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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다빈치 코드>의 반기독교적인, 명시적 묵시적 주장은 크게 세 가지로 압축됩니다.
1. 신약성경은 믿을 수 없는 거짓이다.
2.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 아들 하나님이 아니다.
3.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의 구주가 아니다.
<다빈치 코드>의 반기독교적 줄거리
안양대 추태화 교수는, <다빈치코드>의 반기독교적 줄거리를 다음과 같이 정리했습니다(q. in "렝던 죽이기" in www.newspower.co.kr):
1. 예수 그리스도가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했다.
2.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의 남자 제자들에게 박해를 받아 프랑스로 도피했다
3. 남자 제자들은 성경에서 막달라 마리아를 몰아내기 위하여 부정한 여인이라는 음모를 꾸며 “여성"을 제거했다.
4. 콘스탄틴 왕은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성경을 자신의 입맛에 맞도록 재편집하게 했다.
5. 예수와 마리아의 후손들이 프랑스 메롤링어가와 결혼하여 그 혈통의 선조가 되었다.
6. 한편 가톨릭 교회는 이 사실이 공개되지 못하도록 지속적인 방해공작을 해왔다.
7. 예수의 후손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시온수도회의 이름으로 성전기사단을 설립하여 그 후손을 보호해왔다.
8. 시온수도회는 성배와 예술을 상징적으로 활용하여 이 비밀을 간직해 왔다.
9. 더 이상 그 비밀을 묻어둘 수 없어 세상에 폭로할 때가 되었다.
10. 기독교는 위 사실을 숨겨왔기에 선을 가장한 위선적인 종교이다.
머리말
그리스도인들은 5월 18일에 개봉된 <다빈치코드>라는 영화를 관람하셔도 되지만, 하지 않는 것이 더욱 좋습니다. 아마 영화 관람후 기분이 매우 언짢고 혼란스러울 겁니다.
그 배후에는 기독교의 기본 진리와 역사적 진실을 부인하는 악령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1.
여기서 먼저 분명하게 해 두고 싶은 것은, <다빈치 코드>가 기독교의 기본 진리를 정면으로 부인하는 책이며, 따라서 거짓으로 가득 찬 이야기라는 겁니다.
어떤 악한 아내가 남편을 살해하기 위해 국에다 소량의 극독을 넣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남편은 그것을 먹고 죽었습니다.
<다빈치코드>는 역사적 소재들라는 국 속에 자칭 "역사적 진실"(실제는 거짓)이라는 극약을 타 놓았습니다. 그것을 의심없이 받아들이는 자는 영적으로 모두 죽습니다.
저자 댄 브라운이 사용한 국 즉 역사적 소재들은 예수 그리스도, 막달라 마리아, 콘스탄틴 대제와 종교회의, 영지주의 문서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성화 "최후의 만찬," 성배(최후의 성만찬에서 예수님이 포도주를 마신 잔) 등입니다.
댄 브라운은 이런 소재들 속에 거짓이라는 독을 집어 넣었습니다. 즉, 읽는 이가 영적으로 죽도록 하기 위해, 모든 역사적 진실을 뒤집어, 진실을 거짓으로, 거짓을 진실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댄 브라운은 모든 역사적 소재들을 그럴듯하게 완전히 왜곡시켜 놓았습니다. 역사적 진실과 내막을 모르는 사람은 속아 넘어가기 안성맞춤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사악한 거짓말은, 최대한도의 역사적 사실들에 최소한도의 결정적이고 핵심적인 거짓을 집어 넣어 전체의 진실을 완전히 뒤집어 놓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량의 국에 소량의 극약을 타 국전체를 독약으로 만드는 매우 악랄한 수법이죠. 댄 브라운도 이런 수법을 사용했습니다.
2.
나아가 댄 브라운은, 자신의 거짓 주장을 주인공들의 입 속에 집어 넣었습니다. 저자는 거짓말을 지어내는 주인공들이 마치 진실을 말하는 사람들, 의인들, 선한 사람들인 것처럼 꾸며 놓았습니다. 그들이 경찰에 쫓기면서 진실을 파헤쳐가는 것처럼 줄거리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따라서 독자는 긴장감과 흥미 때문에 손에 땀을 쥐게 됩니다.
그런데 주인공과 자신을 무의식중 동일시하는 것이 독자들의 심리죠.
그러므로 역사적 진실을 모르는 독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주인공의 거짓말에 세뇌당할 수 있습니다. 댄 브라운이 노린 게 이것입니다!
3.
또 하나, 저자는, 교회가 진실을 은폐하고 있는 것처럼 교회의 이미지를 아주 나쁘게 그림으로써 간접적으로 교회를 욕하고 있습니다. 독자들과 교회 사이를 이간질하고 있는 거죠. 이것은 사탄이 하와를 유혹할 때 사용한 수법입니다. 하나님을 나쁘게 묘사함으로써 하나님과 하와를 이간질시켜 하와가 하나님께 불만을 품고 범죄하게 한 거죠.
4.
마지막으로 저자는 일반인이 잘 모르는 사실들을 반기독교적으로 이슈화함으로써 최대한도의 상업적 흥행을 노렸습니다.
개요
<다빈치 코드>의 반기독교적인, 명시적 묵시적 주장은 크게 세 가지로 압축됩니다.
1. 신약성경은 믿을 수 없는 거짓이다.
2.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 아들 하나님이 아니다.
3.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의 구주가 아니다.
설명
자 그러면, 그 구체적인 내용을 설명해 볼까요?
1. 신약성경은 믿을 수 없는 거짓이다.
이 점에 관해서는 크게 두 방면으로 논의할 수 있습니다.
(1) 영지주의 복음서들은 믿을만한 것인가? (영지주의에 관해서는 맨뒤의 "주 2"를 보세요.)
<다빈치코드>에 의하면, 니케아 종교회의(325년)에서 콘스탄틴 대제와 성직자들이 80개 이상의 복음서들을 신약성경에서 제외하고 오직 4복음서만 채택했다고 합니다. "남성 우월적이고 성억압적인" 신학에 따라 이에 위배되는 책들은 배제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주장에는 최소한 3가지 이상의 오류가 들어 있습니다.
첫째, 콘스탄틴 대제와 니케아 종교회의 참석 성직자들은 신약의 정경 문제를 다루지 않았습니다.
그 회의에서 논의된 주 의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이 아버지 하나님과 동등하냐, 아니면, 하나님보다 열등하냐? 라는 것입니다.
둘째, 문헌들의 확실한 증거에 의하면 신약성경 27권은 니케아 종교회의 이전부터, 1세기부터 교회에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신약정경 27권은 니케아 종교회의가 아닌 히포 종교회의(393년)와 카르타고 종교회의(397년)에서 재가되었습니다. 그 때 비로소 확정된 게 아닙니다. 이미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교회에서 인정하고 있던 정경을 그 회의들에서 다시 확인했을 뿐입니다.
셋째, 다른 복음서들, 소위 영지주의 문헌들은 정경으로서의 가치가 전혀 없습니다. 영지주의 복음서들은 교회에서 정경으로 인정받은 적이 없습니다.
어떤 책이 신약 정경으로서의 권위를 갖기 위해서는 사도성(사도들이나 사도의 동역자들이 지은 것인가), 저작시기적절성(1세기 중에 저작되었는가), 교리적 적합성(구약성경 및 신약의 다른 성경과 교리적으로 일치하는가), 초대교회의 수납성(초대교회 여러 교회에서 이를 성경으로 받아들였는가), 성령의 영감성 등의 요소를 두루 갖추어야 하는데, 영지주의 문헌들은 이 중 하나도 갖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 영지주의 복음서들은 저작자가 사도들과 전혀 무관합니다. 예컨대 <빌립복음서>를 빌립이나 그의 동역자가 지었다고 믿는 학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둘. 왜냐하면 영지주의 문서들의 저작시기는 아무리 이른 시기로 잡아도 주후 150년 이후이기 때문입니다.
셋. 영지주의 복음서들은 교리적으로 구약성경 및 신약성경과 일치하지 않는 요소들을 많이 담고 있습니다. 영지주의 문헌의 내용에는 허무맹랑하고 비성경적인 요소들이 많이 들어있습니다.
넷. 초대교회가 영지주의 문헌들을 성경으로 인정했었을까요? 천만에요. 영지주의는 사도들과 초대교회로부터 이단으로 정죄받은 사상입니다.
다섯. 신약의 정경 27권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책들입니다. 그러나 영지주의 복음서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신약성경과 영지주의 서적들을 비교해 읽어보면 그 질적인 차이를 느낄 수 있습니다. 영지주의 서적들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되지 않은, 오류 투성이 책들이기 때문입니다.
댄 브라운이 창조해낸 <다빈치코드>의 인물은 이런 모든 요소를 역전시켜 마치 신약성경은 가짜이고 영지주의 복음서들이 진짜인 것처럼 호도하고 있습니다.
(2) 신약성경은 허구에 근거한 글인가?
<다빈치코드>에 따르면, 신약성경의 내용은 꾸며낸 이야기들에 근거하고 있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가짜라는 거죠. 신약에서 묘사된 예수님은 진짜 역사적 예수가 아니라, 꾸며지고 미화된 가짜 예수라는 겁니다.
그러므로 많은 학자들이 소위 "역사적 예수," 진짜 예수의 모습을 찾아내기 위해 애썼지만, 그들은 모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아무런 문헌상의 증거나 고고학적인 증거도 제시할 수 없었고 오로지 추측과 자신의 편견으로 색칠한 엉터리 예수만을 그려놓았을 뿐입니다.
신약성경 기록의 역사적 정확성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방법이 사용될 수 있습니다(John Warwick Montgomery, <History and Christianity>에서).
첫째, 성경의 본문이 현재까지 오류 없이 전달되었는가.
성경 원본은 사라지고 없습니다. 사본들만 남아있는데요, 그것들이 오류없이 전해졌을까요? 예, 그렇습니다. 신약성경의 일부 사본 단편들은 주후 125년까지 연대가 올라갑니다. 그리고 헬라어와 라틴어 번역본까지 합해 1만 3000개 넘는 신약성경 사본들은 모두 한결같이 내용이 일치하고 있습니다. 신약성경 필사자들은 진실된 마음으로 오류없이 필사하기 위해 무척 애를 썼음이, 모든 사본들의 내용 일치에서 증명됩니다. 만일 일부러 왜곡하거나 미화하고자 했다면, 전혀 엉뚱한 내용들이 들어가고 사본들 간에 내용상으로 극심한 차이를 보였을 것입니다.
고대의 어떤 문헌도 신약성경처럼 많은 사본이 없고 신약성경처럼 원본과 사본간의 시간차(약 250년)가 적은 게 없습니다. 예를 들어, 시이저가 쓴 <갈리아 전쟁기>는 사본 수가 고작 10개 뿐인데, 그것도 원본(주전 100년-44년 사이에 저술됨)과의 시간 차이가 무려 1천년이나 됩니다(최고로 오래된 사본이 주후 900년 경에 만들어짐). 그럼에도 사람들은 이런 고대 문헌들의 신빙성을 그다지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성경은 그토록 집요한 공격을 받을까요!
둘째, 성경 자체가 성경을 오류없는 기록이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신약성경의 기자들은 엄격한 역사적 사실들을 조사한 다음, 이를 정확하게 기록했습니다.
셋째, 고대의 다른 역사적 문헌들이 신약성경의 본문 내용이 정확함을 확인해 주고 있습니다. 유명한 역사가였던 요세푸스(주후 37년경 -100년경)도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해 언급했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이도록 넘겨준 로마 총독 본디오 빌라도가 로마 황제에게 당시의 예수 사건에 대해 보고한 문헌을 보면 그 내용이 성경과 일치하고 있습니다.
신약성경을 제자들이 조작하고 미화했다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들이 조작하고 미화한 가짜를 위해 순교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또 그 때부터 지금까지 수백억명의 그리스도인들이 그 가짜를 믿고 진실하게 살았다는 것도 개연성이 없습니다. 성경을 믿는 자는, 강도도 창녀도 살인자도 거짓말쟁이도 새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2.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 아들 하나님이 아니다.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니케아종교회의에서 논의한 주의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이 아버지 하나님과 동등하냐, 그보다 열등하냐 라는 문제였습니다. 결코 예수 그리스도가 신성을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당시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의 피조물로서 그 신성이 아버지보다 못하다는 학설이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니케아회의는 이 문제를 확정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압도적인 지지로 (참석자 328명 중 두 명만이 반대), 성경의 증언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는 피조물이 아니며 아버지가 낳으신 분이고 그 신성이 아버지와 동등함을 확인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다빈치코드>에 따르면, 콘스탄틴이 예수를 신격화시켰다고 합니다.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신약성경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혹은 아들 하나님이심을 확언하고 있으며 예수님의 신성이 아버지와 동질이며 예수님의 영광과 권능이 아버지와 동등함을 명시 혹은 암시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영지주의 문서들도 예수님의 신성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성경 내용의 진실성과 일맥상통합니다. 앞에서 이를 논했으므로 넘어갑니다.
3.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의 구주가 아니다.
<다빈치코드>에 따르면, 예수님은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했으며 그 사이에서 태어난 딸 사라는 갈리아 지방으로 가서 메로빙 왕조를 세웠고 그 후손들이 아직도 살아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아무런 역사적 근거가 없는, 그리고 일고할 가치도 없는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신약성경에 따르면, 예수님은 죽음 후 부활했으며 지금도 살아계십니다. 만일 예수님이 그녀와 결혼했다면 신약성경의 기자들은 이 사실을 기록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과 막달라 마리아의 결혼설은 영지주의 문서인 <빌립복음서>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글에 의거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동반자는 막달라 마리아였다. 예수는 제자들보다 그녀를 더 사랑했다. 예수는 모든 제자들보다 더 자주 그녀의 ( )에 입을 맞추었다." { ( ) 안은 원문이 훼손된 부분임}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이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동반자"라는 단어이며 또 하나는 "예수님이 그녀의 ( )에 입을 맞추었다"는 문구입니다. <다빈치코드>에서 티빙이라는 인물은 이 단어가 아람어로 "배우자"를 뜻하기도 한다고 주장하는데요, 실상 <빌립복음서>는 아람어가 아닌 콥트어로 기록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단어는 아람어도, 콥트어도 아닌 헬라어 "코이노노스"(친구, 동료)에서 차용된 낱말입니다. 그러므로 그 낱말의 의미는 "동료"일 가능성이 훨씬 높습니다.
그러므로 이 단어가 들어간 위의 문장은 다음과 같이 번역되어야 합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동료였다." 누가복음 8:3에서 여러 여자들이 예수님 일행과 함께 하며 자신들의 소유물로 예수님과 12제자 일행을 섬겼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도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이자 동료였습니다.
예수님의 부활 현장에 관한 복음서들의 기록에서 막달라 마리아가 한결같이 주인공으로 묘사된 점을 보면, 그녀가 주님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주님이 그녀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혼은 가당치도 않은 이야기입니다. 순결하신 주님은 부활 후까지도, 막달라 마리아가 너무 기쁜 나머지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만지려 하자 "나를 만지지 말라. 내가 아버지께 아직 올라가지 못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요한복음 20:17).
또 하나, 신약성경의 서신서들을 보면 입맞춤이 당시의 사회적 관습, 그리스도인들의 관습임을 알 수 있습니다. "거룩한 입맞춤으로 입맞추라." 그리스도가 마리아의 어느 부분(아마 볼)에 입을 맞추었다는 것은 당시의 사회적 관습상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명심하십시오. 이 <빌립복음서>는 3세기에 기록된 것으로 학자들이 추정하는, 믿을 수 없는 가짜 복음서라는 사실을 말이죠. 설사 위의 인용구가 역사적 진실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그리스도와 막달라 마리아의 결혼을 증명하는 내용은 결코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결혼하셨다면 그 중대한 사실을 어찌하여, 그토록 진실하고 순결했던 제자들이 숨겼겠습니까? 또 역사적 문헌들에서 왜 그에 관한 아무런 증거도 발견되지 않습니까?
<다빈치코드>는 레오나르드 다빈치가 그린 성화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님의 오른 편에 있는 인물이 여자로서 막달라 마리아라고 주장하며 그녀가 바로 "성배"(최후의 만찬에서 예수님이 포도주를 마신 잔)를 상징한다고 합니다. 다빈치가 그 그림 속에 그린 막달라 마리아가 바로 역사의 수수께끼를 푸는 코드(암호)라는 겁니다. 여기에서 "다빈치 코드"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그 인물은 수염이 없고 여자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당대 다른 작가들의 그림에서도 사도 요한은 수염 없는 여성스런 모습으로 나옵니다. 만일 그가 마리아라면 그림 속에서 요한은 어디에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했다면 그는 인류의 구주가 될 수 없습니다. 죄인으로 태어나 죄인과 결혼한 평범한 인간이 인류를 구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는 죄없는 하나님의 아들이셨으므로 유죄한 인간과 결혼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이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했다는 주장은 예수님의 구주 되심을 암묵적으로 부인하는 해괴망측한 거짓말입니다.
성경의 예언대로 예수 그리스도는 재림 후 그의 신부된 교회와 영적으로 결혼할 것입니다. 이것은 지상의 결혼과 비교할 수 없는, 너무나도 황홀하고 아름답고 거룩하고 행복한 영적 연합입니다.
4. 마지막으로, 기독교가 미트라 신화를 베꼈다는 주장도 고려할 가치가 없는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미트라 신화가 생겨나기 수백년 전에 이미 구약성경에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예언했습니다.
기독교의 모든 진리는 예수그리스도에 관한 역사적 사실들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누구의 무엇을 흉내내거나 베낀 적이 없습니다.
결론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성경만큼 많은 공격에 시달린 책도 없습니다! 기독교 만큼 많은 핍박과 공격을 당한 종교는 없습니다! 예수님 만큼 많은 오해와 의심을 받은 분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성경은 세계 최고의 베스트셀러로서 여전히 의연하게 서있고 기독교는 세계의 참된 종교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의 구주로 세계 수십억명의 사람들에게 경배와 숭앙을 받고 있습니다. 그 분은 지금도 살아계신 하나님이며 저와 여러분의 구주, 무한히 자비로운 구주이십니다. 할렐루야!
<다빈치코드>는 성경과 기독교와 예수님에 관한 한 거짓말코드입니다. 악을 바꾸어 선으로 만드시는 하나님께서 홀로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아멘.
주1 : 이 글은, 어윈 루처 저, <다빈치코드 깨기 The Davinci Deception>를 많이 참조했음을 밝혀 둡니다.
주2: 영지주의란 무엇인가? 간단히 말해 영적 지식으로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사상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육체적 부활을 부인하거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 구원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신령한 지식을 통해 구원에 도달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영지주의는 원래 기독교 사상 더하기 페르샤 종교 및 각종 신비 종교 사상들이 혼합된, 일종의 혼합주의 사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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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1
리 스트로벨의 저술, <다빈치코드 해체>(사랑플러스)에 의거해 국제제자훈련원에 서 만든 <다빈치코드>의 허구성에 관한 글을 여기에 수록합니다:
영화 '다빈치코드'가 개봉 11일만에 관객 240만 명을 동원하며, 국내 박스오피스 1위를 지키고 있습니다. 댄 브라운의 원작소설이 워낙 논란을 일으켰던 터라, 따로 마케팅이 필요 없을 정도로 각종 미디어에서 대서특필하면서 자연스럽게 관객들의 발길을 끌었습니다. 원작을 읽은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원작을 전혀 접해보지 않은 사람들조차 개봉과 더불어 극장을 찾았습니다.
물론 깐느 월드 프리미어 이후 평론가들로부터 신랄한 비판이 이어지고 있고,‘야후 무비’에서의 평점도 평론가 C+, 관객 B로 낮아, 앞으로 그 기세가 어느 정도 유지될 지는 미지수입니다. 원작소설을 창의적으로 재구성하지 못함으로 인해 영화는 원작에 비해 그 파장은 작을 것이라는 예상이 많습니다. 실제로 미국 박스오피스에서는 지난 주 개봉한 ‘엑스맨: 최후의 전쟁’에게 1위를 내주며, 개봉 후 1주일 만에 큰 격차로 2위로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영화의 흥행여부와 상관없이, 교회의 지도자인 우리에게는 '다빈치코드'와 관련해서 어떤 식으로든 반응이 요구되는 것이 또한 현실이기도 합니다. 이에 이번 호에서는 예일대학교 법과대학 출신의 탁월한 언론인으로, 교회에 대한 적대감으로 가득 찬 냉소적인 무신론자였다가 기독교변증가로 거듭난 리 스트로벨의 “다빈치코드 해체”(사랑플러스)를 중심으로 '다빈치코드'를 어떻게 볼 것인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단지 소설 혹은 영화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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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1.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는 거짓이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전제 자체가 잘못된 것으로, 실제로 패자에 의해 기록된 역사도 많습니다. 단적인 예로, 고대세계의 가장 큰 시민전쟁 중 하나였던 펠로폰네소스 전쟁 역시 승자인 스파르타가 아니라 패자인 아테네 사람에 의해 기록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콘스탄티누스가 등장하기 150~200년 전부터 정경은 이미 존재해 왔고, 니케아 공의회에서는 예수의 신성 문제는 토론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수와 막달라 마리에 관한 비밀을 3천년 동안 전수해 왔다고 주장하는 시온수도회야말로 A.D. 1099년에 예루살렘에서 창설된 것이 아니라, 1956년 파리에서 피에르 플랑따르라는 사람에 의해 창설되었습니다. 시온수도회는 플랑따르가 날조하여 파리 국립박물관에 숨겨둔 문서에 의해 만들어진 신화에 불과하며, 그 역시 1993년 자신이 전체 시온수도회 조직을 날조했다고 인정했습니다. 해체2. 사복음서는 의도적으로 가공된 이야기다? 또한 그가 어디에서 80개나 되는 복음서를 찾았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신약성경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복음서는 오히려 예수를 더욱 신비롭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가진 신약성경에 포함된 복음서는 예수의 인성과 신성을 모두 강조하는 반면, 신약성경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복음서는 예수를 오히려 더욱 초자연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의 신성을 부정하는 복음서를 없앴다는 것은 타당성이 없습니다. 또한 댄 브라운이 인용한 복음서는 기독교 영지주의를 신봉했던 사람들이 쓴 것으로, 이 사상은 2세기와 3세기에 번창했던 사상이었습니다. 따라서 이들은 신약성경의 복음서보다 휠씬 나중에 나온 것임으로, 이런 후기 문서들을 초기의 문서들보다 사실에 대해 더 정확히 알려 준다고 믿어야 할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신약성경의 복음서는 직간접적인 목격자들의 증언에 뿌리를 둔, 사건과 아주 가까운 시기에 쓰여진, 저자에게 조작이나 삭제의 자유가 있었다면 편집과정에서 분명히 삭제되었을 법한 제자들에 관한 당혹스런 내용이나 예수의 말이 담겨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고고학과 성경 외부에 있는 고대 저들에 의해 그 정확성이 확증된 유일한 복음서인 것입니다. 해체3. 예수는 원조 페미니스트였다? '다빈치코드'는 신약의 복음서보다 휠씬 후에 나온 두 개의 영지주의 복음서인 빌립복음과 막달라마리아복음을 의존하여 이러한 주장을 펼치는데, 실제로 이들 중 어느 것도 예수가 누군가와 결혼했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들 저서는 성적인 행동을 본래 악한 것으로 보는 영지주의에 깊이 빠져 있기 때문에, 성적 연합의 의미를 갖는 결혼이라는 개념 자체를 아예 배척했을 것이 뻔합니다. 또한 '다빈치코드'에서는 빌립복음에서 예수와 마리아와의 관계를 묘사하기 위해 사용되었던 ‘동료’라는 말은 실제로는 아람어로 ‘배우자’를 뜻한다고 주장하지만, 빌립복음은 아람어가 아닌 곱트어로 쓰여졌으며, 이 단어는 십중팔구 ‘자매’를 의미하였을 것이라고 학자들의 의견입니다. 예수가 막달라 마리아의 입술에 키스했다고 추정되는 내용 역시 빌립복음의 실제 사본에서는 빠져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1세기 성자들의 공동체를 보면 결혼 안 한 랍비와 유대선생들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1세기 랍비들은 결코 독신으로 지내려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근거로 예수가 결혼했다는 주장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리고 ‘최후의 만찬’에서 마리아라고 주장할만한 어떠한 근거도 없습니다. 많은 미술사가들은 세 가지 이유에서 사도 요한이라고 인정합니다. 첫째는 요한은 그 그림의 다른 어디에도 없습니다. 둘째는 요한은 상당히 여성적인 외양을 갖춘 것으로 종종 묘사됩니다. 셋째는 가장 중요한 것인데 레오나르도 다 빈치 스스로 그 인물이 요한이라고 인정했습니다. 더군다나 초기 스케치를 그리면서 그렇게 말했습니다. 해체4. 예수는 인간이었다? 부활과 관련해서는 다섯 가지의 기본적이고 거의 논쟁의 여지가 없는 역사적 사실이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는 십자가에서 정말 죽었습니다. 로마인들이 그의 죽음을 확인해 주었습니다. 둘째는 그는 무덤에 묻혔습니다. 그 무덤 주인의 이름-아리마대 요셉-까지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셋째는 그가 묻힌 무덤은 3일 후에 비어 있었습니다. 이것은 예수의 반대자들조차 인정한 것입니다. 넷째는 예수를 따르던 사람들이 그가 살아있는 것을 다시 보았습니다. 그리고 부활의 증거를 위해 기꺼이 죽으려고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제자들의 삶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을 통해 전적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죽음에 직면했어도 말입니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이 이 소설과 영화의 이야기를 믿고 싶어 할까요? 그것은 바로 의심 때문입니다. 지난 20세기 동안 많은 사람들은 교회와 교회가 했던 일에 대해 의심해 왔습니다. 어쩌면 그들은 '다빈치코드'를 통해 자신들이 듣고 싶고 보고 싶어 하는 것들을 보는 것일지 모릅니다. '다빈치코드'가 말하는 바가 사실이기 때문이 아니라, 믿고 싶었던 것들을 읽고 보기 때문에 관심을 갖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따르라고 우리를 부르십니다. 이것은 우리의 삶을 포기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이 성경 대신 '다빈치코드'에 호감을 보이는 이유는 성경이 자기 포기, 즉 인생에서 할 수 있는 가장 힘든 일을 명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우리의 삶을 양도하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이 사실이 싫어서 성경을 의심하는 것입니다. 이번 한 주간 '다빈치코드'를 계기로 우리가 믿는 기독교의 진리가 얼마나 타당한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말씀인지를 깨닫고 찾아가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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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2
다빈치코드의 작가, 배경, 저작기법 등을 보다 심도있게 알고자 한다면 다음 글을 읽어보세요. 이 글의 큰 제목은 "렝던 죽이기"입니다.
<다 빈치 코드> 속에 숨겨져 있는 음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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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4년 7월에 베텔스만코리아(현재 대교베텔스만)를 통해, 소설 <다 빈치 코드>가 번역되어 나왔다. 단지 두 달 만에 50만부를 넘기더니, 그해 연말엔 100만부가 팔리고, 2005년 한 해 동안에도 베스트셀러 2위로 판매되었다. 현재 1월엔 39쇄로 250만부를 나갔고, 일러스트를 곁들인 양장본도 2만부를 넘겼다. 아울러 <다 빈치 코드> 해설편과 사전편과 다빈치 코드에 큰 줄거리를 준 <성배와 잃어버린 장미>와 같은 코드가 유사한 작품들도 잇달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댄 브라운의 작품 다빈치 코드가 폭발적인 베스트셀러로서 명성을 차지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히 한국에서만 1년 사이에 250만부가 팔렸다면 독자를 다빈치 코드로 감아 둘만한 원인이 있을 터이다. 예민한 독자란 내용과 완성도에서 떨어지는 작품을 보면 도공과 같이 손에 들고 있는 망치로 가차 없이 깨뜨려 버린다. 그야 말로 독자는 심판주이며 평론가로 작품의 감정사와 같은 존재들이다. 하지만 내용과 완성도에서 감명을 받은 작품에 대하여는 찬사를 아까지 않으며 성심을 다해 작가의 펜이 되어 주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다빈치 코드를 읽은 독자들은 작품에 대하여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작품의 특징을 들 때에 이구동성으로 흥미롭다는 점을 들고 있다. 다음에 책의 내용에 푹 빠져 주인공과 함께 비밀을 찾아 떠나는 여행의 즐거움과 긴장감 그리고 다음 장면에 대한 호기심이 가장 큰 매력으로 꼽히고 있다. 다빈치 코드의 전체적인 특징은 흥미를 유발하고 재미가 있고 함께 퍼즐게임을 하는 듯 코드의 암호를 풀어 나가는 일련의 과정들이 짜릿한 쾌감을 증폭시키며 그럴듯하게 제시하고 있는 역사적인 근거는 지적인 만족감까지 선사해 주고 있다. 루브르 박물관장인 소니에르가 피살되어 다빈치의 “비트루비우스의 인체비례”의 모습으로 죽어 있는 죽음으로부터 시작되는 이 작품은 장(chapter)과 장 사이를 코드화 되어 있는 음모로 연결되어져 있다. 철저히 계산되어 있는 음모는 어지간한 머리로는 다음 장에 나올 또 다른 음모에 대하여 예측할 수 없는 정도로 치밀한 조직으로 기호화되어 있다. 그러나 천재화가인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후대의 비상한 천재라면 풀어낼 수 있도록 자신의 작품 속에 은밀히 암호를 코드화시켜 은닉시켜 놓고 후대의 천재가 이 암호를 풀고 인류를 기만하고 있는 거대음모를 풀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변사자의 손가락이 가리키고 있는 손가락의 방향을 단서로 기호학자인 렝던과 암호해독가 소피 누뵈를 통해 암호코드가 하나 둘 풀려 나간다. 암호코드를 풀어 나가는 동안에 그 거대한 음모는 이 소설을 통하여 폭로되고 역사에 숨겨져 있던 거대한 음모가 파헤쳐지고 고발되어진다. 독자들은 정의가 과연 살아 있다는 사필귀정의 정의론을 선물받기라도 하는 양 통쾌함으로 시원하다. 독자들의 구미에 딱 들어맞는다. 지금 전 세계 독자들은 월드컵 경기를 보면서도 다 빈치 그림에 숨겨진 고대역사의 비밀을 해독하느라 분주한 날들을 보내고 있을 것임이 분명하다. 문화선교연구원의 송태현 교수는 다음과 같이 평한다. “추리 소설 형식으로 흥미를 유발시키고 있는 특성과 이 작품 속에 담겨 있는 내용 역시 흥미롭다. ‘정통’ 기독교를 비판하는 부분도 그렇고, ‘정통’ 기독교가 박해한 원래의 기독교를 제시한 점도 그러할 뿐 아니라,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가 결혼했으며 그 후손이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는 쇼킹한 주장도 그러하며, 시온 수도회라는 비밀결사단과 ‘정통’ 기독교의 주구(走狗) 기관인 오푸스데이와의 투쟁이 그러하다. 셋째, 이 작품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인 ‘여성성의 회복’이 우리 시대에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지적한다. 한기총은 신자들에게 끼칠 부작용을 우려하여 ‘영화 다빈치 코드 안보기 운동’을 전개했다. 동시에 이 영화의 허구성을 밝힌 동영상과 홈페이지를 제작하여 상영반대운동에 박차를 가하는 한편 최근 영화 다빈치코드와 관련한 5개 쟁점사항을 이슈화 하고 기독교의 입장을 밝혀 상영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는 이 작품이 한국 전체 기독교에 중대한 위협이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화제에 화제를 몰고 다니는 이 책에 전 세계의 지식층들이 열광하고 있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덴 브라운은 기독교의 역사는 음모론자들에 의하여 철저히 왜곡되고 비밀은 숨겨지고 위장된 채로 역사를 속이고 있었으나 자신의 작품을 통하여 진실이 드러났다는 듯 외치고 있다. 1년 동안에 수천종의 자료를 수집하고 검토하는 등의 철저한 준비를 거쳐 2년 동안에 걸쳐 집필하여 완성된 작품이라는 덴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는 기존의 기독교 신자들마저 “그럴 수도 있었겠다”라는 반신반의 하며 과연 그러한가? 라는 물음표를 던지고 있는 실정이다. 결국 이 작품에 대한 평론은 계속되어질 수밖에 없다. 이 작품을 상품적 작품으로 보아야 하느냐 작가의 의도적인 음모로 보아야 하느냐는 순진한 질문으로 이 작품에 대하여 접근해 보도록 한다. 1. 저자에 대한 이해 덴 브라운(Dan Brown)은 누구인가? 덴 브라운은 1964년 6월 22일 영국에서 출생했다. 수학자인 아버지와 음악인 어머니 사이에서 출생한 댄 브라운은 엠허스트 대학을 졸업했으며 대학 졸업 후 캘리포니아로 이주 작곡가, 음악가, 가수 등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1993년 고향인 뉴헴프셔주로 돌아와 모교인 필립스 엑스터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영어교사로 재직하다 1996년 영어교사를 그만두고 작가로 입문하여 작가생활을 시작한다. 1998년 첫 번째 소설인 'Digital Fortress' 발표했다. 다시 2년이 지난 2000년에 천사와 악마 ‘Angels and Demons'를 발표하고 이듬해인 2001년 디셉션 포인트 ’Deception Point'를 발표했으며 2003년 다빈치 코드 ‘The Da Vinci Code'를 발표하여 단숨에 전 세계의 문단을 평정하고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덴은 현재 로버트 랭던을 주인공으로 한 ‘솔로몬의 키’를 집필 중이다. 덴은 역사가이자 화가인 부인과 뉴헴프셔주에 거주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자료조사는 부인과 함께 작업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덴의 머리에서 구상되어진 작품의 뼈대는 역사가 부인의 머리에서 고증되어지고 혹은 부인의 아이디어가 덴의 손길을 거쳐 작품화 되어지는 동안에 뼈대에 근육과 살갗이 붙여지며 작품의 모양새를 갖추어 갔다. 역사적 사건과 고증 그리고 역사의 뒤안길에 숨겨져 있는 무수한 역사 이야기들에 대한 자료는 덴이 필요로 할 때 언제든지 부인의 머리와 손에서 나왔다. 평범한 교사였던 댄 브라운이 교사직을 버리고 소설가로 입문하여 성공을 거둘 수 있는 이면에는 역사가이며 화가인 그의 아내가 있었기에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덴은 현재까지 주목 받는 세편의 소설을 집필하였고 다빈치코드를 발표하기 전 이미 두 편의 작품에서 덴의 소설가적 능력은 충분히 나타났다. 문단의 촉망받는 젊은 작가로 주목 받고 있던 중에 다빈치 코드를 발표하였고 다빈치코드의 성공으로 일약 베스트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덴의 작품 중 2000년 출간된 ‘천사와 악마’에서는 하버드 대학교의 종교기호학 교수 로버트 랭던이 등장한다. 랭던은 ‘다빈치 코드’에서 인류의 비밀을 파헤치는 주인공으로 재차 등용되어 마침내 성공을 거두는 실력 있는 학자로 포장된다. 전작인 “천사와 악마”에서 부족했던 추리부분에 대한 설명이 다음 작품인 다빈치 코드에서 랭던에 의해 완벽하게 해설되었다. 댄 브라운은 전작에서 미처 소화해내지 못했던 사건이나 주요 인물들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그것들을 발전시켜 새로운 작품으로 만들어 내는 과정을 진화의 과정처럼 자연스럽게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는 특징과 연결점을 가지고 있다. 천사와 악마가 1권이라면 다빈치 코드는 2권이 되는 방식이다. 덴 브라운은 다빈치 코드의 성공여세를 몰아 3편에 해당하는 “솔로몬의 성배”를 집필 중에 있다. 이제 천사와 악마에서 탄생된 랭던은 세계를 한 바퀴 돌고 다시 유럽으로 넘어가 이스라엘에서 성배를 찾아내는 코드완성을 목적으로 세밀한 계획을 짜고 있는 중에 있다. 이 성배는 솔로몬 시대에 창조되어진 것이라는 가설을 바탕으로 틀이 짜여 지고 있다. 과연 3편에서 랭던이 성배를 찾아낼 것인가. 창조주 야훼께서 선민으로 택하였다는 유다의 예루살렘 안에 성배가 아직 자리하고 있음에도 아직 찾아 내지 못하고 있었던 성배를 랭던이 찾아낼지 벌써부터 전 세계는 랭던의 행보에 주목하고 있다. 독자의 이목을 한 몸에 받고 있는 랭던의 행진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벌써부터 독자들의 이목은 랭던을 향해 쏠리고 있다. 랭던의 옆에는 여주인공인 미모의 암호해독가 소피 누뵈가 동행하고 있을 것이다. 종교적인 관점에서 문제를 제기하면 성공을 거둘 수 있겠다는 덴의 예측은 빗나가지 않았다. 댄은 전 세계 인구 중에 기독교인과 가톨릭교인의 수가 얼마나 되는지를 먼저 가늠했다. 그리고 이들과 적대관계에 있는 종교인들의 수를 예측했다. 덴의 예상대로라면 전 세계인들을 독자로 삼을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다. 덴은 자신의 작품을 읽어줄 독자의 취향과 기호를 파악하고 독자가 원하는 방향을 100으로 잡고 집필하였다. 덴은 100으로 써냈고 20은 덴의 부인에게서 나왔다. 결국 댄 브라운의 천재적인 상상력과 치밀한 구성과 역사 끼워 맞추기의 작품전개는 120의 결과로 나타났다. 아직 명성을 얻지 못했던 2000년에 천사와 악마를 발표하고 난 후 독자들의 반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던 덴은 만족할 만한 성공을 거두자 자신이 관심을 가지고 있던 정치문제에 대하여 접근하였다. 집필 후 1년만인 2001년에 탄생된 ‘디셉션 포인트’는 정치스릴러물로 놀라운 과학적 발견과 이를 둘러싼 충격적인 정치 음모를 그리고 있다. 1998년에 출간된 ‘디지털 포트리스’는 그의 첫 작품으로 미국 국가안보국의 수석 암호 해독가 수잔 플레처가 등장한다. 컴퓨터 보안 프로그램을 풀기 위해 벌어지는 두뇌 게임을 그린 작품으로 잠시도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드는 스릴만점의 작품으로 소개되고 있다. 이제 “덴 브라운의 소설적 상상력”이 얼마나 방대할 수 있는지 얼마나 큰 파장을 불러 올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준 덴 브라운은 다빈치코드로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세계 언론은 그를 소설계의 빅뱅이라고 부르며 찬사를 아까지 않고 있다. 이제 덴 브라운과 그의 작품들은 지성의 세계에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이름으로 고착되었다. 그가 무엇을 하던지 혹은 무엇을 먹고 무엇을 즐기느냐에 따라서 아니 그의 기호나 취미에 따라서 다빈치 코드의 열풍과 함께 회오리를 몰고 다닐 전망이다. 2. 작품의 특징과 10가지 테제 이 작품은 작가의 풍부한 상상력과 천재적인 추리력을 바탕으로 완성된 단순 추리소설이다. 하지만 단순추리소설이면서도 단순추리소설의 차원을 한 단계 끌어 올린 작품으로 평가 받고 있다. 이유는 추리사유의 지평이 넓고 역사와 문화를 해부하여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예술문화를 기묘한 기하학의 형태를 도입하여(패러디기법) 역사로 해설하여(콜라주기법) 리얼리티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킨 작품이기 때문에 그러하다. 독자는 이 소설이 픽션화 되어 있는 작품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마치 한 권의 역사서를 들고 있는 듯 착각에 빠져든다. 이 역사서는 정통역사서가 아닌 역사의 뒤안길을 기록한 야사임이 분명한데 다시 정통역사서로 되돌림 된다. 그 이유는 역사에 등장한 거대인물들이 이 작품 속에서는 한낱 야인에 불과한 형태로 서술되기 때문이다. 이 야인들 중에는 기독교의 정체인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인물로 등장한다. 신이며 하나님인 예수 그리스도가 한낱 야인에 불과하다니 ... 그래서 기독교 신자인 독자는 충격을 받고 한숨을 깊이 내어 쉬면서 이를 악물고 다음 장으로 눈길을 돌린다. 비판하기 위해서이다. 허튼 소리하면 박살을 내고 말겠다는 앙다문 입은 역사의 거장들이 대거 출몰하고 음모의 주인공이라는 해석에 그만 문화적인 충격까지 경험하게 되면서 작품과 신앙 사이에서 몸을 비튼다. 이 작품이 거기까지 나가 있다. 이 작품은 문화적인 충격까지 일으키는 작품이다. 그 충격의 정도에 대하여 메스컴의 반향과 평가는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있는데, “메가 베스트셀러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킨 이 책의 전 세계적인 인기는 가히 열병에 가깝다. 책에서 언급한 내용을 추적한 각종 TV 프로그램, 아마존 독자서평 3천개의 기록에서도 알 수 있듯이, 지금 전 세계 독자들은 다 빈치 그림에 숨겨진 고대역사의 비밀을 해독하느라 분주한 날들을 보내고 있다. USA Today지는 다빈치 코드가 유일하게 해리포터 시리즈의 판매량을 앞질렀다고 보도했고, ABC 방송사는 뉴스스페셜에서 <예수, 마리아 그리고 다빈치>라는 제목으로 책에서 언급한 내용을 크게 다루었다.”는 찬사를 아끼지 않고 있다. 충격을 넘어 감동을 선물로 받았는데 이 작품으로 인하여 열병을 앓고 있을 정도라 했다. 과연 이 작품에는 문화적 충돌과 충격이 있고 가슴이 꿈틀거리는 무언가가 있다. 그것은 기독교인에게는 분노이며 비기독교인과 안티기독교인들에게는 시원함이다. 국내에서도 덴 브라운은 저명인사가 되어 있고 다빈치 코드가 점하고 있는 위상 역시 대단하다. 주요언론인 일간지에는 다빈치 코드와 저자인 덴 브라운에 대하여 전문기자 문학평론가군에서 주요 논평을 달아 다빈치 코드가 가지고 있는 위상의 정도를 짐작케 하고 있다. 마치 이 작품을 보지 않으면 지식인 축에도 들지 못한다는 정도로 평가되어 있다. 문학평론가 고영직은 중앙일보를 통하여 덴 브라운이 수정주의 성경해석입장에서 접근한 작품으로 분석하면서 자신을 ‘발목신자’라는 표현까지 사용하며 평하고 있을 정도이다. 작품을 평하기 위해 평론가가 자신의 종교적인 정체를 드러내는 경우는 드물다. 그만큼 이 작품이 우수하다는 뜻이다. 이 작품은 추리소설의 양식을 가지고 펙트와 픽션 사이를 자유롭게 교행하고 있다. 펙트와 픽션 사이를 연결하고 있는 가교는 추리양식이다. 독자는 추리라는 가교에 상당히 익숙해져 있다. 전 세계를 휩쓴 “헤리포터”와 같은 양식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존 그리샴, 톰 클랜시 등이 일궈놓은 테크노 스릴러(전문지식을 바탕으로 한 스릴러)의 대단히 인문학적이고 지적인 진화물에 다빈치 코드의 파워가 가세함으로 오히려 기왕의 테크노스릴러의 차원에 새로운 동력이 생긴 꼴이다. 덴 브라운은 자신의 작품을 펙션(Faction)으로 정의했다. 사실인 펙트(Fact)와 가상(허구)인 픽션(Fiction)이 결합된 작품이라는 말로 자신의 작품의 격을 단숨에 한 단계 올려 버렸다. 덴 브라운이 자신의 작품의 격을 한 단계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은 이의를 달지 않는다. 오히려 서둘러 덴 브라운의 말에 훈장을 달아주는 찬사로 답했다. 실상 대작가라 할지라도 자신의 작품의 품격을 함부로 올릴 수는 없다. 작품의 품격은 평론가들에 의하여 평가되는 것이지 자신이 함부로 올리거나 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문학평론가 고영직 역시 다빈치 코드 9쪽에 실려 있는 내용을 근거로 사실 작업에 착수하고 난 후에 훈장을 달아 주었다. "1099년에 설립된 유럽의 비밀단체, 시온 수도회는 실제로 존재하는 조직이다. 파리 국립도서관은 1975년에 기밀문서로 알려진 양피지들을 발견했는데, 거기에는 아이작 뉴턴·보티첼리·빅토르 위고·레오나르도 다빈치를 포함한 수많은 시온 수도회 회원들의 이름이 있었다. (중략) 이 소설에 나오는 예술작품과 건물, 자료, 비밀 종교의식들에 대한 모든 묘사는 정확한 것이다." 이와 반대로 안양대 기독교문화학과 교수인 추태화 박사는 이 작품은 작가 덴 브라운의 의도적인 문제소설로 지목했다. 이 작품의 뼈대는 10개의 테제로 구성되어 있으며 10개의 테제를 기둥으로 작품을 전개하고 있는 전형적인 추리양식의 소설형태를 취하고 있으면서 덴 브라운은 10개의 테제에 반기독교적인 악의를 품고 창작했다는 평이다. 테제 1: 예수 그리스도가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했다. 테제 2: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의 남자 제자들에게 박해를 받아 프랑스로 도피했다 테제 3: 남자 제자들은 성경에서 막달라 마리아를 몰아내기 위하여 부정한 여인이라는 음모를 꾸며 “여성"을 제거했다. 테제 4: 콘스탄틴 왕은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성경을 자신의 입맛에 맞도록 재편집하도록 했다. 테제 5: 예수와 마리아의 후손들이 프랑스 메롤링어가와 결혼하여 그 혈통의 선조가 되었다. 테제 6: 한편 가톨릭 교회는 이 사실이 공개되지 못하도록 지속적인 방해공작을 해왔다. 테제 7: 예수의 후손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시온수도회의 이름으로 성전기사단을 설립하여 그 후손을 보호해왔다. 테제 8: 시온수도회는 성배와 예술을 상징적으로 활용하여 이 비밀을 간직해 왔다. 테제 9: 더 이상 그 비밀을 묻어둘 수 없어 세상에 폭로할 때가 되었다. 테제 10: 기독교는 위 사실을 숨겨왔기에 위선을 가장한 종교이다. 10가지 테제는 테제와 테제 사이의 연결은 코드라는 암호에 의해 연결되고 이 연결은 픽션을 펙트가 보완해주는 리얼리티(reality) 기법으로 진실이라는 등식을 성립해 나간다. 하나의 테제는 하나의 결론을 등식으로 성립해 놓고 숫자와 암호를 매개로 하여 최종 결론인 10번째 테제를 향해 전개되어 간다. 9개의 테제이자 등식은 결국 10번째 테제를 증명해내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희대의 이단아 덴 브라운은 그의 작품인 다빈치 코드를 통해 기독교는 위선을 가장한 거대한 사기집단이라고 그럴 듯하게 논증하며 예수를 팔아 부와 명성을 거머쥐었다. 위의 10가지 테제를 살피면 빠진 것이 하나 보인다. 한 가지 추가를 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성배의 행방이다. 교묘한 덴 브라운은 10개의 테제가 성배의 행방을 추적하고 있다는 암시를 주고 있다. 다빈치 코드는 완결된 작품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인 작품이다. 현재 덴 브라운은 다빈치 코드의 후속편 “솔로몬의 성배”를 집필 중에 있다. 그리고 다빈치 코드는 1편이 아니라 2편에 해당된다. 따라서 다빈치 코드를 정확하게 비평하기 위해서는 1편인 “천사와 악마”와 연결해서 보아야 정확한 비평이 나오게 되어 있다. 1편 “천사와 악마”에서 창작된 기호학자 렝던은 2편인 “다빈치 코드”에서 종횡무진 활약을 하며 마침내 3편에서 지구를 한 바퀴 돌아 솔로몬의 성배를 찾아 예루살렘으로 향하도록 안배되어 있다. 3. 작품의 기법 콜라주와 패러디 기법 역사는 AD와 BC을 통해 양분된다. AD는 고대문명으로 BC는 기독교문명으로 역사의 기준점이며 경계선인 AD와 BC을 통해 명확히 구분된다. 즉 그리스도 이전 시대인 AD는 고대문명으로 국가 간의 고유한 문명이 보존된 반면 그리스도 이후시대인 BC는 고대문화와 기독교문화가 어우러지면서 현대문명까지 이르고 있다. 고대로부터 전승되어진 전통적인 가치관과 기독교 가치관은 서로 흡수 혹은 타협을 통해 기독교적 가치관을 형성했다. 기독교는 종교라는 이름으로 전통적인 가치관을 흡수하여 기독교적 가치관을 도출해 냈는데 기독교적 가치관은 기독교 문화를 생산해 냈다. 기독교 문화는 신상을 세우지 말 것을 강령하고 있으나 가톨릭은 성자로 추서된 성자들의 인물상과 명화를 남겼고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같은 거장을 통해 모나리자(1506), 최후의 만찬(1497), 암굴의 성모(1483), 동방박사의 예배, 성 안나 등의 불후의 명작을 남겼다. 덴 브라운은 다빈치 코드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을 전용하여 자신의 작품을 완성시켰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명성과 지명도라는 뒷심은 덴 브라운 같은 신예작가의 작품을 일으켜 세워 날개를 달아 준 꼴이 되었다. 기독교 문화의 걸작을 자신의 작품에 끌어 들여 성공한 케이스이다. 옥은 갈아서 작품을 만들어야 비로소 보석이 되고 진주가 서 말이라도 꿰어야 한다. 진주는 진주목걸이로 만들어 낼 때 최고의 가치가 창출된다. 댄 브라운은 진주를 꿰었다. 1년 동안 진주를 끌어 모아 2년 동안의 작업으로 진주목걸이를 만들어냈다. 흥미가 유발되는 테제들과 충격적인 수식용어들을 꿰어서 진주목걸이를 만들어냈다. 덴 브라운은 콜라주 기법과 패러디 기법을 치밀하게 사용하여 마치 콜라주 기법이나 패러디 기법이 사용되지 않은 역사적 진실로 착시할 수 있을 정도의 작품으로 창작했다. 현대문학에서 패러디(Parody)기법은 리얼리티(reality)를 위한 중요한 기법으로 도입된다. 기존 가치를 제 입맛대로 바꾸어 보는 것으로 문학 작품의 한 형식이다. 원래의 뜻은 어떤 저명 작가의 시구나 문체를 모방하여 풍자적으로 꾸민 익살스러운 시문(詩文)을 말한다. 즉 흥미를 유발하기 위하여 뒤집어 보는 것이나 거꾸로 세워 놓고 보는 것이나 고개를 돌려 삐딱하게 보는 것이나 직선을 삐뚤빼뚤하게 만들어 보는 것 등 세상을 삐딱하게 보려는 유행과 관계가 깊다. 기존의 전통적인 발상을 뒤집고 이단적인 새로운 관점으로 사물을 관찰하고 해석해내는 이 작업은 미술이나 문학에만 의존하지 않고 문화의 전 영역에서 고르게 나타난다. 그것은 상업적 이유와 변화를 추구하는 요구와 맞물려 있다. 음악에서 뉴에이지 음악이 전성기를 누린다면 한편에서는 복고풍의 음악과 전통적인 음악이 공존하며 뉴에이지 음악의 빈틈을 노리고 있는 형태이다. 이는 각 연령대에 따라 취향과 기호가 다르기 때문이기도 한데 패러디 기법은 변화를 추구하는 이단아들의 취향에 딱 들어맞는다. 간혹 패러디에 익숙한 이들 이단아들의 열정과 환호에 가려 인기도에 정확한 계측이 불가능해 지는 경우도 종종 관찰된다. 다빈치 코드의 10가지 테제에는 패러디 기법과 콜라주 기법이 함께 혼용되었다. 이로 인하여 독자는 추측과 유추로 가상의 현실을 현실로 설정한 덴 브라운의 기교에 말려들어 허구와 역사도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혼란을 겪어야 했다. 우리는 덴 브라운이 작곡가이며 음악가로 활동했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다. 콜라주 기법은 필요한대로 뜯어 붙이기인데 ‘풀로 붙이기’는 작업을 뜻한다. 덴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에는 패러디된 작품에 역사가 뜯어 붙이기 된 형태로서 패러디된 사건을 역사가 수식해 주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콜라주 기법은 파카소 등의 인상파 화가들이 유화에 신문기사나 벽지 혹은 악보를 풀로 붙여 넣은 작업에서 이름 되었다. 작곡가 출신의 덴 브라운이 콜라주 기법을 놓칠 리가 없을 것이라는 유추가 자연스럽다. 덴 브라운은 자신의 가설을 방증하기 위해 소설 중간 중간에 삽입한 풍부한 종교사와 천문학 지식, 이집트 상형 문자와 라틴어 등의 해박한 지식을 선보이고 있는데 한 마리의 나비처럼 시공을 자유로이 넘나들고 있다. 종횡무진하며 풀어내는 언어학과 기호학 '강의' 암호와 고등수학 풀이의 수준은 재미나 상식의 차원을 넘어선다. 여기에 숫자를 나열해 놓고 그 숫자가 아나그램(철자 바꾸기), 암호풀이, 상징성에 대한 해독의 과정을 거치면서 숫자는 수를 나타내는 기호가 아니라 음모를 풀어내는 단서로 둔갑하고 다시 암호화 된다. 도무지 정신이 없다. 실재하는 명화가 인류의 비밀을 품고 있다는 독특한 가설을 설정해 놓고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실은 종교단체의 수장이며, 그의 그림 '모나리자' '최후의 만찬' 등에 암호를 배설하고 음모에 담긴 인류의 비밀을 폭로하기를 원하고 있다는 가설은 난생 처음 보는 가설이다. 작가는 이 가설들을 패러디하고 콜라주해서 교묘히 배치해 두었고 허무맹랑한 가설이니 볼 것도 없을 것이라는 선입관을 이 모든 것이 고대로부터 숨겨져 온 은밀한 음모였다는 말로 입을 막아 버리며 숫자와 기호를 마구 뒤섞어 이것을 풀어내 봐라 하고 내민다. 골머리를 썩이며 이것을 푸는 동안에 이미 가설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다음 테제에서는 더욱 충격적이고 놀랄만한 가설로 머리를 짓누른다. 구체적으로 콜라주기법과 패러디기법이 사용되어진 리얼리티 기법의 도입부를 살펴보자. 1)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기호 루브르 박물관 소장인 소니에르가 죽어가면서 남긴 유언은 어이없는 숫자 놀음이었다. '13-3-2-21-1-1-8-5'라는 숫자들은 죽음으로 남긴 유언치고는 어이없는 숫자의 나열로 비친다. 하지만 아나그램(철자 바꾸기), 암호풀이, 상징해독의 과정을 거치면서 위의 숫자는 피보나치수열이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이 숫자는 다시 '1-1-2-3-5-8-13-21'로 재배열되면서 앞의 두 숫자를 합한 값이 다음 값이 되는데 이 숫자는 성배를 여는 중요한 암호로 암시된다. 'P.S'는 소피의 이니셜, 즉 프린세스 소피가 되는가 하면, "오, 불구의 성인이여!(Oh, lame saint!)"라는 말은 철자 바꾸기를 거치면 해독되는데 "모나리자(Mona Lisa!)"가 된다. 2) 막달라 마리아의 과거 작가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자신의 명작인 '최후의 만찬'에 자신만이 아는 '코드화'된 형태로 예수의 아내 막달라 마리아를 등장시켰다고 주장한다. 예수 우측에 있는 사람이 여성으로서 막달라 마리아라는 주장이다. 전통적인 해석은 사도요한이다. 그렇다면 왜 막달라 마리아인가? 막달라 마리아라는 이름은 출신이 막달라라는 지명에서 나왔다. 그리고 막달라 마리아는 '창녀'라는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다. 그러나 작가는 이런 오해와 편견은 591년 그레고리우스 교황이 성경 속에 등장하는 여러 명의 마리아들을 혼란한 데서 비롯되었단다. 이 때문에 교황청은 1969년 그레고리우스의 설교를 공식 부인했다고 작가는 주장한다. 그리고 이것은 초기 기독교에서부터 여성의 가치를 철저히 왜곡시키기 위한 음모였다고 주장하며 교황청을 향하여 손가락질을 한다. 작가는 성경에 등장하는 약 3천명의 인물 가운데 여성이 불과 10% 미만을 차지한다는 통계 자료를 내어 놓는다. 하지만 성경에는 각 시대의 주인공을 주제로 사건 중심으로 요약되어 있으며 왕과 선지자 중심으로 사건이 전개되어 있음으로 당연히 여성의 비율은 상대적으로 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전쟁사에서 여성이 할 수 있는 역할은 그리 많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덴 브라운은 이 부분에 상당부분을 할애하여 기독교가 여성의 인권을 의도적으로 왜곡했다고 고발한다. 이는 작가가 우먼파워를 의식하고 썼기 때문이다. 여성의 인권이라면 회교를 겨냥해야지 왜 기독교와 천주교를 겨냥했겠나. 회교의 여성들은 이 책을 읽어 줄 사람이 없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기독교와 천주교를 겨냥하고 썼다는 결론이 나온다. (소설가는 팔리는 책을 쓰기 위하여 자신의 작품 속에서 그 누구라도 죽일 수 있고 살려낼 수도 있다) 3) 중세시대의 암흑기와 교황청 오푸스 데이는 지금도 프랑스에 실존하는 가톨릭 교파 중의 하나이다. 그리고 시온수도회는 덴 브라운의 창작품이다. 그러나 시온수도회는 다빈치 코드에서 너무나 강력하게 대두시키기 때문에 거의 실존했다고 믿어지도록 유도된다. 그도 그럴 것이 시온 수도회의 수장들이 아이작 뉴턴, 보티첼리, 빅토르 위고, 레오나르도 다 빈치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위대한 역사의 주인공이었던 이들이 교황청의 전설 속에만 전해져 내려오는 인류의 엄청난 비밀을 간직하고 여러 예술 장르를 통해 그 비밀을 인류에게 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 빈치의 명작인 <모나리자> <최후의 만찬> <암굴의 성모>에 교황청의 음모와 비밀이 담겨져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작가의 상상일 뿐 어디에고 그런 암호를 유추해 낼 수 있는 근거나 단서는 없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피보나치수열과 황금비율을 적용하여 건축물과 작품을 완성시켰다. 다빈치의 명작을 통해 전달되는 다빈치의 신비로움은 르네상스의 거장답게 거대한 비밀 하나 정도는 가지고 있을 듯 하다는 인상을 준다. 덴 브라운은 이 점을 놓치지 않고 자신의 작품에 다빈치를 불러 들여 거대한 비밀의 시온수도회의 수장으로 임명하고 암호와 코드작업을 맡겼다. 덴 브라운의 천재적 발상이다. 4) 모나리자, 최후의 만찬, 암굴의 성모 소설 다빈치 코드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는 막달라 마리아이며 “최후의 만찬”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옆에 있는 요한 역시 막달라 마리아이며 “암굴의 성모” 역시 막달라 마리아로 해석되어지고 있다. 덴 브라운이 일관적인 입장으로 막달라 마리아에게 매달리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막달라 마리아를 예수그리스도와 결혼을 시켜야만 이 소설을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며 잊을 만하면 다시 막달라 마리아를 내 세우며 그 후손이 프랑스의 메롤링거 왕조가 되었다는 등의 날조된 가설은 자신의 소설에 힘을 싣기 위한 작업이다. 결국 덴 브라운은 막달라 마리아의 시신이 “성배”로 지칭되며 막달라 마리아의 시신이 발견되지 못하도록 시온수도회와 오푸스데이의 힘겨루기가 교황청의 은밀한 지시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함으로 작가의 의도를 드러낸다. 그것은 3편 “솔로몬의 성배”에 대한 관심유도이다. 4. 이 작품의 형태와 가치 이 작품은 흥미적 요소를 위해 줄거리는 사극의 형태를 취했고 작품 전개와 완성은 논문형태를 따르고 있다. 사극의 형태와 논문형태를 적절히 간섭해서 스릴러물로 작품화하였다. 따라서 이 작품의 장르는 추리소설(스릴러물)로 분류된다. 사극이란 원래가 비밀스럽고 흥미로운 옛 이야기를 소재로 하기 때문에 흥미롭고 구수하다는 장점이 있으나 과거 역사에 대한 자료라는 특징으로 수집의 문제와 한계가 있다. 따라서 작가들에게서 외면을 당하고 있는 장르의 하나이다. 그러나 충분한 자료를 수집하여 완성도 높은 작품을 출판할 수 있다면 작가가 고민하고 있는 흥행 면에서 충분히 자유로울 수 있다는 장점도 가지고 있다. 때문에 사극작가는 사극만 전문으로 쓰게 되어 있다. 사극물은 보통 단권에서 끝나지 않고 3권이상의 시리즈물로 나온다. 이는 수집된 자료에서 영감을 얻고 자료를 보충하는 과정에서 아이디어가 연결되기 때문이다. 다빈치 코드에는 1천여 점의 자료가 수집되었으며 1년 동안의 기간이 소요되었다. 1년 동안의 기간에 1천여 점의 자료를 수집할 수 있는 정도라면 그 방대한 자료는 300페이지를 기준으로 볼 때 페이지 당 3점 이상의 자료가 참고 되었다는 말이다. 자료란 통상 뼈대를 세워 놓고 참고해야 할 참고목록을 작성하여 수집하는 과정에서 관련자료를 추가하게 되어 있다. 1천점의 참고자료가 수집되기 위하여 300점 이상의 목록이 필요하다. 제 아무리 긴 사극의 형태로 쓴 책이라고 해도 참고자료는 100점 이상을 넘기지 않고 100점 안에서 소화를 해 내는 것이 보편적이다. 전문서적의 경우, 사전류를 빼고 1천여 점이나 되는 자료를 사용해서 지은 책이 과연 지구상에 몇 권이나 될까. 박사 논문의 참고도서목록에 200권 이상의 참고도서가 인용되어진 논문이 있겠나. 수집된 1천여 점의 방대한 자료는 이 작품이 연작으로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음을 예단하게 한다. 철저하고 성실한 자료 수집은 좋은 작품을 위한 선행조건으로 부가가치가 높은 작품의 탄생을 예고한다. 다음으로 집필의 형태인데 이 작품은 논문형태로 따르고 있다. 사극형태로 지어진 작품에서 집필의 형식은 반드시 논문형태를 따라야 하는데 역사적 방증은 필수조건이다. 사극형태의 단락과 단락의 사이 그리고 각장의 넘김에 있어서 해설형태로 취해지는 역사성에 대한 방증은 대단히 중요하다. 이는 작품에 불어넣은 혼과 같아서 그 작품에 성실성과 진실성(reality)을 부여하여 작품의 무게와 완성도를 크게 높여 준다. 그렇다고 해서 작품의 고유한 작품성이 소홀해지거나 포기되어서는 안 된다. 스릴러물(추리소설)을 사극형태로 집필할 때 빠져들 수 있는 위험성은 자료부실로부터 오는 역사적 방증의 허술함의 논리결여가 일차적으로 지적되고 이차적으로 지적되어야 할 위험은 논리에 치중하다 보면 작품의 추리력과 상상력이 결여될 수 있다는 위험이다. 이 경우 소설의 재미는 사라지고 무미건조한 역사서와 같은 지루함을 주게 된다. 소설은 뼈대가 되는 주인공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주인공의 주변이 중요하다. 주인공의 주변에서 이야기 거리가 나와야 신선하고 흥미로운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만약 널리 알려진 역사의 주인공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면 그의 일대기뿐만 아니라 이야기 거리가 될 수 있다면 그 어느 곳에서라도 소재를 빼내서 이야기를 만들어내야 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은 언제나 주인공을 받쳐 주는 정도에서 주인공을 수식해주는 정도로 한정되어야 한다. 따라서 작가는 자신의 상상력을 동원하여 주인공의 주변인물을 폭넓게 채용하여 이야기 거리가 풍성하도록 무대를 넓혀주고 무대에서 나온 이야기의 줄거리가 주인공과 연결되어지도록 일관성에도 신경을 쓰며 집필해야 한다. 이런 이유로 작가는 수집된 자료를 재검하여 작품의 기둥을 세우고 이야기 거리를 만들어내는 작업으로 집필 과정 내내 시간과 사투를 벌이게 되어 있다. 덴 브라운은 집필에 소요된 시간만 2년이 걸렸다고 했다. 2년이라면 보통의 작가라면 두 권의 책이 나올 수 있는 기간이다. 보통 작가는 1년에 한권의 책을 집필하여 출판하는 것이 통례적이다. 꼬박 2년을 매달려 집필하여 1권의 책을 완성했다면 그 작품은 충분히 담금질되어진 완성도 높은 작품임이 틀림없다. 비록 이 작품이 작가의 세계에서 터부시 되고 있는 신의 영역에 손을 댄 작품이라는 것이 아니라면 작가의 세계에서도 극찬을 받을 수 있는 위대한 작품 중의 하나가 되었을 것이겠다. 그러나 아무리 천재적인 발상이며 완성도 높은 작품이라고 해도 자신의 성공을 위해 인류의 정신적 기반이 되는 신앙을 촉수하여 신앙의 대상인 신을 인간으로 비하시키며 이에 더하여 기독교를 위선의 종교로 단정한 작가의 양심은 이미 작가의 정신에서 벗어나 있다. 그래서일까, 이 작품에는 흥미는 있되 감동은 없다. 감동이 없는 소설은 죽은 소설에 불과하다. 덴 브라운이 자신의 소설 1권 “천사와 악마”를 통해 흑백논리로 접근하여 해석한대로의 정공법을 따라 해석한다면 작가 스스로가 악마의 정신을 가졌다고 고백한 꼴이 된다.(출처 www.newspower.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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