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대와설렘 그리고 일말의 불안감 속에 일주일이 갔다.
일요일 오후면 몇십년을 바라만 보던 그곳에서 내려다 보고 있겠지!
문제가 생겼다.
금요일 저녘부터 목이 좀 칼칼 한것 같더니.토요일 오후 부터는 손가락 하나 움직일수
없을 정도 로 오한이 들고 지독한 몸살에 정신마저 혼미해온다.
결정적인 순간에 이게 뭐람. 지금껏 살면서 병치레 라곤 모르고 지내지만 십수년 전부터
요상하게 일년에 한번씩은 꼭 지독한 몸살을 격는다 그러곤 일년 "뚝-"이다.
보통 늦겨울 초봄 쯤 그랬는데 올해는 그게 지금이다.
원래 약은 잘먹지 않는데 날이 날인지라 일찌감치 지어먹고 누웠지만
잠을 들수가 없다. 오한이 나서 사시나무 떨듯 한다. 겨울이불 꺼내 달라했다.
오뉴월에 겨울이불 덮어쓰고 있는 내 모습을 보고 안스러운 모양이다.
무게감이 있으니 그래도 좀 견딜 만 하다.낼 아침까지 나아야 할텐데..
돈벌이 가는것 같으면 못가게 할건데 그동안 교육 받느라 산에 다니던 열성을
생각하면 가지마라 소리도 못하고 아내가 어쩔줄을 몰라 한다.
새벽에 일어나야 하는데 쉽사리 숙면에 들지 못한다.
갑자기 생각났다. 낼 졸업식때 답사 해야 하는데 아직 준비 못했다.큰일났네!.
"팔자다.팔자.뭔일이던 참 요란하게 한다" 걱정스레 한마디하는 아내말 무시하고
억지로 일어나 컴퓨터 앞에 앉았다.
몇일전에 교육생 대표 답사 준비 하란 소릴 들었는데,이놈의 글이란게 그렇다.
필이꼿쳐야 맘속에 생각 들이 줄줄줄 나오는 거지 억지로 짜낸다고 써지진 않는다.
아무리 시간을 많이 줘도 마음 동해서 글쓰는 시간은 잠간 이다.
지난시간들 기억하며 간간히 품었던 생각 대충 정리하여 프린터 하고 시간을 보니
1시 가 지나고 있다. 이거 내가 너무 오바 하는거 아닌가? 억지로 잠을 청한다.
혹시 못 일어 날까봐 2개나 셋팅 해 놓은 알람이 새벽을 요란하게 깨운다.
짧은 시간이지만 숙면을 한것 같다.다행이다.근데 일어서니 다리가 휘청한다.
잠시 앉아 있으니 아내가 제발 나가지 말았으면 한다.나도 자신 없다.
졸업식도 있으니 나가긴 나가되 억지로 바위는 하지 않겠다고 약속 하고 스스로도
다짐하고 집을 나섰다.
도선사 6시 도착 했는데도 주차장에 빈자리 하나없다.
순진하게 전날 비박 들어오는 사람들 차가지고 오는건 생각도 못 했다.
7시 약속 이지만 기다리지 않고 동기생 에게 전화 해 놓고 혼자 먼저출발한다.
같이 출발하면 따라가지 못한다. 처질게 뻔 하다.
하루재 올라 서기 까지 열번쯤 쉬었을 거다.
야영지 도착하니 어제 비박 들어온 우리팀들이 반갑게 맞아준다.
갑자기 생기가 솟는다.사방에 우리편들이 (언제부터?) 있으니 든든하고
은근히 맘 속으로 욕심이 생긴다.
바위 밑에 까지 가보자 .팀등반에 마음만 갖고 미련 떠는 것도 민폐다.
도저히 힘들면 거기서 돌아서도 되니까....
조편성을 하고 올라갔다. 팀원들이 모두 기대가 크다.
어찌된일인지 몸이 다 나은것 같다.군중속에 있다보니 분위기에 휩싸이는 가보다.
그래 가자! 해보자 까짓거.
여정길 이래나 건양길 이래나 듣고도 금새 잊어버렷다.
하여간 부근의 3개 코스를 분산해서 조별로 등반이다.
코스는 생각 보다 덜 난해 해보인다.
초보들 이니 쉬운 코스 택했겠지,교육 받을 때 보단 오히려 수월 한것 같다.
두번째로 올랐다. 어렵잖게 첫피치 눈꼽만한 테라스다.
이런거 보면 교육과정이 정말 군구더기 없이 알찼던게 아닌가 느껴진다.
수강료 한푼 받지 않는 교육 이면서도 온 열성을 다해 가르쳐 주던 강사들의
열의에 잠시 고마운 생각을 해본다.또 이런 선택을 하게된 내게도 행운이다.
다만 교육 받을 땐 짧은코스 등반후 편하게 신을 벗어 놓고 쉬기도하고 했는데
이번은 그게 아니다 . 한피치 등반후 조그만 발바닥 하나 제대로 붙일수 없는 곳에서 후등자 확보,
그리고 또 등반 때로는 매달려 발바닥 구겨진채로 대기, 가득이나 안좋은 컨디션에 힘이 더든다.
계속되는 연속등반이 지치게 만든다.그리고 인수 바위에도 정체가 보통 아니다.
다리에 힘이 하나도 없다 . 온몸의 뼈마디 마디 마다 바늘로 콕콕 찌르는것 같다.
갈길은 아직 먼데 힘은 없고 볼트 한곳를 모른척 하고 밟고 올라선다.
반칙! 학생장 반칙! 하는 소리가 들릴것만 같다.
그런들 어쩌랴! 누구 말마따나 인생살이 별거 있나요.뭐!
여지껏 험한 세상 살아 남은 뻔뻔함이 한걸음 편하게 올라서게 했다.
갈길도 먼 팀등반 인데 고지식 하게 힘 빼며 길막고 낑낑 댈 필요가 있나
괜히 밑에 생초보들 불안 하게스리, (변명이 그럴듯..)
참 많이도 붙었다. 이런바위산 대여섯개는 더 갖다 놓아도 모지라 겠다.
사진으로 볼땐 군데 군데 질서 있게 붙어 차분하게 의논 하며 길 탐색 해서 올라 가는줄 알았는데,
이건 돗떼기 시장이 따로 없다.여기서 소리 지르고 저기서 소리 지르고,
나비의 날개짓에도 중심을 뺏길수 있다 했는데 초보들 에겐 고역이다.
갑자기 어디서 나타 났는지 다른 팀의 선등자가 내 앞을 올라 간다.
나는 동료의 확보 의지하고 끙끙 대며 올라 가는데 그양반 나같은 교육생 보란듯이 선등이다.
괜히 불안하다. 폼을 보니 볼트 2,3m 위에서 홀드를 찾고 있는 모양인데 미끄러지면 내머리 위로 직통이다.
아이고! 제발 좀 그러지 마라 18, 도망 갈때도 없는데 촛짜 불안해서 굳는다.
인수봉 어디서 관리 하는지 일요일이나 휴일 같이 피크타임 만이라도 허가제 등반 했으면 좋겠다.
실력 덜한 놈도 느긋하게 오를수 있게 말이다.
이렇게 몰릴때만 이라도 바위가 수용할 만큼만 허가제로 운영 한다면 직장생활에 시달린몸
잠이라도 충분히 자고 여유있게 바위와 함께 할수있지 않을까 초보 입장에서 생각 해본다.
근데 이상한걸 봤다. 초행길이니 어느부근 인지는 기억 못하는데 희안하게 밟고 올라가기
좋은 홀드가 일정하게 있어 쉽게 올랐는데 아무리 봐도 부자연스런 모습이다.
짐작컨데 분명 인공적인 거다. 누가 파 놓았다.
초보가 힘들어서 이높이 에서 젓가락으로 팟을리도 없고, 이럴 만큼의 연장 갖고 올라올 정도면
그래도 여러번 와 봤던 고수 아니었을까?. 레드카드 감이다. 내가 봐도 이건 아니다.
도대체 양식 이나 있는건지, 고수가 자기 올라 가려고 이렇게 해 놓았을리는 없고 그러면...
답이 나오네, 무분별한 등산학교나 날라리 같은 산악회, 이렇게까지 해가면서 꼭 올려 놓아야 하는지?
차라리 슬링이라도 설치해 놓고 초보자용 이라고 해놓으면 되지, 이런 지랄을 해놓나.
담에 또 기회가 있으면 이길은 오르지 않으리라.
중간에서 대기하고 있는데 전화통 요란하게 울리길래 보니 우리기수 막내다.
이놈 오늘 생일이란 소리 전에 흘러가듯 들은것 같아 축하 해 줄려고 불편한 몸 무릅쓰고
생일케익 하나 사들고 왔더니 아침에 안보이기에 많이 섭 했는데 시간을 잘못알아 이제
도착 할때 됐다고 어딨냐고 묻는다.반갑다. 같이 교육받는 동기지만 정이들어 친동생 같고
친구 같고 정겹다.그래도 못온 사람이 둘이다 여자한분 몸이 불편해서 못오고
남자 동기 한분 집안대사 때문에 못오고, 정말 많이 아쉬운 맘 이다.같이 했으면 좋았을걸...
시간이 너무지체 되다보니 중간에서 코스변경이다. 이젠 인수b 란다.
경험자들 하는말 들으니 힘든 구간은 다 올랐다 그런다.
오아시스라 이름붙여진 곳에서 간만에 신벗고 엉덩이 붙이고
아래를 내려보고 있으니 안 올라 왔으면 큰 후회 할뻔 했다.몸 아픈 줄도 모른다.
나도 몰래 웃음이 실실 나온다.내팔자 어느구석에 이런 인연이 있었는지...
나머지 구간 짧은 시간에 쉽게 올랐다.언제 와 있었는지 관록많은 노병들이 반겨준다.
제일 먼저 눈에 띄는게 건너편 백운대 다.석달전 아내와 저곳에서 점심 먹으며
여기 있는 사람들을 보며 "우리평생에 저곳은 꿈도 못꾸겠지" 별의미도 없이 건성으로
주고받던 말이 생각나서 "정말 인생이란 맘 먹기 달렸구나" 싶은게 이런 결정을 했던
나 자신 스스로 얼마나 대견 스러운지 모른다. 백번 천번 생각해도 잘했다.
멋있다. 저쪽에서 느낌과는 분명 다르다. 후훗 여기가 인수봉이다.
나이 오십둘에 두달동안 여덟번 교육 받고 여기 왔다.정말 아름다운 날이다.
인수봉 테라스 위에 고인돌 같은 바위가 하나 있다.
"저기 올라 가야 정상이야" 회장님 웃으며 한마디 하신다.
올라가서 사진 한장 찍을까, 하다가 금방 생각을 접었다.
다음에 또 와야 할 이유로 남겨두자.
우이동 O2 강당 에서의 졸업식은 예상외로 체계적이고 준비 많이 한 흔적이 보인다.
엄숙한 졸업식이 학창시절 생각나게 한다.어떤 형태의 배움이던 그럴수 있다는것은 축복이다.
내가 교육생 대표 답사를 할 차례다. 어젯밤 오한에 덜덜 떨어 가며 쓴 글이다.
깊은곳에 숨겨져 지나쳐 버릴것 같았던
내인생의 소중한 한부분이 이렇게 깨어 났습니다.
영원히 갈수없는 머너먼 나라 같았던 그품에 우리는 안겼습니다
알프스란 이름아래 맺은 인연들은 소중한 추억이 되어
이제 그리움으로 자리 하려 합니다
오가며 바라만 보면서 꿈꾸었던 일들은 현실이 되었고
때늦은 나이에 배움의 시간들은 우리들의 시계를 먼 옛날로 돌렸습니다
같이한 두달여 시간들은 세상을 다시, 더넓고 더크게 볼수있게한
유익한 시간 들이었습니다
이제 우리 모두는 한사람 한사람 알프스의 밀알이 되고
전령사가 되어 어느산 어느 골짜기 에서도
산을 사랑하고 바위를 사랑하는 그 순수한 이념들을 꽃피워 내겠습니다
보고 싶을 겁니다
인수바위와 선인의 바위가 우리 곁에서 바람의 이야기를 전해 올때 마다
알프스를 그리워 할 것입니다.
무었보다 감사 한것은 강도 높은 교육과정 에도 불구하고
어느 누구 한사람 티끌만한 상함도 없이 이자리에 함께 할수 있게 이끌어주신
강사님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림니다.
다시 한번 고맙습니다.
2008.6.1 알프스 등산학교 1기 졸업생 대표
모든게 끝났다, 그리고 또 시작이다.
원하는걸 얻었다. 좀더 넓은 범위의 산을 갈수 있게됐다.
천화대 릿지도 한편의 시를 위한길도 이젠 꿈을 펼칠수 있다.
산 고참인 후배놈에게 자랑 하려고 전화했다.
"얌마 나오늘 인수봉 했다."
"어이구 성님 수고 하셨소. 근데 나는 그거 첨 올랐던게 몇년 전 이더라 ~ ?"
얼씨구 은근히 들떠 있는놈 기죽이네.
"짜식 너 내 나이에 올라 봤어?" 우하하 찍소리 못하네.
역시 안되면 나이로 밀어 붙이는게 최고다.
"까불고 있어"
뒷풀이 끝내고 차몰고 돌아 오는길에 졸음이 쏱아진다.
술도 한잔 안 먹 었는데 깜빡 정신 차리면 제멋대로 가는걸 느낀다.
큰일 나겠다.고수부지에 세우고 잠시 휴식 한다.
허허 그동안 무리 했다. 인정 할건 인정 하자.
나이는 숫자에 불과 하단 말 그거 억지다.나이는 세월의 흔적이다.
그래 사십대는 사십대 처럼 지내고 오십대는 오십대 처럼 사는게 제일 세상을
잘 사는 거다. 그래야 삶이 아름답다.
집에 오니 아내가 걱정스레 반긴다. "나 어디 갔다 왔냐고 한번 물어봐"
아내가 웃으며 "어디 갔다 왔는데?"
"인.수.봉"
* 우린 인생에서 앞에 놓여진 시간들에 대해 얼마나 많이 머뭇 거리며 흘려 보냈을까?
첫댓글 졸업을 축하드립니다. 하지만 이제 시작이겠지요? 항상 옛날옛적에님의 열정이 부럽습니다.
아름다운 바위세계에 입문을 축하드립니다. 앞으로도 쭈~~욱 안전.즐건등반 하세요
축하드려요..
축하드립니다.
오우..인수 정상에서 노란티셧에 막걸리 드신분들이셨군요..바로옆에 계셨네요..
옛적에님, 한번은 제 선배님이 감기가 오셔서 그주 설악산 산행을 걱정하시길래 여쭤본 적이 있죠. 지금까지 아파가지고 등반가서 진짜로 아픈적이 있냐고요. 한번도 없다고 하시더군요. 등반하면 다 나나 봅니다.ㅎㅎ x,오줌도 안마렵고요. 좋은 기회를 잡으신 거구요. 전혀 늦지 않으셨습니다. 화이팅!!!
장하십니다. 교육 마치신거 축하합니다.
잘읽었습니다 인수 머리 올리심을 축하드립니다
늦게나마 졸업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저 역시, 그날 16년만에 인수와 입맞춤 해봤습니다..제가 아는 흥수선배님 팀 이셨군요.. 감동적인 인수봉 졸업등반 영원한 추억으로 간직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