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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천하동인괘입니다.
논어 17장에 보면 공자님 말씀에 ‘ 小人은 近之則不孫’ 하고 가까이 했더니 올라타려고 하고‘ 遠之則 怨“ 좀 멀리했더니 원망하더라. 혹시 이 글자에 내가 해당이 안 되느냐?
: 무당의 한문 실력은 사자소학과 명심보감을 보다 중도 하차했습니다. 그래서 인용하는 문장은 원문과는 항상 다르고 일반인들의 수준보다 낮은 말을 합니다. 공부를 모른 무당이다 보니 무엇이 잘못인지를 모릅니다. 공부를 한 사람이면 원문을 정확하게 말해주고 풀이해줍니다. 원문을 모르면서도 큰 소리를 치는 것은 무당이니 가능하겠지요.
전호근 선생 논어 강의 : 陽貨25章 子曰 唯女子與小人 爲難養也 近之則不孫 遠之則怨
자왈 선생께서 말씀하셨다. 유녀자여소인은 오직 여자들과 소인들은 위난양야니 양은 대하다. 상대하다. 상대하기가 어려우니 근지즉불손하고 가까이하면 불손하고 원지 멀리하면 원 원망한다. 여자와 소인을 같은 경우로 놓고 비판적으로 본 것입니다.
간혹 주희가 설명을 할 때 유이언이라는 말 하죠. 이것도 어떤 경우가 있었을 거에요. 어떤 사람을 위해서 말한 것이다. 우리는 달리 생각해야 됩니다. 보편타당하지 않아요. 특수한 경우에 그런 게 있었다. 그러면 어느 정도 수긍할 만하죠. 앞부분에 공자가 그런 적이 없거든요. 그것 믿고 공자가 그랬을 것이라고 추정을 하는 겁니다. ]
이 세상에 우주 만물에 우주 만물에서 인위적으로 자기 몸을 가리고 있는 존재가 뭐가 있느냐? 별이 옷을 입고 있습니까? 태양이 옷을 입고 있습니까? 달이 옷을 입고 있습니까? 인간밖에 없지요. 인간은 좋게 말하면 내면을 잘 간직할 수도 있겠지만 나쁘게 말한다면 나를 가릴 수도 있다. 그런 단점을 들어있다
: 비슷한 류 끼리 비교를 해야 되는데 인간과 태양 별 달을 비교하고 있습니다. 정신이 자주 집밖으로 나가는 무당은 해와 달이 친구이다 보니 가능한 것으로 생각하겠지만 보통은 정신이상이라고 합니다. 인간이 옷을 입는 이유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눈보라 치는 추운 겨울날 맨 몸으로는 얼마를 버틸 수 있을까요? 그러나 개는 눈밭에서 잠을 자도 아무렇지 않습니다. 그럼 황제내경이 아닌 귀장내경씩을 강의하는 무당은 왜 개는 아무 병이 안 생기는 가를 말해주고 또 사주를 보고 변증을 해서 어떻게 하면 눈보라가 치든 말든 옷을 벗고 있어도 문제가 없게 될 수 있다고 말해준 다음에 논해야 된다는 것을 모릅니다.
주역강의를 대충 마치고 사진 찍는 것에 신경 쓴 것은 단점을 장점으로 단 한방에 바꿀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기 위해서였습니다. 와이셔츠 위에 두루마기를 입고 머리에는 치포관(?)을 쓰고 학자처럼 사진을 찍었습니다. 와이셔츠 위에 두루마기를 입는 행위는 예가 뭔지 모른 무당이니 가능한 일입니다. 그간 예를 아는 듯이 말한 것이 다 구라라고 행동으로 몸소 증명해준 겁니다. 주역이 뭔지 몰라서 대산선생의 주역 책을 보고 강의하면서 어떻게 하면 손해를 보지 않는가 하는 무당이 보는 의리역으로 강의를 했지만 사진을 걸어놓으면 두고두고 광고효과가 엄청날 것으로 생각하고 사진을 찍었던 겁니다. 무당이다 보니 공부할 생각은 없고 어떻게 하면 공부하지 않고 쉽게 돈을 벌 방법이 없는 가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부친인지 아니면 모친을 밤마다 즐거운 홍콩 여행을 시켜준 어르신인지가 서당을 했다고 구라를 쳤습니다. 옛날 서당에서는 책을 한 권 마치면 책씻이가 있었습니다. 책씻이를 모르면 서당을 했다는 말은 개구라가 됩니다.
同人于野면 亨하리니 : 동인은 우야면 우야 들에서 동인을 한다면 들에서 사람들과 함께 한다면 야는 비밀스러운 곳이요? 확 트인 곳이요? 야 : 차별도 없고 노소도 없고 귀천도 없는 공평무사한 그런 사귐을 가진다면 함께 함을 가진다면 형통할 것이다.
전호근 선생 : 동인우야니 야는 들이죠. 성곽 백리부터 교 밖이 야 오백리 밖이 야. 넓은 들판에서 동인 다른 사람과 함께 한다.
동인은 뜻이 같은 사람. 뜻이 같은 사람은 뜻으로 모여야지 다른 것으로 모이면 어떻겠어요. 망하겠죠. 우리학교 출신. 우리 동네 출신. 이러면 뜻이 같아서 만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목적으로 만나는 거죠. 저쪽에서 오고 내가 가서 만나는 것이 아니라 같은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서 함께 나아가는 겁니다.
同人曰 同人于也亨利涉大川은 乾行也오. 乾으로 행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호근 선생 : 同人曰 〔本義〕 衍文
끼어든 문자이다. 同人卦에 이르기를 동이우야라고 인용문처럼 되어있죠.
文明以健하고 : 문명으로서 문명은 火고 이건 강건함으로서 하고 乾卦죠.
전호근 선생 : 문명이건 써 이자는 말 이을 이자와 같습니다. 문명하고 건 건실하고 안은 문체가 빛나고 명철하고 밖은 행동은 건실하고
類族으로 辨物 : 필요와 상황에 따른 모든 만물과 인간을 적재 적소적 공평무사한 분류적 동행
전호근 선생 : 류족 족은 족류 종류나 같아요. 종류를 류 분류한다. 각각의 종차가 있다. 종에는 종차가 있죠. 그런 차이를 류 분류하는 겁니다. 이건 이것과 같고 이건 이것과 다르다. 분류해 내는 거에요. 같음을 아는 것은 다르다는 것을 아는 것이고 다름을 아는 것은 같다는 것을 아는 거죠. 같고 다름을 모르면 분류가 안 되죠. 분류해서 변물 사물을 구분한다. 사물이라고 하는 것은 동물 식물의 분류체계를 얘기하는 것일 수도 있고 선악의 분류일 수도 있습니다. 나누어 낸다. 그게 대동이 되죠. 대동은 소의 사정이 각각 어긋난다고 하는 걸 인정하는 상태가 대동이 될 수 있죠.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 대동이지 강제로 동인해버리면 대동이 아니라 뇌동이죠.
初爻의 同人于門이다. 왜 그런가 하면? 제일 좋은 것은 동인우야지만 동인우문이란 소리는 자기 처지를 벗어나지 말고 투명한 관계를 가져라가 가장 기본이지. 아빠가 얘하고 노는데 同人하는데 애한테 니나 네나 뭐 별거 있나 야자 타임이나 하자. 이거 동인우야요. 되겠어요? 아빠는 아빠의 입지가 있고 처지가 있지. 거기에서 조금 문틀을 깨는 문을 열어 재치는 의미의 同人이 돼야지 니나 네나 같이 놀자 이러면 완전히 깨져버리는 거요. 지금 그러고 있어요. 깨져버렸어요. 애들이 존대 말도 거의 안 쓰고 존대 말이 중요한 게 아니라. 말 한마디가 중요합니까? 내면에 갖고 있는 모습이 중요하다. 아버지가 아버지 같이 안 보이고 별 볼일 없이 보이고 그 나라 정치하는 사람들이 그 자리에 앉은 이치만큼 보이지 않는다면 그건 뭐 아무것도 아니지. 자기를 털어내더라도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가장 기본은 처세가 동인우문입니다.
전호근 선생 : 초구는 문에서 다른 사람과 함께 하니 허물이 없다. 그런데 문 내 인지 문 외 인지 알 수가 없어요. 문안에서 사람들과 함께 한다. 그것은 동인이 아니에요. 문안에서 함께 있는 사람은 자기 집안사람들이겠죠. 동인이 아닙니다. 문밖에서 다른 사람하고 같이 하는 겁니다. 자기의 혈연집단이라든지 이런 데에 억매이지 않고 다른 사람과 함께 하니까 범위가 넓죠. 그러니까 허물이 없다.
象曰出門同人을 又誰咎也리오.
: 만약에 문을 나가서 同人을 한다면 또한 누구의 허물이요. 아직은 여기 나갈 자리요? 안 나갈 자리요? 안 나갈 자리요. 발은 때지 말아라. 문 열어놓고 내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놓고 내가 서있는 입지를 지켜가면서 同人하라. 더 이상 공부를 안했으면 좋을 문구입니다.
전호근 선생 : 象曰 出門同人을 又誰咎也요
출문 문밖에 나가서 동인 다른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을 우수구 또 누가 허물할 수 있겠느냐? 허물이 없다.
君子는 位로서 말한다. 君子는 자리로서 말 할뿐이다. 더 이상은 더 이하도 말을 하지 않는다. 내가 과장이면 과장자리에서 얘기할 뿐이다. 괜히 자기가 사장인양하고 사람을 몰아붙이지 말라. 앞에 있는 사람이 주역을 강의하면 강의하는 위치에서만 강의를 해야지 사회적으로 무슨 뭐 저명인사 같이 애기하고 그럴 수는 없다. 그것을 벗어나면 안 된다.
: 논어에 나오는 말입니다. 무당이 치매기가 심할 때는 소개를 못하고 상태가 비교적 좋을 때는 원전을 소개하곤 했습니다. 이 말은 자신의 전공이 아니면 내지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아는 체 하지 말라는 말이 됩니다. 무당은 이 세상만사에 대해서 아는 것은 없지만 무당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한 말씀을 해야 됩니까? 일반인들의 친구 간 대화수준을 넘지 못하면서 이 세상 모든 일에 대해 한 마디 참견을 하는 것은 무당이니 괜찮고 다른 사람들만 하지 말라는 겁니까? 평생 책을 보지 않아서 상식미달인 무당이 볼 때는 잘난 것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同人 혼자 걸어가는 것이 편하다. 세삼 이 卦를 보면서 느낍니다. 둘이 있을 때는 말이 생길 수 있다. 그래서 옛날 어른들은 부인하고 가면 자네 저 만큼 오게. 가까우면 가깝다고 말하고 옆에 가면 옆에 간다고 말하고 앞에 가면 앞에 간다고 말하고 말 많은 세상이요.
: 무당은 옛날이라고 하면 끝입니다. 1960년생이 옛날을 말하면 1960년 후반이후 인데 그걸 옛날이라고 말했을까요? 그렇지 않고 경험할 수 없고 경험하지 않은 조선시대라면 정신 줄 놓은 놈입니다. 그런데 침강의 첫 시간에 부친을 소개하면서 “ 선친이 이쪽 계통의 학문.. 조선말이 되고 해서 과거가 없어져서 도가계통으로 섭렵을 했음. 유생입니다” 1960년생을 큰 아들로 둔 사람은 1930년 전후 생이 됩니다. 1930년인 일제시대에 태어난 사람을 소개하면서 조선말이 되었답니다. 무당의 세계는 고스톱 판과 같아서 몇 십 년은 정도는 오리도 하고 내리도 하는 겁니다.
조선 시대 때 사극에서 많이 나왔어. 임금이 저 밑에서 벼슬 없는 대단한 사회적 명망이 얻고 있는 선비를 끌어 올리려고 하면 누가 반대합니까? 대신들이 막 반대를 하는 거지. 그럴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이 어떻습니다. 마마 정신 차리십시오. 그런데 그것이 公明正大 正道를 따르고 있다면 밀고 나가라.
: 무당은 책을 보면 무당협회에서 제명을 당합니다. 그래서 책을 인용한 적은 한 번도 없고 신문과 방송만 인용할 뿐입니다. 임금이 사회적 명망이 있는 선비를 끌어올린다. 지금처럼 신문이 있고 인터넷이 있는 세상이 아닌데 궁궐 안에서 어떻게 누가 대단한 사회적 명성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까요? 주역 점을 쳐서 안 겁니까? 그게 아니라 그 사람을 천거한 사람이 있고 임금도 알아보고서 그 사람됨이 좋다는 것을 확인하고 벼슬을 주는 겁니다. 그런데 왜 사극이요. 소설은 영어로 픽션으로 요즘 자주 등장하는 팩트 라는 말과는 반대쪽인데 알란가 몰라. 픽션은 무식하게 말하면 구라입니다. 사극은 역사의 큰 줄기를 적당히 가공해서 재미있게 쓴 겁니다. 책을 보지 않아서 역사를 모르다 보니 사극을 보고 우리나라 역사가 저랬는갑다 라고 생각하는 무당입니다.
조선시대 때는 요. 영의정을 했던 뭐를 했던 어디로 가는가 하면? 낙향 해요. 낙향해가지고 자기가 능력이 있으면 서원에 가서 후학을 가르치던지 아니면 그 고을 사람들하고 같이 초야에 무쳐서 동인을 해요. 그러다 보니까 밑의 사람들이 옛날 정승이라고 대우를 해주는 것이지. 자기가 정승노릇을 이제 안 해도 대우를 받는 그런 자리다.
: 궁한 무당의 소설이 매끄럽지가 않습니다. 여기도 많은 가정이 동원됩니다. 무당의 강의에서는 가정이 동원되지 않으면 설명을 못합니다. 영의정이 낙향을 했는데 실력이 있으면 서원에서 가르친답니다. 영의정을 했으면 당연 실력이 있다는 것을 모릅니다. 영의정을 한분들의 평균 나이가 어떻게 될까요? 역사책을 보면 벼슬은 내가 싫다고 그냥 사직서를 쓰고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임금에게 윤허를 얻습니다. 이때 당사자의 뜻이 강하면 윤허를 해주는데 벼슬을 사양하는 가장 큰 요인은 건강입니다. 건강으로 벼슬을 사직한 선비가 실력이 있으면 서원에 가서 가르친다. 무당이 보는 세계의 한계입니다. 공부한 적이 없는 무당은 잘나가는 사람들의 실력은 순 구라로 사기인 들이라는 생각이다 보니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겁니다.
서울을 지역을 경기라 그러지. 京에는 城이 있고 그 다음에 郭이 있고 그 다음에 城에서 오백리를 近郊라 그러고 그 밖을 遠郊라 그래. 郊는 성곽 밖입니까? 그럼 거기는 벼슬이 사는 곳이요? 평민이 사는 곳이요? 평민.
: 무당이 아는 체 하는 중에 성에는 성과 곽이 있다고만 하지 그 이상은 말이 없습니다. 이십년간 사기 강의 업을 하느라 너무도 바빠서 성균관의 공자 석전과 조선의 궁궐을 가보지 않았습니다. 조선의 궁은 성이 아니니까 곽이 없을까요? 그런데 일본의 천황이 사는 황거와 중국의 자금성에는 곽이 있습니다. 그럼 왜 조선은 없고 중국과 일본에는 있는 가 차이를 비교해서 설명해주고 한국의 성 중에서 어디에 있는 어느 성이 성과 곽이 있다는 말을 해야 됩니다만 아는 것은 성과 곽뿐으로 그 이상은 모르니까 당연히 말 못하면서 실력이 있는 체는 꼭 합니다. 한마디를 하더라도 근거가 있는 말 정확한 말을 해야 됩니다만 그러면 학자가 되면서 무당을 할 수 없습니다.
인터넷 검색 : 경기 [京畿] : 원래 '경'(京)이라는 글자는 천자(天子)가 도읍한 지역이란 뜻이고, '기'(畿)는 왕성을 중심으로 주변 500리를 뜻하는 말이다. 행정구역상으로 경기라는 명칭은 당나라 때 왕도 주변지역을 경현(京縣 : 또는 赤縣)과 기현(畿縣)으로 나눈 것이 시작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인 995년(성종 14) 개경 주변을 6개의 적현과 7개의 기현으로 나누었는데, 1018년(현종 9) 이들을 묶어 경기라고 한 것이 시초이다.
요즈음은 선거제이기 때문에 관의 장으로 앉아 있다가 내려오면 평민하고 똑 같아져 버리지 않습니까? 자기의 옛날 생각을 한다면 못 삽니다. 구청장 그러면 전에는 구청장님 하다가 어느 날 탁 바뀌어버리면 저쪽에 가서 구청장님하고 여기는 보지도 안 해. 불쌍해서 못 산다고 거기서 살아 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냐? 빨리 그것을 떨쳐라.
: 이 시대에는 평민이란 단어를 써서는 안 됩니다. 지금은 귀족인 양반과 상놈 내지 평민이 사는 조선시대가 아닙니다. 갑오경장이후 이 땅에 사는 평민인 양민들도 모두 호적을 만들면서 양반과 동등하게 되었습니다. 무당은 가장 출세한 사람은 동대문 구청장이다 보니 강의에 구청장이 여러 번 등장합니다.
앞에서는 정승을 안 해도 대우를 받는 다고 했는데 민주사회에서는 선거에 떨어진 구청장을 인사를 안 하는 수모를 당한답니다. 앞의 정승의 예와는 정 반대입니다. 무당 강의는 일단 기준이 없으니까 듣는 사람이 알아서 들어야 되고 절대 책임은 지지 않습니다. 인사를 안 하는 못된 놈도 있지만 보통은 인사를 하고 지냅니다. 이인 층이 영어에는 You 하나지만 우리는 많습니다. 사람에 따라서 달리 불려야 되고 가급적 높은 칭호로 불러주면 상대가 좋아합니다. 그래서 지금은 사장님이 거의 이인 층으로 통용되고 있습니다. 전직 장관이면 장관이라고 부르고 전직 구청장이면 구청장이라고 부릅니다. 그것은 한 번 정승을 한 사람은 정승으로 계속 대접하듯이 한번 구청장을 한 사람은 계속 구청장으로 부르면서 대우를 해줍니다.
건괘 오효에서도 말했습니다. “ 그래서 권력의 맛을 보면 사람이 만약에 장관을 했다. 요즈음 그 다음에 구청장을 했다. 이 양반들이 이 자리를 내려오면요 장관님 장관님 따라 다니다가 장관이 바뀌어 가지고 자기가 장관이 아니면 처다 보지도 않는 수모를 당해요. ” 건괘에서도 말했지만 구청장과 알고 지내는 사이면서 인사를 안 하면 인사를 안 한 사람이 나쁜 사람이지 떨어진 구청장의 잘못은 아닙니다. 모르는 사람은 당연 인사를 하지 않는 것은 정상입니다. 처다 보지 않는 수모를 당하는 것이 나쁜가? 자신을 반성할 수 있는 계기가 됩니다. 실패가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무당의 세계 또는 항상 신비하면서 만나면 서로 다정하게 사기치고 속이면서도 사는 문경의 통원마을의 예는 일반인의 예와는 상당히 다른 가 봅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물려준 스승 권오석님이 돌아가셨을 때 문상가지 않은 것을 한 점 부끄럼 없이 자랑스럽게 말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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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 ☰ 剛 健 : 삶의 天道에(私가 없다 (無私))따라 거리낌 없이 행동하고.
火 ☲ 明, 虛心 : 그 내면은 밝음 속에서 숨김이 없는 그러면서도
포용성을 갖고 있는.
同人 : 모든 사람이 함께 하고자 할 때(和)
천은 강건한 것이요. 화는 명 이화명충이요. 허심이죠. 그 다음에 오행의 화를 그대로 해석을 해서 삶의 천도를 실행하면서 천도에 따라서 강건 하늘은 거리낌없이 행동하고 그 내면은 밝음과 그러면서도 비밀이 없는 숨김이 없는 그러면서도 포용성을 갖고 있는 이런 사람이면 모든 사람이 함께 하고자 한다. 화 조화를 뜻하는 의미를 표현했습니다.
天은 역시 윗부분에 있는 것이고 火는 炎上이기 때문에 위로 올라간다. 상과 炎上이 동화된 더욱 빛나고 발전하는 상이다.
홀로 있을 때가 쉬운가? 어떤 사람과 함께 할 때가 쉬운가? 무슨 어려운 일이 있으면
혼자 하는 것보다는 함께 하는 것이 쉽겠죠. 그런데 꼭 함께 한다는 것이 이런 사람과 함께 한다는 것이 때로는 괴로울 수도 있습니다. 좋은 사람하고 함께 하느냐? 함께 할 때 함께 하느냐? 함께 할 자리가 아닌데 옆에 졸려서 지금 잠을 자야겠는데 옆에서 친구가 와서 시끌 시끌 애기를 하고 있다. 미치겠죠. 가라고 할 수도 없고 그러니까? 동인이 무조건 좋다. 이 卦내에서 보면 상당히 안 좋은 면도 나타나고 합니다. 그리고 여기는 함께 라는 개념으로 결론을 한번 내려 보겠습니다.
어렵기는 하더라도 혼자가 편하기는 편합니까? 혼자가 편합니다. 옆에 사람이 있음으로서 함께 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내가 함께 하는 사람을 배려해야 하는 의무감이 생긴다. 세상은 공짜가 하나도 없다. 함께의 즐거움이다. 그런데 우리는 함께 안 할 수없는 삶을 지금 살고 있다. 卦에서는 이렇게 좋게 나옵니다. 같이 동화되어가지고 같은 뜻을 이루고 둘 다 승천하는 거니까? 하늘로 치받아 올라가는 것 아니요? 승천해서 더욱 더 빛나고 발전하는 같은 의미를 동류의 의미를 추진하고 있는 길상이다.
사람과 함께 한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가?
어려운가?
괴로운가?
卦 전체에서 본다면 同人이라는 것은 좋은 해석을 해주고 있다. 해서 사회적으로 말한다면 이런 卦가 나왔다면 저위의 지배층은 권력자는 권력자의 正道 실행과 밑의 백성 국민들의 동조( 그 동조가 어떤 실리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허심적 동조. 마음을 비우고 따라 올라간다는 의심) 正道 실행을 하는데 여기서 뭔가 이권을 따지고 올라가면 안 되겠죠. 여기도 天道를 따라서 (天道는 私慾이 없어요. 無私)無私의 행동을 하고 있는데 밑에서 사사로움을 갖고 갈수는 없다. 그래서 저런 사회가 이루어지고 있다면 그 나라는 투명하고도 밝고 투명한 거요. 同人에 제일 중요한 것이 뭔가 하면? 사람을 함께 하는데 제일 중요한 것은 투명해야 돼. 비밀이 있으면 안 돼요. 이렇게 서로가 믿을 수 있을 때 투명하다는 소리는 서로가 믿음을 줄 때 그것이 진실된 同人이다. 둘이 앉아가지고 저 속은 어떨까? 나를
어떻게 하지 않을까? 그런 同人이라고 하면 문제가 있다. 지금 天火同人은 그렇지 않다. 믿음을 줄만 하다. 속이 다 밝은 火로 이루어 져 있기 때문에 충분히 믿음을 줄만하다. 믿음을 줄만한 同人
同人의 핵심 ‘ 遠近 差別없이
┗→私情에 의해 두면 : 小人
利
同人의 핵심은 ‘遠近 차별을 없이‘ 遠近차별을 두는 의미는 뭔가 하면 遠近 차별을 둬야 될 때가 있어요. 이것은 私情에 의해서 두면 안 돼. 私情은 利단 말이요. 利에 의해서 두면 지금 다 이렇죠. 저 사람은 나에 利로우니까 전화라도 한번 해줘야 되고 다음에 한번 찾아가야 되고 小人이 하는 짓이요.
그러면 君子들은 차별을 안 두느냐? 차별을 둬요. 君子가 同人을 하면서 사람을 차별하는 그 기준은 뭔가 하면? 天性 格에 의한 분별.
火가 많으니 활동성이 좋으니 이 사람은 오늘은 자네가 나하고 同人할 날이 아닐세. 아 같이 안 간다니 기분이 상당히 안 좋네. 그게 아니라 오늘 할 일 저 사람이 더 적성이 맞네. 이런 거지. 그러니까 차이가 상당히 있습니다. 이것은 타고난 만물의 운용인데. 배우지 않고는 상당히 어렵습니다. 여기서 벗어나고 있다면 이시대의 君子입니다.
논어 17장에 보면 공자님 말씀에
‘ 小人은 近之則不孫’ 하고 가까이 했더니 올라타려고 하고
‘ 遠之則 怨“ 좀 멀리했더니 원망하더라.
혹시 이 글자에 내가 해당이 안 되느냐? 다른 사람이 나를 이렇게 했을 때 내가 그 글자에 해당이 되지 않느냐? 우리는 학생이니까? 100% 거기에다 응대할 수는 없지만 반성을 해보는 기회로 同人卦를 봤으면 좋겠습니다. 조금 누가 나한테 소원했다고 내가 그 사람을 원망하지는 않았는가? 조금 나를 친하다고 해서 내가 그 사람에게 불손하지는 않았는가? 어렵죠. 무서운 소리입니다. 私情에 끌리는 同人은 아니가?
同人于野이면 亨하리니 利涉大川이며 利君子의 貞하리라.
동인우야 형 이섭대천 이군자 정
: 同人于野면 亨하리니 : 同人은 于野면 于野 들에서 同人을 한다면 들에서 사람들과 함께 한다면 野는 비밀스러운 곳이요? 확 트인 곳이요?
野 : 차별도 없고 노소도 없고 귀천도 없는 公平無私한 그런 사귐을 가진다면 함께 함을 가진다면 형통할 것이다. 이런 만남을 가진 사람을 욕할 사람이 있겠는가? 모르지 상대가 아주 小人이면 왜 나한테는 더 안 해줄까? 이런 질투감은 만들어 지겠지만 똑같이 할까 그런 질투감은 있을지 모르지만 큰 적은 만들지 않을 것이다. 天地否는 無私요. 이 정도 되면 天地와 같아진 거요. 땅이 누구한테는 잘해주고 누구한테는 못해줍니까? 하늘이 누구한테는 잘해주고 누구한테는 못해주는 게 아니다. 同人于野. 同人于野 하시기 바랍니다. 初爻는 同人于門하고 上爻는 同人于郊해요. 同人于野가 가장 멋있는 용어요. 同人于門보다는 同人于郊가 낫고 同人于郊 보다는 同人于野가 낫다. 이것은 나에게 있는 상대방에게 있는 모든 장단점을 훨훨 털어버리고 서로 간에 그야말로 맨 몸으로 만나는 듯한 그런 모습을 갖고 있다.
이 세상에 우주 만물에 우주 만물에서 인위적으로 자기 몸을 가리고 있는 존재가 뭐가 있느냐? 별이 옷을 입고 있습니까? 태양이 옷을 입고 있습니까? 달이 옷을 입고 있습니까? 인간밖에 없지요. 인간은 좋게 말하면 내면을 잘 간직할 수도 있겠지만 나쁘게 말한다면 나를 가릴 수도 있다. 그런 단점을 들어있다. 于野라는 것은 在野 이런 소리는 사회적 명성이라든지 이런 것을 다 떨쳐버리고 순수함으로 만난다는 의미가 들어가 있다.
利涉大川이며 : 큰 내를 건너도 이로울 것이며 큰 내는 어려움도 적극적으로 대처함이 내라는 것은 어려움이요. 그래서 어려움을 적극적으로 대처해도 좋다. 손해 볼 것 없다. 이런 만남을 갖고 있는 사람 평생에 부부도 할 애기가 있고 못 할 얘기가 있어요. 그런데 평생 못할 얘기 할 얘기를 다 털어 노을 수 있는 벗이 하나만 있다면 그 사람은 인생은 성공했다 할 정도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게 同人于野요. 그런 동인이 있다면 무엇이 두려울 것이 있겠느냐? 콸콸 흐르는 내라도 건너라. 그러면 이로울 것이다. 이 卦를 얻었다면 어려움을 한번 맞 부디 처 가지고 해보라. 그러면 좋아질 것이다. 이런 식으로 해석해도 되고 삶의 모습으로도 해석하는 거고.
利君子의 貞하니라 : 君子도 이로울 것이며 君子가 되매 이로운 방법이며 이 소리도 되고 다만 貞해야 되느니라. 正道를 걸어가야 될 것이니라. 貞은 五行의 水인데 水는 근본을 잊지 말아라. 여기서 왜 근본소리를 했는가 하면 火가 있기 때문에 그래요. 天道는 근본을 잊지 않는 건데 火는 자칫 잘못하면 화려한 포장을 할 가능성도 있습니까? 그래서 포장 하지 마라. 어디 가서 자기 마음에 있는 소리를 그대로 해야지 다니면서 이런 소리 저런 소리 겹겹이 포장을 해가지고 저쪽 마음을 얻으려는 그런 同人은 진실이 아니다. 于野가 아니다.
彖曰同人은 柔得位하며 得中而應乎乾할새 曰同人이라.
同人于野亨利涉大川은 乾行也ㅣ오
文明以建하고 中正而應이 君子正也니.
唯君子아 爲能通天下之志하나니라.
彖曰同人은 柔得位하며 : 柔爻가 得位하여 得中而應乎乾할새
여기서 주체 효는 뭔가 하면 五爻하고 二爻지. 九五하고 六二다. 陽은 사람으로 말하면 남자요 陰은 여자요. 여자가 하나밖에 없네. 그러면 남자끼리 있고 싶어요. 여자하고 싶어요. 同人하고 싶고 同人하고 싶고 同人하고 싶고 同人 해가지고 문제가 생겨요. 여기서 집중성이 생겨요. 주효는 이거요. 그것이 陰爻가 得位해서 陰爻가 二爻에 앉아가지고 得中 得位 했단 말이요.
同人曰 同人于也亨利涉大川은 乾行也오. 이렇게 큰 내를 건너도 된다는 것은 밝은 마음으로 同人을 했을 것이고 사람을 사귈 때는 마음으로 사귀라 할 것이고 행동은 天道를 따라서 전혀 無私한 강건한 天道에 따라서 움직인다면 利涉大川은 충분히 가능하다. 이것이 乾行也오 乾으로 행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文明以健하고 : 문명으로서 문명은 火고 이건 강건함으로서 하고 乾卦죠. 中正而應이 : 이 中正이 上에서 중심이 되는 자리와 下에서 중심이 되는 자리가 應하고 있으니 唯君子아 : 오직 君子가 爲能通天下之志하나니라 : 능이 天下의 뜻을 통할 수 있느니라. 지금 이런 설명을 한 것이 가능한자가 君子요. 君子면 이 설명으로 돌아올 수 있다. 그래서 君子가 同人의 의미를 제대로 구사할 수 있다.
象曰天與火同人이니 君子以하야 類族으로 辨物하나니라.
象曰天與火 同人이니 : 天과 火가 함께 있는 것을 同人이라 하니
類族으로 辨物하나니라 : 小人의 同人과 君子의 同人의 차이가 뭐냐? 小人은 私情에 의해서 利에 의해서 同人을 앞세우고 正道를 가린다. 그럼 君子는 뭐해야 되느냐? 君子도 同人을 할 때 모든 사람하고 同人을 할 수는 없다. 유족으로 변물하느니라. 유족 변물하라.
類族으로 辨物 : 필요와 상황에 따른 모든 만물과 인간을 적재 적소적 공평무사한 분류적 동행.
同人卦를 자체만 해석한다면 저런 마음으로 열심히 행동하면 일이 생긴다. 형통할 것이다. 그리고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과 함께 해도 좋다. 그런데 여러 사람과 함께 하다 보면 이런 일 이런 일 이런 일들이 발생한다. 좋은 일만 생기는 것이 아니다. 세상살이가 그렇다.
初九는 同人于門이니 无咎리라.
不可近 不可遠 : 가까이도 하지 말고 멀지도 하지 말고. 가까우면 떨어질 일밖에 없고 멀어지면 만날 일도 있겠지만 영원히 안 볼일도 생길 수 있다. 가까우면 떨어질 일밖에 없지만 싸울 일도 있다. 이 적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그러면서 원수지지도 않고 불손하지 않는 거리를 유지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울 것인가.
山卦. 天山遯. 陽位에 陽爻. 포괄적으로 말씀드립니다.
初爻 : 항상 기반을 다진다. 근본을 다져라. 나가려면 누구에 의탁해서 나가라?
二爻 : 주체요. 적극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그 대신 여기는 실체가 있는
자리는 아니고 五爻 와의 應을 봐야 된다. 五爻는 주체자요. 주체자
와의 관계 속에서
三爻 : 어중간하죠. 과다 의미이므로 손상가능 조심.
四爻 : 주체 바로 밑. 주체는 아직 안 된 자리. 앞서지 말고 근본을 잊지 말고
五爻 : 주체
六爻 : 주체가 끝난 자리죠. 미련을 버리고 행세하지 말고.
陽位 陽爻로서 正이요. 그런데 不應이요. 나를 불러낼 상대가 없다. 陽位 陽爻면 강한겁니까? 과강하다. 과강하므로 반드시 활동할 것이다. 뜻을 펼려고 할 것이나 變山卦요. 變遯卦니 山에 은둔하라 이런 소리가 되네. 산에 은둔하라. 山을 밑은 뚤려 있고 위는 덮여 있으니 문까지는 좋다. 산은 문이다. 나가려면 어디까지 나가라? 밖은 나가지 말고 기반을 다져놓은 돼서 약간만 고개를 .어라. 그게 동인우문이요. 그러면 허물은 없으리라.
門이라는 것은 자기가 살고 있는 근거지에서 발이 빠졌습니까? 아직 발이 아직 걸쳐있습니까? 다시 말해서 자신의 근본 처지 입지를 벗어나지 말고 門에서 함께하라. 남이 좀 보이겠습니까? 방에서 함께 하라가 아니네요? 門에서 함께하라. 지나가는 사람도 좀 볼 수 있습니까? 투명한 관계를 가져라. 앞의 同人 于野는 집도 아니고 들판이에요. 아무것도 없는 상태로 만났다. 원초적 만남. 이것은 그런 의미가 아니고 門이 있었으니 집이 분명히 있다는 소리고 그리고 同人 할 사람이 있으면 배웅을 해서 문까지는 배웅해주고 남들도 알 것이고 이정도면 허물이 없다. 무난하다. 사업을 하려고 하는 분이 同人卦를 얻었다면 적극적으로 추진을 하는데 上의 天이 있으니 正道에 따라서 法의 절차에 따라서 적극적으로 추진을 하고 마음은 虛心하게 밝게 숨김없이 운용을 하는데 初爻가 답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라는 소리입니까? 지금 회사자체에 내면을 더 강화하면서 조금 밖을 타진해 보라. 이 정도에요. 나가지 마라요. 이 자리는 나가는 자리가 아니에요. 同人의 모습에서 본다면 가장 그 同人의 기본. 세상을 살아가는 同人의 기본이 뭐냐? 그것이 初爻의 同人于門이다. 왜 그런가 하면? 제일 좋은 것은 동인우야지만 동인우문이란 소리는 자기 처지를 벗어나지 말고 투명한 관계를 가져라가 가장 기본이지. 아빠가 얘하고 노는데 同人하는데 애한테 니나 네나 뭐 별거 있나 야자 타임이나 하자. 이거 동인우야요. 되겠어요? 아빠는 아빠의 입지가 있고 처지가 있지. 거기에서 조금 문틀을 깨는 문을 열어 재치는 의미의 同人이 돼야지 니나 네나 같이 놀자 이러면 완전히 깨져버리는 거요. 지금 그러고 있어요. 깨져버렸어요. 애들이 존대 말도 거의 안 쓰고 존대 말이 중요한 게 아니라. 말 한마디가 중요합니까? 내면에 갖고 있는 모습이 중요하다. 아버지가 아버지 같이 안 보이고 별 볼일 없이 보이고 그 나라 정치하는 사람들이 그 자리에 앉은 이치만큼 보이지 않는다면 그건 뭐 아무것도 아니지. 자기를 털어내더라도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가장 기본은 처세가 동인우문입니다. 동인우문을 하고 그 다음에 그것을 초탈한 경지에 들어가면 동인우야 할 수 있는 상대를 만났을 때 동인우야 하세요. 아무나 보고 동인우야 미쳤나 이런 소리 나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까 유족변물하라 이렇게 나았어요. 사람대로 속속대로로 물건에 따라서 君子는 대응할 수 있는 의미가 있어야 된다. 어째든 同人의 기본이요. 初爻는 기본이라고 했어요. 동인우문이 저는 제일 마음에 드는 글입니다. 동인우야 정도 되려면 아까 말했죠. 평생 살아보세요. 그런 사람 한 두 사람 만날까 말까해. 그야말로 안 할 소리 할 소리 다 할 수 있는 그런. 그래서 여기는 처음에만 해놨지 爻내 에는 동인우야를 안 적어놨어. 그런 사람을 못 만날 것이다. 어렵다.
象曰出門同人을 又誰咎也리오.
: 만약에 문을 나가서 同人을 한다면 또한 누구의 허물이요. 아직은 여기 나갈 자리요? 안 나갈 자리요? 안 나갈 자리요. 발은 때지 말아라. 문 열어놓고 내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놓고 내가 서있는 입지를 지켜가면서 同人하라. 더 이상 공부를 안했으면 좋을 문구입니다. 陽位에 陽爻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한 발 더 나갑니까? 선을 넘어선다. 애도 애의 선을 넘어서버리고 아빠도 아빠의 선을 넘어버려요. 그러면 좋게 말하면 막역한 사이가 될지 모르지만 질서가 깨져 버린다.
이게 어떤 사회적 지위를 갔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비서가 따라 왔어요. 그래서 누구누구님 하고 여기에 지위를 인정을 하는데 옆에 이 지위를 갔고 있는 사람의 초등하교 친구가 있어요. 난리가 나는 거요. 이 사람은 이 자식아 이러고 여기서는 놀라죠. 어려운 일입니다. 비서하고 오늘 우리 허심탄회하게 술 한 잔 하세. 아 그랬더니 도가 넘어서가지고 여기에 존칭이 없어지고 니나 네나 이 소리 나면 난리 나는 거요. 거기까지 같다 그러면 자기 잘못이지. 그 門을 열대 거기를 저쪽에서도 스스로 콘트롤 할 수 있는 의미까지만 同人시켜라. 지금은 위의 입장에서 설명 들였는데 거꾸로 내가 밑의 입장이라면 同人을 해도 거기를 범하지 마라.
君子는 位로서 말한다. 君子는 자리로서 말 할뿐이다. 더 이상은 더 이하도 말을 하지 않는다. 내가 과장이면 과장자리에서 얘기할 뿐이다. 괜히 자기가 사장인양하고 사람을 몰아붙이지 말라. 앞에 있는 사람이 주역을 강의하면 강의하는 위치에서만 강의를 해야지 사회적으로 무슨 뭐 저명인사 같이 애기하고 그럴 수는 없다. 그것을 벗어나면 안 된다. 아버지는 아버지 위치에서 얘기 해야지. 달리 문을 열기는 하지만 열더라도 처지 위치를 발을 빼지 말고 문을 열어라. 나갔다 길 잃을 수 있다. 돌아오기 어렵습니다. 초등학교 일학년 졸업하면 다시는 초등학교 일학년 못 돌아옵니다. 그 다음부터는 엄청난 세월의 책임이 따라 옵니다. 그래서 이 자리가 행복해.
六二는 同人于宗이니 吝토다.
重天乾卦. 그러면 陰位에 陰爻. 正. 九五와 正應. 원래는 순한 사람이요. 正하고 順한 사람. 그런데 上卦와 같아져버립니까? 上卦와 같아져 過한 같이 논다. 같이 同人할 우려가 크다. 좋지 않다. 인색하다. 좋지 않다. 경계.
二爻는 여섯 개의 爻의 주목을 받고 있다. 陰爻 하나이니까 눈길이 그쪽으로 다 가고 있다. 주목이면서 中正자리에 앉아 있으니 실질적 능력 인정자. 모든 사람이 이 사람하고 지금 함께 하고자 해. 同人하고자 해. 그런데 이 사람이 실제자는 아니다 라고 했을 때 이 사람이 해야 할 일이 뭐요? 無私요. 다 눈이 여기 돌아오니까 사사로움이 들어가면 큰일 나. 無私의 同人을 하라. 그렇지 않으면 좋지 않다. 無私의 同人을 부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회적으로 봐도 마찬가지요. 회사 같으면 직원들이 뽑아 논 대표자. 요즈음 재건축 같으면 재건축 추진위원장. 이런 급들. 그런데 딱 뽑아놓으면 같이 놀아요. 어디로가? 여기 가서 노네. 九五와 應이 돼있지. 그러니 주위를 무시하고 동인우종 해버리네. 꼭대기하고만 놀려고 하네. 이런 경우가 있죠. 어디 가면 아 내가 그 회장 잘 알아 나한테 부탁해. 내가 가서 만나게 해줄 께. 내가 가서 부탁하면 돼. 이것이 동인우종이요. 좋은 게 아니요. 그러니 여기는 아직 세상은 안 나가 있고 은둔한 상태에서는 은자의 모습을 갖고 있다. (발도 안 빼고) 여기 여기서 일로 상대를 하고 있으니 이 둘은 좋게 보겠어요? 안 보겠어요? 그러니까 죽이려고 하고 난리를 피우는 거요. 어느 집단도 마찬가집니다. 주체자가 있으면 거기에서 자기 입지를 가지면서 자기 입지를 살리면서 이렇게 문을 열고 사귀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자기가 주체인양 하면서 홀로 나서가지고 그 주체자를 독점하려고 하는 사람이 생기지. 그 독점하려고 하는 의미가 생기는데 그것을 시기해가지고 또 모함하는 사람이 옆에 또 줄줄이 붙지. 어려워요. 강의가 끝나고 누구하고 같이 갔어. 무심히 보면 되는데. 그 사람 뭘까? 둘이 만나서 밥을 먹나 뭐하나? 눈이 무서운 거요. 보는 사람의 생각이야 마음에 들어가서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는 일이니까. 그러니까 그 형태들이죠. 해서 동인우종은 인해줘요. 혹시 이런 위치에 있어도 꼭대기로 박차고 올라가시면 연결은 되죠. 연결은 되도 좌우를 다 생각하고 無私한 同人을 해야 됩니다. 엄청나게 옆에서 욕합니다. 욕하고 멸시하고. 식당에 가서도 종업원들이 뭘 하나 가져오고 뭘 하나 가져오면 그냥 받으면 돼지. 그 사람도 同人해야 할 사람 아니요. 야 나가라 사장 나오라 그래. 나올 수는 있겠지. 그것이 그리 아름답습니까? 吝 할 수 있습니다. 조심하셔야 돼.
象曰同人于宗이 吝道也라.
: 吝嗇한 道다. 小人의 道다. 위험천만한 道다. 멸시를 당할 수 있는 道다. 그러지는 않는가 생각을 해보세요. 어디 가게에 가 가지고 종업원 무시하고 야 주인 나오라고 그래 이럴 수도 있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그러면 옆에 있는 사람들은 좋아하겠어요? 옆에 있는 사람한테 無私하게 고맙습니다. 설명 고맙습니다. 이거 다 좋은데 이 사람들한테 양해를 구하란 말이요. 혹시 여기 주인분하고 대화를 한번 해볼 수 있겠습니까? 여기서 쫒아 가지 말고 여기서 불러오게 그러면 吝이 아니지. 잠깐의 모습인데 우를 범할 수가 있습니다. 이건 乾이요. 너무 强하지요. 자기가 다 인양해버리고 상하분별이 없어지는 그런 吝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위험합니다. 줄여야 할 자리요. 과한 자리다. 그래서 만약에 卦를 二爻를 얻었다면 주위를 살피고 너무 급히 저 위로 치받아 올라가지 말고 이런 의미요. 혹시 二爻를 얻었다면 사장이 만나자 그래도 가지 말고 옆에 사람들한테는 반드시 뭐하고? 얘기를 다하고 자초지종을 얘기를 하고 가고 그래야 후탈이 없어요. 세상에 이런 일이 많습니다. 그리고 또 조심해야 될 것이 이 사람만 조심하는 게 아니요. 이 사람도 이 사람 하나에게 집중성을 주면 난리가 나버려. 윗자리도 어렵고 아랫자리도 어렵고. 서로가 陰陽이 應이 되니 그것을 살피지 못하고 그럴 수 있는 자리가 돼 버릴 수도 있다. 그럴 수 있는 자리가 돼 버릴 수도 있으니까 ...
同人 혼자 걸어가는 것이 편하다. 세삼 이 卦를 보면서 느낍니다. 둘이 있을 때는 말이 생길 수 있다. 그래서 옛날 어른들은 부인하고 가면 자네 저 만큼 오게. 가까우면 가깝다고 말하고 옆에 가면 옆에 간다고 말하고 앞에 가면 앞에 간다고 말하고 말 많은 세상이요.
이건 지나갔으면 한번 읽어보세요.
九三은 伏戎于莽하고 升其高陵하야 三歲不興이로다.
: 天雷无妄. 雷는 陽位 陽爻요. 그런데 中正은 아니죠. 不應이요. 正은 맞지만 應은 없고 過强한 자리요. 그래서 행동이 위태로운 자리요. 二爻가 五爻하고 다이렉트로 만날 기미가 보이니까 혹 잠복을 해서 伏戎于莽(복융우망) : 숲 덤불에 잠복을 해가지고 숲 속에 숨어가지고 가시덤불 숲속에 숨어가지고 경계를 하는 것이요. 이것이 정탐 비밀캐기 주위에 이런 능력을 갖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잘 同人하세요. 升其高陵하야 : 언덕배기에 올라 망을 보고 있다. 三歲不興이로다 : 六二와 九五의 만남을 시기하여 방해를 놀려고 한다. 모함하려고 한다. 그런데 六二를 배웠지만 凶이라는 소리는 안 적었죠. 六二가 비록 九五와 同人을 한다 하더라도 이것은 凶이 아니다. 正道대로 움직였다. 방해 모함을 하지만 正道의 同人이므로 실행은 못했다. 주위에 보면 막 누구 어떻고 누구 어떻고 다 얘기 하는데 가보니까 아무것도 아닌 경우의 동인자가 있을 수 있습니까? 그 의미요. 이 입장이 되지 마라. 이 입장이 만약에 되었다 하더라도 이런 자가 옆에 있다는 것을 알고 사셔야 돼. 이런 동인 자가 이 세상에는 반드시 있습니다. 내가 좋은 일을 하던 내가 나쁜 일을 하던 나를 모함할 수 있는 동인자가 있다는 것을 아시라고. 그 사람이 나의 삶을 파괴시키지 못하겠지. 내가 떳떳이 행한다면 여기는 불응이라고 했으니까 떳떳치 못한 행위를 해도 거기서 파괴시키지 못하더라도 나를 흠집 낼 수 있는 의미의 옆에 존재자들이 있다 는걸 아시라고. 그래서 뭐를 해야 되겠다? 조심하고 살아야 되는 거요. 그것 아니면 조심할 것 뭐있어요? 나를 다 좋게 만 봐준다면 그러니 혼자 사는 게 낫고 차라리 안 나오는 게 나아. 혹시 내가 이 입장이 되어 보지는 않았는가? 혹시 제가 이 입장인데 이런 경우를 당하지는 않았는가? 삼세라는 것은 雷卦가 木이니까 삼이라고 나온 거요. 雷卦가 木이 되다 보니까 이게 뭔가 시작은 하겠어요? 그런데 이게 좋은 자리가 아니니까 나쁜 어떤 의미의 시작은 하지만 위가 두 개가 텅 비어 가지고 뭐요? 이루지 못했다. 시작일 뿐이다. 雷는 결론이요? 시작이요? 시작일 뿐이요. 이런 말을 입에서 발설하는 그런 시작하는 경우의 동인자도 존재한다. 이 모든 것은 나의 위치일 수도 있고 내 주위의 모습일 수도 있고 내 삶의 모습일 수도 있고.
그래서 불언타사 : 남의 말을 하지 말자.
누가 누가 어떻고 그 소리 하지 말라. 왜 나도 제대로 못하니까? 그 사람이 나쁜 짓을 하든 말든 남의 말 하지 말라. 그리고 할러면 좋은 말을 하라. 못난 사람이라도 좋은 말을 해주고 저 사람은 이런 점이 좋더라.
伏戎于莽하고 : 융은 군사융자요. 망은 가시덤불 망자요.
象曰伏戎于莽은 敵剛也오 三歲不興이어니 安行也리오.
敵剛也오 : 적이 강함이요. 九五를 말합니다. 九五가 떳떳함이요. 삼세불흥은 어찌 행할 수 있으니요. 그일을 계속 추진할 수 있으리오.
九四는 乘其墉호대 弗克攻이니 吉하니라.
三爻는 애를 질투하는 것을 말해. 四爻는 五爻를 질투하는 거요. 陰位 陽爻지. 中正은 아니니까 과강하다. 좋은 쪽으로 나쁜 쪽으로 凶쪽으로 과강하다. 그게 乘其墉이요. 담 위에 올라서 다시 말해서 이 양반한테 한번 따지려고 사장실 문을 열려고 해. 왜 그렇게 누구만 편애하십니까? 누구만 좋아하십니까? 弗克攻이요. 결론은 했어요? 안 했어요? 안 했다. 해서 吉이 된다. 뭐하라? 삶에는 이런 정이 편파 되듯이 보이는 경우가 있다. 여기는 正이요? 不正이요? 九二하고 九五는 正이지. 正이 자신의 오판으로 편파 부정으로 보일 수 있다. 신중히 대처하라. 왜? 陽位에 陽爻니까 자칫하면 쫓아 올라가서 할 수 있다. 세상을 고민하는 사람들의 유형을 보면 자신의 위치에서 문을 여는 사람이 있고 모든 사람의 흠모하는 자도 있고 어떤 자를 시기하는 자도 있고 불만을 갖고 있는 자도 있고 여기에서는 이 卦가 나왔다면 불만이 있더라도 가라는 소리요? 말라는 소리요? 말라는 소리. 그러니까 아래에 불만이 있는 동인자도 있고 위에 불만이 있는 동인자도 뒤에 존재한다. 여섯 爻 중에 두 爻죠. 30프로 명심하세요. 내가 아무리 잘해도 내가 한 행동과 내가 한 마음. 上爻 같으면 행동이고 四爻 같으면 마음이지. 내가 마음을 내가 한 내면의 마음을 질투하는 사람도 있고 내가 한 행동을 모멸하는 사람도 존재한다. 명심하십시오. 그리고 나도 어떤 사람의 마음을 싫어 할 수도 있고 모함할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의 행동을 질시할 수도 있다. 가서 얘기 하라? 하지 마라? 다 가서 그 집 담벼락 까지 올라갔어. 담벼락이요. 이제 넘어가서 얘기만 하면 되는데 거기까지 가더라도 그냥 하지 마라. 회사로 말하면 저 밑의 김군 보라고 이렇게 잘하는데 당신은 뭐요? 너는 뭐냐 이 소리 아닙니까? 그래 가지고 나와 가지고 내가 이걸 한바탕 싸워야 되느냐. 그래가지고 그 문을 박차고 들어가려고 하다가 결론을 내. 그러지 말라. 왜? 자기도 이 자리에 않았으면 그럴 수 있어. 易地思之요. 누구도 그 자리에 않았으면 그럴 수 있어요. 그 다음에 그 자리에 앉은 사람의 입장도 이 사람은 생각을 할 줄 알아야 돼. 그래서 밑에 있는 사람은 윗사람을 생각할 줄 알고 윗사람은 밑에 있는 사람을 생각할 줄 알면 그게 지천태지. 제 각각 가버리면 위는 불만 가지고 위는 위대로 놀아버리면 천지비지.
변하면 風火家人 風卦는 넘었다는 소리요? 내려왔다는 소리요? 심지부복이네. 그래서 불극공이네 올라가긴 했는데 上卦니까? 넘어가진 안하고 공손하게 자기의 위치를 지켰다. 그래서 불극공이 風卦에서 나왔어요. 그래서 吉이 됐다. 이렇게 되면 家人 이 사람하고 다음에 또 함께 할 수 있는 만약에 들어 갔다 그러면 끝난 것 아닙니까?
象曰乘其墉은 義弗克也오 其吉은 則困而反則也라.
: 의리로서 지지 않는 것이다. 그것이 吉하다는 것은 비록 자기 입장이 곤궁하지만 道理에 돌이켜 보는 것이다. 道理를 돌이켜 보는 것이다.
九五는 同人이 先號咷而後笑이니 大師克이라아 相遇로다.
: 陽位 陽爻요. 中正자리고 강한 자리요. 그러다 보니까 실행이 과강할 수 있다. 해서 六二와 밀접한 관계가 노출 될 것이다. 또 六二를 선발하려 하나 그 외 (九三 九四가 방해하니) 처음은 좋지 않지만 나중에 웃을 수 있는 것은 이것이 私事로움으로 가는 거요? 天地正道로 應한 것이요? 天地 正道로 應한 것이니 어느 누구도 말은 있지만 방해할 수 없다. 而後笑 : 결국은 좋다. 大師克이라아 : 이럴 때는 대사는 군사 사자요. 天地 正道 호응하면 大師 강력하게 추진하라. 同人을 해라. 다만 부가할 것은 주위를 공평하게 인사가 만사란 말이 있습니다. 사람을 발탁하는데 잘못하면 난리가 나 버리지. 특히 여기 인사 발탁은 혁명적입니까? 과히 혁명적이죠. 六二를 같이 同人 하고자 하는데 九三 九四가 가만히 있겠어. 그게 조선 시대 때 사극에서 많이 나왔어. 임금이 저 밑에서 벼슬 없는 대단한 사회적 명망이 얻고 있는 선비를 끌어 올리려고 하면 누가 반대합니까? 대신들이 막 반대를 하는 거지. 그럴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이 어떻습니다. 마마 정신 차리십시오. 그런데 그것이 公明正大 正道를 따르고 있다면 밀고 나가라. 만약에 이 卦를 얻어서 五爻의 해석을 얻었다면 계속하란 소립니까? 하라. 잡음은 있습니까?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 잡음이 이 일을 꺾을 수 가 없다 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강경하게 추진하라.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여기에 휘말려 버린다. 그래서 군사를 풀어라 이런 소리가 나옵니다. 뒤 끝없이 하라 이 소리요. 이 꼭대기 주체자가 어설프게 하면 난리가 나요. 뒤 끝 없이 깨끗이. 그리고 주위를 살펴라.
象曰同人之先운 以中直也오 大師相遇는 言相克也라.
上九는 同人于郊이니 无悔니라.
: 태택금안에 편한 자리네. 澤火革. 과히 혁명을 해야 할 자리요. 陰位 陽爻요. 과강한 자리. 그런데 실세가 있는 자리요? 없는 자리요? 실세가 없는 자리요. 변澤하니 초야에 묻쳐(이제 모든 것을) 이런 것을 안 하는 것 같아요. 조선시대 때는 요. 영의정을 했던 뭐를 했던 어디로 가는가 하면? 낙향 해요. 낙향해가지고 자기가 능력이 있으면 서원에 가서 후학을 가르치던지 아니면 그 고을 사람들하고 같이 초야에 무쳐서 동인을 해요. 그러다 보니까 밑의 사람들이 옛날 정승이라고 대우를 해주는 것이지. 자기가 정승노릇을 이제 안 해도 대우를 받는 그런 자리다. 그런데 지금은 나와도 그 모습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닌가?) 초야에 묻쳐 모든 것을 털치고 공평한 同人. 同人于野는 아니라도 同人于郊라 해놨어요. 허물이 없을 것이다. 올라갔던 자리에 있는 사람이 밑의 사람하고 동인하는데 옛날 생각을 하고 가면 상당히 거북할 수도 있어요. 그러니까 그것을 떨쳐버리고 후회가 없을 것이다.
서울을 지역을 경기라 그러지. 京에는 城이 있고 그 다음에 郭이 있고 그 다음에 城에서 오백리를 近郊라 그러고 그 밖을 遠郊라 그래. 郊는 성곽 밖입니까? 그럼 거기는 벼슬이 사는 곳이요? 평민이 사는 곳이요? 평민. 다시 말해서 뭐를 버려라 는 소리입니까? 貴 富 이런 모든 것을 떨쳐 버리고 同人하라. 그러면 만사가 편할 것이다. 하는 의미요. 그래서 이 爻를 얻었다면 나의 모든 것을 다 떨치고 同人하라. 二爻를 얻었다면 나의 주체를 강력하게 밀어가면서 뜻을 굽히지 말고 同人하세요. 자기가 해야 할 일도 여섯 가지에서 하나를 선택할 수 있고 그 다음에 세상 同人하는 사람도 보면 저 여섯 가지 중에 한 사람이 있을 것이다. 여기 있는 사람이 제일 서러운 사람 아니요. 여기서 밀러난 사람 아닙니까? 요즈음은 선거제이기 때문에 관의 장으로 앉아 있다가 내려오면 평민하고 똑 같아져 버리지 않습니까? 자기의 옛날 생각을 한다면 못 삽니다. 구청장 그러면 전에는 구청장님 하다가 어느 날 탁 바뀌어버리면 저쪽에 가서 구청장님하고 여기는 보지도 안 해. 불쌍해서 못 산다고 거기서 살아 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냐? 빨리 그것을 떨쳐라.
象曰同人于郊는 志未得也라.
상왈동인우교 지미득야
: 자기 뜻을 얻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오늘은 同人에 대해서 봤습니다. 여기서도 희생을 해야 되고 여기서는 자기의 위치를 가져야 돼. 여기는 말이 많은 자리죠. 제가 권하는 것은 同人于門입니다. 그리고 혹시 이런 자리를 올라갔던 분들은 同人于郊 하시길 바랍니다. 同人于野 하면 그럴 상대자가 없고 저 들판에는 사는 사람들이 없어. 전부 어디에 모여 있어요? 서울에 모여 있다. 이권 때문에 다 여기에 모여 있다. 무서운 거요. 그런데 이 이권 만이라도 넘어설 수 있는 同人于郊가 된다면 그것도 대단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