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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 인간이 가진 가장 강력한 능력의 언어
배 성 희
“새날을 주심을 감사합니다!”
자고 나서 첫눈을 뜨자마자 올려드리는 이 한마디에 하루 삶의 모든 에너지가 담겨 있다. 우리 교회 담임목사님께서 큰 병을 앓으시며 생사의 고비를 넘기신 후 알려주신 멘트이다. 오늘 하루가 인생의 마지막일 수 있으며, 아침에 눈을 떠서 새로운 하루가 주어진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감사로 문을 열게 하신 것이다. 어둠 속에 던지는 조용한 이 외침은 어제의 삶이 어떠했든 오늘은 새로운 출발을 하게 한다. 낯 뜨거웠던 실수도 다 녹여버리고, 가슴 찢던 슬픔도 삭혀 버리고, 눈덩이 같이 불어나던 염려도 날려 버린다. 10년이 넘어가니 몸에 배어서 첫 숨을 쉬듯 아주 자연스럽게 튀어나온다.
인간이 가진 가장 아름다운 언어는 ‘사랑’이 아닐까 싶다. ‘사랑한다’는 한마디에 온 세상은 핑크빛 환희로 빛나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감사’는 인간이 가진 말 중에서 가장 큰 능력을 가진 것 같다. 사랑의 대상이 있듯 감사 또한 분명한 대상이 있다. 감사가 허공에 외치는 자기 최면의 일성에 그친다면 능력이 그다지 크지 않고, 자기 자신의 범주에 머물 것이다. 감사는 받는 이를 전제로 한 것이다. 상대방에게 ‘감사합니다’ 말하는 순간 그가 나에게 해준 모든 일은 반짝반짝 빛이 나고, 그의 진심은 언어 속에서 현실화가 된다. 그가 한 일에 대한 가치를 극대화시켜 주는 일이 ‘감사하다’고 표현하는 일이다.
감사는 하면 할수록 더 커지고 많아진다. 오래전 우연히 지나친 영상이 뇌리에 깊이 박혀있다. 햇볕에 그을린 건강한 얼굴의 할머니가 자신이 104세까지 그 모습으로 살 수 있었던 비결을 ‘감사’라고 말하는 장면이었다. 노화와 질병의 가장 큰 원인으로 ‘스트레스’를 꼽는다. 스트레스에 의한 활성산소의 증가나 특정 호르몬의 활동이 인체를 빠르게 노화시킨다는 것은 이미 상식이 되었다. 감사하는 사람은 이런 스트레스가 적거나 거의 없다고 한다. 생존에 필요한 기본적인 스트레스는 도리어 건강한 움직임의 원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감사하면 스스로의 몸을 공격하는 일이 현격히 줄어들기 때문에 그 할머니의 고백은 아주 신빙성이 있는 말이었다는 것을 시간이 지나면서 확인할 수 있었다.
감사할 일은 무궁무진하다. 어느 날 감사의 제목을 쭉 써 내려 간 적이 있었다. 하루 종일 써도 다 못 쓸 것 같았다. 잠을 잘 잘 수 있어서 감사하고, 건강한 몸으로 일할 수 있어서 감사하고, 맛나게 음식을 먹을 수 있어서 감사하고,……, 착하고 유머 넘치는 남편을 주셔서 감사하고, 세 명의 아이들을 주셔서 감사하고, 세 아이 모두 행복하고 건강하게 생활하게 해 주셔서 감사하고, 많은 친구들을 주셔서 감사하고, 최고의 교회 공동체 가족들을 주셔서 감사하고, 존경하는 지도자를 주셔서 감사하고, …….
국립현충원의 이승만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의 묘소를 공식적으로 방문한 적이 있다. 대통령의 공과는 역사가 평가해 주는 것이지만 난 그 앞에서 무한한 감사를 드렸다. 이승만 대통령은 공산화 세력으로부터 나라를 지켜 지금 우리가 누리는 자유대한민국을 건국한 분이고, 박정희 대통령은 세계 최빈국이었던 우리나라를 10대 경제 대국으로 올려놓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분이기 때문이다. 두 분의 대통령이 아니었다면 우리가 만끽하고 있는 이 자유와 경제적 여유는 꿈도 못 꿀 일이었다. 들어가며 나오며 본, 끝없이 이어져 있던 비석들을 보면서도 감사를 표했다. 그곳에 누워계신 모든 분들은 오늘의 자유대한민국이 살아있도록 인생의 일부 또는 전부를 드린 분들이다. 공식행사에서 국민의례와 함께 빠지지 않는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의 시간에 요식행위가 아니라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양화진에는 몇 번이나 갔다. 조선인보다 조선을 더 사랑해서 그들의 인생과 가족과 생명을 한국 땅에 묻은 고마운 분들이 누워계신 곳이다. 신분제도로 인해 가난하고 피폐해져 있던 조선, 사방의 강대국들이 사나운 늑대들처럼 집어삼키려고 혈안이 되어 있던 당시, 쇄국 정책으로 나라를 지켜보겠다고 안간힘을 쓰느라, 그나마 순수하게 조선을 돕기위해 찾아오던 선교사들을 무참히 죽여대던 그때, 그곳에 누워계신 분들의 대부분이 한국 땅에 들어왔다. 5천 년의 역사 속에서 평균 5년마다 외세의 침략을 받던 약소국이었고, 자원이라고는 세계에서 가장 지능지수가 높은 그룹에 속한다는 인적 자원뿐인데 그마저도 반토막이 나 있는 이 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치안이 잘 되어 있고, 깨끗한 문화로 소문이 나고, 한류열풍이 세계를 흔드는 나라가 되기까지, 수 많은 분들의 노고와 희생이 있었겠지만 무엇보다 양화진에 계신 그분들의 순교의 피가 이 나라와 민족을 지탱하고 있는 강한 힘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크고 작은 비석들 사이로 걸으며 하늘에 닿을 만큼의 깊고 높은 감사를 올려드리지 않을 수 없는 이유이다.
특별히 오늘은 576돌을 맞는 한글날이다. 세종대왕께서 백성들을 사랑하여 글자를 만들어 공포한 날을 기념하는 날이다. 어렸을 때는 날의 내용을 아는 것만으로도 대견하게 여기며 지나쳤었다. 어른이 되고 세종대왕께서 어떤 어려움 속에서 한글을 만들었는지 알게 된 후로는 마음 깊은 곳에서 진심으로 감사가 흘러나온다. 중국과 사대부들의 반대에 맞서 왕의 직을 걸고, 목숨까지도 담보해야 했고, 당뇨로 인해 시력을 잃어가면서도 반드시 한글을 만들고야 말겠다는 애민, 일설에는 발음구조를 연구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사체 부검까지 했다는 글을 읽으며 경악을 금치 못했었다. 우리는 이렇게 쉬운 글자로 모든 소리를 표현하고, 마음을 전하는 자유를 누리고 있는데 이 자유를 위해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이 겪었던 노고는 말로 할 수가 없는 것이다. 한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마저도 무한 감사의 시간이다.
얼마 전 새로운 영화가 나와서 본 적이 있다. ‘한산’이다. 몇 년 전 ‘명량’를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었다. 이순신 장군의 뛰어난 전략이 돋보였지만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그분의 진심, 나라와 백성에 대한 사랑이 보였었다. 세계 3대 제독이라 일컬어질 만큼 위대한 인물이 된 이유가 이것이었다. 나라가 이미 왜군에게 다 넘어가고, 백성들은 먹을 것이 없어 인육을 먹을만큼 굶주렸고, 임금은 갈 곳을 몰라 허둥지둥 도피 생활을 이어 갈 때, 포기하지 않고 소신대로 왜군의 길목을 지켜 차단한 이순신 장군이야말로 오늘의 대한민국을 생존하게 한 일등 공신이라 할 것이다. ‘명량’ 영화 끝 장면에서 한 병사가 ‘후대 사람들이 우리가 이렇게 죽도록 고생한 거 기억이나 해 줄까?’ 말한다. ‘기억하고 말고요. 정말 너무나 너무나 감사합니다.’라고 마음의 독백을 하면서 영화관을 나왔었다.
고마운 분들이 어디 이분들 뿐이랴. 일제강점기를 버텨 준 우리 선조들, 나라를 되찾기까지 그야말로 피 한 방울 아끼지 않고 이 땅에 뿌려주신 애국 열사들에 대한 감사는 말로 다 할 수가 없다. 한국전쟁 당시 적군의 진로에 큰 변수를 만들었던 춘천 대첩의 주인공들, 목숨 걸고 싸워준 수 많은 군인들, 우리 나라를 도와준 우방들,……. 감사의 대상은 정말 끝이 없다. 국경일이 되면 태극기 하나 달랑 걸어놓고 내 할 일 다 했다고 생각하며 하루를 보냈던 예전의 나를 생각하면 부끄러울 정도이다. 국경일은 우리가 기뻐할 날이기도 하지만 그날이 있게 한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표하는 날이다.
나는 원래 감사를 모르던 사람이었다. 오히려 원망이 마음에 가득했었다. 내 마음에 감사가 넘치게 하신 분은 대학 때 만난 예수 그리스도,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내 인생 자체에 대해 회의적이었고, 내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답을 알지 못해 부표처럼 떠돌던 마음을 단단히 정착시켜 내 인생을 다 드려도 아깝지 않은 가치를 발견하게 해 주셨다. 나의 존재 자체가 얼마나 큰 축복인지 알게 되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분은 부모님이었다. 가난하고 배운 것 없으셨던 지리산 마천 골짜기의 화전민이 우리 부모님의 겉모습이었다. 술주정이 심하셨던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미움이 내 청소년기를 다 삼켜버렸었다. 그런 나에게 ‘감사’를 알게 해 주셨다. 존재한다는 것 자체만으로 얼마나 감사한지, 나를 존재하게 해 주신 부모님이 얼마나 감사한지, 그동안 감사하지 못하고 지난 시간들이 참으로 죄송했었다. 그때부터 새로운 문화가 생겼다. 내 생일 때마다 부모님께 전화를 드려
“낳아주시고, 건강하게 길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말씀드린다. 그 전화를 받으시는 부모님께서 얼마나 흡족해하시던지 그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하다.
“우리 딸, 건강하고 예쁘게 잘 커 줘서 고마워.”
올해도 혼자 계신 어머니께 생일 감사 전화를 드렸더니
“오늘이 니 생일이가? 벌써 이렇게 시간이 지났는갑다. 우리 딸 잘 커 줘서 고맙네.”
하신다.
감사는 평온할 때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감사의 대상이 분명하면 어떤 상황 속에서도 감사할 수 있다. 극한 고난과 고통 중에 올려드리는 감사가 진짜 감사이다. 다윗 왕은 사울 왕에게 생명의 위협을 시시각각 느끼면서도 하나님께 감사의 시편을 기록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는 그의 고백은 삶의 현장에서 경험한 것이리라.
아침에 눈 뜨자마자 올려드리는 감사의 대상은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내 호흡의 주관자, 내 삶의 주관자이신 그분께 새로운 하루를 허락하심에 감사를 드리는 것이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알게 된 것 중 하나는, 하나님께서 언제 기분이 좋으신지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 영혼(사람)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주인으로 믿어 하나님께 돌아올 때 천국에서는 잔치가 벌어지고 예수님이 춤을 출 만큼 기뻐하신다. 그리고 감사를 올려드릴 때 흡족해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나에게까지 전해지는 경험을 수도 없이 많이 했다. 감사하는 일은 그분이 내게 베풀어주신 모든 것들이 그분의 선물임을 인정해 드리는 것이고, 나에 대한 그분의 사랑과 진심을 알아드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비록 그것이 고난이라 할지라도 마찬가지이다.
오늘 하루도 이렇게 많은 감사로 시작하게 되어 무척 감사하다. 감사로 시작한 오늘, 얼마나 기쁜 날이 될지 벌써부터 마음이 설렌다.
“새날을 주심을 감사합니다!!”
- 576돌 한글날 아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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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선생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