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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물놀이는 끝난다. 기온이 떨어지며 물 속에 들어가는 일은 용기가 필요한 모험이 된다. 오히려 물 속은 따뜻하다는 이들도 있지만 피부에 닿는 차가움은 확실히 견디기 힘들다. 그러나 목적이 있고 그만한 보상이 있다면 약간의 고통은 감내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인간이다.
투어링을 즐기는 카약커들에겐 자연 그 자체가 축복이고 선물이다. 특히 온 산하가 붉게 물드는 단풍철이면 최고조의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 카약이 없으면 접근하기 어려운 비경지대에서 자신만의 여유를 즐기는 것은 분명 특별한 경험이다. 세상 모두를 가진 듯한 풍족함을 느낄 수 있는 것도 바로 이런 카약 투어링만의 독특함 때문이다.
화려한 빛으로 활활 타오르는 충주호를 찾았다. 절정의 호수 단풍을 맛보기 위한 선택이었다. 충주호는 육지 속의 바다로 불릴 만큼 광활한 규모를 자랑하는 담수호다. 1985년 충주시 종민동과 동량면 사이의 계곡을 막은 충주댐이 생기며 조성된 67.5㎢ 넓이의 대형 호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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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옥순대교 위에서 본 산자락의 단풍과 카약./2온 세상은 단풍으로 물들고 호수 위에 카약은 떠간다./3 단풍이 곱게 물든 옥순봉을 바라보고 있는 카약커들./4선착장에서 배를 띄우고 몸 풀기에 여념이 없는 회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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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한두 번에 불과한 단풍 투어 기회
산악지대에 조성된 충주호는 지형의 굴곡이 심하고 복잡한 것이 특징이다. 그만큼 굽이굽이마다 숨어 있는 비경지대가 많다는 이야기도 되겠다. 특히 단양8경으로 꼽는 구담봉, 옥순봉, 도담삼봉 등은 충주호가 자랑하는 핵심 풍광이다. 이들 충주호의 명소는 승용차나 유람선을 타고 구경할 수도 있다. 하지만 카약을 이용하면 좀더 색다른 관점에서 치밀하게 탐승할 수 있다. 이는 소수의 카약 동호인들에게만 허용되는 특혜다.
10월의 마지막 주말을 맞아 ‘카약과 캠핑’동호회의 정기 투어링이 충주호에서 있었다. 1년 중 보름에 불과한 화려한 단풍 축제를 감상하기 위해서 정한 대상지다. 이 시기를 놓치게 되면 단풍을 보기 위해 다시 1년을 기다려야 할 것이다. 서울과 포항 등에서 여러 회원들이 먼 거리를 마다 않고 충주호로 모여들었다.
옥순대교 북단 휴게소 근처에 카약을 띄우기 좋은 나루터가 있다. 길고 완만한 시멘트 포장도로가 물가까지 이어져 차량이 접근하기 쉬운 장소다. 게다가 나루터 진입로 부근에 주차공간이 있는 전망대가 자리하고 있어 막영지로도 좋다. 충주호의 핵심경관인 옥순봉과 교량이 정면으로 보여 경관도 뛰어나다. 캠핑을 즐기며 카약을 타기에 적합한 장소다.
주말이라 길이 막히는지 회원들의 도착이 늦어진다. 먼저 도착한 팀이 카약을 조립하고 차 세울 공간을 마련하는 등 투어링에 앞서 필요한 조치를 미리 취해둔다. 참가자의 수에 맞춰 장비를 분배하고 물가까지 카약을 옮겨두는 것도 모두 마쳤다. 이렇게 손발을 맞추면 훨씬 원활하게 행사를 진행할 수 있다.
충주호는 주말을 맞아 무척 붐볐다. 유람선이 수시로 오가며 굵은 파도를 일으키고 있다. 메뚜기도 한철이라고 단풍이 절정일 때니 찾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신나는 음악을 크게 튼 배마다 손님이 가득하다. 전국에서 제일로 꼽는 강 단풍을 구경하는 기회니 얼마나 들뜬 기분이겠는가. 구성진 노랫소리에 맞춰 춤을 추는 이들도 보인다.
카약 투어링은 유람선을 타는 것과는 또 다른 차원의 탐승 방법이다. 자신의 힘만으로 조용히 강물을 가르며 조금 느리게 그리고 여유 있게 자연을 즐기는 것이다. 패들링을 통해 몸을 풀고 흔들리는 물 위의 사색으로 머리에도 휴식을 준다. 눈으로 보는 아름다운 자연의 파노라마는 덤이다. 투어링 카약은 평소에 느끼기 어려운 큰 감동을 주는 레저활동이다.
요란한 유람선, 조용한 카약
마침내 참가한 모든 회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사람이 많으면 진행이 쉽지 않은 것은 어느 행사나 마찬가지. 카약을 타는 것도 똑같아, 각각의 실력과 경험이 달라 함께 대오를 맞추기는 쉽지 않다. 그런 번잡함이 불편한 이들은 홀로 카약을 즐기기도 한다. 하지만 카약 투어링도 반드시 짝을 이루는 것이 안전하다. 최소한 두 대는 팀을 이뤄야 만약의 사고가 발생할 때 서로 도움을 줄 수 있다.
하늘의 뭉게구름이 어른거리는 호수에 배를 띄웠다. 옥순대교 주변에 있던 관광객들의 시선이 순식간에 카약으로 꽂혔다. 아직 우리나라에서 카약은 신기한 물건이다. 그리 널리 알려지지 않은데다 즐기는 인구의 수가 턱없이 적기 때문이다. 지나가는 유람선에 타고 있던 이들도 손을 흔든다.
옥순대교에 올라 촬영하던 이들이 합류한 뒤 본격적인 투어링을 시작했다. 오늘은 단양 방면인 장회나루까지 왕복하는 약 10km 거리의 코스를 답사하기로 했다. 옥순봉과 구담봉 등 충주호의 대표적인 명소들이 있는 구간이다. 다리 아래를 통과해 호숫가와 가까운 라인을 따라 조심스레 이동했다.
커다란 바위들을 쌓아 놓은 듯한 옥순봉에 곱게 단풍이 들었다. 이번 투어링은 단풍을 보는 것이 목적이지 속도와 거리는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그만큼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진행했다. 모두들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기 바빠 진행이 더욱 느려졌다. 호반 주변을 물들인 단풍의 화려한 빛깔에 취해 도저히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장회나루까지 다녀오려면 이렇게 여유 부리면 안 됩니다.”
후지타카약의 조구룡 사장의 채근에 떠밀려 앞으로 전진이다. 호수 한 가운데로 커다란 유람선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지나간다. 더불어 커다란 파도가 한바탕 요동을 친다. 오히려 잔잔한 호수 보다는 이런 울렁임이 더 재미 있다. 배에 달린 대형 스피커에서 옥순봉의 비경과 전설에 대해 설명이 이어졌다. 지나가는 배들마다 똑 같은 내용이 반복됐다. 몇 번 듣고 나니 재미있는 내용은 저절로 귀에 박힌다.
옥순봉을 지나 커다란 굽이를 한 번 돌아가니 강 건너 서쪽에 구담봉이 솟아 있다. 봉우리 중간에 거북이 형상을 한 바위가 있다는데,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다. 수직벽 위에 층층이 단을 이룬 소나무 군락과 단풍나무가 아름다운 동양화를 연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