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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언제나 늠름한 원문보기 글쓴이: 장사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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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한산한 시장에 나온 어머니. (동대문시장. 1962년9월10일) 귀성객으로 붐비는 서울역.(1967년 9월16일) 초만원을 이룬 귀성열차. (1968년 10월5일) 콩나물 시루 같은 객차에나마 미처 타지 못한 귀성객들은 기관차에 매달려서라도 고향으로 가야겠다고 거의 필사적이다. 기적이 울리는 가운데 기관차에 매달린 두아낙네의 몸부림이 안타깝다.(1969년 9월24일) 정원87명의 3등객차 안에 2백30여명씩이나 들어 찬 객차 안은 이젠 더 앉지도 서지도 못해 짐 얹는 선반이 인기있는 침대(?)로 변하기도.(1969년 9월24일) 추석을 이틀 앞둔 24일 서울역은 추석 귀성객들로 붐벼 8만1천여명이 서울역을 거쳐 나갔다.(1969년 9월24일) 8만 귀성객이 몰린 서울역엔 철도 직원외에도 사고를 막기위해 4백80여명의 기동 경찰까지 동원, 귀성객들을 정리하느라 대막대기를 휘두르는 모습이 마치 데모 진압장면을 방불케했다. (1969년 9월24일) 귀성객이 버스 창문으로 오르는등 고속버스정류장 대혼잡 (광주고속버스정류장 1970년 9월14일) 삼륜차까지 동원되어 1인당 1백원에 성묘객을 나르고 있다. 홍제동. (1970년 9월15일) 60~70년대에 선보였던 대표적인 추석 인기 선물 - 설탕세트. 추석 귀성객 (1980년) 광주행 고속버스표를 예매한 여의도광장에는 3만여명의 인파가 몰려 삽시간에 표가 동나버렸다. (1982년 9월19일 정오) 짐인지 사람인지... 귀성버스도 북새통. 연휴 마지막날인 3일 한꺼번에 몰린 귀성객들로 짐짝처럼 버스에 오른 사람들은 큰 불편을 겪었다. 관광버스 짐싣는 곳에 승객이 앉아 있다.(1982년 10월3일) 추석 고향길은 멀고도 불편한 고생길. 서울역 광장은 요즘 귀성객들이 하루 10여만명이나 몰려들어 민족대이동의 인파로 붐비고 있다. (1985년 9월29일) 멀고 먼 귀성길 5일부터 추석귀성 열차표 예매가 시작되자 6일 발매되는 호남선 열차표를 사려는 시민들이 앞자리를 뺏기지 않기위해 텐트와 돗자리까지 동원, 새우잠을 자며 날새기를 기다리고 있다. (서울역. 1992년8월6일) 가다가 쉬다가... 추석인 14일오전도 경부고속도로 하행선에는 귀성객과 성묘객들의 차량이 몰려 평소보다 2~3배나 시간이 더 걸리는 심한 정체현상을 빚었다. (1989년 9월14일) <<출처 : 도께비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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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관을 들어가는 입구풍경 남이섬 여행 중 뜻하지 않게 좋은 전시회를 알리는 표지판을 보고 전시관으로 향했다. 현재 공간에 한 3배<정도로 확장공사를 하고 있어서 조금은 어수선하지만 60-70년대 일상생활에 사용하던 각종 생활도구와 교과서 등 각 분야의 소품들을 약 1만여점 수집하여 전시를 해놓은 것이 흥미롭게 보였다. 남이섬에 전시관을 개관하신 임택근 선생님은 흐르는 물을 막을 수 없고 가는 세월을 잡을 수 없는 현실에서 과거를 돌이켜 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고자 약 3년여 동안 기획하고 제작하여 2000년 3월부터 "추억의 그 시절" 이란이름으로 전시회를 개최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중·장년층의 어른들에게는 지나간 60-70년대의 어려웠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고, 지금의 어린이들에게는 자신의 부모님의 어린 시절을 보고 들으며 우리나라의 역사를 배울 수 있는 교육의 장이 되도록 하고 싶다고 말하셨다.
임택근 선생님께서 자랑하시는 것은 소품들을 전시하는 세트와 인형들이었다. 실물 크기와 거의 같으며 각 테마의 분위기를 맞게 고증을 참고하여 제작한 세트와, 실지 사람의 약 2/3정도 크기이며 흙으로 빚어서 소조를 한 다음 여러가지 과정을 거쳐 마지막 재료는 마네킹과 같은 재료로서 그 위에 칼라링을 하고 그 시절 분위기를 나타낼 수 있는 옷감과 디자인으로 직접 제작한 300여점의 인형들을 보여주셨다.
전시관을 들어가는 입구는 드라마 "야인시대"에서 봤던 전차가 맞이하였고 건물 안쪽은 약간 어둡기는 했지만 옛날TV에서 보았던 추억에 소품들이 머리 속으로 스쳐지나갔다.
▲ 학교 다닐때 사용했던 참고서와 학용품, 교과서의 모습 ▲ 초등학교 교실의 풍경 TV에서만 보던 60-70년대 초등학교 교실을 실제로 보니 참 재미있었다. 세트에 인형들이 아닌 어린아이들이 있었다면 좀더 사실적이고 재미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옆쪽에 전시되어 있는 학용품, 교과서, 참고서들을 보면서 예전에 "우리집에서 이거하고 똑같은걸 봤었는데" 라는 생각을 하면서 다른 전시실로 향했다.
▲ 구멍가게 입구들 모습 ▲ 등하교때 우리의 입을 즐겁게 했던 과자들 ▲ 그당시 분유통과 사이다병 예전 초등학교 때 구멍가게에서 팔던 불량식품들을 모아둔 세트 앞에서 예전 생각을 하면서 구경을 하다 문득 이런추억이 떠올랐다. 예전에 달고나를 국자에 먹다가 국자를 여러 개 버렸던 기억이 들었다. 그때 그 국자에 먼지 나게맞았던 기억도 떠올리면서 요즘도 달고나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전시해놓은 것들을 한번 먹어봤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다.
상점에는 예전에 빨대 속에 포토당 과자를 넣어서 손바닥으로 돌려서 녹여먹던 생각이 났다. 짧은 것부터 긴 것까지, 예전에 용돈 숨겨서 먹던 기억이 새롭게 생각이 나는 시간이었다. 상점에는 예전에 판매되던 사이다병, 분유통, 그리고 못난이 인형까지 없는게 없었고 판매하는 곳이 있다면 당장이라도 사서 먹어봤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했다.
▲ 선거용 포스터 ▲ 나무로된 가로등과 지볖에 항상있었던 시멘트로된 쓰레기통 상점을 돌아서는 예전에 담 밑이나 벽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나무로 된 전봇대, 시멘트로 만들어졌던 쓰레
▲ 만화방의 모습
▲ 종로 이발소의 모습. 의자에 나무판자를 받친것이 재미있게 보인다. 만화책방과 이발소를 보면서 예전에 만화방에서 코믹스를 보고 어머니지갑에서 돈을 몰래 훔쳐다가 보았던 기억, 돈이 없어진걸 알고 나를 찾아 만화방을 돌아다니셨던 어머니의 모습, 키가 작아서 나무판자를 올리고 이발을 했던기억 그때 이발사 아저씨의 현란한 가위질 솜씨를 보면서 감탄사를 연발했던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다.
▲ 우리들이 생활하던 방안의 풍경.
▲ 예전 재래식 부엌
▲ 가로등 아래 상품선전 포스터 이발소를 지나 우리가 생활했던 안방과 재래식 부엌이 보였다. 연탄불을 꺼트려서 번개탄으로 불을 다시 살리거나 늦은 밤 옆집에서 연탄불을 빌리셨던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리기도 했고 따뜻한 아랫목에 앉아서 흑백 TV를 보던기억도 재미있었던 모습으로 기억이 된다.
▲ 다이얼식 전화기들.
▲ 상고다니던 누나들이 많이 사용하던 타자기. 빨간색 리본먹지가 인상적이다.
▲ 그 당시의 잡지들과 우표들. 동네에 몇 대 없었던 전화기와 상업고등학교를 다니던 누나가 사용하던 타자기 그리고 예전에 성인잡지로 유명했던 "선데이 서울"과 "오늘의 한국"등등의 잡지와 우표들이 전시되어있던 세트를 보면서 예전에 삼촌이 보시던 "선데이 서울" 잡지를 훔쳐다가 부모님 몰래 봤던 기억 그리고 그 잡지를 친구들하고 돌려보다가 선생님께 걸려서 교무실에서 벌을 섰던 기억들이 생각나는 시간이었다.
▲ 젊은이들의 데이트장소였던 "약속다방" 입구
▲ 그 당시 젊은 여자들을 사로잡았던 DJ.BOX 예전에 젊은 연인들이 자주 들러서 차를 마시던 약속다방이 나를 반겨주었다. 예전 1992년도 MBC드라마 아들과 딸에서 "종말이" 곽진영의 마음을 흔들어놓았던 DJ의 모습도 생각나게 했고 통기타와 DJ가 음악을 틀어 주던 DJ. BOX도 예전 모습 그대로 만든 것이 재미있었다.
▲ 급전이 필요했던 사람들을 위한 전당포
▲ 빨간마후라의 포스터와 그당시 흑백 사진들 다방 옆에는 예전에 급전이 필요해서 있던 물품들을 주고 돈을 빌려쓰던 전당포의 모습과 그 당시 유명했던 영화인 빨간마후라의 포스터와 그때의 사진들 그리고 여러가지 영화포스터를 보면서 지금의 영화포스터와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서도 재미있게 구경을 할 수 있는 시간이여서 좋았다.
3월중으로 확장공사를 끝내고 좀더 많은 수집품들로 전시를 계획중인 임택근 선생님께서는 각박해져 가는 현실과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현실 속에서 잠시 동안이라도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며 어린 시절 천진스럽고 순박했던 기억들을 떠올리며 꾸밈없이 웃는 관람객들의 행복한 모습과, 자신의 키 만한 인형들과 대화라도 나누듯이 신기해하며 바라보는 유치원생과 초·중고교생들의 진지한 표정과 흥미로운 눈빛들은 단순한 볼거리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산 역사를 체험케 하는 "교육의 장"이라는 생각에 커다란 책임감을 느낀다면서 60-70년대 소품들과 근·현대사 쪽의 소품들을 모아 정립을 목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추억의 그 시절"을 회상 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면서 앞으로 더 많은 테마의 세트와 소품들을 제작 수집하여 많은 사람들이 보고 즐길 수 있도록 하겠다며 앞으로 많은 관심을 보여주시고 지켜봐 주셨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 '추억의 그 시절' 전시관을 손수 안내하여 설명해 주신 남이섬 (경춘관광) 회장 민웅기 학형께 감사 드립니다 - 송운 (松韻)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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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추억속으로 사라졌지만...
그리워 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