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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5:43-48 이제 굿바이라고 합시다.
이청준의 단편 소설「벌레 이야기」를 보면 자신의 아이를 유괴하여 살해한 범인을 용서하는 문제를 놓고 갈등하는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주인공인 아이의 어머니는 교도소에 갇힌 범인에 대한 원한과 저주로 몸과 마음이 상할 대로 상한 중에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의 메시지를 접하고 예수를 믿습니다.
주인공은 심한 갈등 끝에 교회 성도들의 도움으로 범인을 용서하기로 마음먹고 범인을 면회하러 갑니다.
그런데 초췌한 얼굴로 눈물을 흘리며 용서를 구할 줄 알았던 범인은 의외로 환한 얼굴에 미소까지 띠며
예수님 때문에 아이를 죽인 고통에서 해방되어 평안을 얻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범인을 용서해 주어야겠다는 마음이 일순간에 사라지고 하나님을 향해
“당신이 뭔데 저런 놈을 용서하십니까?
용서할 수 있는 권한은 나밖에 없는데 왜 나에게서 용서의 기회와 권리를 빼앗아 가는 것입니까”고 항변합니다.
참 이 세상에 어렵고 힘든 과제가 무엇인줄 아십니까? 누군가를 용서하는 일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경우 어떻게 하시렵니까?
사람을 행복하고 불행하게 하는 것은 돈이 아닙니다. 세상적인 성공이 아닙니다. 관계입니다.
사람과의 관계가 좋아야 행복할 수 있습니다. .
그러므로 사람들과 관계를 아름답게 맺을 줄 아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원수를 잘 맺고, 관계가 잘 깨지고, 그것을 잘 회복하지 못하는 사람은 불행합니다. 어디가도 불행합니다. 하지만 관계를 잘 맺고, 깨진 관계도 잘 회복할 수 있는 사람은 어디서도 행복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인간관계가 중요합니다.
미국에 카네기 공과대학에서 직장생활에서 실패하고, 가정생활에 실패하고 사회생활에 실패한 사람들만 만명을 대상으로 실패 원인을 연구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지식이 없어서, 기술이 부족해서, 돈이 없어서 , 혹은 무능해서, 능력이 없어서 실패할 것이 아니었습니다.
전문적 기술과 지식이 결여되어서 실패한 사람은 15%밖에 없고, 85%가 인간관계에서 실패한 것입니다. 이런 통계를 얻고 연구한 사람들도 깜짝 놀랐습니다.
그래서 도대체 인간관계란 또 무엇이냐? 실패했다는 인간관계가 무엇인지 추적해서 심층 연구해 보니까 이 사람들은 한결같이 부정적 의식, 부정적 생활자세를 가지고 있었답니다.
실패한 사람들은 항상 부정적이요. 인간관계가 소극적이고, 사물에 대한 생각이 부정적이고, 사건에 대한 이해도 부정적이고 , 역사에 대한 이해도 부정적이더랍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은 성공할 수 없다.
아무리 지식이 있어도, 아무리 기술이 좋아도 안되더라는 것입니다. . 그것이 결론입니다.
여러분 인간 관계에 있어서 성공하는 사람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부정적이고 어두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만져주셔서 고난 속에서도 감사하며 적극적이고 열정적인 삶을 살 수 있는 성도들 되기를 소원합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지난 주에 이어서 우리에게 인간관계에 있어서 새로운 윤리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빌려주는 입장에서 오른 뺨 때리면 왼뺨 까지, 속옷을 달라면 겉옷 까지 , 오리를 가자면 십리까지 갈 마음으로 살고
갚아야할 입장에서는 이에는 이로 , 눈에는 눈으로 갚을 정도로 확실한 사람이 되는 것이 예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사랑의 정신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은 이 사랑 정신의 최고의 절정에 해당합니다.
원수에게까지 사랑을 베푸는 사람이 됨으로 하나님의 온전한 사람이 되라 말씀하십니다.
사랑의 절정은 원수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원수 하면 우리는 하나님과 원수되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우리를 위해서 예수님께서 친히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우리가 화해케 되었습니다.
이 화해의 복음은 우리의 공로가 아니라 원수를 미워하지 않고 사랑하셨던 예수님의 희생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이런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런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원수를 사랑할 수 있고 날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 할 수 있습니다. - 참으로 아멘하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우리 한국교회가 지금까지 잘못 가르친 것이 있습니다. 아니 신학교에서부터 잘못 가르친 말씀입니다.
원수 사랑하는 것은 예수님이나 하시는 것이다.
우리들의 신앙과 삶이 온전케 되는 것은 천국에나 가야 이루어 진다.
그래서 늘 실패할 때마다 말하는 것은 “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은 약하도다 ” 쉽게 이 말씀을 피해 갔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우리들을 나쁜 성도로 만들었는 줄 모릅니다.
저 또한 이 말씀은 도저히 지킬 수 없는 말씀이야 그리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산상수훈의 말씀을 준비하며 묵상하다가 이 말씀은 지켜야 할 말씀이고 또 지킬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또 이 말씀을 지킨 사람들이 여러 명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여러분 구원이 무엇입니까?
예수 믿으면 천국 , 불신 지옥 -- 제가 신앙을 배웠을 때 이렇게 배웠습니다.
구구단 외우듯이 이렇게 배웠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먹으면서 신앙 생활 오래하면서 참 여러가지 인간적인 아픔과 시련들을 겪고 목사가 되고 보니 신앙이 꼭 예수 천국 이것처럼 간단하지 않다라는 것을 배웁니다.
그리고 신앙은 삶을 통해서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압니다.
예수님이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하셨을까 ? 수없이 고민하면서 악한 사람들 면상에서도 욕해 주고 싶을 때 싱글 싱글 웃으면서 악을 선으로 갚는 것이 신앙이라는 것을 배웁니다.
원망하고 불평하고 싶을 때 무릎 꿇고 밤새도록 하나님께 원통함을 아뢰고 씨름할 때 내 삶이 변해 갑니다.
저는 제 자신을 생각할 때 예전이나 지금이나 별로 변한 것이 없는 것 같은데 제 친구들이 17년 만에 만나서 너 참 많이 변했다고 합니다.
대학원 졸업하고 신문사 기자로 있는 동기와 올 초에 4년 만에 만났습니다.
그랬더니 이 동기가 이렇게 말합니다 “ 얼굴 표정이 더 온화하고 너그러운 것이 영락없는 목사님입니다. ”
그동안 얼마나 많이 노력했는데요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려고 얼마나 많이 참고 인내하며 손해보고 고통당했는데요 또 얼마나 많은 은혜와 사랑으로 하나님께서 나를 만져 주셨는데요
결국 신앙이란 예수 믿고 천국 이렇게 단순한게 아닙니다. 구원은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인간다운 인간이 되어 하나님의 형상으로 우리의 모습이 닮아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온전해 지는 것입니다.
천국에서만 온전하게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부터 변화되어 완전한 천국가는 것이 구원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원수 사랑이 가능합니까?
원수 사랑은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체험할 때 가능합니다. 십자가에서 원수된 나를 대신 해서 죽어주신 엄청난 원수 사랑 , 원수인 나를 위해 당신의 아들까지 희생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
이 사랑이 내 마음속에서 감격 되는 특별한 사랑을 입어야 합니다.
이 특별한 사랑을 받았으나 머리로 받는 것 말고 내 가슴에 감격되어야 합니다.
이런 사랑을 경험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이 하나님의 사랑이 가능합니다.
서울 명성 교회의 곽선희 목사님이 계십니다.
이 곽선의 목사님이 한국교회에서 가장 대표적으로 북한을 돕는 분이십니다.
정주영씨가 소를 몰고 북한을 들어가기 2년 전에 이미 수백 마리의 염소를 보내셨고 해마다 수억원 어치의 쌀 , 옷 가지 보내기 시작한지가 벌써 10년 째랍니다.
지금도 제정의 많은 부분을 북한을 위해서 쓰시는 분입니다.
언젠가 이북5도에 있는 지도자들이 모여서 조찬모임을 갖는데 북한을 위해서 돕자는 논의가 이루어 졌다고 합니다. 그 때 많은 사람들이 그 놈들은 빨갱이라고 도와 주면 안된다는 의견들이 강세를 이루었답니다.
그때 한 장로님께서 곽목사님께 말씀하시길
"목사님, 아무리 그래도요 빨갱이 놈들은 안돼요?" 주면 안 된다고요. 북한은 망해야 합니다. 이말에
그래도 우리의 동포들이기에 도와야 한다고 했더니 장로님께서 거기다 한 마디 더하더랍니다.
. "곽목사는 젊어서 모르지? 우리가 얼마나 어려움을 당했는가?"
그래서 곽 목사님께서 "저 그렇게 어리지 않습니다. 제 아버지가 제 목전에서 총살당하는 걸 제가 본 사람입니다." 이 말에 장로님이 아무 말씀도 못하시더랍니다. 그리고 한마디 더 하셨답니다. .
“장로님의 마음속에 있는 그 미운 마음이 다 없어져야 통일이 되는 겁니다."
장로님께서 손을 잡고 놓지를 못하고 한참 우셨답니다.
왜 목사님의 마음에 미운 마음이 없겠습니까? 아버지가 총살 당하고 홀홀 단신 월남에서 수많은 고생을 했는데요 그런데 사랑으로 용서하셨습니다. 오히려 원수를 사랑하고 돕고 있습니다.
예수 믿으니 십자가의 사랑을 경험하니 이렇게 할 수 있는 겁니다.
그렇다고 미움의 마음이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종종 대적자를 만납니다. 나의 마음에 상처와 아픔을 주는 사람을 만납니다. 그런 일을 만날 때, 그것이 내게 주는 분노와 아픔은 작지 않습니다. 온 가슴이 미움으로 충만해집니다.
억울하다고 느끼면 느낄수록 그 분노와 미움은 더 강렬히 내 삶을 지배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많은 경우 그러한 미움의 감정이 치료되지 않은 채 내 뱃속 깊은 곳으로 내려갑니다.
이런 일이 쌓이고 쌓이다보면 그것이 나를 병들게 만듭니다.
성격과 인격이 왜곡되고, 당연히 신앙도 병들게 마련입니다.
이런 문제들을 극복하는 것이 우리 삶과 신앙에 참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 어그러진 인간 관계를 고치는 비결이 무엇인가 했을 때 그 답이 원수를 사랑하는 겁니다.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는 겁니다. 그럼 온전한 사람이 됩니다. 온전한 인격과 건강한 육체를 가진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미움이 자라서 스트레스가 되고 병이 됩니다. 이 미운 마음 때문에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참지 못하겠으니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이 받으시지만 우리의 삶에 힘이 생깁니다.
미움 마음 가지고 있지 말고 적극적으로 사랑하면 마음에 평안이 생기고 몸도 건강해집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은 우리를 위한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번성케 하십니다. 다윗이 원수인 사울을 사랑하고 얼마나 축복을 받습니까, . 원수를 잘 맺었던 사울 왕은 하나님 앞에 버림을 받았습니다.
긍휼을 베풀고 사울 왕도 용서하고 그의 아들도 용서한 다윗은 만 대에 빛나는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복 주셨습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긍휼히 여김을 받습니다.
50개 주나 되는 미국을 보세요 그 큰 나라가 수많은 인종과 민족으로 구성된 나라임에도 힘이 있고 부자입니다. 이 힘은 하나 됨에서 나옵니다. 무슨 일이 있으면 똘똘 뭉칩니다. 사랑으로 똘똘 뭉치고 신앙으로 똘똘 뭉칩니다. 9.11 테러가 있을 때 촛불 키고 온 국민이 거리에 모여 추모합니다.
우리 나라가 여기에서 촛불 집회를 따온거니다. 그런데 미국인들은 그냥 우리 나라처럼 촛불 집회하는 것이 아니라 목사님 모셔다 놓고 말씀듣고 회개하는 자리로 만듭니다. 이개 미국의 힘입니다.
저는 이들을 보면서 얼마나 부러운지 모릅니다. 대통령 선거 때 민주당과 공화당 후보들이 대판 싸웁니다. 부통령까지 팀 메이트가 되어 우리나라 선거전 보다 더 치열하게 싸웁니다.
그런데 일단 대통령이 되고 나면 떨어진 후보들은 철저히 승복하고 당선자의 손을 높이 들어 줍니다.
지난 미 대선 때 민주당의 엘고어 후보 봅시다. 막상 투표에서는 근소하게 앞섰으나 선건인단 투표에서 만 여표 차이로 대통령이 못 되었습니다. 우리 같으면 난리 날 일입니다. 부정 개표다 헌법 소원이다.
날리 칠겁니다. 그 사람 얼마나 억월하겠습니까?
국민 투표에서는 앞섰으나 선건 인단 투표에서 뒤졌다는 것 때문에 대통령이 못되었으니요
세계 역사에 이런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국민의 신뢰와 여론의 지지도 중요하지만 각 주의 명망있는 사람들로 구성된 선거인단의 표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라
여론 보다는 객관적인 지식과 삶의 경험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생각을 더 중시하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엘고어 후보 지금 이름 한마디 민주당에서 거론 안됩니다. 그리고 이번 대선 후보로 다른 사람이 나왔습니다. 얼마나 멋집니까 고어에게 있어서 현 대통령은 원수입니다. 그런데 깨끗이 승복하고 협력해주고 그것도 모자라서 대통령이 정치 잘 할 수 있도록 이름도 없이 물러나 있는 아름다운 모습 이것이 미국의 힘입니다.
그들의 조상을 봅시다.
복음을 전해 주기 위해서 선교사들이 백여년 전에 이 땅에 들어 올 때 대동강에서 토마스 목사의 목을 날려 버렸습니다. 복음을 전해 주기 위해서 들어온 사람들이 은인인줄도 모르고 목을 잘라 버리는 이 민족을 미국 선교사들은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백여년 동안 이 나라의 우방이 되는 일에 앞장섰습니다.
먹을 것이 없을 때 선교사들이 미국 선교부에서 가져온 밀가루로 이 민족을 먹였습니다.
전쟁 고아들이 넘쳐 나는 시대에는 고아원 만들어서 아이들 먹여 살렸습니다.
원수를 맺지 않는 나라이기에 오늘날까지 세계를 호령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유대인들 보세요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이 미국 , 캐나다 , 영국 , 프랑스 ,스위스 , 스웨덴등 다 잘사는 나라에서 대통령 , 장관 의사 , 판사 , 주지사 , 교수 박사 좋은 자리는 다 있습니다.
그들이 2 차 세계 대전에서 얼마나 많은 아픔을 겪은 민족입니까? 무려 600 만 명이나 되는 유대인들이 독일군이 만든 가스실에서 죽어 갔습니다. 거의 씨가 말라 버릴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전쟁이 끝나고 유대인은 독일군들을 용서했습니다.
그들이 아름다운 말이 있습니다. 원수를 용서하자 그러나 잊지는 말자
이런 원수를 용서하고 사랑하는 정신으로 사니 유대인이 복을 받는 겁니다.
아프리카는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고 먹을 것이 많고 지하 자원, 관광 자원이 제일 많은 곳입니다.
그런데 실상은 제일 배고프고 고통 받는 땅이 아프리카 대륙입니다.
아프리카라고 하는 땅이 정말 먹을 것이 없어서 가난한 것은 아닙니다.
세계 최고의 관광지가 거의 아프리카에 다 있습니다.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것들이 아프리카에 많이 있습니다. 지하자원도 많습니다.
그런데 왜 그 땅이 고통의 땅이 되었습니까? 이유는 동족간에 서로 싸우는 겁니다. 그러니까 가난한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생명이 피를 흘리고 발전을 못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 나라를 보면서 이 땅이 아프리카가 되어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나라가 해방 이 후 지금 까지 해 온 일이라는 것이 원수 맺는 일이었습니다.
좌익과 우익이 원수가 되더니 남과 북으로 갈라지고 전쟁을 통해서 형제가 철천지 원수가 되어 버렸습니다.
군부와 운동권이 원수가 되고 학생과 정치인이 원수가 되고 이것도 모자라서 영남과 호남이 원수로 30년을 으르렁 되더니 이제는 보수와 개혁이라는 말로 원수가 되고 군부 독재가 물러가니 야당과 여당이 원수가 되고 이제는 국회 본회의 상임위원회 청문회 서로 헐뜻고 물어 죽이는 일만 하면서 원수 맺는 일에 미쳐 있습니다.
이러니 무슨 나라가 잘 될 수 있습니까?
상생의 정치 한다니 화합의 정치 한다니 하면서 무슨 화합입니까? 실상은 사생결단의 정치죠
요즘은 신문 읽기가 짜증납니다.
보수 신문들은 대통령 여당 장관들 못죽여서 안달이고 여당을 지지하는 신문과 인터넷의 웨사이트를 보면 보수 신문들과 야당의원들을 매도하고 정말 질릴 지경입니다. 말 잘하는 정치인들 고도의 매끄러운 언어로 욕하고 사기치는 것 이제 신물 날 정도입니다.
서로 적당히 견제하면서 사랑하고 이해하고 용서해야 하는 것이지 한집안에서 서로 죽이면 뭣하자는 것이지 모르겠습니다.
이 나라가 잘살고 복받는 나라 되려면 예수 정신으로 서로 사랑해서 서로를 세워 주어야 이 나라의 희망이 있는 겁니다.
죽어라고 직장에서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입에서 단내나도록 배고픔 , 피곤함 다 참고 일하고 집에 돌아가 텔레비전 앞에 앉아서 이제는 좀 나아지겠지하고 막연한 기대와 희망을 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변화를 위해 우리들이 무언가를 시작하지 않는다면 이 나라는 그 자리에 계속 머물러 있을 뿐입니다
우리 이제 원수를 사랑하고 위해서 기도할 수 있는 참된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이유는 이제 이 말씀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런 수준에 있는 사람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수준에서 머물지말고 도전히 불신자들이 따라올 수 없는 비범하고 탁월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온전하라 했을 때 이 온전은 헬라어로 텔레이오스인데 텔로스란 명사에서 온 말로 우리 말로 하면 목표 , 목적입니다.
인간 생활의 목적을 온전히 하나님을 닮는 것을 목적으로 정하고 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지금 당장 이 수준에 도달할 수는 없어도 그것은 우리가 가야할 최종 목적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용서하신 것 같이 우리도 원수를 사랑하고 기도해 줄 목표로 살아가는 사람과 그냥 이웃이나 사랑하며 살지 하는 목표를 가진 사람과 완전히 다릅니다.
제가 중학교 1학년 때까지 400 , 800 중거리 육상 선수를 했습니다.
그 때 제 달리기 실력이 쾌 좋았습니다. 그래서 소년 체전 예선전도 뛰어 보았거든요
중학교 때 800 미터 제 기록이 최고 기록이 2분 10초 였습니다.
그런데 코치가 소년 체전 예선 평균 기록이 1분 50초라는 겁니다. 그래서 이 기준에 못들면 군 예선전에서도 떨어진다고 아주 혹독하게 훈련 시켰습니다.
그래서 죽어라고 입에서 단내 나도록 훈련했습니다. 그래서 1분 55초에 들었거든요 그리고 예선전에 나갔더니 1분 50초가 아니라 1분 55때 이고 우리가 예선 기록으로 목표했던 기록은 우승권에 들어 갈 수 있는 기록이었습니다. 코치가 거짓말 했던 것입니다.
나중에 코치가 말합니다. 우리가 목표를 예선 기록에 맞추었다면 예선 통과 밖에 못한다고요
그런데 목표치를 우승치로 잡고 열심히 뛰면 실제로 우승할 수 있기에 그렇게 잡았다는 군요
그리고 실제로 제 1 년 선배가 소년 체전에 나가서 한국 신기록 세우고 우승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완전하게 예수님처럼 살 수 없습니다. 그런데 원수를 사랑하는 목표를 향해서 우리가 살아간다면 우리의 삶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나면서부터 원수지간이 없는데 원수 맺으며 살아갈 일도 없을뿐더러 원수도 사랑하는데 웬만한 아픔 , 손해 다 용서하며 살 것 아닙니까?
교회 안에서 가시 같은 사람 보면서도 원수 사랑이 목표 -- 그러면 해결 되는 겁니다.
옆집 사람이 미워요 , 직장 동료가 밉습니다. 형제가 밉습니다. 학교 친구가 밉습니다.
그래도 내 목표는 원수 사랑이야 그러면 다 그 안에서 끝나는 겁니다.
오늘 이 말씀을 피상적으로 듣지 마십시오 피상적으로 듣지 않아야 할 이유를 말씀드립니다.
4,5 년은 된 것 같은데요 테레비프로에 서세원이 나와서 노인분들 모시고 퀴즈하는 재미있는 대담 프로가 있었습니다. 80 가까이 된 노인들 내외간이 나왔는데, 서세원이 그런 얘기를 하는 겁니다. .
"이렇게 60년 한평생을 같이 살았으니까 이런 관계를 뭐라고 하십니까?" 하고 물었어요.
서세원이 기대한 것은 뭐냐면 "천생연분" 그 말을 기다리고 있는데 이 할머니가 "원수!" 그럽니다.
서세원씨가 너무 답답해서 이걸 또 말을 고쳐서 "넉자로 말하세요, 넉자로" 했더니 하는 말이,
"평생원수!" 그래요.
원수가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 집안에 원수가 있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내 가족이 원수랍니다.
우리 주님께서 원수사랑을 왜 강조합니까? 왜 원수를 위해서 기도하라고 합니까?
원수는 대부분 친한 사람과 맺어집니다.
한집안의 형제끼리 , 한 가정에서 살대고 살았던 부부끼리 , 한 교회에서 섬기던 교인들끼리 가장 가까운 관계에서 맺어지는 것이 원수 관계입니다.
실제로 보세요 여러분 살아 보시니까 이웃집 아저씨가 원수가 아닙니다.
불한당 같이 생겨 가지고 12시까지 술먹고 마누라 패는 이웃집 아저씨하고 나하고 원수될 일이 없습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이 원수되고 조강지처가 원수되고 기둥같은 남편이 원수되고 한 배에서 나온 형제기로 원수가 되지 않습니까?
가장 사랑할 사람들과 원수가 되니 인간관계가 고통스럽고 실패하고 불행한 것입니다.
사울의 사위는 다윗이었습니다. 그런데 원수가 되니 자기가 죽은 겁니다.
이스마엘의 친동생은 이삭이었습니다. 그런데 원수 관계를 맺으니 버림 받은 것입니다.
가인의 친동생은 아벨이었습니다. 그런데 원수 관계를 맺으니 살인자가 된 것입니다.
에서의 친동생은 야곱이었습니다. 그런데 원수 관계를 맺으니 저주 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원수를 위해서 기도해야 할 이유가 우리 때문에 있는 겁니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원수 되는 인간의 죄 때문에 우리도 죽고 원수도 죽기 때문에 원수를 사랑하고 기도하라는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원수 맺은 사울을 향한 다윗을 보세요 , 이스마엘을 향한 이삭을 보세요 , 가인을 향한 아벨을 보세요
에서를 향한 야곱을 보세요 원수를 사랑으로 갚잖아요 이것이 신앙입니다. 이것이 만대까지 복받는 행위입니다. 괜히 믿음의 조상들 되는 것 아닙니다.
한국교회의 원수 사랑의 대표적인 인물을 꼽으라면 대표적으로 손양원 목사님을 들 수 있습니다.
손양원 목사(1902-1950)는 평양신학교를 졸업하고 전남 여수에 있는 나병원의 애향원교회에서 목회했다. 1940년 9월 25일 일제의 신사참배를 거부해 투옥돼서 6년간 옥살이를 했고 1948년 10월의 여순반란 사건 때, 아들 동인과 동신이 납치되어 예수쟁이라는 죄명으로 총살 당했습니다.
그 후 두 아들을 죽인 안재선이 사형을 당하게 되었는데, 그를 구해 양아들로 삼았습니다.
그러다가 6.25 한국전쟁 때 애향원교회 나환자들을 버려두고 갈 수 없다며 남아 있다가 공산군에게 잡혀 총살 당했습니다. 손양원 목사는 우리에게 원수사랑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이 손양원 목사님의 외동딸이 손동희 권사님이 쓰신 “ 나의 아버지 손양원 목사 ” 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에 보면 그 때의 상황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오빠들 장래를 치르고 나자 아버지가 중학생이었던 자신을 부르더랍니다.
딸을 앞에 앉혀 놓고 우시면서 안재선이라는 오빠를 죽인 원수를 양아들 삼겠다고 말씀하시더랍니다.
그 때 손동희 권사님은 안된다고 어떻게 오빠들을 죽인 원수를 용서하냐고 우겼답니다.
그러자 아버지께서 오늘 이 말씀을 내 원수를 사랑하라 이 말씀을 펴시면서 “ 난 십계명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알고 지금까지 지켜왔다. 이제는 이 말씀도 내가 지켜야 할 명령으로 안다. 이 말씀도 지켜야 돼 ”
그래서 손동희 권사님께서 그럼 용서하는 것으로 끝내지 어떻게 한 집에서 오빠로 살 수 있냐고 떼를 썼더니 “ 말씀을 봐라 용서 가지고 안되잖니 예수님께서 사랑하라고 하셨서 사랑해야 되 사랑해야되 ”
그래서 사형장에 끌려가는 안재선을 손목사님께서 친히 찾아가셔서 선처를 부탁해서 빼 내었답니다.
그리고 목사님께서 1년 동안 부흥회 가는 곳 마다 이 안재선이를 데리고 다녔더니 빨갱이 청년이 변하여 새 사람되고 예수를 믿었답니다.
그리고 그 후 목사님은 6.25 전쟁통에 순교하셨고 이 안재선씨는 신앙생활 잘하다 몇 년 전에 소천 했답니다.
그러면서 죽기 얼마 전 손동희 권사님을 찾아와 “ 천국에 가면 동신이 동인이 오빠에게 잘못을 빌겠다”고 말하더랍니다.
여러분 이것이 예수 믿는 사람의 자세입니다.
자식을 죽인 원수를 찢어 죽여도 분이 안풀릴 터인데 끌어 안고 양아들 삼는 것 이것이 있기에 한국교회가 빛을 낸 겁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십자가 달리실 때 “ 너희들 내가 다 죽이겠다” 고 저주했다면 기독교는 원수를 용서하고 사랑하는 종교가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저 또한 예수를 믿지 않을 것입니다. 어떻게 그런 예수를 믿겠습니까?
우리가 믿는 예수님 , 나와 성령으로 맺어진 예수님은 원수까지도 사랑하신 분이데 우리가 이런 영을 받았는데 사는 것은 꼭 마귀의 영을 받은 것처럼 살아서 되겠습니까?
여러분 우리의 신앙목표를 올려 잡으세요 예수님처럼 사는 것이 목적이 되어야 우리 인생이 행복해 집니다. 우리 인생이 성공하고 우리 인생이 복을 받을 수 있는 겁니다.
이제 여러분의 신앙목표를 올려 잡으세요
저급하게 “ 마음은 원리로되 육신이 약하다 .”
제발 그러지 마십시오 이 말씀은 도저히 못지키는 말씀이야 하고 부정적이고 소극적으로 생각하지 마세요
여러분 마음속에 혹시 용납하지 못하는 형제가 있고 미워지기 시작한 사람이 있습니까?
미워지기 시작한 직장 동료가 있습니까?
원수 되지 마십시오 오히려 불쌍히 생각하시고 기도해 주세요 사랑해 주세요
싸가지 없게 굽니까? 그럼 밥이라도 한끼 사주세요 . 술먹거든 술이라도 사주세요 푸세요 용서해주세요
이것이 예수 믿는 사람의 목표입니다.
그럼 여러분에게 복이 됩니다. 여러분의 인생이 새로워지고 즐거워 지고 형통한 인생이됩니다.
원수사랑 안된다 생각하지 마세요 됩니다. 나를 위한 축복의 말씀입니다. 아멘
여러분 남은 생애 어떻게 사시렵니까? 우리 원수 사랑을 목표로 삽시다.
그럼 싸울 일도 없고 따질 일도 없고 미워할 일고 없고 서운해 할일도 없습니다.
이제 우리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이 말은 굿바이 합시다.
이런 부정적인 말을 향해서 굿바이라고 외치십시오
그리고 원수 사랑을 목표로 살겠다고 다짐하시고 두주먹 불끈 쥐십시오
그러면 성령님이 도와 주십니다. 건강해지고 복받고 이나라 이민족도 소망있는 민족이 됩니다.
이런 은혜와 다짐이 이 아침에 여러분의 마음속에 가득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