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회 성동초 청도 산행 및 미나리 축제 ▒
* 일시 : 3월 2일 08시
* 출발지 : 공업탑 부산방면
향긋한 미나리와 삼겹살 파티 !!
(우천불구 실시 예정)
- 총 무 -
봄기운이 살금살금 온누리에 감도는 가운데 성동초등학교 24회 산악회에서는
올해도 잊지않고 청도 미나리 밭으로 동기생 여러분들을 초대하였습니다.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친구들과 청도 인근 산행 후 미나리에 삼겹살로 우애를 다지던 일을 잊지 못하던 관계로
이번에도 만사를 제쳐놓고 봄맞이 행사에 참석하였습니다.
공업탑에 집결한 친구들과 함께 총무가 하루 전날 렌터한 12인승 승합차를 몰고 언양을 거쳐
청도로 향하던 도중, 모닝 커피도 한 잔 할겸해서 백송을 지나 어느 한 곳에서 차를 멈추고
따뜻한 커피로 목을 축입니다.
굽이굽이 돌아 청도에 다다르니 과연 미나리 단지다운 풍경들이 여기저기에 펼쳐집니다.
성곡마을에 위치한 웃음건강센터(전유성 코미디 철가방 극장) 주차장에 차를 새웁니다.
이곳에서 시작하여 청도 몰래길을 다녀 올 계획입니다.
표지판의 파란색이 성곡지로서 그 주위를 한바퀴 도는 코스가 청도 몰래길이랍니다.
오늘은 아침 일찍 출발한 관계로 시간이 넉넉하여 철가방극장에서 연극 한 편 보고갈까 하다가
시간을 아껴 점심 식사 후 창녕 우포늪 탐방하기로 의견 일치를 보았습니다.
몰래길로 출발 !!
선두야 가던말던 야생초 박사 두사람은 오늘도 어김없이 이건 뭐다, 저건 뭐다 하면서
봄나물 캐기에 여념이 없네요..
늪과 들을 지나 마을 인근의 다리를 건너고..
성곡댐의 당사나무에 도착..
성곡댐이 건설되면서 이 마을 전체가 수몰되었으나 마을 주민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마을 한 가운데에 우뚝 서서 마을을 지키고 있던 당사나무는 무사히 그자리에 남았습니다.
수몰되기 전의 마을 모습이 그림으로 남았습니다.
땅을 향해 바짝 엎드려 있는 다닥다닥 집들과 꼬불꼬불 마을길이 무척이나 경겹게 보이고
마을 한가운데 예의 당사나무 모습이 보입니다.
당사나무 아래에서 단체 촬영..
친구들의 자연스런 포즈가 멋지게 잡혔습니다.
이번에는 여학생들만..
왕년에 다들 한 미모들 하셨던가 보네요..
봄기운을 머금고 있는 성곡지 풍경.
세월을 낚고 있는 태공들 모습도 눈에 들어 옵니다.
한 바퀴 휘익 둘러 보고 주차해 놓은 철가방 극장 앞으로 되돌아 왔습니다.
흔히들 '배워서 남주나' 하는데 극장 전면엔 '배워서 남주자'라는 표어가 붙어 있네요.
여러 의미가 함축된, 과연 개그맨 전유성 다운 발상입니다.
미나리 밭으로 향하던 도중에 여러마리의 황소를 발견하고 차를 새웠습니다.
사실 황소 얼굴보다는 힘차게 용트림하고 있을 황소 불알을 찍기 위함이었는데 이리저리 각도를
잡아도 그 물건이 시야에 잡히지 않아 그냥 황소 증명사진만 몇 장 찍고 말았습니다.
성수월 마을 가던 도중에 계곡사이 흐르는 물가에 미나리 집을 발견하고 점찍어 놨던 그 집에서
미나리 삼겹살 파티를 하기로 하였습니다.
친구들이 준비해 온 점심밥과 돼지삼겹살, 그리고 각종 양념장, 소주 막걸리가 한상 가득 채워지고..
또 한쪽에선 봄가운 가득 머금은 싱싱한 미나리가 쉴새없이 옮겨집니다.
굽고 지지고
쌍글고..
그런 와중에서도 쉴새없이 건배제의는 실시되고..
아싹아싹 씹히는 감칠나는 그 맛이 백문이 불여일견이 아니라, 그야말로 백문이 불여일식입니다..
상큼한 봄미나리가 몸과 마음 속까지 말끔히 씻어주는 듯 합니다.
알뜰한 총무님은 친구들이 주문한 미나리의 수량과 무게를 확인하고 셈을 치릅니다.
거나하게 배를 채운 뒤 예정에 없던 창녕 우포늪으로 향했습니다.
창녕에 들어선 순간 길가의 거대한 고분군(群)을 발견하고 차도 한 잔 마실겸해서 차를 새웠습니다.
알고보니 여기가 그 유명한 창녕 교동고분군과 송현동 고분군입니다.
이런 기회가 아니면 언제 또다시 올 수 있을까해서 고분군들을 둘러보기로 하였습니다.
우리가 걸어가고 있는 앞쪽이 송현동 고분군이고 가운데 길 건너쪽이 교동 고분군입니다.
이 고분군들은 창녕읍 송현동과 교동의 야트막한 구릉 일대에 무리지어 있는데 5~6세기 경의
고분군이라 합니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들은 대략 천오백년 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는 거네요.
호기심 가득히 철창 안을 바라다보고 있는 모습들이 마치 고고학 연구팀 같군요.
철창너어 본 고분 내부의 모습..
고분군들을 한바퀴 둘러보고는 길건너 창녕박물관으로 향했습니다.
먼저 박물관 옆에 조성된 계성고분 이전복원관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계성고분 이전복원관에는 계성고분군의 대형 고분 1기를 이전,복원하여 내부 구조를 알아볼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이전복원관을 나와 박물관 마당에서 단체 기념사진
앉으나 서나 가만있지 못하고 끝없이 이야기꽃을 피워댑니다.
여기가 창녕 박물관입니다.
박물관에 들어서면 당시 고분축조 과정을 입체적으로 묘사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창녕을 대표하는 두 인물, 신라 진흥왕과 고대인 송현이 그림 앞 포토존에서..
신라 제24대(성동24회와 같네요..ㅎㅎ) 왕인 진흥왕(540년~576년 재위)은 신라의 대 내외적 중흥을
이룩한 인물로 역사를 통해 알고 있습니다.
적극적인 대외 정복활동을 통해 신라의 영토를 가장 넓게 확장하였는데, 창녕의 '진흥왕 척경비'를
비롯해 북한산 순수비, 황초령 순수비, 마운령 순수비에 진흥왕의 역동적 기운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국민학교 떄 배웠지요..
송현이에 대해서는 밑에서 설명드리겠습니다.
내부에 전시되어 있는 은제 장신구류와 무기류.
찬찬히 읽어보면 다 알 수 있겠금 해놨습니다.
토기로 만든 생활도구류들..
동경(銅鏡-동으로 만든 거울)은 동판의 표면을 잘 문질러 얼굴을 비춰볼 수 있게 한 것으로, 뒤면에는
갖가지 아름다운 문양을 새겨 넣었습니다.
동경 뒷면에 새긴 문양을 잘 볼 수 있도록 확대경을 설치해 놓았습니다.
송현이는 1,500여년 전 창녕 송현동 고분군에 순장되었던 16세 소녀로, 국립가야문화연구소의 송현동
고분군 발굴 조사 과정(2006년~2008년)에서 세상에 다시 나왔습니다.
1년에 걸쳐 복원되었으며 송현동 고분군에서 발굴되었다 하여 '송현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합니다.
발굴 당시 같은 고분에서 네 구의 순장자가 발굴되었는데, 비교적 훼손이 적은 뼈대를 1년여에 걸쳐 복워난 결과
턱뼈가 짧고 목이 긴 미인형에 허리둘레 21.5인치의 가녀린 여인의 모습으로 태어났습니다.
법의학의 공식에 따라 측정한 결과 키는 153.5 cm이고 또 정강이와 종아리뼈 상태로 보아 무릎을 많이 꿇는
생활을 했음을 알 수 있어 주인을 가까이에서 모시던 시녀가 아니었나 판단된다고 합니다.
국어사전을 들춰보면 순장(殉葬)이란 왕이나 귀족이 죽었을 때 그의 아내나 신하 또는 종들을 함께 매장하던 고대
장례 풍속을 말하는데 산사람을 함께 묻어버리는 그 방법이 너무 가혹하다하여 나중에는 동물이나 사람의 형태를
만들어 함께 묻었다고 어디선가 들었던 풍월이 기억납니다.
조선시대 시저(匙箸-숟가락과 젓가락)와 철협(鐵鋏-철로 만든 가위)
오늘날과 별반 다를 바 없어보입니다.
진흥왕 척경비.
원래 화왕산 기슭에 있던 것을 소풍 갔던 학생이 발견하였는데 학계에 보고된 것은 1914년이라고 합니다.
왕이 새 점령지를 다스리는 내용과 이에 관련된 사람들의 이름을 열거해 놓은 관계로, 흔히 사용하는 순수비
(巡狩碑) 대신 척경비(拓境碑)라 부릅니다.
박물관에 전시되어있는 척경비는 복사품으로, 실물은 창녕읍 교상동에 있습니다.
박물관 뜰에는 샛노란 생강나무꽃이 봄소식을 알리고 있었습니다.
다시 창녕 우포늪을 향해 출발~~
첫댓글 며칠전부터 경주집 인터넷이 시원치 않아 회사에 남아 사진 일부만 먼저 올립니다.
배도 고프고..
빨리 2부도 올릴 예정인데 인터넷이 영 시원찮네요..
고맙습니다.방에 앉아서 창녕 천여년의 고고학을 피부로 느꼈습니다. 창녕을 몇번 가봤지만 박물관은 방문 못했네요. 다음 기회에 꼭 가 보고 싶네요.친구야 여건이 안좋은데 사진 올리랴 설명붙이랴 수고했습니다.친구야 일보다 건강 먼저 챙겨서 멋진 모습으로 또 보자.
인간들이 늙어가면서...
여행은 역시 좋은가 다들 입이 귀에 걸렸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