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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주일이 지나서 숫도다나 왕은 붓다를 궁전으로 초대하여 가족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사리풋타도 또한 초대되었다. 고타미 왕비, 야소다라, 난다, 순다리 난다 그리고 라훌라도 참석했다.
가족적인 평온한 분위기 속에서 붓다는 호흡을 가다듬는 방법, 마음속의 생각들을 깊숙이 들여다보는 방법 그리고 좌선이나 걸으며 명상하는 방법 등을 그들에게 가르쳐주었다.
그는 그들이 일상 생활 속에서도 명상수행과 마음집중을 통해 매일매일의 걱정과 좌절감 그리고 초조감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라훌라는 사리풋타의 옆에 앉아 조그마한 손을 그의 손 위에 올려놓고 있었다. 라훌라는 사리풋타를 매우 좋아했다.
붓다와 사리풋타가 수도원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었을 때 모든 사람은 두 사람과 함께 문까지 걸어나왔다. 난다는 붓다가 합장을 하며 한 사람씩 작별인사를 할 때 붓다의 발우를 들어주고 있었다.
난다는 붓다가 발우를 돌려받지 않음에 의아하게 생각하였다. 어찌해야 좋을지를 몰라 난다는 붓다가 발우를 다시 가져갈 때만 기다리며 수도원으로 그를 따라갔다.
그들이 수도원에 이르렀을 때에야 붓다는 난다에게 수도원에서 한 주일 동안 머물면서 비구의 생활을 직접 체험해보지 않겠는가하고 물었다.
난다는 형을 사랑하고 존경하고 있었으므로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난다가 옆에서 지켜본 비구들의 조용하고도 여유있는 생활에 스스로 끌려드는 기분을 느낀 것도 사실이었다.
그렇게 한 주일을 보낸 뒤 붓다가 그에게 다시 몇 달 동안을 더 수도원에서 지내면서 그의 지도 아래 비구생활을 해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묻자 난다는 흔쾌히 이를 받아들였다.
붓다는 사리풋타로 하여금 난다에게 초보적인 수행방법을 가르쳐주고 그를 비구로서 입문시키도록 부탁했다.
붓다는 난다가 한동안 비구생활을 하는 문제에 대해 왕께 우선상의를 드렸다. 왕은 난다가 비록 훌륭한 젊은이이기는 하지만 장차 국왕이 되기 위해 필요한 강인함과 결단력이 부족하므로 붓다의 뜻에 따르기로 했다.
붓다는 자신이 난다에게 매사를 분명하고 결단성있게 처리할 수 있도록 수련을 시키겠노라고 말씀드렸다. 왕은 이에 동의했다.
그러나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서 난다는 약혼녀인 아름다운 자나파다 카리아니를 못 견딜 만큼 그리워하게 되었다. 그는 간절한 그리움을 숨기려고 했지만 붓다는 그의 마음을 분명하게 읽고 있었다.
어느 날 붓다가 난다에게 말했다.
“네가 목표를 이루고자 하면 너는 우선 일상적인 감정에 매달리는 일부터 극복해야 한다. 수행에 전력을 기울이고 마음을 단련해라. 그래야만 너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도움을 줄 수 있는 유능한 지도자가 될 수 있단다.”
붓다는 또한 사리풋타에게도 난다가 더 이상 카리아니의 집 근처를 기웃거리며 탁발을 하는 일이 없도록 살펴보라고 부탁했다. 난다가 이를 알게 되었을 때 그는 붓다에게서 섭섭함과 고마움이 뒤섞이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붓다가 자신의 마음속 깊은 생각과 욕구를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라훌라는 그의 젊은 삼촌이 수도원에서 살 수 있게 된 것을 부러워했다. 그는 자기도 똑같이 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러나 어머니한테 물어보자 그녀는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우선 더 커야 수행자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라훌라는 어떻게 하면 더 빨리 자랄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매일 잘먹고 운동도 열심히 하면 된다고 말해주었다.
어느 날 비구들이 궁전 가까이에서 탁발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서 야소다라는 라훌라를 향해서 말했다.
“어서 달려내려가 붓다께 인사드리지 않으련? 그리고 그 분한테 네 유산에 대해 다시 물어보려무나.”
라훌라는 아래층으로 달려갔다. 그는 어머니를 매우 사랑했지만 아버지도 역시 사랑했다. 그는 늘 어머니와 함께 시간을 보냈지만 아버지하고는 단 하루도 온종일 함께 지내본 적이 없었다. 그는 난다처럼 붓다의 곁에서 살 수 있기를 원했다. 그는 궁전뜰을 가로질러 쏜살같이 달려 남쪽문을 빠져나가 붓다를 따라잡았다.
붓다는 빙그레 미소를 지으면서 손을 내밀었다. 봄볕이 이미 뜨거워지고 있었지만 라훌라는 아버지의 자비로운 그늘로 해서 조금도 더위를 느끼지 못했다.
그는 아버지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아버지의 곁에 있으면 아주 시원하고 기분이 좋아지네요.”
야소다라는 궁전 난간에서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는 붓다가 라훌라에게 그날 하루 동안 수도원으로 데려가 함께 지낼 수 있도록 허락했음을 알 수 있었다.
라훌라는 붓다에게 물었다.
“제게 주실 유산아란 뭐예요?”
붓다는 대답했다.
“수도원으로 가자꾸나. 그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도록 하마.”
그들이 수도원으로 돌아왔을 때 사리풋타는 그의 음식을 라훌라에게 나누어 주었다. 라훌라는 붓다와 사리풋타 사이에 앉아 조용히 그것을 먹었다. 그는 젊은 난다 삼촌을 보고는 기뻤다.
붓다는 라훌라에게 사리풋타의 오두막에서 밤을 지내라고 말했다. 모든 비구들은 라훌라를 좋아했고 매우 따뜻하게 대해주었다.
라훌라는 그 수도원에서 언제까지나 지냈으면 하고 바랐다. 그러나 사리풋타는 그에게 수도원에서 머물고 싶으면 수행자가 되어야만 한다고 설명했다.
라훌라는 사리풋타의 손을 꽉 잡고는 자신을 입문시켜달라고 붓다께 말씀드려도 되겠는지를 물었다. 그렇게 라훌라가 붓다께 물었을때 그는 승낙의 표시로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사리풋타에게 그 아이를 입문시키라고 지시했다.
처음에 사리풋타는 붓다가 농담으로 그러는가보다 생각했으나 붓다의 진지한 표정을 보고는 이렇게 물었다.
“하지만 스승이시여, 이토록 어린 소년이 어찌 비구가 될 수 있겠습니까
붓다가 대답했다.
“우리들은 이 아이가 장차 훌륭한 비구가 될 수 있도록 예비수련을 시키면 된다. 지금은 이 아이에게 초심자로서의 임무를 주도록 하라. 명상중인 비구들을 괴롭히는 까마귀를 쫓는 일을 맡겨도 좋겠지.”
사리풋타는 라훌라의 머리를 깎아주고 나서 그에게 삼귀의를 행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는 라훌라에게 네 가지 계율을 가르쳤다. 살생하지 말 것, 도둑질하지 말 것, 거짓말하지 말 것, 그리고 술마시지 말 것.
그는 자신의 가사 중에서 한 벌을 가져다가 그것을 라훌라의 몸에 맞게 줄여주었다. 그는 라훌라에게 그것을 입는 법과 발우를 잡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라훌라는 그야말로 귀여운 비구였다. 그는 사리풋타의 오두막에서 잠을 잤고 수도원 근처의 조그만 오두막으로 매일 그와 함께 탁발을 나갔다.
나이든 비구들은 하루에 단 한끼씩 먹지만 사리풋타는 라훌라가 한참 자라는 나이에 적절한 영양섭취를 하지 못할까 걱정을 했다. 그래서 그는 그 소년이 저녁식사도 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었다. 속가 제자들은 그 어린 수행자를 위해 잊지 않고 우유와 별도의 음식을 가져다 주었다.
라훌라가 머리를 깎고 비구의 가사를 입었다는 소식이 궁정으로 전해졌을 때 숫도다나 왕은 무척 안타까워했다. 왕과 왕비는 라훌라를 몹시 그리워했다.
그들은 그가 단지 며칠 동안만 수도원을 방문하고 나서 궁전으로 돌아올 줄로만 믿고 있었다. 그들은 그가 초심자로서 수도원에 남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들은 손자가 없자 외로움을 느꼈다.
야소다라는 슬픔과 기쁨을 함께 느꼈다. 그녀는 아들이 몹시 보고 싶었지만 그가 지금 그토록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아버지 곁에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위안이 되었다.
어느 날 오후 왕은 고타미 왕비 그리고 야소다라와 함께 마차를 타고 수도원을 방문했다. 그들은 붓다의 영접을 받았다. 난다와 라훌라도 그들을 맞으러 나왔다.
몹시 기뻐하며 라훌라는 어머니에게 달려갔고 야소다라는 아들을 따뜻하게 감싸안았다. 그리고 나서 라훌라는 조부모의 품에 안겼다.
왕은 붓다에게 합장을 한 후 다소 나무라는 투로 말했다.
“나는 네가 집을 떠나 수행자가 되고 나서 말할 수 없이 고통을 받았다. 그런데 이제는 난다도 내 곁을 떠났다. 게다가 또 이제 라훌라를 잃고 나니 너무나 견디기 어럽구나.
나와 같은 속인에게는 부자간 그리고 조손간의 인연이 매우 중요하다. 네가 내 곁을 떠난 뒤 느꼈던 고통은 칼로 내 살갗을 베는 듯했다. 내 살갗을 베고 나서 그 칼은 내 살을 파고들었다. 내 살을 파고든 다음에 그 칼은 뼈까지 꿰뚫어버렸다. 난 네가 네 행동을 돌이켜보았으면 한다. 앞으로 너는 아이들을 입문시키기 전에 부모의 사전승낙을 꼭 받도록 하거라.”
붓다는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으며 또한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 있는 실체 역시 어디에도 없음을 왕에게 말씀드리고 그를 위로하려고 애썼다. 그는 매일매일 심신수련만이 고통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그에게 상기시켜 주었다. 난다와 라훌라는 이제 이런 생활에 깊이 젖어들 만큼 젖어들어 있었다.
붓다는 부친에게 그들의 좋은 행운을 감사하게 받아들이고 일상생활 속에서 깨달음의 길을 계속 실천하여 참된 생복을 찾을 수 있도록 해야 함을 일깨워주었다.
왕은 고통이 가셔짐을 느꼈다. 고타미와 야소다라도 붓다의 말에 위안을 받고 마음을 돌리기로 했다.
며칠 뒤 붓다가 사리풋타에게 말했다.
“이제부터 부모의 승낙 없이는 수도원에 어린이들을 받아들이는 일이 없도록 하자. 수도원 규정에 그것을 명시하도록 해라.”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붓다와 상가는 석가 왕국에 반년이 넘도록 머물러 있었다. 새로 입문한 비구의 수도 5백 명을 넘어섰다. 속가 제자들의 수도 너무 많아서 이루 다 셀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숫도다나 왕도 수도원으로 삼을 수 있도록 또 하나의 장소를 상가에게 제공했다. 그곳은 수도의 북쪽에 잇는 지난날 싯다르타 왕자의 여름철 궁전이었던 곳으로 시원하고 넓은 정원이 딸려 있었다.
뭇사람의 존경을 받고 있는 사리풋타가 다수의 비구들을 편성하여 그곳에서 수도생활을 시작하도록 했다. 새로운 수도원을 갖게 되어 석가 왕국에서는 깨달음의 길을 닦을 수 있는 확고한 기초를 세울 수 있게 되었다.
붓다는 빔비사라 왕과 그곳에 머물고 잇던 비구들에게 약속하였듯이 우기의 안거 기간 동안 죽림정사로 돌아가기로 했다. 숫도다나 왕은 붓다가 떠나기 전에 마지막 식사에 그를 초대하고는 왕족과 석가족의 모든 사람들을 위한 설법도 청했다.
붓다는 이번기회를 통해 깨달음을 정치생활에 응용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깨달음은 정치에도 그대로 활용되어 왕국에 속한 백성들에게 사회적 평등과 정의를 가져다 줄 수 있음을 말했다.
그는 말했다.
“깨달음을 실천하면 이해와 사랑을 증진시켜 백성들에게 크나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전혀 폭력에 의존함이 없이 평화와 행복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사람을 죽이거나, 고문하거나 재산을 몰수하는 일도 없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불가능한 이상이 아니며 실제로 실현될 수 있는 것입니다.
정치가들이 충분한 이해심과 사랑을 가지면 가난과 불행 그리고 억압의 본질을 볼 수 있게 됩니다. 그는 정부를 개혁시킬 수 있는 수단을 발견하여 부자와 가난한 자 사이의 간격을 좁히고 다른 사람들에 대해 폭력을 행하는 일을 그만두게 될 것입니다.
나의 친구들이여, 정치지도자들과 통치자들은 솔선수범을 보여야 합니다. 부귀는 그대들과 백성들 사이의 벽을 두텁게 할 뿐이므로 사치스럽게 사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검소하면서도 건강한 생활을 하되 남는 시간은 무익한 쾌락을 추구하느니보다는 백성들에게 도움을 주는 일을 행해야 합니다. 지도자는 훌륭한 모범을 보이지 않으면 백성들의 믿음과 존경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대들이 백성들을 사랑하고 존경하면 그들도 그대들을 사랑하고 존경하게 될 것입니다. 덕에 의한 정치는 법과 명령에 의한 정치와는 다릅니다. 덕에 의한 정치는 처벌에 의존하지 않습니다. 깨달음의 길에 따르면, 참된 행복은 덕의 길을 통해서만 성취될 수 있는 것입니다.”
숫도다나 왕과 자리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은 붓다의 설법에 귀를 기울였다. 붓다의 삼촌이자 데바닷타와 아난다의 아버지인 드로노다나라자 숙부가 말했다.
“네가 방금 설명한 덕에 의한 정치는 참으로 아름답다. 그런데 이러한 길을 실천하는 데 필요한 성품과 덕성은 오직 너만이 갖고 있다고 나는 믿는다. 네가 카필라밧투에 머물면서 이곳 석가 왕국의 모든 백성들에게 평화, 기쁨 그리고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새로운 정치를 실현시키는 게 어떻겠느냐?”
숫도다나 왕이 덧붙였다.
“나는 이제 늙었다. 네가 머물러 잇겠다면 나는 네를 위해 기꺼이 왕위를 물려주겠다. 너의 덕성과 인격 그리고 총명함으로 미루어보건데 모든 사람들이 너를 따르리라고 확신한다. 머지 않아 우리 왕국은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융성해질 것이다.”
붓다는 빙그레 미소지으면서 당장 말을 꺼내지는 않았다. 부친을 자상한 눈길로 바라보면서 그가 말했다.
“아버님, 저는 이제 더 이상 한 가문 또는 한 왕국의 아들이 아닙니다. 저는 가족은 이제 모든 인류이며 저의 집은 온 세상이며 저의 신분은 다른 사람들의 너그러운 마음에 의지하는 한 사람의 수행자일 뿐입니다.
저는 이 길을 택하였으며 정치의 길을 택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러한 방식을 통해서만 모든 인류를 위해 가장 훌륭하게 일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고타미 왕비와 야소다라는 붓다의 말에 크게 감동하여 눈물을 흘렸다. 그들은 그가 한 말이 옳다고 생각했다.
붓다는 왕과 참석한 모든 사람들에게 다섯 가지 계율과 가전생활과 사회에서 그 계율을 응용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계속했다. 다섯 가지 계율은 행복한 가정과 평화로운 사회의 기초이다. 그는 각각의 계율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을 한 후 이렇게 말하면서 매듭들 지었다.
“그대들이 백성들을 결합시키려면 먼저 그들의 믿음을 얻어야 합니다. 정치지도자들이 다섯 가지 계율을 실천하면 백성들의 믿음은 커집니다. 그러한 믿음이 있으면 왕국이 이루지 못할 일이란 없습니다. 평화와 행복 그리고 사회 평등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마음의 눈을 뜨고 생활을 하도록 해야 합니다. 지난날의 독단으로는 믿음을 얻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백성들 사이에 평등을 이룩할 수 없습니다. 깨달음의 길을 통해서만 새로운 길과 새로운 믿음을 구할 수 있습니다.”
붓다는 비록 자신이 마가다국으로 곧 떠날 것이지만 앞으로 카필라밧투에 돌아오리라고 그들을 안심시켰다. 왕과 참석한 모든 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 기뻐했다
지음 틱냑한
옮김 서계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