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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륙의 항구도시 텐진을 가로지르는 강의 이름은 해하이다. 아마도 이 강이 바다로 이어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었을 것이다. 텐진의 항구와 이어진 이 강을 통해 무역선이 드나들었다. 이 강변에는 망해루라 불리는 서양식 건축물이 있다. 1869년에 지어진 이 건물은 사실 교회였다. 이 교회는 그야말로 텐진의 근대사를 상징하는 건물이라 할 수 있다. 완공된 후 4번이나 전소되어 현재 모습은 1904년에 재건된 것이다. 이 건물이 이렇게 수난을 당한 것은 바로 텐진조약으로 상징되는 외세의 중국 침략 때문이다. 주로 외국 선교사를 앞세우고 마약과 군사적 행동으로 중국을 침탈한 서구 열강에 대해 의화단과 같은 중국의 민중들은 저항했고 그 때마다 망해루는 불타야 했다. 망해루에서 하해를 보니 큰 강은 아니지만 꽤 수심이 깊어 배들이 오가기에 충분했다. 여기서 텐진이 바다까지는 80km 정도로 꽤 내륙에 위치한 항구 도시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이곳에 들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한낮에도 관광객은 커녕 지역 주민같은 이들도 없다. 입장료도 저렴했다. 관리인은 “한국에서 왔나요?”라고 묻는다. 어떻게 아느냐고 했더니 “여긴 한국인들이 주로 오지요”라고 한다. 이 시대에 공자를 그렇게 생활 속에 느끼는 것은 이제 중국인이 아니라 한국인인 셈이다. 내 뒤를 따라 사당에 입장한 것은 북경에서 역사학을 전공하다는 여학생 하나뿐이었다. 공묘가 있는 이곳은 예전에는 텐진에서 가장 번화했던 구도심이다. 공묘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천후궁이 있다. 바다를 거슬러 텐진 도심까지 이어진 강을 따라 들어온 선원들이 꼭 제를 올리던 곳이다. 역시 항구의 규모에 어울리게 천후궁 역시 규모가 크다. 천후는 마조라고도 한다. 전설에 의하면, 10세기 중반에 푸젠 출신의 여성으로, 해난 구조 등에 기적을 보여 조정에서 천후로 봉했다 한다. 본래 뱃사람들이 믿는 수신이었는데 점차 민간에 퍼져 중국의 동부 연해, 타이완 등지에 분포하고 우리나라와 일본까지 추앙된 인물이다. 원나라 태정 3년(1326년)에 지어진 천후궁은 예전부터 많이 사람들이 드나들었고, 상인들까지 덩달아 모여들어 커다란 상가가 형성됐다. 요즘 이 거리를 ‘고문화가’라 부른다. 쉽게 말해 텐진의 대표적인 고미술 상가이자 벼룩시장 쯤 된다 | |
. 우리네 80년대 인사동처럼 북적거리고 옛 멋이 남아있는 곳이다. 노철교대가에서 시작해서 수각대가에 이르는 687m에 이어지는 좁은 골목으로 이어진다. 인민공화국 성립 이후에 종교에 대한 부정적인 정책으로 천후궁이 쇄락하는 듯했지만 지금은 텐진 사람들의 대표적인 도교사원이자 문화 거리로 활성화되었다. 하지만 주변의 대규모 공사를 보아 이곳도 얼마 후에는 인위적으로 조성된 영화세트장 같은 상가로 변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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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되는 인프라 건설 시내에서 항구도시 냄새를 맡기는 힘들다. 시내에서 택시를 타고 항구로 갔다. 항구로 가는 길은 철도와 함께 나란히 달렸다. 철도는 한국이나 중국의 다른 도시에서 오는 배의 승객과 화물이 바로 철도로 이어지게 설계되어 있다. 이 철도는 베이징까지 이어져 텐진-베이징 경제 회랑을 이루는 주요 인프라가 된다. 하지만 눈에 더 띠는 것은 새로 건설 중인 전철이었다. 지상에 고가로 설치되는 전철은 항만에서 시내 중심까지 바로 이어지게 건설되고 있었다. 뿌연 먼지를 뚫고 고속도로에 들어서니 쾌적하게 속도를 낸다. 택시가 다다른 곳은 ‘당고’라 불리는 동네였다. 이 지역에는 ‘당’ 자가 붙은 곳이 많은데 바다물로 침하되는 곳이 많았던 이곳을 본격적으로 개발한 것이 당나라 때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곳에 당나라 때부터 이어온 절이 있었다. 남해대사라 불리는 이 절은 명나라 영락제 2년에 크게 중건된 사찰이다. 청나라 강희제 때 조음사로 개칭되 지금까지 이어져 온다. 모두 황제의 명으로 이름 붙여진 절이니 오늘날 국가 문화재로 지정되는 것도 당연한 듯 하다. 경내에 들어서니 먼저 바다와 관련된 불화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 곳도 역시 선원들의 해난을 방지하는 기복적인 성격이 강했다. 조음사에 멀지 않은 곳에 포대가 있다. 이 포대는 제 2차 아편전쟁 당시에 만들어진 것이다. 멀리까지 포를 쏘기 위해 약 30m의 언덕을 만들었다. 언덕을 오르니 녹슨 거대한 포가 있다. 포가 향하고 있는 곳에는 이미 바다는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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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거대한 갯벌이 펼쳐져 있고 이곳은 모두 매립되고 있었다. 주변은 거대한 공단으로 수많은 공장들이 있다. 매립 현장에는 수많은 트럭들이 오가며 하루하루 새로운 땅을 만든다. 텐진이 점점 커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도 인구 1천만 명의 도시인데 앞으로 얼마나 더 커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동북아의 최대 항구도시를 꿈꾸는 것일까? 아마도 텐진의 배후에는 베이징이라는 거대한 정치와 소비의 도시가 있으니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황도로 가는 길 텐진에서 베이징까지는 단 2시간 거리. 북경시 외곽에서 잠깐 하베이성이 나오고 바로 베이징시로 진입한다. 텐진과 베이징은 바로 마주보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서 두 시는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베이징으로 오는 대부분의 화물이 바로 텐진을 통해 들어오기 때문이다. 또한 이 길을 텐진-북경 회랑이라 부른다. 회랑은 복도를 의미하는데 이 경진당 고속도로는 두 도시를 잇는 복도이다. 이 복도에는 중국의 미래를 결정지을 최첨단 공장들이 들어서 있다. 한국의 LG전자 중국법인도 이곳에 있다. 텐진 시계 안에 있는 ‘텐진경제기술개발구’에는 기술력있는 정보통신 업체와 현대자동차ㆍ도요타와 같은 자동차 산업 및 부품 업체들 그리고 석유화학 업종, 소재산업ㆍ생명공학 관련 업체들이 모여있다. 니샹유(45) 중국 텐진 경제기술개발구 관리위원회 부주임은 “세계 500대 기업 가운데 39개 기업이 들어와 73개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모토로라, 코카콜라, 도요타, 마쓰시타, 혼다, 오티스 등이 대표적 기업이고, 한국 기업으로는 삼성전자, 삼성전기, LG전자, LG화학, 금호타이어 등 다수가 들어와 있다. 텐진은 베이징ㆍ상하이와 함께 중국 3대 경제도시다. 한국과 가깝고, 1984년부터 경제기술개발구를 개발해 도로ㆍ항만ㆍ항공ㆍ전력 등 인프라가 완벽하다. 외국기업 주재원들이 생활하기에 불편함이 없을 정도로 주거ㆍ교육 등의 인프라도 우수하다”고 이야기한다. 한국계 운송회사인 코오롱버스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렸다. 멀리 거대한 LG전자 공장이 보인다. 작년에 LG전자 텐진법인은 중국 텐진시 정부로부터 ‘2002년 최우수 외자 기업’에 선정됐었다. LG전자 텐진 법인은 지난해 매출 54억 위엔(한국돈 8천억원)을 달성하는 등 경영성과를 인정받은 것이다. LG전자 텐진법인은 에어컨, 전자레인지을 생산하는 중국 북방 최대 가전 생산법인으로 95년 이후 매년 40% 이상의 고속 성장을 해왔다. 특히 전자레인지의 경우 상반기 중국 시장 점유율 37.5%로 작년에 이어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다. 그런데 LG전자 판매점에 가보니 놀라울 정도로 가격이 저렴했다. 전자레인지 한 대에 가격은 우리 돈 7만원 정도. 인건비와 원자재가 싼 탓인가? 우리 물가와 비교가 안되는 가격이었다. 도로 양쪽으로 계속해서 공단과 연구소들이 이어진다. 텐진은 동북 최대의 항구이며 베이징은 중국의 심장이자 ‘황도’이다. 두 도시가 친밀해야 하는 까닭이 여기 있다. “베이징이 결정하면 텐진이 한다.” 아주 잘 현대 중국 경제를 표현한 말이다. 대표적인 것이 베이징에 자동차를 공급하던 텐진자동차가 드디어 미국 시장을 두드린 것이다. 베이징 정부는 자동차 산업은 중국의 미래 산업으로 설정하고 강력하게 발전을 견인해 왔다. 여기 고속도로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텐진자동차의 샤리는 미국 자동차 유통업체인 ANNH사와 앞으로 5년 동안 2만 5천대를 미국에 수출키로 했다. 수출 모델은 배기량 1천~1천3백급으로 대당 판매가가 평균 1만달러이며, 주로 미국의 저소득층이 주 타겟이다. 마치 20년 전 우리가 포니를 판매하던 때와 비슷하지 않은가? 그 때 고 정주영 씨 뿐 아니라 고 박정희 대통령도 감격했다던데, 수출 중심의 고강도 경제정책이 낳은 산물이 이곳 텐진에서도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베이징에 들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거리의 모습을 봤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은 천안문에 걸린 마오저뚱의 초상화뿐인 듯 했다. 사람들의 옷차림도 달라지고, 표현하는 방식도 달라진다. 돌아오는 길은 이미 깜깜한 밤이었다. 하지만 경진당 고속도로에서 본 공단의 불빛은 꺼지지 않고 있었다. |
<출처 : 중국여행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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