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행 지 : 금남정맥 05차(물한이재~양정고개)산 행 일 : 2012. 03. 10.(토) 산행코스 : 물한이재 ~ 곰치재 ~ 덕목재 ~ 깃대봉 ~ 함박봉 ~ 황룡재 ~ 천호산 ~ 천마산 ~양정고개 (산행거리 17km, 7시간 20분)
산행참가 : 21명.
<산행지도> 
지난 대둔산 구간 산행에서는 예정했던 수락재까지의 산행을 마치지 못하고, 많은 적설로 마천대에서 수락재까지의 암릉 산행을 계속하기 어렵다고 판단하여 마천대에서 수락리 주차장으로 하산하였다. 지난번에 못다 한 일부 구간을 금번 산행 구간에 넣기에는 무리인듯하여, 금번 구간의 5km 정도를 때어서 별도의 한 구간을 더 만들어 단풍철에 대둔산을 다시 찾기로 하고, 이번에는 물한이재에서 금남정맥을 이어가기로 한다. 지난번에 13시간이 넘는 산행을 해서 그런지, 이번에는 버스에 빈자리가 듬성듬성한 가운데 산행하기 적당한 인원이 탑승하였다. 이번 산행은 둘레길 수준이라고 해서 흥미를 잃어서 그런지, 아니면 지난번보다 인원이 적어서 그런지, 조금은 여유로운 분위기를 싣고 버스는 양재를 출발하여 논산시 물한이재에 새벽 두시쯤에 도착, 버스에서 두 시간 넘게 선잠을 청한 후 산행 준비를 한다.
물한이재에 도착하여, 버스에서 두 시간 넘게 선잠을 자고 일어나 산행 준비를 한다. 
물한이재(278m)는 충남 논산시 양촌면 반한리와 벌곡면 덕곡리를 이어주는 고개로, 2009년도에 완공된 물한재 터널이 있다. 말이 터널이지 실재 용도는 동물이동통로로 만들어진 듯하다. 음력으로 오늘이 3월 18일로 보름을 조금 지나서 그런지, 거의 보름달처럼 커다란 달이 물한이재 위로 높다랗게 걸려 있다. 물한이재 터널 우측의 사면 들머리로 들어서며 산행을 시작한다. 
약간 가파른 오름길을 15분 정도 오르면 물한산에 도착한다.
지도에는 그저 365봉으로 표시되어 있는데, 정상에는 '물한산'이란 표지판이 걸려 있다. 
물한산을 지나자마자 처음에는 자연석인 듯 보였으나, 가까이 보니 사람이 만들어 놓은 돌탑을 지난다. 
352봉인 듯한 봉우리를 있는 듯 없는 듯 지나치고, 
좌전방으로 밝은 달빛 아래 어슴프레 형체를 드러내는 산 능선이 산객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평탄한 능선길에 이어 짧은 암릉도 통과하여 오르니, 
조그만 봉우리를 지나게 되고, 
우측으로 느닷없이 논산 검천리 산들을 휘감아 도는 임도가 나타나는데, 이곳이 아마도 곰치재인 듯하다. 
임도에서 약간 가파른 오름길을 오르면 355봉을 지나게 되고, 
비교적 가파른 내림길을 내려서면 갑자기 시야가 트이는 벌목지대가 나타나는데, 68번 지방도가 지나는 덕목재가 내려다 보인다. 
덕목재로 향하는 백두들. 
좌전방으로 호남고속도로가 내려다 보이고, 건너편으로 이어진 금남능선도 가늠된다. 
덕목재를 지나는 호남고속도로 절개지 상단에 도착하여, 철계단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서 호남고속도로를 무단횡단하는 것은 너무 위험한 듯하여, 선답자들이 갔던 굴다리 통과 방식으로 진행키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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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개지 상단부에서 잠시 후미를 기다려,
우측 절개지 사면길을 따라 내려간다. 
돌아본 355봉 방향의 금남능선. 
호남고속도로 건너편으로 보이는 덕목리 버스정류장으로 가기 위해, 
선답자들이 만들어 놓은 오솔길이 가냘퍼 보이고, 
호남고속도로를 따라 대전 방향으로 잠시 진행하면, 
호남고속도로 아래로 통과하는 지하수로가 나타나고, 
비록 우리가 물(水)은 아니지만 안전하게 고속도를 통과하기 위해 체면 불고하고 지하수로로 진입한다. 
다행히 물이 거의 없어서 진행에 별무 어려움을 느끼지 않고 통과한다. 
지하수로를 통과하여 좌틀하여 수로 옆 68번 지방도로로 오른다. 
68번 지방도를 따라 100여 미터 이동하면, 
덕목리 버스정류장 앞에 도착하여 잠시 전열을 정비한다. 
덕목재(140m)는 충남 논산시 양촌면 산직리와 벌곡면 덕목리의 경계로, 호남고속도로와 68번 지방도가 지나는 곳이다. 덕목재에서 잠시 쉼을 하며 랜턴을 갈무리하고는, 깃대봉을 향해 들머리로 들어선다. 
잠시 전에 지났던 덕목재 건너편 절개지 상단이 건너다 보인다. 
벌목 후 방치한 나무둥치로 인해 등로가 막혀서 한참 동안 길을 뚫느라 고생하며 종아리에 부상까지 입는다. 벌목을 했으면 빨리빨리 치워야 산불의 위험도 낮출 수 있을 텐데... 
고속도로 옆 조그만 마을인 덕목리는 산 언저리에 무량사라는 사찰이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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짓다만 노인요양원인 듯 보이는 건물이 나타나고, 절개지를 지나 공사장을 통과하는데 인기척은 없다. 다만 입구 쪽에서 강아지들이 요란하게 반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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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도 건너편 깃대봉을 향한 숲길 들머리로 들어선다. 
요양원 뒤편 공사장을 가로지르는 백두들. 
깃대봉을 향한 오름길이 비교적 가파르게 이어지다가, 깃대봉 직전쯤에서 성터의 흔적으로 보이는 돌무더기가 나타난다. 이곳은 삼국시대에는 신라와 백제의 치열했던 전쟁터였으며, 그 후에는 후백제와 개국 직전 고려 왕건과의 치열했던 전쟁터이기도 했던 곳이다. 
깃대봉 도착. 
<깃대봉(394.1m)> 논산시 벌곡면(신양리, 덕목리)에 있는 산으로, 황산벌 전투 당시 주요 산성이 있었던 곳이라 현재에도 무너진 성터가 사면에 방치되어 있다. 정맥산행 중에 백운산이나 국사봉만큼이나 자주 만나는 '깃대봉'은 거의 대부분이 일제시대 때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자본 수탈을 하기 위해 측량을 하면서 깃대를 꽂아놓은 곳이라 해서 깃대봉이라 부르게 된 봉우리다.
함박산에서 아침식사를 예정했으나, 누군가의 "밥 먹고 갑시다"라는 외침에 따라 깃대봉 정상에서 식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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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대봉 정상에서 아침식사를 마치고 함박봉을 향한다. 덕목재 이후부터는 아래와 같은 표지판이 계룡시까지 이어져 있어서 알바는 하고 싶어도 못할 듯..ㅋㅋ 
처음으로 송전탑이 나타나는데, 이 송전선로는 금남능선을 따라 이어져 계룡시까지 함께하게 된다. 
금남정맥 능선 우측으로 지나는 임도를 만나는데, 임도에는 "이곳은 개인 사유지로 약초와 버섯 등을 심어놨으니 들어오지 말라.."는 경고판이 있다. 하지만 들어가야 하는데 어쩌지유...ㅋㅋ 
함박봉 오름길에 급경사?라고 밧줄까지 매어 놓았다. 
함박봉 정상 도착. 
<함박봉(404m)> 충남 논산시 벌곡면 한삼천리와 연산면 신양리의 경계 능선에 있는 봉우리로, 정상에는 산불감시초소와 이동통신 중계 기지국이 있고, 페러글라이딩 활공장이 조성되어 있다. 산 아래로는 삼국시대 때 망해가는 백제를 구하기 위해 5,000의 결사대를 이끌고 5만의 신라 군대를 맞선 백제의 마지막 장수 계백의 한이 서린 황산벌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고, 논산. 강경까지 조망되는 훌륭한 조망처라 했는데, 지금은 뿌연 연무에 가려서 짐작만 할 뿐이다. 천호봉 남쪽의 최고봉이며 서쪽의 산록에는 연산미륵이라고 불리는 고려 말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약 4.5m 높이의 입석 불상이 노송에 둘러져 있다.
이곳에서 금남정맥은 좌측 내림길 능선으로 이어지는데, 무심코 저 통신탑 뒤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 진행하면 대형 알바를 하게 된다고 한다. 
황산벌은 연무에 가려 있고, 
속속 도착하는 백두들 뒤로 지나온 금남정맥의 봉우리들이 이어져 있다. 
황산벌의 농로가 시멘트로 포장되어 있어서 도드라져 보인다. 
패러글라이딩을 하다가 동료들을 슬프게 하는 일도 왕왕 생겼던 듯하다. 
함박봉 전경. 
황산벌을 내려다보며 함박봉 정상 증명을 남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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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박봉에서 좌측 내림길 능선을 따라 황령재로 향한다. 
호젓한 산길에 벤치도 보이더니,  우측으로 기독교계 연수원인 삼천리 연수원이 나타나고, 
이내 황산벌 전적지 안내판이 있는 황령재가 내려다 보이더니, 
황령재(黃嶺재)에 도착한다. 
<황령재(黃嶺재)> 충청남도 논산시(論山市) 연산면(連山面) 신암리(莘岩里)와 벌곡면(伐谷面) 한삼천리(汗三川里)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2차선의 690번 지방도가 지난다. 고갯마루에는 황산벌전투 안내판이 있다.
황산벌 전적지 안내판을 읽고 있는 백두들. 
<황산벌 전투(黃山伐戰鬪) 안내판> 황산벌 전투는 660년(태종 무열왕 7년)에 있었던 신라와 백제 사이의 큰 전투로, 황산벌은 지금의 충청남도 연산지방이다. 7세기 중반 신라는 백제와 고구려의 압력이 가중되자 당(唐)과의 외교관계를 강화했고, 당 역시 여러 차례의 고구려 원정에서 실패하자 백제를 선제공격하기로 당과 신라 사이에 군사동맹을 체결한다. 그리하여 660년 3월 당 고종은 소정방(蘇定方)을 시켜 13만 명의 군사를 이끌고 산둥(山東)반도를 출발하여 백제를 공격하게 했다. 이에 호응하여 신라 무열왕은 그해 5월에 김유신장군과 함께 군사를 이끌고 경주를 출발하여 6월 18일 남천정(南川停, 지금의 이천)에 머물렀다. 그리고 태자 법민(法敏)을 보내 병선 100여 척을 거느리고 덕물도(德物島, 지금의 덕적도)에 가서 소정방을 맞이하게 했다. 이때 당군과 신라군은 백제의 수도인 사비에서 합세하여 공격할 계획을 정했다. 태자가 돌아오자 무열왕은 대장군 김유신과 장군 품일(品日)·흠춘(欽春)등과 함께 정예 군사 5만 명을 거느리고 사비성(지금의 부여)으로 향한다. 당시 백제 조정에서는 방비책을 강구하던 중, 당군은 백강(지금의 금강)에 상륙하지 못하게 하고, 신라군은 탄현(지금의 충남 대덕)을 넘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흥수(興首)의 견해를 묵살했다. 그리하여 백제군은 백강에 상륙한 당군에게 대패했고, 신라군은 이미 탄현을 넘어 황산벌로 진군했다. 의자왕은 계백(階伯)에게 5,000명의 결사대를 주어 이를 막게 했다. 계백은 가족을 죽인 뒤 비장한 각오로 출전하여 황산벌에 먼저 도착하고 세 곳에 진영을 설치했다. 신라군도 군사를 3갈래로 나누어 4번을 싸웠으나 이기지 못했고 군사들은 지쳤다. 이때 신라의 장군인 흠춘이 아들 반굴(盤屈)을 적진으로 보내 힘껏 싸우다 죽게 했다. 그러자 장군 품일 역시 아들 관창(官昌)을 내보내 단신으로 적진에 뛰어들게 하여 결국 죽게 했다. 반굴·관창의 용감한 모습에 감격한 신라군은 죽음을 각오하고 진격하여 크게 승리했고, 백제군은 중과부적으로 대패하여 계백이 전사했고 좌평(佐平)·충상(忠常)·상영(常永) 등 20여 명이 사로잡혔다. 황산벌 전투가 벌판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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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령재(黃嶺재)) 충청남도 논산시(論山市) 연산면(連山面) 신암리(莘岩里)와 벌곡면(伐谷面) 한삼천리(汗三川里)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2차선의 690번 지방도 지나는 곳이다. 황령재란 신암리 황령 마을의 이름을 따서 황령재라고 부르는 듯하며, 백제의 마지막 한을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황령재 날머리에서 천호산 방향 들머리를 찾아 고개를 넘어 동쪽으로 이동한다. 
황령재 우측 벌곡면 방향으로 50m 내려가다 좌측 들머리로 들어서서 오르면, 
황령재 건너편으로 연수원 건물도 보이는데, 교도소 선교를 전문으로 하는 선교사들을 훈련시키는 곳이라 한다.
312봉을 향해 호젓한 소나무 숲길을 걷다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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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젓한 산길에 취해 312봉을 지나고, 
능선 갈림길 봉우리에 새워진 팔각정에 도착한다. 
팔각정에서 뿌연 연무에 가린 주변 조망은 제쳐두고, 과일과 사탕 등으로 편안한 쉼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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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목재를 지난다. 
대목재는 충남 논산시 벌곡면 대목리에 있는 고개로, 지금은 인적이 드문 탓인지 등로가 뚜렷하지 않지만 예전에는 중요한 고개였던 듯 싶다. 좌측에서 총소리가 가끔씩 들려와 의아해했는데, 이정표에 사격장 표시가 되어 있다.
조그만 봉우리에 올라, 가야 할 금남정맥의 봉우리들을 배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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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엔돌핀'이란 단어가 한창 유행할 때 설치한 듯한데..ㅉㅉ 
양지서당 갈림길을 지나고, 
인근 지도를 보니 서원과 향교 등이 눈에 뜨이는 것으로 보아, 논산도 유교와 관련이 많은 고장임을 짐작케 한다. 예학의 대가인 사계 김장생과 그의 아들 신독재 김집, 우암 송시열, 명재 윤증 등 조선의 정치와 정신문화를 이끌었던 분들이 이곳 논산에서 태어나 이 지역을 중심으로 강학을 펼치며 활동했다. 그래서 논산에는 서원이 많다. 돈암서원은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훼손되지 않고 살아남은 47개 서원 중 하나이고, 조선 헌종 13년(1672년)에 건립된 노강서원은 윤황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고 지방민의 유학 교육을 위하여 세운 서원이다. 화악리 갈림길을 지난다. 
업다운이 별로 없는 호젓한 등로가 마치 여느 공원의 산책길처럼 편안하게 이어진다. 다만 좌측에서 차량 소리와 함께 가끔씩 들려오는 기차소리가 멀지 않은 곳에 1번 국도와 호남선 철로가 지나고 있음을 짐작케 한다. 안개가 없었으면 한적한 전원풍경을 내려다보며 산행을 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더한다. 그렇게 편안히 걷다 보니, 어느새 천호산에 도착한다. 
<천호산(天護山, 311m)> 충남 논산시 연산면 천호리에 위치한 산으로, 원래의 이름은 '황산'이었다고 한다. 황산의 우리말 표기는 ‘늘뫼’로 논산의 시명과 같은 것이었는데, 고려 태조가 후백제 견훤의 세력을 이곳에서 마지막으로 축출하고 난 다음, 하늘이 고려를 보호한다는 의미로 천호봉이라 개명하였다 한다. 천호산은 수많은 봉우리가 병풍처럼 펼쳐있는 산으로, 등산로가 능선과 흙길로 연결되어 있어 누구나 편안하게 등산할 수 있으며, 각 봉우리에서 내려다 보이는 탑정저수지와 계백장군 5천 결사대의 구국정신이 깃든 황산벌 일대 전망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우리의 마음을 엄숙하게 한다.
천호산 이정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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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봉(峰)이 아닌 산(山)이라는데, 증명사진은 한 장 남겨야! 
오늘따라 더욱 유유자적한 후미팀들도 증거를 남긴다. 
개태사 갈림길을 지난다. 
<개태사(開泰寺)> 충남 논산시 연산면 천호리(天護山)에 있는 사찰로, 이규보의「개태사 조전원문」에 의하면 고려 태조 19년에 왕건이 후백제를 평정하고 이곳에 국찰로 창건토록 한 국립 개국사찰이다. 전쟁이 끝나고 나라가 안정되어감에 따라 왕이 명하여 개태사를 창건토록 하였는데, 이는 태조가 전쟁을 하면서도 백성이 생업을 유지하게 하며, 나라를 세웠음은 부처님과 산신의 도움이라 생각하고 절을 창건 개태사라 불렀다. 이 일대는 백제의 계백장군과 신라의 김유신장군이 전투를 벌였던 곳에 가깝고, 고금을 통해서도 군사, 교통상의 요지로서 사찰 주변에는 6km에 달하는 토성이 있었고, 승병이 주둔하여 사찰을 수비하였다. 개태사에는 동시대의 철확(가마솥, 충남 민속자료 제1호)과 삼존석불상(보물 제219호)이 봉안되어 있다.
뒤따르던 모모님께서 "개태사"라는 표지판을 보더니, 옛날 여고시절 이쪽으로 여행하면서 있었던 예기를 들려주는데... 머~언 옛날 호기심 많던 여고시절, 친구들과 함께 호남선을 타고 가면서 역에 도착할 때마다 역명으로 시를 짓기로 했다. 마침 개태사역에 도착하여 지은 싯구가 "개 개가, 태 태어나자마자, 사 사망한 곳"이라고 지었는데 모두들 배꼽을 잡았다고 한다. 불자들은 개를 내세에 태어날 분신으로 여기는데, 태어나자마자 죽었으니 그곳에 절을 지어 위로했을 법도 하다..ㅋㅋ
이번에는 수복동 갈림길이란다. 
그렇게 이런저런 예기들을 나누는 사이에, 호젓한 산길은 아쉽게도 자꾸만 줄어져 간다. 
농소리, 개태사 갈림길을 지난다. 
304봉에 도착하는데, 이 부근은 안부와 봉우리나 별반 차이를 거의 느끼지 못한다. 
돌아본 천호산 방향 능선. 
갑자기 앞쪽으로 시야가 트이며 안부가 나타나는데, 논산시 연산면 천호리와 계룡시 두마면 농소리를 잇는 고개인 듯하다. 
농로를 만나는데, 지명은 없고 금남정맥 방향표시만 되어 있다. 
지나온 농로 모습. 
농로를 따르다가 패가 옆 숲으로 이어진 등로를 잠시 따르면, 또 임도가 나타나며 이정표에는 농소리 방향 갈림길 표지가 되어 있다. 
임도를 건너 잠시 오르면 편안한 능선에 이르게 되고, 
이내 두리봉(273m)에 도착하는데, 이름이 붙은 봉우리지만 주변의 능선과 별반 구분이 되지 않는다. 
천마산 직전 안부쯤에 '능선종점'이란 표지판이 세워져 있는데, 능선 종점이 무슨 의미인지 쉽게 짐작이 가지 않는다. 
천마산(天馬山, 287m) 정상 도착. 계룡시를 감싸 안고 있으며 전망이 좋다고 하는데..ㅉ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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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온 금남정맥 봉우리들도 연무에 싸여 구분이 잘 되지 않는다. 
정자가 멀지 않은 곳에 있다기에, 정자에서 편히 쉴 요량으로 천마정을 향한다. 
잠시 내려가는가 싶더니, 
이내 안부를 지나고, 
우측으로 조망이 트이며 신성아파트가 조망된다. 
봉우리도 아닌 듯한데, 사치스러워 보이기까지 하는 삼각점이 있고.. 
이내 금이 갔다고 하여 이름 지어진 금바위가 있는 천마정에 도착한다. 
천마정 앞에는 금바위의 유래가 적인 표지판이 있다. 
<금바위(金岩)> 계룡시 두마면 금암리에 금암이라고 부르는 바위가 있는데, 옛날에는 연산군 두마면에 속하는 지역이었다. 금암리 천마산 중턱에 집채만한 바위가 있는데 큰 바위가 한가운데를 칼로 갈라놓은 것과 같이 잘려 있는데 이 바위에 대한 전설이 있다. 때는 고려 중엽, 외세의 수차에 걸친 침략으로 국가기강이 혼란한 틈을 타서 승려들까지 난동을 부리는 일도 있었다. 연산군 천호리에서 고려 태조 왕건은 백제 신검을 하늘의 도움을 받아 물리치고 고려를 창건 함에 따라, 고결의 국운을 크게 연다는 뜻의 개태사라는 절을 지어 차후 승리의 기념과 국운 융창을 빌게 하고, 삼남지방 유사시 병력으로 활용하기 위해 개태사에 수천 명의 승려를 두었다. 국력은 날로 어지러워지고 개타사 절의 세력이 강성해져 국가의 명령에 복종치 않고 승려들이 작당하여 인근 촌가를 습격 약탈하고 부녀자까지도 겁탈하는 횡포가 날로 심하였다. 이를 보다 못해 관군이 출동하여 바로 잡고자 하였으나 오히려 패하고, 할 수 없이 이 사실을 나라에 상소하니 왕이 이를 바로 잡고자 수차 관군으로 이 절을 치게 하였으나 관군도 패하기만 하고 승려들은 더욱 강성해져 횡포가 더욱 심하였다. 개태사 절의 횡포로 인근 주민들이 살 수가 없게 되니, 왕께서 크게 근심하여 개태사를 칠 계획을 논의하게 되었다. 이때 한 장수가 지원하였는데, 그 장수는 최일 장군이었다. 최일 장군은 왕명을 받아 군사를 거느리고 연산 개태사에 도달하여 진영을 정비하고 개태사를 부근에 이르러보니 안개가 자욱하여 싸움을 할 수가 없었다. 이에 최일 장군은 하는 수 없이 퇴각하여 30여리 떨어진 노성 방면에 진을 치고 부하 몇 사람을 데리고 개태사 뒷산에 올라 이 절의 동정을 살폈으나, 안개로 인하여 절의 사정을 파악할 수 없어 최일 장군은 이 사실을 왕에게 상소하였다. 어느 날 최일장군이 말을 타고 개태사를 향하여 가던 중에, 때는 산에는 꽃이 피고 나비가 나는 따스한 봄날이라 논과 밭에서는 농부들이 일을 하고 있었다. 금암리 앞에 이르니 한 농부가 검은 암소로 논을 갈면서 이 놈의 미련한 소야! 최일 장군만큼이나 미련하고 어두운 소이구나 하며 논을 갈고 있었다. 이 소리를 들은 최일 장군은 말에서 내려 논을 가는 농부에게 물었다. 여보시오. 내가 바로 최일장군인데 어찌해서 소를 보며 나같이 미련하다고 합니까 하니, 농부는 깜짝 놀라며 아 당신이 최일 장군이십니까? 미안합니다. 장군께서는 아무리 개태사를 치려고 하나 저 천마산 중턱에 있는 암소바위가 개태사를 보호하고 있어 이 절을 치려하면 안개가 끼게 하여 절을 보호하니 암소바위를 칼로 내려친 다음 개태사를 치면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라 하였다. 말을 마친 농부는 온데간데가 없이 사라졌다. 최일 장군은 신의 가르침이라 생각하고 마음으로 감사한 후, 금암리 천마산 암소바위에 올라기니 과연 집채만한 바위가 있었다. 최일 장군은 장검을 빼어 암소바위 한복판을 내려치니 바위가 갈라지면서 피가 주르르 흘렀다. 최일 장군은 구대를 휘동하여 개태사에 이르니, 거짓말처럼 연일 끼어있던 안개가 걷히고 있었다. 최일 장군은 일경에 개태사절 승려들을 토벌하여 인근 주민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게 하였다. 이 암소바위 뒤 탕건바위 있는 곳에 하(河)씨들이 피난하였다는 바위굴도 있으며, 용이 바위 뒤를 통과하였다는 용의 흔적도 있고, 사람의 시신처럼 보인다 하여 송장바위라고 부르는 바위도 있다. 이와같이 여러 가지 바위들이 있다 하여「금암(金岩)」이라 부르고「금바위」라고도 부른다.
금바위 위에서 담소를 즐기며 후미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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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쪽으로 연무에 싸인 계룡시도 조망되며 계룡산 주능선 조망도 훌륭하다는데, 안개로 볼 수는 없고, 
천마정을 뒤로하고 양정고개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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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점이 있는 248봉에 도착한다. 
248봉에서도 내려다 보이는 계룡시 뒤편으로 계룡산이 보여야 하는데..ㅉㅉ 
<조선 태조 이성계가 신 도읍지로 꼽은 천하명당 - 계룡시> 신도안은 이성계가 조선을 세우고 이곳을 수도로 삼으려 했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성계의 뜻이 펼쳐지지 못한 이유는, 이곳이 ‘정씨의 도읍지’라는 도참설 때문인 것으로 알려진다. 이 때문에 새로이 도읍지를 세우려 했던 이성계는 왕궁을 짓는 공사를 그만두고 지금의 서울로 옮겨갔다고 전해진다. 뱃길과 다른 교통이 불편하여 도읍으로 적당치 않다는 무학대사의 말을 듣고 그만두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때에 왕궁을 세우던 공사가 진행되었음을 입증하는 왕궁 초석 105개가 지금도 곳곳에 남아 있다. 전체 면적의 67.5%가 임야인 계룡시는 동쪽으로는 대전 유성구, 서쪽은 논산 상월면과 연산면, 남쪽은 논산 벌곡면, 북쪽은 공주 반포면과 접해 있다. 서쪽으로는 국사봉, 향적산, 북쪽으로는 신라 5악(五嶽)의 하나로 꼽힌 계룡산(鷄龍山)과 잇닿아 있다. 삼한 때는 마한에, 백제 때는 황등야산군(黃等也山郡)에 속하다가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면서 황산군(黃山郡) 소속이 되었다. 고려시대에는 연산현(連山縣)과 공주목(公州牧)에 부속되었고, 조선시대에도 역시 연산현에 속하다가 1895년(고종 32년) 연산군을 거쳐 1914년 두마면(豆磨面)으로 이름이 바뀌어 논산군에 편입됐다. 계룡시만 조망하고는 양정고개를 향한다. 
양정고개에 도착한다. 
<양정고개(羊丁峙, 110m)> 계룡시 두마면 엄사리에 「양정고개」라는 고개가 있다. 옛날 어느 해에 가뭄이 극심하여 백성들은 먹을 것이 없어 아우성이었는데, 조정에서는 중신들이 나라 일을 돌보지 않고 서로 모함을 해가며 권력을 잡기 위한 싸움이 그치질 않고 계속되니 백성들의 원성은 더욱 높아만 갔다. 이때 경상도에 사는 한 선비가 있었다. 그는 열심히 글을 읽어 크게 출세할 것을 결심하고 노력하였는데, 세상일 돌아가는 것을 보고 책을 팽개친 채 출세할 것을 포기하고 유람길에 나섰다. 그는 여기저기 발길 닿는 대로 다니면서 세상을 살폈다. 농부들은 먹을 것이 없어 저렇게 굶주리고 있는데 아직도 조정에서는 싸움질뿐이니 걱정이로구나. 한탄하면서 이거 나라에 무슨 정변이라도 일어나야 백성들이 살지, 큰일이구나. 하면서 걱정을 하였다. 그가 금강산에 도착하였다. 이곳에 와서 보니 딴 세상 같았다. 차라리 이곳에서 평생 동안 세상을 등지고 살고 싶었다. 그는 한 절간에 머무르면서 며칠간을 쉬다가 하루는 꿈을 꾸게 되었다. 꿈속에서 한 장수가 나타나더니 그래 쓸만한 놈들은 세상을 피하여 산속에 처박혀 있고 몹쓸 놈들은 임금님 옆에서 서로 제가 잘났다고 야단들이니, "허참 세상 잘 돌아가는구나"하고 한숨을 내쉬며 탄식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장수 앞에 나가 앉으며 대체 당신은 누구요? 누구시온데 저에게 그런 말씀을.. 하고 물었다. 그 장수는 나는 충청도 사는 장수인데 당신을 계속 따라다니고 있소. 당신은 여기 있을 사람이 못되니 어서 빨리 충청도에 있는 계룡산으로 가시오. 그때 내가 말하리다 하고는 사라졌다. 그는 꿈에서 깨어나 생각해보니 이상한 일이었다. 그러나 꿈속에 나타났던 그 장수는 아무래도 이 어지러운 세상을 차마 볼 수 없어 나에게 어떤 깨우침을 주려는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그 이튿날 날이 밝자 여장을 차리고 충청도 계룡산으로 갔다. 충청도에 들어서서 지금의 두계 고을에 다다르자 밤이 어두워졌다. 피곤한 여독을 풀기 위하여 그 근처에 있는 주막집에서 하루 저녁을 유숙하는데 꿈속에 먼저 나타났던 그 장수가 또 나타났다. 잘 왔소. 그런데 이것 참 큰일이오. 이 혼란한 세상을 바로 잡으려면 꼭 정씨가 나와야 하는데 나오질 않고 있고, 그것도 정씨 한 사람이 아니라 정씨 여덟 사람이 나와서 이 세상을 평정해 놓고, 그 여덟 사람 중 두 사람이 싸우다가 한 사람이 죽어야만 이 나라가 평온해지는데, 여덟 사람의 정씨도 아직 나오지 않았으니 참으로 큰일이요. 근심스러워하면서 말하였다. 그렇다면 그 여덟 사람의 정씨가 어디 사는 누구인지 알고 있오? 하고 그 선비가 묻자, 그걸 알면 내가 왜 이런 고생을 하겠소, 누구인지 한 사람도 모르오. 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왜 나를 여기로 오라고 했소? 하며 선비는 장수에게 다그쳐 물었다. 그야 당신은 정씨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요. 단 한가지 알려 드리리다. 정씨 두 사람이 나타날 때에는 금강 물줄기가 변하여 논산 강경으로 흐르게 될 것이요. 웅진 땅 계룡산 밑을 흘러서 말이요. 하면, 나는 어찌하란 말이요? 하고는 그 장수는 또 어디로 인지 사라졌다. 꿈에서 깨어난 선비는 참으로 이상한 꿈이로다. 한번도 아닌 두번씩이나 나타난 그 장수는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하며 생각해 보아도 알 도리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온다는 정씨는 과연 언제 나타난다는 것이냐, 생각하면 할수록 더욱 알 수 없는 일들 뿐이었다. 그 선비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 주위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신도안에 정씨가 도읍한다면 틀림없이 이 고개야말로 정씨가 나타날 고개일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이곳에서 묵으며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정씨는 나타나지 않고 이제는 노잣돈까지 떨어져서 아주 이 고개 아래에 뗏집을 짓고 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는 갖은 고생을 다하면서 희망을 잃지 않고 어렵게 살아가고 있었다. 날이 갈수록 백성들의 생황은 어려움이 더해갔지만 나라를 구한다는 여덟 정씨의 모습은 좀처럼 나타날 줄 몰랐다. 그래도 그는 기다렸다. 꿈에 나타났던 그 장수가 거짓말을 할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세월은 흘러 그는 이제 늙어서 허리는 꼬부라지고 머리는 백발이 되었다. 그래도 그는 죽는 날까지 이곳에서 기다리기로 하였다. 어느 날 그 선비는 자기가 며칠 안 가서 죽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가끔 들리는 초동들에게 기다림에 대한 사연을 들려주고 내가 죽은 후라도 정씨가 나타나면 내가 기다리다 늙어 죽었다고 꼭 전해주기 바란다. 고 했다. 그리고 그 선비는 숨을 거두었다. 사람들은 양정고개에서 정씨 두 사람이 나타나서 왕관을 놓고 싸워야 할 고개라고 전하며 기다리다 지친 어느 선비의 한이 맺힌 고개라고도 한다. 양정고개에 세워진 천마.천호산 등산 안내도. 
이곳부터 금남정맥은 계룡시내를 통과하여 계룡산 방향 들머리인 음절까지 1km 정도 이어지게 된다. 
계룡시내 구간은 버스로 이동하는 게..ㅋㅋ 
다음 구간 들머리 근처에 있는, 자칭 대한민국 최고의 사우나라는 목욕탕으로 이동하여, 느긋하게 못다 흘린 땀을 흘리고?..ㅋ 
목욕탕 옆 토담이라는 오리고기 전문점으로 이동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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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둘레길처럼 편안했던 금남정맥 산행을 정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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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로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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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남정맥을 시작하여 처음으로 조금 여유로운 산행을 즐겼던 듯하다. 행복한 하루하루 보내시고 다음 산행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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