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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여행
1492년 10월 12일 콜럼버스 이후 약 100년 동안 신대륙은 스페인의 독무대였다. 당시 스페인과 같이 바다를 주름잡던 포르투갈은 신대륙보다 아프리카에 더 관심이 많았고 영국과 프랑스는 종교개혁의 여파로 국내가 뒤숭숭하여 해외로 눈을 돌릴 여유가 없었다. (*1515년에는 마틴루터의 종교개혁이 있었고 1519년에는 마젤란의 세계일주가 있었음)
그런데 스페인은 훗날 영국의 경우와는 달리 사람을 이주시켜 식민지를 만드는 것보다 신대륙에 풍부한 금은의 약탈이나 원주민들을 이용한 농장 경영에 더 큰 관심이 있었다. 이를 위해 스페인은 군대를 보내 토착 원주민들을 무력으로 정복해 나갔는데, 그런 와중에 수많은 원주민이 희생되고 그들의 문화가 파괴되었다. 사실 기독교적 인종 우월주의에 젖어 있던 유럽인의 눈에 신대륙 원주민은 인간 이하의 미개한 동물로 비쳤고 - 이들이 사람이냐 짐승이냐 하는 문제는 당시 유럽 기독교계의 가장 큰 논쟁거리 가운데 하나였다 - 따라서 그들의 원주민 정복은 '사냥'이라는 말이 어울릴 만큼 잔인하고 비인간적이었다.
당시 신대륙에는 오늘날의 멕시코와 페루에 두 개의 거대한 왕국이 번성하고 있었다. 아즈텍 왕국과 잉카 왕국이 그것인데, 발달된 무기와 강인한 전투력, 그리고 일확천금의 욕심으로 무장한 소규모 스페인 원정대들에 의해 이 두 나라는 힘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아즈텍 왕국을 정복한 사람은 유명한 에르난도 코르테스다. 원정길에 나섰던 1519년 당시 코르테스의 나이는 불과 서른 둘이었다. 그가 이끄는 병력은 군인 500여 명, 말 10여 필, 대포 몇 문이 전부였다. 이런 적은 병력으로 강대한 군사 왕국인 아즈텍과 맞선다는 것은 자살에 가까운 무모한 행위처럼 보였다. 그러나 창과 칼 따위 원시적인 무기로는 이들을 당해낼 수 없었다. 그를 막아 선 마야 족들은 불과 몇 번의 전투 끝에 그에게 항복하고 말았다. 더구나 당시 아즈텍의 왕인 몬테주마는 악명높은 폭군으로 민심을 잃고 있었다. 원주민들은 생김새가 다르고 신기하게 차려입은 코르테스 일행을 신이 보낸 해방자라고 생각해 열렬히 환영했다. 코르테스는 이렇게 하여 끌어모은 반군을 이끌고 아즈텍 제국의 수도인 테오티우아칸을 향해 진격했다. 그가 온다는 소식에 아즈텍 귀족 수천 명이 화평을 청하기 위해 촐룰라 대광장에 모여 그를 맞이했으나 그는 아무런 무장도 하지 않은 이들을 잔인하게 모두 학살해 버리고 말았다. 겁에 질린 몬테주마는 목숨을 보존하는 대가로 자진해서 항복하고 엄청난 양의 금은보화를 선물로 바쳤다. 이리하여 그는 하루아침에 아즈텍의 주인이 되었다. 이후 아즈텍인들의 반란으로 잠시 어려움에 처하기도 했지만 결국 이 싸움도 코르테스의 승리로 돌아갔고, 반란을 주도한 아즈텍 최후의 틀라토아니(왕) 쿠아우테목이 포로로 잡히면서 화려한 문명을 자랑하던 아즈텍 왕국도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이런 슬픈 역사를 지닌 마야문명을 보기 위하여 방학기간 중에 가면 좋겠지만 파라과이 현지인들이 가는 저렴한 비용(호텔숙박, 식대, 왕복항공임 포함 1,300불)으로 갈 기회가 있어 사무소의 승인을 받아 가기로 하였다. 구인회선생내외가 먼저 여행사에 돈을 내고 나와 엄포산은 나중에 돈을 내는 바람에 일행과 같은 비행기를 이용하지 못하고 다른 비행기를 이용해야 했다.
11월 6일부터 12일(7일간)이니 5일 수업을 마치고 아순시온에 있는 새로 이사한 구인회선생집에서 집들이 겸 저녁식사를 하고 좀 놀다가 10경에 택시를 불러 공항까지 10만 과라니 주기로 하고 갔다.
나는 아순시온에서 02시11분에 이륙하여 파나마시티에 06시 18분 도착, 파나마에서 멕시코 깐꾼에는 11시에 도착하는 코빠 에어라인(Copa Airline)을 기다렸다. 6일 새벽에 출발하여 12일 45분경에 아순시온에 도착하니 완전한 7일을 여행하는 것이다. 파나마 국적기라서 그런지 제법 탑승객이 많다. 이륙하자마자 한참을 자다가 눈을 뜨니 파나마 상공이다. 여명이 밝아 오는 아래를 보니 파나마시티의 야경이 너무 아름답다. 파나마운하를 볼 수 있을까 하고 아무리 보아도 보이지 않는다. 제 시간에 도착하여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비수기라서 그런지 깐꾼으로 가는 승객은 적다. 기내식도 좋았고 승무원들도 모두 친절하였다.
정해진 시각에 깐군에 도착하여 게이트를 나왔는데도 픽업해갈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10여분 정도 기다리니 코리아노를 태우고 갈 승합차가 기사가 우리를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한다. 승차하였는데도 출발을 하지 않고 한참을 누굴 찾는 시늉을 하였다. 누구를 기다리냐고 물어보니 같이 갈 사람이 있으면 태워 갈려고 그런다고 하여 우리는 멀리 파라과이에서 밤새 비행기 타고 와서 피곤하고 힘드니 가자고 하니 못내 아시워하는 눈치다. 우리가 묵을 호텔은 별이 다섯 개인 쏠라리아(Solalia) 호텔로 해변가에 위치하고 있었다. 운전기사에게 인구가 얼마냐고 물어 보니 100만 명 정도 되고 대부분이 관광 관련분야에 종사한다고 한다. 거리는 깨끗하고 잘 정비되어 있고 국제적인 관광지답게 사람들도 매우 친절하다.
방에 짐을 풀고 인해가 올 때까지 기다릴 겸 하여 프론트에 가니 식당을 안내를 하는데 모두 3군데서 식사를 원하는 시간에 언제든지 할 수 있단다. 우리는 전망 좋은 바닷가에 있는 수영장 옆 식당에 가서 돼지, 닭 등 고기와 그동안 생선이라고는 멸치, 새우, 오징어 밖에 못 먹은 것을 한풀이라도 하듯 생선을 푸짐하게 먹고 수영장 옆에서 휴식을 취하였다. 저녁은 또 다른 뷔페식당에서 먹고 밤경치를 구경하려고 나오니 그때서야 인해선생내외와 파라과이 현지인들이 도착 하였다. 파라과이에서 온 사람은 우리 두 사람을 포함하여 모두 열 명인데 한국인이 4명 파라과이 현지인이 6명이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내일부터의 여행일정을 협의하기로 하였다.
9시 넘게까지 기다렸으나 파라과이 현지인은 2명만 내려 와서 한국인 4명과 협의 하였으나 잘 되지 않아 2명씩 조별로 움직여서 안전 사고 등에 데비하기로 하였다. 인해부부, 엄포산과 나는 낮에 수집한 안내장을 가지고 페키지투어에 참가하기로 하였다.
뒷날(7일) 아침, 우리 4명은 호텔네에 입주한 여행사 사장과 투어 협상과 조건등을 적어 서명하고 그 문서를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어 각자 가지고 여행계약이 잘 이행되는지 보기로 하였다. 오늘은 시내지리도 익힐 겸 시내 관광을 하고 8일, 9일 10일 사흘간은 여행사의 안내를 받아 관광버스를 타고 마야 유적과 깐꾼의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구경키로 하였다. 시내버스를 타고 시내를 내려 살펴보니 거리는 깨끗하고 활기차 보였다. 점심때까지 시내 관광을 하고 식사가 무제한 공급되는 호텔식을 먹기 위해 버스를 타고 호텔에서 배부르게 먹고 각자 방에서 잠시 Siesta를 하고 오후에는 마야박물관을 구경하기로 하였다.
박물관은 쏠라리아호텔에서 가까이 있어 걸어서 가니 멕시코 페소만 입장료로 받는단다. 우리는 달러밖에 없으니 달러로 내고자 했으나 환전을 해서 입장하라고 막무가내다. 할 수 없이 상당한 거리에 있는 환전소에 가서 환전을 해서 박물관 안으로 들어가니 냉방이 잘되어 있고 직원도 친절하였다. 원래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으나 코레아에서 온 것을 고집하여 경비아저씨의 허락을 받아 사진을 좀 찍었다.
마야문명의 전성기에도 문자가 없어 그런지 기록이 없고 지금가지 남아 있는 문화유산은 대부분 돌에 새긴 것이고 더러는 공동체 생활을 영위했는지 주거지이다. 우리나라는 석조문화재는 돌이 대부분 매우 강도가 높은 화강암인데 반하여 주로 퇴적암을 강도가 낮다. 그러나 산이라고는 없는데 어디서 이렇게 큰 돌을 어떻게 옮겨서 조각을 하고 설치했는지 궁금하다. 밀림 속에 여기 저기 흩어져 있는 마야시대의 주거유물을 잇는 길은 방금 비로 쓸었는지 나뭇잎하나 없다. 위엄을 보이고 잡귀를 쫓을 양으로 만들어 궁전의 입구나 건물의 받침으로 한 것은 거대한 뱀형상이다. 어찌 보면 거대한 지렁이 같기도 하고...
박물관 견학을 마치고 좀 이런 시각에 호텔로 돌아와 수영장과 카르브해의 바다 물에 몸을 담그고 수영장 곁에 마련한 코너에서 여러 가지 해산물을 먹는 맛이란...
저녁은 한국사람 네 명이 양식당에서 하기로 하고 바지와 웃옷을 갈아입고 양식을 하고 미지근하게 데운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고 금방 배가 고파 왔다.
8일은 투어를 하기로 한 날이다.
깐꾼주변에 있는 치첸(Xichen), 셀아(Xel-ha), 엑스카레트(Xcaret), 툴룸(Tulum)등 여러 가지 코스 중에서 2 코스는 239불, 3코스는 339불, 4코스는 419불인데 우리는 3코스를 300불에 계약하여 오늘 첫 투어에 나서는 것이다.
엑스카레트는 자연 경관이 그야말로 아름다워서 이루 말할 수 없고.
청소를 방금한 것처럼 항상 유지가 되어있고 특이한 것은 휴양지 안에 수십 개의 음식점과 주점 등이 있는데 모두 입장료에 포함되어 있고 들어온 사람에게는 일체 돈을 받지 않는 것이다. 손님을 적게 받아도 똑 같이 월급을 받는다면 불친절한 음식점도 있을 만 한데 하나 같이 친절하고 자기 집에 더 많은 손님을 모시려고 모든 종업원이 열심이다. 바가지요금도 있을 수 없고 일찍 와서 오래 앉아 있어도 눈치하는 기색도 없다. 바다 수영을 하려고 오리발과 구명조끼를 빌려도 공짜로 주고 잠수용 빨대를 교환해도 자증 내는 일이 없다. 우리나라 유명 관광지에도 이런 시스템을 도입하여 불친절과 바가지요금을 근절하여 관광을 선진화함도 고려 해 볼 만하다.
지하 동굴에 바닷물을 끌여드려 1,000m 정도 동굴속을 헤엄쳐가기,
유격 훈련처럼 밧줄을 타고 오다가 바다에 풍덩빠지기 등 등 너무 재미있는 놀이가 많아 해 지는 줄도 모르고 놀았다.
두 번째 투어는 치첸(Xichen)으로 갔다. 깐꾼은 관광도시라서 그런지 관광버스를 타고 한참을 가다가 넓은 운동장같은 곳에 정차하여 모두 내려서 가이드가 스페인어, 영어하는데 우리보고 이해가 가능한 여어로 가이드해 주는 버스를 타란다. 우리는 이왕 가는 것 스페인어도 배울 겸 스페인어로 가이드하는 버스를 타고 치첸에 갔다.
치첸은 그야말로 거대한 피라미드를 돌로 쌓은 것이다. 크기도 커지만 정교함에 입이 딱 벌어진다.
돌에 세긴 장식이 모두 양각이니 얼마나 많은 노력이 들었을까?
거대한 받침돌에는 모두 용(Dragon)은 아니고 뱀(어찌 보면 지렁이 같기도 함)을 양각하여 위엄을 갖추고 있다. 관광객을 상대로 객종 토산품을 파는데 대부분 지점토애 새겨 무겁고 깨어지게 쉬워 구입을 망설였다. 그런데 한곳에 가니 잉카의 달력을 나무에 새겨 파는 곳이 있어 장식용으로 2개를 샀다.
3번째 날은 툴룸(Tulum)으로 갔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스페인어로 가이드하는 차를 타고 갔다. 툴룸은 해안가에 위치한 왕성이었다고 한다. 산이라고는 없는 깐꾼에서 어디서 이렇게 많은 돌들을 가져다가 돌 구조물을 만들었을까? 바다는 에매랄드색으로 빛나고 돌로 된 성과 어우려져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게 했다.
6번째날(11일)은 수영장과 해수욕을 하고 바다위의 파라슈트(낙하산)을 타기로 하였다. 해수욕을 하다가 지치서 낙하산을 타러 가니 제법 비싸다. 마침 두 사람이 같이 탈 수 있어 나와 엄포산이 탔다.
맑은 카리브해를 발아래 굽어 보니 경치가 환상적이다. 내릴 때 바다에 빠지는 경우가 있어 일체의 소지품을 두고 와서 사진을 못 찍는게 흠이라면 흠이다. 수영장으로 바다로 왔다 갔다 하면서 수시로 맛나는 음식을 먹기도 하면서 또 수영장에서 비키니 차림의 예쁜 멕시코아가씨가 진행하는 게임에 참여하기도 하며 하루가 꿈 같이 흘러갔다. 저녁에는 멕시코 음악을 들으면서 호텔에서 제공하는 술을 마시면서 하루를 마감하며 일주일이 스치듯 지나갔다.
오늘은 멕시코 깐꾼을 떠나 임지인 파라과이로 돌아가는 날이다. 배부르게 아침을 먹고 짐을 챙겨 놓고 수영장에서 조금 놀다가 포산과 나는 여유를 가지고 공항으로 갔다. 깐꾼에서 파나마, 파나마에서 아순시온으로 온 길의 역순이다. 나는 아순시온에 도착하는 시각이 12일 23시 45분이라 좀 걱정되었다. 15분만 늦게 도착하면 13일 도착한 것으로 여권에 날짜가 찍히기 때문에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예컨대 국외휴가 일수가 하루 줄어들고 코이카 파라과이 사무소에는 7일 국외휴가를 사용하겠다고 한 것을 8일 사용한 것으로 되니 설명도 해야 하고 등 등
인해는 우리 보다 불과 몇시간 뒤에 출발하는데도 13일 새벽에 도착하여 국외휴가 8일을 사용하게 되었다.
아순시온 공항에 도착하니 23시 45분이다. 좀 더 빨리 내리고자 배낭을 준비하고 서둘러 내리니 공항직원이 걱정하지 말란다. 수속을 마치고 여권을 받아 보니 12일로 선명하게 입국일자가 찍혀 있었다.