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신부. 벚꽃이여-오순화
벚꽃송이가 한잎 두잎 떨어질 때쯤이면 만국기 아래서 봄 운동회가 열렸다.
모처럼 학교 담장을 너머 앞마을 뒷마을까지 울려 퍼지는 비발디의 봄의 왈츠가
클래식이 뭔지도 모르는 내 귀를 깨웠다.
지금은 흔한 김밥도 시골 촌구석까지 도달하지 못해 가뜩이나 바쁜 농번기철을 맞은
엄마는 이른 아침부터 도시락을 준비했다.
실팍하게 생긴 양은도시락엔 쌀을 듬뿍 넣어 지은 잡곡밥과 계란말이 그리고 노란단무지,
제사때 쓸려고 아껴둔 조기한마리, 읍내에 가야 살 수 있는 사이다 한 병이 전부였다.
엄마는 내 새끼 많이 먹으라고 밥알도 떼어주시고 목메인다고 다 큰 내게 물도 먹여주셨다.
내 눈엔 벌써 눈물이 가랑가랑하다.
생각만 해도 엄마와 함께하는 추억은 왜그리 눈물이 나는지..
산등성이에 오르면 고만한 집들 사이로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던 하얀 집, 하얀색건물.
학교에 들어서면 연분홍빛 하늘아래 갇혀버렸다.
그 속에서 환하고 내 마음 설레게 하는 연분홍빛 꽃세상은 나를 나빛으로 만들어주었다.
내 몸의 한 아름으로는 턱없이 모자라서 두어 명의 친구들과 손잡고 빙 둘러야
내 가슴에 안기던 벚꽃나무 아래서 한없이 흩날리는 벚꽃비를 맞으며
난 백치가 되었다.
그리고 해설픈 공주가 되기도 했다.
지금도 그러하듯 운동회의 마지막은 부락별 이어달리기가 장식했는데
내가 사는 동네가 항상 1등을 했다.
우리 동네 아이들은 달리기 잘한다는 소문이 날 정도로 공부보다는 달리기를 잘했다.
하기는 운동신경이 전혀 없는 나도 달리기 선수를 했으니 말이다.
가난한 시절이라 운동장 모래는 꽁보리밥에 얹어놓은 쌀알마냥 넉넉지 못했다.
바다에서 육지로 끌려온 모래알은 황토위에서 맴돌다 어설퍼 넘어지는 내무릎에 박혀
고향 그리운 한을 선혈로써 응징했다.
쓰리고 따가움에 절룩거리면서도 승리의 기쁨과 벚꽃천국에서의 황홀함에 취해
마냥 좋기만 했던 봄날이었다.
봄바람이 언덕을 넘어오면
바람 따라 일제히 눈보라처럼 흩날리던 벚꽃
교정 앞뜰과 뒤뜰을 휘돌며 연지곤지 찍듯 사랑을 심었다.
까닭 없이 문득 대처로 전학 간 남짝꿍이 생각나 편지를 쓰기도 했으니
그때부터 내 가슴에 사랑이 꽃피고 있었다는것을...
사랑이 피어나던 시절이었다.
드넓은 운동장을 차지하고 부서지는 햇살아래서 벚꽃잎은 설원이 되어
눈부시도록 아름다웠다.
소녀는 학교를 오르는 층층계단에 앉아 떠나는 님을 향해 뜻 모를 아쉬움을
하늘로 던지며 오래도록 가슴을 저렸다.
그 봄이 그토록 아름다울 줄이야 예전엔 미처 몰랐었다고.
공지영의 소설 '사랑 후에 오는 것들'에 보면 이런 글이 있다.
'젊은 날의 준고가 그녀의 손을 잡고 이노카시라 공원을 달려갈 것이다.
베이비파우더를 뿌린 듯 하얀 벚꽃이 흐드러진 그 봄날 속으로'
난 솜털처럼 곱고 뽀송이며 찬란했던 그 봄날 속을 거닐며
내 기억속에 떠오는 벚꽃을 뭐라 표현해야할지 아직 못찾고있다.
그저 시 한소절로
수줍은 새악시 볼에 피어나는 미소를 닮은 너는
참다 참다 터지는 하얀 웃음보따리.
4월의 신부여라.
고결한 넋, 순결한 사랑
널 보면 절로 행복이 내게로 왔다고....
화장을 한다.
울 엄마 분 냄새를 맡으며 서투른 분홍색
볼터치를 톡톡 친다.
벚꽃 잎을 얼굴에 그린다.
이 봄이 아니면 너의 고운향기와 그 빛깔을 가질 수 없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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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해오름님 덕분에 올해의 벗꽃맞이는 색다른 뭔가가 있을거 같습니다...오늘은 저도 아련한 그 산골의 소년시절로 돌아가고 싶어집니다...^^*
어린 시절을 잃어 버리고 사는 ,,,도시인,,,기억이 새록 새록 나는게 정말 부럽네요..
아름다운 글귀..한구절 한구절...읽고나면 울렁거리는 마음..다독이느라 잠시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정말 한꺼번에 터져버리는 꽃의 아름다운 빛깔이 마음속 가득히 퍼집니다.
잠시 고향을 생각했네...난 운동회하면 젤 생각나는게..오제미??맞나??암튼 그것으로 간지대에 달린 사탕바구니 터트려..사탕줍던 그 추억이 젤 ...그땐 사탕이 무지 귀했거덩요~~~
지금쯤 이제는 추억속에 잠겨버린 그 교정에 벚꽃이 만발 했을텐데...정말 그 시절이 그리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