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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_< 6. 농담의 계절 - (4)>_37회
(4)
야릇한 일! 아내가 돈을 벌어오고, 경제적인 압박에서 헤어나자 나는 어느 새 타성적인 안일에 빠져들고 있었다. 마누라를 술집에 내보내 호구지책을 해결한다는 열등감은 점차 당연사로 바뀌어졌다. 따라서 어떻게 해서라도 내 스스로의 힘으로 가정을 꾸려나가야겠다는 의지 같은 건 갈수록 약화되고, 급기야 의식조차 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런 부류의 사내들을 경멸하던 내가 어느 사이 그런 유의 룸펜으로 변해 있는 자신을 돌아보고 놀라워했던 것은 훨씬 훗날 아내가 일을 저지르고 난 뒤였다.
어쨌든 의식주가 해결되자 그 여유는 무료함으로 연결됐다. 그러자 자연스레 주위 사람들의 삶의 형태에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로 이어졌다. 유일한 취미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터.
가장 먼저 나의 눈길을 끈 사람은 밤마다 연례행사처럼 부부싸움을 벌이는 점백이 아줌마였다. 그네는 오른쪽 눈가에 장기의 차(車)짝만한 검은 반점이 있어 그런 별명을 갖고 있는 사십대 중반 아낙이었다. 그녀보다 연하로 보이는 남편 천 씨는 막노동꾼으로 작업복에 얼룩덜룩 물감이 묻은 것으로 봐 페인트공으로 여겨졌다.
점백이 아줌마는 낮에는 셋방 사람들과 희희덕거리며 조화(造花)를 접거나 인형 눈알을 다는 따위 잔손이 많이 가는 일거리에 매달렸다. 그러다 날이 어둑해지면 어김없이 골목 밖 전봇대 옆에 마냥 서서 남편 천 씨를 기다리는 게 일과 중 하나였다. 천 씨는 거의 매일 밤 만취가 되어 들어왔는데, 남편이 눈에 띄자마자 그네의 입에서 대뜸 튀어나가는 첫마디는 대충 이러했다.
“급살 엠병을 할 눔, 오늘도 고주망태가 됐구먼!”
그리고는 남편의 멱살을 잡아끌고 들어온 뒤, 아이들을 일단 마당으로 내쫓고 방문부터 닫아걸면 곧이어 예외없이 들려오는 소리.
“아이구구 나 죽어! 이런 씨×년, 그만 좀 때려 ×같은 년아! 아, 아야, 나 죽는다니까 이 개같은 년아!”
퍽퍽 두들겨패는 소리와 함께 비명과 욕지거리가 반죽된 천 씨의 목소리가 들려오면 다른 방 아낙네들은 들락날락거리며 마주치는 대로 귓속마을 나누며 낄낄댔다.
그때쯤이면 나도 마당에서 서성이며 그들 다투는 소리를 듣는 게 일상화되다시피 했다. 실감나고 유머 만점― 재미로는 그만이었다.
천 씨의 비명소리는 계속 들려왔다.
“아, 아이고 나 죽네에! 증말 날 죽일 거여? 아이구, 나 증말 죽네에, 이 씹어먹을 년아!”
그리고 난 이튿날 아침, 천 씨는 간덩이를 통째로 게워낼 듯이 꽤액꽥 구역질을 하며 마당으로 나온다. 그러면 점백이 아낙은 머큐롬을 가져다 사내의 상처난 부위에 발라주고, 쉽게 토할 수 있도록 등을 두들겨 주며 뇌였다.
“에이그, 이런 걸 낳고 자식이라고 때맞춰 미역국을 퍼먹을 테지…… 나나 하니까 이 꼴 보지 어느 잡년이 이렇게 지성껏 뒤치다꺼리를 하겄어. 얌전히 좀 있어 이 주태백이야!”
때로는 꿀물을 가져다 그의 앞에 디밀며 소리치기도 했다.
“안 되질라믄 빨리 쳐먹으란 말여 이 웬수 덩어리야!”
마침내 페인트 투성이의 작업복을 걸치고 천 씨가 밖으로 나서면, 그네는 요를 들고 뒤따라 나와 담장 위에 널었다. 다른 아낙이 피식피식 웃으며,
“또 싼 거야?”
물으면, 점백이 아낙은 마치 그것이 자랑스러운 훈장이라도 되는 듯이 거침없이 대꾸했다.
“왜 아녀. 연장이 크니께 오줌보도 커서 엄청 싸붙인다니께. 낄낄낄!”
또 한 여자, 김마담― 내 눈길을 끈 그녀는 아무리 얼굴에 가면처럼 화장떡을 처붙이고 소녀 취향의 단발머리를 했어도 서른댓은 넘어 보였다. 그녀는 근처 어디메쯤에서 토박이 마담으로 돌고 돌다가 머리 허연 늙은이 하나를 물어 기약없는 은둔의 삶을 즐기고 있었다. 그녀는 셋방 사람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여자였는데, 그 비결은 뭐든지 가지고 있는 것이면 아낌없이 주는 방법을 체득하고 있어서였다. 우선 눈에 띄는 건, 어느 곳 어느 경우 누구에게나 푸짐하게 웃음을 나누어주는 일― 아이가 내닫다 부딪쳐 그녀가 들고 있던 스킨로션병을 떨어뜨려 박살이 나도,
“아이고 귀여워. 까르르!”
화장실 문을 열다 남정네가 용변을 보고 있는 것을 보고도,
“어머, 못 볼 걸 봐 버렸네! 까르르!”
아낙의 머리가 흐트러진 것만 봐도,
“어젯밤 너무 찐하셨나 봐. 까르르!” 그런 식.
다음에는 뭐든지 관심을 보여주고 칭찬해주면 그것을 아낌없이 주어버리는 점. 가령 새로운 귀고리를 했는데 어떤 아낙이,
“김마담, 그 귀고리 어디서 샀어? 엄청 세련됐는데?”
할라치면, 그녀는 대뜸 그것을 빼내 내밀며,
“그래 아줌마? 맘에 들면 가지세요.”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녀는 남정네가 그녀의 몸에 관심을 주고 갖고 싶은 눈치를 보이기만 하면 그것도 기꺼이 주었다.
그녀는 나에게도 그런 종류의 기회를 주었었다. 비오는 날 담배를 사려고 우산을 받쳐들고 나가는데, 느닷없이 그녀가 뛰어와 우산 속으로 들어오며 말을 건넸다.
“어디까지 가세용?”
“골목 담배가게요.”
“그래용? 전 배가 출출해서 간식거릴 사려는데, 잘됐군요.”
그러나 막상 가게에서는 나만 담배를 한 갑 샀을 뿐 그녀는 나를 유도하여 술집에서 술로 간식을 했다. 그리고는 밤 10시경 집으로 돌아왔다. 고마웠다는 인사말을 건네고 내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그녀는 거침없이 귀밝은 셋방 사람들은 모두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의 큰 목소리로 말했다.
“아휴, 사모님 들어오시려면 아직도 멀었는데, 내 방에 가서 차 한잔하고 가면 어디에 덧이라도 날라나?”
그러나 막상 그녀의 방에 이끌려 들어갔을 때는 차 한잔 대신 자기 몸을 대접하는 거였다. 그 접대 방법도 나는 편안히 천장을 향해 누워있게 하고 그녀 스스로 알아서 나로 하여금 에너지 소모를 극소화시켜줌과 동시에 쾌락은 쾌락대로 극대화시켜주는, 일종의 손 안 대고 코 풀어주는 방식의 비술을 한껏 발휘해 보였다.
황당한 느낌으로 방을 나오는데, 그녀가 코맹맹이소리로 말했다.
“언제든지 또 왕. 우리 영감님 오는 날은 빼공. 알았지? 낄낄낄―.”
이튿날 새벽, 아내가 코를 킁킁거리며 물었다.
“당신 몸에서 웬 향수 냄새가 이렇게 나지? 외제 같은데?”
나의 관심을 끄는 여자가 또 하나 있었다. 그녀는 안채와 달아내 지은 외딴채 사이의 구석방에 살고 있는데, 일곱 살바기 그네의 아들 길만이의 이름을 빌어 길만이엄마라고도 불리우지만, 대체로 골방여자로 통했다.
골방여자는 늘 푸수수한 퍼머머리에 숱하게 많은 머리핀을 꽂고 있었다. 처음 관심을 갖게 된 동기는 그네의 아들 길만이의 버르장머리없는 행동 때문이었다. 녀석은 시도때도없이 제 어미를 주먹으로 쥐어박고, 때로는 장난감 곤봉이나 연탄집게 따위를 들고 와 마구 두들겨팼다. 그럴라치면 골방여자는 형편무인지경인 아들의 짓거리를 나무라기는커녕,
“아이구 아파! 아얏, 이 녀석이!”
비명을 지르면서도 연신 웃음을 터뜨리며 행복해 하는 모습이었다. 마치 아픔이 크면 클수록 아들의 힘이 세어진다는 게 입증되어 기쁘다는 듯.
그리고 밤만 되면 그네의 방으로부터 고음의 노래소리가 끊일새없이 들려왔다. 대개의 노래는 목포의 눈물이라든지 삼다도 소식, 강남달, 동백아가씨, 아내의 노래― 그런 따위의 느려터지고 질척거리며 곰팡내 나는 옛노래 일색이었다. 처음에는 간드러지면서 은근살짝 굴러넘는, 애간장을 후벼파는 듯한 그 음조에 이끌려 나도 약간은 감상적이 되고, 어느 때는 터무니없이 콧등이 저려오기도 했다. 그러나 허구한날 빼놓지 않고 계속되자 나중에는 등에 닭살이 돋고 지겨웠다. 귀신 울음소리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변소에서 쪼그려앉아 있는데, 바로 문 앞에서 이웃집 아낙과 셋방 아낙이 골방여자를 두고 말을 나눴다.
“세상에, 별놈의 정도 다 있네! 그래서 아들이 지 에미를 마구 두들겨패도 마냥 싱글벙글 웃어쌌었구먼.”
“웃기만 혀? 아들이 가만있으믄 신경질 내고 지랄염병을 떤당게.”
“별꼴! 남편한티 얼마나 맞고 살았디야?”
“시뻘겋게 달군 연탄집게로 장배기(정수리)를 지져 흉터가 손바닥만하게 날 정도였다니께 말 다했지 뭐.”
“아하! 그래서 그걸 감추느라 머리핀을 한주먹씩 꽂고 다니는구먼.”
나는 그네들의 대화를 듣는데 정신이 팔려 아랫도리를 까내린 채 다리에서 쥐가 퍼지는 줄도 몰랐다. 얻어맞음으로써 두터워지는 맷정이라는 말이 새삼스러웠다. 흥미로웠다.
그네들의 말은 계속되었다.
“근디, 왜 헤어졌다는 겨?”
“남편이 예배당에 나가면서 술 담배 딱 끊고, 때리지도 않고 기도만 열심하니께 갑자기 정나미가 삼천리 밖으로 뚝 떨어지더라는 겨.”
“그래서 헤어졌다는 겨?”
“그렇다니께.”
나는 어이가 없어 엉겁결에 으흐흣, 웃고 말았다.
이웃집 아낙이 외쳤다.
“어메! 뒷간에 사람 같은 게 있었나벼!”
어느 날 나는 아내에게 그네들에 대한 얘기를 들려줬다. (물론 김마담으로부터 그녀의 몸을 대접받았던 부분은 생략했지만) 그리고는 내 나름대로 얻은 결론을 덧붙였다.
“알다가도 모를 게 여자들의 마음이야. 아마 영원한 숙제로 남을 걸.”
아내가 받았다.
“남자들도 마찬가지예요. 알다가도 모를 게 또한 남자들의 마음이죠. 술집에서 아가씨 끼고 술을 마시면서도 막상 자기 마누라 욕하는 건 되게 싫어하거든요.”
“그야 미우나 고우나 자기 마누라니까 그렇겠지. 마치 자기의 못생긴 부위를 자신은 까놓고 말해도 누가 둘춰내면 싫듯이 말야. 어쨌든 그래서?”
“자기 마누라 흉볼 때 같이 맞장구쳤다 하면 그날은 아예 팁이 한푼도 없는 걸로 각오를 해야 해요.”
“새삼스럽군. 그럴 때면 어떡하는 게 좋지?”
“간단하죠. 이러는 거예요. <무슨 말씀이세요? 어쨌거나 사모님이 계시니까 오늘의 멋진 손님이 존재하는 거 아니겠어요?” 그렇게 반박해 주면 그날은 기분좋게 팁을 듬뿍 내놓기 마련이죠.“
7월달에 접어들자, 슬레이트 지붕으로 된 우리 방은 그야말로 한증막이나 진배없었다.
이사하기로 했다. 아내의 수입이 좋아 그간 모아놓은 돈이 수월찮았다. 수입 얘기가 나오다 보니 여기서 짚고 넘어갈 게 한 가지 있다. 이사하기로 의견을 모은 그 때쯤 어느 날, 나는 아내에게 말했다.
“사용처는 묻지 말고 이십칠 만원만 줘.”
아내는 의외라는 듯 눈을 똥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봤다. 그리고는 물었다.
“뭐하게요?”
“글쎄, 아무 소리 말구.”
“삼십 만원이면 삼십만원이지 하필이면 이십칠 만원이에요?”
“꼭 쓸데가 있어서야.”
잠시 시간을 끌며 내 표정을 살피고 나서 아내는 말했다.
“돈을 주기 싫어서가 아니라 사용처를 분명히 알기 전에는 안 돼요.”
나는 화가 났다. 아니, 슬펐다. 내 자신이 가여워졌다.
“왜 눈물이 글썽해지는 거예요?”하고 아내는 쏘아붙이듯 물었다.
나는 목메인 소리로 나직이 말을 받았다.
“당신은 어떤지 몰라도 내 가슴속에는 아직껏 은규가 살아있어.”
아내는 더 이상 말없이 핸드백에서 돈을 세어 내 손에 쥐어주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리고 손수건을 꺼내 눈으로 가져갔다.
은규 명의로 된 교육보험을 부활시키고 돌아오자, 아내는 쪽지를 남겨놓고 출근한 뒤였다.
못돼먹은 여자라고 욕하지 마세요. 어떡하다 그렇게 됐어요.
은규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