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문화민족의 단면을 확인하고 미래에 대한 예지를 느낀다면 지나친 표현일까요?!
우리 순천의 현실
우리 순천고장은 많은 문화유산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순천과 인근 고장에 송광사, 선암사 등 명찰이 많아서 소위 보물급 문화유산의 보고라고 합니다.
학계 등 많은 문화전문가들이 우리 순천고장을 방문하여 감탄을 아끼지 않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순천의 문화재 현황]
① 국보 3
② 보물 30
③ 사적 3
④ 사적 및 명승 1
⑤ 중요 무형문화재 1
⑥ 천연기념물 2
⑦ 중요 민족자료 10
[순천시의 국가 지정 문화재]
① 국보 - 목조삼존불감, 고려고종제서, 송광사 국사전
② 보물 - 송광사 대반열반경소, 송광사 경질, 송광사 경패
③ 사적 - 낙안읍성, 검단산성, 월평구석기 유적
④ 사적 및 명승 - 조계산 송광사, 선암사 일원
⑤ 중요 무형문화재 - 낙죽장
⑥ 천연기념물 - 승주읍 이팝나무, 송광사 곱향나무
⑦ 중요 민속자료 - 낙안읍성 박의준 가옥 등 10가지입니다.
더구나 팔마문화제, 순천만 갈대축제, 허수아비축제, 풀뿌리축제, 낙안민속문화축제, 남도음식문화큰축제 등 많은 문화축제가 연례적으로 개최되면서 우리 시민들의 관심과 성숙도가 성취되어가고 있고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양적인 증가와 질적인 수준향상으로 지역문화가 뿌리내리고 있음은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2013. 국제정원박람회(4.20~10.20)라는 국제적인 축제가 생태수도 순천에서 개최됩니다.
순천의 역사
순천은 삼산이수, 소강남 등으로 널리 알려져 있듯이 예부터 살기좋은 고장이었습니다.
산천이 아름답고 자연 생산품이 풍부하며 민심이 순박하다고 해서 소강남이라고 불리었습니다. 강남은 조선초기 이래 순천의 별칭입니다.
청백리의 표상이라고 하여 팔마비 그리고 백우탑이 이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팔마비(八馬碑)는 고려 충렬왕 때 이곳 최석(崔碩) 승평부사(昇平府使)가 선정을 베풀다가 비서랑(秘書郞)에 임명되어 한양으로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당시 승평부에서는 읍의 수령이 갈려 갈 때마다 말을 주는 관습이 있었는데, 태수(太守:府使)는 8필, 부사(副使)는 7필, 법조(法曹) 6필씩 마음대로 골라가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최석 부사는 이같은 관례를 폐습이라 생각하고 말을 고르지 않았을 뿐만아니라, 한양에 도착한 뒤에는 억지로 한양까지 딸려 보낸 7필의 말들을 다시 모두 되돌려 보내었습니다. 또한 나중에 낳은 새까말 1마리까지 합해 8마리를 되돌려 보냈습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그때까지 내려오던 헌마(獻馬) 폐습이 없어지게 되자 부민들이 그 덕을 칭송하고 그의 청렴한 뜻을 기리고자 1308년(충렬왕 34년)에 비석을 세우고 팔마비라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것이 오늘날까지 우리 순천지역에 널리 알려져 온 팔마비의 유래입니다.
순천팔마비는 1980. 6. 2. 전남유형문화재 제76호로 지정되었으며 한국 역사상 지방관의 선정과 청덕을 기리는 비석의 효시라는 점에서 더욱 의의가 크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순천에는 ‘팔마’가 들어가는 명칭이 많습니다. 예를들면 팔마경기장, 팔마초등학교, 팔마고등학교 등 여러 가지 상호에도 팔마가 들어가는 경우입니다.
백우탑(百牛塔)은 영조 39년 강필리 순천부사가 연이은 흉년으로 백성들이 굶주리고 있고 질병으로 소들이 죽어 농사를 짓지 못하게 되자 자신의 봉급으로 32마리의 소를 사서 각 농가에 나누어 주어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했다고 합니다.
부역을 면해주고 관미를 나누어 주는 등 그 덕에 몇 년 뒤 소가 150여마리가 되었다고 합니다.
순천의 대표적인 목민관 강필리에 얽힌 이야기입니다.
지역의 역사에 대한 재조명
우리 순천고장은 지방사의 체계적 연구에 필요한 자료가 빈약한 것이 사실입니다. 예를 들면 팔마유래비에서 말의 숫자가 7마리인지 8마리인지 새끼말을 포함하여 9마리인지, 죽도봉에 세워진 팔마비처럼 기마인지, 조랑말인지 문헌상 이를 정확히 밝혀주는 자료가 없습니다. 그래서 각자 나름대로 주장하나, 정설이 제시되어서 정착되지는 않고 있습니다.
또한 삼산이수의 삼산이 난봉산, 인재산, 성황산 3개의 산인지 아니면 용당동 세봉우리의 원산인지 그리고 이수가 동천 이외에 옥천, 이사천 중 어느 천인지 고증이나 문헌에 확실하게 밝혀져 있지 않아서 안타깝습니다.
우리고장의 단체활동
전통문화보존회는 순천문화원으로 흡수되었지만, 선암사 삼인당 보수, 왜성대 전투상황도 사본 구입 등의 많은 업적을 남겼습니다.
위순회는 옥천 서원지 출판 등의 활동으로 우리들의 가슴에 오래 기억될 것입니다.
여타 단체들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문화의 발전방향
문화활동 내지 문화의 길은 돈을 먹고 사는 나무에 비유되기도 합니다.
많은 지원과 보조가 있으면 그만큼 문화가 활성화된다고 하겠습니다.
미국, 프랑스, 일본 등 문화선진국에서 보는 바와 같이 문화예술에 대한 조건없는 지원인 메세나(Mecenat)운동이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미미한 수준입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혹은 리세스 오블리주(Richesse Oblige)를 실천한 나눔의 사례도 가끔 언론에 보도되기도 합니다.
문화를 보존하고 강조하는 과정에서 관 주도의 행정의 역할이 부각되고 있습니다.
우리의 세금에 의한 예산의 뒷받침으로 문화행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나 행정의 역할은 산파적, 간접적이어야 하며 주도적이어서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관 주도의 문화육성에는 한계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과도기적 역할로 그쳐야 할 것입니다.
행정적․재정적 뒷받침은 하되 예산이나 재정문제가 미흡하거나 편파적이어서는 옳지 않다고 봅니다. 정치권력에 대한 문화의 의존은 역기능과 휴류증에 대한 심각한 자기성찰이 필요할 것입니다.
지역주민의 문화활동에 대한 교육도 중요합니다.
이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여건이 성숙됨에 따라 점진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글을 맺으면서
우리 순천문화원이 우리 순천지역 전통문화의 지킴이로서 멈출 수도 없이 뚜벅뚜벅 소걸음으로 가는 길에 문화에 대한 마인드나 철학도 없이 화두로서 특히 선거 때 문화가 자주 거론되는 우리사회가 과일이 익듯이 문화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생활화되어지기를 기대합니다.
끝으로 건강한 사회로 가는데 징검다리 역할의 올바른 문화인이 되기를 염원해 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