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산2세 탑..
라밧의 랜드마크라고 볼 수 있네요!!
라밧에서 마지막 방문지로 가기 위해 다시 구 시가지로 향합니다..
구 시가지의 중심에 위치한 카톨릭 교회..
제가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이곳입니다..
시가지 외곽에 남아 있는 로마시절의 성채..
살라!!
성채는 로마식이라고 보기는 힘드네요!!
로마시대의 유적과 이슬람 유적이 공존하는 장소입니다..
사람은 사라지고 없으나 그 흔적은 오랫동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로마!!
이탈리아 반도의 중심부에서 시작하여 유럽 지중해 북아프리카 페르시아와 종국에서 이집트까지를 지배하였던
고대시절 최대의 제국..
그 기원은 분명하지는 않으나 그리스에 살던 부족이 테레베강의 정착을 하면서 역사가 시작된 것을 추정..
세상의 역사는 강자의 역사이기에 BC8세기경에 시작되었으나 그 훨씬 전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로물루스 레무스
신화에서 역사가 시작된 것으로 포장하기도 했으나 고고학에 의하면 BC8세기경 시작된 것으로 보고있죠!!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카이사르 이후 다시 제정기으로 복귀한 로마는 이후 "팍스 로마나"로 불리우는 강력함을 유지하다가
크로아티아의 스플릿에 로마 왕궁을 세웠던 "가이우스 디오클레티아누스"시절 제국이 너무 크다는 이유로 4등분되어 통치되면서
통치 기반이 무너지기 시작했고 급기야 395년 로마는 동서로 분열..
서로마 제국은 게르만족의 대이동으로 476년에 멸망하였으며, 비잔티움을 중심으로 명맥을 유지하던 동로마 제국은
1453년까지 유지되다 오스만투르크에 의하여 멸망..
로마제국에 의한 지중해 세계의 통일은 세계사적으로 불멸의 의미를 가지며 서양인들의 로망이기도 하죠!!
어떻게 세계사 시간에 배운 것인데 조금 가물가물하죠!!
조금 소설적인 색체와 상상력의 가미가 너무 심하다는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읽어보면
로마에 대한 로망과 상상력 그리고 서구 사회에 대한 이해의 폭이 많이 넓어질 것입니다..
여자이면서도 "시오노 나나미"는 남성화되고 싶은 신드롬을 많이 가지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책을 읽으면서 많이 해 보았습니다..
현재까지 15권이 출간된 것으로 기억하며 저도 "율리우스 카이사르"편까지 읽다가 그만 두었습니다..ㅎㅎ
"가이사르"에 대한 기억이 워낙 강렬하여 더 이상 진도가 나가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생각할때 카이사르가 정치인겸 무인이 아니고 종교 지도자였다면 지금 역사는 또 다른 방향으로 바뀌고
다른 세상이 되지 않았을까하고 생각하여 봅니다..
대부분의 위인들은 젊어서 두각을 나타내고 요절을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카이사르"의 경우 30대후반까지는 거의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다가 40대에 접어들어 자신을 표현하고 '부루투스" 일파에 의하여 자신의 방대한 뜻을 펼치지도 못하고
인생을 마감하죠!! 인생 무상을 많이 느끼게 하였습니다..
로마 시대 유적앞에 서다보니 이야기가 다른 방향으로 많이 흘렀습니다..
서양사나 그들의 철학 문화 종교등 생활 전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리스, 로마에 대한 이해 그리고 기독교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서양인에 대한 배척으로 서양의 고대사 그리고 종교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면서 서구 사회를 이해하기는 힘들다는 이야기..
기독교도 꼭 종교라는 생각을 가지기 않고 서양의 문화라고 생각하면 접할 만한 가치가 분명히 있습니다..
기독교는 이스라엘에서 만들어진 종교가 아니라 로마인들이 그들의 통치 이념에 적합하게
종교회의나 기타 위정자에 의하여 적절하게 취합된 종교로 기독교의 이해를 위해서라도 로마의 역사는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모태인 "카톨릭"은 사람들의 역사에서 자연 발생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로마의 통치 철학이 만들어 낸
것이라는 것을 아는 분도 별로 없죠!!
다신교의 로마가 제국이 방대화하면서 사람들을 하나로 결집시키고 그들의 제국을 효과적을 통치하기 위한
수단으로 기독교를 공인하였으나, 공인이후 그리스도의 본질에 대한 문제의 해석으로
성부와 성자는 동일하다고 보는 아타나시우스파와 다르다고 보는 아리우스파가 격돌하였으며
급기야 당시의 황제였던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를 개최합니다..
많은 종교 전문가들이 다양한 의견을 개진하였으며 황제는 다양한 의견을 청취한 후에
"성자와 성부는 동일한 본질"이라는 삼위일체이론에 손을 들어줌으로 반대파였던 아리우스파는 이단으로 몰렸습니다..
그러나 아리우스파에 대하여 호의적인 콘스탄티우스 2세가 350년 동로마 황제로 즉위하면서 거꾸로
아타나시우스파가 박해를 받기도 하였으나 두종파의 물밑 접촉과 360년 황제가 아타나시우스파의 이론을 수용함으로
일단락되고 지금까지 "카톨릭"의 본질로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카톨릭"의 말 뜻이 라틴어로 "보편적"이라는 뜻이며 이 "카톨릭"이라는 단어가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파생된것!!
로마에서 국교로 공인되기 전에 엄청난 박해에 시달리던 기독교가 통치 철학으로 공인되었다고 했는데
그 공인에 대한 일화도 재미있습니다..
앞에도 이야기 드렸듯이 동서로마로 분리되기전 로마는 4등분이 되면서 300년경 극심한 혼란에 빠져 있었습니다..
사두정치를 펼치고 있었지만 왕권에 대한 도전이 빈발하였으며 콘스탄티우스 1세가 죽고
서로마에서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왕위에 오르자 막센티우스가 반발을 하고 지리한 내전이 시작됩니다..
지리한 내전에 지쳐가던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꿈에서 그리스도를 알현하고 영감을 얻게 되어
312년 막센티우스를 물리치고 서로마제국 황제에 취임합니다..
아직 4두체제중의 로마였지만 그중에 강성하였던 동로마 제국의 황제 리키니우스와 협의하여 밀라노 칙령을 발표하고
313년 기독교를 공인합니다..
그러나 상대적인 전세의 불리함으로 리키니우스는 기독교를 공인하기는 하였으나 여전히 박해를 하였으며
콘스탄티누스는 리키니우스를 물리치고 단독 황제로 등극하며 정식으로 기독교를 공인하고 개종하며 국교로 공표하였죠!!
율리우스력이 발표되면 당시 그냥 일요일일 뿐이었던 요일이 콘스탄티누스 대제에 의하여
주일로 공표되었고 지금도 기독교인들은 "주일성소"를 이야기하는 것에 저는 그 역사를 생각하면서 빙그레 웃습니다..
로마시대의 유적가 모스크의 미나렛이 공존한 장소..
콘스탄티누스대제가 나중에 기독교인들의 혜택을 보기도 합니다..
로마인들은 다신교였으며 시저 이후 사람이 죽으면 신격화 되기도 하는 과정을 거치고 또 휴머니즘의 영향으로 유별나다고 할
정도로 사람의 조각을 많이 하였습니다..
중세 로마가 멸망하고 종교가 유럽을 지배하면서 이런 조상들을 우상으로 여겨서 무분별하게 파괴를 하였는데
유일하게 기독교를 공인하였던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조각은 그냥 살아 남을 수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공공장소 조상이 파괴되었습니다만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조각은 살아남았으며 일부 콘스탄티누스와 대제와 비슷한
조상들도 화를 면하기도 하였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비슷하여 화를 면한 조각으로 로마의 카피톨 언덕 위에 있는 캄피돌리오 광장의 조상을 들수가 있다..
"수상록"으로 유명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인데 "콘스탄티누스"대제로 착각하여 살아 남았다고 합니다..
최근에 보수를 위하여 옮겼다고 하던데 자세한 상황은 로마를 가본지 오래되어..ㅎㅎ
사람들이 떠나간 자리는 황새들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분위기가 너무나 좋은 장소..
분명히 이곳은 모로코인데도 로마의 분위기도 풍기고 이슬람의 분위기도 절묘하게 조화..
더구나 황새들이 자연친화적인 환경을 만들어주니 오랫동안 머물면서 옛 로마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포르 로마노"를 거닐면서 골목에서 갑자기 칸토가 튀어 나오고
카이사르가 멋진 토가를 걸치고 길을 걸을 것 같은 착각에 빠지고
키케로가 광장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연설을 하는 장면을 생각하였는데
그런 착각은 모두 세익스피어의 "카이사르"를 읽으면서 심취한 까닭이었죠..
"시저"가 죽은후에 문헌에 의하면 부루투스의 연설도 없었고
그 반박을 위한 안토니우스의 해명도 없었으며, 옥타비아누스는 양아버지의 명령으로 오리엔트 정벌에 나서
그 자리에 있지도 않았더군요!!
문학 작품이 역사를 극화한 것.. 요즈음 우리 사회에서도 흔히 일어나는 일이죠!!
물론 작가나 연출자는 의도된 것임으로 분명히 밝히지만 사람들은 픽션을 팩트로 받아들입니다..
무서운 일.. 의도적으로 그런 일이 자행되면 군중심리에 의하여 엄청난 독선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냉철한 가슴을 가집시다..ㅎㅎ
이곳도 그냥 단순한 이슬람과 로마의 문화가 공존하였던 유적지일 뿐인데
저는 고대로마에서 기독교 이슬람 그리고 카르타고까지 상상의 나래를 한없이 펼치고 있습니다..ㅎㅎ
무궁화도 만발..
우리나라 꽃을 여기서 보니 너무 반갑네요!!
나팔꽃 맞나요??
황새들은 저를 보고 뭐라고 할까요??
당근 외인의 출입이 달갑지는 않겠죠!!
고고합니다..
지금 이곳의 주인들은 저 새들!!
높은 곳에는 어김없이 둥지를 틀고 있습니다..
간혹 보이는 관광객들..
충분히 즐길 가치가 있는 공간이지만 잘 알려지지 않아서 사람들의 외면을 받습니다!!
저는 한적하게 이런 저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되다 보니 너무나 좋습니다..
개인적으로 모로코에서 본 최고의 장소..
강력추천합니다..
모로코의 로마 유적 쉘라!!
도심지에 트램역이 똑같은 이름이 있습니다..
로마닉 폴리스 "쉘라"라고 이야기하고 지도를 보여 주어야만 찾아갈 수 있습니다..
대중 교통도 없고 도심의 카스바에서 조금 떨어져서 택시를 이용해야 합니다..
모로코 택시 요금은 별로 부담스럽지 않고!!
사람을 별로 겁을 내지도 않는 황새들!!
셀라 성채 구경을 마지막으로 라밧 구경을 마치고 다시 역으로..
역에서 가방을 보관중인 친구!! 누구에게 사주를 받았는지 추가 보관료를 요구합니다..
5디람이면 맡기는 짐을 20디람을 주었는데!!
화장실갈때와 나올때 마음이 틀리기에 고마운 마음도 사라지고 주지도 않았습니다..
최소한의 고마운 마음은 있었는데 싸~~~~아악 사라지네요!!
이제 모로코 역사 도시 메케네스로 향하기 위하여 기차를 기다립니다..
연착이네요...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