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칼(박준규)과 술을 마시고 만취한 두한(안재모)은 명월관 기생 설향(허영란)의 손에 이끌려 여관으로 간다. 다음날 아침, 두한은 자신의 옆에서 설향이 자고 있는 모습을 보고 놀람을 금치 못한다. 잠에서 깬 설향은 두한이 자신의 머리를 얹어줬다며 평생 서방님으로 생각하겠다고 말한다.
하야시(이창훈)가 종로 진출 계획을 밝히자 구마적(이원종)도 긍정적으로 받아 들인다. 하야시는 종로사업에서 발생되는 수익의 일부분을 구마적에게 주겠다며 앞으로 친형님처럼 모시겠다고 말한다. 한편 이야기를 들은 신마적(최철호)은 이번을 계기로 하야시패한테 종로 전체를 빼앗길지 모른다며 하야시패와의 야합을 반대하고 나선다. 쌍칼도 하야시와 손잡는 것을 적극 반대한다는 단호함을 보인다.
한편 구마적과 하야시의 야합이 기정 사실화 되자 쌍칼은 분함을 삭히기 위해 술로 세월을 보낸다. 쌍칼이 두한에게 만약 자신의 입장에 놓이면 어떻게 하겠냐고 묻자 두한은 주저없이 구마적과 싸우겠다고 말하는데….
.. # 1 관철 여관 외경(새벽)
어슴푸레 여명이 밝아오고 있다. 주위는 아직 고요하게 잠들어 있다. 두부장수들이 요령을 딸랑거리며 지나가고, 신문을 돌리는 소년들이 방울 소리를 내며 지나쳐 간다.
# 2 동 방안
두한이 잠에서 깨어나 서서히 눈을 뜬다. 옆을 돌아보면 웬 여자가 속옷 차림으로 누워 있다. 놀라며 벌떡 일어나는 두한. 설향도 깨어난다.
설향 .........(부끄러움)
두한 아니...?
설향은 속곳 차림이라 부끄러워 외면한다. 두한도 자신이 알몸임을 깨닫고 놀라 황급히 웃옷을 걸친다.
두한 도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여긴...?
설향 관철.... 여관입니다.
두한 예? 여관...이라고요? 헌데, 설향씨가 여기 왜....?
설향 그렇게도.... 기억이 안 나십니까?
두한 ....술을 마시다가 졸음이 온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설향 제가 두한씨를 이리로 모셔왔습니다.
두한 예?
설향 서방님께서 어젯밤 제 머리를 얹어주셨습니다.
두한 그게 무슨 소립니까? 서... 서방님이라니요?
설향 기생은 제일 먼저 하룻밤을 모신 분을 평생 서방님으로 생각한답니다. 두한씨는 제 서방님이십니다.
두한 (기가 막히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그럼... 설향씨가 제 색시라는 겁니까?
설향 예, 서방님.
두한 아이구, 나 이런.... (큰 눈으로 다시 본다) 나는 그런 거 모릅니다. 난 아직 색시 같은 거 모릅니다.
설향 이미 그렇게 되었습니다.
두한 (아직도 기가 막히다) 글쎄, 난....
설향 기생도 아무에게나 몸을 허락하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나 머리를 얹어주시는 분은 제가 택하는 것이랍니다. 제 스스로 서방님을 뫼신 것입니다. 부담 가지실 것은 없습니다.
두한 아니, 그래도 그렇지. 서방님이란...?
설향 예. 분명히 제 서방님이십니다.
두한 .........?
# 3 거지촌
양코 두한이 어제 안 들어왔어?
정진영 음. 종로통에서 잔 모양이다. 그래도, 밖에서는 잘 안 자는데...
양코 어차피 이제 두한이는 쌍칼의 식구라고. 안 그래?
정진영 ........
# 4 야시장 사무실
두한이 들어온다. 쌍칼과 김영태, 김무옥, 문영철들이 모여 있다.
김무옥 아이고 이게 누구여? 새신랑 아닌가벼?
두한 .......(쌍칼에게 인사하고)
쌍칼 앉아라.
두한 죄송합니다. 늦었습니다.
쌍칼 처음 마신 술이라 그럴 거야. 앞으론 술하구도 싸워야 해. 아무리 마셔도 정신을 잃으면 이미 지는 거야.
두한 예, 형님.
쌍칼 자 그건 그렇고, 어디까지 얘기했지?
김영태 조만간 구마적 형님이 하야시와 만날 거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쌍칼 하야시라... 하야시...
김영태 우리도 뭔가 대책을 세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러다가 우리까지 일본 패에 넘어갈 수도 있습니다.
쌍칼 무슨 소리야? 죽으면 죽었지 그렇게는 안돼. 이 쌍칼이 있는 한 종로2정목과 야시장은 아무도 건드리지 못해.
김영태 하지만 구마적 형님이 하자면 따를 도리밖에 없지 않습니까?
쌍칼 ......설마 구마적 형님이 왜놈들 밑에 들어가시려구?
김영태 겉으로야 물론 화해와 친선을 도모한다고 내세우겠지만 혼마찌패는 막강한 조직력과 자금동원력, 그리고 경찰까지 움직일 수 있습니다. 결국엔 종로가 왜놈들의 땅이 되는 것이죠.
쌍칼 막아야지.. 어떻게든 막아야 해.
두한 ............
쌍칼 그 일은 조금 더 두고 보자고.. 아직은 소문만 무성한 것이니까.. 그쪽 일은 영태 자네가 계속 알아봐.
김영태 예, 알겠습니다.
쌍칼 ..........
# 5 혼마찌깡 외경
고급 승용차가 달려와 선다. 차 문이 열리고 고노에와 그의 딸 나미꼬가 차에서 내리면 대기해 있던 사내들이 허리를 굽히고 정중하게 인사를 한다. 고노에는 야쿠자의 원로이다. 고노에, 들어서는데 커다란 기합소리가 들려온다. 나미꼬는 호기심이 이는 듯 고개를 든다. 챙이 넓은 모자 안으로 그녀의 화려한 미모가 드러난다.
# 5-1 동 정원
가미소리와 시바루가 지켜보는 가운데 사무라이들의 검술 훈련이 한창이다. 그들의 무서운 솜씨에 짚단과 대나무들이 사정없이 잘려 나간다. 고수로 보이는 사무라이 하나가 앞으로 나서며 준비해 놓은 항아리를 향해 칼을 내리친다. 마치 무가 잘려나가듯 정확하게 반으로 쪼개져버리는 항아리. 담겨져 있던 물도 함께 쏟아져 내린다. 가미소리가 흡족해 하며 고개를 끄덕이다.
가미소리 그간 끊임없이 훈련한 성과가 서서히 나타나고 있구만.
시바루 .....
가미소리 하지만 한편으로 저들의 실력이 아깝기도 해.. 과연 이 조선 땅에서 저들을 상대할 만한 적수가 있을까?
하다가 갑자기 몸을 돌리며 인사를 한다. 정원으로 올라오는 고노에와 나미꼬를 본 것이다. 시바루와 사무라이들도 약속이나 한 것처럼 일제히 최대한 예의를 갖춰 허리를 굽힌다. 고노에가 흡족하게 끄덕이고 안으로 들어선다. 뒤따르던 나미꼬는 무심코 고개를 돌리다가 시바루와 눈이 마주친다. 시바루도 다시 한 번 고개를 꺾어 인사하고 나미꼬도 가볍게 눈인사를 해 보이고 들어간다. 시바루는 나미꼬가 사라진 현관을 한참동안 쳐다보고 있다.
# 6 동 하야시의 방
하야시가 안경을 쓰고 책장을 넘기고 있다. 야쿠자 오야붕이라기보다는 마치 학자 같은 모습이다. 그때 밖에서 미우라의 소리가 들려온다.
미우라 (E)오야붕, 미우랍니다.
하야시 무슨 일인가?
방문이 열리면 미우라가 서 있다.
미우라 오야붕, 고노에 상께서 오셨습니다.
하야시 장인어른께서....?
미우라 예, 나미꼬양도 함께 오셨습니다.
하야시 알았네.. (일어나면).......
# 7 동 거실
고노에 지나는 길에 들렀네. 그래 사업은 잘 되어 가는가?
하야시 예, 모두가 장인어른 덕분입니다.
고노에 허허허.. 무슨 말을.. 자네 사업 수완이 남다르기 때문이겠지.
하야시 .........
고노에 듣자 하니 종로에도 진출을 할 예정이라던데...?
하야시 예..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고노에 조선 주먹패들이 가만 보고만 있지는 않을 텐데..?
하야시 이미 물밑으로 교감이 오고 갔습니다. 오늘 종로의 오야붕 구마적과 최종 담판을 지을 예정입니다.
고노에 자네가 하는 일이니까 내 믿겠네만.. 너무 무리하지는 말게.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가라는 말이야.
하야시 명심하겠습니다.
고노에 그리고 이 아이가 자네 밑에서 일을 좀 배워보고 싶어하는데.. 자네 생각은 어떤가?
하야시 ........?
나미꼬 저도 이제 뭔가를 해야 할 나이잖아요. 그렇다고 보통 여자들처럼 살기는 싫고 사업을 해보고 싶어요.
하야시 처제야 웬만한 사내들보다 나은 사람이지.. 그래 무슨 일을 해보고 싶나?
나미꼬 아무 일이나 시켜만 주세요. 열심히 할게요.
하야시 허허허.. 그래.. 처제에게 어울릴 만한 일을 내 생각해 보지.
# 8 우미관 외경
평양박 (E)정말 하야시와 만나시는 겁니까?
# 9 동 사무실
구마적과 부하들이 모여 구수회의를 갖고 있다.
평양박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십쇼, 큰형님. 하야시 그 자가 누굽니까? 우리 종로를 호시탐탐 노려왔던 자가 아닙니까?
구마적 어차피 한 번은 만나야 할 사람이야. 거절할 이유가 없어. 그리고..
평양박 하지만 큰형님..
상하이 이봐 평양박... 형님 말씀 아직 안 끝났잖아.
평양박 ...........
구마적 과거는 과거야. 다 지난 일이란 말이다. 앞으로 어떻게 해나가느냐가 더욱 중요하다는 것이야.. 지금까지 우린 일본 애들과 맞서 끊임없이 싸워왔다. 하지만 남은 게 뭐야? 그저 뻔질나게 유치장에 들락거린 거 밖에 뭐가 있냐구..?
평양박 하지만 우린 종로를 지켜내지 않았습니까?
구마적 그랬지.. 맞는 얘기야.. 내가 하야시와 만나려 하는 것도 다 생각이 있어서야. 평화롭게 지내면서도 우린 얼마든지 종로를 지켜낼 수가 있어. 더 이상 쓸데없는 피를 흘리지 말자는 것이야. 그리고 우린 어디까지나 건달이야. 독립 운동하는 투사가 아니라는 말이다.
평양박 ...........
뭉치 저 근데요, 형님.... 신마적이나 쌍칼이 가만있을까요? 워낙에 왜놈들이라면 치를 떠는 사람들이 아닙니까?
상하이 가만 안 있으면....? 큰형님께서 하시는 일이다. 구마적 형님께서 결정하신 일이라구.
뭉치 그거야 그렇지만서두...
구마적 쌍칼, 신마적... 그리고 우리 모두를 위해서 하는 일이다. 혼마찌와 관계를 터놓으면 적어도 밤낮 유치장에 끌려가는 일 같은 건 없을 거다. 하야시는 경찰서장도 한수 접어주는 거물이고, 생각했던 것보다는 훨씬 사내다운 인물이야.
뭉치 그래두 전 왠지 왜놈들하고 사이좋게 지낸다는 게... 허 그것 참..
구마적 이제 그런 생각은 버려. 나라구 쪽발이 놈들이 좋아서 하는 일은 아니야. 필요하기 때문에 하는 일이란 말이야. 내 말 무슨 뜻인지 알겠나?
모두들 예, 큰형님.
구마적 우선 신마적을 만나 봐야겠어. 어쨌든 조용한 게 좋으니까.
# 10 종로 거리/인서트
# 11 종로 어느 빵집
학생패들이 엄동욱을 둘러싸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거구의 신마적 엄동욱(학생복 차림이어서는 곤란하다)은 여전히 무뚝뚝한 모습으로 빵을 계속해 입에 넣고 있고 학생 하나가 신나게 설명을 하고 있다..
학생 (먹으며) 여기 형님께서 동경에 계실 때 말이야. 정말 대부분의 조선 유학생들은 다 형님 신세를 졌다는 거야. 한 번은 말이야 글쎄, 일본 학생패들과 야쿠자들이 떼거리로 몰려와서 칼을 휘둘렀는데 그때 형님이 옆구리가 그냥 찔려가지구 창자가 다 흘러나왔는데 말이야....
학생들 와.......
학생 헌데도 형님은 형님을 찌른 그 작자를 거꾸로 쳐 박고 나서 옆구리로 나오는 창자를 다시 배 안으로 넣으면서.... 응, 넣으면서... 태연히, 아주 태연히 거기를 빠져나가셨다는 거야.
학생들 우와........
학생 형님, 다음 얘기 좀 해주십시오.
신마적 다, 지난 얘기야.
학생 야, 그래도 애들이 궁금해하지 않습니까? 제가 마저 하겠습니다. 그래서 말이야. 형님은 병원신세를 지셨는데 퇴원 하시구도 그 야쿠자들을 찾아가 다시 일주일을 싸웠어요. 결국은 그 놈들이 다 도망쳐 버렸는데 결국은 그 일로 유학생활 끝내시고 경성으로 오신 거지. 그런데 여기 와 보니까 구마적이라는 사람이 떡 버티고 있는 거야. 그래서 형님이 다시 나선 거야.... 조선 주먹 중에서 누가 제일 쌔지 하고 말이야.
신마적 그만해라. 귀 간지럽다.
학생 예, 형님. 하지만 아무리 얘기해도 얘들은 자꾸만 듣고 싶어해서요.
학생1 정말 대단합니다, 형님.
학생2 형님은 우리 학생들의 우상입니다. 신마적 하면 아무리 센 건달들도 다 인사를 하지 않습니까?
신마적 그렇기는 하지만 재미가 없어. 이 종로 바닥에 더 이상 쓸만한 주먹이 없어. 건달은 말이야, 자꾸만 새로운 일이 생겨야 하는 거야. 재미있는 일 말이야.
신마적은 그릇에 물을 한 그릇 다 비우고, 트림을 한다. 그리고는 접시에 놓인 까지 않은 잣을 한 주먹 들고 두 손으로 비벼 까며 입으로 넣는다. 학생들이 뻥해서 놀란 눈으로 보다가, 자신들도 흉내를 내보지만 잣이 그렇게 깨질 리가 없다. 신마적은 그렇게 잣을 깨먹고 있는데, 누군가가 들어선다. 구마적과 그 일행이다.
구마적 여전하구만, 아우님..
신마적 형님! 여기까지 어쩐 일이십니까?
구마적 내가 못 올 데라도 왔나? 아우님 본 지도 오래됐고, 또 상의할 일도 있고 해서 말이야.
신마적 허허허.. 그럼 앉으시지요.
구마적 그럴까...? (앉으며) 자네들은 자리를 좀 비켜주었으면 좋겠는데...
신마적 우리가 저쪽으로 가지요, 뭐.
구마적 그럴까?
신, 구마적이 빵집 구석 테이블로 간다. 학생들이 무슨 일인가 보고 있다. 뭔 얘기를 주고받는가 했더니 벌컥 하는 신마적의 소리가 들린다.
# 12 그 한쪽
신마적이 꿈틀하며 소리친다.
신마적 예? 아니, 형님,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십니까?
구마적 이보게, 아우님.... 대세를 봐야지.. 큰 흐름을 봐야 해.
신마적 흐름이고 나발이고 그런 말하지 마십쇼. 안됩니다. 왜놈들하고 손을 잡다니요..?
구마적 허허.. 내 이럴 줄 알았다니까. 아우님은 그 불뚝하는 성미가 문제야. 난 그저 하야시의 화해를 받아들이겠다고 했을 뿐이야.
신마적 그게 그거 아니오?
구마적 화부터 내지 말고 차근차근 내 얘기 좀 들어봐.
신마적 더 들어보고 자시구 할 것두 없수다. 난 무조건 반대요.
구마적 이봐 동욱이!
신마적 내가 비록 이 종로바닥에서 학생 애들이나 끌고 다니면서 술이나 마시고 살지만, 왜놈 하면 치가 떨리는 놈이요.
구마적 그래도, 생각을 좀 해봐. 그 동안 우리가 주먹패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얼마나 많이 유치장을 들락거렸나? 우리가 하야시와 관계를 튼다면... 그러니까 우리가 하야시를 이용하는 거지.
신마적 그만 하십쇼. 듣고 싶지 않습니다. 형님한테 실망했습니다. 얼마 전부터 그런 소문이 들려왔지만 설마 했는데...
구마적 그렇게 나쁘게만 생각할 게 아니야. 나도 다 생각이 있어서 하는 일일세. 이 사람아..
신마적 듣고 싶지 않다는데 왜 이러십니까? 왜놈들이 종로바닥에서 활개치고 다니는 꼴은 내 죽어도 못 본다 이 말입니다.
구마적 왜 이렇게 꽉 막혔나? 길을 조금 터주는 대신 우리도 그에 못지 않은 이익을 챙길 수가 있다는 걸 왜 모르나?
신마적 (어이없어) 이보쇼, 구마적 형님.. 처음엔 조금일지 모르지만 나중엔 종로전체를 빼앗기게 될 겁니다. 왜놈들이 이 조선 땅을 그렇게 삼켰다 이 말입니다!
구마적 아, 왜 그렇게 소리는 지르나? 소리는...? 이봐, 동욱이? 절대 그렇게 되지는 않아. 나와 아우님이 이 종로에 버티고 있는 한 그런 일은 없어.
신마적 내가 말입니다. 비록 성질 머리가 더러워서 여러 주먹들에게 욕은 먹고살지만, 그래도 왜놈이 더러운 건 알아요. 하야시하고 만나시든지 손을 잡으시든지 형님 맘대로 하십쇼. 하지만 이 엄동욱이는 거기에 넣지 마십쇼. 그리고 제가 하야시 애들하고 어떻게 하던지 그것도 형님은 상관 마십쇼.
구마적 ..........?
신마적 에이... 기분 잡쳤구나. 얘들아, 가자.
학생들 예, 형님.
신마적과 학생패들이 우~ 빵집을 빠져나간다. 구마적도 상당히 불쾌하다.
# 12-1 종로 거리
거리에는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다. 그 행인들 사이로 어기적어기적 번개가 오고 있다.
번개 그 동안 많이 변했구나.. 이게 얼마 만에 와보는 종로야..
그때 오포가 울리고 종로의 상징이라 불리는 깍두기가 나타난다. 정장 차림에 빨간 넥타이, 그리고 포마드로 빗어 넘긴 머리가 어딘지 우스꽝스럽고 촌스럽다.
번개 어이 깍두기....아니 흥택이형... 나요 번개.
깍두기 ...........
대답할 만도 한데 깍두기는 아무런 말이 없다. 대신 징그러운 미소를 한 번 씩 흘리고 서둘러 제 길을 간다. 종로 사람들 그런 깍두기를 보며 아는 척을 하고 웃기도 하지만 그는 바쁘게 갈 뿐이다.
번개 하여간... 머리 아픈 인간이라니까...
# 13 그 다른 곳
두한이 새 가죽 점퍼를 입고 김무옥, 문영철과 오고 있다.
김무옥 이야, 그렇게 차려 입으니께 근사하구만잉. 역시 옷이 날개여. 날개.. 안 그러냐, 영철아?
문영철 그래.. 인제 촌놈 티가 좀 가신 것 같다.
두한 ......이제 어디로 가냐?
김무옥 슬슬 한바꾸 돌아봐야제. 뭐 별다른 건 없고.. 이 곳 저 곳 우리가 뒤를 봐주는 가게를 둘러보면 되는 것이여.
두한 그리고...?
김무옥 그리고 뭐.. 당구도 치고... 다방에 가서 샥시들 궁둥이도 두들겨 주고.. 밤 되면 술도 마시고... 뭐 그런 거여..
두한 그런 일 뿐이야?
문영철 요즘은 좀 조용해서 그래. 싸움이 벌어지면 우리가 할 일이 많아.
두한 ........근데 아까 쌍칼 형님이 한 얘기는 뭐냐? 구마적이 일본 패들과 어떻게 한다는 거야?
문영철 우리도 잘 모르는 일인데... 아무래도 구마적 형님이 하야시하고 뭔가 일을 꾸미는 것 같애.. 잘못하다간 하야시한테 오야붕 소리하게 생겼다.
김무옥 그게 뭔 소리여? 하야시가 오야붕이라니?
문영철 그렇게 되지 말라는 법 있냐? 구마적 형님이 하야시한테 무릎을 꿇으면 그렇게 되는 거지.
두한 ............
김무옥 앓느니 죽을 것이다.. 나가 죽어도 그런 짓은 못허제. 사나이 자존심이 있제.
문영철 ..........(한숨)
두한 ..........?
그때 호떡을 입에 물고 지나가던 번개가 우르르 몰려가는 무리들 속에서 두한의 모습을 발견한다.
번개 (갸우뚱하며) 누구더라...?
# 13-1 신문사 외경
# 13-2 동 안
최동열이 기사를 작성하고 있다. 편집국장이 다가와 그런 최동열을 넘겨다본다.
국장 그래.... 기사 거리가 좀 있나?
최동열 별로 신통치가 않습니다.
국장 그래도 열심인 것 같은데......
최동열 신사참배에 대해 쓰고 있었습니다. 이젠 우리 민족의 정신까지도 지배해보겠다는 간악한 술책이 아니겠습니까?
국장 참으로 서글픈 일이지. 우리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저희들의 조상들에게 고개를 숙이게 하고 신앙을 강요를 하다니...(사이) 하지만 최기자 그 기사 그만 두게.
최동열 .........?
국장 총독부의 검열에 한 줄도 실리지 못할 거라는 것 자네도 알고 있지 않나? 오히려 역효과만 나게 될 걸세. 자네 같은 경험 많은 기자가......
최동열 알고 있습니다.
국장 안다면서........?
최동열 그래도 총독부 검열관이나 관리들은 읽지 않겠습니까? 적어도 자신들이 얼마나 우매한 정책을 강요하고 있는지 깨닫게 하려구 말입니다.
국장 허허허. 거기에까지 생각이 미쳤단 말인가? 허 그렇다면 이거 또 내가 불려가게 곤욕께나 치르겠구만 그래...
그때 기자 하나가 어깨를 늘어뜨리고 들어온다.
국장 아니... 자넨 왜 그렇게 힘이 없어.
기자 좋지 않은 소식입니다.
국장 뭐가?
최동열 ..........?
기자 단재 신채호 선생께서.....옥중에서 타계하셨습니다.
국장 뭐, 단재 선생께서....?
최동열 .........!
최동열도 충격적인 표정이다. 절망적으로 두 눈을 감는다.
# 13-2 비너스
우울한 재즈가 흐른다. 김이수는 벌써 취했고 최동열은 우울한 모습이다.
김이수 단재....? 신채호 선생 말인가? 그 분이 돌아가셨다구?
최동열 ......(끄덕이며 술을 마신다)
김이수 그랬구만.. 자네가 그런 우울한 얼굴을 할 때는 그 만한 이유가 있지. 그래서 난 자네의 그런 모습만 보면 가슴이 철렁한단 말일세.. 하늘도 무심하시지.. 잡아갈려면 나 같은 주정뱅이나 잡아 갈 것이지.. 왜... 에이 이 망할 놈의 세상..
또 술을 마신다. 완전히 고주망태가 돼 있다. 최동열이 그 모습을 한 동안 보다가...
최동열 그만 일어나겠네. 자네두 그만 마시게. 너무 취했...
말이 끝나기도 전에 김이수는 그대로 머리를 탁자에 박고 잠이 든다. 그러자 종업원들이 다가와 김이수를 일으켜 부축해 간다. 그 모습을 씁쓸하게 지켜보는 최동열의 모습에서...
# 13-3 종로 거리
최동열이 정처 없이 길을 걷고 있다. 그 위로 밤하늘이 아름답다.
최동열 (E)위대한 민족의 별 하나가 또 스러졌다. 한 번도 일제와 타협하시지 않았던 단재 선생은 먼 이국 땅의 감옥에서 원통한 최후를 맞이하셨다. 이 나라의 독립은 얼마나 많은 세월과 피를 요구할 것인가?
그 모습 위로........
(해설) 단재 신채호. 민족 사관을 수립하여 한국 근대사학의 기초를 확립한 역사가이자 독립 운동가이다. 독립이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쟁취하는 것이라는 일념으로 그는 일제에 철저히 비타협적으로 대항했다. 의열단의 강령을 체계화했고 실질적인 고문직을 수행하기도 했었던 신채호는 고조선과 묘청의 난 등에 새로운 해석을 시도한 것으로도 사학계에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항일 잡지인 '탈환'의 자금 조달차 타이완으로 가던 중 지룽항에서 체포되어 10년형을 선고받고 뤼순 감옥에서 복역하던 중, 1936년 이때에 이르러 안타깝게 옥사하고 말았다.
# 14 종로/어느 음식점 외경(밤)
구마적의 수하들이 음식점 밖을 경계하고 있다.
구마적 (E)반갑소. 나 구마적이오.
# 15 동 안
구마적과 하야시가 마주해 있다. 그들 뒤론 각각 뭉치와 셔츠, 가미소리와 시바루, 미우라가 버티고 서 있다.
구마적 나도 일본말은 조금 합니다. 나를 소개하지. (일어로) 난 구마적이오. 반갑소.
하야시 (일어로) 나 역시 반갑소. (조선어로) 가깝게 있으면서도 이제야 만나 뵙게 되는군요.
구마적 맞습니다. 종로와 혼마찌는 아주 가까운 곳이지요.
하야시 오늘 만나 뵙자고 청한 용건은 잘 알고 계실 줄로 압니다. 그 동안 우리가 너무 소원하게 지냈던 게 사실입니다. 밑에 아우들이 대수롭지 않은 일들로 마찰도 많았고 말입니다.
구마적 그랬지요. 피차 상처가 많았습니다. 우리가 좀 더 심하기는 했지만..
하야시 하하하하...압니다. 그래서 이번 우리의 만남을 시작으로 종로와 혼마찌가 선린우호의 관계를 맺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구마적 옳은 말씀이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시다. 우리가 서로 싸워봤자 이득 될 게 없다는 거 말이요.
하야시 고맙습니다. 그 동안 섭섭한 점이 있었다면 이 자리에서 다 푸십시다. 구마적 오야붕.
구마적 풀지 않으려면 무엇 하러 여기에 왔겠소?
하야시 하하하.. 역시 구마적 오야붕은 대남이십니다. 처음 만나 뵙는데 마치 십년지기를 대하는 것 같습니다.
구마적 하하하 그렇습니까?
하야시 내가 보기에 종로의 상권은 혼마찌에 비해 많이 낙후되어 있습니다. 혼마찌와 명치정(명동)은 백화점을 비롯해 현대적인 상가로 즐비한데 종로는 그렇지가 못합니다. 이는 종로 사람들의 불행입니다. 종로를 지키는 구마적 오야붕 조직에게도 아주 큰 불행이구요.
구마적 ......(끄덕인다).......
하야시 우리 혼마찌패가 종로에 진출을 하면 사정은 달라질 겁니다. 장담하건대 3년 이내에 종로는 훤하게 다시 바뀔 겁니다.
구마적 말씀만 들어도 기분이 좋소. 헌데 종로의 장사치들이나 내 부하들 중에는 하야시 오야붕의 속내를 의심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소. 우리 종로를 송두리째 집어삼키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것이지요.
하야시 (미소)... 그런 의심은 당연한 것입니다. 나라도 그런 생각을 했을 겁니다. 하지만 이 문제는 누가 먹고 먹히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는 다만 우리의 사업을 종로에서도 펼치겠다는 것뿐이오. 그리고 거기서 발생되는 수익의 상당 부분이 구마적 오야붕의 것이 될 것입니다.
구마적 ...........?
하야시 조직이란 수입이 없으면 운영이 제대로 안되지요.
구마적 옳은 말이요. 헌데... 지금 그 말 믿어도 되겠소? 수익을 나누겠다는 것 말이요.
하야시 물론입니다. 우리 일본 사람들은 신용을 가장 중요시 여깁니다. 특히나 야쿠자 세계는 말입니다.
구마적 ............
하야시 미우라군.
미우라 하이.
하야시 그걸 구마적 오야붕에게 드려라.
미우라 하이
미우라가 대답하고 구마적에게 흰 봉투를 정중히 내민다.
하야시 보시지요?
구마적 이게 뭐요?
하야시 양측이 서로 지켜야 할 사항들을 몇 가지 적어 놓은 것입니다. 이것을 충분히 검토하여 보시고, 다음에 만날 때에는 서로 합의를 끌어냈으면 합니다. 양쪽 조직의 운영과 지켜야 할 법과 이득의 배분 같은 것 말입니다.
구마적 허허 뭐 이런 것까지..
하야시 모든 걸 확실히 해두자는 것이지요.
구마적 좋소. 그렇게 합시다. 오늘은 일단 이렇게 만난 것으로 의미가 있습니다. 내 부하들과 의논을 해서 다음에는 좀 더 좋은 분위기를 만들도록 해보지요.
하야시 고맙습니다. 조만간 우리는 형제처럼 지낼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구마적 오야붕께서 나보다 나이가 많으시니 앞으로 형님처럼 모시겠습니다. (깎듯이 허리를 숙인다)
모두들 놀란다.
구마적 아, 아니오.. 같은 오야붕끼리 뭘...
하야시 아닙니다, 우리가 협약을 완전하게 맺게 되면 그때 가서는 깎듯이 친형님으로 뫼시겠습니다. 일단 위아래는 확실히 해두어야지요. 자네들도 이제부터 구마적 오야붕을 형님처럼 모시게나. 알겠나?
가미소리 하이, 오야붕..
하야시 자 그럼 오늘 이야기는 이 정도로도 상당히 진전이 있다고 보아야겠습니다. 상견례는 이쯤에서 끝내기로 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한잔 어떠십니까?
구마적 좋소. 그럽시다.
하야시 (잔을 들며) 종로와 혼마찌의 영원한 우정과 발전을 위하여, 건배!
모두들 건배......!
구마적과 하야시가 잔을 부딪치고 술을 마신다. 구마적은 마냥 기분이 좋고 하야시는 빙긋 웃는 웃음 속에 예리한 눈빛을 빛낸다. 그 모습들에서...
# 16 거지촌 근처(밤)
두한이 그 곳으로 오고 있다. 삼삼오오 떼지어 있던 거지 아이들이 두한을 보고 반긴다.
양코 이야, 근사하다. 그 동안 딴사람이 돼서 왔네.. 이거 무슨 가죽이냐? 소가죽이냐? (만져보며) 정말 부드럽다 야.. 죽인다...
두한 ...........
정진영 어때? 지낼 만 해?
두한 아직 잘 모르겠어. 별로 하는 일도 없고 그래.
정진영 처음이니까 그럴 거야. 차차 그 생활에 적응이 되겠지.
양코 부럽다. 나도 어떻게 들어갈 수 없을까? 이 거지생활도 이제 지긋지긋하다구.
정진영 언젠 거지가 제일 좋다 그러더니.. 양코 넌 안돼. 가봤자 똘마니 노릇만 하게 될 거야.
양코 두한이가 있는데..
정진영 두한이는 두한이구.. 넌 너야.
두한 그래 양코 너는 거지 왕초가 더 어울려.
양코 그러지 말고 두한아.. 우린 어릴 적부터 동무잖아. 니가 좀 봐주면 안되겠냐? 응?
두한 정 그렇다면 조금만 기다려.. 내가 자리를 잡으면 그때 너를 부를게.
양코 정말? 너 약속한 거다. 응?
두한 짜식.. 그래..
양코 야호.. 이제 이 양코도 드디어 주먹패가 되는구나. 이제 어깨에 힘을 주고 종로 거리를 돌아다닐 수 있다구. 하하하하..
정진영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흔든다).... 그런데 두한아.
두한 응.
정진영 삼청동에는 어떻게 말씀드릴 거야? 그 분들은 니가 만주에 가 있을 줄로만 아실 텐데...
두한 ... 모든 걸 솔직히 말씀 드려야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뭔가 확신이 섰을 때 그때 찾아 뵐 거야.
정진영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어찌 됐던 니가 종로 거리에 건달이 되었다는 것은 어른들이 바라는 일이 아니야. 안 그러냐?
두한 ......(한숨만)....
# 18 삼청동 외경(밤)
오씨 (E)지금쯤이면 뭔가 소식이 있어야 할 텐데요..
# 19 동 안
친조모와 오씨가 삯바느질을 하며 앉아 있다.
오씨 두한이 말입니다, 어머님.. 만주로 가겠다고 집을 나선지가 꽤 되었습니다.
조모 벌써 그렇게 됐느냐?
오씨 뭔가 일이 생긴 건 아닐까요? 만주로 가게 됐으면 가기 전엔 하직 인사라도 드리러 왔을 텐데요.
조모 사정이 급했거나 아니면 여의치 못할 수도 있지. 그리고... 이제 두한이는 그만 잊는 게 좋을 게다. 에미야.
오씨 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조모 두한이는 이미 우리의 손을 떠난 아이다. 어려서부터도 그랬고... 이미 나름대로는 다 큰 아이가 아니냐.
오씨 .....하지만..
조모 그 아이의 운명은 이제부터 그 아이가 선택하고 찾아가게 되어 있다. 어디로 어떻게 가든 말이다. 만주로 가려는 생각을 품고 이 집을 떠난 아이이다. 잘 할 게다. 꼭 만주로 가지 못하더라도 말이다. 그렇게 생각을 하자.
오씨 예, 어머니.......
조모 만주는 이미 우리 임시정부의 조직들이 다 무너지고 사라졌다고 들었다. 그러니 애써 만주만 고집할 필요도 없고..... 그저 건강하게 아비의 뜻을 이룰 수만 있다면 무얼 더 바라겠느냐..제발....
고부간은 그렇게 한숨을 쉰다. 그 표정에서...
# 20 삼청공원(새벽)
여기 저기서 많은 사람들이 조깅을 하거나 가벼운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그 일각에서 두한이 철봉에 매달려 턱걸이를 하고 있다. 그리고, 가벼운 맨손 체조와 가벼운 기 운동을 하고 있다. 그때 저 만치서 김무옥과 문영철과 삼수, 병수들과 함께 우르르 몰려온다.
김무옥 오매, 쟈는 벌써 와부렀다잉. 두한아...! 은제 나왔냐?
두한 조금 전에 왔어. 오랜만에 운동하니까 기분이 상쾌하고 좋다.
문영철 그러냐? 두한이 너도 운동 안하고는 못 견디는 체질이구나. 나도 그래. 아침 운동을 안 하면 하루가 찌뿌드하다니까..
두한 근데 쌍칼 형님은 안 나오시냐...?
김무옥 아니여.. 아침 운동은 꼭 하시는디.. 오늘은 우리끼리 가라고 하시더라. 영태형도 안온 것을 보면 두 양반이 뭔가 하실 말씀이 있으신 가봐.
두한 그래....?
문영철 그 일 때문인 것 같아. 혼마찌패 말이야.
두한 ...........
김무옥 야야.. 그 얘긴 이따가 어련히 말씀 안해주시겄냐? 자 그럼 몸부터 풀자.
김무옥이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푼다. 거구지만 몸은 무척이나 부드럽다. 다른 부하들도 각각 몸을 푼다. 뭔가를 생각하는 두한의 모습에서..
# 21 관철 여관
쌍칼과 김영태가 마주해 있다. 쌍칼은 표정이 굳은 채 한동안 말이 없다.
쌍칼 구마적이 하야시를 만났단 말이지.. 하야시를 만났다.
김영태 모종의 밀약이 오고 갔을 겁니다. 조만간 우리에게도 뭔가 지시가 떨어질 게 분명합니다.
쌍칼 지시는 무슨 지시? 내가 언제 구마적의 지시를 받았나?
김영태 이번 일은 사정이 다릅니다 어쨌든 구마적은 조선 건달의 총 오야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분명히 우리가 하야시 패와 충돌을 하지 못하도록 단단히 다짐을 받아두려 할 것입니다.
쌍칼 그렇게는 못하지.. 왜놈 패들이 종로 바닥에서 활개치고 다니는 꼴을 어떻게 보나?
김영태 하지만 형님.. 구마적과 맞설 수도 없는 노릇이 아닙니까?
쌍칼 아무리 선배라고 해도 잘못하는 건 용납 못해!
김영태 지금은 시기가 좋지 않습니다. 오래 전부터 구마적은 우리 야시장을 직접 관리하려고 노려왔습니다. 괜히 트집을 잡아 우리를 제거하려 들지도 모릅니다.
쌍칼 그렇다고 호락호락 당할 내가 아니야.
김영태 하지만 구마적패도 버거운데 이젠 혼마찌하고도 손을 잡았습니다. 양쪽에서 공격을 해온다면.. 승산은 전혀 없습니다.
쌍칼 .............
김영태 일단 참고 기다리십쇼. 언젠가는 기회가 있을 겁니다.
쌍칼 ............
# 22 혼마찌깡 외경
하야시 (E)의외로 일이 너무 쉬웠어.
# 23 동 안
하야시와 가미소리, 시바루와 마주해 차를 마시고 있다. 늘 옆에는 미우라가 있다.
하야시 구마적이라는 자 말이야. 생긴 것보다는 머리가 영리한 사람이야. 나름대로 시대의 대세를 읽을 줄도 알고...(차를 마신다)
가미소리 벌써 10여년 째 종로의 우두머리로 군림해 온 자가 아닙니까? 그 정도 이력이면 죽고 살 자리 정도는 알 수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하야시 그렇지..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사람이지..
가미소리 ........?
하야시 일단 큰 산 하나는 넘었으니 앞으로는 좀 수월할 거야. 좀 더 지켜보자구. 곧 무슨 결론이 나오겠지.
가미소리 하지만 조선인 주먹패들 중에는 반일사상을 가진 자들이 상당히 많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경계를 늦춰서는 안될 겁니다.
하야시 물론이야. 조선 사람들의 특징은 보기보다 매우 끈질기고 억척스럽다는 것이야.. 그리고, 한 번 당한 건 잘 잊지를 않지.
가미소리 지난 몇 년간 우리는 종로의 조선 주먹들과 매우 많은 전쟁을 해왔습니다. 분명히 우리보다 열악한 조건인데도 결코 종로 패들은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뭔가가 있습니다.
하야시 그렇게 봐야겠지. 일단은 구경만 해보자구. 서로가 잘 해보자고, 운을 떼지 않았는가? 구마적의 영향력이 얼마나 있는지, 과연 오야붕인지 아닌지, 곧 드러날 거야.
미우라 구마적도 그렇게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종로의 주먹들 중에는 꽤나 힘있는 자들이 많습니다. 신마적이라는 학생패의 건달 엄동욱이라는 자도 그렇고, 또한 구마적 버금가는 싸움꾼 쌍칼이라는 자도 실력이 대단하다 들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철저하게 우리 일본을 싫어하는 자들입니다.
하야시 좋아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할 일이야. 조선은 지금 신천지다. 얻을 게 많은 곳이다. 싸움 같은 것은 어쩔 수 없을 때 하는 것이야. 그런 일들을 수하들에게 잘 들 일러주게.
그들 하이, 오야붕.
하야시 아주 오랜 기간 우리는 저들을 살펴보았다. 힘으로도 밀어보았고 총독부와 경찰의 힘으로도 밀어보았어. 헌데 승부가 나지를 않았어. 이제는 사탕을 주어보자는 것이다.
가미소리 하이, 미개인들에게는 역시 눈앞에 먹을 것이 제일 아니겠습니까?
하야시 ..........(끄덕이고)
# 24 우미관 외경
# 25 동 사무실
구마적이 소파에 몸을 깊숙이 묻은 채 눈을 감고 있다.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려온다.
상하이 (E)큰형님, 상하입니다.
구마적 들어와.
상하이가 들어온다.
구마적 애들은 다 보냈냐?
상하이 예, 종로2정목이 쌍칼패는 물론, 마포, 시구문, 동대문 그리고...
구마적 됐어. 수고했다.
상하이 큰형님, 무척 피곤해 보이십니다.
구마적 괜찮아.. 오랜만에 지역 오야붕들을 소집하는 것 같구나.
상하이 예, 큰형님..
구마적 아우들도 생각해보라고. 내가 하야시와 손을 잡는 것은 어디까지나 이 종로를 살리려고 하는 것이야. 종로가 사는 것은 조선이 사는 것이라고. 헌데, 이런 내 마음을 들 몰라.
상하이 ..........
구마적 하긴 뭐 이 구마적이 언제 얘들 눈치보고 살았나? 사실 그 동안 너무 많이 풀어 준 감이 있어. 안 그래?
상하이 예, 큰형님.
구마적 그래.. 이번 기회에 좀 충성도를 봐야겠어. 미적거리는 놈들은 가차없이 혼들을 내야겠어.
# 26 종로 거리
설향이 오고 있다. 뭔가를 싸들고 그렇게 부지런히 간다.
# 27 쌍칼의 사무실
뭉치가 와 있다. 쌍칼을 비롯해 두한과 김영태, 김무옥, 문영철이 자리해 있다.
쌍칼 경성 일대의 오야붕들을 전원 소집하셨단 말이지?
뭉치 (약간 삐딱하다) 예, 그렇습니다.
두한 ...........?
쌍칼 이유가 뭐야?
뭉치 이유라니요? 오야붕이 오라면 모이는 거지요.
쌍칼 뭐야? 너 이 새끼, 어디서 그런 말버릇을 배워 처먹었어?
뭉치 뭐요? 거 말씀이 너무 지나치십니다.
쌍칼 (발끈하며) 뭐?
김영태 형님, 고정하십시오. 이러시면 안됩니다.
쌍칼 ........건방진 자식..
뭉치 너무 그러지 마십쇼. 동생들 보고있는데 제 가오도 생각해 주셔야죠. 그럼 전 이만 일어나 보겠습니다. 오늘 모임에 꼭 참석하신다고 보고 드려도 되겠습니까?
쌍칼 ...........
뭉치 수고합쇼.
뭉치가 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칼 하나가 날아와 뭉치의 귀를 스치며 문에 꽂힌다. 뭉치가 흠칫 놀란다.
김무옥과 문영철, 두한이 밖으로 나간다. 쌍칼은 여전히 무섭도록 굳은 표정이다.
# 28 동 밖 거리
두한들이 나오고 있다.
김무옥 참말로 싸가지 없는 자식 아닌가벼? 지가 감히 우리 성님헌티.. 워매, 죽겄는거...
문영철 참아 임마..
두한 아까 그 자가 뭉치라고 했냐?
문영철 응. 아주 고약한 작자야. 구마적한테 바짝 붙어 가지고, 여러 조직들을 괴롭히고 있지. 언제 손 한 번 보긴 봐야 하는데.... 우리가 무슨 힘이 있어야지.
그때 설향이 저 만치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오고 있다.
김무옥 오매 저것이 누구다냐? 명월관 설향이 아니냐?
두한 ........?
설향 (두한을 발견하고) 여기 계셨네요?
두한 아, 예... 여기 어쩐 일로...?
설향 낮이라 시간이 좀 있어서, 왔어요. 여기 먹을 거 하고 속옷을 좀 가져왔어요, 서방님.
두한 (부끄러워 어쩔 줄 모른다) 아니, 저... 이봐요, 설향씨?
설향 그냥 설향이라고 부르세요.
김무옥 (설향과 두한을 번갈아 보며) 잉, 뭐여?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여? 그렁께로 거 뭐시기여. 서방님을 찾아오셨구먼이라우?
설향 (부끄러운 미소) 예....
두한 아, 이거 참....
설향 여길 찾느라고 한참 헤맸어요. 저, 이거...
김무옥 오매... 열녀 났구먼. 열려 나부렀써... 하하하...
문영철 이거 우리가 자리를 피해줘야겠는데.. 가자, 무옥아.
김무옥 그려.. 그래야 쓰겄다.. 우린 쩌 아래 다방에 가 있을텐께 일 다 보고 그 쪽으로 와라잉.
김무옥과 문영철이 웃으며 사라진다.
두한 ...저기.....(난감하다) 저기, 정말 날 찾아 온 모양인데, 그럴 필요 없어요.
설향 그렇지가 않아요. 앞으로는 빨래는 다 저를 주세요.
두한 예?
설향 가요. 살고 계시는 곳이 어디예요? 집 말이에요.
두한 아, 이러면 정말 곤란한데....저, 제발 부탁인데...그만 돌아가요.
설향 제가 온 게 싫으신가 봐요?
두한 .....미...미안해요. 난 그럼 이만..
설향 저, 서방님.....
두한이 그렇게 설향을 뒤로하고 사라진다. 설향이 입술을 깨문다. 눈에 눈물이 고인다. 그런 설향의 표정에서....
# 28-1 어느 술집 앞 길(밤)
학생패 두엇이 걸어와 술집 안으로 급히 들어간다.
신마적 (E)뭐 오야붕 회의.......?
# 28-2 동 안
신마적이 노기 띤 표정으로 앉아있다.
학생패1 예, 선배님. 지금 경성의 모든 오야붕들이 우미관으로 모여들고 있습니다.
신마적 개지랄들 떨고있구만.
학생패2 구마적의 속셈이 뻔하지 않습니까? 혼마찌 애들이랑 야합한 사실을 대충 무마해 보려는 수작이 아니겠습니까?
신마적 정말 울화가 치미는구만, 울화가 치밀어..
탁자를 주먹으로 내리친다. 상에 있던 것들이 쏟아지고 엎어지고 깨진다.
신마적 그런 개 같은 인간을 여태 형님이라 모셔왔다니...
학생패들 ....(눈치만)....
신마적 술 다시 가져오라고 해.
학생패1 예. 여기...
신마적 아냐, 됐다. 기분 다 망가졌다. 다른 곳으로 가자.
신마적,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 버리고 학생패들도 따른다. 술집 주인도 주춤주춤 뒤따라 나오다가 멈춘다.
주인 아이구.. 저 망나니 새끼 또 그냥 가네. 누군 땅 파서 장사하는 줄 아나? 아이구 억장이야.
# 28-3 광교
신마적이 다리를 건너오고 있다. 뒤따라오던 학생패들은 난감한 표정들이다.
학생패1 저 형님.. 그 쪽은...
신마적 잔말 말고 따라와라.. 오랜만에 좋은 구경 시켜 줄 테니까..
학생패들 주저하다가 어쩔 수 없는 듯 따라간다.
# 28-4 명치정(명동) 거리
그곳으로 들어선 신마적은 느릿느릿 걸으며 괜히 일인들을 툭툭 치며 지나간다.
신마적 뭘 째려봐 이 쪼가리 새꺄.....
일인들이 겁을 집어먹고 피해간다. 그러나 신마적은 노골적으로 여자들에게 접근하며 행패를 부린다. 근처 술집 앞에 서있던 야쿠자들 몇이 그 모습을 보고 다가온다.
야쿠자1 넌 뭔가?
신마적 나? 이거야.
다짜고짜 주먹을 날린다. 야쿠자1이 그대로 나가떨어진다. 그리고 연달아 그 옆의 다른 야쿠자들도 가볍게 제압해 버린다. 그렇게 갑자기 거리가 소란스러워지자 도처에서 야쿠자들이 뛰어나온다.
야쿠자2 쳐라!
신마적 그래.. 다 덤벼라.. 얼마든지 상대해 줄 테니까..
야쿠자들이 달려들면 물을 만난 고기처럼 신마적은 주먹을 휘두르며 날뛴다. 지켜보던 학생패들은 당황한 채, 그 자리에 서 있다. 신마적은 괴력을 발휘하며 계속 하급 야쿠자들을 쓰러뜨린다. 싸움은 점점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지는데......
# 28-5 어느 카페
야쿠자 하나가 그곳으로 뛰어든다. 그리고 그곳 사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가미소리와 시바루 앞으로 달려가 조아린다.
가미소리 무슨 일이냐?
야쿠자는 침착하게 귓속말로 뭔가를 중얼거린다.
가미소리 뭐라? 난동?
시바루 ........?
# 28-6 그곳 거리
아직도 싸움은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최후까지 버티던 몇몇 야쿠자도 결국 쓰러지고 만다. 신마적이 쓰러진 어느 야쿠자의 얼굴을 짓밟으며 거친 숨을 몰아 쉰다.
신마적 야 이 새끼들아 똑똑히 들어. 종로에는 구마적만 있는 게 아니야. 알았어? 너희 오야붕한테 그렇게 전하란 말이야.
신마적이 지친 모습으로 돌아선다. 학생패들은 의기양양하게 뒤를 따른다. 잠시 후 가미소리와 시바루들이 그 곳으로 다가온다. 그 처참한 광경에 어이가 없다.
가미소리 (부들부들 떨며)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이게 무슨 망신이야? 그 자는 어디로 도망갔는가?
야쿠자1 저.. 저 쪽으로....
가리키는 쪽을 보면 신마적이 학생패들과 함께 저 멀리 사라져가고 있다.
가미소리 (좌우를 향해) 가서 잡아와.
야쿠자들 대답하고 막 뛰쳐나가려는데, 시바루가 제지한다.
가미소리 뭔가, 시바루?
시바루 저 자는 신마적입니다.
가미소리 뭐, 신마적?
시바루 학생들이 그 뒤를 따르고 있습니다. 이 정도 실력이라면 신마적이 분명합니다.
가미소리 신마적이든 뭐든 그게 무슨 상관이야? (좌우에) 뭣들하고 있나?
시바루 안됩니다. 지금 종로와 화해의 분위기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미 싸움도 끝났는데 굳이 돌아가는 자를 붙잡아올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가미소리 그래서..... 이대로 자존심을 구기자는 말인가?
시바루 하야시 오야붕께서 이번 일에 얼마나 공을 들이신 지 잘 아시지 않습니까? 다친 아이들이래 봐야 문이나 지키는 기도 몇이 전붑니다. 부끄러운 쪽은 우리가 아니라 신마적입니다.
가미소리 ...........
가미소리는 분한 듯 이를 앙다문다. 어느새 신마적의 모습은 사라져 버렸다.
# 29 종로 회관(밤)
# 30 동 안
구마적이 상좌에 앉아 있고, 긴 테이블을 놓고 그 좌우로 종로2정목의 쌍칼을 비롯해 마포, 시구문, 동대문, 서대문 등등의 보스들이 앉아 있다. 그리고 그들의 뒤에는 각각의 패거리들이 버티고 서 있다. 쌍칼 뒤에 두한의 모습도 보인다.
구마적 갑자기 소집을 했는데.. 이렇게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참석해서 무척이나 고맙구만. 오늘 내가 여러 오야붕들을 소집한 이유는 우리 조선의 주먹패들이 나아갈 바에 대해 의논을 모으기 위해서요.
보스들 .................
구마적 그에 앞서 한 가지 밝혀둘 것이 있소. 우리 종로는 어제 혼마찌와 상당한 의견을 나누었어요. 좋게 지내기로 말이요.
술렁이는 보스들.....
구마적 아, 조용히들 하시오. 하야시는 나에게 허리를 숙이고 형님이라고 하였어. 그리고, 평화롭게 사는 길을 찾아보자고 청해왔어.
쌍칼 .............
구마적 이제 주먹세계도 변해야 살아남을 수 있게 됐소. 언제까지 장사치들한테 푼돈이나 뜯어먹고 살수는 없는 노릇이 아니오? 그리고 유치장을 제 집 드나들 듯 들락거리면서 살수도 없는 거요.
보스들 ..............
구마적 하야시 패와 손을 잡음으로써 우린 새롭게 시작을 할 것이오. 주먹이나 휘두르는 시정잡배가 아닌 진정한 야쿠자로 거듭 태어날 것이란 말이오.
보스들 .............
구마적 지금까지 내가 한 말에 대해 이의가 있다거나 불만이 있는 사람은 말해 보시오.
보스들 ............
구마적 어이 쌍칼.. 자네는 좀 할 말이 있을 것 같은데.. 어떤가?
쌍칼 .............
구마적 왜 말이 없어? 사내라면 하고 싶은 말은 해야지.
쌍칼 예, 큰형님. 허면, 이 아우가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김영태 ........?
구마적 그래... 어서 해봐.
쌍칼 큰형님께선 방금 전에 하야시 패와 평화롭게 공존하겠다고 하셨는데.. 과연 그 평화라는 게 뭡니까? 왜놈 패에게 종로를 넘겨주는 게 평홥니까?
구마적 .......계속 해봐.
쌍칼 한 번 길을 터주면 저들은 계속 밀고 들어올 겁니다. 그러면 영세한 우리 조선 상인들은 종로 바닥에서 쫓겨날 것이고, 우리 주먹패들도 결국엔 혼마찌패거리들에게 자리를 내줘야 할겁니다.
구마적 ....일리가 있어. 암.. 한데 말이야. 쌍칼 자네는 자네 식구들을 어떻게 먹여 살릴 건가? 지금처럼 시장 바닥을 기웃거리며 공짜 술에 푼돈이나 받아쓰게 할건가? 거지 새끼들처럼 말이야.
쌍칼 ............
구마적 그리고 지금까지 자네가 바친 세금이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서 가장 적어. 도대체 상인들을 어떻게 관리하기에 그 모양이야. 그러고도 자네가 두목이야, 오야붕이야!
쌍칼 상인들도 형편이 어렵습니다. 무작정 세금을 올려 받을 수만은 없습니다.
구마적 구차한 변명 집어치워. 그럼 여기 있는 다른 사람들은 형편이 좋아서 세금을 많이 걷나? 엉? 내 듣기로 명월관에 자주 드나든다고 하던데.. 그 비싼 술값은 어디서 났나? 부하들은 굶고 있는데 혼자서 호의호식하고 다니는 거 아니냐, 이 말이야, 내 말은..!
쌍칼 .......지금 그 말을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뭉치 큰형님께서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말대꾸를 하다니요?
모두들 ............
쌍칼 아무튼 저는 하야시와 손잡는 것은 반대합니다.
구마적 반대...?
쌍칼 예...
모두들 ............
구마적 내 말을 반대하는 것은 항명이야. 알겠어? 가서 다시 생각해봐. 이번만은 봐주는 거야. 아직 이해를 잘 못해서 그러는가 본데, 다시 생각해보란 말이야.
쌍칼 .............
구마적 그리고, 내 지켜보겠어. 다음 달에는 세금을 제대로 가져와. 너 김영태?
김영태 예, 큰형님.
구마적 네가 종로2정목의 자금관리를 한다고 들었어. 한 번 더 눈 밖에 나면 넌 죽은목숨이야. 알겠어? 네 손을 자를 거란 말이야. 분명히 세금 제대로 가져와, 알겠어?
김영태 예, 큰형님.
쌍칼 ............
구마적 자, 쌍칼 얘기는 끝난 것 같고... 다른 오야붕들도 말해봐. 반대하는 사람 또 있어?
모두들 .............
구마적 오늘 회의는 이걸로 끝이야.
# 31 동 밖
쌍칼이 나오고 있다. 김영태와 두한, 김무옥, 문영철이 그 뒤를 묵묵히 따른다. 그때 문달영, 김태서가 맞은 편에서 오다가 그들과 스쳐 지나간다. 문달영이 인상을 찌푸리고 지나치다가 문득 돌아보며..
문달영 아니.. 저 아인?
김태서 왜요, 뭐가 잘못됐습니까?
문달영 지금 저리 지나간 아이가 긴또깡이 아닌가?
그들 예?
문달영 그래 분명 긴또깡이었어.. 긴또깡이야...
# 32 종로서
미와와 오무라, 문달영, 김태서들이 모여 있다.
미와 뭐라, 긴또깡이 주먹패들과 어울려 다녀?
문달영 예, 제 눈으로 똑똑히 봤습니다. 분명 긴또깡이었습니다. 야시장 패의 쌍칼이라는 자와 함께 가고 있었습니다.
미와 그래?
문달영 그 자식 주먹 한 번 매섭더니 결국 그렇게 된 모양입니다.
오무라 하긴.. 오갈 데 없는 처지에 주먹은 좀 쓰고 울분은 있고... 갈 데가 거기 밖에 더 있었겠습니까?
미와 긴또깡이 거리의 부랑아가 되었단 말이지.. 긴또깡이.. 김좌진의 아들 긴또깡이...하하하하..이거 재미있구먼. 정말 재미있어. 긴또깡이 건달이 됐다? 긴또깡이 말이야....
# 33 어느 술집
쌍칼이 계속해 술을 마시고 있다. 김영태와 두한들이 그 곳을 지키고 앉아 있다.
쌍칼 술 좀 더 가져와.
김영태 형님, 그만 하십쇼. 많이 드셨습니다.
쌍칼 됐어. 더 가져와.
김영태 형님..
쌍칼 두한아..
두한 예.
쌍칼 너라면 어떻게 하겠냐? 니가 나라면 어떻게 하겠냐는 말이야.
두한 ..........
쌍칼 왜 대답이 없어? 너두 그 구마적이 무서운 게야. 짜식.. 나하고 맞장뜨겠다고 하던 패기는 다 어디 간 거야, 엉?
두한 많이 취하셨습니다.
김영태 취해? 니가 보기에 내가 취한 것 같으냐?
두한 ............
쌍칼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가 않아. 왜 그런지 아냐? 분해서..? 아니야. 분해서가 아니야.. 너무 부끄러워서 그래.. 너무 부끄러워서.. 주먹패가 된 것이 오늘처럼 후회스러운 적이 없었다.
술을 마신다.
두한 형님, 조금 전에 저라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으셨습니까?
쌍칼 .........?
두한 저라면 구마적과 싸우겠습니다.
김영태 이봐 두한이.. 네가 나설 자리가 아니야.
두한 그렇지가 않습니다. 언젠가 형님께서는 지금의 건달들은 거리의 독립군이라고 하셨습니다. 거리의 독립군... 왜놈 야쿠자에게 고개를 숙일 수는 없습니다. 싸우십시오, 형님. 저는 싸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