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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BC 제08강 하나님의 나타나심과 언약, 법 : 출애굽기(2)
- (2)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관계 출애굽기 19:1-6(구약p.111)
지난 시간 저희들은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주신 이유를 생각해보았습니다. 무엇이었습니까? 자식을 불쌍히 여기시고, 아들의 가난함을 가슴아파하시는 하나님, 당신의 백성들의 고통과 압제를 보시고 들으시고 이끄시사 해방시켜주신 하나님께서, 바로 그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향한 똑같은 마음으로 주신 말씀, 그래서 그 말씀은 사랑으로 주신 말씀이요, 은혜로 허락하신 말씀이라는 것이 첫 번째 였습니다. 오늘도 은혜를 망각해버리기에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들이 전부 무거운 짐이요, 억압이요, 속박이요, 굴레처럼 느껴지는 것이라고 말이지요? 그래서 다시금 그 은혜를 기억해 내자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할 수 있으면, 그 놀라운 긍휼과 자비를 베푸신 하나님, 그분을 사랑하며 살 수 있으면, 오늘도 이전보다 더욱 사랑합니다. 찬양의 고백이 진심으로 마음으로부터 우러 나올 수 있다면, 우리는 조금도 그분의 말씀이 어렵거나 힘들지 않을 것입니다. 뒤로 미루거나 회피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하나님의 은혜를 늘 기억하는 복된 분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우리는 광야 이스라엘 백성보다 더욱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무엇이었습니까? 단번에 영원하고 완전한 속죄를 이루어주신 예수님을 구주로 모신 사람들입니다. 하나님 사람이 되사 대신 죽어주신 은혜를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오늘도 더욱 그 은혜를 잊지말고 기억하고 더욱 감사하며 증거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두 번째, 십계명을 주신 이유는 우리를 향한 기대가 있으시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어떤 기대였습니까? 우리를 당신의 형상대로 지으시고, 당신의 호흡을 불어넣어주신 그 사실부터 벌써 우리로 하여금 당신처럼 살기를 소원하셨다는 뜻이라는 말씀을 드린 바 있습니다. 이 세상을 살면서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하나님과 함께 살면서, 하나님의 모습을, 하나님의 마음을, 하나님의 생각을, 하나님의 뜻을,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꿈을 세상가운데 드러내고 보이는 삶을 살라고 하신 것이지요? 그렇게 당신의 분신으로 우리를 지어주셨습니다. 그리고 말씀드렸지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의미를 말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응답할 수 있는 존재였습니다. 하나님과 소통할 수 있고, 하나님의 뜻을 헤아릴 수 있고, 그분의 마음을 알고 행할 수 있는 존재, 그래서 세상을 다스리며 통치하되, 섬김으로 돌봄으로 정원사로서 청지기로서의 역할을 감당해야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아담과 하와 이후의 몇몇 사람들에게만 기대하신 역할이 아닙니다. 수천 년 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기대하신 것도 아닙니다.
오늘도 그 기대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오늘도 거대해 보이는 세상 앞에 주눅들어 노래를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우리를 향하여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나 스스로 나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은 지 오래인 우리에게 비전을 주시는 것입니다. 모세에게 찾아와 “내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고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라” 하신 것처럼, 비전을 가지고 계신 것입니다. 세상도 우리를 기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손가락질 하고 비방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할 수 있다고 하십니다. ‘내가 여전히 기대하고 있다’고 하십니다. “못합니다” 이야기하는 우리에게 예수님으로 증거를 삼으셨습니다.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더럽고 추하고 악하고 냄새나는 세상 속에서 순결한 하나님의 아들로 살아가는 것이 가능한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마귀의 유혹을 이겨내고, 대적자들의 음모와 술수 속에서도 분명하고 흔들림없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음을, 또한 수십 년을 이 땅에 사셨음에도 흠없는 속죄제물로 하나님께 드려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런 하나님께서 오늘도 우리를 향하여 말씀하고 계십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2)
오늘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들을 통해, 더욱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우리를 향한 기대를 읽어나가실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그래서 왕들에게 이런 명령을 주셨던 것입니다. 오래전 읽어보셨던 본문인데 한 번 더 확인해볼까요?
“그가 왕위에 오르거든 이 율법서의 등사본을 레위 사람 제사장 앞에서 책에 기록하여 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어 그의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과 이 규례를 지켜 행할 것이라”(신명기 17:18-19)
“율법서의 등사본을 제사장 앞에서 책에 기록하여!”
he is to write for himself on a scroll a copy of this law
여러분, 성경쓰기는 이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밖에 없는 성경을 내가 평소에도 읽을 수 있도록, 내 곁에 늘 가까이 둘 수 있도록, 성전에 하나밖에 없는 그 성경을 내 책에 옮겨적는 마음으로 쓰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쓰셨다고 끝이 아닙니다. 평생에 곁에 두고 자꾸 읽으셔야 합니다. 그럼 어떻게 된다구요?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하나님의 비전가운데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읽어볼까요?
”그리하면 그의 마음이 그의 형제 위에 교만하지 아니하고 이 명령에서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리니 이스라엘 중에서 그와 그의 자손이 왕위에 있는 날이 장구하리라”(신17:20)
오늘도 하나님은 이런 축복을 예비하시고 우리에게 말씀을 주시는 줄 믿습니다. 더욱 말씀을 쓰고 읽고 묵상해나가는 가운데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은혜로 더욱 겸손하고, 하나님의 비전과 꿈 가운데, 우리 자자손손이 쓰임받으시는 복된 분들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오늘은 은혜로우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비전을 먼저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각자에게 허락하시는 기대와 비전을 다를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의 백성들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갖고 계신 마음이 있으십니다. 그것을 소개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어떤 관계에 있기를 원하셨을까요? 그리고 은혜받은 우리를 통해 무엇을 이루기를 원하셨을까요? 다시말해 무엇을 기대하시며 은혜를 베푸시고 말씀을 주셨을까요? 그것을 함께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그 기대는 저 오래전 아브라함을 부르시던 때로 올라갑니다. 거기서부터 보시지요.
오랜만에 교재 71쪽 첫 번째 단락부터 읽어봅니다. 하나님은~ 시작!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커다란 민족을 형성하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차지하게 되며, 또 복의 근원이 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얼마 지난 후 그와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그 세 가지 언약들 약속들 성경에서 확인하여 읽어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창12:1-3)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창15:13-14)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과 더불어 언약을 세워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 곧 겐 족속과 그니스 족속과 갓몬 족속과 헷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르바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여부스 족속의 땅이니라 하셨더라”(창15:18-21)
“보라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내가 너로 심히 번성하게 하리니 내가 네게서 민족들이 나게 하며 왕들이 네게로부터 나오리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네가 거류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온 땅을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창17:4-8)
다시 교재로 돌아와서 세 번째 줄 뒷부분입니다. 그러나~ 시작!
“그러나 이제 하나님은 모든 백성과 더불어 언약을 맺으시려 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시고 어언 400여 년이 지난 다음에 다시 백성들과 언약을 맺으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과 이스라엘은 새로운 관계로 들어갑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며 중노동에 허덕이다가 하나님께 부르짖었었을 때, 하나님은 기사와 이적으로 그들을 구출해 내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시내산에서 하나의 민족이 된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그 처음은 소유, 둘째는 제사장 나라, 셋째는 거룩한 백성으로 인치신 것이었습니다.”
네, 바로 여기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비전이 나옵니다. 아브라함 때로부터 거대한 민족과 복을 약속하시고, 애굽에 내려가 430년을 지내게 하시고, 마침내 오늘 광야 한복판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을 맺으시는 하나님께서 드러내 보여주신 당신의 비전은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으로부터 다시 한번 확인해보겠습니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출19:5-6)
자, 어떤 관계를 맺고 싶어하셨지요? 첫 번째가, 내 소유, 두 번째가 제사장 나라, 세 번째가 거룩한 백성입니다. 이를 위해서 지금까지 역사를 이끌어 오셨고, 이를 위해서 지금 당신의 말을, 당신의 언약을 허락하시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은혜요, 비전을 담아 허락하신 이 세 가지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자, 교재를 먼저 읽고 나서 말씀 이어갑니다. 71쪽 제일 아랫단 읽습니다. 이스라엘은 시작!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소유’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개인재산 또는 사유재물이 아닙니다. ‘소유’는 대리통치자에게 주어지는 직명으로 사용되는 용어입니다. 하나님의 ‘총애’, 하나님의 ‘오른팔’ 등으로 해석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될 것이다”라고 명시되어 있는 것은 하나님이 온 민족을 다스리는데 그 중에서 이스라엘에게 특별한 사명, 하나님의 통치를 대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 여기서 조금 설명이 필요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소유라고 하면, 또다시 숨이 막혀옵니다. 우리는 소유권, 이 등기부등본 때문에 골치가 아프고 머리가 아픈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똑똑한 사람들, 법을 잘 아는 사람들이, 머리 나쁜 사람들, 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을 골탕먹이고 힘들게 만드는 것이 ‘소유’로부터 나오는 것만 같기 때문입니다. 집주인, 땅주인, 소유를 거느린 사람이야 소유가 좋지만, 소유가 되어 살아야만 하는 사람은 참 불편한 것이지요? 사이 좋던 사람들이 사이가 깨어지면 제일 먼저 이야기하는 것이 바로 또 이 ‘소유’가 아닙니까? 이것도 내가 해온 거고, 이것도 내가 해온거고, 이건 우리 엄마가 해주신 거고, 저것도 내가 산거고, 그쵸? 그래서 소유를 이야기하려고 하면 뭔가 문제가 있구나라는 생각부터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소유’는 그 개념이 조금 다릅니다.
‘소유’를 뜻하는 히브리어는 ‘세굴라’인데, 이 단어는 성경 속에서 ‘사유’(대상29:3), ‘보배’(전2:8), ‘기업의 백성’(신7:6, 14:2, 26:18), ‘특별한 소유’(말3:17) 등으로 사용이 됩니다. 은과 금과 같은 재산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특별히 사람에게 사용되는 용어인 것이지요? 이 단어의 용법은 고대 중동지방에서 발견된 사료들로부터 더욱 확실해지는데, 왕에게 사용되던 단어입니다. 주전 15세기 경으로 추정되는, 터어키의 오론테스강 유역에 있던 성읍국가 알라카(Alalakh)의 압반(Abban) 왕의 인장이 발견되었는데, 바로 여기에 히브리어 세굴라에 해당하는 아카드어 ‘시킬툼’(sikiltum)이라는 단어가 ‘신의 종’, ‘신의 총애’와 함께 왕의 칭호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주전 1200년경으로 추정되는 우가릿 토판에서도 ‘그의 종’과 ‘그의 소유’라고 하는 이 ‘세굴라’라는 단어가 병행되어 사용되었던 것이지요?
오늘 본문이 이야기하고 있는 ‘세굴라’ 하나님의 소유라고 하는 표현역시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해야 되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소유, 하나님의 종이요, 하나님의 대리통치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권위와 권세를 허락받은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왕의 형상, 쩨렘, 야차르라고 하는 동사로 창조된 사람이 오늘 우리의 정체라는 것입니다. 그저 쓰다가 버리는 일개 부속품이 아닙니다. 있다가도 없는 그런 소모품이 아닙니다. 당신의 전부를 걸고 사랑하시는, 당신과도 같다고 여기시는 그런 존재가 바로 소유입니다. 마치 아브라함이 엘리에셀을 대하는 것과 같은 존재 말입니다. 자기 모든 소유를 맡긴 종, 그래서 자기의 아들의 며느리를 간택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던 종, 그래서 오늘 그가 하는 일을, 하나님은 당신이 하신 일로 여겨주시는 종, 그가 바로 그의 소유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소유가 되면,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것을 소유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언약의 힘이지요? 조건과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한번 약속한 것이 끝까지 유지되는 당신의 전 인격과 목숨, 이름을 걸고 해주신 것이 바로 이 언약, 시내산 언약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당신의 소유로, 세굴라로 삼아주시는다는 것입니다.
조금더 쉽게 표현해볼까요? 배지현 아나운서가 류현진 선수와 결혼을 언약을 맺었습니다. 그러면 배지현 아나운서는 류현진 선수의 재산이 되어서 쓰다가 버리는 소모품이 되고 맙니까? 아니요, 배지현 아나운서는 류현진 선수의 모든 것을 소유하는 사람이 됩니다. 배지현 아나운서가 하는 행동은 류현진 선수가 하는 행동과 같아지는 것이지요? 그래서 부창부수라고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류현진 선수의 올해 연봉이 201억 7000만원이라고 합니다. 일주일에 4억씩 벌었습니다. 그 모든 것이 누구의 것일까요? 이것이 배지현 아나운서 미세스 류가 관리하고 사용할 수 있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소유, 세굴라의 개념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리, 예수님의 신부가 되는 권리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이 언약은 안타깝게도 조건부 언약으로 걸려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언약을 잘 지키면 우리에게 주어지는 축복인 것이지요? 오늘 우리에게 하나님의 모든 것이 주어져 있습니다. 이것을 잘 누리시고 잘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대리자 통치자가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래서 교재는 이야기합니다.
이 세굴라는, 이 ‘소유’는 대리통치자에게 주어지는 직명으로 사용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총애’, 하나님의 ‘오른팔’ 등으로 해석될 수 있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그런 분입니다. 하나님의 총애를 입으시는 하나님의 오른팔, 하나님의 모든 것을 맡은 대사요, 청지기인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이 지위를 잘 기억하시고 늘 당당한 성도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그렇다면, 이 세굴라에게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바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두 가지로 이야기가 됩니다. 하나는 제사장 나라요, 하나는 거룩한 백성입니다. 두 번째 세 번째는 한꺼번에 읽어보지요. 교재 72쪽 두 번째 단락, 그리고~ 시작!
“그리고 두 번째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제사장 나라’입니다. 제사장은 백성과 하나님 사이의 중보자입니다. 백성을 하나님께 이끌고 희생제사를 드리며 중보의 역할을 하는 것이 제사장입니다. 제사장 나라는 다른 나라를 하나님께 이끌고, 다른 민족을 향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며 다른 백성과 하나님 사이에서 중보자로 연합하는 나라를 말합니다.
세 번째로 ‘거룩한 백성’이라 함은 ‘무엇인가 다른’ 백성을 뜻합니다. 이것은 우월감과 자만이 아니었습니다. 다른 백성을 섬기기 위한 사명과 책임을 의미합니다. 스스로 차별화하여 다른 백성을 경멸하며 저주하는 것은 거룩한 백성이라 할 수 없습니다. ‘거룩하다’는 것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성품, 즉 사랑과 공의의 성품을 닮다는 것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을 이야기 했는데, 순서를 바꿔보려 합니다. 거룩한 백성, 아브라함에게 명령하셨던 것도 이것이었습니다.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창17:1)
"I am God Almighty; walk before me and be blameless.”(Gen17:1)
비난할 것이 없고 흠잡을 것이 없는 백성이 될 것을 요구하십니다. 하나님의 대리통치자는 거룩해야하는 것이지요? 예수님의 신부는 순결해야하는 것입니다. 부인이 흠잡을 의혹이 있으니 조국은 법무부장관에서 내려와야 되는 것입니다. 제사장이 되기 이전에 하나님의 대리자는 거룩해야하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시내산 언약을 통하여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시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 됩니다. 그런 언약의 첫 표현은 이스라엘이 ‘거룩한 백성’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신약에 세워진 교회를 두고 표현했던 베드로전서 2장 9절이 기록한 “거룩한 나라”로 이어지는 중요한 사상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오늘 우리의 크리스천 됨에 있어서 이 거룩함의 주제를 놓쳐서는 안됩니다. 오늘 교재가 말하듯, 바리새인이 이야기하고 보였던 거룩함이 아닙니다. 우월감과 자만에서 나오는 구별됨이 아닙니다. 쟤들보다 상대적으로 나은 깨끗함 정도도 아닙니다. 거룩하고 온전하신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 구별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긍휼의 옷, 자비의 옷, 겸손의 옷을 통해서 배워가고 있는 것이지요? 거룩해져가는 중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더 원초적인 거룩함, 근본적인 거룩함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그것은 “하나님 한분만을 섬기는 거룩함”입니다. 오늘 당신의 신부, 당신의 대리통치자에게 원하시는 것은 당신 한분을 향한 마음입니다. 이리저리 흩날리는 마음, 이리저리 눈짓을 보내는 시선이 아닙니다. 한분 하나님을 향한 마음, 그것을 십계명 첫계명부터, 대신계명 4계명까지에 담아서 말씀하시고 있는 것이지요.
“너는 나 외에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지니라”(출20:3)
이것을 마음을 다해서 뜻을 다해서 목숨을 다해서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 감당해야하는 지켜야하는 약속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내게 두지 말라는 신앙적인 요청을 리차드니버 교수는 “유일신 신앙”(Monotheism)이라고 불렀습니다. 유일신 신앙은 “단일신 신앙”(Henotheism)으로 불리우는 신앙유형으로부터 근본적으로 구별되는 것이었습니다.
“단일신 신앙”은 “하나의 신”(one god)을 믿기는 하지만, 그 하나는 단 하나의 유일신이 아니라 많은 신들 중의 하나(one among many)인 것입니다. 단일신 신앙은 시내산 언약이전의 아브라함, 이삭, 야곱 같은 족장들의 신앙속에 존재했던 것으로 해석이 가능합니다. 당시 그들에게는 여호와 하나님만이 신이 아니었습니다. 다른 무수한 신들 속에 살았습니다. 물론 그 신들은 사람이 만들어낸 허구의 신들이었지만, 그들 가운데 아브라함을 찾아와서 만나주신 한분의 신을 그 가문이 받아들여 섬겼던 것이지요? 라헬이 아버지 라반이 소유하고 있던 드라빔을 훔친 이야기는 좋은 예가 됩니다.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안전을 위해서 이방신 신상을 섬겼다는 기록은 ‘단일신 신앙’의 흔적이 될 것입니다. 한국 크리스천들 중에도 ‘예수’를 믿으면서도 ‘점’도 보고, 부처님, 신령님, 동자귀신 등을 신으로 인정하는 그런 신앙태도가 ‘단일신 신앙’입니다.
십계명으로 두드러지는 시내산언약은 이러한 단일신 신앙을 넘어서서, ‘유일신 신앙’으로의 초대요, 새로운 계약을 맺는 것입니다. 그 유일신 신앙은 “The One beyond many"라고 표현되었습니다.
한분 하나님은 많은 신들 중에 하나가 아니라. 사람이 만든 많은 신들과 전적으로 다른, 참신이요, 유일하신 하나님, 저들 모두를 초월하여 영원부터 영원까지 스스로 계시는 분, 천지와 인간을 창조하시고, 그 운행을 경륜하시는 단 한분 창조주 하나님이신 것을 믿는 신신앙이 유일신 신앙인 것입니다.
오늘 이스라엘 민족이 정녕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거룩한 백성’이 되는 길은 이스라엘이 그분 앞에서 무언가 많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한분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유일신 신앙에서 출발하는 것이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배우자를 그렇게 사랑하시길 바랍니다. 단일남, 수많은 남자들 중에, 단일녀, 수많은 여자들 중에 하나가 아닙니다. 안전을 위하여 보험들 듯 결혼해놓고, 여기저기 딴짓하고 다니는 사람이 있다면, 예수님 믿으면서 점보러 다니는 사람과 같습니다. 아닙니다. 유일남, 유일녀입니다.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다른 남자들과는 차원이 다른 남자,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다른 여자들과 차원이 다른 여자, 아니 저것들은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니여! 라고 생각하는 관계여야 바른 관계입니다.
이 모습으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초대하신 것입니다. 이 거룩한 백성이기에, 하나님은 여러 가지를 말씀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이 거룩한 백성인줄 기대하셨기에 하나님은 은혜를 주시고, 여러 가지 지침들을 주셨던 것입니다. 자세한 기대는 76쪽에 약자보호의 법을 이야기할 때 한번 더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러한 거룩한 백성에게 하나님은 제사장 나라가 될 것을 바라셨습니다. 시내산 언약에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또 다른 약속과 책임이 바로, ‘제사장 나라’(Priestly Kingdom)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제사장 나라란, 이방나라와 세계의 죄, 그들이 겪는 아픔과 고통을 하나님 앞에 대변하고 또 대속하는 백성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대변하는 것 까지는 하겠는데, 대속하는 백성이라니 또 갑자기 마음이 불편해지십니까?
‘거룩한 백성’이, 이 세계로부터 구분되고 성별된 선택받은 공동체를 의미한다면 ‘제사장 나라’는 이방과 세계를 위한 대변자, 그리고 대속자가 되어서 세상을 섬긴다는 의미를 가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섬기기 위해서 선택되었다는 것이지요? 어디서 많이 들어보신 내용이시지요? 우리 예수님이 바로 이 거룩한 제사장으로 이 땅에 오셨던 것입니다. 어떻게 하셨지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20:28, 막10:45)
이것을 영어로는 "Called to Serve"라고 부릅니다. 섬기기 위한 불리움!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고 이끌어가시는 큰 이유는 오늘 우리로 하나님의 대리통치자, 세굴라, 당신의 소유가 되어서, 오늘도 이 땅을 위해 섬기는 사람이 될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습니까? 섬기라고 주신 것입니다. 군림하고 지배하고 억누르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한분 하나님만을 섬기는 거룩한 백성으로, 한분 하나님의 성품을 가지고, 오늘도 이 세상을 섬기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어떤 세상이지요? 썩어없어질 더럽고 악한 세상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보내시기까지 이처럼 사랑하신 세상입니다. 그 세상이 당신의 것인 세상이 오늘도 우리네 인생들로 인해 병들어가고 파괴되어가고 죽어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세상과 사람들을 향해 하나님의 뜻을 자꾸만 이야기하는 존재, 또한 저 세상의 아픔과 고통을 자꾸만 하나님 앞에 호소하고 말씀드리는 존재, 그를 위하여 자기를, 소유는 물론이요, 인간적인 꿈과 생명까지도 기꺼이 포기하는 존재, 그렇게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섬기는 존재, 그가 바로 오늘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이스라엘 백성, 오늘 저와 여러분의 모습인 것입니다.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그렇습니다. 오늘도 외면할 수 없는 하나님의 백성 된 과제와 책임이, 새 시대에 부여된 새 의무가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앞에 선택할 수 있는 의지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참과 거짓, 빛과 어둠 사이에서 어느 편에 설 텐가! 그쵸? 오늘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은혜와 기대를 기억하며 우리 주님의 기뻐하시는 편에 늘 서서 쓰임 받으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도 자기를 부인하며, 자기 십자가를 지며 그렇게 예수님을 좇아 살아가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이 되십니다. 그것이 당신의 소유에게 주시는 은혜요 특권입니다. 그 나라와 의를 구하는 우리에게 모든 것을 더해주시는 것입니다. 그 은혜를 그 축복을 저와 여러분 모두가 누리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교재를 가지고 마무리 하겠습니다. 72쪽 중간입니다. 그들이 시작!
“그들이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것은 우월해서도 아니고, 잘나서도 아니며, 선해서도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특별한 하나님의 은총을 받은 것은 열국에 대하여 하나님의 소유가 되며, 제사장 나라가 되고, 거룩한 백성이 되는 ‘섬김’에 있었습니다.”
우리의 연약한 존재와 부르심의 은총을, 그리고 이 놀라운 하나님의 기대를 늘 기억하시며 모든 자리에 서시길 축원합니다. 그러하기에 오만할 수도 게으를 수도 없는 우리의 모든 순간인 것입니다. 더욱 기도하시며 지혜를 구하시고 능력을 구하시고 덧입으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길 다시한번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찬송 한 곡 부르시고 마치시지요?
어느 민족 누구게나! 새586(통521)
다음시간 예습
교재 72-77, 성경 출애굽기 19장~2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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