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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80차 전주교구 애령회 피정을 마치고
2009년 9월 19일~20일(일요일) 1박 2일로 충남 연기군 가톨릭대내에 있는
정하상 교육회관에서 전주교구 애령회피정을 우리성당 4명 포함한
131명이 참여한 가운데 가졌습니다.
이날 피정에는 정하상교육관의 관장님이고 가돌릭대 교수이신 김석태신부님과
전주교구 가정 사목국 이금재 지도신부님도 함께하였습니다.
김석태신부님의 시작기도로 주모경를 바치고
“말없이 사랑하여라”를 참여한 모든분이 아래의 내용을 읽었습니다.
“말없이 사랑하여라.
내가 한 것처럼 아무 말 말고 자주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잠자코 사랑하여라.
아무도 모르게 숨어서 봉사하고 눈에 드러나지 않게 좋은 일을 하여라.
그리고 침묵하는 법을 배워라. 말없이 사랑하여라. 말없이 사랑하여라.
꾸지람을 듣더라도 변명하지 말고 마음상하는 이야기에도
말대꾸 하지 말고 말없이 사랑하는 법을 배워라.
도움을 주고 싶어도 받아들이려 하지 않은 사람들을 기도 하여라.
오해를 받을 때 말없이 사랑하여라.
사랑이 무시당하는 것을 참으면서 슬플 때 말없이 사랑하는 법을 배워라.
주위에 기쁨을 흩뿌리며 사람의 행복을 더해 주도록 마음을 써라.
인간의 말이나 태도로 인하여 초조해 지거든 말없이 사랑하여라.
마음 저 밑바닥에 스며든 괴로움을 인내롭게 바쳐라.
네 침묵속에 원한이나 인내롭지 못한 마음 또는 심판이 끼어들지 못하도록 하여라.
언제나 형제를 존중하고 소중히 여기도록 힘써라.
위의 글을 읽는 동안 나의 마음은 어떠했는가? 생각해 보았다.
나의 자신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느님앞에 형제. 자매님앞에 너무 부끄러울 뿐이었다.
시작기도를 마친후에는 신앙, 자비, 미움, 용서, 은총이란 무엇인가? 순으로
신부님의 강론이 있었다.
신앙이란? 인간의 아래에 있는 것들을 믿는 것(미신)이 아니고,
인간이나 인간과 비슷한 것 더 나아가서 인간이 만들어낸 사상을 믿는 것(신뢰)도 아니며,
과학의 이론과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나 이념(신념)을 믿는 것이 아니다.
인간보다 과학의 이론보다 자연의 이치보다 위에 계신 어떤분,
즉, 하느님을 믿는 것이 신앙이다.
신앙의 진리는 무엇일까요? 왜 우리가 하느님을 믿는 것일까요?
우리가 그모든 것을 다 잊어버리더라도 나이가 들어 치매가 걸리더라도
이것만큼은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그것은 “하느님이 인간이 되신 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하느님이
되게 하기 위해서이다”.라는 말이다. 바로 우리가 하느님이 되기 위해서이다.
바로 신화되기 위해서 하느님을 믿는 것이다. 우리는 신화되기 위해서 신앙생활을 하고
하느님을 받아들이며 굳게 믿음으로써 점점 하느님을 닮은 거룩한 존재가 된다.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이 충만한 흔들리지 않은 존재가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성당에서 본당신부님의 명을 받든 안받든 남들이 싫어하는 봉사를 하며
짓궂은 일을 할까요? 하느님 되기 위해서 입니다. 하느님되기 위해서 라고 생각하고
그일을 하면 그 어떠한 고난과 역경이 닥치더라도 즐겁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즐겁게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내자신은 어느덧 하느님의 마음(사랑, 자비, 용서등)으로
성화되어 버린다는 말씀입니다.
하느님이 된다는 말의 의미는 사랑과 자비가 충만한 인간이 된다는 말이다.
내가 하느님이 되어 있는가? 안되어 있는가? 우리 모두 자신을 성찰해 보아야 한다.
자비가 무엇인가? 다른사람의 모난 성격, 단점, 열등감, 부족함등을 내것으로 받아들이는
부모님 같은 마음이다. 즉, 부모의 마음은 자식이 잘되면 더 기쁘고 잘못되면 가슴이 더 아프다. 자비는 희생이 들어간 사랑입니다. 애령회원들도 그누구보다도 자비의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나만 인정 받고 들어 날려고 하는 마음이 있다면 신앙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바다에 뛰어 든 것입니다. 성격이 모나고 나와 같은 마음이 아닌 모든 사람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받아 들이는 것이 자비이다. 나의 사랑을 줄 수있는 자비로운 인간이 되어야 한다.
상대방의 끊임 없는 이기심, 애령회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갈아 앉히는 사람이 있을지라도
그사람을 변화 시킬수 있는 분은 하느님이라는 것을 알고 그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기다려
주어야 한다. 성당의 애령회가 잘될려면 자비로운 사람이 많아야 한다.
자비로운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애령회는 잘 될 수 밖에 없다.
자비로운 인간이 되는 것이 어쩌보면 애령회의목표이다.
자비로운 마음이 있으면 애령회의 활동도 신명나게 할 수 있다.
자비는 용서를 통해서 드러난다.
1번 용서는 좋은 사람이다.
2번 용서는 정말로 좋은 사람이다.
3번 용서는 성인이다.
4번 용서는 성인중에 성인이다.
5번 용서는 천사이다.
6번 용서는 하느님하고 비슷하다.
7번 용서는 거의 완벽하게 하느님하고 닮은 사람이다.
우리는 하느님을 믿는 신앙인이기에 적어도 믿지않는 사람보다는 더 많은 용서를 해야한다
용서를 할 때에는 흔쾌하게 해야 한다.
신앙생활을 10년이상 하신분은 3번이상 용서를 해야 한다. 25년은 4번이상은 해야 한다.
자기는 용서 받기를 바라면서 왜 남은 용서하지 못하는가? 우리는 용서해 주어야 한다.
용서해 주지 않으면 어떤 결과가 오는가? 결국은 “나의 손해”이다
용서는 남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것이다. 너도 살고 나도 살는 길이다.
우리가 용서해 주지 못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나와 아주 가까운 곳에 있고 깊은 관계를
맺어던 사람이다. 용서하지 않으면 나의 생활이 힘들어지고 미움의 먹구름이 솟아난다.
미움의 먹구름은 사라질 수 있다는데 희망이 있다.
미움의 증세는 그사람이 꼴보기 싫어진다. 내가 왜면해 진다. 나에게 그사람의 장점이
보이질 않는다. 심지어 미운사람을 칭찬하는 사람까지 미워진다.
우리 신앙인은 배우자뿐만 아니라 남의 행복을 위해서 존재하여야 한다.
미움의 감정을 들여다 보면 나의 순수한 뜨거운 사랑이 매말라 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상대방이 변화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 상대방이 변화되면 내가 사랑을 줄수 있는
희망이 있지만 무관심의 영역으로 떨어지면 이것이 더 큰 문제이다.
미워할 때에는 희망이 있고 무관심으로 떨어지면 더욱 더 힘들어 진다.
무관심으로 떨어지기전에 화해하고 용서해서 미움이 사라지게 해야 한다.
미움이 시작되어서 미움의 화살을 쏘면 맞은 사람은 좋아 할리 없다.
한대 맞으면 두대를 쏘고, 두대를 맞으면 그배를 또쏜다. 이와 같이 반복된다.
이방인들은 내가 하나 쏘면 여러개를 쏘지만 천주교 신자는 그보다는 적다.
그래서 우리는 천주교 신자라는 사실 만이라도 감사해야 한다.
미움을 사랑으로 바꾸면 너도 살고 나도 산다.
우리모두 미움을 사랑으로 용서해서 행복한 신앙생활을 하자.
용서에는 "이방인의 용서와 그리스도인의 용서"가 있다.
이방인의 용서: 내가 나이가 더 먹어서 용서하지, O이 무서워서 피하는 것이 아니라
더러워서 피하지등등의 유형이 있다. 이용서는 내감정이 다치지 않는 장점이 있고
용서의 중심은 “나”이며 다음에 잘못하면 용서하기 힘든 단점이 있다.
그리스도인의 용서: 그사람의 죄, 이기심, 탐욕등은 미우나 그밖에 다른 많은 장점이 있고
하느님의 모상을 타고 태어났기에 용서를 해주는 것이다.
작은 것을 보지말고 큰것을 보는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이기에 용서를 해야 한다.
복음말씀 “너희가 너희의 형제들을 용서하면 하늘에 계신 하느님도 용서하지만
용서하지 않으면 나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그누구를 용서하면 나의 죄도 용서 받는다.
용서를 하게 되면 단번에 큰은총이 온다.
은총은 창조주 하느님께서 당신만이 알 수있는 인간의 몸속에 만들어 놓았다
.
긍적적 사고를 하면 “베타 엔돌핀(Endorphin)”이 생성되고
부정적 생각을 하면 “노르 아드레날린(Noradrenalin)”이 생성된다.
우리는 신앙인이니 만큼 긍정적 사고로 신앙생활을 해야한다.
긍정적 사고로 신앙생활을 하게 되면 애령회의 궂은일도 보람을 느끼며 즐겁게 하게 된다.
긍정적 사고로 신앙생활을 하기에 너무 어렵고 도저히 용서를 할수 없다고 느낄때에는
“가돌릭 영성의 길”을 택하라.
1. 하느님 앞에 무릎을 꿇어라.
2.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아라.
3. 예수님께 울부짖어라.
4. 다시 십자가를 보라.
우리가 언제 하느님께 기도 하는가?
내가 정말 힘들고 어려울때 다른 사람에게 가지말고 위의 영성의 길을 택해서
하느님 앞에 무릎을 꿇고 간절하게 기도하면 나의 분노, 억울함, 미움이 신앙의 빛을 타고
나의 가슴속으로 들어 올 때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살아있는 기도를 예수님께 그대로 바쳐라.
고상한 기도가 아닌 살아있는 기도란 무엇인가?
주님! 내가 정말 힘들어서 못 살겠어요. 가슴쓰린 저를 살려 주십시오. 나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말한다. 기도의 핵심은 “살려 달라”는 데에 있다. 오로지 당신만이 나를 살려 주실수 있는 분이라고 느낄때, 내마음을 예수님께 맡기면 맡길수록 예수님의 음성이 들려온다.
“내가 너와 함께 있지 않은가”의 답변을 들으면서 지난 과거의 나의죄 허물들이 파노라마
처럼 펼처지는 체험을 하게된다. 이때 진한 나의 눈물을 흘리며 하느님을 살아있는 아버지라
부른다. 이러한 체험을 하게된 후에는 상대방이 변하지 않더라도 나의 놀라운 체험을 통하여
나만 변화된다. 상대방이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저지른 죄도 다 용서할 수 있는 생각으로
바뀐다. 이런 상태에 있으면 미사와 성체조배, 성서의 말씀이 즉, 하느님의 말씀으로 다가온다. 이런경험을 통해서 하느님을 만난다.
용서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가능하다.
우리 모두 하느님의 은총으로 형제. 자매님을 용서해서 성당내외에서 행복한 신앙생활을
하기를..이상 김석태신부님의 강론내용 이었습니다.
강론후 영광송으로 마침기도를 하였습니다.
제나름데로 강론을 적어서 게재한 내용이니 두서가 없더라도 이해 바랍니다.
첫날은 짧은 음악 감상과 김 신부님의 강론으로 마치고
둘째날은 오전 6시에 일어나 6시 30분에 대전교구 성직자 묘지를 왕복 약 30분 걸어서
묵주기도를 하면서 참배하였고 7시 10분에 주일 미사를 하였으며 식사후 9시부터는 천안 오룡동성당 애령회장 박용주님으로부터 상발생시 연도에 대하여 강론이 있었습니다.
이강론중에 우리성당과 똑같은 부분이 있어서 나는 깜작 놀랬습니다.
우리성당 상발생시에는 고인의 해당구역(장) 신자분들과 연대해서 모든 장례절차를 함께 하고 있는데 그성당에서도 그렇게 하고 있더라고요. 해당구역의 관심과 사랑이
결국은 소공동체 모임에 영향 있다고 봅니다.
앞으로 이부분은 신부님과 구역분과와 상의해서 체계화되도록 하겠습니다.
10시 50분에는 전주교구 가정사목국 이금재신부님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처음으로 맡아서 지금은 아무것도 아는것이 없으니 우리 모두 노력해서 전주교구 애령회를
발전시키자. 여러분은 성당에서 살아있는분과 죽은분을 동시에 만나는 애령회원으로서
돌아가신분을 위해 봉사활동을 하는 만큼 차후에 본인의 선종시에 하느님 곁에 이미 있는
많은 분들이 환영할것으로 생각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애령회에서 하는일에 대하여 그무슨 보상을 바라고 하지는 않지만
정말 그렇게 되리라고 믿습니다.
점심식사후 우리 일행은 돌아오는 길에 이번 피정에 대하여 애령회의 발전지향적인 대화를
많이 나누었지요. 이번 피정을 통해서 나의 현재의 신앙생활은 어떠했는지 되돌아 보고
본당 애령회의 발전에 노력할 것임을 다짐하며 정말 잘 왔다고 느꼈습니다.
이번 피정을 잘 마칠수 있도록 도와주신 하느님과 신부님!
함께 참여하신 애령회원님! 관심과 사랑으로 기도해 주신 신자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루가복음 9장23, 24절>
첫댓글 1박2일이 짧았겠군요. 은총 많이 받으셨죠. 부럽습니다.
네! 이번 피정이 본당 애령회 활동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됩니다. 감사합니다.
네! 애령회의 관심과 사랑에 항상 감사를 드립니다. 지금은 과거에 비하면 정말 많이 쉬어 졌습니다. 통일된 상장예식책이 있고 장례식장이 생겨서 염까지 그곳에서 해주니 우리들은 정성된 마음으로 참여와 기도를 해주면 됩니다.
처음으로 댓글 올립니다 이번 피정 내용이 정말 좋았습니다 감사감사 ^ㅡ^
네. 이번 피정을 통해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이느낀 부분을 많은분들과 함께 하고파 글을 올렸습니다. 도움이 되었다니 이글을 올린 보람도 있네요. 감사를 드립니다. 형! 가정에 건강과 행복이 가득하길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