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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 해프닝
산띠아고 체류 2박을 마친 6월 12일(금요일) 이른 아침.
뽀르뚜길 해안로의 출발지로 정한 뽄떼베드라(Pontebedra)로 떠날 준비를 마친 후 볼프강의
제의로 아침 식사를 하게 되었다.
정오가 임박하는 때 쯤에 아점(아침 겸 점심)을 하는 내 일상의 식사 습관이 볼프강에 의해서
깨진 곳은 식당 세미나리오 마요르.(巨大albergue와 同名異處)
볼프강이 어제 저녁식사 중에 아침 메뉴를 확인하고 이미 점찍었던 듯.
나의 까미노에서 데사유노(desayuno/早食)에 5€는 과도한 금액이며 유일무이한(최초.최후)
경우지만 충분히 값어치가 있는 메뉴인 것만은 분명하다.
어제 맥주 파티를 열어준 볼프강에 대한 답례로 내가 식대를 지불했다.
이것이 우리의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오랜 전통이며 한국식 더치페이(Dutch pay)다.
건건사사 즉시 분담하고 공평해야 하는 서구식의 그것보다 소소한 이해를 초월하고 품위있는
우리의 품앗이 유형이다.
식사가 끝나갈 때 니콜이 왔다.
내가 모르고 있를 뿐, 그들에게는 이미 약속된 일이었을 것이다.
오늘 귀국하겠다던 일정을 수정하는 모임인 듯.
노르떼 길의 '꼼뽀스뗄라'를 받은 후 뜨렌 매표소에서 뽄떼베드라 경유, 비고(Vigo)행 열차의
시간과 금액 등을 확인했고 확정(12시 반)한 일정을 따르려면 한가로울 겨를이 없다.
뽄떼베드라의 마리벨 로베르또(Maribel Roberto/Isabel의본명)에게 줄 선물을 사는 난제(難
題/problema)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볼프강에게 쇼핑하러 가는 길에 동행을 청했다.
그도 70 목전의 구세대지만 인접해 있는 나라 간의 동질성 문화권이니까 먼 극동의 이질적인
영감보다 나으리라 생각되어서.
동행에는 기꺼이 응했으나 쇼핑가게에서 내 관심을 끌어간 물건은 그의 동의를 얻지 못했다.
가족이나 다인이 차와 수프 등을 보온해 먹고 마실 수 있는 자기(옹기?)통과 잔 세트(set)인데.
마리벨과의 인연에 대해서는 이미 말했다.
역코스는 완주해도 '꼼뽀스뗄라'를 받지 못하는데도 그녀와 재회하기 위해 역코스 뽀르뚜 길
의 출발지로 뽄떼버드라를 택했다는 것도 이미 들려주었다.(전번에 받았으니까 不要)
이 여인(마리벨/이사벨)에게 줄 선물임을 거듭 강조했는데도 자기 아내를 기준해서 노(no)를
고집스럽게 고수했기 때문이다.
난해하지 않은 대화인데도, 마치 내가 자기(볼프강)의 아내에게 줄 선물을 고르라고 청한 꼴이
되었으니 어찌한다?
결국, 나는 그(Wolfgang)가 고른 것(자기 아내에게 줄 선물)과 다기 세트를 함께 구입했다.
내가 대서양의 미려한 비고 해안(뽀르뚜길)을 걷고 있을 때 그는 자기 아내에게 한국 늙은이를
얘기했을 텐데 뭐라고 했을까.
간밤에 오스딸의 응접실에서 한 말을 되풀이?
쇼핑 가게에서 일어난 해프닝을 말했을까.
(작은 선물이지만 그것이 그의 아내의 행복에 보탬 되기를 바랐는데 내게 보낸 그의 e-메일에
언급이 없는 것이 약간 유감이었다)
지만 쁠라따 길은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에서 마치니까)를 기약했다.
그들과는 한 파밀리아가 되었다 하나 이심전심일 뿐, 아직 서먹한 것은 서로 아는 것이 별무
상태라 그럴 것이다.
경과한 시간이 워낙 많지 않기 때문일 것이지만 그 때(2개월 후)는 적잖이 다르겠지.
오늘 니콜과 함께 피니스떼레(Finisterre/갈리시안Fisterra)~무히아(Muxia/묵시아)에 갔다가
(버스편으로) 내일 귀국하기로 일정을 바꿨다는 볼프강.
아내에게 줄 선물이 흡족한지 그도 못내 아쉬운 듯 알라메다 공원까지 따라나왔다.
(내가 귀국한 후 아내의 교통사고 뒷수발로 여념이 없음으로 인하여 그에게서 온 메일을 해가
바뀐 후에 보게 되었다.
쁠라따 길을 시도하겠다며 도움을 요청했는데 시효가 지난 후라 아무 도움도 주지 못했다.
그 때문인지 애석하게도 후속 메일이 없다)
뻬레그리노스에게 알베르게는 비할 데 없는 축복이다
알라메다 공원에서 500m 정도 되는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의 기차역.(Estacion de Tren)
전번(2011년)에 아라곤 길(Camino Aragones)의 시점인 솜뽀르뜨(Somport/스페인- 프랑스
국경)로 가기 위해서 하카(Jaca)까지 열차를 이용하느라 익혀진 역이다.
그 때, 옥신각신해서 '따르헤따 도라다'(TARJETA DORADA/60세이상 경로우대카드)를 받았
던 역.(메뉴<까미노이야기>63번 아라곤길 1 참조)
이번에는 노르떼 길의 출발지인 이룬(Irun)의 기차역(estacion de tren)에서 이미 받았다.
체류기간 연장 문제의 해결이 우선이므로 노르떼 길을 시작하기 전에 이룬 역 ~ 빰쁠로나 역
(Pamplona/나바라대학교 소재지) 왕복이 불가피했으니까.
오스테를리츠(Gare d' Austerlitz/Paris) 역에서 온밤을 달려 도착해 맨 먼저 한 일이다.
뻬레그리노의 신분에 어울리지 않는 일일 수 있으나 국철(renfe) 이용이 잦다면 적잖이(40%
內外) 도움될 혜택이다.
갈리시아 지방, 아 꼬루냐 주(A Coruña/갈리시아어, 스페인어는La Coruña)의 주도(州都) 아
꼬루냐 ~ 비고(Vigo) 열차가 12시 반에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 역을 떠났다.
무정차 간이역을 포함해 3개역(Pardon, 간이역Catoira, Vilagarcia de Arousa)를 거쳐 50분
남짓 만에 도착한 뽄떼베드라 역.
전번의 뽀르뚜 길(Camino Portogues) 때 익혀져서 낮 설지 않은 건물이다.
역사(驛舍) 앞 정면의 광장 끝에 자리한 관광안내소(Oficina de Turismo) 여직원의 친절하고
자상한 안내를 받았다.
내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는 마리벨의 스페인어 메일 내용을 약도로 설명하고 꼰차(concha/
가리비) 문양의 수제(手製) 기념품을 주는 등.
이 지점(驛舍앞)에서 남쪽으로 200m 안에 인접해 있는 알베르게(Albergue Virxe Peregrina)
에 등록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마리벨의 초대는 받았지만 숙박이 포함된 것은 아니며, 역방향(逆方向) 뽀르뚜 길(616km)의
출발 전야를 보내는 뻬레그리노라면 당당하게 이용할 자격이 있으니까.
2011년 5월 12일에 순방향 뽀르뚜게스의 뻬레그리노 신분으로 일박한 알베르게다.
그 때, 더 진행하면 다음 날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에 당도할 수 있는데도 해가 중천에 있는
이른 오후에 마감했는데 이번에도 비슷한 시간대에 입실하게 되었다.
그 때는 비고대학교(Universidade de Vigo - Campus de Pontevedra) 방문이 이유였는데
이번에는 마리벨과의 재회를 위해서.
이유는 다르지만 거듭 일찍 마감한 이 알베르게에 다시 온다면 그 때는 어떤 형국일까.
실은, 까사 뻬뻬의 지근에 뽄떼베드라의 알베르게가 없다면 마리벨의 초대가 아무리 간곡해도
뻬레그리노인 나의 방문 일정이 쉽사리 잡히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나마도 낮에 잠깐 들르는 것 이상, 일박하거나 다시 방문하는 일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뻬레그리노스 중에 더러는 알베르게 안팎의 환경에 불만을 토로하고 더 나은 곳을 찾아가지만
애당초 사이비였거나 잠시 순례자의 본분을 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뻬레그리노스에게 알베르게는 비할 데 없는 축복이니까.
등록과 침대배정을 마친 후 오스삐딸레라(hospitalera)는 쎄라도(cerrado/close)시간/10시)
을 상기시켜 주었다.(숙소가 펜스 안쪽 깊숙이 있기 때문에 문이 닫히면 입실에 애로가 있음을
이미 알고 있는데.)
그녀는 또, 마리벨의 음식점(Bar Taperia - Casa PePe)을 잘 아는 듯 더 자상하게 안내해
주었는데 극동의 늙은이에 대한 배려도 있겠지만 마리벨과 친분 관계라는 느낌이 왔다.
끼오스꼬에서 바르 따뻬리아로 커진 만큼 두터워진 마리벨과의 인연
기차역 앞에서 알베르게 앞을 지나가는 라몬 오떼로 뻬드라이오 차로(Rúa de Ramon Otero
Pedraio)를 따라 열차 레일 아래로 난 지상터널을 통과, 남하한다.
PO542와 EP0002도로의 원형 교차로에서 후자를 따라 잠시 남하하면 좌측 도로변에 위치한
선술-음식점 '바르 따뻬리아 - 까사 뻬뻬'(BAR TAPERIA - Casa Pepe).
남쪽에서 북상중인 뽀르뚜 길 뻬레그리노스가 EP0002도로를 따라서 뽄떼베드라에 진입하는
들머리 집이다.
'레돈델라(Redondela) ~ 뽄떼베드라' 는 18km 남짓에 불과하기 때문에 하루 거리로 부족한
순례자들은 이 지역을 지나치지만 이 곳에서 1박하려는 이들은 대개 들르는 바르(Bar).
레돈델라에서 까니꼬우바 고개(Alto da Canicouva/145m)를 넘은 후 완만한 내리막 숲길을
얼마쯤 내려가서 있던 끼오스꼬(quiosco/kiosco/노점상)의 후신이다.
(이 글을 쓰다가 위성지도를 검색해서 확인된 것은 당시의 간이시설이 아무렇게나 흩어져서
끼오스꼬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그늘 있는 의자에 앉아 잠시 쉬고 있는데 주인녀가 음료수 1캔을 들고 왔다.
먹고 마실 것이 배낭 안에 충분히 있으므로 사서 마실 생각이 없으나 자리값이겠거니
하고 마신 후 값을 지불하려 하는데 주인녀는 손사래를 치며 한사코 사양했다.
장도를 축하하는 뜻에서 그냥 주고 싶었을 뿐이라는 그녀(Isabel).
여비가 충분한 순례자니까 받으라 해도 막무가낼 뿐 아니라 옆 청년들도 거들었다.
호의를 받아들이라는 것.
1유로 짜리 캔에 불과하지만 계산이 가능한 호의인가.
귀국 후 고마웠다는 인사와 함께 찍어온 사진을 보내준 메일에 답장이 왔다.
<QUERIDO jkeykim (IMMANUEL ) ME ALEGRO MUCHO QUE SE ACORDARA DE MI ME
ALEGRA SABER QUE ESTA USTED BIEN. AQUI SIGUEN PASANDO MUCHOS PEREGRINOS
PERO USTED ES LA PERSONA MAS ESPECIAL QUE PASO POR MI QUIOSCO POR DONDE
USTED PASA APORTA UNA PAZ ESPECIAL EN EL CORAZON DE LAS PERSONAS ESO FUE
LO QUE ME PASO A MI POR ESO SI A USTED NO LE MOLESTA
LE SEGUIRE ENVIANDO ALGUN CORREO ELECTRONICO CON NOTICIAS DE PONTEVEDRA>
Dear 진기킴(임마누엘)
나를 기억해주어서 무척 기쁩니다. 잘 계신다니 다행입니다. 여기에는 많은 순례자들이 지나
가고 있지만 당신이 나의 끼오스코를 거쳐간 가장 특별한 분입니다.
당신은 사람들의 마음에 특별한 평화를 가져다 주었고 나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괜챦으시다면 계속 폰테베드라 소식을 메일로 보내겠습니다.>(메뉴'까미노이야기 60번글中)
이렇게 해서 맺어진 인연이다.
참으로 쉽게 찾아간 뻬뻬와 달리 마리벨과의 첫 재회는 잠시 뜸 드리는 시간이 필요했는가.
들어서는 나를 확인 절차도 없이 맞느라 법석인 것은 바텐더를 비롯해 종업원들이었으니까.
마리벨로부터 귀가 아프도록 들어서 물을 필요 없었다는 그들의 연락을 받았는지 마리벨이 4
년 전의 미소형 그대로 달려온 것은 잠시 후였다.
부득이한 일 때문에 나갔지만 연락을 당부했다는 것.
먼 타국, 이베리아 반도에서 처음 만난 순서로는 재회 1번이 나바라대학교의 호세 안또니오
페르난데스(JAF/Jose Antonio Fernadez) 박사다.
그러나, 그도 불가피한 원거리 출장으로 성사되지 못하였기 때문에 마리벨이 까미노 인연의
첫 재회자가 된 것이다.
내 아들과 연배라 그런지 멕시코, 미국 등 외국에서 딸을 만났을 때와 유사한 느낌이었는데
그녀 역시 진정으로 환영하는 마음임을 느낄 수 있어서 기뻤다.
해프닝이 있었던 다기(茶器) 외에도 선물꾸러미에 함께 있는 부채와 산띠아고 그림접시, 나의
백두대간 사진엽서 등 모두를 제 위치 찾아 진열하는 그녀도 나와 다르지 않게 기뻐하는 듯.
우선, 맥주를 마시며 저간의 일들을 이야기 나누는 사이에 나를 위한 주방의 특별 요리라는
뽀요(pollo/chicken)와 메뉴판에 없는 음식들이 비노(vino/wine)와 함께 나왔다.
오늘은 볼프강의 권유로 전에 없이 아침식사를 한 날이다.
그래선지, 늦은 점심이지만 시장기가 전혀 없는데도 음식 맛이 그만이었다
.('시장이 반찬'이라 하건만)
어찌나 좋은지 비워진 접시들의 리필(refill)을 사양하지 않았으며 나의 까미노 생활에서 전무
한(후무도 했다) 이 음식을 다음에 또 만들어 주겠다고 마리벨이 약속할 정도였다.
(쁠라따 길을 마치고 다시 들렀을 때 마리벨은 약속을 지켰다)
시에스따(siesta/점심 후의 낮잠, 휴식시간)가 시작된 오후.
비로소 영업장을 살펴보게 되었다.
단지 뻬레그리노스의 길가(Camino邊)일 뿐 황량한 산간지, 산촌의 끼오스꼬에서 외곽이기는
해도 큰 도시로 진출하여 경이롭게 성장한 마리벨의 작지 않은 바르 따뻬리아.
고객의 양태도 가히 혁명적으로 바뀐 것 같다.
시에스따인 오후 느지막하게 바르에 들른 마리벨의 작은 딸을 만났다.
언뜻, 나이차가 조금 큰 자매 사이로 보기 십상일 듯 한 모녀간이다.
가족 관계를 비롯해 그들의 문화와 자칫 충돌하기 쉬운 분야는 피하며 담소를 계속했다.
영어를 하는 까마레로(camarero/bartender)가 합석함으로서 한결 편하게.
과 함께 3모녀가 가족의 전부라는 것.
얼핏 보아도 정상적이 아니라고 생각되었지만 나는 그녀의 가족사에 관여할 위치가 아니기
때문에 내 딸의 도움을 받아 보낸 것이 각 연령대의 화장품(cosméticos) 세트였다.
한국산 화장품이 이 곳(이베리아 반도)에서도 인기 있고 선호도가 높다니까.
한데, 빠른 도착(나와 재회하기 여려날 전에)을 위해서 항공편으로 보낸 물건들이 미착(未着),
오리무중 상태였다.
딸이 추적한 결과는 황당했다.
상당한 관세 품목들이기 때문에 세관에 묶여 있다는 것.
이런 경우, 당국자는 수취인에게 수령 여부를 빨리 물어야 하는데 만만디로 방치 상테라니?
세금을 납부하고 찾아가거나 이를 거부하면 발송지로 반송한다는데.
딸이 마드리드에 유학중이던 1990년대 초에는 물건들을 무시로 보냈는데 EU의 탄생 이후에
까다로워졌다나.(다른 사람들에게 보낸 물건들도 더러는 수취 거부로 반송되어 왔다. 誠意가
세금과 저울질의 대상이 되는 것이 야속하지만 문화적 상이 때문이라면 할 말 없다)
세관으로부터 뒤늦게 알려 왔단다.
정성이 담긴 선물을 세금 때문에 반송하다니 언어도단이라며 귀하게 사용하여 예뻐지겠다는
마리벨이 되레 고마웠다.(얼마 후에, 지인을 통해서 어렵잖게 찾았다는 연락이 왔다)
걱정을 동반하는 인연, 그래서 맺지 않으려 다짐했건만
시에스따가 끝나고 영업장이 바빠지는 시간에 밤에 다시 들르기로 하고 돌아온 알베르게.
만원이며 장마당을 방불케 하는 분위기인데다 4년 전과 달리 아주 촌스러워졌다 할까.
메인 루트 중에서 피스떼라 길과 함께 가장 평이한 뽀르뚜 길이다.
더구나, 대부분이 리스보아(Lisboa/뽀르뚜갈의 수도 Lisbon)의 5분의 2도 되지 않는 뽀르뚜
(Porto)를 시발점으로 하여 올라오고 있는 240km짜리 간이 뻬레그리노스다.
무용담을 생산할 난(難)코스가 어디에 있으며 무슨 전략이 필요하다고 용맹무쌍한 개선장군
처럼 소란을 피우고 있으니....
어디에나 있기 마련인 잘난체 하는 사람들 때문인데 뻬레그리노스의 질적 저하를 의미한다.
정작 순례자들은 어려움을 침묵기도로 극복하는데 빈 수레가 요란하다잖은가.
자주 접하게 되는 이런 경우를 극복하는 내 방식은 밖으로 나가서 걷는 것인데, 이 시간에는
마리벨의 바르 따뻬리아로 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마리벨이 보이지 않은 까사 뻬뻬.
환대를 받은 것 말고는 어떤 용무가 있는 것이 아니므로 실망할 것은 없지만 바르 따뻬리아의
러시아워에 주인 부재의 의미가 왠지 불안하게 느껴졌다.
도착한 낮에도, 손님들로 북적대는 중에도 야릇한 분위기를 느꼈는데.(負債가 있는듯한)
끼오스꼬와는 비교할 수 없는 애로들의 극복이 쉬운 일인가.
그럼에도 속 좁게 허전하기는 했지만 맥주 1잔을 마시며 긍정적인 애로 때문일 것으로 생각을
돌리고 돌아온 알베르게.
널따란 야외 공간 뿐 아니라 실내의 휴게공간도 드물게 넓고 편한데, 상당한 수가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를 목전에 두고 상념을 정리하고 있는가.
전에 나도 이 알베르게에서 그랬으니까.
그 때, 나와 앞서거니뒤서거니 했던 이들은 모두 이곳을 지나쳤기 때문에 이 알베르게에 내게
낯익은 얼굴이 없었다.
이번에는 역코스인데다 이 곳이 출발지점이기 때문에 있을 리 없다.
내가 그렇다면 나를 상대하는 이들도 마찬가지.
낯이 설다며 까닭을 묻는 이들에게 일일히 대꾸하고 싶지 않은 저조한 기분이었다.
아무와도 말섞고 싶지 않은데, 대꾸를 하면 엔드리스 테일(endless tale/끝없이 이어지기)이
되기 때문에 급히 개발한(?) 약인데 특효를 발휘했다.
반 귀머거리(semideaf) 늙은이(실제로 한쪽 귀가 난청상태다)라 큰 소리로 말해야 한다고.
하지만 내 말을 듣기 위해서 목청을 높이겠는가.
대부분의 뻬레그리노스가 꿀잠을 자고 있는 한밤중인데.
특효약마저도 필요 없게 된(상대가 될 아무도 없으니까) 심야인데도, 날이 바뀌도록 돌아올 줄
모르는, 집 나간 나의 잠.
천형(天刑)에 다름아닌 기형 척추로 인한 고통에 오지랖 넓은 생각들이 가세하기 때문이다.
영업장을 자꾸 비워야 하는 마리벨의 사정까지 걱정으로 다가와 있는 것.
확인된 아무것도 없으며, 틀린 짐작일 수도 있는데 왜 이럴까.
걱정을 동반하는 인연.
인연이란 이처럼 두 얼굴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맺지 않으려고 작심을 거듭하였지만 마음 먹는
대로 되는 일인가. <계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