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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이평순과 딸 김예은이는 2012년7월18일 대한민국(인천공항)을 출발해 태국(방콕)-케냐(나이로비)-가나(아크라)-시에라리온(프리타운)에 2012년 7월22일 방문하다.
2012년8월7일 시에라리온(웅기공항)을 출발해 가나(아크라)-케냐(나이로비)-태국(방콕)-한국(인천공항)에 2012년8월10일에 귀국하다.
-5일만에 시에라리온에 도착하다.
-프리타운에 도착 후 4일만에 코노 코이두 선교센터에 도착하다.
-코이두에 도착 이후
총 21일간의 일정을 일기식으로 정리하였습니다.
♥ 5일 만에 시에라리온(Sierra leone)에 발을 내리다.
7월18일 오후6시40분 김현식 장로님과 딸 예은이와 나 셋은 대한항공을 타고 인천 공항을 이룩했다. 김장로님은 열심히 땀 흘려 모은 재산을 NGO단체 아름다운미래유산을 설립해 아프리카 어린이를 위해 학교를 세워주는 교육사역을 하고 있다. 당신이 모은 재산을 주를 위해 아름답게 사용할 줄 아는 진정한 크리스찬이시다. 비행기는 태국 방콕을 향해 순조롭게 비행을 시작했으며 비행일정과 일치하게 로컬시간으로 밤 10시20분(한국 시간 밤12시20분)에 방콕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을 빠져나와 비행기 티켓팅을 위해 케냐 항공사를 찾아 나섰다. 초행길이기도 하겠으나 늦은 밤이라 조금 헤매다 장로님의 인도를 받아 항공사를 찾았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은 상황이 전개되고 있었다. 입국카드를 작성하라는 것이었다. 태국에 입국을 해야 할 일이 없었기에 입국카드는 시에라리온에 도착할 때만 쓰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이유는 조금 뒤에 알게 되었다. 티켓팅을 하기 위해 여권과 e-티켓을 보여주자 아무 말도 없이 컴퓨터만 두들기는 케냐항공사 직원의 모습을 보고 있는데 한국여성분이 다가왔다. 이분들은 5명이 한 팀으로 케냐 샤파리 투어를 가는 길이다. 나에게 다가온 여자 분은 항의를 하라고 했다. 무슨 말인지 몰라 상황을 여쭤봤더니 비행기가 결항되어 호텔에서 하룻밤을 자고 내일 오후5시 비행기로 떠나야 한다고 했다. 당황스러운 순간이었다. 우리 세 사람은 영어를 하지 못해 항의를 할 수 없는 답답한 상황이 되었다. 결국 한국 분들에게 도움을 청해 직원에게 자세한 설명을 부탁했다.
이곳에는 한국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아버지와 아들- 콩고여행가는 팀, 모 대학교 교수부부들-케냐 샤파리 투어를 가는 팀, 에디오피아에 파견 근무 가는 포항공대연구원 부부팀, 그리고 우리 팀 3명과 몇 분의 외국 사람이 전부이다. 항공사 직원의 안내를 받아 공항버스를 타고‘LOVOTEL 호텔’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약5분 거리에 있었다. 호텔은 너무 좋았다. 비행기 결항이 아니었다면 이런 호텔에 머물 기회가 있었을까? 어찌되었든 긴장되었던 마음은 호텔에 들어서자 조금은 사라졌다. 일단 오늘밤 편히 자면 내일 떠날 수 있으니 크게 염려할 일은 없지 않을까? 지금이 새벽 2시가 훨씬 넘은 시간이다.
7월 19일 태국 시간 6시30분에 일어나 창문너머로 밖을 보니 호텔이 예쁘고 아름다웠다. 편한 마음으로 하룻밤을 자고나니 피곤하지는 않았다. 방문을 열자 A4 한 장이 놓여 있다. 영어로 된 쪽지에는 대충 이런 글이 적혀 있다.‘비행기가 중국 광저우에서 기술적 결함 즉 고장이 나서 결항되게 되어 미안하다 오후 2시에 전화하고 3시에 데리러오며 5시30분에 비행기를 탄다.’호텔에서 식사도 제공해 줘 내려갔더니 뷔페식당이다. 태국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아 과일 위주로 식사를 하고 호텔 밖으로 나왔다. 밖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호텔 앞에서 사진 몇 장 찍고 그냥 방으로 돌아와 떠날 준비를 했다. 그런데 오후 2시가 지나도 연락이 없다. 우린 짐을 챙겨 로비로 나와 연락이 오길 기다렸다. 나는 성급하게 Check out을 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한국 분들 중 한 분이 연락이 왔느냐고 물어왔다. 모르겠다고 답하자 안내데스크에 가서 자세히 여쭤보고 비행기가 오지 않았다는 답을 가지고 왔다. 다시 기다려 달라는 내용이다.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으며 초조하고 답답해진다. 예정대로라면 오늘 오후에 시에라리온 도착해야 했다. 어제 밤부터 시에라리온으로 연락을 취했으나 전화가 되지 않았고 지금도 계속해서 다양한 방법을 간구하며 연락을 두드리고 있었다. 그런데 또 늦춰진다면 서로 연락이 두절된 상태에서 걱정은 물론이고 시에라리온에서의 일정에 많은 차질이 빚어지는 불가피한 상황을 맞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들 힘으로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방법을 찾을 수가 없는... 뭐라 표현할 수 없다. 나는 다시 전화를 꺼내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한국 여행사로 전화를 했다. 자동 로밍이 되었다면 한국전화니 한국에는 연결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순간 스쳐지나갔기 때문이다. 지금 중요한 것은 어떻게든 이 상황을 해결하고 비행기를 타야만 하는 것이다. 드디어 우리의 티켓을 구매해준 분과 전화가 되었다. 그러나 한국에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아무것도 없었다.
내 전화는 스마트폰이다. 로밍을 하지 않은 채로 가지고 나왔다. 굳이 로밍 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 동행할 장로님이 계시니 시에라리온 가는 길에 별로 염려할 것 없다. 다만 영어를 못하기 때문에 혹 번역기가 도움이 될까 해서 들고 나왔을 뿐이다. 어찌된 영문인지 태국에 도착해서 현재 시간을 계산해보려고 폰을 열었더니 저절로 로밍이 되었다. 로컬시간이 자동으로 설정되었다. 비싼 요금에도 감사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한 순간이다. 살았구나 폰이 도움이 되겠다 싶었다. 그 기쁨도 잠시, 전화도 번역기도 열리지 않았다. 이것이 내 전화기의 한계였다.
그런데 한국으로는 통화가 된다. 내 전화가 한국 통신사를 이용하기에 가능한 것이다. 여기저기 나름대로 도움을 찾으면서 계속해서 시에라리온으로도 통화를 시도했다. 뿐만 아니라 호텔에서 컴퓨터서비스를 신청해 이메일을 보냈다. 컴이 우리나라 IBM과 달라 한글자판이 없어도 한글은 칠 수 있다. 단 한글 변환을 하는 방법을 몰라 영어로‘help help.. give me a coll' 여기에 영문 내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었다. 영어의 필요성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이때 항공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만 하루 딜레이 되어 밤 12시30분 비행기를 타도록 한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쪽지가 문 앞에 있다.
드디어 오후 5시가 되니 기다리던 남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프리타운공항으로 이동하기 위해 배에 올라타고 떠나는 중에 한국 번호가 폰에 찍혀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김현식장로님 전화번호가 기적적으로 찍혔다. 상황설명을 하고 내 전화는 발신은 안 되고 수신만 되니 시간마다 내게 전화 해 달라고 요청했다.
밤10시 항공사에서 데리러 와야 할 시간이 되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내려오라는 연락이 없어 창문 밖을 내려다보니 한국 분들이 짐을 챙겨 내려가고 있다. 우린 서둘러 내려갔다. 포항공대 부부에게 내려오라고 알려주고 로비로 갔더니 항공사에서 연락을 받았느냐고 되려 묻는다. 우린 연락받은바가 없다고 하자 자기네들은 연락을 받고 내려왔다는 것이다. 어! 뭔가 잘못되고 있나보다. 순간 스쳐가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오늘 출발하는 명단에서 우리와 포항공대 부부는 빠져있다고 했다. 그렇게 그들은 떠났다. 우리 두 팀 5명만 남긴 채... 우리 두 팀은 각각 다른 곳에 앉아 걱정을 하고 있다. 그런데 장로님이 한국으로 돌아가시겠다는게 아닌가? 왜냐하면 이틀이 딜레이 되면 시에라리온에 도착하자마자 프리타운공항에서 대기상태로 23일에 코트디부아르로 출발해 24일 케냐로 되돌아가야 한다. 장로님의 모든 일정에 차질이 빚어지자 한국으로 돌아가시겠다는 선언을 하시고 우리 둘만 두고 가셨다. 와~ 어쩌란 말인가? 우린 영어도 못하는데.. 내일의 상황도 확실치 않은데.. 케냐항공사에서 만 2틀 딜레이 되고 내일 밤 12시30분 비행기를 태워주겠다고 했으나 완전히 믿을 수 있을지 알 수도 없는데... 마음이 착잡하고 답답했다. 그때 시에라리온에서 사랑하는 남편으로부터 출발하신 장로님 폰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시작되었다. 이제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렇게 하룻밤을 보냈다.
이제 의지 할 수 있는 분은 하나님과 포항공대 부부밖에 없다. 공항을 벗어난 순간부터 우린 벙어리다. 영어를 못하면 한 발짝도 밖으로 나갈 수 없다. 호텔에서는 단어 몇 마디로 활동은 가능하다.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어눌한 우리 영어를 호텔 직원들은 잘 알아들었다. 난처할 때도 있지만 예은이는 영어를 알아듣고 나는 몇 마디 단어와 몸으로 말을 했다. 궁짝이 잘 맞는다.
포항공대 부부는 영어실력이 뛰어났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두 분을 남겨두셨나 보다. 그들은 젊은 예비 선교사부부로 한국에서 에디오피아에 세운 공대에 코디를 위해 공무차 출국하는 길이다. 낮에는 두 분의 도움으로 태국시내를 구경하고 맛사지도 받았다.‘오늘은 우리가 섬기겠습니다.’말씀을 하시며 모든 비용을 지불하셨다. 드디어 21일 밤 10시에 공항버스를 타고 태국공항에 들어섰다. 18일 밤 태국공항을 밟았을 때와는 다르게 많은 사람들이 티켓팅을 위해 줄을 지어 기다리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국제공항답게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의 모습도 보았다. 우리도 줄을 서서 티켓팅을 해야 했다. 하지만 인천공항이라면 한국말이 통하니 해결해보겠으나 여기는 태국공항이다. 거기다 나는 오후부터 몸이 아파 저녁도 먹지 못한 채 약을 먹고 의자에 앉아 물만 계속 마시고 있다. 그들 부부는 나를 위해 간절히 기도해 주었다.
그들 부부는 나와 예은이를 쉬게 하고 모든 일을 아주 친절하게 처리해 주었다. 케냐항공에서 우리에게 약속하길, 오늘 12시35분 비행기를 타고 케냐에 도착하면 하룻밤을 잘 수 있도록 호텔을 잡아주겠다고 했었다. 그런데 공항에 도착해보니 아무것도 준비된바 없다. 티켓팅을 하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길 약1시간 만에 돌아온 답변은‘기다리라, 케냐에 가면 해결해 줄 것이다. 호텔은 지금 알아보고 있다.’더 이상 케냐항공의 처분만 기다리고 있을 수 없었다. 그들은 차근차근 아주 세밀하고 정확하며 끈기 있게 설득하면서 해결해 나갔다. 하나씩 하나씩, 부부의 티켓도 남편은 에디오피아로 되어 있고 아내는 케냐에서 기다리라고 되어 있는 컴퓨터상의 오류부터 잡기 시작한다. 호텔이며 한국에서 보낸 짐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챙긴다. 거기에 우리 티켓부터 짐, 호텔, 시에라리온 비행기표 등등 이렇게 이쪽저쪽을 왔다갔다하면서 해결해가는 모습이 너무 정확하다. 이런 일을 많이 해 본 경험이 있는 분처럼 보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단기선교 다니면서 경험한 노하우였음을 알게 되었다.
현재시간 11시45분, 비행기를 타야 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도 항공사는 일을 처리하지 못하고 우왕좌왕만 하고 있다. 슈퍼바이저가 와서야 일이 진행될 정도였으니 그곳에서 기다리는 외국인들의 불만이 오죽했겠는가. 화를 내고 따지는 외국인도 있다. 결국 비행기는 1시간30분 딜레이 되어 2시에 출발하기로 한다. 1시가 지나서야 우리의 티켓이 마무리 되었다. 우린 서둘러 출국게이트로 향했다. 그런데 게이트가 각각 다르다. 비행기 두 대가 30분 간격으로 출발했으며 우린 두 번째 비행기에 올랐다.
21일 7시10분 케냐에 도착했다. 비행기 창문으로 보이는 밖의 모습은 해가 떠오르고 있어 아름다웠다. 공항 안에 들어가니 많은 사람들이 의자에 앉아 있고 케이트에는 출국하기 위해 모여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거의 대부분 흑인들뿐이다. 어디로 가야할지 방향을 찾을 수가 없어 한참을 가다 바라보니 반대편에서 부부의 남편이 우릴 찾아오고 있었다. 그분의 도움을 받아 티켓팅을 마무리하고 호텔표와 비자를 받았다. 부부의 아내가 몸이 아프다고 해서 어제 태국공항에서 샀던 타이레놀을 주고 우리는 함께 공항을 빠져나왔다.
이제 2/3는 왔다. 아직도 비행기를 한 번 더 타야 한다. 가도 가도 끝이 없다. 너무 힘들다. 하지만 힘들다고 하기에는 딸이 옆에 있다. 나도 힘들지만 딸도 많이 힘들어 보인다.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이 바로 영어이다. 영어를 알아들을 수도 없고 말을 할 수도 없으니 긴장에 긴장을 더하게 된다. 지금까지는 공대부부가 곁에 있어 든든했다. 지금 밖으로 나가 호텔로 가면 오늘 밤 10시쯤에 그분들은 에디오피아 비행기를 탄다. 우리 둘은 호텔에 남아야만 한다. 이제부터 우리 둘 밖에 없다. 지금까지 모든 상황을 눈으로 보고 목도했기에 영어를 못하면 호텔에서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른다. 만약에 또 결항된다면... 생각하기도 싫다. 그래서 방콕에서 시에라리온에 있는 남편에게 메일로 도움을 청해 놓았다. 방콕에서 예정대로 출국할 것을 전제로 케냐에서 도움 받을 분을 준비해 달라고... 다행히 김성찬 장로님(꽃동산교회 장로)이 남편과 함께 있으니 우릴 도와줄 분을 준비할 수 있을 거라 생각이 되었다. 케냐에는 꽃동산교회에서 파송한 선교사님들이 있으니까. 나의 메일을 확인한 장로님은 긴급히 케냐로 연락해 우릴 위해 사람을 보내주었다. 케냐공항을 빠져나오자 우릴 기다리는 자매와 형제가 있었다. 우린 공대부부와 헤어져 케냐 곽선교사님 댁으로 향했다.
위기마다 예비하시고 보호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또 경험하게 되었다. 공대부부는 우릴 돕기에 충분한 영어실력과 현장경험을 두루 갖추고 거기에 예비선교사로 주님의 일을 위해 기도하고 있는 분들이다. 가장 힘들고 어려운 상황을 대처하기 위해 보내주신 천사이다. 그분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우린 방콕에서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을 맞았을 것이다. 그들은 케냐공항을 나온 순간 선교사님께 밧톤을 터치하고 케냐호텔로 향했다. 하나님의 손길이 얼마나 절묘하고 정확한지 감사할 뿐이다.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얘기했다.“두 분이 남아있게 됨은 우리 때문이었다고...”
7월21일 아침 선교사님 댁에 도착했다. 우릴 마중 나온 자매는 시에라리온에서 3개월 동안 남편과 아들과 함께 머물렀던 김미리이다. 잠시 씻고 잠을 청한 뒤 선교사님의 사역현장을 방문했다. 피곤하여 자고 싶었으나 여기까지 와서 그냥 돌아가기에는 아쉬움이 남을 것 같았다. 하나님은 나에게 많은 것을 보여주고 싶어 하신다. 지금까지 되어진 일들이 결코 우연이 아니다. 나의 일정에는 포함되지 않았으나 하나님의 계획하심 속에서 이뤄지고 있다. 왜냐하면 시에라리온으로 향한 나의 기도를 폰에 올려놓았었다.‘시에라리온으로 향하는 모든 일정을 하나님께 맡깁니다’라고... 먼저‘엘토토(하나님의 아이들)’학교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한국에서 젊은 나이에 고국을 떠나 힘들고 척박한 땅 케냐에서 섬김의 도를 다하고 있는 젊은 청년들을 만났다. 이들은 가난하고 불결하며 쓰레기더미에서 살아가는 가엾은 아이들을 위해 뜨거운 태양아래서 복음을 전하고 있었다. 휴학하고 나온 청년, 대학을 졸업하고 자원하여 섬기겠다고 나선 청년, 평생 이들을 섬기겠다고 하나님께 자신을 드린 청년이 있었다. 너무도 아름답고 멋진 청년들.‘젊은 날에 여호와를 기억하라’고 하신 전도서의 말씀처럼 이들은 젊은 날에 하나님이 기억되신바가 되는 삶을 살고 있는 아름다운 청년들을 나도 기억하고 싶다. 나의 삶이 부끄러워 졌다.
이 지역은 고로고초마을이다. 우리나라 난지도와 같은 곳으로 쓰레기처리장이 있었다. 쉽게 말하면 쓰레기마을이라고 해야 할까! 마을전체가 쓰레기장처럼 보인다. 도로주위에도 쓰레기가 널려있고 거기에 돼지들이 먹을 것을 찾고 있었으며 그 옆에는 사람들이 무엇인가를 찾고 있다. 한참을 가니 쓰레기하치장.. 케냐 수도에서 모아온 쓰레기를 버리는 하치장으로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생계수단이기도 하다. 폐품들을 수거해 팔아서 사는 곳이니 얼마나 힘든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인지 감히 짐작이 갈 것이다. 쓰레기 중에서 먹을 음식을 찾으면 자녀에게 주기도 한다고 했다. 거기에는 커다란 새, 독수리처럼 생긴 새와 사람들이 섞여 있다. 사람의 앉은키만한 새와 사람을 구분할 수도 없다. 답답한 마음과 안타까운 마음이 교차된다. 엘토토스쿨은 고로고초 사람들의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이다. 우리는 쓰레기 위에서 찬양과 예배를 드렸다. 선교사님의 사역을 돕는 한국 청년들과 그곳에서 은혜 받고 예수님을 영접한 학생과 청년들이 예배를 인도하는데 그들의 열정은 십자가 사랑의 뜨거움으로 넘쳐났다. 그들이 쓰는 언어는 알아들을 수 없었으나 뜨거운 가슴은 나를 감동시킨다. 하나님 나라는 어디서나 오늘도 역사함을 깨닫게 되었다.
7월 22일 주일이다. 우린 아침 9시30분 시에라리온비행기를 타기 위해 6시30분에 출발했다. 케냐공항에서 아름다운 한국 분들을 만났다. 그들은 아프리카 사람들을 위해 자신이 배운 의학을 주님의 사랑으로 채워 드리기 위해 무거운 짐을 가득 싣고 발걸음을 옮기는 대한안과 의사들이다. 그 짐이 얼마나 많은지 셀 수도 없었다. 거기에는 의약품들과 치료기구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벌써 한 곳에서 진료를 마치고 몰디브로 향하는 길이었다. 그들의 걸음이 피곤해 보였으나 그 영혼은 기쁨과 행복으로 가득 채워 질 것이다.‘열심히 배워 남을 위해 사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감동이 밀려왔다. 이것이 진정한 배움의 가치가 아닐까? 그들과 헤어져 시에라리온 출국게이트를 찾아 기다리고 있으니 한국여성분이 반갑게 인사한다. 그분은 뉴욕에서 금요일 출국하여 3일 만에 오늘 아침 케냐에 도착했다. 베넹으로 예술분야선교를 위해 가는 길이다. 미국 뉴욕으로 유학 가 대학원에서 영상을 전공하고 UN에서 인턴으로 있으며, 전 세계 곳곳에서 예능을 지닌 사람들이 모여 아프리카 어린이를 위해 그림을 그려주기 위해 간다했다. 얼마나 멋지고 아름다운 삶인지 가슴 뭉클하였다. 자신이 배운 달란트를 소망이 없는 아이들에게 희망을 심어주고 나누기 위해 홀로 찾아가고 있는 여성과 그 팀들에게 축복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시에라리온행 비행기는 가나 아크라공항에서 잠시 머물렀다. 비행기에서 바라다 본 가나의 모습은 한마디로 깨끗하다. 잘 정돈된 집들, 예쁘고 산뜻해 보인다. 빌딩은 전혀 보이지 않았으나 넓은 지역이 집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공항은 아주 작아 보인다. 밖에는 나갈 수 없어 비행기 안에서 샌드위치를 먹었다. 샌드위치는 케냐 곽선교사님이 아침에 만들어 주신 것을 가방에 넣어 왔다. 비행기에는 외부 음식 반입이 허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기에 비행기 안에서 담대하게도 꺼내놓고 먹었다. 그래서 모르면 용감한 법이다. 잠시 후 비행기가 이룩하고 시에라리온으로 향했다. 이제 약2시간이면 그렇게도 기다리던 남편과 아들을 만날 수 있다. 아니 5일간의 비행기록을 마무리 짓고 5개국을 경유한 일정을 내려놓는다. 비행기 안은 대부분 까만 얼굴뿐이다. 그들은 우리가 신기했나보다.‘차이니스’냐고 묻는다. 아니‘코리아’라고 답하자‘노이스코리아. 사우스코리아’라고 묻는다.‘사우스코리아’라고 하자 시에라리온에 가느냐고 묻는다. 이렇게 짧은 영어는 막을 내리고 입국비자를 써야 한다. 태국에서 썼던 카드와 다르다. 질문의 문장이 너무 길다. 예은이에게 맡기고 예은이는 나름 입국카드 작성에 온 힘을 쏟고 있을 때, 옆에 계신 흑인분이 당신이 써 주시겠다고 하신다. 우린 만약을 위해 철저히 준비한 자료들, 클리어화일에 e-티켓, 비자, 비자영수증, 여권사본, 등등을 잘 준비해 갔다. 이 자료를 보여주었더니 필기체로 멋지게 카드를 작성해 주신다. 이렇게 친절하신 분의 도움을 받아 시에라리온에 도착했다. 이제 밖으로 나가면 서막이 끝나야 한다. 사단은 우리의 갈 길을 어떻게든 방해하고 싶은 것 같다. 그냥가면 아쉬움을 남기는 한판승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린 서울에서부터 많은 짐을 가지고 출발했다. 화물로 보낸 짐이 8개 120kg, 나와 예은이가 끌고 지고 들고 온 짐이 5개이다. 방콕에서 화물을 확인했기에 케냐까지는 우리와 동행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4개의 화물이 도착하지 않았다. 아직도 우리의 길은 끝나지 않은 산 너머 산이다. 다음 비행기는 이틀 뒤에나 도착한다. 어떻게 그들에게 설명해야 하나. 우리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짐이 도착하지 않아 길게 줄을 서 있다. 또 한 번의 위기.. 방콕에서부터의 상황설명을 해야 하는데.. 듣지도 못하고 말하지도 못하는 반벙어리가 뭔가 해야 했다. 10미터 공항밖에는 영어교수님이신 김성찬 장로님이 있다. 하지만 그분의 도움을 받을 길이 없다. 전화만 되어도 가능한 일인데, 통화도 안 되고 밖으로 나갈 수도 안으로 들어올 수도 없다. 혼자 줄은 서 있는 동안 영어단어를 떠올려본다. 30여분 서 있자. 내 차례가 왔다. 예은이를 불렀다. 예은이는 그들의 영어를 대충 알아들었다. 또 한 번 궁짝이 잘 맞는 콤비가 되었다. 우리가 잘 알아듣지 못하고 설명도 못하니 짜증이 날만도 할 텐데 웃으며 친절하게 대해주셨다. 그렇게 우린 멋지게 서류에 싸인하고 공항 밖으로 나와 기다리고 기다리던 남편과 아들을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