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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결교회의 신유에 대한 예배학적 이해와 적용
Liturgical Understanding of and Application to the Divine Healing
of the Korean Evangelical Holiness Church
이 연구는 성결교회의 근간 사중복음의 하나인 신유에 대한 관심을 예배학적 관점에서 이해하며 치유예식으로 적용하려는 하나의 시도이다. 이것은 초기 성결교회가 사중복음을 실천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던 신유집회에 대하여 그리고 동시에 오늘의 성결교회가 치유예식을 통하여 질병으로 삶의 위기의식을 느끼는 사람들의 목회적인 욕구에 대하여 새로운 관심을 가지게 하려는 시도이다. 또한 그러한 욕구에 직면한 성결교회의 예식적인 내용과 구조 및 형식을 확장하며 실천하는 자들에게 동기와 용기를 주려는 것이다.
치유사역은 기독교의 오랜 역사 가운데 예식을 통하여 새롭게 강조되어 왔다. 병자에 대한 관심은 다양한 제의적 활동들로 나타났다. 이러한 행위들은 단순히 침대 옆에서 기도하는 개인적인 치유행위로부터 공적인 치유예배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한국 개신교회는 병자에 대한 관심을 주로 공적 예배에서보다는 개인적 예배를 통하여 나타내고 있다(한국의 가톨릭교회는 정기적인 공적 치유예배를 진행하고 있다). 대부분 한국교회의 치유목회는 병원이나 가정에 있는 병자들을 찾아보는 심방형태의 개인적 예배로 이루어져 있다. 최근에 주일예배 순서 가운데 치유를 위한 기도순서를 마련하는 교회들이 늘고있는 것은 사실이나 이런 부분적인 치유 기도로만은 충분하지 않다. 성경봉독, 기도, 안수, 그리고 도유를 포함하는 공적 치유예배가 점차 자주 시행될 필요가 있다. 이처럼 공적 치유예배에 대한 관심이 커져야 하는 이유는 예배공동체가 하나님의 뜻과 사람들의 영혼뿐 아니라 육신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하기 때문이다.
특별히 한국성결교회는 치유예배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시행할 필요가 있다. 시작부터 신유가 포함된 4중 복음을 강조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온전한 복음(Full Gospel)의 내용 가운데 신유에 관한 이론적, 교리적 연구는 이루어졌으나 실제적인 적용에 관하여는 연구가 없었다. 사중복음 가운데 현대 교회와 교인들에게 실제적인 적용이 가장 요구되는 것은 신유이다. 질병은 인생의 여로에서 반복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치유에 대한 관심과 주의가 요구된다. 이런 점에서 신유에 대한 연구는 목회현장에서 시행될 수 있도록 실제적인 관점으로부터 연구될 필요가 있다.
본 연구는 먼저 치유예식에 대한 성서적 근거를 살펴본 후, 초기 성결교회의 특징이었던 성별회를 중심으로 그 오순절적 신유집회가 오순절/은사 중심의 치유예배에 끼친 영향과 관계를 살펴본다. 그리고 배경을 가진 것으로 오늘의 성결교회를 위한 공적 치유예배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려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순절/은사 중심의 예배 전통에서 시행되는 치유예배를 소개함으로 오늘의 성결교회에 적용될 수 있는 공적 치유예배에 대한 형식과 자료를 제시하려 한다.
치유예식에 대한 성서적 근거
성경은 영적 치유와 육적 치유 목회를 강하게 인정한다. 헬라어 신약성경에 나오는 치유라는 단어 sozo의 어근은 구원과 전체성(wholeness)의 어근과 같다. 치유는 인간에게 몸, 영, 혼의 균형, 조화, 그리고 전체성과 고백, 용서, 그리고 화해를 통한 관계들을 제공하는 하나님의 역사이다. 그런 치유를 통하여 하나님은 자신과 인간 사이에, 개인과 공동체 사이에, 각 개인 안에, 그리고 인간과 다른 피조물 사이에 화해를 가져오기 위해 역사하신다.
신약성경은 예수께서 소외되고 병든 자들을 치료하였으며 그 치유 사역을 위해 자신의 제자들을 파송하기까지 하였음을 말한다. 복음서는 예수의 치유사역에 대한 설명으로 가득 차 있다. 마가복음 6:13은 예수께서 많은 병자들에게 기름을 발라 고쳤다고 전해준다. 이 치유사역은 사도행전에서 사도들에 의해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도들의 치유사역의 결과에 대한 좋은 구절인 야고보(5:14-16)도 우리에게 병든 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기름을 바르면 그들이 치유될 것이라고 약속하고 있다. 이 구절은 치유사역의 임무를 가진 장로들 혹은 교회를 치리하는 사제들이 할 일 두 가지는 병든 자에게 기도를 해주며 주의 이름으로 그에게 기름을 바르는 것이다. 그 목적은 분명히 육신의 치유이지만 또한 죄 사유와 함께 병행되었다. 이런 이유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서로에게 자신들의 죄를 고백하고 서로를 위하여 기도하도록 권면을 받는다. 그렇게 함으로 그들은 육체적으로 낫게 되었다.
성경은 모든 치유가 하나님에게 속한다고 말한다. 교회의 치유사역은 어떤 방법이라도 하나님께서 약과 심리치료를 통하여 주시는 선물들을 상쇄시키지 않는다. 약이나 사람의 건강을 위해 적절히 돌보는 것을 대신할 것은 없다. 오히려, 그것들은 우리의 완전함을 위한 통전적 자료들에 추가된다. 치유는 마술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사랑의 위대한 신비임을 강조한다. 영적 치유를 위해 사역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사랑의 통로들이다. 비록 어느 누구도 주어진 치유예식에서 무엇이 일어날 것인지를 예상할 수 없지만, 많은 놀라운 치유들은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고통 없이 지낼 것이라고 약속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우리의 고난 속에 우리와 함께 거하시기를 약속하신다. 우리는 그 약속을 믿으면서 고통, 질병, 부상, 그리고 소외됨 속에 머물고 계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인식할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가 모든 질병으로부터 치유될 것이라고 약속하시지 않는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 불가피하게 죽음을 직면해야 한다. 그러므로 치유사역은 절대적인 치유를 위한 사역이 아니라 치유가 일어날 수 있는 분위기를 제공하는 것이다.
모든 것 가운데 가장 위대한 치유는 인간이 하나님과 재결합하거나 재화해하는 것이다. 이런 일이 일어날 때 육체적 치유가 일어나고, 정신적 그리고 정서적 균형이 종종 회복되며, 영적 건강이 증대되고, 관계가 치료된다. 이런 점에서 기독교는 기름 부음을 하나님의 사하심을 중재하는 것으로 믿고 5세기까지 감독이 병자에게 기름을 붓는 축복을 기록한 예배의식집이 있었다. 병자에게 기름을 바르는 것을 뒷받침해 주는 성경구절들이 있지만 병자에게 기름을 붓는 것은 직접적이고도 즉각적인 치료라기보다는 위로해서 믿음을 강하게 하려는 목적을 지닌 상례전적 완화제이다. 비록 회개가 병자를 돌보는 일에 있어서 최우선적인 목적이 되어서도 안 되지만, 그리스도인에게 치유의 기본적 목적은 살아 계신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새롭게 하며 강하게 하는 데 있다.
초기 성결교회의 신유집회
초기 한국성결교회의 예배는 "순복음(純福音)"을 전하려는 교단의 사명을 가지고 그 시작부터 회심자들을 얻기 위한 복음 전도중심의 노방예배와 성령의 역사에 의한 완전한 은혜 곧 성결의 은혜를 강조하는 부흥운동집회의 예배형식으로부터 점차 선교와 예배 두 가지를 모두 포괄하는 형태로 나타났다. 성결교회는 예배를 복음전도와 분리하지 않았다. 이와 같은 목적에 적절하게 나타난 예배가 바로 구령회(救靈會; The Salvation Meeting)와 성별회(聖別會; The Gospel Service 혹은 Holiness Meeting)이었다.
한국성결교회는 초기부터 다른 교단들과 달리 신유를 강조하는 성별회라는 집회를 시작하였다. 한국 교회는 처음부터 선교사들에 의해 전래된 주일 낮 예배만 드렸으나 1893년부터 평안북도 지역의 장로교회들이 주일날에 새벽기도회, 주일오전예배, 주일저녁예배 등 3회의 예배를 드리고 수요일저녁기도회를 드리기 시작한 것이 전국의 교회로 확산되어 한국교회의 전통이 되었다. 초기 한국성결교회는 주일 3회의 예배 외에 성별회라는 또 다른 형식의 예배를 드려 주일에 4회의 예배를 드렸다. 1912년 7월 26일 충청도와 호남지방에서 가장 먼저 설립된 성결교회인 충남 부여의 규암교회(예성)의 역사에 의하면 복음전도관시대(1907-1920)의 성결교회는 주일 4회의 예배--새벽기도회, 주일 오전예배, 구령회 그리고 성별회--를 드린 것으로 나타난다. 초기 성결교회의 주일예배의 특징이었던 구령회와 성별회는 "복음전도"와 "성결의 교리"를 강조하던 성격에 알맞았다. 이 두 가지 집회는 성결교회가 사중복음을 실천하는데 적절한 전도집회와 신유집회로 발전되었으며 이런 이유로 부흥회 성격을 띠게 되었다.
구령회란 복음전도관의 기본 정책을 실천하기 위해 드린 주일저녁예배로 구원받지 못한 이들을 교회로 인도하여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집회이었다. 복음전도자들에 의해 교회라는 간판 대신 동양선교회복음전도관(東洋宣敎會福音傳道館)이라는 간판을 걸고 시작된 성결교회는 순수하게 복음을 불신자들에게 널리 전하여야겠다는 그들의 선교정신에서 나왔다. 이와 같은 목적을 위해 구령회는 노방전도로 얻은 결신자나 초신자들의 영혼 구원을 위하여 준비된 집회이었다. 초기 성결교회의 전도자들은 구령회를 드리기 위해 길에서 북과 나팔 소리에 맞추어 찬송을 부르면서 사람들을 모으고 전도지를 나누어주었다. 이와 같은 전도 방법은 사람들을 복음전도관으로 불러 들여 그들에게 말씀을 전하여 예수를 믿게 하려는 열정으로부터 나온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 구령회는 미국 무디의 부흥운동과 같이 불신자들을 상대로 한 대중전도운동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이 구령회의 주된 예배순서는 간절한 기도와 찬양, 간증, 설교 등으로 진행되었으며 옥외집회는 주로 전도와 노방설교로 이루어졌다. 노방전도 후 주일저녁에 드려지던 구령회는 1940년대에 일제의 탄압으로 인하여 노방전도를 할 수 없게 되어 점차 부인회, 청년회, 소년소녀회, 찬양대와 같은 교회의 기관들을 위한 장로교형식의 주일저녁 찬양예배로 변하였다.
성별회는 성결교회의 독특한 성격을 나타낸 예배로 주일오후에 기존 신자들을 위해 드려진 은사집회이었다. 성별회는 일본에서 먼저 순복음과 성결의 복음을 중심으로 성결운동을 전개하던 영국 성공회 소속 선교사 벅스톤(Berclay Fowell Buxton)에 의해 시작되었다. 1890년부터 일본에서 많은 성결지도자들을 배출하며 일본의 성결운동에 지대한 공헌을 하던 벅스톤은 "일본성결운동의 아버지"라고 불려지기까지 하였다. 1905년 11월에 조직된 동양선교회는 벅스톤을 중심으로 일본성결교회의 전신인 복음전도관을 통해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그들을 거듭나게 하는 것을 일차적인 목표로 세웠지만 명목상의 신자들을 진정한 신자들로 만들기 위해 더 높은 은혜, 즉 성결의 복음을 전하고자 했다. 이와 같은 복음전도관의 이차적인 목표를 위해 시작된 예배가 성별회이었다. 동양선교회는 일본에서 전개하던 성결운동을 한국에서도 전개할 목적으로 성별회를 강조하였으며 도쿄성서학원에서 열린 성별회에 참석하여 영향을 받은 김상준과 정빈이 한국으로 돌아와 초기 성결교회의 고유한 예배형식으로 정착하였다.
성별회는 동기와 진행 형식에 있어 19세기 전반에 미국 감리교의 놀라운 성장을 일으킨 캠프집회와 비슷하였다.
첫째로, 성결회는 미국의 캠프집회와 같이 성결의 복음을 회복하기 위해 신자들을 상대로 동일한 동기를 가지고 시작된 은혜운동이었다. 미국 전국성결연맹의 지도자였던 왓슨(George Douglas Watson)은 성결교회의 영적 부흥에 영향을 준 성별회의 성격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성별회는 성결의 교리를 명백히 설교하고 성결의 은혜를 명백하게 실험적으로 경험하며, 경험한 은혜를 간증하는 집회이다." 성별회는 초신자들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신앙생활을 이미 시작하여 더 차원 높은 신앙을 추구하려는 자들을 중심으로 이미 구원받은 자들의 영적 각성을 촉구하고 성결의 은혜를 경험하려는 의도를 가진 간증집회이었다. 성결교회는 이 성별회를 통해 성결의 체험을 집중적으로 강조하였다. 이런 점에서 성별회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전적으로 따름으로 생명력을 잃어가는 성도들의 성결을 회복하는 교회갱신운동이었으며 또한 예배의 역동성을 회복하는 예배갱신운동이기도 하였다. 성결교회의 초대감독 토마스(John Thomas)의 기록에 의하면 성령세례와 같은 성결의 체험은 한국의 무교정전도관(현재의 중앙성결교회)에서 주일 오후마다 열렸던 성별회에서도 나타났다.
둘째로, 성별회는 정기적인 공식 예배 시간을 피해 주일 오후에 열렸으며 이런 자유로운 시간 운영으로 교파를 초월하여 누구나 참석할 수 있었다. 성별회의 시간 운영은 미국의 오순절교회들이 주일 아침예배 후에 "쉬는 시간"(tarrying time)을 즐기면서 보다 여유 있는 시간에 여러 가지 은사들을 경험하는 예배와 관련이 있다. 매 주일 오후 2시에 무교동교회에서 열린 성별회는 서울 시내에 있는 성결교회의 신도들이 연합으로 모였다. 강사로는 각 신학교 교수목사와 각 교회의 목사들이 초청되었다. 성별회는 주로 주일 오후 2시경에 열렸으나 성령에 의한 변화라고 일컫는 성결의 은혜를 체험하기 위한 목적으로 점차 주간에도 드리는 예배로 확대되었다. 복음전도관 시대의 성결교회는 주일 오후뿐 아니라 주중에 열린 지방회, 연회(총회), 연차 수양대회 등 모든 연합 집회의 회기 동안 오후 시간에 성별회를 진행하였다. 이처럼 자주 열리던 성별회는 점차 부흥회와 특별기도회의 성격을 가진 집회가 되었다.
서울에 위치한 성결교회들이 인도한 성별회는 타 교단의 신자들, 교역자들, 그리고 선교사들까지 참석하는 은사집회로 알려졌다. 1907-1908년 사이 서울에 있는 장로교, 감리교, 구세군 등의 교역자와 신자들이 그리고 심지어 선교사들까지 복음전도관의 성별회 소문을 듣고 찾아왔다. 이 성별회를 통하여 1908년 겨울에는 성신의 크신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 각각 죄를 통회 자복하고 거듭나는 은혜와 성결의 은혜를 받게되었다. 이명직목사는 이 역사를 "동양선교회가 조선에서 첫 번 추수하는 오순절"이라고 말하였다.
이 오순절 사건은 성별회를 예배의 생명력을 회복하기 위해 뜨거운 은혜의 체험을 강조함으로 초기 성결교회가 병자들에 대한 관심을 나타내던 공적 치유예배의 한 형식으로 발전하였다. 신유는 재림과 함께 성별회의 주된 관심사이었다. 타 교단의 많은 사람들이 성결회를 통하여 성결의 은혜와 신유와 방언의 은사들을 체험하게 되었으며 은혜를 체험한 신자들이 처음에는 자신의 교회로 돌아가 부흥을 일으키는 도화선이 되었다. 초기 성결교회의 오순절적 사건이었던 성별회는 1960년대까지 성결교회의 특징을 나타내는 집회로 존속되었다.
성결교회 신유집회의 오순절적 배경
성결교회의 신유집회는 오순절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성결교회는 사중복음을 중심으로 일어난 성결회복운동을 오순절적성결운동으로 이해한다. 성결교회의 사중복음은 원래 19세기 중엽 미국의 성결부흥운동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당시 미국은 유럽에서 불어닥친 자유주의 신학사조에 교회가 오염되어 가고 있었다. 이런 자유주의적 풍조에 대항하여 전통적 신앙을 강조하는 영적 각성운동이 크게 일어났다. 웨슬리 전통에 기원을 둔 이 성결운동은 성령운동으로 연결되어 성령의 불세례, 성령 충만을 강조하게 되었다. 이러한 성령운동에는 자연히 기사와 이적이 일어나게 되었으며 특히 신유가 강조되었다. 이런 이유로 성결교회는 성결운동과 함께 신유를 강조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신유를 강조하던 초기 한국성결교회의 예배의 배경과 성격을 이해하기 위해 웨슬리안 성결단체들의 예배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성결교회는 19세기 미국의 감리교회와 미국의 대표적인 성결교파들(만국성결연맹)인 하나님의 교회(Assemblies of God), 나사렛교회(Nazarene), 그리고 복음교회(Foursquare)의 예배와 어느 정도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성결교회(Holiness Church)는 19세기 감리교회로부터 유래되었기 때문에 성결교회의 예배 역시 감리교회의 예배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이런 점은 한국성결교회의 예배를 소개한 선교사 카우만과 길보륜이 미국감리교회의 교인들이었다는 사실에서 확인된다. 또한 이런 관계에 대한 언급이 성결교회 초기 역사의 결정적인 자료인 성결교회약사에서도 나타난다. 이명직목사는 "조선예수교동양선교회성결교회의 신앙개조는 그리스도와 그 사도들로 말미암아 나타내심과 요한 웨슬리의 성경해석의 근본적 됴리와 만국성결교회의 신앙개조를 토대로 주 강생 일천구백이십오년에 공포하여 성서학원과 모든 교회의 신도들에게 가라쳐 영구하도록 지키는 신경으로 하나니라"고 밝히고 있다. 이것은 한국성결교회의 신학적인 뿌리가 요한 웨슬리와 만국성결교회에 있음을 분명하게 밝히는 글이다. 이명직목사가 말하는 만국성결교회 신앙의 토대는 신약성서의 사도적인 교회를 회복하려는 것이며 웨슬리의 중생과 성결을 넘어서서 또 다른 신약성서의 중요한 주제인 신유와 재림을 강조하는 초대교회의 온전한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다.
성결체험을 할 때 동시에 신유의 체험을 하는 것은 19세기 말의 성결운동에서 많이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성결부흥집회에서는 죄의 회개를 강조하였으며 이 때에 신유의 역사가 나타나는 경우가 많았다. 만국성결연맹의 신조는 "이 단체가 육체의 치유에 대한 성서의 가르침을 믿으며 신유를 위한 기도는 신자의 특권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 신조는 육체의 건강을 위해 다른 방법을 사용하는 것을 정죄하지 않았다.
19세기 후기 감리교회에서 발생한 성결운동은 종교개혁시대의 선행에 대한 논쟁들을 뛰어 넘어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 성화의 중요성에 대한 강조를 회복시킨 요한 웨슬리의 신학에 근거하였다. 웨슬리는 헬라 교부들을 추종하여 완전함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그는 절대로 자신이 완전함을 성취하였다고는 주장하지 않았다. 웨슬리 신학의 이런 면들은 미국 독립전쟁 후에 여러 가지 신앙운동 가운데 전면에 등장하여 결과적으로 오늘날 성결교회 또는 나사렛교회와 같은 웨슬리안 교회들의 예전에 영향을 주었다.
성결교회는 "제2의 축복," 즉 그들의 성령의 내주를 받았다는 확신을 경험한다. 성화, 성령세례 그리고 제2의 축복은 성결교회에서 회심 또는 칭의와는 구별되는 그 이후의 경험을 묘사하는 동의어들이다. 최초로 성령세례(성령충만)가 외부적 표적--방언--과 연결시킨 오순절교회와는 달리 성결교회는 방언과 같은 성화의 어떤 가시적인 명시에 대한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않았다. 성결교회가 오순절교회와 구별되는 것은 방언이 성령을 받는데 필수적인 증거라고 주장하지 않는데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결교회는 많은 오순절교회들의 기원이 되었다. 초기 성결교회의 예배 전통은 19세기초부터 교회에 다니지 않는 주로 미국의 변두리 지역(the Frontier)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복음을 전하고 회심자들을 만들려는 열정적인 부흥회식 예배(Frontier Worship) 전통과 연결된다. 하나의 새롭고도 독특한 예배 모델로 발전한 이 부흥운동 집회형식의 예배가 초기 한국 성결교회의 예배 전통이라 할 수 있다. 성결교회의 예배는 엄숙-경건하고, 실용주의적이며, 동시에 자유스러운 예배 진행으로 특징 되는 변경예배(Frontier Worship)의 부흥회 형태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또한 이처럼 성결교회 예배의 특징이었던 회중의 자율성, 그리고 설교와 찬송의 많은 부분이 오순절교회들의 예배 형성에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사중복음을 강조하는 성결교회의 메시지는 야영집회, 부흥회, 전도예배들을 포함하는 많은 부흥집회를 통하여 전파되었다.
예배에서 치유에 대한 강조는 오순절교회의 맥퍼슨(Aimee Semple McPherson, 1890-1944)이 1937년 주장한 4가지 복음--구원, 성령세례, 치유, 재림--와 매우 관련이 있다. 오순절교회는 예배에서 물세례, 방언으로 증거되는 성령세례, 성찬식, 그리고 치유를 강조한다. 오순절교회의 예배는 방언, 통역, 예언, 간증, 치유와 같은 은사들로 특징지어진다. 오순절교회 신자들은 자신들을 사도행전이 증거하는 기독교 형태를 현대에 대표하는 인물들로 자처하여 종종 자신들의 명칭에 사도적이라는 형용사를 사용한다. 성령임재의 통상적 표적으로서의 방언에 대한 사도행전의 증거(예를 들어 행 10:45-47)를 매우 중대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나 예배에서 흔히 치유를 기대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오순절적 예배 중 빈도가 높은 부분은 병든 사람들의 치유이다. 병자들은 종종 회중 앞에 나와 무릎을 꿇게 하고 목사와 치유의 은사를 소유한 사람들이 안수와 기도를 한다. 또 종종 건강을 얻기 원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병세를 발표하고 기도를 받기도 한다. 어떤 경우에는 기름을 바르는 성경적 실천(약 5:14)이 따르기도 한다. 치유는 특별행사가 아니라 주일예배의 통상적인 구성 요소로 간주된다. 오순절 운동의 역사는 이런 치유의 실행이 바라는 결과들을 얻었다는 증거로 충만하다.
사중복음의 하나인 신유를 치유예배에 대한 관심으로 보여준 성결교회는 오순절교회의 치유예배에 영향을 주었으며 또한 이런 영향이 오순절교회의 예배를 통하여 다른 교회들에게 전파되어 몸과 마음의 치유에 대한 책임을 보다 진지하게 받아들이도록 하였다. 과거에는 병자 치유 의식이 전혀 없었거나 엄격하게 사적으로 행해졌던 대부분의 예배전통들에 최근에는 주일예배와 성만찬을 통하여 치유예배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이제 공적인 치유예배는 더 이상 희귀한 일이 아니라 필요한 일이 되었다.
치유예식의 형식
치유예식의 형식들은 교회 전통들과 현실적인 필요 모두로부터 나온다. 대부분의 은사중심적이며 예배갱신을 추구하는 교회들은 치유예식을 진지하게 그리고 동시에 자유롭게 실시한다. 주일예배에서 치유예식은 성만찬과 진행되는 것이 좋지만, 성만찬이 없는 예배에서는 설교 후에 말씀에 대한 응답으로 진행하는 것이 적절하다. 필요하다면 이 사역은 성만찬 이후 그리고 파송의 순서로 넘어갈 때에도 계속될 수 있다. 이 때 집례자를 도울 수 있는 사람들은 치유예배에 대한 경험이 있는 자들로 예배가 진행되는 동안 제단 좌우에, 성만찬을 받으러 나오는 통로 근처에, 또는 그런 치유사역을 진행하기에 적절한 위치에 자리를 잡고 예배나 성만찬을 진행하는데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계속 병자들을 위한 치유기도를 할 수 있다.
1. 제단/응답에로의 초청
성만찬이 없는 주일예배에서 치유예식은 오순절/은사(Pentecostal/Charismatic) 중심의 예배의 3부분--경배와 찬양, 말씀, 제단/응답에로의 초청--가운데 마지막 부분에서 진행된다. 말씀을 들은 후 제단에로 초청을 하거나 회중의 응답을 요청하는 것은 주일오전 뿐 아니라 저녁예배에서도 진행될 수 있다. 이 마지막 순서는 기본적으로 회중에게 분명한 응답을 요청하는 예식의 역할을 한다. 이 응답 순서는 치유예식 뿐 아니라 악귀를 좇는 예식, 회심과 재헌신이나 결단 그리고 성례세례를 위한 생애통과(passage) 및 강화(intensification)예식과 함께 진행될 수도 있다. 응답의 주된 구조와 진행은 자주 담임목사에 의해 결정된다. 담임목사가 어떤 응답 초청의 메시지를 주지 않을 때라도(예를 들어, 외부 사람이 설교를 한 경우) 목사는 대부분 제단/응답예식을 진행한다. 외부 설교자는 자신의 설교를 마치고는 응답순서를 담임목사에게 넘길 것이다. 그런 다음, 목사는 제단을 향해 나가고 그 때 회중은 결단을 한다.
설교가 끝날 때, 대부분은 치유예식에 대한 간단한 서론을 전한 후에 목사는 회중에게 몇 가지 응답을 요청한다. 이 때 간단한 서론으로는 짧은 기도, 오르간의 전주, 또는 회중찬송 등이 적절하다. 이 때 회중은 통성기도를 할 수도 있다. 물론, 말씀에 대한 응답을 초청하는 순서는 미국 부흥회 형식의 전도집회로부터 온 것이다. 제단에로의 초청은 복음주의 전통에서 하나의 예술적 형식으로 발전되어 왔다. 이 전통은 한국성결교회의 주일예배에도 나타난다. 1936년의 헌법에는 최초로 문서화된 성결교회의 구체적인 예배순서와 규범이 소개된다. 이 주일예배 순서에는 설교 다음에 설교자의 기도대신 은혜좌(恩惠座)라는 특별한 순서를 진행하여 설교의 열매를 얻으려는 의도를 분명히 하고 있다. 은혜좌는 예배자들이 들은 설교에 대하여 응답을 할 수 있도록 마련한 순서로 초기 미국 감리교회가 설교 후에 찬송을 부르면서 진행하던 "초청의 시간" 혹은 "결단의 시간"과 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현대 오순절/은사 중심의 예배는 복음주의로부터 나온 제단에로의 초청을 자신들의 목적에 맞추어 다양한 응답 순서들로 진행하고 있다. 다양한 기도와 치유예식은 목회자에게 회중의 요구들을 채울 수 있는 기회들을 제공한다. 응답 초청의 내용은 보통 목회를 위한 특별한 메시지 아니면 다소 일반적인 주제나 필요를 위한 것이 된다. 또는 이 때 회중은 자신들이 개인적으로 느끼는 특별하게 내적 성령의 부으심에 응답할 수도 있다. 때로는 회중끼리 나눈 은사에 의해 감동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모든 경우에 제단에로의 초청의식은 집례자에게 달려 있다.
제단/응답에로의 초청이 치유예식을 위한 순서로 사용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로, 제단이 통과의례가 성취되는 거룩한 장소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제단은 성결을 체험하기 위해 "머무르는" 장소이다. 오순절/은사 중심의 예배를 드리는 교회들은 제단을 성령세례를 체험하기 위해 머무르는 장소로, 재헌신을 위한 기도의 장소로, 또는 치유나 다른 삶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의 백성이 기도하는 장소와 시간으로 사용해왔다. 이처럼 제단의 공간은 변화와 강화를 위한 장소를 상징하기 때문에 진지하게 진행된 제단예식은 변화를 동반한다.
둘째로, 치유를 위한 기도가 제단 주위에서 이루어질 때 가장 집중력과 공동체성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치유기도는 주일예배 순서 가운데 가장 회중을 위한 중요한 목회에 속한다. 이 예식은 공동체의 기도시간으로 이해되는 가운데 참여하는 개인들의 신앙을 강화시킬 뿐 아니라 신앙공동체의 결속력을 강화시키는 사회적인 모임으로 만든다. 기도를 위해 회중이 제단 주위로 모일 때, 그들은 하나님과 교회공동체 서로에 대한 공통적인 위임을 표현하기 때문에 그들의 결속 의식을 보여주게 된다.
셋째로, 회중의 다양한 필요들을 충족시키는 목회예식으로 적절하기 때문이다. 치유예식이 다양한 형식을 취하는 이유는 회중의 다양한 필요들에 대한 관심 때문이다. 치유예식은 회중이 분명하게 표현하는 실제적인 필요들, 예를 들어 육체적, 정서적, 영적, 관계적, 심지어는 재정적인 필요들을 위한 사역과 기도를 목표로 하고 있다. 어떤 실제적 필요도 서로에게 기도로 사역할 때에는 불필요한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사회학적 관점은 현대 치유예식을 "대안적 치유"로 본다. 그리고 현대의학이 죽음을 극복하지 못하는 것과는 반대로 오순절/은사적 치유예식은 전인적인 치유로 이해된다.
치유예식은 어떤 예배순서들보다 매우 실제적이며 효력이 있다. 설교가 끝난 후 다음 순서로 넘어가는 시간에는 회중의 기대감이 일어난다. 예배는 절정을 향하여 움직인다. 회중은 대단한 기대를 가지고 목사를 향하여 바라본다. 목사는 초청을 하고 회중은 이에 응답한다. 그들은 치유를 위해 앞으로 나아간다. 치유사역팀은 목사를 따라 그리고 도와 치유예식을 진행한다. 집례자가 치유사역팀과 또한 교인공동체가 함께 서로를 위해 기도할 때 기대감은 커질 수밖에 없다.
치유예식은 치유기도를 받으려는 자 뿐 아니라 집례자와 회중 모두에게도 유익하다. 한 편으로, 치유예식은 집례자에게 힘을 부여하는 역할을 한다. 그 예식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임재 의미가 집례자에게 강화되기 때문이다. 또한 집례자는 예식에 참여함으로 느끼는 하나님의 임재를 자신의 신앙갱신의 의미와 연결시킨다. 이처럼 의미를 찾는 것은 치유기도를 받기 위해 나오는 자들과 치유예식을 집례하는 자의 영성을 형성하고 강화시킨다. 회중 역시 치유예식에 참여할 때 집례자와 비슷한 경험과 유익을 얻게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치유예식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응답과 회중들 사이의 결속력을 상징한다. 치유예식은 하나님에 관한 것 뿐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를 강화시킨다. 이처럼 치유예식은 분명히 집례자와 회중 사이에 바람직한 상호교환적 효과를 나타낸다. 예를 들어, 집례자가 하나님의 도우시는 손길을 바라는 동안 치유예식이든 또는 신앙생활의 갱신과 함께 하나님에게 응답하도록 만드는 강화예식이든, 또는 제단 주위에서 일반적인 기도시간이든 그 예식에서 집례자는 하나님에게 반응하려하고 그래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강화시키려 하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치유예식은 회중이 서로에게, 공동체에게 헌신하도록 기회를 부여한다. 회중이 하나님에 대하여 개방되고 응답을 취하는 것은 종종 서로에게 대한 개방성과 민감성을 반영한다. 치유예식에서 집례자가 제단 앞으로 나온 환자를 위해 기도를 하는 동안 회중은 자리에서 일어나 환자를 향하여 두 손을 뻗어 함께 기도할 수 있다. 이처럼 치유예식은 근본적으로 평등주의 형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회중은 회중에게, 집례자는 집례자에게 서로를 위한 기도와 서로에게 사역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리고 교회공동체가 공통적인 형식을 통하여 비슷한 기대를 가지고 서로 참여하기 때문에 결속력이 치유예식 이후의 순서들에게도 나타날 수 있다.
2. 치유예식의 요소
치유예식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들에는 인터뷰, 몸의 접촉, 기름 바름, 그리고 치유기도가 있다.
첫째로, 치유예식 집례자는 초청에 응하는 자와 간단한 인터뷰를 할 필요가 있다. 치유예배를 위해 기도나 다른 예식적인 표현을 하려는 경우에 집례자는 무엇보다 먼저 아픈 사람에게 그것의 의미를 설명하고 그것을 할 것인지에 대한 여부를 그가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 그 이유는 목회예식의 일반적인 규칙이 예식적인 표현을 함께 탐구해서 교인들에게 의미하는 것을 발견하는 데서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둘째로, 치유예식은 몸의 접촉이 가지는 심리적이고 영적인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 치유예식에서 병자의 고립을 치유하는데 커다란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은 몸의 접촉이다. 안수, 기름 바름, 그리고 사람의 손을 잡는 자연스런 행위는 모두 만지는 의식의 힘을 보여준다. 몸의 접촉 자체를 단지 몇 초만에 그치기보다는 적어도 몇 분 단위까지 가도록 지속해야 한다. 몸을 접촉하는 시간이 침묵 가운데 지속될 수도 있다. 실제로 이것이 관심을 집중하는 데는 도움이 되기도 한다.
만지는 의식은 신약성서에서 기록된 치유들 가운데 중심적 역할을 한다. 예수의 치유에 관한 이야기는 일반적으로 몸의 접촉에 관한 이야기를 포함하고 있다. 예수님은 종종 다른 사람들을 만지셨다--어린이들을 축복하면서, 발을 씻기면서, 부상이나 질병을 치유하면서, 그리고 죽음으로부터 살리면서. 성경에 나오는 예들은 치유기도를 원하는 자들을 부드럽게 그리고 사랑스럽게 만지도록 자극할 때 필요한 자들에게 손을 뻗어 우리의 자연스런 욕구와 결합된다. 그런 행위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역하는 자들 안에서 그리고 그들을 통하여 역사하시는 치료자 그리스도의 임재를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야고보도 아픈 사람을 위한 기도와 함께 안수를 권고하고 있다.
몸의 접촉이 가지는 중요성은 심리학이나 행동생물학 심지어는 생리학 등에 대한 연구에서 강조되어 왔다. 어떤 사람이 병으로 고립된 상황에서 강해지고자 하는 것은 하나의 욕구이다. 입원하거나 병으로 집에서 두문불출하는 사람은 지리적으로 친구나 가족으로부터 멀어지기가 쉽다. 의도적인 몸의 접촉은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 그 이유는 손으로 하는 행위가 마술적인 몸의 접촉이 아니라 전적으로 의도적인 몸의 접촉이며 나아가 무엇인가를 명확하게 말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치유하는 능력을 전달하는 몸의 접촉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예배가 지닌 지혜는 우리가 단지 마음이나 말로만이 아니라 우리의 전체를 바쳐 기도한다는 사실에 있다. 우리가 안수하는 순간에 우리는 다른 사람의 전체, 즉 그의 몸과 영혼 전체를 위해서 기도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셋째로, 이마에 기름을 바르는 것은 하나님의 치유하는 사랑을 일으키는 하나의 표시이다. 기름은 그 자체 이상의 것과 성령의 역사에 기름을 바르는 것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기름을 받아 치료하시는 그리스도의 임재를 의미한다. 올리브유는 전통적으로 기름을 바르는데 사용되었으나 불쾌한 냄새가 날 수 있다. 방부제 성격을 가진 달콤한 올리브는 일반 약국에서 구할 수 있다. 향수 기름도 사용될 수 있으나 사용할 때 주의해야 한다. 그 이유는 향수에 알러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치유예식 외에 유산 한 후 슬퍼하는 자들, 이혼을 경험한 자들, 약물 중독이나 남용으로 고생하는 자, 에이즈병을 가진 자, 생명에 위협을 주는 병을 가진 자, 혼수상태에 빠진 자나 말을 할 수 없는 자들 위한 예식과 같이 특별한 요구들을 위해 사용될 수 있다.
또한 기름을 머리에 바르며 안수하는 경우 냄새나 느낌은 세례의식에서 기름을 사용했던 사람들에게는 바로 그 세례를 환기시키는 물질적인 표상이다. 아픈 사람에게 기름으로 안수하는 스웨덴의 루터교 예식은 이런 방식의 세례적인 연관성을 명백하게 한다. 다만 여기에서는 기름으로 안수하는 행동의 상징적인 의미에 초점을 맞추어 자칫 초점이 기름 자체의 마술적인 능력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경향을 감소시키도록 돕는다.
넷째로, 신체의 접촉이나 기름을 바른 후에 이어지는 진지한 기도는 그것이 그 순간을 위해 사려 깊게 선택되었으며 정성껏 말해지는 기도라는 점에서 공식적이거나 혹은 비공식적인 언어를 모두 사용할 수 있다. 몸을 접촉하면서 드리는 기도는 집례자가 그저 하나님을 향하여 드리는 기도, 말하자면 둘 다 머리를 숙이고 서로 만지거나 보지도 않은 채 단지 다른 아픈 사람에 대해 말하기만 하는 기도와는 전혀 다른 유형의 기도를 가능하게 할 것이다. 치유기도는 특별히 오랫동안 질병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매우 중요하다. 그들은 대개 자신들의 삶이 질병이 가져오는 질환이나 고통이나 무능력에 의해 지배되는, 나아가 아마도 이러한 상태의 극복이 단지 죽음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예견되는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다. 그러한 경우에 기도의 초점은 회복이나 치유보다는 자신을 하나님의 돌보심에 맡기는 내용에 두어야 할 것이다.
결론
병자에 대한 관심은 공적 예배로 발전되어야 한다. 교회공동체는 하나님께서 공적인 예배에서 하나님 자신을 주시는 행위를 하신다는 사실을 진지하게 다루는 치유예배를 계획하고 실천할 필요가 있다. 교회가 공적인 예배를 통하여 성도의 영혼뿐 아니라 육체까지도 치유하려는 것은 결코 화려하지도 않고 터무니없는 주장도 아니다. 신유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사 가운데 결코 작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교인들의 실제적인 욕구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예식을 창출하여 그 예식을 의미 있게 만들어낼 필요가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질병으로부터 경험한 위기에 대해 교회가 어떤 방식의 예식을 통해서든 공식적인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치유예배는 인생 여로에서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질병에 대한 관심과 주의를 나타내기 때문에 교회 공동체가 사랑으로 돌보며 참여한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
성결교회는 신유를 사중복음의 하나로 전통적 유산으로 간직하며 강조하고 있다. 성결교회는 이런 전통을 기꺼이 진정한 치유예배로 발전시키며 교회공동체 성원의 삶 가운데 질병으로부터 일어나는 경험을 예식화하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러한 노력은 전인건강운동을 강조하는 일이며 나아가 예수의 치유사역과 건강과 구원 사이의 연관성에 대한 관심을 나타내는 일이다. 교회는 목회적인 과제로 얼마동안 치유에 관한 새로운 예배를 시도해 본 후에 회중에게 의미를 준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들의 경험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묻고 들어야 한다. 치유예배를 보다 광범위한 영역에서 사용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아무리 치유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킨다해도 치유예배는 사람들을 너무 수동적으로 만드는 경향이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그 이유는 치유예배에 참여한 사람들이 자신들을 마치 치유의 수령자로서만 생각하기 쉽기 때문이다. 결국 바람직한 치유예배는 참여한 회중 각자가 하나님의 치유를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일에 대하여 인식하고, 확신하고 그리고 축복을 느끼도록 진행되어야 한다. 그런 확신으로 집례되고 참여하는 치유예배는 교회공동체를 변화시킬 수 있다. 공적 치유예배는 병자에 대한 사역에 새로운 길을 모색해줄 뿐 아니라 공동체의 삶을 형성하는 예배가 되어 교회의 변화를 이룩하는데 기여할 것이다. 공적으로 치유예배를 진행하려는 목회자들에게 다음에 소개하는 미국 연합감리교회의 치유예배가 도움이 될 것이다.
미국 연합감리교회(UMC)의 치유예배
이 예식은 치유를 위하여 회중이 모이는 예배로 특별한 요구에 따라 자유롭게 적용할 수 있다.
모임(Gathering)
인사(Greeting) 약5:14-16상, 벧후1:2
찬송(Hymn of Praise) 경배와 찬양 또는 신유에 관한 찬송을 부른다.
개회기도(Opening Prayer)
성경봉독(Scripture)
설교(Sermon, Meditation, or Testimony)
[신앙고백 또는 말씀에 대한 응답(Affirmation of Faith or Other Response to the Word)]
고백과 용서(Confession and Pardon)
앞 순서에서 약5:14-16을 읽지 않았다면 고백에로의 부름으로 사용한다. 준비된 고백기도나 적절한 시편을 사용한다. 고백 후에는 침묵이나 다음과 같은 용서의 선언을 한다.
(예) 인도자: 기쁜 소식을 들으세요. 우리가 아직 죄인으로 있을 동안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우리는 용서받았습니다! 회중: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우리는 용서받았습니다. 다같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아멘. 회중은 용서에 대한 응답으로 찬양과 감사에 관한 찬송을 부른다.
[평화의 인사(The Peace)] 봉헌, 성만찬과 함께 기름을 바르고 안수기도 후에 진행한다.
[봉헌(Offering)]
[성만찬(Holy Communion)]
[기름에 대한 감사(Thanksgiving over the Oil)] 성만찬 앞으로 나올 수도 있다.
[치유찬송(Hymn of Healing)] 회중, 성가대, 또는 독창으로 부를 수도 있다.
치유기도(Prayers for Healing and Wholeness with Anointing and/or Laying on of Hands)
회중을 개인적으로, 성만찬을 받기 위해 나올 때처럼 그룹으로, 또는 정해진 기도장소로 앞으로 나오도록 초청하여 그들이 가지고 있는 특수한 관심들을 표현하게 한다. 목사, 기도담당자, 또는 두 세 사람으로 구성된 기도팀이 기도를 한다. 모든 기도팀은 침묵으로 그리고 소리를 내어 기도를 하며 안수를 한다. 회중과 성가대가 찬송을 부를 수도 있다. 기름을 준비하였다면 집례자가 엄지 손가락에 기름을 묻혀 기도 받는 자의 이마에 십자가를 그리면서 침묵으로 또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인도자: (구체적인 목적)을 치유하기 위하여 내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______에게 기름을 바르노라. 기름대신 안수를 하려면 각 사람의 머리 위에 손을 얻고 침묵이나 다음과 같은 말로 기도한다: (구체적인 목적)을 위하여 내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_______에게 안수하노라. 우리 속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육체와 정신과 영혼 그리고 인간관계의 모든 질병을 치료하옵소서. 아멘.
기도(Prayer after Anointing and/or Laying on of Hands)] 다음과 같은 기도를 할 수 있다: 전능하신 하나님, 우리의 형제 자매들(이름)이 그들의 고통 가운데서 평안함을 얻고 온전해지기를 위해 기도합니다. 두려울 때 용기를 주옵소서. 약해질 대 당신의 힘을 주옵소서. 괴로울 때 인내심을 주옵소서. 상실하였을 때 소망을 주옵소서. 외로울 때 우리로 그들 편에 서게 하옵소서. [죽음이 다가올 때 당신의 팔을 벌려 형제(자매)를 받아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감사의 나눔(Sharing of Thanksgiving)] 감사를 매우 강하게 느끼는 자들은 치유나 다른 축복에 대해 감사를 할 수 있다.
찬송(Hymn)
축복기도(Dismissal with Blessing) 여러분의 모든 불의를 치유하신 주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시고 지키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모든 고통을 치유하신 주의 얼굴로 여러분에게 비취사 은혜를 베푸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명을 구원하신 주의 얼굴 빛으로 여러분을 향하여 드사 평강을 주실 것입니다(민 6:24-26). 아멘.
허도화(계명대학교 예배학, 설교학 교수 Ph.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