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t 08, 2002. Written by C. J. Lee
이제는 '여름이 다 갔다'고 해도 누구나 동의할 것 같다.
(너무 늦었나? 추석이 지난 지도 한참인데 이제 와서 여름이 갔다고 하니..)
나는 오늘에야 '이젠 여름이 완전히 갔구나'하는 느낌이 들었다. 아마 어제 내린 비 때문에 한결 쌀랑해진 아침 기운 때문이었으리라. 좀 덜 떨어진 건지, 무심한 건지.. 아니면 워낙 열이 많은 체질이라 그런지도 모르겠다. 아직도 쟈켓 속에는 반팔 와이셔츠나 티셔츠를 입고 다니고, 낮에는 잠시 선풍기를 틀어놓아야 할 정도로 난 열이 많다. 열 많은 사람이 인정도 많다는 옛말이.. 있던가? 그럼 열 많은 사람이 착하다는 옛말은.. 있던가?
올 여름. 공차기에 넋을 잃은 채 6월을 보내고, 그 뒤탈로 무력증을 앓으면서 맞은 여름. 며칠 더웠던가? 7월의 그 잠깐 더위 때는 올 여름엔 정말 '한 따까리' 하는 줄 알았다.
(한 따까리: 군대에서 쓰는 말이다. '한 판'이라고 해석하면 큰 무리 없다)
그러나 에어컨을 한 사흘이나 켰던가? 그때부터 내리 퍼붓는 비에 여름을 보낸 건지, 우기를 (雨期) 보낸 건지.. 정말 축축한 날들이었다. 결국은 엄청난 물난리를 끝으로 우기를 마감했다. 이 해괴했던 여름... 사람들은 손해를 봤을까? 이익을 냈을까?
물난리를 당한 사람들은 당연히 왕창 손해를 봤다. 내년에 농사를 다시 지으려해도 논밭이 다 돌과 진흙에 덮여 황무지가 돼버려서 안 된단다. 다시 농사를 지을 수 있다면 그래도 올해의 시름을 잊고 일어날 수 있을텐데.. 일을 하던 사람이 일을 할 수조차 없게 된다면 상심이 오죽할까?! KBS와 MBC 같이 100억씩 들여 북한 가서 음악회 한 번 하는 것보단 이 사람들부터 일으켜 세워야 한다. 교향악단 연주나 이미자 노래는 안 들어도 살지만, 이 수재민들은 자칫하면 다시 일어서지 못하고 죽을 수 있다. 그리고 북한 주민도 불쌍하다지만 우리 식구만 하겠나?
물난리 때문에 대목을 만난 사람도 있다고 한다. 도배하는 사람들, 자동차 정비소, 폐차장, 가구점 등등.. 몇 달치 일감이 밀려있는 사람도 있단다. 그나저나 이 사람들도 아픔은 있을 거다. 일 많다고 내놓고 좋아할 수도 없으니 말이다.
동해안의 관광객이 줄어 그 지역경제가 말이 아니란다. 그러면서 많이 놀러오라고 하는데.. 많이 바뀌었다고는 해도 아직 우린 염치을 먹고사는 배달겨레! 어찌 시름을 안고 있는 사람들 사이로 단풍놀이를 갈 수 있겠나?! 단풍봉사를 간다면 모를까.. 가을의 절경을 못 보는 딴 고장 사람들도 손해, 수입이 줄어든 그 고장 사람들은 더 손해. 모두 손해다.
공차기 때 길거리 응원의 열기를 이어받아 큰 대목을 볼 줄 알았던 해수욕장의 여러 업자들은 임대료나 제대로 건졌을까? 두세 번의 주말만 반짝하면 최소한 본전이라고는 하지만, 올해는 오죽했어야지.. 그 사람들도 손해를 봤다고 한다 (다 믿을 순 없지만..).
해마다 젊은이들의 (특히 세계 공통으로, 아직 분별력이 없다는 25세 이하의 청소년들의) '바캉스 후유증'덕을 많이 본다는 산부인과의 여름은 어땠을까? 결과적으로 손해는 아니었다고 본다. 물론 날이 안 좋아 '바캉스'가 망가지는 바람에 '바캉스 베이비'는 많이 줄었겠지만, 전달의 공차기 덕분에 '월드컵 베이비'가 많았다고 하니 산부인과의 수입은 큰 차이가 없었을 것 같다. 혹시 더 많이 벌었을 수도 있겠다. 단지 의사들이 제 철에 휴가를 못 갔다고 하는데.. 의사란 그래야 하는 법이다.
해마다 여름이면 돈을 퍼담았다던 빙과류, 청량음료도 올해는 시원치 않았다고 한다. 벼농사는 7년만의 흉작이라고 한다. 농민들 시름은 더해졌다.
온통 손해본 사람만 있으니.. 올 여름은 없었나 보다. 그러나 손익은 자신이 가장 잘 아는 법. 지난 여름을 한번쯤은 돌아보고 가을을 맞는 것이 좋겠다.
* 컴의 한 구석에서 지난 여름 어느 스포츠신문에서 받아놓은 사진이 몇 장 나타났다. 그땐 아마 진풍경이라고 받아놓은 모양인데, 언젠가 한담에서도 ("구명조끼") 거론했었던 '물놀이 테마파크'의 미끄럼틀 밑의 해프닝이다. 이름하여 '알궁둥이'.
이걸 보면 여름이 전혀 없지는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다. 인공 물놀이장에서는 여전히 여름이 있었던 모양이다. 하여간 아래에 전시하겠다.
(참! 하나 꼭 알려야 할 것이 있다. 아래의 사진이 그때 받은 사진의 전부다. 무슨 소린고 하니 더 이상 이런 사진도 없다는 이야기고, 남자들의 사진도 없다는 말이다. 이 사진을 찍은 기자는 왜 여자만 찍었을까? 남자 기자라서 그럴까? 아니면 아직도 '남자와 여자'란 그런 차이가 있는 걸까? 남자 알궁둥이 보고 싶은 언니들도 많을 텐데.. 다음엔 남자들의 알궁둥이를 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진짜다.)
<해마다 시월이면 참 바쁘다. 학회도 많고. 요즘은 거기다 뜻하지 않은 계획서까지 있다. 먹고살아야 하니 열심히 매달리고 있다. 아래에 내가 지난여름에 본 사진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것을 싣는다. 위의 사진들보다 낫다고 느낄 수도, 별로라고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모든 느낌은 개인적인 것이니 특별한 의미를 두지 말고 아래의 사진을 보면서 아무 거나 느껴보자. 그리고 글 뜸하다고 투덜대지 말자. 다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