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1984
- 조지오웰 作 “1984”를 읽고
친애하는 1984년의 형제들에게
안녕하신가? 형제들. 나는 2020년의 빅브라더를 대표하여 형제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할 수 있게 되어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하네. 시대는 달라도 우리는 영원한 형제들 아닌가. 관료제 속의 인사이더, 권력을 독점하고 조직을 유지하는 우리들의 역할은 40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았다네. 사람들은 우리들을 욕하면서 두려워하지. 그들에게 고통을 줄 수도 있고 약간의 보상을 통하여 삶의 기본적 욕구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사람, 아니 조직이 우리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지. 민중은 우리를 배신하지 않아. 처음부터 우리를 믿지 않거든. 우리가 내거는 슬로건, 민주주의. 그들은 이런 건 개에게나 줘 버릴 명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 권력은 권력을 위해서 존재하는 거야. 권력의 목적은 하나. 권력을 지키고 권력을 위협하는 자들을 제거하는 것이지. 그것을 위해서라면 민주주의, 공산주의, 사회주의 어떤 것도 가져올 수 있는 거야.
우리를 배신하는 놈들은 안타깝게도 우리 자신이야. 이 사실은 1984년 과거에도, 2020년 현재에도 사실이지. 그래서 우리가 자네들에게 편지를 쓰는 거야. 1940년대 형제 중 조지 오웰이라는 소설가 기억나나? 우리들의 이런 은밀한 비밀을 소설의 형식으로 까발려서 우리를 곤란하게 했지. 우리가 계획했던 텔레비전을 이용한 감시체계, 소설 속에서 텔레스크린이라고 부르더군. 그것을 소설 속에서 너무 적나라하게 묘사해서 우리의 계획이 20년은 더 지연됐지. 실험실에서 배양되던 결핵 균을 이용하여 죽여버려 더 이상 우리의 계획이 노출되지는 않았지만 그놈은 죽기 전까지도 우리들의 비밀에 관한 소설을 쓰고 있었어. 하여튼 글쟁이들은 조심해야 돼. 우리들의 원조격인 진시황 할아버지가 왜 분서갱유를 통하여 세상의 모든 책들을 불태워버렸는지 이해할 수 있지 않나?
우리의 계획을 감추기 위하여 우리는 비디오아티스트를 이용하여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만들었지. 조지 오웰이 예언했던 디스토피아는 오지 않았고 비디오와 텔레비전은 우리를 해방시켰다고 사람들을 세뇌시키는 데 많은 돈과 시간이 들었지. 거기에 들어간 돈을 생각하면 분통이 터지는 군. 그놈의 소설가를 무덤에서 파내 부관참시를 하고 싶을 정도야. 지나친 흥분은 심장에 안 좋으니 형제들 너무 분노하지는 말자구.
그들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성공했네. 형제들 축하의 박수 세 번 짝짝짝! 모두 공정과 자유를 믿는 척 하지만 우리들의 세계는 여전히 갑질과 편법으로 빅브라더를 위하여만 유리하게 관리되지. 모든 승부는 조작되고 있어. 사실 프리미어리그축구와 메이저리그야구, 월드컵과 챔피언스리그, 심지어 올림픽까지도. 표현의 자유따위는 엿이나 먹으라지. 우리들은 출간되는 모든 문학작품, 영화, 드라마, 가요 등을 사찰하지. 그래서 빅브라더를 위협하는 작가들을 골라내어 천천히 그들을 말살해. 폭력따위는 쓰지 않아. 1980년대에는 우리 형제들 중에 지나치게 다혈질이라 폭력으로 위험요소를 제거하는 형제들도 있었지. 하지만 그들은 독재자의 멍에를 쓰고 모두 쫓겨나지 않았나.
우리는 일단 그들을 관찰한다네. 텔레스크린은 조지 오웰이 까발려서 실패했지만 우리는 포기하지 않았네. 과학의 발전이 우리를 도와주었고. 우리는 전세계에 CCTV를 설치했지. 건물내부를 투시하는 CCTV도 이미 개발되어 있다네. 사실 그들이 워드로 치는 소설의 내용까지 모두 볼 수 있지. 민중들은 자기들의 자동차안에 블랙박스를 설치하여 우리들의 이런 사찰을 도와주고 있지. 우리는 형제가 운영하는 구글과 협조하여 핸드폰위치추적도 하고 있어. 신용카드와 현금영수증 사용내역을 통해 소비성향과 재산상태 등도 파악한다네. 이 정도 관찰하면 배신자들의 전모가 파악되고 그들의 약점이 드러나지. 정보의 독점을 통하여 우리는 그들을 천천히 압박한다네. 약점없는 인간이 있나. 우리가 손을 안써도 그들이 스스로 붕괴되는 경우도 여럿 봤네. 자살을 한다던가 하는 식으로 말이야.
우리는 우리를 위하여 자본과 권력을 집중시켰다네. 언론과 검찰을 유착시키고 방송과 신문도 형제들이 장악할 수 있도록 통합시켰지. 계속 우리가 권력을 독점하면 독재자의 굴레를 씌어 우리를 몰아낼까 봐 야당을 만들어 한두 번 정권을 양보하기도 했어. 같은 형제들이니 양보라고 할 수도 없지. 진보와 보수라는 프레임으로 국민들에게 치열하게 싸우는 모습을 보여줘서 같은 편이 아니라고 세뇌를 시켜놨어.
세상은 지옥이고 그들만의 리그라고 떠들어대는 투덜이들은 위험분자는 아니야. 사람사는데 불평불만이 없을 수가 있나. 그들이 떠드는 소리까지 없애버릴 정도로 우리 형제들이 소인배는 아니잖아. 그들을 위하여 우리는 유튜브를 만들어 줬어. 마음껏 떠들라고. 그들은 떠들면서 행복한 거야. 적절히 관리만 해주면 투덜이들의 불만은 해소될 수 있다네. 요즘 투덜이들은 알아서 소확행이니 워라밸이니 하며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살더군. 산에 가서 자연인이 되는 투덜이들도 많아. 강아지하고 살면서 혼자서 투덜거리고 살더라고. 웃기는 놈들이지.
다시 말하지만 우리의 적들은 외부가 아닌 우리 내부에 있어. 우리의 권력을 지키기 위하여 민중들을 가난과 무지 속에 살게 하는 계획을 자꾸 민중에게 전파하려는 놈들이지. 그놈들이 제일 위험해. 우리가 권력의 평화를 위하여 전쟁을 일으키고, 전쟁의 공포를 통하여 민중의 자유를 예속하고 있다는 사실을 암시하여 무지라는 힘을 약화시키려는 놈들. 그들은 생래적으로 권력을 싫어하지. 자유롭고 개인주의적인 삶을 최상의 가치로 삼는 재수없는 족속들. 그들을 관리하지 않으면 우리들의 권력이 위험해져.
그놈들은 우리가 자신들을 관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직접적인 방식이 아닌 예술의 형식으로 우리들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려 하고 있어. 일본의 한 소설가는 1984년을 1Q84로 바꿔 소설을 쓰고 빅브라더를 리틀브라더로 바꾸어 우리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려 하고 있더군. 우리의 존재를 정말 눈치챈 건지 우리가 조심스럽게 관찰하고 있네. 아직까지는...
형제들. 배신자들에게 극심한 고통을 주어 복종을 강요할 수도 있어. 하지만 그것만으로 불충분하네. 그들을 순교자로 만들어 주면 안돼. 순교자가 있는 한 종교는 없어지지 않아. 그들이 가장 사랑하는 양심과 연인, 가족을 배신하고 우리 빅브라더를 진정으로 사랑하게 해야 해. 그들을 완전히 개종시켜 빅브라더, 순혈의 형제로 만든 후에 사형집행을 해야 더 이상의 배신자를 막을 수 있다네. 그들에게 자유가 있었던 과거의 기억을 통제하여야 우리가 세계의 미래를 통제할 수 있고, 지금 현재 우리의 권력이 미래에도 영원할 수 있다는 것을 형제들은 잊지 말아야 할 걸세.
우리 성공의 최대의 공로자는 새말 사전이야. 이것도 조지 오웰이 소설 속에서 까발려 실패할 뻔 했지만 우리가 누군가. 때마침 개발된 피시통신과 인터넷을 활용해 우리는 전세계의 언어를 단순화하는 데 성공했다네. 이제 사람들은 더 이상 추상어과 관념어를 사용하지 않는다데. 최소한의 단어만 남기고 약어와 첨어로 단어들을 통합하여 사람들이 혁명과 변화를 꿈꿀 수단을 없애 버렸지. 말을 단순화시키고 책을 보지 못하도록 영상에 민중들을 중독시켜 대부분의 사람들은 연애, 결혼을 포기하고 살아가도록 만들었네. 출산까지 포기하여 우리 권력을 유지할 부속품이 적어질 까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인공수정기술의 발달로 연애와 결혼없이도 인간생산이 가능해질 터이니 그 걱정도 조만간 없어질 것 같군.
상상할 수 없으면 변화할 수 없다네. 그런 면에서 소설가들은 아직도 우리 시대 최고의 골칫거리들이야. 그들은 축소된 단어들을 가지고도 본인들의 상상력으로 현재의 우리 세계를 디스토피아로 규정하고 자기들의 유토피아를 소설로 써서 민중들에게 보여주지. 정말 모두 다 체포해서 태평양 한 가운데 수장시켜버리고 싶어. 하지만 다행인 건 요즘 사람들이 소설을 안 읽는다는 거야. 활자매체는 더 이상 힘을 발휘하지 못하지. 영화와 드라마, 웹툰 등 영상매체는 형제들에 의하여 철저히 관리되고 있어. 우리에게 희망적인 건 이런 상황이 더 강화될 것이라는 거야. 지하철을 타보면 알아. 책을 읽는 사람은 없어. 모두 우리가 조작한 정보만이 넘실대는 스마트폰에 쾡한 눈을 갖다대고 거북목이 되어가고 있지. 이 얼마나 멋진 신세계란 말인가!
이제 형제들과 헤어질 시간이 다가오고 있군. 조만간 시간여행이 실용화되면 우리들의 모든 노하우와 축적물을 자네들에게 직접 전달할 수 있는 시간이 올 수도 있지만 오늘은 이 한 장의 편지로 우리들이 마침내 승리했음과 자네들의 노고가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알려주고 싶네. 그리고 우리들의 시간과 빅브라더의 권력은 미래에도 영원할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어.
그럼 다시 만날 날을 고대하며 오늘은 이만 줄이겠네. 그동안 잘 지내게나. 빅브라더여 영원하라. 형제들 만만세!
2020년의 형제들 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