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사자성어(四字成語)
⊙ 증사작반(蒸沙作飯) 모래로 밥을 만드는 사람
증사작반(蒸沙作飯)은 '모래를 삶아서 밥을 만든다.'는 뜻이다. 과연 모래로 밥을 만들 수 있을까? 천만의 말씀, 불가능하다. 증사작반은 어리석은 사람, 지혜가 없는 사람의 행동을 비유한 말이다.
증사작반은 원효 대사(元曉大師. 617~686)가 지은 《발심수행장(發心修行章)》에 나오는 사자성어이다. 이 책은 문장이 매우 감동적이어서 신심을 일으키게 하는 책으로, 80년대까지만 해도 갓 입산한 행자들 을 가르치는 초급 교과서였다.
"비록 부지런히 수행한다고 해도, 지혜가 없는 사람은 동쪽을 향해 가고 있지만, 실제는 서쪽으로 가고 있다.
또 지혜 있는 사람은 쌀로 밥을 만들려고 한다. 그러나 지혜가 없는 사람은 모래를 삶아서 밥을 지으려고 한다."
어리석은 사람은 수행해도 올바른 수행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깨닫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자신은 확실 하게 방향을 정하고 갔는데 도착해 보니 지리산(智異山) 천왕봉(天王峯)이 아니고 가야산(伽倻山)인 것이 다. 지혜가 없으면 엉뚱한 곳, 사도(邪道), 잘못된 길로 가게 된다.
솔로몬 왕의 지혜가 있다.
어느 날 솔로몬 왕에게 두 여인이 찾아왔다. 포대기 속의 갓난아이를 놓고 서로 자신의 아이라고 주장했 다. 누가 정말 이 아이를 낳은 여자일까? 둘 중 하나는 가짜다. 가짜는 더욱더 슬프게 울먹이면서 자신 의 아이라고 주장했다.
솔로몬 왕은 경호원에게 칼을 주면서 "이 칼로 이 아이를 둘로 잘라서 나누어 주라."라고 명했다. 무사가 칼로 내려치려고 하는 순간, 한 여인이 갓난아이 위에 엎드렸다. 그 모습을 본 솔로몬 왕은 "이 아이를 이 여인에게 주어라."라고 명했다.
나는 30대 때 이 영화를 보면서 깜짝 놀랐다. 칼로 잘라서 나누어 주라고 하면 반드시 그 아이를 낳은 어머니는 몸을 던질 것이다. 그런 명석한 지혜를 소유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사면초가(四面楚歌)의 고사(故事)에서 항우(項羽)가 유방(劉邦)에게 패한 것은 군사가 부족해서도, 힘이 부족해서도 아니다. 지혜가 없기 때문이었다. 항우는 힘이 대단하여 별명이 역발산(力拔山, 산도 뽑다) 이었으나 고집이 세고 무지해서 참모들의 의견(특히 범증(范增)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사면초가라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던 것이다.
반면 한고조(漢高祖) 유방(劉邦)은 한신(韓信), 장량(張良) 등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그 덕분에 유방은 항우를 꺾고 한나라를 세우고 황제가 되었다.
불교수행의 목적은 탐진치 등 번뇌(煩惱)와 고(苦)의 제거에 있다. 그 세계를 니르바나(열반), 깨달음의 세계라고 하는데, 니르바나로 가는 올바른 길은 사성제(四聖諦)와 팔정도(八正道)를 수행하여 고(苦)의 원인이 되는 욕망을 소멸시키는 데 있다.
그런데 유튜브에는 '전생을 본다.', '미래를 훤히 내다본다.', '신통술을 한다.' 등등 사이비 교주 같은 말을 하는 이들이 있다. 마치 자신이 깨달은 것처럼 말하고 있는데, 터무니없는 말이다.
의아스러운 것은 그 말을 믿는 사람들도 꽤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고수익을 얻게 해 주겠다는 말에 거액을 맡기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 증사작반(蒸沙作飯)
蒸 찔 증. 찌다. 삶다. 沙 모래 사. 作 지을 작. 만들다. 飯 밥 반. 밥.
출처 : 윤창화 <불교의 사자성어> ----------------------------------------------------------------------------------------------------------------
원효대사의 증사작반(蒸米作飯)에 대한 말씀은 수행의 근본이 '지혜로운 마음'임을 깨우치게 하는 가르침 입니다. 본문에서 지혜로운 이의 행을 고사를 들어 잘 설명해 놓았습니다.
원효대사의 《발심수행장(發心修行章)》 에서 나오는 "증사작반(蒸米作飯)"에 대한 부분을 다시 부연해 봅 니다.
有智人所行 蒸米作飯, 無智人所行 蒸沙作飯. 유지인소행 증미작반 무지인소행 증사작반
"지혜 있는 수행자는 쌀로 밥을 지음이요, 지혜 없는 수행자는 모래로 밥을 지음이다."
증미작반(蒸米作飯)은 쌀은 본래 밥이 될 성질이 있으므로, 올바른 재료로 바른 행을 하면 결과가 이루어 진다는 뜻입니다.
증사작반(蒸沙作飯)은 모래는 근본적으로 아무리 쪄도 밥이 되지 않는 성질이므로, 근본이 잘못되면 아무 리 노력해도 올바른 결과를 얻을 수 나타냅니다.
밥을 지으려면 쌀로 밥을 지어야지 모래로 어떻게 밥을 짓겠습니까? 모래를 쪄서 밥을 지으려는 것은 바보나 할 짓이죠. 제정신을 가진 사람이 그런 시도를 하겠습니까? 어리석은 사람은 이처럼 어처구니없 는 짓을 하게 됩니다.
이 증사작반(蒸沙作飯)의 원조는 《능엄경(楞嚴經)》입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존자에게 이렇게 이르십니다
"그러므로 아난이여, 음욕을 끊지 않고 선정을 닦는다면, 모래나 돌을 쪄서 밥을 짓고자 함이어서 백천겁을 지난다 해도 저 뜨거운 모래일 뿐이다. 어째서인가? 이것은 밥의 바탕이 아니며, 모래와 돌이기 때문이다. [是故 阿難 若不斷婬 修禪定者 如蒸沙石 欲其成飯 經百千劫 秖名熱沙 何以故 此非飯本 沙石成故]"라고 하셨습니다.
음욕을 끊지 않고 선정 수행을 닦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시기 위해 증사작반의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이는 어리석음의 소치라 하겠습니다.
서산대사(西山大師)께서는 《선가귀감(禪家龜鑑》에서 "대음수선 여증사작반(帶婬修禪 如蒸沙作飯)"이라 하셨습니다. "음란하면서 참선하는 것은 모래를 쪄서 밥을 지으려는 것과 같다." 하셨습니다.
밥의 바탕이 아닌 것을 가지고 밥을 지으려는 것은 지혜가 없는 어리석은 자의 소행이라 하겠습니다. 어리석은 자들은 얼음을 비벼서 불을 얻으려 하고, 나무에 올라가 고기를 얻으려는 것과 같아서 부질없는 일을 저지르곤 합니다.
원효대사께서는 이를 "지혜(智慧)와 무지(無智)의 수행 차이"로 비유하셨습니다.
지혜로운 사람[有智人]은 바른 믿음[正信]과 바른 이해[正見]를 바탕으로 수행합니다. 즉, 쌀로 밥을 짓는 것처럼 근본이 바르므로 결과가 바르게 성취됩니다.
반면에 지혜 없는 사람[無智人]은 바른 뜻도 모르고, 탐 · 진 · 치의 마음으로 겉모양만 흉내 냅니다. 이는 모래로 밥을 짓는 것처럼 아무리 정성 들여도 아무 이익이 없게 됩니다. 허망한 일입니다.
수행의 질은 마음의 방향에 달려 있습니다. 열심히 하는 것은 좋은 일이나 지혜가 없으면 도로(徒勞)에 지나지 않고, 수행한다고 하나 의도가 삿되면 불순한 것이니 수행이라 할 수 없고, 겉모양보다 뜻이 더 중요한 일이라 하겠습니다. 즉, '어떤 마음으로 수행하는가'가 핵심이라 하겠습니다. 마음이 바르지 않 으면 그 수행이 아무리 크고 오래되어도 결국은 모래를 쪄서 밥을 지으려는 것과 같이 아무 소용이 없게 됩니다. 또한 힘들게 노력은 해도 지혜가 없으면 쓸데없이 공력만 낭비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른 마음 쌀이요 삿된 마음 모래라네.
쌀과 모래 구별 못해 모래로 밥 지으면
아무리 불을 때 본들 어느 날에 밥이 되리.
쌀로 밥을 짓듯이 바른 마음으로 행하면 깨달음이 이루어지고, 모래로 밥을 짓듯이 어리석은 마음으로 행하면 헛수고가 됩니다.
감사합니다. _()_ _(())_
향기로운 불교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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