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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최근 우리나라 대학개혁에 대한 논의가 되고 싶어 깊은 관심을 갖고 있던 참에 프랑스 대학제도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 한 말씀 드리려 합니다. 참고로 저는 프랑스에서 6년째 공부중인 학생으로, 현재 박사논문을 쓰는중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프랑스의 평준화된 공교육제도는 실패작입니다. 이유를 아래 몇 가지로 나누어 설명드립니다. 참고로 68년 혁명 이후 프랑스 대학들은 이분화되었습니다. 우리나라 SKY 같은 그랑제꼴과 일반 대학이 그것입니다.
일단, 프랑스에는 그랑제꼴이 존재하는 탓에 우리나라 서울대보다 더 심한 학력차별이 존재합니다. 그랑제꼴은 입학경쟁율도 매우 높으며, 따라서 졸업 후 대기업 간부직이나 고위공무원으로 취직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들은 "학문"을 위한 학교가 아니라 "취직"을 위한 고급전문엘리트양성교육기관이기 때문입니다. "콩쿨"이라 불리는 입학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해마다 더 많은 과외회사가 설립되고 과외를 받는 고등학생들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가끔 유학생들이 "서울대 한"을 풀기 위해 갑니다만, 이 학교들은 취직학교라 프랑스공무원으로 취직할 수 없는 우리나라 학생들로서는 한 마디로 쓸 데 없는 짓이며 이들 학교에서 양산되는 박사논문들은 정부정책에 봉사하는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반면 일반 대학은 68년 이후 평준화되어 현재까지 운용되고 있으나 외국 학생입장에서 보건데 문제가 많습니다. 아래에 보다 자세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일단 전체적으로 일반대학의 질적하향화가 심각합니다. 질적 차이를 분간하지 않은 채 학생들을 받아들이기 때문에 심지어 대학원에서도 50명에서 100명에 이르는 대형강의가 주를 이루며 따라서 각기 다른 학생수준에 맞춘 눈 높이 교육이 아니라, 수준 낮은 학생에 맞춘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강의내용은 우리나라 학부 수준에서나 이루어질 만한 내용이 박사논문 직전까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유학와서 이러한 현실을 목도하고, 한심스러워서 기절하는 줄 알았습니다.
둘째, 학생들의 질적하향화 역시 심각합니다. 똑똑한 학생들은 그랑제꼴에 가고 남은 학생들이기 때문에 총명한 학생들은 찾아보기 어려운 상태입니다. 위의 님이 지적하신 대로 프랑스 학부 및 대학원은 한 과정을 마칠 때마다 절반이 낙제할 정도로 유급이 잦습니다. 그러나 이는 짐작하시는 바와 다른 이유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일단 이곳의 학생들은 우리나라나 영미쪽 대학 학생들보다 열심히 공부하지 않습니다. 학비가 없기 때문에 유급하면 다른 대학에 가면 되고, 또 한 과에서 두 번 유급 당해 다른 과로 가야할 경우에도 전혀 장애가 없다는 "나태한 사고"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더불어 "누구나" "거의 무료료" 학교를 다닐 수 있기 때문에, 공부에 대한 열의가 없습니다. 실업율이 높은 프랑스에서는 취직 못한 학생들이 "실업자"로 전락하는 기간을 연장하기 위해 대학에 남아있으려는 경향마저 생기고 있습니다. 이는 심지어 대학원에서도 비슷한 상황입니다. 단적인 예로 많은 학생들이 대학교 수업을 따라가지 못해 "과외"를 받기까지 하는 사태가 빚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상상도 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더구나 "머리 나쁘고" "공부도 안 하는 학생"들이 용돈을 벌기 위해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경우가 많아 공부의 질은 점점 더 떨어지고 있습니다.
셋째, 공교육이 이루어지면서 공립학교들은 재정이 열악해 개인교수실 없이 2-3명의 교수가 우리나라 교수실 1/3반만 공간을 나누어 쓰는 형태입니다. 따라서 교수님들이 학교에 없을 때가 많으며, 자연스럽게 학생과 선생의 대화도 단절되어 가고 있습니다.
평소 프랑스 대학교육에 대해 문제가 많다는 것을 느껴오던 바, 우리나라에서 프랑스 제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해 이를 받아들이려한다는 데에 개탄을 금치 않을 수 없습니다. 대학은 경쟁체제 하에서 질적 향상을 꾀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각기 질적 차이가 있는 학생들을 마구잡이로 짬뽕한 뒤 "평범한 바보"들을 양산하는 교육체제로 전락하고 맙니다. 이는 우리나라가 그 동안 자랑하던 인재양성마저 포기하는 어리석은 짓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더 많으나 여건상 생략합니다. 제대로 된 교육개혁이 이루어지길 바라며 글을 맺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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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아래에 리플로 단 글입니다만 많은 분들이 읽어주셨으면 하는 바람에서 위로 올렸습니다. 양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혹 태클거는 분이 계실까봐 미리 밝히자면 저는 우리나라의 국립대학 출신이 아닙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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