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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偈頌讚歎
爾時에 淸淨慧名稱天王이 承佛威力하사
普觀一切少淨天無量淨天遍淨天衆하고 而說頌言하사대
그때에 淸淨慧名稱天王(청정혜명칭천왕)이 承佛威力(승불위력)하사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널리 一切少淨天無量淨天遍淨天(일체소정천무령정천변정천)의 대중들을 널리 두루 살피고 관찰하고 而說頌言(이설송언)하사대 게송을 설해 말씀하사대
了知法性無碍者여 普現十方無量刹하사
說佛境界不思議하사 令衆同歸解脫海로다
如來處世無所依여 譬如光影現衆國이라
法性究竟無生起시니 此勝見王所入門이로다
無量劫海修方便하사 普淨十方諸國土하사대
法界如如常不動하시니 寂靜德天之所悟로다
衆生愚癡所覆障으로 盲闇恒居生死中이어늘
如來示以淸淨道하시니 此須彌音之解脫이로다
諸佛所行無上道여 一切衆生莫能測이라
示以種種方便門하시니 淨眼諦觀能悉了로다
如來恒以總持門이 譬如刹海微塵數라
示敎衆生遍一切하시니 普照天王此能入이로다
如來出世甚難値여 無量劫海時一遇라
能令衆生生信解케하시니 此自在天之所得이로다
佛說法性皆無性하야 甚深廣大不思議하사
普使衆生生淨信케하시니 光焰天王能善了로다
三世如來功德滿이여 化衆生界不思議라
於彼思惟生慶悅케하시니 如是樂法能開演이로다
衆生沒在煩惱海하야 愚癡見濁甚可怖어늘
大師哀愍令永離케하시니 此化幢王所觀境이로다
如來恒放大光明하사 一一光中無量佛이
各各現化衆生事하시니 此妙音天所入門이로다
① 了知法性無碍者(요지법성무애자)여 法性을 了知하는데 법의 성품, 진리를, 모든 존재의 본성 그게 法性입니다. 사람은 사람대로 연필은 연필대로 책은 책대로 나무는 나무대로 물은 물대로 모~든 유형 무형 존재들의 본성 그것들이 가지고 있는 어떤 그 이치 그것을 了知함에 걸림이 없는 者여. 普現十方無量刹(보현시방무량찰)하사 普現十方無量刹 十方無量刹에 普現 널리 나타나시사. 그 결국은 부처님이고, 부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을 대표로 해서“부처님 부처님”하는 것입니다. 十方無量刹에 普現하시사
說佛境界不思議(설불경계부사의)하사 부처의 경계 불가사의함을 설하시사. 부처님의 경계는 불가사의하다. 참~ 우리 마음 뭐 부처님은 멀리 있으니까 우리 마음만 가지고 우리가 이해하기로 하면은 마음 상당히 참 깊고 오묘한게 우리 마음의 경계에요. 그걸 불가사의하다 그럽니다.
하~ 아무리 아무리 퍼내도 다함이 없는거여. 取之無盡(취지무진)이야 취하고 취해도 다함이 없고 用之不竭(용지불갈)이라 쓰고 쓰고 써도 다하지 않는 것. 아침부터, 오늘 하루만 가지고 따지더라도 지난 것은 뭐 지난 일이고 오늘 하루만 가지고 따지더라도 일어나서 지금까지 온갖 분별하고 마음 쓰고‘좋다 나쁘다’하고‘누구다 누구다’하고‘뭐다 차다 뭐다 길이다’일체 상황을 여기 오기까지에 분별하고 작용한 것. 그 양이 얼마입니까? 도대체. 그 양이 도대체 얼마냐구요? 그 경계 불가사의한거요. 그걸 우리가 제대로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끄덕해야 돼.‘내가 이런 존재구나. 내가 참으로 기기묘묘한 정말 불가사의하고 끝도 없는 무궁무진한 존재가 바로 다른게 아니라 법당에 있는 부처님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구나!’이걸 이해해야 되는거죠.
令衆同歸解脫海(영중동귀해탈해)로다 대중들로 하여금 중생들로 하여금 같이 解脫의 바다에 돌아가게 함이라. 좋은 말입니다. 令衆同歸解脫海로다 대중들로 하여금 우리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解脫의 바다에 들어가게 한다. 불교의 목표가요? 개개인이 해탈하는 것입니다. 해탈감에 젖어서 사는 것 이게 불교의 목표에요. 어떤 문제로부터도 다 해탈되어 있어야 돼. 그리고 다른 사람도 해탈하게 하는 것. 그래서 解脫海 좋네요. 解脫海 令衆同歸解脫海로다
전번에 묘법등(妙法燈)이라고 하는 이름이 좋았는데 얼른 누가 주워가더라구요. (하하) 解脫海도 참 좋다. 그죠? 解脫海 해탈의 바다. 해탈의 바다. 이 장애 많고 번뇌 많고 고생되게 한 사람이 이 그 저 저 법명을 가지면 시원하겠어요. 하하 이름만 한 번 불러도 解脫海니까
② 如來處世無所依(여래처세무소의)여 여래가 세상에 처함에 의지한 바 없음이라. 우리 한 마음 어디에도 의지함이 없습니다. 절대 매여있지 않고 묶여있지 안해요. 묶을수록 도망가는게 우리 마음이라. 묶을수록 도망가는게 우리 마음이에요. 도망가게 할라면 묶으면 돼. (하하하) 틀림없어요 그거는. 꼭 세수대야 물떠놓고 밀어보고 땡겨보고 하면은 그 이치를 알아. 밀면 와 땡기면 가고, 세수대야 물떠놓고 더러 그런 경우있죠? 짝 땅기면 물이 절로 확 가버리고 확 밀면 물이 내한테 출렁하고, 우리 마음의 이치도 如來處世 세상에 처하는데 無所依여 의지하는 바 없어. 매이지 않아요. 도대체
譬如光影現衆國(비여광영현중국)이라 마치 그림자가 마치 비유하자면 그림자가 온갖 나라에 여기 저기 부산도 대구도 서울도 뭐 대전도 광주도 다 나타나있는거와 같애. 태양이 한 번 뜨면은 그 태양빛이나 그 그림자나 곳곳에 다 나타나있는거와 같더라. 法性究竟無生起(법성구경무생기)시니 法性은 모든 존재의 본성, 모든 존재의 본성은 究竟에 生起함이 없어. 모든게 이제 보통 그 교리에는 뭐든지 생기고 없어지고 생기고 없어지고 하는 그런 표현이 많잖아요. 생주이멸(生住異滅)을 말하는 것도 많고 춘하추동(春夏秋冬), 성주괴공(成住壞空)을 말하는 교리도 많고 그렇습니다. 근데『화엄경』에 오면은 끝내 生起함이 없다. 꽃 한 송이가 피어가지고 뭐 이렇게 잘 표현하다가 사라지면은 그 생멸(生滅) 그러죠? 근데 본성에서 보면은 본성에서 보면은 늘 그 자리에 있는거여. 늘 그 자리에 있는거라. 고 현상만 가지고 보면은, 그러니까 현상만 가지고 설명하는 불교가 있고 고 현상 이면에 좀 더 깊은 내용을 가지고 설명하는 불교도 있고, 그 불교도 여러 가지인거죠.
그래 물을 이야기하면은 지금 물을 여기다 약을 타가지고 이 저 내가 마시는 차다 이렇게 하면은 요게 이제 약탄 이 물은 기껏해야 한 시간 전에 만들었다. 근데 한 시간 전 역사가 아닌거야. 이 컵에 예를 들어서 약을 탄 이 물의 역사는 한 시간이야. 근데 물 역사를 보자고 물 역사를, 물이 이게 얼마나 됐어요? 역사가. 무시무종(無始無終)이라. 이거 예를 들어서 수돗물 떠왔다. 그러면 수돗물의 역사가 그 어딘데. 저 강물에서 수돗물을 취수를 했다. 강물에 내려오기 전에는 하늘에 있었고 하늘에 있기 전에는 또 딴 데 있었고 계~속 끊임없이 도는거여. 끊임없이 도는게 물이라. 물의 역사는 無始無終이라.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거여. 근데 고것을 딱 잘라서 우리 한 컵 딱 떠왔을 때 고 때부터 계산하는 그런 입장이 있는거죠. 그러니까『화엄경』은 이 본성자리에서 究竟無生起 끝내 生起함이 없다. 새로 생기는 것이 없는 그 자리.
이것은 이러한 도리는 勝見天王(승견천왕)이 所入門(소입문)이라 入門한 바더라. 勝見天王이 入門한 바더라.
그 다음에 ③ 無量劫海修方便(무량겁해수방편)하사 한량없는 세월동안 方便을 닦으사 普淨十方諸國土(보정시방제국토)하사대 널리 十方諸國土를 청정하게 한다. 이러한 이치를 알고 많은 사람들이 정말 해탈감에 젖어서 살도록 한다. 해탈감에 젖어서 어디에도 집착하지 아니하고 法界如如常不動(법계여여상부동)하시니 法界는 如如 진리의 세계가 法界죠. 진리의 세계가 如如해. 如如해서 항상 動하지 아니해. 늘 그 자리라. 法界는 如如常不動이라.
사실은 우리가 그 뭔가 성취하기 위해서 뭔가 얻기 위해서 뭔가 달라지기 위해서 아웅다웅하죠. 그런데 달라지는 차원이 있어. 달라지는 차원이 있어. 그런데 아~무리 아무리 달라져도 달라지지 않는 그런 차원이 또 있어요. 그게『화엄경』에서는 그런 차원을 이야기합니다. 그게 法界如如常不動이야. 法界가 如如해서 항상 움직이지 아니해.
그래 내가 자주 이제 인용하는 구절이 行行本處(행행본처)요 至至發處(지지발처)라 이런 말을 하지요. 가고 가고 가도 늘 본래 그 자리고 어디에 이르고 이르고 이러도 항상 출발하는 그 자리더라. 여러분들 지금 다음에 올거 생각하면 여기가 本處야. 본래의 장소라고, 근데 또 집으로 돌아갈걸로 생각하면 집이 또 본래의 장소라. 그래 뭐 아무튼 집이 본래의 장소라고 우리가 치면은 아무리 가고 가고 가도 결국은 집으로 돌아가잖아. 본래의 장소, 본래의 장소로 돌아가니까 늘 그 자리인거요. 사실은, 그런 이치가 또 있습니다. 그건 뭐 이해하기 쉽도록 현상을 가지고 설명하지마는 우리 본래의 본성자리, 본성자리 우리가 뭐 이야기할 때 그런 소리하죠. 실컷 가지고 놀다가 제자리에 갖다놔. (하하) 제자리에만 갖다 놔라. 실컷 가져다 놀아도 좋다 제자리에만 갖다 놔라 하잖아. 제자리에 가게 돼있어요. 본래, 제자리에 가게 돼있어. 사람의 삶이란게 본래 그래. 그런 이치를 알고 살면은 모든 것으로부터 구애받지를 안해. 그게 해탈감이야. 그동안 뭐 힘들고 힘들었는데 그런 그 힘든 어떤 그 내 마음으로부터 다 벗어나가지고 편안해져. 그 해탈감이죠.
그 다음에 寂靜德天之所悟(적정덕천지소오)로다 이것은 寂靜德天王의 깨달은 바더라 그랬습니다.
그 다음에 네 번째 ④ 衆生愚癡所覆障(중생우치소부장)으로 중생이 愚癡해서 어리석고 어리석어서 뒤덮인 바 覆障(복장)했는데, 덮을 부(覆)라고 해야겠죠. 덮을 복이라고 해도 상관없습니다마는, 불교에선‘부장’그렇게 합니다. 愚癡所覆障 뒤덮인 바로 盲闇恒居生死中(맹암항거생사중)이어늘 아주 맹인처럼 캄캄하게 항상 生死 가운데 머문다. 生死는 뭡니까? 생멸(生滅) 가고 오고 가면 간게 있고 오면 온게 있고 얻으면 얻은게 있고 잃으면 잃은게 있고 늘 거기에 이제 있는거죠. 우리들 수준은 우리들 수준은 거기에 있어.
如來示以淸淨道(여래시이청정도)하시니 그래서 如來께서는 淸淨한 道로써 보였다. 淸淨한 道로써 보였다 이건 텅 빈 거에요. 무거무래(無去無來)야. 감도 없고 옴도 없고 얻은 것도 없고 잃은 것도 없는 본래 존재의 본성자리 여래는 늘 그걸 가지고 보이시니 此須彌音之解脫(차수미음지해탈)이라 須彌音天王(수미음천왕)의 解脫이더라.
또 우리는 이런데서 우리도 또 우리 나름의 해탈법이 있어야 돼. 뭐 관세음보살이 좋으면 관세음보살 가르치면서,『화엄경』이 좋으면『화엄경』에서,『법화경』이 좋으면『법화경』에서 내 어떤 그 어떤 그 불교적인 안녕을 거기서 이제 찾았다. 그러면 어떤 어떤 불자는 무엇에서 또는 무엇으로써 말하자면 안녕을 찾았다 이렇게 표현할 수 있는 겁니다. 이게 그런 식이에요.
그 다음에 다섯 번째 ⑤ 諸佛所行無上道(제불소행무상도)여 모든 부처님이 행하신 바 無上道 무상심심미묘법(無上甚深微妙法) 그러잖아요? 제일 높은 더 이상 높은 것이 없는 그런 그 도, 모든 부처님이 그러한 無上道 행하는 바 無上道
一切衆生莫能測(일체중생막능측)이라 모든 중생은 능히 측량하지 못한다. 그렇죠. 깨달은 사람의 경지를 깨닫지 못한 사람은 측량이 안되요. 요량이 안돼. 도대체 어느 경지인지. 그리고 우선 우리가 현상에 늘 속아 살고 현상에 매여 살고 현상 눈에 보이는 것만 가지고 왈가왈부하면서 살아 온 우리 중생들의 보통 습관은 본성(本性) 여여부동(如如不動)한 그 자리는 이해가 잘 안돼요. 이해가 잘 안되는거라. 그렇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자꾸 이런 성인의 가르침을 듣고 배우고 가까이하는 것 그것 밖에 달리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아이고 중생은 莫能測이라. 능히 측량할 길이 없다는데 뭐 배우면 뭐 하나? 이렇게 하면은 정말 그건 이제 영원히 이제 등지는거죠. 진리와 영원히 등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뭐라고? 示以種種方便門(시이종종방편문)하시니 가지가지 方便門으로써 보였다. 이런 방편, 저런 방편 불교에서는 어떻게 하더라도 부처님의 깨달음 그 경지를 이해시킬려고 갖가지 方便門으로써 보였다 이 말입니다. 부처님이 깨달으신 無上道라고 하는 것도 결국은 개개인의 궁극적 차원,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저 깊고 오묘한 궁극적 차원입니다. 다른데 멀리 있는게 아니에요. 내 안에 있어요.
淨眼(정안)이 諦觀(체관)하야 能悉了(능실료)로다 淨眼天王이 諦觀 자세히 관찰해가지고서 능히 다 알았더라.
⑥ 如來恒以總持門(여래항이총지문)이 如來는 항상 總持門 모든 것을 다 지니는 문 다라니(陀羅尼)를 總持라 하죠. 다라니를 總持라 하는데, 모든 것을 다 가지는 문이 譬如刹海微塵數(비여찰해미진수)라 비유하자면은 이 세계, 세계바다가 微塵數와 같다. 微塵數와 같다. 세계바다가 微塵數인 것과 같다. 밤하늘에 여름날 한 번씩 나가서 하늘 한 번씩 쳐다봐요. 얼마나 많은가? 은하수에 그 많고 많은 별들 그것도 육안이 미치는데까지 밖에 못보죠. 천체망원경을 이용해가지고 보면 그 많고 많은 별들 그야말로 刹海微塵數야.
우리 마음자리에는요. 사실은 우리 마음자리에 갈무리돼있는 그 능력, 그 능력이 그와 같습니다. 여름날 밤하늘에 하~ 초롱초롱한 별의 숫자와 같이 그렇게 많은거에요. 그걸 전부 우리가 꺼내 써야 돼. 활용해야 된다구요. 우리 능력이 본래 그와 같애. 그게 總持門입니다. 우리 모두 가지고 있는 그 능력
示敎衆生遍一切(시교중생변일체)하시니 衆生들에게 보여주고 가르쳐서 一切에 두루하게 하시니. 그거이 결국은 우리 중생들에게 본래 가지고 있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것입니다. 하시니 普照天王此能入(보조천왕차능입)이로다 普照天王이 여기에 능히 들어갔더라.
⑦ 如來出世甚難値(여래출세심난치)여 如來가 세상에 나오는 것은 매우 만나기 어려움이요. 그렇습니다. 뭐 불교가 세상에 파다하지마는 있다고 해서 우리가 불교를 만나는 것도 아니고 또 불교에 들어와서도 이『화엄경』공부같은 대승경전, 최고의 경전을 우리가 공부하는 이런 인연을 만나기는 또 쉽지 않은 것입니다. 如來出世甚難値라 뭐 세상에 물론 오기도 어렵지. 왔다 하더라도 만나기가 어려워. 만났다 하더라도 불교 안에 들어와서 제대로 정법을 만난다는게 그게 또한 어려운거라.
여기 부산에 사시는 거사님 오늘 오셔가지고, 아~ 이 염화실이라고 하는 이 보물창고가 사실은 뭐 그 운영하는 사람도 가까이 있고 보물창고도 언제든지 인터넷을 통해서 열기만 하면 되는데 그게 인연이 안닿으니까 돌고 돌고 돌다가 어느날 근래에사 딱 만나가지고 거기서 들어가서 공부하다보니까 이거는 정말 뭐 불교의 보물창고인거야. 여기서 법문하는 내용이 고대로 다 실려있으니까. 집에 앉아서 책부쳐달라면 책부쳐주지 뭐 교재달라하면 교재부쳐주지 염화실 열어가지고 뭐 거기다가 주소만 적어주면 뭐든지 다 보내주는거요. 이런 보물창고도 인연이 안되고 자기가 공부하려고 하는 그런 그 열정이 없으면은 그만 못만나는거야. 있어도 못만나. 바로 옆에 두고도 못만나는거야. 있어도 못만나는 바로 옆에 두고도 못만나는, 그런 이치가 참 많습니다.
如來出世甚難値라 매우 만나기 어렵다. 無量劫海時一遇(무량겁해시일우) 한량없는 세월 중에 한 번 만나는거다. 한량없는 세월 속에 한 번 만나는거다.『법화경』에선 뭐 盲龜遇木(맹구우목) 그런 말이 있죠. 불법만나기가 마치 눈먼 거북이가 나무를 만나는거와 같다. 그런 표현이 있죠.
能令衆生生信解(능령중생생신해)케하시니 능히 중생으로 하여금 信解를 내게 한다. 믿음과 이해를 내게 한다. 참 이것을 뭐 우리 일심(一心)자리 한 마음자리에다가 여래를 매칭시켜서 이야기할 수도 있지마는 사실 그대로 현상대로 부처님이 이 세상에 2600년 전에 오셔가지고 깨달음을 성취하셨고 그 깨달음에 의해서 이렇게 진리의 가르침을 내놓으신 이것을 이제 우리가 여래라고 하고 불교라고 하고 부처님이라고 하고 이렇게 생각하면은 훨씬 쉽죠. 그런데 한량없는 세월 속에 우리가 만나기가 쉽지가 않다. 能令衆生 근데 그것은 우리들로 하여금 信解를 내게 한다.
이것은 自在天之所得(자재천지소득)이로다 自在天王(자재천왕)이 얻은 바더라. 난 늘 이야기하지마는 뭐 여기 범어사 큰 절이 있습니다. 또 여기 스님들이 뭐 서울이고 뭐 어디고 강원도고 어디 저 지리산이고 한 달에 한 번씩 와서『화엄경』공부하러 그렇게 인연이 있고 또 뜻이 있고 원력이 있고 신심이 있는 사람은 이렇게 먼 데를 멀다하지 않고 쫓아와서 공부를 해요. 그런데 바로 코 앞에 있으면서 5분거리, 3분거리 있으면서도 몇 년, 몇 년이 지나도‘저 스님들이 왜 모이는가?’(하하) 이러고 마는거여. 이러고 마는거야.‘뭐 볼 일이 있는가보다’이러고 마는거야. 같은 스님인데도
그 참 불교에서 인연이란 말을 잘 쓰는데 참~ 인연의 이치가 신기한거요. 그러니까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인연을 잘 맺어야 돼. 인연을 잘 맺어. 좋은 인연, 좋은 인연은 정말 잘 맺어두면 그게 돌고 돌다가 어디 가서 우리가 어떤 눈을 뜨게 할지 알 수가 없는거야. 이것은 自在天之 自在天王이 얻은 바다.
⑧ 佛說法性皆無性(불설법성개무성)하야 부처님이 설하신 법의 성품은 다 無性이라. 성품 法性 法性하니까, 법의 성품하니까 뭔가 컵처럼 마이크처럼 우리 뭐 사람모습처럼 뚜렷한 어떤 개체가 존재하는 걸로 그렇게 이해해서는 안된다. 그렇다고 영 없는건 아니여. 그걸 우리가 眞空妙有(진공묘유)라 하죠. 眞空 완전히 참으로 공한 자리에서 미묘하게 있는거요. 미묘하게 있으면서도 그 실체는 찾아들아가보면 또 없는거라. 그 양면을 같이 이해해야 돼. 같이. 어느 것도 치우쳐서 보지 말고 공히 같이 그것을 이해하는 것 이게 중도(中道)라. 있는 면도 이해하고 없는 면도 이해하고, 그래서 있다고 하면 있는데로“어 그래 있지.”누가 없다고 하면“아 그래 없지.”그렇게 다 따라가. 따라가면서도 자기 자신은 흔들리지 않는거야.“네 그래 줏대없이 있는데도 따라가고 없는데도 따라가냐?”“아 네도 맞다 말이야.”(하하)
사실은 無性이면서 法性이 皆無性이라. 법의 성품이 다 성품이 없는거여. 眞空妙有기 때문에 이치가 그렇게 돼있기 때문에, 모든 이치가 중도적인 이치로 존재하기 때문에 중도적으로 봐야 한다. 우리 인생도 다 그래요. 우리 삶도 어디에 치우쳐서 이것만이 옳다라고 이렇게 고집하면 그때부터 장애가 생기기 시작하고 뒤틀어지기 시작해. 뒤틀어지기 시작하는거여. 이것만이 옳다라고 고집세우면
절대적으로 옳은 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어요. 동서남북같은 것을 생각하면 더욱 더 그렇죠. 남쪽에 사는 사람은 뭐 예를 들어서 서울을 북쪽이라고 하지만 평양에 사는 사람은 서울을 남쪽이라 하는거요. 그와 같은거요. 정해진게 없어. 그걸 다 공히 수용하고 이해해야지.
甚深廣大不思議(심심광대부사의)하사 眞空妙有지마는 그 眞空妙有가 甚深廣大 매우 깊고 廣大해. 그래서 불가사의야. 불가사의라. 모든 존재가 불가사의입니다. 사실은요. 普使衆生生淨信(보사중생생정신)케하시니 그래서 널리 중생으로 하여금 청정한 믿음을 내게 하시니 光焰天王(광염천왕)이 能(능)히 善了(선료) 능히 잘 요달했더라. 善了 잘 선(善)자라고 그래요. 착할 선(善)자라 안하고 잘 요달했다. 아주 능숙하게 요달했다.
⑨ 三世如來功德滿(삼세여래공덕만)이여 三世如來 과거, 현재, 미래 모든 부처님이 그 공덕이 충만함이여. 化衆生界不思議(화중생계부사의)라 중생세계를 교화하는데 불가사의하더라. 불가사의해. 於彼思惟生慶悅(어피사유생경열)케하시니 저 思惟 저것을 思惟해서, 그 이치를 思惟해서 慶悅 경사스럽고 즐거움, 기쁨을 내게하시니. 그런 이치를 우리가 알면은, 그런 이치를 알면은 정말 경사스럽고 기쁘죠. 하시니
如是(여시)는 이와 같은 이치는 樂法天王(낙법천왕)이 樂法天王이 能(능)이 開演(개연)하더라 열어서 연설했더라.
⑩ 衆生沒在煩惱海(중생몰재번뇌해)하야 하~ 그렇네요. 衆生이 煩惱의 바다에 빠져있으니. 沒在 衆生이 煩惱의 바다에 빠져있어서 沒在 煩惱하야 愚癡見濁甚可怖(우치견탁심가포)어늘 어리석고 어리석어서 어리석은 見濁 소견이 흐려. 그래서 심히 가이 두려워.
사람은 뭐‘살림에 눈이 보배다’이런 말이 있는데, 우리가 인생을 삶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게 뭐니 뭐니 해도 뭐 돈이 중요하고 명예가 중요하고 무슨 가족이 중요하고 다 중요하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소견(所見)입니다. 소견. 견해가 잘못돼버리면, 그 사람 소견이 잘못돼면 이건 어떻게 할 길이 없는거요. 그래서 여기 그랬잖아요. 見濁 어리석음의 견해가 흐리고 흐려서 매우 가이 두렵다. 소견이 잘못된 것은 참 두렵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늘 소견을 생각해야 됩니다. 제대로 생각해야 됩니다. 견해를 생각해야 돼. 뭐 자기 한 번 그 딱 그 들어간 선입견 가지고 너무 옳다고 고집하면은 그것도 큰 병이고 옆에 사람한테 폐해가 얼마나 큰데, 자기 그 잘못된 소견에 대한 폐해가요 옆에 사람한테 얼마나 크게 끼친다구요.
여기 참 중생이 번뇌의 바다에 빠져있어서, 번뇌가 뭡니까? 잘못된 생각들이죠. 愚癡見濁甚可怖라 어리석고 어리석은 소견의 흐림이, 소견이 탁한 소견이 탁한 것이 매우 두렵다.
大師哀愍令永離(대사애민영영리)케하시니 大師 큰스승 부처님이죠. 깨달은 사람, 선지식 大師가 哀愍히 여겨. 불쌍히 여겨서 하여금 영원히 거기서 벗어나게 했다. 그래 부처님은 아무튼 깨달은 사람들은 뭐 부처님이나 조사나 보살들은 중생들의 그 본래 부자야. 본래 부처고 본래 보살이고 무한한 지혜를 가지고 있어. 근데 그것을 이해를 못하고 이해를 못하니까 쓰질 못해. 보물창고를 가지고 있으면서 쓰질 못하니까 그것 참 불쌍한거요. 생각해보니까. 부처님은 그게 불쌍해서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것 이거 이 가르침입니다. 언제 뭐 부처님 우리에게 뭐 준거 있어요? 오로지 우리들 자신이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이해하도록 거기에 눈뜨도록 하는 것 그러면 모든 문제에서부터 해결이야.
이것은 化幢天王(화당천왕)이 所觀境(소관경) 본 바의 경계더라 그렇습니다.
그 다음에 열한 번째 ⑪ 如來恒放大光明(여래항방대광명)하사 如來가 항상 큰~ 光明을 놓으사 一一光中無量佛(일일광중무량불)이 낱낱 광명 가운데 한량없는 부처님이 各各現化衆生事(각각현화중생사)하시니 各各 衆生을 교화하는 일을 나타내. 그 부처님의 광명 가운데 나타났고 그 광명 가운데는 한량없는 부처님이 있어. 우리 생활 모든 분야 분야 전부가 뭐다? 그걸 處處佛像(처처불상) 事事佛供(사사불공) 우리 한 번 같이 외워볼까요? 處處佛像 (處處佛像) 事事佛供 (事事佛供)
이봐 如來恒放大光明하사 여래는 항상 큰 광명을 놓으사 낱낱 광명 가운데 한량없는 부처님이 계셔. 그 낱낱 부처님 각각이 모두가 중생을 교화하는 일을 나타내. 중생교화하는 일을 그냥 다 나타내고 있어. 뭐가 야단법석을 차려가지고 거기다 뭐 쇼를 하고 무슨 뭐 목탁을 치고 요령을 흔들고 나팔을 불고 해서가 아니고,『화엄경』차원은 현재 그대로 그냥 그대로 바람은 바람, 나무는 나무, 풀은 풀 이 모든 것이 전부 뭐다? 佛像 處處佛像이다 그리고 事事佛供이여 그대로 바람이 불어서 나무가 흔들린 것도 佛供이여. 우리가 이렇게 고개 끄덕거리는 것도 佛供이요. 걸어다니는 것도 佛供이요. 處處佛像 事事佛供 그냥 나온 소리 아니에요. 다~ 이『화엄경』에서 나온 소리입니다. 전부 중생을 교화하는 일, 이치를 깨우치게 한다. 그런 말이죠.
이것은 이 妙音天王(묘음천왕)이 所入門(소입문)이로다 妙音天王이 들어간 바 문이더라.
에 오늘 공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
첫댓글 불공 _()()()_
[說佛境界不思議하사 令衆同歸解脫海로다..부처의 경계 불가사의함을 설하사(깊고 오묘한 우리 마음의 경계) 중생들로 하여금 같이 解脫의 바다에 돌아가게 함이로다.(불교의 목표는 개개인이 해탈하는 것, 어떤 문제로 부터도 다 해탈되어 있어야 한다.)] [法界如如常不動하시니... 如來出世甚難値여 無量劫海時一遇라...法界가 如如해서 항상 움직이지 아니하시니... 如來가 세상에 나오는 것은 매우 만나기 어려움이여 한량없는 세월 속에 한 번 만남이라.]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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處處佛像, 事事佛共. 큰 어르신 스님, 화풍정님, 염화실 법우님들, 서래의님 더위에 호우에 항상 건강 하시옵소서.
고맙습니다. 대방광불화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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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行本處요 至至發處라/가고 가도 늘 본래 그 자리고 어디에 이르고 이르고 이러도 항상 출발하는 그 자리더라.
眞空妙有.
處處佛像 事事佛供! 화풍정 님, 고맙습니다_()()()_
고맙습니다._()()()_
處處佛像, 事事佛供...고맙습니다. _()()()_
所見...우리 인생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것.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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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之無盡 用之不竭....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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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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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_()_
고맙습니다
나무대방광불 화엄경
기쁨이 가득합니다.
큰스님, 고맙습니다._()()()_
큰스님.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_()()()_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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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_()()()_
화풍정님! 고맙습니다_()()()_
衆生沒在煩惱海 愚癡見濁甚可怖
대방광불화엄경 대방광불화엄경 대방광불화엄경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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