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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기-소설▶백명암 ▷서라벌 밝은 달 스크랩 서라벌 밝은 달
여정汝禎 추천 1 조회 148 09.12.07 14:47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서라벌 밝은 달

 

 

由然 許 琦

 

【사다함, 미실을 만나다】

구불구불 길게 이어진 푸른 제방 위로 주황빛 하늘말나리꽂과 보랏빛 도라지꽃이 지천으로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맞은편 제방 뒤쪽으로는 푸른 들녘이 펼쳐져 있고 그 뒤에 선도산이 웅장한 자태로 버티고 앉아 있다. 구름 한 점 없이 푸른 하늘, 햇볕이 뜨겁게 내려 쪼이는 강가의 바위 위에 걸터앉아 미실은 멀리 푸른 하늘을 바라본다. 오랫동안 보아왔던 서천(형산강)의 풍경이지만 요즈음 들어서, 특히 오늘처럼 서천변에 나신으로 앉아서 바라보는 풍경은 생경한 듯 하면서 아름다웠다. 날씨도 덥고 하여 오늘은 동무들과 서천에 목욕을 나온 날, 같이 온 두 명의 동무들은 목욕은 잊은 채 물놀이에 빠져서 깔깔거리며 물 속을 뛰어 다니고 있다. 서천에서의 나체 목욕! 강에서의 나체 목욕이 처음도 아니련만, 가슴이 봉긋하게 솟아오르고, 하복부 은밀한 곳에 거웃이 짙어지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전에 없이 부끄럽기도 하고, 때로는 누군가가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얼굴이 붉어지면서 가슴이 뛰기도 한다. 미실은 물놀이를 하고 있는 동무들을 바라보았다. 알몸으로 강에서 수영하는 동무들, 배꼽을 넘지 않는 얕은 냇물에서 한창 무르익은 나이에 알몸으로 뛰어 다니는 친구들의 모습은 숲속에서 뛰노는 고라니처럼 청순해 보였다. 그녀들의 봉긋한 젖가슴과 통통하게 살찐 엉덩이가 햇볕에 반짝이어 눈이 부시다. 미실은 갑자기 부끄러워져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전에는 그러하지 않았는데, 나도 처녀가 되어가는 걸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뛴다. 미실은 자신의 모습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늘씬하고 가는 다리, 하복부의 까만 거웃, 봉긋하게 솟아오른 젖가슴, 더욱 희어지고 윤기 도는 듯한 피부, 미실은 가슴이 설레었다. 미실은 부끄러워서 더 이상 앉아 있지 못하고 풍덩 물속으로 뛰어 들었다. 동무들과 어울려 얼마동안 물놀이를 했을까? 동무 세연이, 무언엔지 놀라 ‘에그머니’ 하고 비명을 지르며 고개만 내민 채 물속으로 몸을 숨겼다. 미실과 영선도 덩달아 물속으로 몸을 숨겼다. 헉헉대는 숨소리를 간신히 진정시키며 미실 일행은 강 하류를 바라보았다. 백여 보 쯤 아래 네 명의 남자 아이들이 목욕을 즐기고 있었다. 그들 역시 나신이었다. 그들은 미실 일행들을 향하여 일부러 자신들의 전라를 노골적으로 내보이며 장난을 걸고 있었다. 꽤 먼 거리였지만 그들의 몸의 윤곽은 뚜렷했고, 성기와 거웃까지도 보일 듯 말 듯 했다. 그들은 종아리가 겨우 잠기는 얕은 물에서 깔깔거리고 웃으며 물장구를 치고, 알몸을 드러내 놓고 미실 일행을 향하여 오줌을 누었다. 미실은 그 광경을 바라보는 것이 싫지 않았다. 물속에 몸을 숨긴 채 남자 아이들의 장난을 좀 더 구경하고 싶었지만 그에 못지않게 부끄러운 마음도 커서 미실 일행은 손으로 은밀한 곳을 가린 채 엉거주춤 일어나 기듯이 걸어가 서둘러 옷을 입었다. 남자 애들은 부끄러워하며 옷을 입는 여자 아이들의 행동이 유쾌하였던지 더욱 더 큰 소리로 웃으며 물장구를 치고 있다. 옷을 입은 미실 일행은 강변 버드나무 그늘 아래 풀밭에 앉았다. 미실은 그냥 집으로 돌아갈까 했으나 친구인 세연과 영선이가 남자 애들 하는 행동이 재미있으니 구경하고 가자며 유혹하자 못이기는 척 나무그늘 아래 풀밭에 앉았던 것이다. 남자 아이들은 한동안 수영도 하고, 물싸움도 하더니 밖으로 나와 옷을 입기 시작한다. 멀리서 보기에 대략 미실과 거의 비슷한 나이의 열대여섯 살 아이들로 보였다.

사다함은 옷을 입으며 흘깃흘깃 위쪽 여자아이들을 훔쳐보았다. 금일 오전 천주사에서 택견을 수련하고 날씨가 후덥지근하기에 서천으로 동무들과 목욕을 나온 것인데 우연히 미실 일행을 멀리서 보게 되었던 것이다. 이전 같으면 그냥 집으로 돌아갔을 테지만 요즈음은 사다함도 여체를 그리워하는 스스로를 발견하고 ‘나도 이제 어른이구나!’ 하고 느끼며 육체의 변화에 당황하기도 하고 자부심을 느끼기도 하던 때이다. 그래서 일부러 여자 아이들을 향하여 알몸을 드러내고 장난을 하였는데 전에 없이 묘한 즐거움을 느꼈다. 사다함은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여자 아이들을 만나보고 싶은 마음에 돌아가려는 동무들을 구슬려 여자 아이들 쪽을 향하여 갔다. 여자 아이들의 얼굴 윤곽이 드러났을 때 사다함은 깜짝 놀랐다. 사다함이 멀리서 눈여겨 보아두었던 여자 아이는 오촌 조카 미실이 아닌가!

“미실!”

사다함은 좀 전에 자신이 하였던 행동이 부끄러워 말끝이 떨리었다.

“사다함!”

“네가 미실이었구나.”

“아이 사다함. 어떡하면 좋아. 몰라. 몰라.”

미실도 놀라서 얼굴을 붉히었다. 좀 전에 자신이 훔쳐보고, 욕정을 느끼었던 나신의 사나이가 오촌 아저씨 사다함이었다니 미실은 부끄러움에 고개를 숙였다. 사다함은 내물왕의 6세손으로 5대조는 미사흠이고 증조부는 칠부이며, 조부는 비량공이고, 아버지는 구리지이다. 사다함의 할아버지 비량공은 법흥왕 재위시에 법흥왕의 백모이자 자신의 재종 숙모가 되는 지증왕(비처왕)비 벽화후가 홀로 궁성에 거처할 때 벽화후를 사모하였다. 비량공은 벽화후를 유혹할 기회를 엿보다 벽화후가 화장실에 갈 때에 몰래 따라 들어가 화장실에서 사통하여 사다함의 아버지인 구리지를 임신하였다. 당시 법흥왕은 이를 알고 있었으나 비량공을 아꼈으므로 묵인하였다. 사다함의 아버지 구리지는 화장실에서 임신하였기에 ‘구리다’는 의미에서 그 이름을 구리지라 하였던 것이다. 그 구리지와 미실의 외이모할머니인 금진낭주 사이에서 사다함이 출생하였던 것이다. ‘미실이 벌써 저렇게 처녀가 되었단 말인가!’ 사다함은 멀리서 바라보았던 미실의 나신을 떠올리며 미실 일행 옆에 앉았다. 미실은 그동안 보아왔던 풋내기 소녀가 아니었다. 윤이 나는 갈색의 가는 머리카락이며, 검고 긴 눈썹, 오똑 솟은 코, 붉은 입술, 하이얀 얼굴이 건강미로 넘치는 처녀의 모습이었다. 이모인 옥진낭주의 외손녀인 미실은 사다함과 어려서부터 가끔 만나고 장난치고 어울렸던 다정한 오촌 숙질간이었지만 이렇게 사다함이 미실을 여자로서 느낌을 갖게 된 것은 처음이었다.

미실은 찬찬히 사다함의 얼굴을 훑어보았다. 한 살 위인 사다함. 훤칠하게 자라버린 키에 아름다운 용모를 지닌 청년, 미실은 사다함과 눈이 마주쳤을 때 그의 눈에서 번쩍 섬광이 비침을 보았다. 미실은 어지러움을 느꼈으나 황홀하였다. 사다함 아저씨는 준수한 청년이 되어 있었다. 그 날 미실과 사다함 일행은 강변 버드나무 그늘 풀밭에서 수다를 떨며 자기들과 같은 젊은이들만의 관심사와 포부 등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황룡사의 밤】

높이 솟아 오른 기와지붕 추녀 위로 보름달이 교교히 빛나고 있다. 바람은 고요하고 서라벌은 정적 속에 잠들어 있다. 사다함은 방에 누워 열린 창문으로 달빛이 빛나는 하늘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었다. 지나간 낮에는 택견 수련이며, 서천에서의 수영이며, 강변의 만남으로 인해 몸이 피곤도 할 것 같은데 잠은 오지 않고 강변에서 보았던 미실의 나신만이 눈에 아른거린다. 사다함은 일어나 뜰로 나갔다. 미실의 모습을 잊으려고 애를 쓰면서 택견 동작을 연습하였다. ‘팟, 팟’ 한밤중에 사다함의 소매가 바람과 부딪히는 소리만이 고요한 하늘 위로 멀리 퍼져 나간다. 이따금 이웃 개가 한 마리 울면 온 서라벌 개들이 따라 운다. 한 시간 가량 운동을 했을까, 사다함은 땀을 훔치며 툇마루에 걸터앉아 둥근 달을 바라보았다. 밝은 달 속에 미실이 환하게 웃고 있다. 그녀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 하다. 잊으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더욱 떠오르는 미실의 웃는 얼굴과 맑은 목소리. ‘그래, 잊으려고만 할 게 아니라 미실을 찾아가자. 미실과 내가 사귀는 것을 안다면 어머니 금진낭주나 이모 옥진낭주도 좋아할 것이다.’ 사다함은 부랴부랴 옷을 입고 미실의 집을 향하였다. 사다함은 월성 뒤쪽에 위치한 자신의 집에서 황룡사 옆 미실의 집까지 단숨에 달려갔다. 자시가 넘은 시각, 서라벌의 다른 집들과 마찬가지로 미실의 집도 불이 꺼지고 정적 속에 잠들어 있다. 사다함은 미실의 방 창가에서 또 다시 돌아갈까, 창을 두드릴까를 수없이 망설이다 가까스로 용기를 내어 미실의 방, 작은 창을 두드렸다.

“미실! 미실!”

미실 역시 잠을 못 이루고 있었다. 미실은 오늘 낮 사다함의 반짝이는 눈빛에서 그가 찾아올 것을 예감하였다. 사실은 미실도 사다함이 찾아오기를 원하고 있었다. 이제나 저제나 사다함이 찾아올까 기다림에 지쳐 가는데 드디어 사다함이 미실의 창을 두드리고 있다. 미실은 온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창문을 열었다.

“사다함, 어쩐 일이니?”

미실은 한편으로 눈을 흘기면서도 한편으로는 입에 가득 미소를 지으며 반가이 사다함을 맞았다.

“응, 잠도 오지 않고, 계속해서 네 모습이 아른거려서 수없이 망설이다 결국은 나도 모르게 너를 찾아 왔어. 잊으려고 애를 쓰도 어디 잊혀져야 말이지. 나도 내 육신을 마음대로 하지 못하겠구나. 미실아, 달빛이 엄청 밝은데, 우리 황룡사나 거닐지 않을래.”

“그래, 사다함. 나도 실은 네가 보고 싶은데 차마 먼저 가지 못하고 이제나 오나, 저제나 오나 너를 기다렸지. 잘 왔어. 사다함. 그럼 어디 오랜만에 황룡사 밤바람이나 쐬어 볼까.”

미실은 사다함과 팔짱을 끼었다. 둘 다 짧은 소매의 윗옷을 입고 있어 사다함의 피부가 미실의 피부에 맞닿자 감촉에 놀란 미실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밤공기는 맑았고, 밝은 달 아래 서라벌은 고요하게 잠들어 있었다. 밤이 깊었지만 황룡사는 향내가 은은하였고, 높이 솟은 오층석탑을 몇몇 선남자 선여자가 두 손을 합장하고 돌고 있었다. 사다함과 미실도 두 손을 모으고 그들 일행에 합류하였다. 사다함은 부처님께 기도하였다. ‘대자대비하오신 부처님이시여, 아름다운 오촌 조카 미실과 영원히 함께 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이 삶을 모두 바쳐 미실을 사랑하겠나이다.’ 사다함은 마음속으로 맹서하고 또 맹서하였다. 몇 바퀴를 돈 후, 그들은 대웅전 추녀 앞 댓돌에 걸터앉았다. 바람이 한줄기 후욱 지나가며 풍경을 흔든다. 풍경소리가 달빛을 타고 절 안 구석구석으로 맑게 울려 퍼진다. 미실은 사다함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달빛에 얼굴 이목구비가 뚜렷이 명암이 져서 잘 새긴 조각상처럼 아름다워 보였다. 달빛 속에서도 초롱초롱 빛나는 맑은 눈동자, 배꽃처럼 하얀 얼굴, 딱 벌어진 어깨. 미실은 부끄러움에 얼굴 가득 홍조를 띄우며 살며시 사다함의 품에 안기었다. 미실은 떨고 있었고, 사다함의 가슴은 뛰고 있었다. 사다함은 미실의 윤기 나는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주었다. 미실은 사다함의 따뜻한 체온을 느끼며 사다함의 품에 안긴 채 눈을 감았다. 머리카락을 쓰다듬는 사다함의 손길이 편안하고 안락하게 느껴졌다. 미실을 안은 사다함의 가슴이 조금씩 조금씩 요동치기 시작한다. 사다함의 가슴이 뛰고 있다는 것을 느낀 미실은 조용히 눈을 떴다. 사다함이 뚫어져라 미실의 얼굴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사다함의 가슴은 더욱 더 크게 요동치기 시작하였고 그는 헉헉거리며 가쁜 숨을 참고 있었다. 미실도 가슴이 뛰었다. 온몸이 떨리기 시작하였고 정신이 어지러웠다. 사다함의 눈이 미실의 눈과 마주쳤다. 번쩍하고 두 사람의 눈에 불빛이 일었다. 사다함은 자신을 억제하려고 노력하였으나 몸은 뇌의 지시를 따르려고 하지 않았다. 사다함은 자신도 모르게 미실의 머리를 쓸어안고 입맞춤하였다. 그들 둘 다 처음의 입맞춤이라 감미로움에 정신을 잃었고, 그럴수록 그들 연인은 허리가 부서지도록 힘차게 끌어안은 채 오랜 동안 떨어지지 않았다.

 

【노을에 취한 월정교】

그해 여름이 무르익어 가면서 미실과 사다함의 만남은 점점 더 빈번해졌다. 석양이 붉게 물든 저녁나절에 미실과 사다함은 南川의 우아한 돌다리 월정교에서 밀회하였다. 사방은 땅거미로 어둑어둑하였고, 서녘 하늘은 노을이 붉게 물들어 미실의 얼굴도, 사다함의 얼굴도 복사꽃잎 마냥 붉게 취해 있었다. 그들은 다리 난간을 부여잡고 멀리 서라벌 시내를 바라보았다. 성중의 수많은 기와집들은 하나 둘 불을 밝히기 시작하였고, 남천 제방 위 수양버들은 저녁노을에 잎들이 붉게 물들어 있다. 이따금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여인의 갓 감은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리듯 제방 가 버드나무 가지들이 바람에 부드럽게 파도를 쳤다. 미실은 사다함과 팔짱을 끼고 다리를 내려와 강변 백사장을 거닐었다. 지난 낮 태양에 달구어진 모래는 아직 따뜻하였고, 발길을 내딛을 때마다 모래는 폭신폭신 기분 좋게 밟힌다. 한동안 강변 백사장을 거닐다 갈대숲 옆 풀밭에 이르러 그들은 자리를 잡고 앉았다. 미실은 사다함의 허벅지를 베고 풀밭에 누웠다. 하늘에는 별들이 총총히 빛나고 있었고 은하수는 반짝이는 별들의 내를 이루며 북에서 남녘 하늘로 길게 흘러가고 있다.

“사다함!”

미실은 손을 들어 사다함의 턱을 어루만졌다. 이제 막 자라기 시작한 수염의 까칠까칠한 촉감이 꿈틀꿈틀 욕정을 솟구치게 하여 미실은 비비 몸을 꼬았다. 사다함은 미실의 머릿결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이제 막 성년의 나이에 접어든 건강한 사다함의 육체도 이내 달아오르기 시작하였고 사타구니의 성기는 꿈틀꿈틀 성을 내기 시작하였다. 사다함은 뜨거운 입김을 내뿜으며 미실의 귀에 입을 대고 속삭였다.

“미실아, 사랑한다. 난 영원이라는 말을 좋아하거든,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이 있는지 모르지만 언제까지나 널 사랑할게.”

사다함은 미실의 가는 허리를 끌어안고 풀밭 위로 쓰러졌다.

“아아, 사다함. 나도 너를 사랑해, 정말로 사랑한다 말이야.”

미실의 가냘픈 육체는 사다함의 우직한 손길에 달구어져 흐느적거렸다. 초여름 남천 갈대숲 옆 풀밭에서 사다함과 미실은 그렇게 첫정을 불태웠다. 하늘에는 별들이 총총히 빛나고 냇가 갈대숲에서는 풀벌레들이 화음을 맞추어 노래하는 저녁이었다. 그날 이후 그 해 여름이 갈 때까지 미실과 사다함은 가까이는 남산 산록에서부터, 멀리는 동해의 감포 바닷가의 백사장을 함께 거닐며 청춘을 불태웠다.

 

【사다함, 대가야 전선으로 가다】

서기 562년 진흥왕 23년, 한반도의 정세는 약육강식의 시대였다. 진흥왕대에 들어 신라는 크게 영토를 확장하여 6가야를 압박하여 맹주인 금관가야 구해왕의 항복으로 금관가야(구야한국)를 신라의 영토로 접수하였고 낙동강 서안의 미오야마(고령)에 위치한 대가야가 남은 가야 세력을 규합하여 신라에 대항하고 있었다. 대가야 이뇌왕은 신라의 압박을 극복하는 방책으로 친신라 정책을 추진하여 신라 이찬 비조부의 누이에게 장가들어 신라의 권위에 굴종하며 신라의 압력을 근근이 견디었으나, 굴욕감을 느낀 그의 아들 16대 도설지왕은 신라와의 화친정책을 접고, 서기 554년 백제, 일본과 동맹하여 삼국의 연합군이 신라의 관산성을 침공하였다. 삼국 연합군이 신라를 침공한 해로부터 127년 전인 서기 427년에 고구려 장수왕이 수도를 환도성에서 평양성으로 옮기고 남하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여 신라와 백제가 함께 고구려로부터 공격을 받게 되자 백제의 동성왕과 신라의 소지마립간은 493년에 결혼동맹을 맺어 공동으로 고구려의 남침에 대항하였다. 이후 고구려의 국력이 약해지고 정정이 혼미해져 고구려의 남하 정책이 주춤하게 되자, 신라와 백제에서는 진흥왕과 성왕이라는 영명한 군주가 등장하여 양국이 연합하여 고구려를 북으로 오히려 공격하는 국면이 전개되었다. 551년에 백제 성왕과 신라 진흥왕은 연맹을 맺고 고구려를 침공하여 백제는 한강 하류지역을 신라는 한강 상류 지역을 점령하였으며, 진흥왕은 점령지를 순무하고 북한산과 마운령, 황초령에 순수비를 세우는 한편, 편입 지역의 백성들을 위무하였다. 이 때에 이르러 고구려와 백제, 신라는 더욱 각축을 벌였고, 전쟁에 지면 바로 모든 자국 백성들의 죽음이라는 적자생존의 위기의식이 팽배하였다. ‘언젠가는 고구려, 백제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신라 조정과 신라 백성이 이 땅에 살아남아 자손만대 살아 가는 것이 신라왕인 나의 책무이다’ 라는 책임의식을 가진 진흥왕은 고구려, 백제를 고립시키기 위하여 당제국과의 외교 교류의 필요성을 절감하였고, 신라는 당과의 교통로가 되는 한강 하류지역에 늘 군침을 흘려 오다 마침내 신라 진흥왕은 60여년간의 동맹국인 백제를 배신하고, 백제와 적이 됨으로서 감수해야 하는 온갖 어려움을 감수한 채, 장군 거칠부 등을 보내어 한강 하류지역을 점령하였다. 신라에 배신당한 백제 성왕은 크게 진노하였으나 국력이 신라에 대항하기에 역부족임을 뼈저리게 느끼고 잠시 신라에 대한 적대감과 울분을 감춘 채 공주를 신라 진흥왕의 제2비로 시집보내어 신라와 우호관계를 유지하는 척 하면서 속으로는 이를 갈면서 신라를 공격할 전비를 갖추어 나갔다. 마침내 서기 554년, 백제는 일본 및 대가야와 삼국 연합군을 편성하여 신라의 관산성(옥천)을 침공하였다. 전투 초기에 신라군은 삼국 연합군에 절대적으로 불리하였으나 신주의 도독 김무력(김유신의 할아버지)이 관산성을 지원하면서 전세가 역전되었다. 지원군과 합류한 신라군은 연합군을 맹렬히 공격하여 연합군 사령관인 백제 태자 여창이 지휘하는 주력부대는 신라군에게 포위되어 전멸의 위기에 처하였고 백제 성왕은 태자 여창을 구하려고 친히 지원군을 이끌고 관산성으로 향하다가 狗川이라는 곳에 이르러 매복하고 있던 신라 삼년산군(보은)의 지휘관 고간도도에게 생포되었다. 이 전투에서 백제의 성왕이 생포되고, 4명의 좌평 및 29,600명의 사졸이 몰사하였으며, 태자 여창은 구사일생으로 살아 수도인 사비(부여)로 귀환하였다. 신라군은 생포한 성왕을 죽여 그의 몸은 까마귀밥으로 들판에 버리고 머리를 잘라 서라벌로 개선하였으며, 성왕의 머리를 신라 궁성 정문의 계단 밑에 묻어 계단을 오르는 신라의 뭇사람이 밟고 지나가도록 하였다. 이 전투 이후 신라에 대한 백제(남부여) 백성들의 원한은 사무쳤고, 백제 백성들은 동쪽 하늘을 노려보며 신라를 원망하면서 복수의 이를 갈았다. 귀환한 태자 여창은 자신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은 부왕에게 속죄코자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고자 하였으나 신민들의 간곡한 만류로 마침내 출가를 포기하고 성왕의 삼년상을 치루고 나서 왕위에 오르니 바로 위덕왕이다. 위덕왕의 부왕에 대한 사모의 정은 너무나도 커서 위덕왕은 부왕을 위하여 대규모의 원찰을 짓고 부왕의 극락왕생을 기도하는 한편 적국 신라에 대한 보복의 비수를 갈았다. 부왕에 대한 사무치는 정을 잊을 수 없는 위덕왕은 부왕의 왕생극락을 위하여 당대 최고의 장인을 뽑아 지성을 다하여 금동대향로를 제작하여 부왕의 영전에 바쳤다. 한편 신라를 배반하고 관산성 전투에서 백제와 연합군을 편성하여 신라를 침공한 대가야를 눈에 가시 같은 존재로 생각한 신라는 대가야를 멸망시켜 아예 신라의 지방으로 편입시키고자 하였다. 이제 대가야의 운명은 말 그대로 풍전의 등화였다. 금관가야의 항복으로 낙동강의 하구를 장악한 신라는 낙동강의 중류에서 하류와 상류와의 물길 교통을 방해하고 있는 대가야를 복속하여 낙동강을 이용한 물길교통을 남북으로 연결할 필요성을 진작부터 절감하고 있던 터였다. 이에 진흥왕은 일찍이 울릉도의 우산국을 정복한 바 있는 출장입상의 명신 태종 이사부를 총사령관으로 하여 마침내 대가야 정복의 결단을 내리게 되니 이 해가 서기 562년이다. 태종 이사부는 급찬 구리지의 아들인 15세의 사다함을 귀당비장으로 임명하여 마침내 그 해 시월 달구벌(대구)을 경유하여 대가야로 군대를 진군하였다. 진군하는 날, 호국의 영령들이 잠들어 있는 포석사(포석정)의 넓은 뜰에서는 진흥왕을 비롯한 조정백관과 수만의 백성들이 출정하는 오천의 병사들을 환송하였다. 진흥왕은 아끼던 어검을 이사부에게 하사하였으며, 수만의 백성들은 전장으로 나아가는 아들, 남편, 아버지, 연인들을 눈물로써 전송하였다. 수만 환송 관중의 귀빈석에 미실도 앉아 있었다. 일산 장막 아래에서 미실은 천명의 낭도들을 통솔하는 사다함의 늠름한 모습을 눈시울을 붉힌 채 바라보고 있었다. 사열이 끝나고 가족과의 면회시간이 주어졌을 때 미실은 사다함을 찾았다. 미실은 간곡한 마음으로 기도하였다. ‘이 나라를 지키다 영면하신 선조의 영령들이시여, 모쪼록 우리 신라군이 승전할 수 있도록 지하에서나마 도와주소서!’ 사다함을 보자 미실은 소매 자락으로 눈물을 훔치며 애써 미소를 지었다.

“사다함, 부디 건강하게 돌아와야 돼.”

“미실, 걱정 말고 기다려. 반드시 승전하여 돌아올게. 전공을 세우고 돌아와서 떳떳하게 너와 혼인하마.”

“사다함, 너를 전장에 보내야 하다니. 나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니? 네가 보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 하니?”

미실은 감정이 격해져서 두 볼을 씰룩거리며 사다함의 전승을 기원하는 노래(향가 풍랑가)를 불렀다.

“바람이 불더라도 님 앞에는 불지 말고

물결이 치더라도 님 앞에는 치지 말지어라.

빨리 빨리 돌아오라. 다시 만나 안고 보고

아으, 임이여. 잡은 손을 차마 놓지 못하겠네.“

미실과 헤어져야 하는 슬픔을 겨우 참고 있던 사다함은 미실의 눈물로 얼룩진 충혈된 눈을 바라보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샘솟듯 흘러나왔다. 사다함은 눈물 흘리는 자신의 모습이 미실에게 나약한 모습으로 보일 것 같아 쏟아지는 눈물을 애써 감추며 서둘러 미실과 작별하고 원정군의 대열로 돌아왔다. 마침내 신라의 대가야 원정군은 우렁차게 북을 울리며 진군을 시작하였다. 서쪽을 향하여 행군을 시작한 신라의 원정군은 압독(경산)에서 숙영하고 다음날 달구벌(대구)을 지나 저녁 무렵에야 낙동강 동안에 이르러 강변 언덕을 따라 길게 진을 쳤다. 신라군의 침공 정보를 입수한 대가야군 역시 낙동강 서안을 따라 길게 방어망을 구축하고 있었다. 신라군이 가야군을 정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낙동강을 어떻게 도강하느냐가 문제였다. 공격은 방어에 비하여 통상 3배 이상의 병력과 병참이 필요하다. 더욱이 낙동강이 자연적인 험준한 해자 역할을 하여 가야군이 강안을 방어하고 있는 상태에서 신라군이 강을 건넌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신라와 가야의 군세를 비교할 때 신라군이 가야군의 방어를 극복하고 도강에 성공한다는 것은 곧 승전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신라군과 가야군은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전선이 교착되었다.

 

【미실, 세종전군을 만나다】

사다함이 낙동강안에서 가야군과 대치하고 있을 때, 서라벌의 월성에서는 법흥왕의 따님이자 진흥왕의 어머니이신 지소태후께서 사랑하는 아들 세종을 위하여 연회를 베풀고 있었다. 진흥왕의 아버지이신 입종 갈문왕은 형님인 법흥왕의 따님이자 자신의 질녀가 되는 지소태후와 혼인하였으므로 지소태후는 진흥왕의 어머니이자 사촌 누님이 되시는 분으로 태종 이사부와 눈이 맞아 세종을 낳게 된 것이니 세종은 진흥왕에게는 씨 다른 동생이 되는 셈이다. 세종의 아버지 태종 이사부는 512년인 지증왕 13년에 하슬라주(강릉)의 군주로 재임 시, 우산국(울릉도)을 정복하여 신라에 복속시킨 명장으로 541년에 병부령이 된 이래 562년 현재에는 조정의 실권을 장악하고 있었으며, 태후의 연인이라는 탄탄한 정치적 배경을 갖고 있었다. 세종도 이러한 아버지를 닮아 준수한 얼굴에 온후한 성품을 지녀 어머니인 지소태후의 각별한 사랑을 받고 있었고 진흥왕 역시 막내 동생이라며 세종을 총애하였다. 태후는 아들이 며느리 융명과 금슬이 좋지 못하여 가정에 정을 붙이지 못하는 것을 늘 안쓰러워하던 중 세종을 위로코자 공경 백관들의 딸들을 궁중으로 불러 들여 연회를 베풀었다. 안압지에서 베풀어진 연회에 미실도 참여하였다. 10월의 초순, 안압지에는 가을볕이 따뜻하고, 바람은 잔잔하였다. 안압지 연못 위에는 고추잠자리가 어지러이 날고 있었고, 원앙새는 유유히 창포 잎 사이를 헤엄치고 있다. 못가 잔디밭 위에 분홍색과 노란색 장막으로 차양을 쳐서 연회장을 만들고 식탁 위에는 갖가지 진귀한 음식들이 진설되었다. 초대된 공경 백관의 스무 명 가량의 처녀들은 오색 빛깔의 옷으로 한껏 멋을 내고 식탁 의자에 다소곳이 앉아 있다. 이윽고 지소태후와 세종이 입장하여 정면의 단상에 앉으니 가야금의 달인 우륵이 지휘하는 궁중 악사들은 잔잔한 음악을 연주한다. 사직에 대한 기원과 국가에 대한 찬양의 의식이 끝난 후 태후는 세종과 함께 연회장을 거닐며 참석한 처녀들에게 세종을 소개하고 음식을 권하며 덕담을 하였다. 세종은 어머니의 간곡한 권유로 마지못하여 시무룩하게 귀빈 단상에 앉아있는데 선뜻 그의 눈에 들어오는 여인이 있었으니 바로 미실이었다. 안압지 연못가의 푸르른 나무들을 뒤로 하고 앉아 있는 미실은 얼굴은 작고 둥글며, 몸매는 가냘프고, 허리는 개미처럼 가늘고, 머릿결은 갈색으로 윤기가 흐르고, 얼굴색은 백옥 같으며, 입술은 붉고, 속눈썹은 짙으며, 콧날은 오똑하였다. 미실 역시 단상의 세종을 바라보았다. 세종은 후리후리하게 큰 키에 눈썹이 짙고, 이목구비가 뚜렷한 잘 생긴 미남이었다. 더욱이 이제 막 꽃피는 나이였으므로 세종의 모습은 한마디로 귀공자였다. 세종이 미실을 바라볼 때, 미실도 세종을 바라보고 있었고, 미실이 사다함을 만날 때와 마찬가지로 두 사람의 눈에는 불빛이 번쩍 일었다. 세종은 현기증을 느끼며 이마의 땀을 훔쳤다. 지소태후가 그녀에게 덕담할 때, 그녀의 꼬물거리는 붉은 입술 속에서 움직이는 하이얀 이는 세종의 간장을 녹여 주었다. ‘아, 아, 아름다운 여인이로다.’ 세종은 첫눈에 미실에게 반하였다.

“네가 옥진궁주의 외손녀이자 삼엽궁주의 손녀인 미실이로구나. 네 어머니 묘도를 닮아 예쁘도다. 과연 위화랑의 후손이로고.”

지소태후 역시 미실의 아름다움에 반하였다. 세종이 미실에게 혹하였다는 것을 확신한 태후는 연회를 파하고 내전으로 돌아오자 전령을 보내어 미실의 아버지인 화랑 2세 풍월주 미진부와 어머니 묘도부인을 궁성으로 불렀다. 미진부공을 보자 지소태후는 호들갑을 떨며 미실을 칭찬하였다.

“곱고 똑똑한 딸을 두었더구나. 옥진궁주의 꿈이 이루어진 게야.”

하였다. 옥진궁주의 꿈이란 이러하다. 화랑 제1세 풍월주인 위화랑과 오도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옥진궁주가 어느 날 칠색조가 가슴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었다. 필시 귀한 자식을 둘 태몽으로 생각하여 아이의 장래를 생각한 옥진은 남편인 영실보다도 남편의 친구이자 신라왕인 법흥왕의 아이를 갖고 싶었다. 옥진이 꿈에서 깨어나 내정으로 들어가니 마침 법흥왕과 영실공이 축구를 하고 있었으므로 옥진이 꿈 이야기를 하고 법흥왕의 소매를 끌며 동침하기를 청하였다. 그러자 법흥왕은 “네 지아비와 나는 일체이다. 만약 네가 아들을 낳으면 태자로 삼고, 딸을 낳으면 빈으로 삼으리라. 네 남편과 동침하여라.”하며 영실공을 바라보고 크게 웃었다. 이에 남편인 영실공과 옥진이 동침하고 바로 태기가 있어 딸을 낳으니 법흥왕이 직접 묘도라 이름지어 주었다. 묘도가 자라서 법흥왕과 동침하였으나 묘도의 성기는 작고 좁았고, 법흥왕의 양물은 너무 크고 강하였으므로 묘도는 법흥왕과의 동침을 늘 괴로워하였다. 이 때 법흥왕의 외손자인 미진부공이 그 어머니 삼엽궁주와 궁성을 드나드는 것을 본 묘도는 미진부공의 아름다움에 반하여 짝사랑하게 되었고 미진부공이 궁성 회랑을 지날 때 그를 유혹하여 동침하였다. 이 때에 옥진궁주는 칠색조가 자기 가슴 속에서 날아 딸 묘도에게로 날아가는 꿈을 꾸고 일어났는데, 문득 느끼는 바가 있어 급히 딸의 침전으로 갔더니 묘도가 미진부와 동침하고 있었으므로 옥진은 매우 기뻐하였다. 그 미진부와 묘도 사이에서 난 딸이 바로 미실이다. 지소태후는 미진부에게 하명하였다.

“너의 딸과 내 아들을 짝 지워 주고 싶은데 그대 생각은 어떠한가? 내가 오늘 안압지 연회에서 두 사람의 모습을 살펴보았더니 여간 잘 어울리는 게 아니더구나. 게다가 두 아이도 서로 연모하는 것 같아.“

하니 미진부와 묘도도 기뻐하였다. 아버지로부터 세종이 청혼하였다는 소식을 들은 미실은 한편으로 기뻤으나, 한편으로 사다함의 얼굴이 떠올라 괴로웠다. 미실은 사다함을 사랑하고 있었고 사다함과 혼인하기로 결심하였으나 세종전군을 알게 되면서 미실의 마음도 갈등하였다. 세종전군은 태후의 아들이자, 신라왕이 총애하는 동생이며, 국가의 실권자인 태종 이사부의 아들이다. 게다가 강건한 육체에, 아름다운 얼굴을 한 귀공자로서 인품 또한 온후하다. 결점이라면 정실부인인 융명이 있으므로 미실이 세종과의 혼인을 허락한다면 세종의 첩이 될 수밖에 없다. 미실은 여러 날을 고민 끝에 세종에게 시집가기로 마음을 정하였다. ‘사다함은 다정한 연인, 좋은 친구로 남겨 두자.’ 미실의 승낙으로 세종전군과 미실의 결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마침내 미실과 세종은 혼인하였지만 미실은 세종과 동침하지 아니하였다. 세종의 정실부인이 되지 못하고 첩이 된 것이 불만이었다. ‘세종은 나를 사랑하고 있으므로 내 요구를 거절하지 못할 것이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아예 세종과 융명을 이혼시키고 정실부인이 되자.‘ 융명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미실은 세종과 자신이 서로 사랑하는 터이므로 융명의 불운은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었다. 미실과 동침하지 못한 세종은 안달하였고 미실은 동침의 조건으로 융명과의 이혼을 요구하였다. 마침내 세종은 융명을 첩으로, 미실을 정실부인으로 지위를 바꾸었고, 첩이 된 데 불만을 가진 융명이 스스로 물러나 세종과 이혼하였다. 마침내 세종과의 첫날밤이 되었다. 방안 등잔 위 굵은 촛대에 촛불이 깜박깜박 졸고 있는 가운데 황금빛 원앙금침 위에서 나신의 세종이 격렬하게 미실을 껴안았다.

”미실아, 나는 너의 첫 모습에 반하였다. 네가 나를 더 사랑하든, 아님 사다함을 더 사랑하든 나는 평생 너만을 사랑하며 살겠다. 미실아, 진정으로 너를 사랑한다.“

세종은 미실의 탐스럽게 피어오fms 육체를 더듬었다. 미실은 낙지처럼 세종의 뜨거운 육체를 옥죄어 감는다. 세종은 미실의 육체에 탐닉되어 무아의 지경이 되어 갔다. 열락의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창을 통하여 시원한 가을바람이 기분 좋게 불어오고 있었고 댓돌 밑에서는 귀뚜라미가 낮은 음으로 울고 있었다. 세종은 거푸 한숨을 토하였고, 미실은 흐느꼈다. 격정의 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 순간 사다함과의 첫 정사의 감미로웠던 기억과 함께 미실의 뇌리에 사다함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사다함, 개선하다】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교착 상태에 빠진 전선이 한 달여 동안 지속되었다. 정벌군의 총사령관인 태종 이사부는 곧 겨울이 닥칠 것을 생각하면 초조하였다. 어떻게 하면 가야군의 방어를 뚫고 낙동강을 도강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을 때에 귀당비장 사다함이 묘안을 제안하였다. 이사부는 즉시 허락하였고 사다함은 예하의 정병 일천여명을 인솔하여 북쪽으로 행군하여 감문주(김천)에서 낙동강을 건넌 후 다시 남하하여 일리군(성주)을 거쳐 대가야의 도성인 미오야마(고령)의 후방으로 몰래 진군하였다. 낙동강을 방어하고 있는 가야군과 신라의 주력부대가 대치하고 있는 상태에서 사다함이 이끄는 신라의 소수 정예 병력이 가야군의 후방 쪽으로 침투해 낙동강 방어로 텅 빈 대가야의 수도 미오야마(고령)로 우회 공격을 시도한 것이다. 과연 미오야마성은 텅 비어 있었다. 대가야의 주력부대는 낙동강 전선으로 나가 있었고, 미오야마에는 도설지왕의 근위부대가 궁성을 호위하고 있었으나 수가 적었고 노약자로 편성되어 있었다. 게다가 낙동강 전선의 오랜 교착상태로 대가야군은 적이 가야 궁성에 오리라고는 감히 생각하지 못하고 전쟁을 낙관하고 있었다. 궁성의 병졸과 백성들이 편안하게 잠든 한 밤중에 사다함과 부장 무관랑은 군을 둘로 쪼개어 궁성의 남, 북문을 기습하였고 곤히 잠자고 있던 대가야왕의 근위부대는 쉽게 격파되고 신라군은 대가야 궁성의 정문인 전단문을 점령하고 백기를 꽂았다. 근위부대가 격파되고 전단문이 점령되자 당황한 도설지왕은 항복하였고 도설지왕의 명에 따라 낙동강 전선의 가야군도 항복하였다. 이에 신라 조정은 도설지왕(월광태자)이 항복하였다는 점을 높게 사서 도설지왕을 죽이지 않았다. 그는 자유롭게 방면되었으며 머리를 깎고 산으로 들어가 승려가 되어 월광사라는 절을 짓고 수도하였다. 그해 동짓달, 신라군은 대가야인 수천 명을 포로로 잡아 서라벌로 개선하였다.

 

【사다함의 죽음】

개선 환영식장인 포석사에서 사다함은 들뜬 마음으로 미실을 찾았으나 미실의 모습은 보이지 아니하였다. 사다함은 혹시나 하여 여기저기를 기웃거렸지만 의식이 다하도록 미실의 모습은 보이지 아니하였다. 단상에서는 가야금의 달인 우륵이 개선가를 연주하고 있었지만 그의 조국 대가야의 멸망을 축하하는 우륵의 연주는 어딘가 모르게 슬픔이 깃들어 있었다. 특히 미실과 상봉하지 못한 사다함의 귀에는 그렇게 들리었다. 사다함은 실망하여 풀이 죽은 채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니 금진낭주에게 미실의 소식을 캐물었지만 금진낭주는 좀체 입을 열지 아니하였다. 어머니의 눈빛으로부터 무언가 감추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챈 사다함이 채근을 거듭하자 금진낭주도 어쩔 수 없이 미실이 세종전군에게 시집갔음을 말하였다. 사다함은 낙담하였다. 전선에서의 두 달여간 사다함은 미실을 생각하며 야영과 전투의 모진 어려움을 참아 오지 않았던가. ‘미실이 나를 배신하다니.’ 사다함은 괴로웠다. 그러나 미워하면 미워할수록 더욱 그녀가 그리웠다. 눈을 감으면 미실의 환하게 미소 짓는 아름다운 얼굴이 떠오른다. 사다함은 일어나 뜰로 나갔다. 앙상한 나뭇가지에 초승달이 외롭게 걸려 있다. 사다함의 두 눈에 주르르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사다함은 비통한 심정으로 그녀를 그리워하며 노래(향가 청조가)를 불렀다.

‘파랑새야, 파랑새야, 저 구름 위의 파랑새야.

어찌하여 나의 콩밭에 머물렀는가!

파랑새야, 파랑새야, 너, 나의 콩밭의 파랑새야.

어찌하여 날아들었다 다시 구름 위로 날아가는가!

왔으면 가지 말지, 갈 것을 어이하여 왔는가!

부질없이 눈물짓게 하며 마음 아파 여위어 죽게 하는가!

나는 죽어 무슨 귀신 될까. 나는 죽어 신병되리.

임에게 날아와 보호하는 호신되리.

매일 아침, 매일 저녁 임의 부처 보호하여

천 년 만 년 오래 죽지 않게 하리.‘

일순 사다함의 얼굴 근육이 일그러졌고, 두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주르륵 흘러 내렸다. 사다함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흐느꼈다. 격한 감정에 넓은 두 어깨가 아래위로 요동쳤다. 진흥왕은 사다함의 전공을 높이 평가하여 알천의 땅과 사로잡은 가야인 300명을 노비로 주었지만 사다함은 땅은 부하들에게 모두 나누어 주고, 노비들은 모두 방면하여 양민으로 살게 하였다. 당시의 화랑은 4세 풍월주인 이화랑이 사령관으로 있었으나 왕의 총애가 커서 낭도들이 그를 싫어하였으므로 대가야 전쟁에 공이 큰 16세의 사다함이 마침내 5세 풍월주가 되었고 사다함의 동모제인 12세의 설원랑이 부제가 되었다. 사다함은 대가야 전투에서 공이 많은 부하 무관랑과 둘도 없이 가까웠고 누구보다도 그를 아끼고 사랑하였으나 그의 신분이 미천하여 공로에 상응한 보답을 받지 못하자 늘 이를 애석하게 생각하였다. 무관랑은 자신을 비관하다 요절하였다. 절친한 친구 무관랑의 요절과 사랑하는 애인 미실의 혼인으로 사다함은 삶의 의욕을 잃었다. 미실이 아니면 그 어느 누구와도 혼인하고 싶지 아니하였다. 이 후 사다함은 집안에 칩거하여 일체 밖으로 나가지 아니하였다. 사다함의 얼굴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창백해졌다. 사다함은 말을 잃었고 흡사 벙어리가 된 듯 하였다. 준수했던 청년 사다함은 어머니 금진낭주와 아버지 구리지의 지극한 보살핌에도 불구하고 날이 갈수록 야위어 갔다. 그렇게 다섯 달을 허깨비처럼 말을 잃고 앓아누웠던 사다함은 열일곱 살이 되던 해 봄이 오기 전 눈을 감았다. 사다함은 눈을 감기 직전까지도 간곡한 어조로 미실을 불렀다. 사다함이 개선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미실 역시 사다함이 보고 싶었다. 미실은 진심으로 사다함을 사랑하였다. 그러나 미실의 육신은 사다함이 개선할 때까지 기다리기엔 너무나 뜨거웠고 귀공자 세종은 미실이 사다함을 기다리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사다함이 너무나도 그리워 당장이라도 만나서 구차한 변명이라도 하고팠지만 사다함의 분노와 실망을 가라앉힐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 하루하루 때를 미루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어머니로부터 사다함이 아프다는 소식을 들은 미실은 사다함이 그리워 매일같이 천주사에 가서 기도하였다. ‘대자대비하신 관세음보살님, 사랑하는 연인 사다함이 완쾌되도록 도와주소서. 부디 예전처럼 씩씩하고 아름다운 청년이 될 수 있도록 하여 주소서.‘ 미실은 진심으로 기도하였다. 미실의 애타는 기도에도 불구하고 사다함은 마침내 눈을 감았다. 사다함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미실은 미친 듯이 천주사로 달려가 대웅전에 쓰러져 통곡하였다. 그러다가 다시 정신을 차리면 사다함의 왕생극락을 기도하였다. 통곡과 기도에 지쳐 대웅전 마루바닥에 쓰러져 그대로 잠이든 그 밤, 미실은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사다함과 미실은 남천의 백사장을 걷고 있었다. ’미실아, 진심으로 너를 사랑하였다. 너는 나의 모든 것이었다. 네가 나를 떠나니 나는 삶의 의미를 잃었다. 너는 떠나갔지만 나는 결코 너를 떠나가지 않는다. 내 마음은 항상 너에게 있다. 미실아, 사랑하는 미실아. 내가 너와 부부되기를 맹서하여 금생에 비록 부부는 되지 못하였지만 내세에 나는 너의 아들로 태어나 너와 함께 살 것이다. 미실아 부디 행복하여라.‘ 사다함은 이렇게 말하며 미실의 허리가 부서지도록 힘차게 끌어안았다. 그날 밤 미실은 생시의 사다함과의 정사만큼이나 열정적인 꿈속의 감미로운 정사를 즐기었다. 꿈에서 깨어난 미실은 사다함에 대한 그리움이 복받치어 격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흐느껴 울었다. 미실은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복받치는 감정을 가까스로 자제하고 사다함을 위하여 기도하였다. ‘사랑하는 나의 연인, 사다함이여. 부디 내생에서라도 행복하소서.’ 이후 세종전군과 미실 사이에 태기가 있어 남자 아이를 낳으니 바로 하종이다. 하종의 얼굴이 사다함의 얼굴을 닮아 세상 사람들이 미실이 사다함의 아이를 임신하여 세종에게 시집갔다고 수군거렸으나 하종은 세종의 아들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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