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우리가 어찌해야 할까?
본문 : 이사야 31장 1-9절
『오늘 말씀은 지난 주에 살펴본 30장의 내용과 거의 비슷합니다. 1절에 보면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하며, 남 유다 백성들을 책망하는 것으로 말씀을 시작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분명 앞 장에서 패역한 백성에게는 심판이 있을 것이고, 반면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에겐 은혜와 복을 주신다고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저들은 듣지 아니하고 애굽으로 내려가 도움을 요청하였던 것입니다. 그런 저들에게 또 한 번 말씀을 하십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아니할 경우 정말 심판하신다는 사실’과 ‘속히 돌이켜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을 것을 촉구하는 장면’으로 나눠지고 있다는 것이 오늘 본문 내용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1.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함께 1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은 말을 의지하며, 병거의 많음과 마병의 심히 강함을 의지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앙모하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구하지 아니하나니” 여기서 ‘그들’이 나오는데, 누구일까요? ‘남 유다 백성들’입니다. 자 이들은 하나님을 믿는 자들입니다, 또한 하나님께로부터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라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사야 30장 19절에 “시온에 거주하며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백성아. 너는 다시 통곡하지 아니할 것이라. 그가 네 부르짖는 소리로 말미암아 네게 은혜를 베푸시되, 그가 들으실 때에 네게 응답하시리라.”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시온과 예루살렘이 있는 자에게 통곡하는 일이 없게끔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고, 저들을 앗수르의 손에서 구원하여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저들이 하나님을 믿었어야지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앙모하고, 여호와께 구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저들이 어떻게 했다고 했어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앙모하지 아니하였고, 여호와를 구하지 아니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했느냐?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를 “말을 의지하며, 병거의 많음과 마병의 심히 강함을 의하고” 말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서 ‘저들은 하나님의 능력보다 애굽의 마병과 병거 즉, 군사력이 더 능력이 있다고 믿었다’는 말입니다. 그런 저들에게 2절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도 지혜로우신즉 재앙을 내리실 것이라.” 이 말은 ‘저들이 하나님보다 애굽을 의지하는 것이 지혜로운 것처럼 생각하였으나, 하나님께서 더 지혜로우시기 때문에 저들은 재앙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3절에 보면, “애굽은 사람이요, 신이 아니라” 말씀하면서 저들이 의지하려고 하던 것들이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이 말씀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오늘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성도들 중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기 보다는 세상을 의지하는 사람이 많음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분명 하나님이 누구인지 잘 압니다. 또 기도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문제는 뭐에요? 오늘 본문에 나오는 남 유다 백성들과 똑같다는 것입니다. 거룩하신 이를 앙모하지도 않고, 여호와께 기도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눈에 보이는 환경을 보고, 또 사람들의 소리를 들으며,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가 좋으면 좋겠지만 어떻게 되느냐? 저들이 의지하였던 것이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넘어지고, 엎드러지고, 함께 멸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러지 말아야 할 줄 믿습니다. 작년까지는 어떻게 살았는지는 몰라도, 새해에는 하나님만 의지하며 사는 저와 여러분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어떤 어려움이 올지라도 하나님만 의지하게 되면, 피할 길을 주시고, 또한 보호해 주실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하여 새해에는 하나님만 의지하여 성공하는 해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아는 것으로 끝나는지 말고, 믿는 자가 되어야 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어느 권사님이 목사님과 함께 중병을 앓고 있는 성도를 병원 심방을 갔습니다. 권사님은 중환자실에 있는 환자와 가족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였습니다. “주여, 이 분을 살려주옵소서. 주님이라면 능히 하실 수 있음을 믿씁니다.” ‘믿습니다’에 쌍받침까지 쓰면서 열심히 기도를 하고 병원을 나왔습니다. 그런데 병원을 나오자마자, 목사님에게 말합니다. “목사님. 그 분, 아무래도 오래 못 살겠지요?” 조금 전까지 “살려주옵소서. 주여, 주님이라면 능히 하실 수 있음을 믿씁니다.”라고 기도했던 분이 몇 분도 안 되어 “얼마 못 살겠죠?”로 바꿘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기도하는 것은 기도하는 것이고, 현 상황은 현 상황이라는 것’ 아닙니까? 많은 사람들이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다 압니다. 그런데 실제 기도를 하면,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응답하신다는 것을 믿는 사람이 적다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남 유다 백성들이 그랬습니다. 4절 하반절과 5절에 보면 “나 만군의 여호와께서 강림하여 시온산과 그 언덕에서 싸울 것이라. 새가 날개 치며, 그 새끼를 보호함 같이 나 만군의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보호할 것이라. 그것을 호위하며, 건지며, 뛰어넘어 구원하리라.” 말씀하시는 것을 봅니다. 여기서 ‘깅림하여 시온산과 그 언덕에서 싸운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친히 예루살렘을 위해서 싸워 주신다’는 말입니다. 또 ‘예루살렘을 보호하며, 호위하며 건지며 구원하다’는 말도 같은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저들과 예루살렘을 보호하시고 구원하여 주신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저들이 하나님을 믿어어야 합니다. 그런데 저들이 어떻게 했을까요? 1절에 나왔듯이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놀라운 것은 6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는 심히 거역하던 자에게로 돌아오라.” 여기서 ‘심히 거역하던 자’가 누구일까요? ‘하나님’이십니다. ‘거역하다’는 말은 ‘반역하다, 불순종하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 앞에 ‘심히’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이 말은 ‘당시 남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을 싫어할 정도가 아니라, 심히 거역할 정도로 불순종하였다’는 것입니다. 정리를 하면 무슨 말입니까? 신앙생활은 아는 지식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해야 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더 쉽게 말해서, ‘하나님께서 일하신다고 하셨으면 믿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시온산과 예루살렘에서 싸워주신다고 하셨으면 믿어야 합니다. 우리를 보호하시고, 호위하시고, 건지며, 뛰어넘어 구원하신다고 하셨으면, 그대로 될 것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럼, 그 믿음대로 이뤄지는 은혜가 주어질 줄 믿습니다. 하여 머리로 믿은 신앙, 입으로만 하는 신앙이 아니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신앙인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도 여러분을 위해 일하시면 능치 못하실 일이 없을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3. ‘하나님이 주신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함께 6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는 심히 거역하던 자에게로 돌아오라.” 여기서 ‘돌아오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슈브’라고 합니다. 많이 들어보았지요? ‘돌이키다. 회복하다, 원래대로 돌아가다’는 뜻을 가졌습니다. 그렇다면, 6절의 말씀이 어떤 말이 되나요? “이스라엘 자손들아. 지금껏 너희가 하나님을 심히 배반하고 거역했던 것에 대해 회개하고 돌이키라”는 것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남 유다 백성에게 주시는 마지막 기회다’는 말입니다. 구체적으로 말씀하시는데, 7절에선 “저들이 만들어 섬겼던 우상들을 다 버릴 것”을 말합니다. 또 8절과 9절에 “하나님께서 친히 앗수르 군사들을 치시기 전에 돌이키라”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여호와의 불은 시온에 잇고, 여호와의 풀무는 예루살렘에 있느니라.” 말씀하시면서 ‘하나님께서 친히 임재하여 시온과 예루살렘 성전을 지킬 터이니, 너희는 속히 돌이키라’는 것입니다. 자. 여러분! 이 말씀은 아직 일어나기 전에 하신 예언의 말씀입니다. ‘예언’이라는 말은 ‘앞으로 일어나게 될 일을 미리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더구나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그럼 100% 예언대로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자.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예언의 말씀은 ‘시온산과 예루살렘 성전이 안전하게 될 것이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로부터 이십여 년이 지난 후에 바벨론에 의해 돌 위에 돌 하나 남기지 않을 정도로 철저하게 파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70년 후에 다시 세워졌던 스룹바벨 성전 역시 외적에 의해 무너졌고, 후에 헤롯 성전이 세워졌지만, 또 로마의 의해 파괴되는 것을 봅니다. 분명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지켜주신다고 하셨는데, 왜 무너졌을까요? 틀린 예언이었을까요? 아닙니다. 예언도 받는 사람이 그대로 살지 않을 때는 이뤄지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오늘 세 번째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하나님이 주신 기회를 놓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저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를 놓치지 않았더라면, 저들은 망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예루살렘도 무너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새해가 되었습니다.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이때, 우리가 주신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말씀대로 산다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은혜와 축복을 받게 될 줄 믿습니다. 자. 여러분! 사람은 믿을 수가 없어요. 세상 역시 우리가 원하는 대로 되질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의 편이신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새해에 우리들에게 ‘회복을 넘어 창대하는 해’가 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분명 우리의 가정과 교회가 창대하는 해가 되는 기회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작년에 살던 대로 산다면 어떻게 될까요? 먼저 살아나야 하는 것입니다. 영이 살아나고, 육이 살아나고, 육이 살아나게 될 때에 창대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앞의 것을 하지 않으면서 뒤의 것만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창대하려면 먼저 살아나야 하는 것입니다. 예언이 이뤄지려면, 하나님이 주신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하여 금년에 하나님이 주신 기회를 놓치지 말아, 창대하는 축복을 받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남 유다 백성들에게 살 수 있는 비결 세 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만 의지할 것’과 ‘믿는 자가 될 것’과 ‘하나님이 주신 기회를 놓치지 말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럴 때에 저들을 지켜주실 것이고, 30장에서 말씀하셨던 예비된 축복을 주시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비단 남 유다에게만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들에게도 하신 말씀이라 믿습니다. 우리가 하나님만 의지하고 산다면, 또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다면,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기회를 꼭 붙들고 놓치지 않는다면, 이사야 30장에서 약속하신 축복을 받게 될 줄 믿습니다. 하여 새해에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을 받는 여러분 모두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