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오에게
스퓌 거리 끝에 있는 복권가게를 기억하겠니? 비오는 날 아침, 그 앞을 지나다가 많은 사람들이 복권을 사려고 기다리고 있는 걸 보았다. 대부분 왜소한 노파들이었는데, 하는 일과 생활수준을 정확히 알 수는 없겠지만, 삶을 지탱하기 위해 발버둥치며 간신히 버텨왔다는게 확연히 보이는, 그런 사람들이었다. 물론 "오늘의 복권당첨" 같은 것에 그렇게 관심을 갖는 사람들을 떠올릴때면, 복권에는 관심없는 너나 나로서는 그저 실소를 금할 수 없겠지.
무리지어 서 있는 사람들의 기대에 찬 표정이 인상적이어서 그들을 스케치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복권이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크고 깊은 의미가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가난한 사람과 돈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더 그렇지 않겠니.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대부분 가난한 사람 같았다. 그래서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지도 않고, 눈에 보이는 것으로만 판단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복권에 대한 환상을 갖는 것이 우리 눈에 유치해 보일 수도 있지만, 그들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정말 심각한 문제가 될 수도 있겠지. 음식을 사는데 썼어야 할 돈, 마지막 남은 얼마 안되는 푼돈으로 샀을지도 모르는 복권을 통해 구원을 얻으려는 그 불쌍하고 가련한 사람들의 고통과 쓸쓸한 노력을 생각해보렴.
1882년 10월1일
(빈센트 반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쓴 편지)
첫댓글 예나 지금이나 복권사업이 실패한다는 얘기 들어본 적이 없죠. 인간구원의 문제를 짚어내고 인간본연의 심리를 파악하는 고흐의 모습이 이 그림에서 여실히 드러나는군요. 갓난아기까지 안고 있는 부부가 줄 지어 서 있는 모습도 보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