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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스펜션
Panther는 3호 전차에서 실용화되고 Tiger-I/II에도 도입된 금속제 봉의 탄성을 이용한 토션바 방식의 현가장치를 채용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전차가 보기륜당 하나의 토션바를 이용하는데 비해 Panther는 상하 가동폭을 넓히기 위해 보기륜 1조당 2개의 토션바를 사용하는 더블 토션바를 사용하는 더블 토션바 방식을 채용한 것이 특징이다. 이 방식은 보기륜의 상하 가동폭 510mm을 가능케 하였으며 진동을 억제하는 효과도 있었다. 그 결과 정지 사격시 조준기로 목표를 신속하게 포착할수 있었고 속도 향상에도 공헌하는 등 당시로서는 가장 우수한 방식이었다고 할수 있다. 그러나 구조가 복잡하여 교환이나 수리가 어려워 결국 Panther 이외에는 적용되지 않았다.
제2/7 보기륜에 해당하는 서스펜션에는 쇽업서버가 장비되어 있다. 이것은 시제차량이 제1/8 보기륜에 장비되었던 것에 비하면 효율이 떨어지지만 다중식 보기륜으로 인해 장비할 공간이 없어 제2/7 보기륜의 차내측에 장비되는 결과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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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ther에 채용된 더블 토션바의
배치도 |
그러나 G형 부터는 이 속업소버가 없어도 주행성능이 그리 영향이 없다는 결론에 따라 폐지되고 만다.
보기륜은 다중배열 방식을 취하고 있는데 이것은 표면접지압을 균등하게 하기 위함으로서 다음과 같은 장점이 있다.
1)각 보기륜의 간격이 사실상 없어져 트랙에 대한 접지압이 균등해진다.
2)보기륜의 사이즈가 커져 야지 주행시 보기륜의 상하이동이 무리없이 행해진다.
3)고무 타이어에 가해지는 압력이 작아 고무소모를 억제시킬수 있다.
하지만 교환과 정비에서는 상당한 시간을 요하게 된다는 단점이 있고 특히 동기에는 보기륜 사이에 진흙 등이 낀 뒤 얼어 붙어 움직이지 못하는 경우도 속출했다. 결국 이 방식은 전쟁후 세계 어느 전차에도 채용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득보다 실이 많았던 것으로 추정할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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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무 타이어식 보기륜(왼쪽)와 스틸 보기륜(오른쪽) 단면도 |
보기륜은 직경 860mm로 독일 전차 중 가장 큰 사이즈를 가지고 있다. 보기륜 주위에는 솔리드 고무 타이어가 장착되고 주행시 진동으로 고무 타이어가 벗겨지지 않도록 24개의 볼트로 고정되어 있다.
한편 고무자원 절약의 일환으로 Tiger-I 후기형이나 Tiger-II, Panther-II 등에서 사용된 고무 내장식 800mm 직경 철제 보기륜도 일부 적용되었다. 하지만 전쟁 종결 당시에도 구무 타이어가 붙은 표준형 보기륜의 재고는 많이 있었으므로 실제 철제 보기륜이 장비된 것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았다.
한편 기동륜의 바로 안쪽에 작은 휠이 장비되고 있는데, 트랙의 떨림을 조정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아이들러 휠은 직경 650mm, G형의 생산도중 보다 간략화된 형식으로 변경되었다.
트랙은 리처사가 개발한 것으로 독일전차의 표준이라고 할수 있는 싱글핀, 싱글 블록 방식의 주조제이다. 제식명칭은 Kgs64/660/150이며, 여기서 K는 주행용 트랙, g는 합금을 이용한 강제, s는 드라이브 핀 형식을 나타내고 있다. 뒤의 숫자는 순서대로 트랙의 형태, 폭, 피치를 나타낸다. 트랙은 한쪽 86매가 표준이었으며 아이들러 휠의 위치를 조정하여 텐션조정을 하게 되어 있다. 미끄럼 방지무늬는 당초 요철 모양에서 A형 부터는 入 무늬의 것이 채용되었다. 그리고 A형의 생산도중 동기 미끄럼 방지 기구를 장착할수 있도록 되어 트랙 5매 또는 7매마다 장착하였고, 이때에는 시속 15km 이하로만 주행해야 했다.
무장
Panther의 주포는 라인메탈사가 개발한 70구경 75mm 전차포 KwK42가 사용된다. 이 주포는 1941년 7월 18일 자의 개발요구에 따라 거리 1,000m에서 140mm의 관통력을 가지도록 하라는 요구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다른 전차의 주포들이 20mm 기관포, 24구경 75mm 단포신 전차로를 제외하고는 모두 대전차포를 베이스로 만들어진 것에 비해 이 전차포는 개발 당초부터 순수 전차 탑재목적으로만 만들어진 것이 특징이다.
라인메탈사는 처음에는 60구경을 채용하였지만 기술적 검증을 거쳐 70구경으로 포신길이를 연장하였고 1942년 6월에 인도될 예정이었지만 포탑이 완성된 것이 9월 16일, 그리고 포신의 장비가 각종 의장품의 장비로 완전히 완성된 포납을 MAN에 보낸 것은 10에 들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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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형의 주포 탄약고 배치면도 |
KwK42는 당시 Tiger-Idl 장비한 88mm KwK와 함께 최강의 전차포였다. Pzgr39/42 철갑탄(탄약중량 14.3kg, 탄환중량 6.8kg, 포구 초속 925m/초)을 사용할 경우 1,000m에서 111mm, 2,000m에서 89mm의 관통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탄두에 텅스텐 탄심을 적용한 Pagr40/42(탄약중량 11.5kg, 탄환중량 4.75kg, 포구 초속 1,120m/초)을 사용하는 경우에는 1,000m에서 149mm, 2,000m에서 106mm를 관통할수 있었다. 하지만 텅스텐 탄심은 자원부족으로 보급되는 수가 그리 많지 않았고 탄환 중량이 작아 원거리에서의 명중률이 저하되는 단점이 있었다. 독일군측의 기록에 의하면 Pagr39/42의 경우 1,000m에서 명중률은 100%, 2,000에서는 92%로 되어 있지만, 실전에서는 각기 97%와 49%로 저하하고 있다. 반면 Pzgr40/42의 경우 병기시험장에서 같은 사거리에서의 명중률이 각기 94%, 56%였고 실전에서는 각기 56%, 20%로 크게 저하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편 포탄은 D형과 A형의 경우 79발, G형은 82발을 탑재한다. 포신의 수명은 약 3,000발이지만 사용탄종에 따라 다소 달라지며 특히 Pzgr40/42의 경우에는 1발 발사가 다른 탄환 4발의 발사에 해당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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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형의 주포 탄약고 배치 |
주포의 발사는 포수석에 있는 전기식 사격장치로 하게 되고 동축기관총은 포수가 페달을 밟아 발사하게 되어 있다. 포신은 포수의 조작에 따라 -8도~+20도 까지 조정할수 있었다. 조준기는 처음에는 쌍안식 TZF12가 장비되었지만, A형의 생산도중 단안식의 TZF12a로 변경되었다.
부무장으로는 동축기관총으로 MG34(F형에서는 MG42)를 주포 우축에 장비하고 무선수가 차체 전방을 통해 발사하는 MG34가 장비되어 있다. 이 무선수용 기관총은 D형에서는 장비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고 A형의 볼마운트식 총구가 도입되고 나서 정식장비로 된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차장용 큐폴라에 장착되는 대공기관총은 기본적으로 무선수용 기관총을 빼내서 장착하는 것으로 대공용으로 사용할 때는 전방기관총은 사용하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전선에서 MG34 정도의 기관총은 입수하기 쉬웠을 것이므로 큐폴라 위에 대공기관총을 추가로 장착하는 것도 가능했을 것이다. 한편 7.92mm 탄의 탑재수는 150발 벨트 34개, 즉 총 5,100발이 표준이다.
그리고 Panther에서 처음으로 채용되고 Tiger-II까지 이어지는 장비로 포탑 내부의 콤프레셔에서 발생시킨 압축공기를 이용하여 포신내의 가스를 자동으로 배출시키는 보어이배큐에이터가 장비되었다. 이것은 주포 사격시 주포가 후퇴하였을 때에 바로 포신내의 가스가 벤틸레이터로 연결되는 튜브를 통해 바로 배출시키는 장비였다.
포탑
포탑도 차체와 마찬가지로 경사장갑이 대폭 도입되었다. 전면 100mm/12도, 측면 45mm/25도, 후부 45mm/25도로 후부 패널은 측면판보다 약간 안쪽으로 용접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포방패는 100mm 두께의 주조제로 F형을 제외하고는 각형 공통이지만 G형 후기에서 방패 아래부분이 각진 형태로 변경되었다.
포탑의 선회는 엔진에서 변속기로 이어지는 샤프트 중간에 포탑 선회용 모터가 장비되어 여기에서 포탑 바스켓의 바닥에 설치된 유압 장치의 구동력을 전달하여 포탑을 선회시켰다. 포탑의 선회속도는 고저 2단계로 되어 있고 포수석 전방에 위치하는 포탑 선회모터에 장착된 레버로 선회속도를 선택하였다. 360도 회전에 요하는 시간은 엔진의 회전수에 비례하지만 엔진 1,000rmp시 고속선회를 하면 46초, 3,000rpm에서는 15초 였다. 레버가 저속으로 되어 있을 때에는 1,000rpm에서 93초, 2,000rpm에서는 45초 였다. 한편 포수측에 장비된 수동선회 핸들을 이용하여 수동으로 포탑을 돌리는 경우에는 수동으로 선회가 가능했고,
탄약수석에도 보조 선회 핸들이 설치되었다. 이 핸들을 한번 돌리면 포탑이 0.366도 회전, 360도 회전에는 984회 핸들을 돌려야 한다. 대체로 수동으로 포탑을 선회시키는데 4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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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ther용 적외선 야시장치 |
조준기
생산당초 Panther의 조준기로는 독일군 전차의 표준 조준기라고 할수 있는 TZF12 쌍안식 조준경이 장비되었다. 이 조준경은 A형의 생산도중 단안식의 TZF12a로 변경되었는데, 양자 모두 접안 렌즈를 보면 우측에 동축기관총과 유탄의 조준거리, 좌측에 철갑탄의 조준거리가 나타난다. 가운데 7개의 작은 3각형과 중앙의 대형 3각형이 보이고 그 안에 보조눈금과 주눈금이 있다. 중앙의 3각형으로 목표를 조준하고 거리에 따라 눈금을 조정하여 사격했는데, 철갑탄의 경우 Pzgr39/42는 3,000m, Pzgr40/42는 2,000m, 그리고 Sprgr42는 2,000m까지 조준할수 있다.
주행중인 목표에 대해서는 목표의 속도를 감안하여 목표의 미래위치에 탄을 발사해야 하므로 컴퓨터 장치가 없던 당시로서는 매우 힘든 작업이었다.
한편 원거리에서는 당연히 명중률이 저하되므로 가능한한 1,500m 내에서 사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 물론 3,000m 사거리에서 T34를 격파한 기록도 있지만 이것은 예외라고 볼수 있고 쿨스크전 당시에는 2,000m에서 격파한 사례가 많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2,000m 사거리는 빈번히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TZF12의 경우 배율은 고정식 2.5배, 시야 28도(1,000m 앞의 시야는 489m)이지만 TZF12a에서는 2.5배와 5배율을 선택할수 있다. 5배율의 경우에는 시야가 14도(1,000m 앞에서의 시야는 249m)로 축소된다.
Panther D
Panther D형은 1942년 12월부터 생산된 Panther 시리즈 최초의 양산형이다. 당초 MAN의 도면 등에는 A형으로 기입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최초의 양산차에 D형의 기호가 붙여졌다. 발주량은 당초 1,000대였지만 생산도중 개량형인 A형이 완성되어 발주수는 850대로 하향조정되었고 최종적으로 842대가 완성되었다. 각사별 생산수는 MAN 24대, 벤츠 250대, 헨쉘 130대, MNH 220대 이다.
D형은 기본적으로 시제 2호차와 동일하다고 볼수 있지만 일부 사양은 변경되었다. 우선 전투중량이 VK30.02(M)에서는 35톤이었지만 Panther D형에서는 44.8톤으로 무려 10톤이 가까이 증가하였다. 하지만 이것은 VK30.02의 공표된 중량이 설계중량인 때문으로 실제 무게는 별 차이가 없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어쨌든 설계치보다 10톤 가까이 증가한 것은 보다 강력한 전차에 대한 요망으로 장갑 두께를 늘리고 장포신 70구경 75mm포를 채용한 때문이라고 할수 있다. 한편 엔진은 당초 마이바하 HL210에서 생산도중 출력을 50hp 정도 증가시킨 HL230으로 변경되었다.
T34로부터 배운 경사장갑은 시제차량과 거의 변화가 없지만 시제차량에서는 포탑내 공간을 늘리기 위해 차장용 큐폴라 부분이 밖으로 돌출되어 있는데 비해 양산형에서는 포탑의 기본형태 안으로 옮겨졌다.
포탑의 좌측면에는 차외로의 연락을 위한 소형 해치가 설치되어 있다. 이 해치는 외부로부터 물건을 주고 받거나 전투중 탄피를 밖으로 배출하는데 사용된다. 포탑 후부에는 탈출용 해치가 설치되었고 측면과 후부에는 피스톨 포트가 설치되었다.
시제 2호 차량의 주포는 구형의 단작동식 머즐 브레이크가 장비되었지만 생산개시 시점에는 보다 효과가 높은 2중 작동식으로 변경되었는데, 아마도 단작동식으로 만들어진 차량은 10대 미만일 것으로 추측된다.
차체 우측 전방에는 직사각형의 커버가 있는데 이것은 무선수가 차내에서 기관총이나 기관단총을 밖으로 사격할 때 사용된다. 하지만 이미 3/4호 전차에서 호평 받은 볼 마운트식 기관총을 애초 도입하지 않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실전에서 사용해 보니 효과가 없었다고는 생각할수 없고, 아마도 두터운 80mm의 경사장갑(수평길이 140mm)에 맞는 볼마운트를 개발하지 못했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아무튼 여러 곡절 끝에 생산에 들어간 Panther D형이었지만 1943년 1월말까지 완성된 것은 3대 뿐이었고 이 차량으로 운영해본 결과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노출되었다. 하루라도 빨리 실전전력으로 투입되어야함에도 불구하고 이 시점에서 지적된 문제점이 50가지 이상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리하여 다시금 문제부분의 개수작업에 착수하게 되지만 이것이 생각만큼 빨리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이것은 각종 산고를 거쳐 나오는 주력전차의 개발과정에서 있을수 있는 일이라고는 하지만 양산단계에서 이러한 문제들이 발생하였다는 것은 상식적인 상황은 아니고 역으로 말한다면 히틀러가 그만큼 조속히 Panther를 실전투입하고 싶다는 욕망을 강하게 표현한 때문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 중에서 주요한 것을 살펴본다면, 우선 포탑을 선회할 때 조종수 및 무전수 해치를 간섭해 버리는 문제가 있다. 이 문제는 포탑의 모서리 부분을 비스듬히 3cm 절단하는 것으로 해결 되었지만 기본설계도면 자체가 문제 있었음을 나타내는 것이라 하겠다. 그리고 주포의 부각을 -7.5도 이하로 하는 경우에는 조준기가 포탑내의 주포 마운트에 부딛혀 포탑 전면에 3각형 강판을 용접하여 그 이상 포신을 내리지 못하도록 하는 조치가 취해졌다. 그리고 부각상태에서 리코일 가드가 차장석을 간섭하여 차장석을 보다 후방으로 이동시켰고 큐폴라 해치도 개폐 레버와 선회 핸들의 위치관계가 나빠 열기가 어려웠다. 큐폴라 해치의 관계는 4월이후의 생산차부터 해결됐다.
이밖에도 수십가지의 문제가 있었지만 이것들을 모두 해결하려면 상당한 시일이 걸리므로 일단 생산부터 하고 나서 나중에 개수작업을 하는 것으로 하고 생산이 속행되었다. 이리하여 1943년 4월 이후 그때까지의 생산차량은 데마그사에서 병기국 제6과의 지시에 의해 개수작업을 벌이게 된다. 한편 생산중의 차량은 개수가 완료되면 그 개수를 반영하여 계속 생산하도록 했다. 데마그사의 개수작업 중 주요한 것들은 다음과 같다.
차체 |
연료탱크 재용접, 연료 탱크 환기공 신설, 3단식 연료 메뉴폴드를 무단식으로 변경, 변속기와 조향장치 등을 새로 교환, 브레이크 기부 강화, 제2/7 쇼크 업소버를 강화형으로 변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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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탑 |
큐폴라에 TSRI 페리스코프를 신설, 주포의 리코일 가드에 금속판 장착, 포탑내에 트래블링 록 신설, 주포 조준기 마운트 강화, 동축 기관총 탄피 배출 튜브의 위치변경, 동축 기관총 발사 케이블을 2.5mm 구경으로 강화, 발사 페달 위치 변경, 연락용 측면 해치와 탈출용 해치의 힌지 강화, 빗물막이 신설, 탈출해치의 개방위치에 고정구 신설, 포탑 바스켓의 강화 |
한편 복잡한 기구를 폐지하고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잠수장치는 폐지되었고 그에 따라 방수봉합도 간이형으로 변경되었다. 이것은 8월부터 생산된 차량으로 이전의 잠수장치 없이 완성된 차량에는 스노켈 연결부위를 금속판으로 막거나 금속망을 설치하였다.
이들 개수와는 별도로 생산중에 단계적인 개량이 가해져 Panther는 결국 실용시험 기간이 아주 짧은 대신 실전을 통한 개수가 헤아릴수 없이 행해졌다.
우선 생산초기에는 포탑 측면에 연막탄 발사기가 설치되었지만 실전에서는 적의 소구경탄에 간단히 파괴되었고 재장전하려면 승무원이 밖으로 나와야 했으므로 1943년 7월 생산분부터는 폐지되었다. 4월부터 생산된 차량에는 대전차 라이플에 대한 방어책으로 쉬르첸이라고 불리는 사이드 스커드를 차체 좌우에 장착했다. 8mm 두께의 이 장갑판은 한쪽 6매(G형 5매)로 구성되어 착탈이 가능했다. 그리고 큐폴라 해치의 개방위치 변경, 압축공기를 이용한 포신내 가스 배출장치 도입 등이 행해졌다.
5월 생산차부터는 엔진이 HL210P30에서 HL230P30으로 변경되었고 이 엔진의 변경은 생산 251호 차부터 적용되었다. 엔진변경으로 출력은 50hp 정도 증가하여 700hp가 되었지만 HL210이 경합금을 이용하여 경량화 되었던 반면 HL230은 경합금을 사용하지 않아 엔진중량은 350kg 정도 증가하였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데마그사 개수차량은 쿨스크전을 앞두고 그라펜베이 훈련장에서 최종 개수가 실시되었다. 이 개수는 훈련중 발생한 문제점을 반영한 것으로 기동륜 후부의 댐퍼 강화, 연료탱크 커버에 환기 파이프 추가 등의 개수를 실시하였다.
1943년 하기공세의 지연이유가 Panther의 실전화가 늦어진 때문이 컸지만 7월의 쿨스크전에 있어서도 문제점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실전에 투입된 D형은 엔진고장이 속출하였고 연료 파이프에서 누출된 연료에 불이 붙어 화재를 일으키는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이 때문에 전투에서 일어난 손실보다 승무원들이 스스로 내버린 차량이 더 많을 정도였다.
한편 7월부터 생산된 차량은 방어상 문제가 있다 하여 포탑 좌측면의 연락용 해치를 폐지하고 우측 전조등 폐지, 연료 급유구와 인테이크 주위에 빗물받이 신설, 차장 큐폴라에 대공기관총용 링 설치 등의 개수가 실시되었다.
8월 생산차부터는 주행중 고무 타이어가 벗겨지지 않도록 보기륜의 고무 타이어 고정 리벳수를 16개에서 24개로 증가시키는 한편 주포 방패의 조준구에 빗물받이를 신설했다. 그리고 주포발사 가스를 신속히 배출하도록 발사가스를 직접 벤틸레이터로 가도록 하는 파이프가 설치되었다.
9월부터는 A형의 생산이 시작되는데 이 시기부터 시작된 찌메리트 코팅은 거의 A형에만 적용되게 된다. 한편 이시기부터 트랙의 미끄럼 방지 무늬도 "入"자 모양으로 변경되었다.
Panther A형
D형의 생산개시후 얼마 안된 시기인 1943년 2월 18일, 포탑을 개발한 라인메탈사는 병기국 제 6과와의 회의를 가져 D형의 포탑 관계를 중심으로 한 개량계획을 논의했는데, 이 개량형이 9월부터 생산되는 Panther A형이다.
A형의 생산은 MAN 645대, 벤츠 675대, MNH 830대, 데마그 50대로 총 생산수는 2,200대에 달한다. 한편 헨쉘은 Tiger-I과 함께 Panther 회수형인 BergePanther를 생산하게 된다.
D형에서 A형으로 발전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은 포탑이다. 우선 포탑내 좌측에 L4S 포탑 선회유압 장치를 신설, 레버 조작으로 고저 2종의 기어를 선택할수 있도록 하여 선회속도를 2가지로 변경시킬수 있었다. 이와함께 생산성 향상이 추구되어 포탑 측면과 전면 장갑판의 연결이 단순해지고 방패와 접하는 기부의 형태도 변경되었다.
한편 시계가 나빠 불평이 많았던 큐폴라는 주조제 신형으로 변경되어 둘레에 페리스코프가 7개 장비된 신형이 채용되었다. 이 큐폴라는 장갑 두께도 60mm에서 80mm로 강화되었다. 큐폴라 상부에 설치된 페리스코프 가드 위에는 대공기관총용 링이 용접되어 있다. 단 벤츠의 A형 초기 생산차량 50대는 큐폴라의 실루엣이 마치 기계로 깎아낸 것 같은 모양으로 중기 이후 생산차와는 약간 차이가 있다.
이밖에 포탑의 개량은 11월 중순의 생산차부터 주포조준기가 쌍안식 TZF12에서 TZF12a로 변경되었다. 이에 따라 포방패의 조준구도 2개에서 1개로 변경되었다. 하지만 이미 만들어 놓은 재고가 있어 일부 차량은 바깥쪽 구멍을 용접하여 막아버린 것도 존재한다. 이보다 약간 앞선 11월 초순에 생산된 651호 차량부터는 포탑 바스켓의 지주가 강화되었다.
1943년 9월 부터는 독일군의 전 기갑차량에 자기흡착 대전차지뢰 방어용 찌메리트 코팅이 실시되어 Panther A형도 거의 예외없이 찌메리트 코팅이 적용되었다. 그리고 9월부터는 강화형 보기륜이 적용되었고 트랙에 미끄럼 방지기구도 도입되었다. 이 미끄럼 방지기구는 트랙 5매 내지 7매 마다 장착되며 이때에는 시속 15km 이상으로는 주행할수 없었다.
11월 생산차부터는 엔진을 조정하여 3,000rpm에서 2,500rpm으로 떨어뜨려 엔진의 부담을 줄여 본연의 성능이 나오게 되었다.
한편 견인차량의 부족으로 1943년 9월 생산차량부터 차체 후부에 견인구 장착용 패널이 설치되어 11월부터 12월에 생산된 일부 차량에 실제로 견인구가 장착되었다.
11월 중순이후는 종래의 4각형 기관총 사격부 대신 80mm 장갑용 볼마운트가 완성되어 MG34 기관총이 볼마운트에 장착되게 되었다. A형의 스타일이 완전히 완성된 것은 이시점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1943년 12월 생산차부터는 포탑 3개소에 설치된 피스톨 포트가 폐지되고 포탑 상부에 근접방어무기(S마인 발사기)를 신설할 것이 결정되었지만 일단 장착용 구멍은 설치하고 그 구멍은 장갑 커버로 덮은체 생산이 속행되었다. 실제로 이 장비가 실용화 된 것은 1944년 3월에 이르러서 이므로 그 이전에 완성된 일부 차량은 추가로 근접방어무기를 장착했지만 대부분 장비하지 못한체 전투를 벌여야 했다.
12월에는 차체 상부와 측면장갑판의 용접부를 보다 강력한 방식인 인터록 방식으로 변경하려 했지만 아직 공장에서 이 기술을 익히지 못하여 종래의 용접방식으로 제작된 차량도 많았다.
1944년 1월 이후 생산차에서는 전투실용 히터가 채용되었다. 이것은 기관실 좌측에 설치된 라디에이터로부터 공기배출용 팬을 역으로 장착, 열기를 역방향으로 향하게 하고 기관실과 전투실의 격벽 일부에 구멍을 뚫어 따뜻한 공기가 들어가도록 만든 것이었다. 물론 겨울 이외에는 팬을 본래 방향으로 돌려놓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팬을 역으로 장착함으로서 좌측 배기 파이프의 온도가 너무 올라가 버린다는 문제점이 있어 좌측 배기관 좌우에 각기 흡기관을 신설하여 해결했다.
1944년 2월부터 생산된 차량은 우측 배기관 아래 있던 엔진 시동용 관성 시동장치로 이어지는 크랭크 봉을 삽입하는 구멍 아래에 서포트 가이드가 신설되었다. 그리고 리어 패널 중앙부에 설치된 점검 해치의 크랭크식 시동장치 커버의 좌우로 엔진 강제 시동장치를 장착하는 어태치먼트가 신설되었다. 이 엔진 강제 시동장치란 동기에 얼어붙은 엔진의 플라이 휠과 여기에 부수되는 치차등을 보통은 크랭크 봉을 이용하여 시동하던 것을 얼어붙어 회전이 불가능할 경우 이용하는 것으로서 소형 가솔린 엔진을 구동시켜 이 동력을 엔진으로 전달하는 간단한 기구이다. 이 시동장치의 변형으로 포르쉐사는 퀴벨바겐의 동력을 이용하는 강제시동기를 1944년에 개발했다. 이것은 퀴벨바겐의 엔진으로부터 동력을 전달하는 어댑터를 장착하고 여기에 Panther(다른 전차도 가능)의 시동기 장착용 어댑터에 조인트 소켓이 붙은 연장 구동축을 연결시켜 Panther에 장착된 가이드 브리지와 연결시키는 것으로 퀴벨바겐과 강제 시동기가 있으면 간단히 시동을 걸수 있었다.
이들의 신형장비를 채용한 결과 이제까지 리어 패널 중앙의 점검 해치의 외측에 장비되어 있던 잭이 양 배기관 사이에 세워진 형태로 장착되게 된다. 이와 함께 잭 자체도 20톤급으로 강화되었지만 이러한 변경은 단계적으로 행해지는 것으로 생산시기를 확정하기는 어렵다.
1944년 4월 11일자 육군 병기국 제6과는 이제까지 차장용 큐폴라에 장비되고 있던 야간 표시기를 폐지하도록 지령을 시달했다. 이것은 적외선 투광기와 적외선 스코프를 조합한 야간 투시장비의 개발이 그 배경으로 MNH사의 보고서에 의하면 1944년 4월 3일 완성된 차체부터 야간 표시기가 폐지된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Panther A형의 월생산수에 비추어 보면 약 500대 정도가 야간표시기를 장비하지 않은체 완성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A형에 적외선 야시장비가 갖추어진 적도 없다. A형에서 마지막으로 추가된 것은 필체라고 불리는 간이 크레인 장착구로 6월 생산차량부터 장비되기 시작했다. 이것은 포탑 상부의 3개소에 용접된 작은 돌기물로서 장착구의 중앙에 뚫린 나사구멍에 조립식 2톤 크레인의 지주를 접속하고 엔진 등을 자력으로 교환하기 위한 것이다.
생산시기면으로 본다면 이 필체를 장착한 차량은 약 100대 정도로 생각되지만 전선에서 수리를 위해 돌아온 차량에도 장착되었으므로 많은 A형에서 장비된 사례가 보이고 있다.
Panther G형
Panther G형은 A형에 이어 등장한 형식이지만 그 실체는 A형에 Panther II의 개발에서 얻은 노하우를 적용시켜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장갑을 강화한다는 것이다. 이 G형의 등장으로 Panther 시리즈는 완성에 이르렀다고 할수 있다.
G형의 생산은 1944년 3월부터 개시되어 1945년 4월 생산중지 될 때까지 MAN 1,143대, 벤츠 1,004대, MNH 806대로 총 2,953대가 생산되었다.
G형에 있어서 가장 큰 변화는 D형과 A형의 경우 차체 측면 장갑판이 연료탱크 부분에서 2단으로 되어 있던 것이 단순한 1매판 형식으로 바뀌고 전방에서 후방으로 약간 넓어지는 직선이 되도록 한 것이다. 이로써 측면장갑판의 각도는 40도에서 30도로 변경되고 두께도 40mm에서 50mm로 강화되었다. 이러한 장갑강화로 중량은 305kg 증가했으므로 차체 전면 하부의 장갑 두께는 60mm에서 50mm로 변경시켰다. 또한 차체 하면 앞부분의 장갑두께도 30mm에서 25mm로 변경하여 250kg을 경감시킬수 있었다. 한편 조종실에서 전방부분의 상면장갑판도 16mm에서 40mm로 증가되었지만 이 부부네 대한 중량증가치는 알려져 있지 않다. 아무튼 이러한 조치로 장갑방어력은 D형이나 A형에 비해 상당히 강화되었다.
또한 Panther II에서 적용된 전후폭을 감소시킨 기관실 에어 인테이크 덕트도 적용되었는데, 이것은 적의 화염병 공격으로부터의 최약부분 면적을 작게 하려는 의도였다. 이 조치로 라디에이터에 대한 공기흡입량은 줄어들었지만 라디에이터의 성능 개량으로 이 문제를 극복했다. 그리고 A형에서 채용된 추가 흡기관은 필요없게 되어 다시 이전의 단순한 형태로 변경되었다.
조종실 해치는 D형과 A형에서는 일단 위로 들어올렸다가 옆으로 슬라이드식으로 회전시켜 개방하는 방식이었지만 G형에서는 양옆에 힌지를 달아 위로 젖혀 여는 방식으로 변경되었고 해치 자체의 형태도 타원형에서 4각형으로 변경되었다. 이것은 종래의 해치가 전장에서의 파편 등에 의한 손상시 개방이 불가능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과 함께 보다 빨리 탈출할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이러한 변경과 함께 내탄성 면에서 문제가 되었던 조종수용 전방 바이저가 폐지되고 신형 선회식 망원 페리스코프가 조종수석 상부에 설치되었다. 이것 또한 Panther II에 도입된 것이었다. 그 밖에 A형과 다른 점으로는 전조등의 위치 이동, 쉬르첸이 5매식으로 변경되고 거는 방법도 단순해졌으며, 잭 받침대 확대, 견인 와이어를 직경 32mm 길이 8.2m로 변경, 전투실내 탄환 래크 형태 변경, 탄환 탑재량 82발로 증가, 탄약고에 4mm 두께 슬라이드식 커버 도입 등이 있다. 이러한 변경 들은 G형의 생산초기에 모두 적용된 것이 아니고 어느 정도는 단계적으로 행해진 것으로 생각된다.
당초 직선차체로 불리는 시제차량은 1944년 3월 2대가 완성되었고, 4월 생산이 시작되었다. 10월 26일자의 생산계획에는 당시 개발중이던 F형으로 생산이 전환되기까지 2,650대를 생산할 예정이었지만 F형의 등장이 계속 늦어져 생산수는 예상보다 증가하게 되었다.
1944년 5월부터 생산된 차량은 배기관의 마운트 부분이 A형이 주조식에서 용접식으로 변경되어 모양도 둥근 모양에서 각진 모양으로 변경되었다. 이어서 6월에는 야간에 달아오른 배기관이 적에 눈에 띄지 않도록 배기관 파이프 부분에 덮개가 설치되었다.
7월 생산차량은 차장용 큐폴라의 페리스코프 고정구가 개량되고 조종실 상부 벤틸레이터 장갑 커버가 추가되었다. 그리고 병기 제 6과에서는 큐폴라에서 상부로 돌출시켜 사용하는 TSR1 페리스코프의 마운트를 폐지하도록 하고 조종수용 선회식 페리스코프 위에 빗물받이를 추가하도록 요구, 8월 생산차부터 적용되었다.
8월에는 조종수와 무선수 해치를 내부에서 볼트를 풀면 그대로 개방될수 있도록 변경하였고 주포 방패 윗부분에 장갑 커버가 신설되었다. 그리고 같은달 19일 부터는 공장에서 위장도색을 한 채로 출고하라는 지령이 내려져 여기에 적용된 위장도색이 이른바 "매복위장" 또는 "빛과 그림자"라고 불리는 것으로 보통의 3색 위장 위에 각기 다른 색으로 작은 반점을 찍어 넣은 위장이다. 이 위장은 바로 전선에서 널리 퍼지게 되어 공장에서 출고된 것보다 훨신 많은 독일 전차들이 이 위장을 도입하였다. 한편 위장도색이 적용되고 바로 뒤에 여러 가지 색에 의한 차내도색이 폐지되고 녹방지 처리만이 실시되었다.
1944년 9월 부터는 찌메리트 코팅이 폐지되고 녹이 슬지 않도록 발라주는 산화방지 도료를 브라운색의 대용으로 이용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주포 조준기 외부에 빗물받이가 앞으로 더 연장되었다.
한편 9월부터 생산된 차량의 가장 큰 변경점은 적외선 야시장비의 도입이다. 이 야시장비는 1936년부터 개발에 착수 1943년에 실용화 단계에 이르렀지만 당시로서는 그다지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방치되었다가 노르망디 전선이후 야간작전의 중요성이 높아져 도입이 결정된 장비이다.
이러한 야간투시장비는 차장용 큐폴라와 주포 조준기를 각기 독립된 적외선 라이트와 스코프를 장비하도록 되어 있었으며 리어 패널 위측의 잡물상자는 각형의 장갑상자로 변경되어 주간에 야시장비를 수납하도록 되었다. 그리고 전투실 좌우의 3발씩의 탄약고 대신 야시장비에 전력을 공급하는 GG400 발전기와 배터리가 신설되었다.
이 야시장비는 계획대로라면 9월에 50기, 10월에 70기, 11월에 80기, 12월에 100기가 도입될 예정이었지만 실제로 이장비의 생산에 시간이 많이 걸려 차량 자체는 야시장비 장착 준비를 끝냈지만 결국 실제로 장비된 것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았다.
이 때문에 11월에는 이전의 사양으로 돌아왔고 최종적으로 야시장비를 장착한 Panthers는 113대로 전해지고 있다. 이밖에 9월 생산차에는 Panther의 결점이라고 할수 있는 주포방패 하부에 적탄이 명중하는 경우 적탄이 아래 방향으로 바꾸어 조종실 상부 장갑을 관통해 버리는 현상을 없애기 위해 포방패 아래 부분을 각진 형태의 수직면으로 변경했다.
MAN에서는 생산차의 일부중 보기륜을 Tiger-I/II에 이용되는 금속제 보기륜으로 변경했지만 이 보기륜도 부족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 철제 보기륜은 Panther II에 이용된 Tiger-I/II의 것과 같은 직경 800mm(기본 보기륜 직경은 860mm)의 것이 이용되었으나 서스펜션 암에 맞추기 위해 허브의 형태는 Tiger-I/II와 다르게 되었다. 또한 라디에이터의 배기 팬이 강화형으로 변경되고, 탄약고의 슬라이드식 장갑 커버도 폐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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