기사에게 팔려와 높이 4M에 길이가 12M인 대형차를 안내하고 다니느라 참으로 고생이 많았다.
영화 워낭소리에서도 늙은 소를 팔러갔다가 팔지 못하고 수명이 다 할 때까지 같이 살게 되는데
내비게이션은 기계라 그렇게 하지는 못하겠고 집에 가져와서 잘 보관해야겠다.
잘 보이는 곳에 얹어두고 볼 때마다 어렵던 시절을 기억한다면 신영복 선생의 글씨
'처음처럼' 액자 걸어둔 것보다도 더 큰 효과를 볼 수 있으리라. 소주 생각도 나지 않을테고.^^ 초심을 잃지 말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