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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보광사-
송구영신이란다
날씨는 계속해서 춥고 구제역은 소와 돼지 300만 마리 이상을 살처분하게 하면서도 그칠 줄을 몰랐다. 주사약이 떨어져서 생매장을 당하는 짐승들이 죽어가는 순간에도 새끼에게 젖을 물렸다고 하는 기사들이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통해 재빨리 전달이 되었다.
그래도 내려갈 수 있는 사람들은 모두 고향으로 돌아가는 설 명절이었다.
2월의 법회가 한 주 당겨져 1월 31일에 있었다.
큰스님이 올라오시자 선원 안은 화사해진다. 스님들도 쏙쏙 도착하셔서 공부준비를 하셨다.
“신묘년 새해에도 건강하시고요.”
“스님도 승승장구하여서 불사 잘 합시다.”
‘어느 스님도 오시고 어느 스님도 오시고’ 오랜만에 보는 스님들을 꼽아보는 소리를 들으시고 큰스님이 흐뭇해하셨다.
문득 큰스님께서 옛날 말투로 절하는 스님께 물으셨다.
“다 같이 볼 텐데 이렇게 와서 절하는 이유는 뭔고?”
“송구영신입니다.”
“송구영신이라? 아 그거 명분이 좋네”
절을 하러 오신 스님 중에는 기브스를 하고 오신 스님도 계셨다.
“팔은 왜 또 그렇게 다쳐가지고”
“눈 쓸러 가다가 경사가 져가지고…”
“하 조심해야 돼”
상좌이신 진명스님께는 “안경 물어보지도 않고 썼네?” 하기도 하셨다. 젊은 스님이 오셔서 절을 올리자 “공부 잘 하고 있지?” 하고 물으시고 새로 자격증을 땄다는 대답을 들으시고는 “그래야지.”하고 흐뭇해 하셨다.
처음 오신 태고종 비구니 스님께는 가사 색이 멋지다고 하시면서 불교학당에서 몇 년을 공부했는지도 물으시고 3년간 공부했다고 하시자 “실력이 많이 쌓였겠다”고 격려도 해주셨다. 법명도 물으시고 사는 곳도 물으셨다.
왕복서를 합송하는 것을 논의하시고, “난자가 몇 개 있습니다.”하는 스님께는 “찾아서 메모해야지. 그래야 공부하는 맛이 나지.”라고도 하셨다.
그러는 중간중간 “절하고는 송구영신이란다. 하하하”하고 웃으셨다. 영문 모르는 스님께는 “스님도 송구영신 잘하세요.”라고 하시면서 또 즐겁게 웃으셨다.
“전 번에 빠졌지 스님? 난 온 사람은 몰라도 안 온 사람은 알아 하하하”
큰스님은 ‘바쁜 생활전선에서 한 번씩이라도 모여서’ 공부를 하는 것이 더 중요한 행사라고 하셨다.
“신심나지? 스님들이 많이 와서?” 하고 문득 생각난 듯이 물으시기도 하셨다.
페이스북을 시작하신 이야기도 하셨다.
“페이스북이 화엄경의 인다라망 경계문과 똑같애. 오늘 이야기 할거야.”
명절이라서 풍성하시다고 하신 것처럼 많은 분들이 세배를 올리셨다. 이제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진짜 새해가 시작되는 것 같았다.
이윽고 상강례
법회의 시작
<유인물>
大方廣佛華嚴經 往復序 5 (제12강, 11년 1월 31일)
제7門, 이익을 이룸에 한꺼번에 뛰어넘다[成益頓超]
<1> 初二 總顯高深 權小莫測
若夫高不可仰은 則積行菩薩도 曝腮鱗於龍門이오
높아서 가히 우러러 보지 못함은 수행을 쌓은 보살도 뺨의 비늘을 용문에 쬐는 것이요,
深不可闚는 則上德聲聞도 杜視聽於嘉會로다
깊어서 가히 엿보지 못함은 덕이 높은 성문도 보고 듣는 것이 아름다운 법회에 막혔도다.
<2>後八 正明成益 遍益頓圓
見聞爲種이라 八難에 超十地之階하고
보고 듣는 것이 종자가 됨이라 팔난에서도 십지의 단계를 넘어가고,
解行在躬이라 一生에 圓曠劫之果로다
이해와 실천이 몸에 있음이라 일생에 광겁의 불과를 원만했도다.
師子奮迅에 衆海가 頓證於林中이오
부처님의 사자분신삼매에 대중들은 서다림에서 다 증득하고,
象王廻旋에 六千이 道成於言下로다
코끼리가 몸을 돌림에 육천 비구가 언하에 도를 이뤘도다.
啓明東廟에 智滿이 不異於初心이요
복성동쪽 대탑묘처에서 열어 밝히니 지혜가 가득함이 초심과 다르지 않고,
寄位南求에 因圓이 不踰於毛孔이로다
지위에 의지하여 남쪽으로 구함에 인행이 원만함이 모공을 넘지 아니했도다.
剖微塵之經卷에 則念念果成이요
미진과 같은 경전을 쪼갬에 순간순간에 불과를 이루고
盡衆生之願門에 則塵塵行滿이로다
중생의 서원을 다함에 먼지 먼지마다 수행이 가득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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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공양한 왕복서를 매번 한 번씩 읽고 강의에 들어가겠다. 돌아가셔서는 이것이 꼭 ‘여시아문’으로 이어지시기 바란다.
*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왕복서(往復序) 다섯 번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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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門, 성익돈초(成益頓超) : 이익을 이룸에 한꺼번에 뛰어난다
지금까지 화엄경 전반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제7문부터는 입법계품 이야기이다.
입법계품은 선재동자라고 하는 평범한 젊은이가 발심하여 성불에 이르기까지의 내력이다. 53선지식을 한 분 한 분 찾아다니는 선재동자는 모든 불자의 모델이다. 청량스님은 이 서문에서 입법계품 내용을 뼈대만 추려서 간략하게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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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초이(初二) 총현고심(總顯高深) 명권소막측(明權小莫測)
약부고불가앙(若夫高不可仰)은 :높아서 가히 우러러 보지 못함은. 화엄경의 경지가 다른 경전하고 비교했을 때 그 높이가 이루 말 할 수 없이 높다.
즉적행보살(則積行菩薩)도 : 수행을 상당히 쌓았다는 보살도
폭시린어용문(曝腮鱗於龍門)이요: 용문에 뺨을 슬쩍 비추기만 하고 더 이상은 뛰어 오르지 못하는 경지다.
용문은 등용문이다. 전설에 보면 미꾸라지가 등용문을 통과하면 용이 되고 그렇지 못하면 이무기가 된다. 물고기가 용으로 승천하려면 그 용문을 뛰어 올라야 된다.
보살도 뛰어 올라야 부처가 되고 화엄경의 경지가 어떤 것인지 이해하고 맛볼 수가 있다.
그런데 폭시린어용문이란 다 뛰어오르지 못하고 뺨의 비늘을 용문에 쬐이는 것으로 끝난다는 이야기다. 아득한 폭포가 있다고 하면 그 높은 폭포를 훌쩍 뛰어서 바라보기만 할 뿐 더 이상을 뛰어오르지 못하는 정도다. 화엄경의 경지가 다른 경전과 비교하여 그렇다는 것이다. 이것은 높은 차원에서의 화엄경이고 다음으로는 깊은 차원에서의 화엄경을 이야기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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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불가규(深不可闚)라 :깊고 깊어서 가히 엿보지 못하는 것은
즉상덕성문(則上德聲聞)도 :덕이 아주 높은 성문들. 여기는 사리불, 목건련, 수보리, 가섭, 아난과 같은 부처님의 10대 제자들을 말한다. 그런 이들이 화엄경에 다 나오는데
두시청어가회(杜視聽於嘉會)로다 : 보고 듣는 것이 가회(嘉會)에 막혔다. 가회라고 하는 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법회 즉 이 화엄법회이다. 서울에도 가회동이 있는데 이와 똑같은 글자를 쓴다. 왕복서의 이런 말은 워낙에 좋다.
높은 성문들도 아주 근사한 법회가 열린다는 소문만 들었지 그 법회의 주인공이 누군지 어떤 보살들이 모이는지 어떤 법문을 설하는지 그 깊은 도리는 도대체 모른다.
상덕성문(上德聲聞)이 그 자리에 참석했음에도 자기 안목이 부족하고 수준이 못 미치다 보니 아름다운 법회가 있다는 소리에 그만 꽉 막혀서 그것으로써 끝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제대로 깊이 있게 이해를 못해서 그렇지 화엄경은 상상할 수 없는 정도의 법희선열을 맛볼 수 있는 경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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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후팔(後八) 정명성익(正明成益) 변익돈원(遍益頓圓)
견문위종(見聞爲種)이라 : 보고 듣는 것이 종자가 되는 입장이다. 앞서 화엄경이 높고 깊다는 것을 표현했다. 여기서는 화엄경을 우리가 가까이하고 인연을 맺게 되었을 때의 이익에 대해 말한다.
이근공덕(耳根功德)이라는 말이 있듯이 화엄경은 보고 듣는 공덕이 대단하다.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고 졸면서 들어도 종자가 된다. 마치 다이아몬드를 삼키는 것과 같다. 임자를 못 만난 다이아몬드가 우리 창자 속으로 들어가서 대변으로 똥통으로 거름더미로 논으로 밭으로 굴러다녀도 결국은 변색도 되지 않고, 값도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 가치를 그대로 가지고 있다. 우리가 화엄경을 보고 들은 인연은 그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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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난(八難)에 : 팔난은 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을 만날 수 없는 여덟 가지 어려운 조건을 말한다.
ⓛ지옥, ②아귀, ③축생은 불법을 만나기가 어렵다.
④장수천(長壽天)이라고 하는 오래 사는 세상에 태어나도
‘우리가 수천수만 년을 살 텐데 불법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하는 생각을 한다.
⑤북울단월(北鬱單越), 울단월이라고 해서 이 세상에서 제일 풍요롭고 넉넉하고 호화롭게 사는 세계의 사람들도 불교 공부를 잘 안한다. 지금 우리사회로 치면 돈 많은 부자나 벼슬이 높은 사람들이 이런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춥고 배고픈 사람이 도 닦을 마음을 낸다[기한(飢寒)에 발도심(發道心)]’이라는 말이 있듯이 가난한 사람이 불교 공부를 잘하고 신심이 있다.
⑥맹롱음아(盲聾瘖瘂)는 눈멀고 귀먹은 사람이다. 요즘은 점자책도 있고 여러 가지 활동으로 포교하지만 이들 역시 불법 만나기가 쉽지 않다.
우리는 우선 눈이 열려있으니까 사찰을 보거나 관세음보살 같은 불상을 보면 신심이 난다.
스님들이 이렇게 공부하는 모습을 두 눈으로 환히 보면 없던 신심도 저절로 난다.
불법을 만났을 때 복을 많이 짓고 공덕을 많이 닦고 좋은 일을 많이 해야 한다. 그래서 보다 더 좋은 인생을 누릴 수 있도록 해야 된다. 행여 다음 생애에 불법을 만나지 못하게 된다면 그것이 가장 큰 손실이다.
8난 중에 일곱 번째는 ⑦세지변총(世智辯聰)이다. 세속적인 꾀나 총명이 늘어서 참되고 바른 진리의 말씀에 대해선 관심 없으며 종교적인 성향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의 알량한 지식과 꾀로 이리 저리 꿰어 맞추어서 선(禪)도리, 화엄도리, 불법을 자기 마음대로 해석한다. 진정한 불법이 가슴에 들어가지 않으며 불법이 영혼의 밭에 심어지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⑧불전불후(佛前佛後)라고 해서 불교가 없을 때 태어나거나 불교가 이 땅에서 사라졌을 때 태어나면 불교를 못 만난다. 이것을 ‘부처님이 살아계실 때’라고 해석하면 잘못된 것이다.
부처님이 열반하신 후에도 불법이 살아있다면 오히려 후대일수록 공부할 것이 훨씬 많다. 우리는 달마스님 이후에 태어났으니까 달마스님을 안다. 육조스님 이후에 태어났으니까 육조스님을 안다. 사실 늦게 태어난 것이 이렇게 홍복이다.
불전불후(佛前佛後)라고 하는 것은 불교가 성한 시대가 아닐 때를 말하는데, 다른 조건은 다 갖춰도 불교가 없다면 불교와 인연 맺을 길이 없다.
초십지지계(超十地之階)하고 : 팔난이라고 하는 여덟 가지 어려운 조건을 가진 사람도 화엄경만 인연을 맺으면 십지보살위 까지도 올라간다. 십신(十信) 십주(十住) 십행(十行) 십회향(十廻向) 다음이 십지(十地)이다. 십주 십행 십회향을 삼현(三賢)이라고 해서 현인의 지위라고 하고 십지는 십성(十聖)이라고 해서 성인의 지위라고 한다.
팔난의 악조건에 있는 사람도 화엄경에 입문하고 제대로 인연만 맺으면 성인의 지위까지도 훌쩍 뛰어넘는다.
청량스님의 화엄경에 대한 이해와 안목이 이와 같이 투철하고 뛰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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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행재궁(解行在躬)이라 : 이해와 실천이 몸에 있다. 자기 자신에게 있다는 말이다.
일생(一生)에 : 이 일생은 선재동자의 일생이다. 선재동자는 일생에
원광겁지과(圓曠劫之果)로다 : 불과를 다 이뤄 마쳤다. 부처님께서 중생들을 굽어 살펴보니 그 수준이 각양각색이었다. 부처님께서 그 중생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시려고 별별 방편을 다 나열하셨다. 그러다보니 불교는 워낙 방편이 많다. 삼아승지겁 동안 닦아야 부처를 이룬다는 말도 방편 속 이야기다.
화엄경은 그런 방편이 필요하지 않다. 있는 그대로, 곧이곧대로 이야기 한다. 그러므로 화엄경의 선재동자는, 방편에서는 삼아승지겁이 지나야 이룰 수 있다고 한 불과를 일생동안에 다 이룬다.
*사자분신(師子奮迅)에 :화엄경에는 여러 가지 삼매를 보인다. 화엄삼매도 있고 해인삼매도 있다. 해인삼매가 중요한데 사자분신 역시 삼매의 이름이다. 사자가 짐승을 잡기 위해서 힘을 모아서 한 번 용을 쓰며 몸을 확 뻗듯이 부처님의 모든 능력과 힘이 여기에 다 갈무리 된다. 부처님이 그러한 사자분신 삼매에 드시니.
중해돈증어림중(衆海頓證於林中)이오 : 무수한 보살들이 서다림[임중(林中)] 숲에서 한꺼번에 다 깨달아 버렸다. 화엄경의 소득을 이렇게 나열한다. 중해(衆海)라고 하는 것은 무수한 무량아승지겁 보살들을 말한다. 선재동자가 53선지식을 만나려고 출발하는데 무수한 보살들이 동참을 하고 한꺼번에 깨달아 버린다. 화엄경을 잘 보면 소득이 이렇게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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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왕회선(象王廻旋)에 : 코끼리가 돌아보는 모습이 상왕회선이다. 코끼리는 체격이 크니까 아주 천천히 돌아본다.
입법계품에는 문수보살을 문수동자라고 표현하는데, 사리불이 6천 비구를 데리고 문수보살을 친견하도록 안내한다. 그러자 문수동자가 탄 코끼리가 아주 천천히 대중을 돌아보는 것이다.
육천(六千)이 도성어언하(道成於言下)로다 : 코끼리가 그렇게 한 번 돌아보는데 6천 명의 비구들이 한 마디 아래에 도를 이뤘더라.
화엄경을 공부하면 이런 좋은 점도 있다. 우리가 입법계품까지 참고 공부하다 보면 이런 자세한 설명들을 경에서 다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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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명동묘(啓明東廟)에 : 복성이라고 하는 성이 있는데 그 동쪽에 대탑묘처가 있다. 복성동쪽 대탑묘처에서 이 화엄의 도리를 열어 밝힌다.
지만(智滿)이 불이어초심(不異於初心)이요 : 부처의 경지에 오른 그 지혜가 가득한데 그것은 처음 출발한 초심과 다르지 않다. 초발심시변정각(初發心時便正覺)이라고 하였듯이 처음의 한 마음속에 불과의 지혜인 부처님의 지혜가 다 들어있다는 것이다. 많은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데, 청량스님은 이렇게 글도 아름답게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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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위남구(寄位南求)에 :남쪽으로 갔다고 해서 남구이다. 선재동자가 53선지식을 친견하기 위해서 복성동쪽 대탑묘처에서 출발해서 남쪽으로, 남쪽으로 일백 이십 성을 지나서 53선지식을 한 분 한 분 친견한다. 그 친견내용이 화엄경의 입법계품이다.
인원(因圓)이: 인행이 원만함이
불유어모공(不踰於毛孔)이로다 : 모공을 넘지 아니했도다.
이 모공은 보현보살의 모공이다.
선재동자가 53선지식을 친견하는 여정을 대충 보아도 지나간 성(城)의 숫자는 일백 이십 성이고, 어떤 선지식은 16년에 걸려 만났다. 대충 잡아도 그 햇수가 수백 년이 걸린다.
그렇게 오랜 세월 멀고 먼 길을 갔지만, 보현보살의 한 모공을 벗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가 늘 외우는 법성게에 한 먼지 속에 시방이 다 들어있다는 뜻으로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이라는 표현이 있다. 시방이라고 하는 공간만이 아니라 아승지의 시간 역시 이 먼지 속에 다 들어 있다는 말이다. 신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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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미진지경권(剖微塵之經卷)에 :미진 속에 있는 경권을 쪼갠다는 것은 그 이치를 안다는 뜻이다.
미진의 경권이라고 하는 것은 경전에 있는 이야기다. 먼지 속에 화엄의 도리가 다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면
즉념념과성(則念念果成)이요 :순간순간 그대로 성불이다.
이 화엄경이 어디에서 나왔는가 하면 티끌 속에 있었다. 한 먼지 속에 화엄경이 있었다.
화엄의 이치는 우주 만유가 존재하고 있는 존재의 원리를 그대로 표현하면서 거기에 맞게 설해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화엄경을 먼지 속에서 가져왔는데 어떤 특정 먼지만 화엄경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먼지 먼지마다 화엄경이 다 들어있다는 것이다. 안목 밝은 사람은 이 무거운 책을 가지고 다닐 필요가 없다. 일거수일투족 천지 만물 삼라만상 속에 전부 화엄경이 다 들어있기 때문이다.
이 말은 잘 기억하기 바란다. 화엄경을 이해하는 아주 좋은 열쇠가 된다. 이런 내용이 납득이 안가더라도 말만이라도 기억해 놓으면 언젠가 가슴에 탁 와 닿을 때가 있을 것이다.
‘두두가 비로요 물물이 화장이다’ ‘낱낱이 다 비로자나 부처님이고 물물이 다 화장찰해더라’ 라고 하는 말 역시 이런 내용에서 정리된 말이다. 두두 물물 속에 화엄경이 있고, 두두 만물이 곧 화엄경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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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생지원문(盡衆生之願門)에 :중생의 서원을 다함에
즉진진행만(則塵塵行滿)이로다 : 먼지, 먼지마다 수행이 가득하도다.
크게 무언가를 만들고 이루고 눈에 보이는 수행을 따로 쌓아야 하는 것이 아니다. 사물 하나하나, 천지 삼라만상 하나하나 속에 그대로 우리의 수행이 가득하다는 것이다.
화엄의 도리를 궁구하면 기가 막힌 도리가 있다. 어떤 상황도 다 용납이 되고 다 이해가 된다. 그럴 수 없이 편안하다.
사실 이렇게 설명해서는 이 서문의 깊고 오묘한 맛을 천 분의 일이나 볼까 말까이다.
마침 독송용으로 왕복서첩을 만들었으니까 이것을 가지고 조용히 읊조리고 즐기면서 그 속에 있는 의미를 몸소 잘 느끼고 체득하기 바란다. 그렇게 하는 것이 화엄의 도리를 제대로 공부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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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화엄경 98쪽인데 97쪽 뒤의 끝부분부터 한 번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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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의 첫 품인 세주묘엄품은 아직 서론 격이다. 부처님께서 부다가야 보리수 아래서 성도를 하셨다. 부처님은 성도하신 부다가야 보리수 아래 앉아계신다. 그 자리가 바로 사자좌이다. 그 법상에는 중보묘화와 윤대기폐와 급제호유같은 일체장엄구가 있고 거기에서 불찰미진수보살 마하살들이 쏟아져 나온다.
화엄경은 부처님이 성도를 하셨을 때의 정신세계를 그려놓은 것이다. 사자좌의 장엄 역시 그 깨달음의 안목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그 당시 무슨 그렇게 화려한 사자좌가 있었을 것이며, 보물들을 가져다가 그 자리를 장엄했겠는가. 그런 것은 아니다.
하지만 깨달음을 성취하신 부처님의 안목으로 볼 때는 풀을 깔고 바위 위에 올라앉았지만 그 풀은 이미 풀이 아니고, 바위는 바위가 아닌 것이다. 화엄경 서두에서 표현한 모습 그대로의 장엄한 풀과 바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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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는 세상을 바꾸는 일이 아니다.
불교는 나의 안목을 바꾸는 일이다.
우선 내 눈부터 고쳐놓는 것이 불교의 안목이다. 형상적인 나머지는 인연 따라 고치면 좋고, 못 고치면 못 고치는 대로 상관이 없다. 그것은 그대로 또 좋다. 이것이 불교의 안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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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 현실을 보는 나의 눈을 먼저 바꿔야 한다. 나의 안목, 나의 눈을 바꾸면 모든 문제는 해결이다. 그런 후에 인연 따라서 불사도 하고 집도 짓고 길도 내는 것이다.
세속의 안목은 눈에 보이는 현상부터 고치려고 하고 불교는 그것을 보는 내 눈부터 고치려고 한다. 그 점이 불교의 길과 세속의 길이 다른 점이다.
*
부처님이 깨달은 그 순간에 사자좌에서 무수한 보살이 나왔는데 그 보살들은 어떤 보살들인가, 이름을 다 같이 합송하겠다.
2, 菩薩名
其名曰海慧自在神通王菩薩摩訶薩과 雷音普震菩薩摩訶薩과 衆寶光明髻菩薩摩訶薩과 大智日勇猛慧菩薩摩訶薩과 不思議功德寶智印菩薩摩訶薩과 百目蓮華髻菩薩摩訶薩과 金焰圓滿光菩薩摩訶薩과 法界普音菩薩摩訶薩과 雲音淨月菩薩摩訶薩과 善勇猛光明幢菩薩摩訶薩이라 如是等이 而爲上首하사 有衆多佛刹微塵數가 同時出現하시니라
그들의 이름은 해혜자재신통왕(海慧自在神通王)보살마하살과 뇌음보진(雷音普震)보살마하살과 중보광명계(衆寶光明髻)보살마하살과 대지일용맹혜(大智日勇猛慧) 보살마하살과 부사의공덕보지인(不思議功德寶智印)보살마하살과 백목연화계(百目蓮華髻) 보살마하살과 금염원만광(金焰圓滿光)보살마하살과 법계보음(法界普音)보살마하살과 운음정월(雲音淨月)보살마하살과 선용맹광명당(善勇猛光明幢)보살마하살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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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들의 이름을 열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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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시등(如是等)이: 이와 같은 보살이
이위상수(而爲上首)하사 :상수가 되어서
유중다불찰미진수(有衆多佛刹微塵數)가 :무수한 불찰미진수가 있어서
동시출현(同時出現)하시니라 : (그 사자좌에서) 이와 같은 보살들이 무수히 쏟아진다.
분명히 이름도 있고, 족보도 있는 보살들이기 때문에 거짓은 아니다.
보살들이 무수히 쏟아졌는데, 간단히 말한다면 부처님이 깨닫고 나니까 두두 물물이 전부 보살이고 부처라는 것이다.
법화경의 차원에서는 ‘사람이 부처다’라고 나오지만, 화엄경의 차원에서는 사람만 부처이고 보살인 것이 아니라 두두 물물이 전부 부처이고 보살이다.
3, 供養雲
此諸菩薩이 各興種種供養雲하시니所謂一切摩尼寶華雲과 一切蓮華妙香雲과 一切寶圓滿光雲과 無邊境界香焰雲과 日藏摩尼輪光明雲과 一切悅意樂音雲과 無邊色相一切寶燈光焰雲과 衆寶樹枝華果雲과 無盡寶淸淨光明摩尼王雲과 一切莊嚴具摩尼王雲이라 如是等諸供養雲이 有佛世界微塵數어든 彼諸菩薩이 一一皆興如是供養雲하사 雨於一切道場衆海하야 相續不絶하시니라
이러한 이들이 상수가 되어 수많은 부처님 세계 티끌 수 같은 이들이 동시에 출현하였다.
이 모든 보살들이 제각기 갖가지의 공양드리는 구름을 일으키니 이른바 온갖 마니보배로 된 꽃구름과 온갖 연꽃의 묘한 향기구름과 온갖 보배가 원만한 광명구름과 끝없는 경계의 향기로운 불꽃구름과 일장마니(日藏摩尼)로 된 바퀴 같은 광명구름과 온갖 마음을 기쁘게 하는 음악소리구름과 그지없는 색상의 온갖 보배로 된 등불 광명불꽃구름과 온갖 보배로 된 나뭇가지의 꽃 열매구름과 다함없는 보배의 청정한 광명마니왕 구름과 모든 장엄구의 마니왕 구름이니라. 이와 같은 모든 공양드리는 구름들이 부처님 세계의 티끌수와 같이 있었다.
저 모든 보살들이 낱낱이 이와 같은 공양드리는 구름을 일으켜서 모든 도량의 대중들 바다에 쏟아 내리는 것이 서로 이어 끊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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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양의 구름을 일으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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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제보살(此諸菩薩)이 : 이 모든 보살들이
각흥종종공양운(各興種種供養雲)하시니 :각각 갖가지 공양구름을 일으켰다. 우리가 염불할 때 흥공(興供)이라고 한다. 공양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렇게 많은 보살들은 무엇을 하는가 하면 부처님이 계시니까 공양을 올리는 것이다.
공양운(供養雲)에서 운(雲)자가 붙은 것은 ‘풍성하다, 많다’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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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일체마니보화운(所謂一切摩尼寶華雲)과 : 소위 일체 마니보화운과
일체연화묘향운(一切蓮華妙香雲)과
일체보원만광운(一切寶圓滿光雲)과
무변경계향염운(無邊境界香焰雲)과
일장마니륜광명운(日藏摩尼輪光明雲)과
일체열의악음운(一切悅意樂音雲)과
무변색상일체보등광염운(無邊色相一切寶燈光焰雲)과
중보수지화과운(衆寶樹枝華果雲)과
무진보청정광명마니왕운(無盡寶淸淨光明摩尼王雲)과
일체장엄구마니왕운(一切莊嚴具摩尼王雲)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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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시등제공양운(如是等諸供養雲)이 : 이와 같은 여러 가지 공양운이
유불세계미진수(有佛世界微塵數)어든: 여러 가지 불세계미진수가 있다.
*
피제보살(彼諸菩薩)이 : 저 모든 보살들이
일일개흥여시공양운(一一皆興如是供養雲)하사 : 낱낱이 다 이와 같은 공양 구름을 일으켜서
우어일체도량중해(雨於一切道場衆海)하야: 일체도량중해에 비 내리듯이 쏟아 부어서, 그 비 내리는 것이
상속부절(相續不絶)하시니라: 계속 이어진다. 세주묘엄품의 앞에는 39중 온갖 신장들이 법회에 있었고 보살들도 많았다. 이제 세주묘엄품의 끝에 와서는 부처님이 앉아계시는 사자좌를 이야기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 사자좌에는 무수한 보살들이 있는데 그 보살들은 자기 할 일도 다 하고 나중에는 전부 노래도 한 마디씩 부르며 부처님을 찬탄한다. 그러한 내용들이 이어진다.
4, 右遶世尊
現是雲已에 右遶世尊하사 經無量百千帀하시며 隨其方面하야 去佛不遠에 化作無量種種寶蓮華師子之座하고 各於其上에 結跏趺坐하시니라
이러한 구름을 나타내고 나서 세존의 오른쪽으로 한량없이 백 천 번을 돌았다.
그들이 온 방향을 따라서 부처님과 멀지 아니한 곳에 한량없는 갖가지의 보배로 된 연꽃사자좌를 만들고 각각 그 위에 결가부좌(結跏趺坐)하고 앉았다.
*
부처님의 오른쪽으로 한량없이 돌다
*
현시운이(現是雲已)에 : 이러한 구름을 나타낸 뒤에
우요세존(右遶世尊)하사 :오른쪽으로 세존을 도시사, 우요삼잡이니 우요세존이니 하는 말은 오른 쪽으로 세존을 돌았다고 하는 뜻이다. 글자대로 봤을 때 세존을 중심으로 오른쪽으로 돌았다는 이야기는 어디에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도는 것이 맞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시계 방향으로 도는 것이 맞다고 주장한다.
나는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도는 것이 옳을 것 같다.
그런데 이것은 어느 쪽이 맞다고 할 수 없는 문제이므로 여러 스님들의 각자 연구에 맡기겠다.
*
경무량백천잡(經無量百千帀)하시며 :한량없는 백 천 바퀴를 돌았다.
수기방면(隨其方面)하야 :그 방면을 따라서
거불불원(去佛不遠)에 :부처님과 거리가 그렇게 멀지 아니한 곳에
화작무량종종보연화사자지좌(化作無量種種寶蓮華師子之座)하고: 무량종종보연화사자좌를 변화해서 만들었다. 부처님의 사자좌에서 나와서 부처님을 돌았으니까 이제 보살들도 자리에 앉아야 한다.
각어기상(各於其上)에: 각각 그 위에
결가부좌(結跏趺坐)하시니라 : 결가부좌하고 앉았더라.
5, 歎德
是諸菩薩의 所行이 淸淨하야 廣大如海하며 得智慧光하야 照普門法하며 隨順諸佛의 所行無碍하며 能入一切辯才法海하며 得不思議解脫法門하며 住於如來普門之地하며 已得一切陀羅尼門하야 悉能容受一切法海하며 善住三世平等智地하며 已得深信廣大喜樂하며 無邊福聚를 極善淸淨하며 虛空法界를 靡不觀察하며 十方世界一切國土의 所有佛興을 咸勤供養하시니라
이 모든 보살들은 행이 청정하여 넓고 크기가 바다와 같으며 지혜의 빛을 얻어서 보문법을 비추며 모든 부처님을 수순해서 행이 걸림이 없으며 온갖 변재의 법 바다에 능히 들어가며 부사의한 해탈법문을 얻었으며 여래의 넓은 문의 지위에 머물며 이미 모든 다라니문을 얻어서 일체 법의 바다를 다 수용하며 삼세에 평등한 지혜의 땅에 잘 머물며 깊은 믿음과 넓고 큰 즐거움을 이미 얻었으며 끝없는 복 무더기는 매우 훌륭하고 청정하며 허공 법계를 모두 다 관찰하며 시방세계의 모든 국토에 출현하시는 부처님을 모두 부지런히 공양하였다.
*
보살들의 덕을 찬탄하다
*
이 보살들의 수준과 교양은 어느 정도이고, 지식과 행동과 법력은 어떤가 하는 것을 보여준다.
*
시제보살(是諸菩薩)의 소행(所行)이 청정(淸淨)하야 : 이 모든 보살들의 하는 행이 청정하다.
청정하다고 하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깨끗하다는 것이 아니라 텅 비었다는 뜻이다.
광대여해(廣大如海)하며: 광대하기가 바다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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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지혜광(得智慧光)하야 : 지혜의 빛을 얻어서
조보문법(照普門法)하며: 보문법을 비춘다. 관세음보살을 말할 때 보문시현(普門示現)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법화경에서 자비의 모습을 뜻하는 것이다.
화엄경의 보문법(普門法)은 다르다. 화엄경의 보문법은 일문에서 일체문을 다 섭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십바라밀 중의 보시바라밀 속에는 보시바라밀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나머지 아홉 바라밀이 다 포함되어 있다. 결국은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이다. 한 먼지 속에 시방세계가 다 포함되는 것이다. 이것이 보문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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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내가 페이스북(Facebook)을 배워서 하고 있다.
하다 보니 일미진중함시방, 보문법과 너무 맞아 떨어진다. 십현문에서 배운 인다라망 경계와 똑같다. 인다라 구슬 구슬마다 서로를 비추고 비춰주는 것과 같이 페이스북이라는 것도 그렇다. 일단 내가 가입을 해서 누구 한 사람을 초대한다. 평소에 아는 사람을 주로 초대하여 ‘당신과 친구가 되겠습니다’하고 이야기도 나누고 정보도 주고받게 된다. 그렇게 되면 아는 사람이 알고 있는 다른 사람의 페이스북도 볼 수 있다.
물론 그 다른 사람을 통해 그 사람이 알고 있는 또 다른 사람의 페이스북도 볼 수 있다.
그런 식으로 한 사람에 의해 세상 사람들이 다 딸려온다. 요즘 유행하고 있는 아주 신기한 기술이다. 스님들도 세상 돌아가는 것을 알아야 된다. 이것이 한 문에서 일체문이 벌어지는 보문법의 도리이고 일미진중함시방이다. 한 사람을 알면 일체 사람이 다 따라오기 때문에 어떤 사람을 알려면 그 길을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그 사람이 이야기 올려놓은 것이며 사진 올려놓은 것도 다 볼 수가 있다. 화엄경의 보문법이라는 것이 이런 뜻인데 보살들은 그런 것을 다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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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순제불(隨順諸佛)의 소행무애(所行無碍)하며 : 제불의 행한 바 걸림이 없는 도리를 다 수순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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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입일체변재법해(能入一切辯才法海)하며 : 일체 변재의 법의 바다에 능히 들어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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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부사의해탈법문(得不思議解脫法門)하며 : 불가사의한 해탈법문을 얻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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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어여래보문지지(住於如來普門之地)하며 : 여래의 보문지(普門地)에 머물렀다. 일체삼라만상과 하나가 된 경지에 이르렀다.
깨닫게 되면 한사람의 경지가 아니고 보문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부처님은 이미 일체다. 우주 삼라만상이다. 이 보살들도 이미 그런 경지에 머물고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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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득일체다라니문(已得一切陀羅尼門)하야 :이미 일체 다라니문을 얻어서
실능용수일체법해(悉能容受一切法海)하며 : 모두모두 다 일체 법을 전부 받아들이고 수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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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주삼세평등지지(善住三世平等智地)하며 : 삼세평등지지에 잘 머문다. 삼세평등지지라고 하는 것은 언제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더라도 매(眛)하지 않는 지(地)에 잘 머물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는 공부할 때는 공부하는 것 같은데 공부를 놓아버리면 매해 버린다. 금생에 공부를 잘해도 죽을 때 매하고 다시 태어날 때 매해서 두 번이나 크게 매해 버리니까 전부 캄캄하다.
그래도 죽을 때 아무 것도 못 가져가지만 선업이 됐든 악업이 됐든 업은 다 따라가게 되어있어서 이렇게 또 펼쳐지는 것이다.
기억은 못해도 우리가 과거에 이렇게 다 같이 공부한 그 인연이 남아있어서 또 이렇게 공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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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득심신광대희락(已得深信廣大喜樂)하며 :깊은 믿음으로써 아주 넓고 큰 기쁨과 즐거움을 이미 얻었으며, 또 이 보살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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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변복취(無邊福聚)를 :끝없는 복의 무더기를
극선청정(極善淸淨)하며: 지극히 훌륭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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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공법계(虛空法界)를 : 허공 법계를
미불관찰(靡不觀察)하며 : 다 관찰해 환하게 꿰뚫어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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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방세계일체국토(十方世界一切國土)의 :시방에 있는 일체국토의
소유불흥(所有佛興)을 :부처님이 출현하면
함근공양(咸勤供養)하시니라 : 어디든지 다 가서 부지런히 공양한다. 부처님이 계신 곳은 어디든지 가서 열심히 공양 올린다.
이것이 이 사자좌에서 나온 보살들의 덕행이다. 그들은 평소에 이렇게 살고 있다.
6, 偈頌讚歎
(1) 海慧自在菩薩의 讚歎
爾時에 海慧自在神通王菩薩摩訶薩이 承佛威力하사 普觀一切道場衆海하고 卽說頌言하사대
諸佛所悟悉已知호니 如空無碍皆明照하사
光遍十方無量土하야 處於衆會普嚴潔이로다
如來功德不可量이라 十方法界悉充滿하사
普坐一切樹王下하시니 諸大自在共雲集이로다
佛有如是神通力하사 一念現於無盡相하시니
如來境界無有邊이어든 各隨解脫能觀見이로다
如來往昔經劫海에 在於諸有勤修行하사
種種方便化衆生하야 令彼受行諸佛法이로다
毘盧遮那具嚴好하사 坐蓮華藏師子座하시니
一切衆會皆淸淨하야 寂然而住同瞻仰이로다
摩尼寶藏放光明하야 普發無邊香焰雲하며
無量華纓共垂布어든 如是座上如來坐로다
種種嚴飾吉祥門에 恒放燈光寶焰雲하야
廣大熾然無不照어든 牟尼處上增嚴好로다
種種摩尼綺麗牕과 妙寶蓮華所垂飾에
恒出妙音聞者悅이어든 佛坐其上特明顯이로다
寶輪承座半月形이요 金剛爲臺色焰明이라
持髻菩薩常圍遶어든 佛在其中最光耀로다
種種變化滿十方하야 演說如來廣大願일새
一切影像於中現이어든 如是座上佛安坐로다
그때 해혜자재신통왕 보살마하살이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모든 도량의 대중바다를 두루 살피고 게송으로 말하였다.
모든 부처님이 깨달은 것을 이미 다 알되
허공처럼 걸림 없이 다 밝게 비추사
광명은 한량없는 시방 국토에 두루하며
대중 모임에 계시어 널리 엄정하시네
여래의 공덕 헤아릴 수 없어
시방 법계에 다 충만 하사
모든 보리수 밑에 널리 앉으시니
크게 자재한 이들이 구름처럼 모이네
부처님은 이러한 신통력이 있으사
한 생각에 그지없는 모양을 나타내시니
여래의 경계는 끝이 없어
각기 해탈을 따라 보도다
여래가 지난 옛적 겁을 지나면서
세간에서 부지런히 수행하사
갖가지 방편으로 중생을 교화해서
그들에게 모든 불법을 받아 행하게 하네
비로자나부처님이 상호 갖추사
연꽃사자좌에 앉으시니
모든 대중이 다 청정하여
고요히 머물러서 우러러보네
마니보배 창고에서 광명을 놓아
끝없는 향기불꽃구름을 널리 내며
한량없는 꽃다발을 드리웠는데
이러한 자리에 여래가 앉으셨네
갖가지로 꾸며놓은 길상문(吉祥門)에서
등불 빛과 보배로운 불꽃구름을 항상 놓고
넓고 크게 치성하여 두루 비추니
모니(牟尼) 부처님 그 위에 서 더욱 장엄하도다
갖가지 보배로 된 화려한 창문에
보배로 된 연꽃들이 드리웠으며
항상 묘한 소리 내어 듣는 이들 기뻐하는데
부처님이 그 위에 앉아 훤칠하시네
자리를 받든 보배바퀴 반달과 같고
금강으로 좌대 되어 밝게 빛나며
육계 있는 보살들이 늘 둘러 있는데
부처님이 그 중에서 가장 빛나네
갖가지로 변화하여 시방에 가득하고
여래의 광대한 서원(誓願)을 연설하는데
모든 영상이 그 속에 나타나며
이러한 자리 위에 부처님이 앉으셨네
*
보살들이 부처님의 수승한 덕을 게송으로 찬탄하다
*
해혜자재보살(海慧自在菩薩)이 부처님의 몸과 자리를 찬탄하다
*
소개만 하면 안 된다. 화엄경은 종이나 장소나 시간 제약이 없이 어지간한 보살들이라면 다 노래 한 마디씩을 하도록 되어있다. 다른 경전과 다른 점이다.
*
그때에 해혜자재신통왕보살마하살(海慧自在神通王菩薩摩訶薩)이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서 일체도량의 중해(衆海)를 널리 관찰하고 곧 게송을 설해 말하대
*1
제불소오실이지(諸佛所悟悉已知)호니 : 모든 부처님이 깨달으신 것을 이미 다 다 알았다. 그 안 것을
여공무애개명조(如空無碍皆明照)하사 : 허공이 걸림이 없듯이 그렇게 다 밝게 비춰본다. 부처님이 깨달은 것은 끝없는 경계인데도 다 남김없이 밝게 비춘다.
광변시방무량토(光遍十方無量土)하야 :가르침의 빛이 시방 한량없는 국토에 두루 두루 해서.
전깃불이나 태양이 비추듯이 비춘 적은 없다. 그런 불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불교는 교광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그대로 빛이다. 그래서 교광(敎光)이라는 말을 쓴다.
처어중회보엄결(處於衆會普嚴潔)이로다 : 많은 대중이 있는 곳에 있으면서 널리 깨끗하게 장엄하도다.
*2
여래공덕불가량(如來功德不可量)이라: 여래의 공덕은 가히 헤아릴 수 없다.
시방법계실충만(十方法界悉充滿)하사 : 시방 법계에 다 가득 차 있다. 이것이 무슨 말인가? 우리가 처해있는 현실 이대로가 여래의 공덕이다. 이 현실이 다 여래의 공덕으로 이해가 되어야 한다.
특별히 어떤 여래의 공덕을 만들어 모셔놓고 ‘이것이다’
라고 한다면 몇 푼어치가 되겠는가?
화엄경의 안목은 현재 있는 그대로를 여래의 공덕이라고 본다.
보좌일체수왕하(普坐一切樹王下)하시니: 일체 보리수나무 밑에 널리 앉으시니. 부처님이 깨달은 그 장소는 전부 보리수이고 보리수 아래이다.
제대자재공운집(諸大自在共雲集)이로다 : 크고 큰 여러 보살들이 자재하게 함께 구름처럼 몰려오더라.
*3
불유여시신통력(佛有如是神通力)하사 : 부처님은 이와 같은 신통력이 계시사
일념현어무진상(一念現於無盡相)하시니: 한 순간에 다 함이 없는 모양을 나타내시니
여래경계무유변(如來境界無有邊)이어든 : 여래의 경계는 가없거든
각수해탈능관견(各隨解脫能觀見)이로다 : 각각 해탈을 따라서 능히 관견하도다.
앞에서 여러 번 보았듯이 보살들은 각각 이러이러한 해탈을 얻었다고 하는 소개가 있었다. 이 대목이 바로 그 말이다. 불교는 한 마디로 표현하면 해탈이다. 그 해탈은 사람마다 다 같을 수가 없다. 궁극에 가면 하나가 되겠지만, 다 각기 자기 깜냥의 해탈이 있다. 보살마다 각각의 해탈이 다 달랐듯이 우리도 그렇다. 불교에 인연해서 1년이 됐든지 10년이 됐든지 오래 됐든지 상관없이 각각 나름대로 얻은 공덕이 있다. 안목이 있다. 그것을 해탈이라고 할 수 있다. 안목만치 해탈이 되어야 한다. 안목만치 자유로워야 된다. 그래서 해탈감을 누리면서 사는 것이 불교의 궁극목표다.
*4
여래왕석경겁해(如來往昔經劫海)에 :여래가 지난 날 아주 오랜 세월에
재어제유근수행(在於諸有勤修行)하사 :제유에 있으면서 부지런히 수행했다. 제유는 지옥, 아귀, 축생, 인도, 천도, 아수라 이런 육도의 세계를 말한다.
부처님이 옛날에 제유에서 육도중생과 더불어 있으면서 부지런히 수행했다. 참 좋은 말이다.
부처님이 수행할 때 선방에서 공부했다는 소리도 없고 산중이나 법당이나 토굴에서 무엇을 하면서 공부했다는 소리가 없다. 지옥중생 아귀중생 아수라중생과 더불어 부지런히 수행했다. 이것이 진짜 수행이다.
나는 이 구절에 별을 쳐 놓았다.
요즘 복지활동을 많이 하는데, 복지활동 그 자체가 좋은 수행이다. 부처님이 오랜 옛날 육도중생과 더불어 수행한 것과 같은 것이다.
종종방편화중생(種種方便化衆生)하야 : 가지가지 방편을 써서 중생들을 교화한다.
영피수행제불법(令彼受行諸佛法)이로다 : 그 중생들로 하여금 모든 불법을 받아서 행하도록 한다.
나는 급식활동을 해도 그 밥 한 그릇에 불법을 얹어서 주라고 말한다. 부처님 사진이라도 걸어놓고 하라는 것이다. 부처님 사진을 눈으로 한 번 흘낏 보는 인연이라도 맺어 주어야 한다. 그것이 무슨 공덕일까 하지만 보는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제8 아뢰야식 속에 박혀진다.
그러다가 인연이 딱 맞아 떨어진 사람은 그야말로 느낌이 와서 그 때부터 발심하여 신심을 일으킨다. 그런 수도 얼마든지 있다. 누구도 모르는 일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우리가 복지활동을 하되 무슨 방법이든지 그 상황에 맞추어서 불법을 얹어 주라고 한다.
여기도 부처님은 육도중생과 더불어 살며 종종방편으로 중생들로 하여금 여러 가지 불법을 받아서 행하게 한다,
네 번째 이 게송은 법당마다 전부 크게 써서 붙여놓으면 좋을 것 같다.
*5
비로자나구엄호(毘盧遮那具嚴好)하사 : 비로자나 법신 부처님은 아름다운 장엄을 갖추어서
좌연화장사자좌(坐蓮華藏師子座)하시니 : 연꽃으로 아로 새겨진 그 사자좌에 앉아계시는데
일체중회개청정(一切衆會皆淸淨)이라 : 모든 대중들은 거기에 걸맞게 아주 뛰어나고 훌륭하다.
적연이주동첨앙(寂然而住同瞻仰)이로다 : 고요히 법석에 머물면서 함께 부처님을 우러러 보고 있다. 그 모습을 상상해보라.
*6
마니보장방광명(摩尼寶藏放光明)하야 : 마니보배가 광명을 놓아서
보발무변향염운(普發無邊香焰雲)하며 : 끝없는 향기불꽃구름을 널리 발하며
무량화영공수포(無量華纓共垂布)어든 :한량없는 꽃다발이 함께 드리워져 있거든. 화영은 꽃다발이다.
여시좌상여래좌(如是座上如來坐)로다 : 이와 같은 자리 위에 여래가 앉아 있더라.
*7
종종엄식길상문(種種嚴飾吉祥門)에 : 가지가지로 꾸며놓은 길상한 문에
항방등광보염운(恒放燈光寶焰雲)하야 : 항상 등광의 보배 불꽃을 놓아서
광대치연무불조(廣大熾然無不照)어든 : 광대하고 치연하게 다 비추거든
모니처상증엄호(牟尼處上增嚴好)로다 : 부처님께서 그 위에 앉아 계시사 더욱 더 잘 꾸며져 있더라.
모니는 석가모니 부처님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화신부처님이다. 그런데 화엄경에서는 법신과 같이 본다.
화엄경에서는 비로자나불이나 노사나불 석가모니불, 법신이나 화신이나 보신을 똑같이 하나로 본다.
*8
종종마니기려창(種種摩尼綺麗牕)과 : 가지가지 마니로 꾸며놓고 아름다운 비단으로 드리운 아름다운 창과
묘보연화소수포(妙寶蓮華所垂飾)에 : 아름다운 보물로써 만들어 놓은 그 연꽃이 잘 꾸며져 있는 곳에
항출묘음문자열(恒出妙音聞者悅)이어든 : 그치지 않고 항상 아름다운 소리가 나와서 듣는 사람을 기분 좋고 기쁘게 한다.
불좌기상특명현(佛坐其上特明顯)이로다 :부처님이 그 위에 턱 앉아계셔서 특별히 뚜렷이 밝게 드러나 있다.
부처님을 이렇게 한껏 표현한다. 이것은 어떤 현상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가진 부처님에 관한 상념을 상징적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3천 년 전 부처님이 오셔서 지금까지 우리에게 무수한 혜택을 주셨다. 그분의 생애를 얼마나 알든지 간에 모든 불자에게는 부처님이 하늘같은 존재이다. 그런 것을 여기에 이렇게 그려 놓은 것이다.
*9
보륜승좌반월형(寶輪承座半月形)이요 : 보배바퀴로써 부처님이 앉은 법좌를 받들고 있는데 반달같이 되었다.
그 위에 부처님의 자리가 있고, 부처님이 앉아계신다.
금강위대색염명(金剛爲臺色焰明)이라 :다이아몬드로써 부처님이 앉는 받침대를 했는데 아름다운 빛깔이 아주 밝게 빛나고 있더라.
지계보살상위요(持髻菩薩常圍遶)어든 :꽃송이를 든 보살들이 첩첩이 둘러있고. 계(髻)자에는 상투라는 뜻과 함께 꽃송이라는 뜻이 있다. 상투와 꽃송이는 모양도 비슷하다.
여기는 ‘꽃송이를 가진 보살’이라고 해야 좋다. 보살들이 맨 손으로 밋밋하게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전부 꽃송이를 들고 부처님을 에워싸고 있다.
불재기중최광요(佛在其中最光耀)로다: 부처님이 그 가운데 계시는데 가장 뚜렷하게 빛이 난다. 너무 근사하게 빛난다. 이런 것은 연출을 해도 좋을 것 같다.
불교티비를 통해 대만 불광사에서 법회하는 것을 보면 거의 이런 수준으로 무대를 꾸민다. 자막을 보면 사실 별 설법내용은 없는데 그 모습은 아주 근사하다.
무대를 잘 꾸미고 중앙에 설법법사가 앉아 있고, 한 쪽에는 비구스님들, 다른 한쪽에는 비구니 스님들이 앉아 있다. 게송을 설하면 비구니 스님이 아름다운 음성으로 읊고 청중이 다 같이 노래한다. 그 법회 진행이 연구를 많이 해서 기가 막힌데, 원본은 바로 이 화엄경이다.
청중은 그런 환경 그런 법회장소에 오면 아주 시시한 것으로도 크게 감동한다. 사바세계 중생은 모양을 보고 혹하는 상견중생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감동도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가 행사를 하더라도 그 성격에 맞는 장엄을 할 필요가 있다.
*
종종변화만시방(種種變化滿十方)하야 : 가지가지 변화가 시방에 가득해서
연설여래광대원(演說如來廣大願)일새 : 여래는 광대한 서원을 연설한다. 중생을 제도하겠다고 하는 사홍서원(四弘誓願)도 좋고 그 외에 온갖 서원들을 연설하고 있더라.
일체영상어중현(一切影像於中現)이어든 : 일체 그림자와 같은 모습들이 다 그 가운데에 나타나거든
여시좌상불안좌(如是座上佛安坐)로다 : 이와 같은 자리 위에 부처님이 편안히 앉아 계시더라.
부처님이 앉아 계신 광경을 이렇게 형상으로써 표현 했지만, 이것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신심 있는 불자들의 의식 속에 계시는 부처님이다. 여러분 마음 속 부처님은 이보다 훨씬 더하면 더했지 이렇게 표현하는 것도 부족하다.
조금만 상식있는 불자들은 부처 불(佛)자를 종이에 써도 그 종이를 함부로 구겨서 휴지통에 버리지 못하고 태우거나 한다.
우리 머릿속에 있는 부처님도 그러한데 과거에 우리 선배들이 부처님에 대한 마음이야 오죽했겠는가. 천 배 만 배 더할 것이 아닌가.
‘어디에 이런 광경이 있었단 말인가, 말도 안 되는 소리다’라고 따지기로 하면 불교는 이해가 안 된다.
경은 이런 것이 참 어렵다.
첫댓글 아~ 드디어, 설 명절에 불광사까지... 쉼도 없이 숨가쁘게 오셨을 꽃보다 아름다운 꽃물들다님, 고맙습니다. _()()()_
卽念念果成...순간순간 그대로가 불성이다.혜명화님 넘넘 수고 많으셨습니다._()()()_
불교는 <세상>을 바꾸는 일이 아니라 나의 <안목>을 바꾸는 일이다.慧明華보살님
고맙습니다._()()()_
曝腮鱗於龍門...고맙습니다 ^^ _()()()_
慧明華님 고맙습니다..._()()()_
則念念果成....혜명화 님! 너무 바쁘고, 힘드셨지요? 이렇게 올려 주시니 편하게 앉아서 공부합니다.._()()()_
種種變化滿十方)하야 : 가지가지 변화가 시방에 가득해서 演說如來廣大願)일새 : 여래는 광대한 서원을 연설한다.중생들을 제도 하겠다고...혜명화님,고맙습니다_()()()_
일거수일투족 천지 만물 삼라만상 속에 전부 화엄경이 다 들어있다.‘두두가 비로요 물물이 화장이다’ ‘낱낱이 다 비로자나 부처님이고 물물이 다 화장찰해더라’ ...고맙습니다._()()()_
智滿이 不異於初心이요...고맙습니다. _()()()_
법화경의 차원에서는 ‘사람이 부처다’라고 나오지만, 화엄경의 차원에서는 사람만 부처이고 보살인 것이 아니라 두두 물물이 전부 부처이고 보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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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명화님 고맙습니다..._()()()_
혜명화님, 올리신 글 다시 읽고 사진 감상하면서 강의 하시던 순간의 기억을 떠올리는 재미가 얼마나 쏠쏠한지 잘 모르시죠?
글 정리하고 다시 검토하고, 애 많이드셨을 거예요. 고맙고 고맙습니다. _()()()_
혜명화님! 올한해도 잘~~ 부탁합니다. 덕분에 이렇게 편히 공부할수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_()()()_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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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방광불화엄경 대방광불화엄경 대방광불화엄경
화엄경의 안목은 현재 있는 그대로를 여래의 공덕이라고 본다..._()()()_
나무 대방광불화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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