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35편-데지마 2편-의 사진 1360) 앞에 있었던 안내판입니다.
[사진 1396] 데지마 정문의 안내판입니다. 에도마치로부터 데지마바시를 건너서 나오는 문으로 항상 출입을 감시하는 엄중한 경비하에 있었다고 합니다.
메이지 시기의 개수공사로 인해 현재 복원된 위치는 원래 위치에서 많이 남쪽으로 옮겨져있다고 하는군요;;
[사진 1397] 데지마바시의 에도마치쪽에 있었던 '금지령' 팻말의 내용입니다.
케이세이(傾城-성을 기울게 함-, 여기서는 유녀를 뜻함), 코야히지리(코야산의 스님으로 각지에서 포교를 허가받은 자) 이외의 일본인이 데지마로 들어가는 것은 금지되었고('걸식'은 탁발승을 뜻합니다)
네덜란드인이 허가 없이 데지마로부터 나오는 것도 금지되었습니다.
[사진 1398] 정문 부근에 있는 데지마의 범위 안내입니다. 메이지 18년(18854년) 있었던 나카시마가와의 변류공사 이후 데지마 일부가 잘려나갔고 1904년 데지마 주변이 매립되었습니다.
[사진 1399] 데지마가 외국인 거류지였던 시절의 지번 경계석에 대한 안내입니다. 데지마 4번지와 5번지의 경계석이라고 하는군요.
[사진 1400] 지번 경계석입니다.
[사진 1401] 1798년 있었던 데지마 대화재로 서쪽 절반이 소실된 이후 만들어진 방화용 저수지에 대한 안내입니다.
[사진 1402] 정오 및 무역시에는 아침에 울렸다는 종입니다.
[사진 1403] 마스트로 추정됩니다.
[사진 1404] 게양중인 네덜란드 국기입니다.
[사진 1405] 데지마 네덜란드 상관장의 에도(토쿄)행 여정도입니다. 켐벨과 지볼트의 왕로 및 복로가 나와있는데
큰 줄기를 보면 나가사키-오오무라-코쿠라-시모노세키-세토 내해-오오사카-쿄토-욧카이치-하마마츠-오다와라-토쿄입니다.
1790년 이후 1850년까지 4년마다 1번씩 행해졌으며 1월에 나가사키를 출발해 3월에 돌아오는 일정으로 왕복에 약 90일이 걸렸다고 합니다.
[사진 1406] 주인선(주인장 소유자가 운영한 무역선) 무역과 주인장(무역허가서)에 대한 설명입니다.
주인선 무역의 루트는 중국 동남부 및 필리핀, 동남아시아 일대까지 퍼져있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사진 1407] 1600년 4월 큐슈에 표착한 리프데 호의 항로입니다. 이 배에는 영국인 윌리엄 아담스(일본이름 미우라 안진)과 네덜란드인 얀 후스텐(일본이름 야요우스)가 타고 있었습니다.
이 둘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34편을 참조하시면 되겠습니다^^
[사진 1408] 청동제 12파운드(포탄 무게가 12파운드=약 5.4kg) 대포에 대한 설명입니다. 이 대포는 1954년 우라카미 하구 부근에서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네덜란드 배의 그림 및 VOC(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약호), 암스테르담 ANNO(서기=A.D.) 1640가 새겨져있어서 제작연대 추정이 가능했다고 합니다.
[사진 1409] 대포의 모습입니다.
데지마를 관할하던 일본인 관리가 머물던 건물로 들어갔습니다. 복원후에는 1층에서 거주공간을 재현해 전시하고 있습니다.
[사진 1410] 나가사키의 유력자 중 선발된 데지마를 관할하는 일본인 관리는 무역과 네덜란드 상관원 감시를 담당했습니다. 이 건물의 내부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사진 1411] 관리의 집무실로 추정됩니다.
[사진 1412] 순찰시 쓰던 삿갓모자와 도롱이, 들고 다니던 초롱으로 추정됩니다. 초롱에는 관직명인 出島乙名(데지마오토나)이 써 있습니다.
[사진 1413] 데지마를 드나들던 일본인 관리의 수는 약 50명에 달했다고 하는 안내입니다.
[사진 1414] '데지마오토나'의 역할과 생활, 역대 연표입니다. 역할로는 데지마의 도로 및 건물공사 담당, 출입증 발행, 공공시설 관리, 상관원의 생활 감시 등이 있었다고 합니다.
[사진 1415] 역시 사무실로 추정되는 공간입니다.
다시 밖으로 나왔습니다.
[사진 1416] 데지마의 생활용수 저수지에 대한 설명입니다. 생활용수는 나카시마가와에서 대나무관을 이용해 유입했으며 요리용수 저장소 및 생활용수 저장소로 크게 나뉘었다고 합니다.
[사진 1417] 요리용수 저장소입니다.
데지마의 조리장 건물입니다.
[사진 1418] 조리실 건물로 1층에는 당시 모습을 재현해 놓았다는 안내입니다.
[사진 1419] 요리재료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사진 1420] 크리스마스를 '네덜란드 동지'라고 부르며 크리스마스 축하연 요리를 준비하던 모습을 재현했다고 합니다.
헤틀(부상관장)의 주택입니다. 복원후 1층은 관련 정보가 없어서 현재 안내소 및 기념품 가게로 사용중이며 2층은 세미나실과 학습실로 사용중입니다.
[사진 1421] 헤틀(부상관장)의 주택 안내입니다.
[사진 1422] 타타미 17장 반의 방입니다. 현관 옆에 있는 위치로 미뤄보아 상관의 주요 사무를 담당하는 곳이라고 추정된다는 내용입니다.
현재는 1817년 12월 전 상관장 두프가 새 상관장 블롬호프에게 인계할 당시의 배경을 재현해 놓았다고 합니다.
[사진 1423] 방의 내부 모습입니다. 테이블에는 다기와 유리병(술병?)이 보입니다.
[사진 1424] 역시 방의 내부 모습입니다.
[사진 1425] 역시 방의 내부 모습입니다. 유리병은 와인병이었군요. 와인마개를 따는 도구와 유리잔에 따라진 와인이 보입니다.
[사진 1426] 현관의 방입니다. 이름 및 위치를 볼 때 홀 역할로 쓰였다고 추정된다는 내용입니다.
[사진 1427] 현관의 방 내부입니다. 대형 거울과 다기, 식기등이 보입니다.
[사진 1428] 큰 방의 내부 모습입니다. 테이블에는 연회식이 차려져 있습니다.
[사진 1429] 큰 방입니다. 매일 아침과 저녁 네덜란드 상관원들이 모두 모여 같이 식사를 했던 장소라고 합니다. 상관에서 가장 넓은 타타미 35장 크기의 방이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현재는 크리스마스 축하연을 재현해 놓았다고 합니다.
[사진 1430] 손님용 방입니다. 큰 방 옆에 있는 방입니다.
[사진 1431] 이곳은 나가사키 항구가 보이는 방이었다고 합니다. 발코니도 있군요.
사진 1431의 방에서는 자원봉사자 분이 설명을 하고 있었습니다. 앉아서 설명을 듣고 있었고(물론 일본어;;) 창 밖 풍경을 보는데 노면전차 선로가 보이더군요.
[사진 1432] 데지마 바깥으로 지나는 노면전차 선로입니다.
[사진 1433] 마침 지나가는 아카사코행 1계통 노면전차입니다.
[사진 1434] 거실입니다.
[사진 1435] 도서실입니다.
[사진 1436] 하녀들의 방으로 추정되는 곳입니다.
그러나 일본인 남자 하인의 방은 따로 있었다고 하며, 실제로는 데지마 출입이 유일하게 허락된 여성인 유녀용 방에 가까웠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고 합니다.
[사진 1437] 상관장의 침실입니다. 지붕이 있는 침대가 있었다고 합니다.
[사진 1438] 타타미 15장 크기의 방입니다. 평소에는 사무실로 쓰였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내용입니다.
[사진 1439] 여기서부터는 방의 내부 모습입니다.
[사진 1440]
[사진 1441]
[사진 1442]
[사진 1443]
다시 밖으로 나왔습니다.
[사진 1444] 화물의 무게 측정을 위한 천칭이 있던 장소입니다.
데지마 관람을 마치고 나와 오오우라 성당 및 글로버원으로 향하는 내용은 다음 편에서 계속됩니다.
첫댓글 데지마가 정말 화려했네요~
제가 둘러보고 받았던 느낌도 그랬습니다^^
데지마의 전체적인 크기가 매우 넓어 보이네요^^ 그만큼 무역도 활발했겠죠^^
일본 위키피디아를 찾아보니 전체 면적은 3969평(약 1.5헥타르) 였다고 합니다.
우와-이렇게 데지마 자료들을 상세히 콜렉션한 블로그나 카페를 볼 수 없었는데 님께서 축적하셨군요.
철도 여행과 문화 기행의 결합은 향후 우리 연구회의 미래를 위해서도 중요한 것 같습니다.
많은 내장품들을 일일이 정성을 기울여 촬영하신 님의 정성에 더 감탄하게 됩니다.
(우리나라는 구한말 유적들을 많이 방치 내지는 제대로 재현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은데
일본은 근대화의 유적들을 비중있게 보존/관리하는 듯합니다)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이번 여행 자체가 철도를 이동수단으로 최대한 이용했지만 비중을 '여행'쪽에 더 뒀던지라 철도와 관련된 내용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데지마도 복원된 것이긴 한데 복원이라도 해 놓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